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2-01일자 기사 '선거일은 공휴일인데 왜 출근을 하지?'를 퍼왔습니다.
[미디어바로미터]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
투표시간 연장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투표율은 갈수록 떨어지고(13대 대선 89.2%에서 17대 대선 63%로 약 26%포인트 하락), 비정규직 증가 등 사회경제적 변화로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이 거세다. 반면 선거일은 이미 법정 공휴일로 지정돼 있으므로 투표시간을 연장하거나 별도의 조치는 필요 없다는 반론도 있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결론적으로 선거일은 관공서의 공휴일이지, 직장인의 공휴일은 아니다.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공직선거법 제34조에 따른 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의 선거일을 관공서의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지만, 법령명과 조문내용에서 보듯이 이 규정은 공무원, 국·공립학교 등 ‘관공서’에만 적용된다. 유권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기업의 노동자에게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나마 대기업에서는 단체협약을 통해 선거일을 유급휴일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체협약으로 휴일을 보장받기 어려운 대다수의 노동자들, 특히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선거일에 출근하는 것이 현실이다. 9월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9대 총선에서 직장인 중 절반이 출근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현재 노동자가 법적으로 쉴 수 있는 날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주휴일(일주일에 평균 1회 이상 유급휴일),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른 노동절(5월1일) 뿐이다. 일반 직장인들이 통상적으로 토·일 주 2회 쉬는 것은 근로기준법이 주 40시간 노동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규정들도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것이 현실이다.

건설산업연맹은 선거일을 유급휴일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 ⓒ조현미 기자
예컨대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건설노동자 가운데 70% 이상은 새벽에 출근해 하루 일당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임시일용직이거나 특수고용직이다. 이들 건설노동자가 선거일에 투표를 하려면 그 날 하루를 공쳐야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빠듯한 건설노동자에게 투표란 사치에 불과하고,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사용자가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화석화된 문자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 직장인들,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투표 때문에 반차 쓰겠습니다”라는 말은 “회사 그만 두겠습니다”라는 말에 다름 아니고, 근로기준법 시행 이후 위 규정에 따른 처벌 사례가 단 한건도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해주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투표시간 연장 △투표일 유급휴일 지정 △공민권 행사를 방해한 사업주에 대해 선관위나 노동조합 등 제3자도 신고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서 직업·지역·출신에 관계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대기업 사장님이건, 건설 일용노동자이건, 마트 직원이건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이 보통선거·평등선거 원칙의 기본이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
그러나 선거일에도 백화점·마트·택배·건설현장·서비스센터 등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유권자, 행여 불이익이라도 입을까 투표시간을 요구하기 어려운 수많은 유권자가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헌법은 누구나 쉽고 평등하게 투표할 수 있도록 ‘보통선거·평등선거’ 원칙을 선언하고 있지만, 수백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유권자들에게는 어렵고 접근하기 힘든 ‘특별선거·불평등선거’ 원칙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10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선거권은 바로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다.
수백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현실을 국가가 외면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방법이 없다. 헌법에 맞게, 현실에 맞게, 그리고 국민의 주권 행사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은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의무이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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