이글은 프레시안 201305-17일자 기사 '광주+33, 민주주의는 다시 피가 필요하다'를 퍼왔습니다.
[장석준 칼럼] 20년마다 봉기가
민주주의에 대한 무서운 격언이 하나 있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토머스 제퍼슨이 했다는 말이다. 이 문장은 1787년, 그러니까 미국 독립 혁명이 승리한 지 4년 뒤 그리고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2년 전에 당시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이던 제퍼슨이 윌리엄 S. 스미스라는 옛 혁명군 동지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보다 정확하게 인용하면, 이렇다.
"한 두 세기마다 발생하는 약간의 인명 손실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를 먹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 나무에 주는천연 비료입니다."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 차태서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2010년, 80쪽)
원문 그대로 보니 더 무시무시하다. 카를 마르크스나 블라디미르 레닌 같은 사람이 꺼낸 이야기라면, '피에 굶주린 좌익'의 생생한 사례로 즐겨 인용되었을 법하다. 그러나 우익 선동가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것은 미국 '독립 선언' 작성자의 발언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비조 중 한 명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러니 나는 이 두려운 문장을 감히 진실이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5월도 절반을 넘어선 지금, 나는 한 노동 운동가가 쓴 동시대사 기록을 한창 독서 중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의 고참 활동가 이근원이 인터넷 매체 (레디앙)에 연재한 글들을 모은 (아빠의 현대사)(레디앙 펴냄)라는 책이다. 저자 이근원은 민주 노조 운동과 진보 정당 운동에서 늘 최전선에 서길 마다하지 않은 투사다. 그 최전선의 이야기가 (아빠의 현대사)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의 회고담이면서 또한 저자가 풀어놓는 지난 30여 년간의 민중 운동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출발점도 어김없이 1980년 5월이었다. "하필이면(?) 나는 그 해, 대학생이 된다"([아빠의 현대사], 23쪽)는 회고처럼, 이근원은 1980년 '서울의 봄'에 대학 신입생이었다. 그는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 10만 명의 학생들이 모여 "전두환 퇴진하라!"를 외치다가 무력하게 해산하고 만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자리에 그도 있었다. 그러고 나서 3일 뒤, 광주에서 학살이 시작되었고, 항쟁이 뒤따랐다. 그 때 그는대학생 군사 훈련장에서 공수부대의 살기와 마주하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애국자들의 피가 뿌려졌다. 오직 애국자만이었다. 압제자들은 아니었다. 패배한 봉기였다. 그러나 성급한 판단이었다. 봉기는 다만 짧지 않은 휴지기에 들어갔을 뿐이었다. 1980년대를 다루는 (아빠의 현대사) 제1장 '저항'을 읽으며 이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봉기의 풍문은 이근원 같은 수많은 어린 대학생들을 삽시간에 투사로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학살자 전두환 심판!"을 외치기 위해 밧줄에 몸을 매단 채 고공 시위를 벌였고, 감옥으로 향했다. 혁명 운동의 고전들을 등사본으로 탐독하기 시작했고,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장으로 향했다. 광주의 전투는 끝난 게 아니었다. 단지 확산되고 있을 뿐이었다.
7년 만에 첫 번째 거대한 승리가 있었다. 1987년의 6월 항쟁과 그 해 여름의 노동자 대투쟁이었다. 물론 이근원의 회고처럼, "노태우의 집권으로 인해 (…) 보수 집단은 후퇴할 시간을 벌었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1987년이 기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142쪽) '절반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래도 전투는 계속됐다. 1991년 5월 투쟁이 있었고, 1996~97년의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이 있었다. 민주 노조 운동이 전진했고, 진보 정당의 시도들도 끊이지 않았다. (아빠의 현대사) 2부와 3부가 전하는 투쟁담들이 20여 년간 지속됐다. 이 모두가 1980년 광주에서 폭발한 봉기의 여진이었다. 그래서 이근원은 말한다. '386 세대'가 아니라 '광주 세대'라고.
"'386 세대'가 언론이 붙여 준 이름이라면 나는 '광주 세대' 혹은 '5·18 세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벌어진 항쟁의 역사가 그 시대를 살아 온 모두를 짓누르고 있다. 그리고 그 '짓누름'은 아마도 우리 아버지 세대의 한국 전쟁의 무게만큼 우리 세대 전체에게 이어지고 있다." (19쪽)

▲ 우리의 5월은 광주의 5월일뿐만 아니라 촛불의 5월이기도 하다. 5년 전 촛불이 이 계절을 뜨겁게 달궜었다. ⓒ프레시안
그런데 가장 최근인 2000년대를 서술하는 (아빠의 현대사) 3부는 그 제목이 '혼돈'이다. 이 시기에 민주노총은 점점 더 무력해졌고, 한때 대안으로 등장하는 듯싶던 진보 정당은 짧은 절정기를 마치고 곧바로 혼란의 나락에 빠져들었다. 그 반대편에서 5월의 여진의 또 다른 계승자 노무현 정부는 '민주' 세력에 대한 환멸만을 남겨놓은 채 임기를 마감했다. 2012년 대선 결과는 이 환멸의 뿌리가 너무나 깊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현재 한국 사회 상황에 위의 제퍼슨의 경구를 대입해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의 나무의 양분이 소진하고 있다고. 5월 광주로부터 시작된 민주주의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 광주 세대는 벽에 부딪혔다. 그들이 어느덧 '386', '정규직' 등등으로 불리게 되면서 이런 장벽은 예고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이 대목에서 다시 제퍼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스미스에게 보낸 그의 편지는 위 인용문 바로 앞부분에서 이런 주장도 한다.
"봉기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채 20년 세월이 흐르는 것은 불가능하도록 신이 정해두었습니다. (…) 인민들이 저항 정신으로 무장해 지배자들에게 수시로 경고를 보내지 않고도 자유를 보존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토머스 제퍼슨 : 독립 선언문], 79쪽)
20년마다 봉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유를 보존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가 생명을 지속한다. '20년'이 무슨 공식은 아닐 것이다. 대략 한 세대를 말하려던 것 아닐까. 즉, 제퍼슨은 각 세대마다 자신들의 봉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세대의 봉기가 그 에너지가 소진될 때마다 다음 세대의 봉기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의 생명 법칙이라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5월은 광주의 5월일뿐만 아니라 촛불의 5월이기도 하다. 5년 전 촛불이 이 계절을 뜨겁게 달궜었다. 이근원의 (아빠의 현대사)는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형식을 취한다. 그의 딸 이은지는 촛불 세대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촛불 항쟁 당시 딸과 나누던 대화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제도 "'미래를 향한 회상'―광주 세대가 촛불 세대에게"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점이 마음에 든다. (아빠의 현대사)가 전하는 광주 세대의 찬란했던 순간들도 좋지만, 그보다도 이 책이 취하는 포즈가 더 끌린다. 이 책은 그 포즈를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벽에 가로막혔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이 착수해야 할 일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것은 미래의 궐기를 예비하고 그것을 앞당기는 일이다. 아직 분명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 주역들에게 말을 걸고 이들과 함께 모의하는 것이다.
촛불이 그런 궐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예행연습이었던 것은 아닐까. 광주의 5월이자 촛불의 5월에 우리의 또 다른 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장석준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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