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2012 대한민국 문화를 읽는 9개의 '키워드'


이글은 미디어스 2012-12-16일자 기사 '2012 대한민국 문화를 읽는 9개의 '키워드''를 퍼왔습니다.
[기고]'힐링'과 '복고'에서 '강남 스타일' 그리고 '공영방송의 몰락'까지

2012년 한국사회를 ‘문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최근 대중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속도와 쏠림 현상이다. 한 가지 사건이나 유행이 생겨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소비했다가, 곧 또 다른 유행으로 이어진다. 2012년을 회고하는 시점에 지난 1년만 놓고 보더라도 대중의 관심은 그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문화적으로 큰 흐름은 존재한다. 그러한 흐름은 개별적인 이슈나 사건과 더불어 대중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힐링’과 ‘복고’는 닮았다

문화적 측면에서 2012년을 표현하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힐링'과 '복고'라 할 수 있다. 연초부터 대선 후보자들이 출연하면서 SBS 는 올해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연예인을 비롯한 운동선수, 정치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등장해서 자신의 삶과 고통,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했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간단하다. 유명인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현 위치에 오르기까지 나름 고통과 좌절,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치유의 과정을 겪게 되고, 나아가 시청자들도 감동과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중들이 살아가는 현실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게 때문에 공감대의 측면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점차 갈수록 등장인물들이 힘든 과거를 말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성공을 거둔 현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포맷이 다른 2012년의 '성공시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혜민 스님이나 김난도 교수 등의 베스트셀러는 힐링 문화가 범사회적인 현상임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힐링과 비슷한 정서를 담고 있는 '복고' 열풍은 지난 봄 개봉한 (건축학개론)에서 시작되어 여름에 방영된 (응답하라 1997)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실제로 1990년대 대학을 다닌 40대 전후의 세대와 1990년대 후반에 대학에 갓 입학한 30대 중반 세대는 '과거'를 회상하거나 이야기하기에는 분명 젊은 축에 들면서도 추억의 앨범을 들여다보기 바빴다. 그들은 초등학교 동창회나 대학 동창회를 통해 기억을 더듬어 퍼즐을 맞추곤 했다. 그들의 현실은 암울하고, 미래는 사라졌다. 오직 기댈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추억에 대한 향수 뿐이다. 복고 문화는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2013년에도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 대선 결과와 상관 없이!

▲ 2012년 최고의 대중문화 콘텐츠로 꼽히는 '응답하라 1997'

2. '19금'이 대세다

올해 하반기 가장 중요한 흐름은 '19금' 문화의 강세이다. SNL코리아의 정규방송 편성과 더불어 갑작스럽게 성과 정치라는 한국사회의 두 가지 금기가 한꺼번에 풀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제한적이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아이돌 가수들의 섹시 컨셉은 더욱 강렬해졌고, 케이블TV에서는 주로 부부의 성을 다루는 다양한 컨셉의 프로그램이 동시에 신설되었다. 공중파에서도 '19금'을 공개적으로 늘려나가는 추세이다. 대중문화적으로 이것은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일단 성과 정치라는 영역이 해방적 요소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조금의 욕설에도 발끈하는 것을 보면 아직 요원하다. 다양한 풍자와 비판, 심지어 조소까지 이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문화 현실에서는 더욱 강한 자극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성 담론의 한계는 더욱 분명하다. 기껏해야 다루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 부부의 성이다. 성이 어떻게 부부의 성만 있겠는가. 20대 청년의 성, 노인의 성, 청소년의 성, 그리고 이성애를 넘어 동성애, 양성애 등 다양한 성적 담론이 있음에도, 하나의 성만 다루고 있는 것은 성의 문제를 부부의 침실로 국한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마포구청의 동성애 관련 플래카드에 대한 규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성 담론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3.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한류 열풍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빌보트차트 연속 2위, 유튜브 조회 9억건 이상 등 과거 어떤 한국 가수도 이루지 못한 다양한 기록을 수립했다. 이와 더불어 K-pop 및 한류 열풍은 점점 확장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싸이의 성공이 아이돌 중심의 k-pop 열풍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몇몇 기획사 중심의 아이돌 가수들의 해외 진출 전략은 상당 부분 수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음악산업을 둘러싼 자본의 재편성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SM이 연달아 가수가 아닌 연예인들을 영입하는 것은 어쩌면 그러한 연예산업 전반의 변화와 조정에 따른 전략적 선택일지도 모른다. 내년에도 싸이와 유사한 형태의 해외 진출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똑같은 성공은 반복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새로운 스타 혹은 영웅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4. 한국영화의 1천만 관객시대, 그 빛과 그늘

영화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관객 1천만을 돌파했으며, 전체 영화 관객 누적수는 1억명을 넘어섰다. 가히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찾아온 것인가 착각을 할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계 현실의 온도는 차이가 크다. 여전히 거대 자본의 독점 구조가 바뀌지 않고 있으며, 독립 영화를 비롯한 많은 영화의 제작 환경이나 조건은 최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의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은 어쩌면 거대 자본의 독점 구조에 대한 일종의 경종처럼 들릴 정도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다른 영화들에게 스크린을 양보하기 위해 스스로 상영을 중단하는 결정을 하기도 했다. 향후 문화산업은 독점과 자립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 '도둑들'과 '광해'의 동시 천만 관객은 한국 영화의 오늘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5. 정치적 소재의 영화들

흥행과는 별개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올해 정치적 소재의 영화들이 대거 개봉되었다는 점이다. 대선이라는 특정 환경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만큼 한국사회가 안정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두 개의 문), (부러진 화살), (MB의 추억), (남영동 1985), (26년) 등은 현재 혹은 과거를 다룬 작품들이다.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은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관객이 7만 명을 넘어섰고, 우여곡절 끝에 제작을 하게 된 (26년)은 개봉한 지 보름 만에 2백만 명을 돌파했다. (26년)의 경우 아직 살아있는 광주 학살의 주범에 대한 심판을 소재로 다루고 있음에도 이렇게 많은 관객이 들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소재의 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부분들이 현실 정치, 예를 들면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2012년, 아니 어쩌면 MB 정부 5년 동안 한국사회의 가장 큰 딜레마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과거든 현재든간에 그 문제들이 대중의 일상과 직접 연결되지 못하고 그저 추상적인 기호로 떠돌다가 만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과거와 현재, 나아가 현실을 이어줄 것인가 하는 점이 바로 문화예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6. 공영방송의 몰락

170일간에 걸친 MBC의 파업은 한국 언론사에 새 역사를 기록했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아나운서와 기자, 피디는 어느 순간 방송에서 사라졌고, 그들은 다양한 지역과 업무로 발령을 받아 일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심각한 현실과 대중들이 느끼는 정서의 괴리감이다. 대중들은 (무한도전)을 보지 못한다는 식으로 대리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처럼 방송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 언제 '마봉춘'이라 불렸던가 무색할 정도로 올 한해 MBC의 몰락은 급속화됐다.

이것은 비단 MBC만의 문제는 아니며, KBS를 비롯한 정권 초기의 YTN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방송국 내부에서 노조원들이 파업과 같은 과정에서 대중적 지지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자율적 방송을 할 수 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을 담아냈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금의 방송은 대중과 철저하게 괴리되어 있다는 표현이 맞다. 대중의 삶, 좀 더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자 등 한국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방송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언론이 가진 공공성의 성격을 상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지금과 같은 공영방송의 몰락은 단순히 MB 정부의 언론통제라는 문제를 넘어 좀 더 근본적으로 방송의 성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에 대해 좀 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 방송의 몰락을 바로 그 구성원들이 막아낼 것이다.

7.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2012년은 학교폭력 담론으로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게임과 웹툰은 학교폭력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청소년 보호론자들과 보수 언론에 의해 집중적인 공격을 당했다. 1990년대 말 청소년보호법이 발효되면서 당시 마녀사냥을 당했던 만화 영역의 경우에는 나름 대응 방안을 강구하기도 했지만, 게임쪽에서는 업계나 학계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했다. 게임 영역은 앞으로도 정부 규제와 관련해서 가장 뜨거운 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8. 주폭과의 전쟁, 일상의 파시즘을 다시 생각하다

2012년 5월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주폭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서울의 일선 경찰서에는 주폭 전담팀이 설치되고 보수언론에서는 주폭을 사회적 문제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정책은 근본적으로 우리사회에서 주폭이 문제인가라는 물음을 담고 있다. 사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킴으로써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적 폭력이나 내면화된 폭력에 대해서는 외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욱이 자본의 폭력은 비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작 그러한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희생이 훨씬 더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폭이나 묻지마 범죄 등에 대중의 관심과 시선을 붙잡아두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폭 척결 담론과 함께 대학교 캠퍼스에서의 금주 법안, 전 사회적으로 금연의 확대 등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넘어 사회적 자율성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파시즘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9. 문화행동과 상상력

문화운동 영역은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과의 연대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한 양상은 ‘문화행동’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되고 있는데, 이러한 과정은 문화와 사회, 문화와 노동, 문화와 경제, 그리고 문화와 운동이 어떤 방식으로 연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구체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공지영씨의 (의자놀이) 출간은 성과 와 더불어 많은 한계를 도출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힘을 빌어 사회적 목소리를 낼 때 어떤 시각과 입장이 필요한 것인지 이제 논의할 시점이 되었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사람들은 상상력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고 있다. 나의 삶과 현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상상력은 나와 타자의 삶을 연결시킬 수 있는 힘이다. 알바생으로서 청년노동자의 삶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삶을 유비시킬 수 있는 힘이다. 아울러 1970년대와 2012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1980년대 5공화국과 오늘날 지배세력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힘이다. 그것은 곧 ‘은유로서의 삶’을 인식하는 일이다. ‘문화행동’은 그러한 상상력, 인식 능력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문화연대 웹진 (문화빵)에도 실렸습니다. 

권경우 / 문화평론가  |  nomad7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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