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2-02일자 기사 '5년 동안 뭐했나, 이제와서 독립 외치는 방통심의위'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박만 위원장의 구상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가 ‘준사법적 기구’로 독립적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예산편성권을 확보하고 독자적 근거 법률 등의 장치를 마련해 헌법재판소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비슷한 수준의 독립성과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초 밝힌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방통심의위 “심의위 기능은 더 중요시 되어야”
박만 위원장은 30일 오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중요한 것이 예산(편성권), 심의위원들의 (독립적) 구성 문제, 행정처분을 할 권한을 갖는 것, 이것을 위해서 독자적 법률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방송과 통신의 중요성이 앞으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본다”며 “심의위의 기능은 그에 따라서 더 중요시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콘텐츠를 규제하는 기관으로 (방통심의위는) 어떤 면에서 사법부적인 역할을 한다”며 ‘독립적’ 역할과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준사법적인 기구”라는 표현을 써가며 방통심의위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우선 현재 ‘민간기구’로 스스로 규정하고 있는 위원회 성격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민간기구로 하다보니까 독립이 더 잘 되는 게 아니고 오히려 더 안 돼 있다”며 “우선 직무상으로 민간기구가 어떤 행정처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저희는 의결만 하지 나머지 행정적인 명령이나 이런 건 전부 방통위가 한다”는 것이다.

▲ 11월30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박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박 위원장은 “심의기구에 대한 별도의 법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게 저희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방통심의위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한 부분(5장)을 근거 법으로 삼고 있다. 박 위원장은 “지금은 마치 방통위의 산하기관처럼 되어 있는데 산하 기관이어서는 안 된다”며 “권한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도록 독립된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또 “민간기구다보니까 국가 예산을 사용할 수 없어서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쓰고 있는데 그건 전적으로 방통위가 관장하는 업무”라며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예산상의 독립”이라고 말했다. “별도의 법이 마련되면 심의위원장이 인사청문회까지 하고 정무직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게 방통심의위의 구상이다. 그는 “이건 제 생각일 뿐만 아니라 전체 직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위원회 구성 문제도 언급했다. 박 위원장은 “(여·야) 6대 3 위원회가 되니까 방송과 통신 콘텐츠를 규제하는 기관의 정치색이 조금은 너무 강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며 “저희 구상은 헌법재판소 구성 모델처럼 대통령과 국회와 대법원장이 추천을 해서 정치적인 영향력은 국회에서 추천하는 세 분으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독립적인 위원으로 됐으면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통제와 검열로 점철된 방통심의위 5년…‘독립’ 말할 자격 있나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발언들을 작정하듯 쏟아냈다. 요약하면, 독립적인 근거 법률을 마련해 예산권을 확보하고, 위원회 구성의 독립성을 강화해 ‘준사법기구’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통신심의 폐지와 방송심의 영역 축소 등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개편 요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 들어 새롭게 출범한 방통심의위는 수없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통제’하고,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 ‘검열’을 일삼아 왔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위원회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서도 위헌 시비가 끊이지 않을 만큼 법적·사회적 정당성도 취약하다. ‘편파심의’와 ‘정치심의’, ‘고무줄심의’, ‘청부심의’ 등 논란에 휘말렸던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방통심의위는 대통령과 여당 몫 추천으로 6명, 야당 몫으로 3명의 위원을 구성한다. 사무처 조직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지고, 예산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조성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끌어다 쓴다. 명백히 정권의 입김이 미칠 수밖에 없는 ‘행정기구’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방통심의위는 스스로 ‘독립적 민간기구’임을 주장해왔다. ‘대통령 직속의 민간기구’인 셈이다. 애초부터 정치적 중립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구조다.

방통심의위가 쌓아온 수많은 ‘업적’들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방통심의위는 2008년 ‘광우병’을 다룬 MBC (PD 수첩)에 대해 최고 수준의 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의결했고, 천안함 침몰에 대한 의혹을 다룬 KBS (추적60분)에는 ‘경고’ 조치를 내렸다. ‘낙하산 반대’ 투쟁의 일환으로 앵커들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 뉴스를 진행했던 YTN도 ‘시청자에 대한 사과’ 제재를 받았다. 2008년 미디어법 관련 내용을 보도한 MBC (뉴스후)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편파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나같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보도들이다.
방송의 ‘공정성’을 심의하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방송법은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제6조1항)는 등의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당위적’인 요구일 뿐, 법적 제재까지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방통심의위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은 방송사들의 보도 공정성을 재단하고 제재를 가하는 실질적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규제 범위도 상위법인 방송법에 언급된 것보다 훨씬 넓다. 미국의 FCC는 ‘위축효과’를 우려해 이미 1987년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을 폐기했다. 공정성은 ‘논쟁’의 대상이지, 국가기관이 주도하는 ‘제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정성’을 심의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에 유리하게 하거나”(제9조3항),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안”(제9조4항) 등의 조항은 누가 보느냐에 따라 판단과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실제 심의에서도 위원들이 결론을 내려놓고 심의규정을 꿰어 맞추는 장면이 반복돼 왔다. 잣대가 들쭉날쭉 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구나 심의위원의 다수(6인)를 대통령과 여당이 추천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성을 기대하기 힘든 위원회 구성에 공정성 심의를 맡겨놓은 꼴이다. ‘편파심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건 어쩌면 자연스럽다.
비공개 회의로 인터넷 ‘검열’…뒤늦게 ‘독립’ 외치는 까닭은
통신심의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박 위원장은 “위원회에서 하는 모든 인터넷에 관한 심의는 전부 범죄”라고 설명했다. 성매매와 마약, 불법 도박 사이트 등 불법정보에 한해 규제 역할을 담당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통심의위는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트위터의 ‘2MB18nomA’ 계정을 차단한 바 있다. 또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담고 있거나 정부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는 게시글과 SNS에 대해 망설이지 않고 ‘차단’ 조치를 내려왔다. 사실상 법적 판단을 내리는 상황에서, 위원들의 전문성을 담보할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회의는 ‘비공개’로 이뤄진다.

국가위원회도 2010년 12월 ‘불법정보’ 등에 대한 심의권과 시정요구권을 민간자율기구에 이양하도록 방통위에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공공기관의 심의 신청률이 급증하고 있고, 이렇게 신청된 건수의 대부분이 시정요구로 이어지고 있어, 정보통신심의제도가 공공기관 등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고 지적했다. 방통심의위가 사실상의 ‘검열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방통심의위는 물론 지금까지 이를 묵살하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기관이나 사람이 요청할 경우, 해당 게시글을 차단하고 있다. 명예훼손이 성립하는지 여부는 법원에서도 판결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행정기구인 방통심의위는 당사자의 요청만으로 사실상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항변권이나 이의신청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관련 회의는 모두 비공개다. 인터넷 게시글 차단 건수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기 전해는 절대 (게시물을) 내리지 않는다”는 박 위원장의 해명은 이 같은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방통심의위의 ‘미래’도 불투명해진 게 사실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목소리로 방통심의위의 축소와 개편을 언급하고 있다. 아예 ‘폐지’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인터넷 심의는 민간 자율기구가 맡고, 방송 내용에 대한 심의는 최소화 하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방통심의위 구성원들도 적지 않은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방통심의위 한 관계자는 이날 박 위원장의 구상에 대해 “위원회가 독립적일 수 없었던 구조를 개선하자는 것”이라며 지지 의사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방통심의위 축소나 개편 여론은 방통심의위의 지난 5년간 활동에 따른 성적표다. 박만 위원장이 이날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며 밝힌 내용 중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위원회가 어떤 노력과 활동을 해왔는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MBC 권재홍 앵커의 ‘헐리우드 액션’ 심의 과정이나 ‘박근혜TV’ 축소심의 의혹등 최근 논란이 된 심의 사례도 부지기수다. 속기록이나 회의록 등 주요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례적으로 회의장 방청을 금지하고 있는 부분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 박만 위원장은 “심의위의 기능은 그에 따라서 더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통심의위 사무처 직원들은 이 같은 평가가 억울할 수도 있다. 실제 사무처 내에서는 ‘정치적’ 성향의 일부 위원들 때문에 위원회의 위상이 흔들려 왔다는 불만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진다. 몇몇 위원들이 사무처를 ‘사조직화’ 한다는 불만도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불만은 방통심의위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쉽게 폄하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이 같은 ‘불안감’이 외부에서도 느껴질 만큼 전달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사무처 노조나 직원들이 내부적으로 심의위원들을 ‘압박’ 해왔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이날 박 위원장의 이날 구상은 그래서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외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개편 논의에 대한 ‘선제적 방어’의 성격이 강하다. 수십 명의 기자들을 불러 ‘송년 기자간담회’를 앞당겨 치른 것도 이와 아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조직을 지켜야 하는 수장의 입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늦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5년 동안, 방통심의위는 스스로 ‘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제 와서 ‘제자리’를 찾겠다는 방통심의위의 구상이 공허하게 들렸다면, 지나친 말일까.
허완 기자 | nin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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