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2-12일자 기사 '이정희 방지법이야말로 ‘유신 스타일’'을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소수정당 탄압 논란, 결선투표제부터 받는 게 어떨까
지난 10일, 선거관리위원회 초청대상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를 향해 ‘먹튀’란 말을 꺼냈다. 왜 ‘먹튀’일까?
박 후보는 이 후보를 향해 “처음부터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단일화 할 생각이라면 대선에 나가는 사람에게 27억원의 국가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국회에서 한참 논란 중인 ‘먹튀법’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즉 어차피 단일화 할 것, 혈세로 선거운동은 왜 하냐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4일, 첫 TV토론 이후 새누리당은 TV토론회 초청대상 기준을 강화하는 속칭 ‘이정희 방지법’을 내놓았다. 현행 공직선거법상으로는 5인 이상 국회의원을 보유하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토론회 참석이 가능하니, 토론회 참석 조건을 여론조사 지지율 15% 이상으로 올려 이 후보의 참석을 막자는 취지다.
이를 보면 새누리당이 지난 2번의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의 공격에 얼마나 심기가 불편했는지 알 수 있다. 그동안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와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에만 신경 썼지, 이 후보에 대해서는 좀처럼 언급하지 않았던 새누리당이 법안까지 제출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먹튀방지법’이니 ‘이정희 방지법’이니 하는 제도를 시행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이다. 현 시점에서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두 법안 모두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를 ‘큰 판’에서 밀어내자는 수준이지만, 본질적으로 소수정당의 목소리가 끊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 한국 정치형태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라는 보수정당 양당체제로 유지되고 있는 기형적인 모양새다. 가뜩이나 선거 때마다 거대정당에 휘둘려 방송 한 번 나오기 어려운 소수정당들은 두 법안이 시행될 경우 아예 정치권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예가 ‘오세훈법’이다. 한나라당의 차떼기, 불법선거자금이 불거지자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이 ‘정치 혁신’을 내세우면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대기업들은 직원들의 이름으로 신상을 공개할 필요가 없는 소액후원을 거대 정당에 밀어줬고, 정당후원금제도를 없애면서 유권자들의 후원에 기대야 했던 소수정당들의 목을 비틀었다.

▲ 2차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좌측부터) ©연합뉴스
소수정당들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처럼 방송 광고를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보물을 두툼하게 만들기도 버겁다. 국고보조금 혹은 알 수 없는 ‘+α’로 운영되는 기득권 정당은 모르겠지만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되는 진보정당은 그동안 국가에서 지급되는 약간의 선거보조금과 빚으로 근근이 선거운동을 하면서 진보적 가치를 설명해왔다.
그 가치가 무엇인가? 현재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경제민주화며, 복지다. 이는 이미 진보정당을 통해 오랫동안 다듬어진 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저작권자’를 알 수 없다. 국민적 요구가 거대정당의 입을 거치면서 이제야 ‘경제민주화’란 용어가 친숙하게 다가온 것이다.
이정희 후보의 토론회 방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렇다고 소수정당의 목소리를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토론회에서 배제하자는 것은 거대정당의 오만이며 독선이다. 선거 때나 돼야 언론으로부터 관심이라도 받을 수 있는 진보정당·소수정당에게 ‘먹튀’라는 굴레를 씌워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방법은 이미 나왔다. 가깝게는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있고, 멀게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시행될 경우, 선거기간 동안 소수정당은 자신의 정책을 충분히 알리고 목소리를 낸 뒤 결선투표에서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는 이를 수용했고, 박근혜 후보는 이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다.
한 발 더 나아가 애초에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대한민국에 적용되었다면 유권자들을 과대대표하고 있는 현 기득권 정당들의 힘과 소수정당·진보정당의 힘은 자연스럽게 유권자 지지의사에 맞게 조정되었을 것이다. 국회의원 수를 줄인다고 ‘정치개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먹튀방지법’과 ‘이정희 방지법’은 기분 나쁘다고 향후 소수정당의 목소리를 아예 묻어버리겠다는 것으로, 이 후보의 말처럼 ‘유신스타일’의 법안이다. 그런데 정치권 뿐 아니라 조선일보·중앙일보 등 언론에서도 연일 이정희 후보의 문제와 두 법안을 연계시키고 있다. 혹시 알겠는가, 이 법안이 언젠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의 미래에 필요한 법일 수 있다는 것을.
추신) 그리고 ‘먹튀방지법’은 지난 11월 1일, 문재인 후보가 ‘투표시간 연장’ 연계처리를 조건으로 받은 법안이다. ‘안철수-문재인’ 단일화를 겨냥해 이 법을 제출했던 새누리당은 투표시간 연장에 대한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유야무야 처리를 넘긴 바 있다.
정상근 기자 | dal@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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