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12-05일자 기사 '71년 DJ에게 있었고 문재인에게 없는 것은'를 퍼왔습니다.
[분석]TV토론 끝난 후, 더 이상 야권의 기회는 없다
‘이정희 정국’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한 쪽에서는 ‘통쾌하다’고 말한다. 주로 지지자들의 반응이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문제들이 이정희 후보의 입을 통해 줄줄이 터져 나왔다. ‘신군부 6억 수수설’을 비롯해 ‘다카키 마사오’, ‘박근혜 후보의 강탈 재산 문제’ 등 언급되지 않던 박근혜 후보의 치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반향은 엄청나다. ‘다카키 마사오’는 지금까지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올라있고, 트위터 등 SNS에선 ‘잘 몰랐다’는 반응과 함께 박정희의 또 다른 창씨개명 논란이 번지고 있다.
반면, 중도 무당파의 야권 지지에 방해가 됐단 지적도 있다. ‘안철수 현상’으로 대변되는 시대정신과 이정희 후보의 맹공은 대치된다는 지적이다. 안철수 후보 사퇴 이후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중도 무당파들이 이 후보의 거친 발언을 보고 야권에 대한 정나미를 잃을 수 있단 분석이다. 또한 이 후보의 부상으로 문 후보의 존재감이 완전히 묻혀 어차피 이기려고 선거에 나온 게 아닌 이 후보의 이미지가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문 후보의 득표력에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두 가지 모두 일리가 있는 분석이다. 구체적인 것은 여론조사를 해보면 좀 더 윤곽이 드러날 수 있겠지만, 종국에는 투표함을 까봐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양 진영 모두 이기건 지건 접전의 승부를 예상하고 있는 가운데 한 번의 TV토론으로 판세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다소 어그러진 분석, 아전인수 격의 해석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 첫번째 대선 TV토론의 승자는 예상 밖으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였다.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대선 판세가 흔들리고 있는 이 상황이 민주당에겐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정희 쇼크 이후, 진짜 중요한 문제...
정작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TV토론과 이후 후폭풍에서도 드러났지만,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전략이 다르고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그 차이가 두드러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후보의 전략은 간단하다. ‘수성’이다. 이미 50% 이상의 지지율을 점하며 사실상 진영 결집을 끝낸 상황에서 박 후보는 지금 모여 있는 지지율을 그대로 끌어 안고 12월 19일까지 가는 게 지상과제다. 반면, 문 후보는 다르다. 각종 여론조사의 편향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문 후보가 최소 1.5%에서 최대 5%이상 열세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문 후보는 이를 단기간에 극복한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TV토론에서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퇴한 안철수 후보를 의식하고 ‘미아’로 구별되는 중도층의 포로가 된 까닭인지 ‘반MB·비 새누리 단일후보’ 문재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선을 2002년 대선에 비유하고 있지만, 이번 대선의 구도는 그 보다는 71년 대선과 더 흡사해 보인다. 역대 가장 치열했던 선거로 기록되고 있는 71년 대선은 양 진영 모두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선거였다. 94만표 차이의 신승을 거둔 공화당과 박정희는 훗날 ‘승리를 도둑맞을 뻔 했다’고 회고했고, 정신적으론 ‘승리’하고도 현실적으로 ‘패배’한 김대중 대통령 측 역시 ‘이긴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말하던 선거였다. 이번 선거 역시 박근혜-문재인 가운데 누가 이기더라도 진 쪽은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 여론조사를 둘러싼 논란이 있지만 현재 판세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앞서나가는 것이 분명하다. 이대로 가면 무난히 지는 선거가 될 수 있는 문재인 후보는 어떤 전략을 준비하고 있을까? ⓒ뉴스1
승자도 패자도 ‘승리를 도둑맞을 뻔 했던’ 71년 대선의 교훈
여기서 잠깐 71년 대선의 몇 가지 포인트들을 짚어보자. 일단, 역대 최대 규모의 관권 선거였다. 박정희 정권의 사실상 2인자였던 JP는 87년 “71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 당선을 위해 600억 원이나 썼다는 걸 나중에 확인했다”고 말한 바 있다. 개표 결과를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돈이 얼마인데 내 표가 이것 뿐이냐”고 말했다는 증언까지 있었을 정도다. 당시 정부 1년 예산이 5,000억 규모였다. 현재 정부 1년 예산이 350조 규모이니 환산하면 대략 42조원 정도를 쓴 셈이다.
이 막대한 관권선거에 DJ는 '40대 기수론‘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당시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획기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지난 민주당 경선에서 김두관 후보가 내놓아 논란이 됐던 ‘예비군 폐지’가 바로 71년 DJ의 공약이었다.(2012년에도 논란이 분분한 공약이 71년에는 얼마나 더 대단했을지 상상해보라) 이 공약은 당시 젊은 층에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남북 대결시대의 종식을 의미하는 상징성과 함께 세대 투표 열기를 일으키는 다층 맞춤형 정책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정권은 정부 체계를 총동원해 ‘안보 위기론’로 맞불을 놓았다. 국방부 장관이 직접 ‘예비군을 폐지하면 20개 정규사단이 창설되어야 하고, 이는 북괴의 1백만 로농적위대 수준의 화력이 필요하다’는 담화문을 발표할 정도였다. 동시에 박정희 정권은 선거전을 철저히 ‘지역 분할’ 구도로 재편해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호남 대립 구도는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화룡정점은 ‘마지막 출마’ 선언이었다. 3선의 박정희는 이번이 ‘마지막 출마’라는 카드를 던지며 배수의 진을 쳤다.(물론, 집권 이후 유신통치에 돌입해 더는 직선제 선거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신민당 지도부를 맹렬하게 이간질했다.
결국, ‘금품/관권을 통한 조직 동원+안보위기 담론+지역공학+마지막 출마+분열 공작 vs 세대+정책+역 지역공학’이 맞섰던 셈이다. 당시의 표 차이는 95만 표였다.(박정희 634만 표, 김대중 539만 표)득표를 보면, 박정희는 경북에서 92만표를 이기고, 경남에서 58만표를 앞섰다. 반면, DJ는 전북에서 23만표를 앞서고 전남에선 40만표, 서울에서도 40만표를 앞섰지만 두터운 영남의 인구수를 뚫지 못하고 결국, 패배했다. 영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앞서고도 패배한 것이다.

▲ TV토론에 대한 관심과 이후 후폭풍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는 이번 대선에서 진영이 완전히 결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의 거의 마지막 남은 기회요소다. ⓒ뉴스1
야권의 가장 바람직한 선거 모델이었던 71년 DJ 방식
비록 석패하긴 했지만, 71년 DJ의 선거 운동 방식은 이후 오래도록 야권에게 교과서적인 모델로 회자됐다. 물론, 박정희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71년의 구도와 지금의 구도는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결정적 차이점은 71년 선거의 기획을 ‘중앙정보부’가 독점했다면 지금은 기능이 장악된 언론을 비롯한 몇몇 조직들에게 분점 되어있다는 정도이다.

▲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폴리티쿠스, 2012 개정증보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에 미치지 못하지만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해 엄청난 조직 동원을 통해 대세론를 이어왔다. 검찰부터 주요 언론 그리고 현장의 유세 청중에 이르기까지 야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조직력이다. 여기에 뜬금없이 촉발된 NLL 논란 등 안보 위기 담론이 그때나 지금이나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고 있다. 선거 막판 어떻게든 ‘북한의 로켓 발사’를 지지와 엮어낼 것이다. 영남 압승을 기반으로 충청권 서울/수도권에서 절반 싸움을 벌인다는 지역 분할 전략도 흡사하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 카드도 박 후보는 던졌다. 71년 박정희가 신민당 지도부 이간질을 기획해냈듯,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과정에 이간질했다는 점 역시 71년과 흡사하다.
야권 역시 흡사하다. 투표율 제고에 전력하는 문 후보의 모습은 세대 대결 우위론에 기반한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유리하단 판단이다. 오랜 시간 야권을 지배해 온 PK후보 필승론 역시 역 지역 분할 전략의 일환이다. 여권의 아성에서 4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면 나머지 지역을 나눠 갖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단 전략적 판단이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 ‘후보 단일화’ 정도다. 71년의 신민당은 정치적으로 단일한 집단이었던데 반해 지금의 야당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되어 있어 선거 때마다 헤쳐모여를 해야 겨우 새누리당에 맞설 수 있는 규모가 나온다.
71년 DJ에게 있고, 지금 문재인에게 없는 것
결정적으로 다른 것도 물론 있다. 71년 DJ에 비해 문 후보의 정책적 선도성은 확실히 부족하다. 문 후보는 안철수 사퇴 이후 ‘대선을 점잖게 정책 대결로 끌어간다’고 말하고 있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대표적 정책이 부재한 상황은 밋밋해 보일 뿐이다. 정책선거를 하려면 대표 상품이 있어야 한다. 굳이 71년 ‘예비군 폐지’까지 가지 않더라도 비교적 최근의 ‘무상급식’이나 ‘부유세’를 떠올릴 수 있다. 킬링 콘텐츠가 문 후보에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는 새누리당이 상당 부분 왼쪽으로 오면서 민주당과의 정책적 차별성이 옅어진 상황에서 문 후보의 정책이 뚜렷해 보이지 않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선거의 전략이다. 결국, 전략 부재인데 이러한 점은 4일 TV토론에서도 그대로 노출됐다.
이대로 가면 무난히 지는 선거다. 민주당이 사퇴 이후에도 안철수 전 후보를 바라보며 ‘지원’을 갈망했던 것은 결국 ‘세대’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이었다. 안 후보 퇴장 이후 투표의 절박성이 떨어져버린 2~30대를 투표장으로 견인해달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안 후보는 주춤하고 있다. 민주당의 문제가 크고, 안 후보의 갈등도 보인다. 어찌되었건 민주당의 독자적 실력으론 ‘세대’를 확보하지 못할 판이다. 정책적 임팩트가 약한 상태에서 세대마저 확보하지 못하면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로서는 이길 수 없는 구도다. 역 지역분할에서 일부 성과를 내더라도 판세를 뒤엎을 정도의 파괴력은 아니다. (강원과 충청은 절반에서도 그나마 밀린다.)

▲ TV토론 이후 검색어 순위에서 주목할 것은 '다카키 마사오'가 검색어 순위 상위를 계속 지키고 있단 점이다. 젊은 세대들이 ‘다카키 마사오’를 검색하고 ‘레알 이정희 짤방’을 양산하고 있는 까닭은 이 후보의 맹공으로 박 후보의 아성이 허물어지지는 않겠지만, 민주당이 채 끌어 모으지 못했던 ‘세대’들이 다시 대선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을 보여준단 점에서 분명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이대로 가면 무난히 지는 선거였는데...
그런데 4일자 TV토론에서 다른 가능성이 제시됐다. 별 다른건 없다. 이번 대선을 지배한 아주 오래된 담론인 ‘박근혜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그대로 세상에 드러났을 뿐이다. ‘네거티브’라고 하는 다소 넓은 맥락에 갇혀 취급받지 못했던 이슈들이 시청률 36%의 생중계장에 여과장치 없이 튀어나오면서 새로운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다카키 마사오’를 검색하고 ‘레알 이정희 짤방’을 양산하고 있는 까닭은 이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아니라 박 후보에 대한 비토 정서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이 후보의 맹공으로 박 후보의 아성이 허물어지지는 않겠지만, 민주당이 끌어 모으지 못했던 ‘세대’들이 다시 대선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은 분명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중도의 포로에서 벗어나야 승산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정희 후보의 ‘공격’에 대해 오히려 중도층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란 분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4일 TV토론의 승자는 이정희 후보였다. '우리 사회가 선비 정신을 높게 치는 사회여서 토론을 못하는 후보를 세게 나무라는 모습은 득이 안 된다'는 해석에는 민주주의를 제고해보자는 논리와 다름 없다. 이 후보가 터무니없는 마타도어적 공세를 했다면 모를까 사실관계에 입각한 공세를 나무랄 까닭도 이유도 없다.
민주당은 그동안 ‘안철수 변수’를 만나기 전까지 이번 대선의 의미를 ‘반MB’로 규정하며 격렬한 진영 집결을 요구해왔다. ‘반MB’가 구호로서의 생명력은 잃어버렸을지 몰라도 진영 단속의 의미마저 상실된 것은 아니다. 이번 대선이 87년 직선제 이후 최초의 양자대결로 치러지고 있단 점은 71년 만큼이나 확실한 진영 대결의 양상을 띄고 있음을 드러낸다.
물론 호의적인 구도와 진영의 결집 준비 정도에 비해 민주당의 실력이 형편없음이 과정 곳곳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이 ‘복잡한 평가’를 지금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민주당에 ‘기회’가 제공되고 있는 상황 그 자체이다. 더 이상 ‘중도층의 포로’가 되어서는 이길 수 없다. 선거는 이제 보름 밖에 남지 않았다. 안철수가 등판하건 하지 않건 과감하고 선명한 개혁으로 ‘세대’를 끌어 안고 투표장에 불러내야 한다. 투표의 당위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투표 행위를 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
71년 DJ의 선거 구호는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살겠다 갈아보자’, ‘논도 갈고 밭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였다. 문 후보는 ‘정권교체’라는 말을 가장 앞에 내세우지 않았다가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한 이후에야 부랴부랴 현수막을 다시 교체하는 촌극을 빚었다. 이정희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민주당에 묻고 있다. ‘중립적 신념’이란 타당한 것이냐고? 이번에 민주당을 찍은 사람이 다음에 새누리당을 찍을 수도 있다. 물론이다. 중도파는 특정 쟁점, 상대적 논리에 반응할 뿐, 고정된 무엇이 아니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 이후 또 다시 민주당과 문 후보에게 기회가 왔다. 시간상으로 마지막이다. 안철수 사퇴 이후 일주일 여의 시간을 허비하며, 민주당과 문 후보는 무난히 지는 길에 들어섰다. 반복할 것인가? 이제 다시 일주일 여안에 ‘결판’이 난다. 민주당과 문재인의 몫이다.
*글에 나오는 사건과 수치에 대한 기록은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폴리티쿠스, 2012 개정증보판)에서 참고해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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