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가슴 두근대던 대선, 이제는 존재를 증명하자


이글은미디어스 2012-12-17일자 기사 '가슴 두근대던 대선, 이제는 존재를 증명하자'를 퍼왔습니다.
[20대 투표 호소 기고]내가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

편집자주: 초초박빙 구도로 흘러가고 있는 선거의 마지막 변수가 투표율이 될 거라는 시선이 많다. 2002년 대선의 70%에 육박하거나 이를 넘기면 문재인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높고, 2007년 대선의 64%에 가깝다면 박근혜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노년층의 투표율이 기본적으로 높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아진다면 청년세대의 투표율이 올라가는 상황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세대분열'이 극심한 이 선거에서,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를 당사자들에게 물어보았다. 트위터 세계에서 넥센 히어로즈 팬으로 유명한 파워트위터리안 '호구슬' 님이 본인이 생각하는 투표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 16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악원 주최의 투표 참여 캠페인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모습 ⓒ뉴스1

어렸을 때부터 선거철만 되면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내가 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것도 아니었고, 선거야말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에 심취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표를 얻겠답시고 내 입에 뭘 물려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선거철만 되면, 소위 말하는 ‘높으신 분’들이 한껏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별 볼일 없는 나에게 다가와 기꺼이 먼저 고개를 숙이는 드물지만 아주 달콤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이는 내게 제법 쏠쏠한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 때 나는 그 ‘높으신 분’ 과 나 사이의 권력관계가 평생 뒤집히기 어려울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는, 그 강고한 서열이 선거라는 특수한 장을 통해 잠시나마 역전된다는 것에서 은밀한 쾌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나이 또래의 생각치고는 어딘가 비뚤어진 데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점점 자랐다. 그리고 또래들과 함께 경쟁의 도가니로 내몰렸다. 짓밟고 올라가 살아남지 못하면 끝이라는 어른들의 겁박에 아이들은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 속에서 서로 악다구니했고, 나는 견디지 못하고 끝내 낙오했다. 전열을 이탈하여 저 멀리서 친구들을 돌아다보면서, 떠나는 나나 남는 친구들이나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랐었던 것 같다.
내 10대 후반에서부터 20대 초반이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는 때로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심판할 유일한 희망으로 떠받들어지다가, 어느 순간 순식간에 정치에 무관심한 ‘20대 개새끼’로 가차없이 전락했다. 시시각각 전혀 다른 정체성으로 호명되며 희망과 개새끼의 양 극단을 정신없이 오가는 요란한 말잔치 속에 정작 나는 살아남는 것이 버거웠다. 대학 진학에 실패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돕기 시작했고, 하루에 열 시간을 잘라 팔면서도 한 달에 백만 원을 채 벌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한 또래들의 사정도 크게 나은 것은 아니었다. 혹은 더 나빴다. 수년간의 소모적인 경쟁을 뚫고 진학한 대학에서 또 다시 시작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등록금 이외에도 많은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일부 운 좋은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허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러자 누군가는 젊은이들이 패기가 없다며 매섭게 질타했고, 또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마취제를 놓아 주었다. 물론 근본적으로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찌됐든 20대는 기성세대에겐 훈계와 동원의 대상에 불과했고, 그 역겨운 시도에 대항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누군가는 싸우자고 깃발을 내걸었고, 누군가는 그러느니 차라리 스펙을 쌓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여 현 상황에서 탈출하는 게 낫다는 현실주의적인 결정을 내렸다. 나는 나와,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수사들이 역겨워졌다.
그런 일련의 일들을 겪는 동안 대통령이 한 번 바뀌었고, 선거 유세하러 나온 정치인의 짐짓 과장된 인사를 받으면서 혼자 의기양양해하던 아이도 이제는 청년이 되어, 유권자로서는 처음으로 맞는 대통령 선거를 불과 며칠을 앞두게 되었다. 후보자들의 얼굴이 단정하게 붙어 있는 포스터 앞에서 서서 생각한다. 어떤 철학자가 말했던가, 시민은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그 순간만 자유로울 뿐이라고. 맞는 말이다. 선거는 혁명이 아니다. 투표 한 번 한다고 세상이 뒤집히는 일은 없다. 당연하다.
그러나 내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나는 위정자들에게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행사한 한 표들이 모여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된다면, 부질없어 보였던 그 개인의 정치적 선택은 어느 샌가 스스로를 지키는 무기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후보를 선택하든, 심지어 무효표를 던지더라도 좋으니 20대의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게끔 표를 던져 심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길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 말고 다른 20대 청년들도, 이 나라에 태어나서 갖는 몇 안 되는 실질적인 권리인 참정권을 행사하여 선거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당장의 ‘존재 증명’을 위해서.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어린 시절 선거철의 그 은밀한 쾌감을 떠올린다. 권력관계의 역전이 주는, 그 짜릿한 쾌감을 말이다.

호구슬 / 트위터리안  |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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