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일 일요일

제18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11-12일자 제50호 기사 '제18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퍼왔습니다.
Corée 우리에게 대통령은 무엇인가

나에겐 어여쁜 아이들이 있습니다. 훌륭한 아내도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길을 함께 걷는 동료들과 한결같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나에겐 보험이 없습니다.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없고 일자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 동료와 가족들 중 23명이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나는 쌍용자동차 해고자입니다.

단칼에 해고된 철의 노동자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볼 때마다 기운이 솟는 38살의 평범한,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18년 전 만난 아내에게 아직까지 사랑한다고 종종 이야기해서 주위의 빈축을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 7개월 동안 가족들을 한 달에 두세 번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서울 길거리에서 7개월을 살아야 했습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에게는 아빠를 잃어버린,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아이들이 또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을 지난 4년 동안 이 사회에 이야기해왔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아도 될 이유로 죽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살자고 외치고 있는 건 또 다른 죽음을 막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비난보다 더 무서운 건 무관심입니다. 지난 4년 동안 노동자들에게 가장 무관심하고 냉정했던 건 바로 정치와 법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입니다. 정치가 우리 곁에 있었다면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쌍용차 출신이라는 이유로 취업을 거부당하는 일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파업 이후 수천억 원의 예산이 편성되어 내려왔다지만, 해고자들 중 혜택을 봤다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또한 그렇습니다. 지난 9월 쌍용차 국회 청문회로, 쌍용차 문제가 불법적인 기술 유출을 면피하기 위해 회계 조작으로 이루어진 기획 부도라는 의혹이 드러났음에도, 국정조사 등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지 않는걸 보면 확신에 가까운 결론에 이릅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에겐 정치는 아예 없다는 결론 말입니다.
우리에게 법이 갖는 권위가 얼마나 우스운지 모릅니다.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법은 그냥 이야기일 뿐입니다. 나는 쌍용차 공장 점거 파업에 함께했다는 이유로 인해, 열거하지 못할 정도의 기소 내용으로 실형 2년, 집행유예 3년이라는 어마어마한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재판에서 경찰과 검찰, 재판부는 증거를 제시하지도 입증하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노동조합 간부였다는 이유의 공동정범으로, 경찰과 검찰의 협박으로 이루어진 조합원들의 진술서로 어마어마한 범죄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 노동자들이 92명이나 됩니다. 법원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불법으로 판결 내리고, 검찰은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경찰은 잠복했다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노동자들을 체포합니다. 이게 이 땅의 노동과 노동자가 겪는 일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불법 폭력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벌금형에 처해졌으면, 그것과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용역깡패, 관리자로 구성된 구사대, 불법 과잉 폭력을 저지른 경찰은 왜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인은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이 땅에서 딱 '1만 명만 평등하다'는 이야기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정치와 법이 무관심하게 내버려둬서 부당하게 공장 밖으로 내몰린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 중 23번째 죽음이 생기고,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은 곡기를 끊었습니다. 스스로를 던져서라도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마지막 절규의 호소입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 천의봉은 2년 전 대법원에서 판결한 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며, 5만V가 흐르는, 몸 하나 편하게 누이지 못하는 위험천만한 송전탑에 올라가서 농성을 이어갑니다. 혹시 가보셨습니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눈을 감아서는 안 되는 절실한 문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대통령 혼자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어느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이 정규직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에게 들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대학 다니는 친구들도 좋은 일자리를 갖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시를 쓴다든지, 음악을 한다든지, 운동을 한다든지, 그림을 그리는 등의 장래희망은 부유한 부모의 뒷받침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안정된 일자리에서 한 번 밀려나기만 하면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어져버렸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좋은 대학을 나와도 비정규직 일자리로 시작해야 합니다.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꿈이라는 건 TV 프로그램에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사회는 끝없는 경쟁을 통해서 모든 이들에게 함께 살 수 없는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4년간 정리해고자 수가 10만 명이 넘고,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9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정말 기업이 어려워서 해고를 하고, 해고한 일자리에 바로 비정규직으로 채워 운영하는 것일까요? 기업의 이윤이라는 이름의 끝없는 탐욕…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하고, 바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런 자본의 폭주를 제어하고 관리해야 할 정치와 법은 지금 누구 편을 들고 있습니까? 해고와 비정규직의 문제로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 텐데 이 비용을 기업이 이 사회 전체에 떠넘기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나는 국가가 부강한 것에는 사실 관심이 없습니다. 세계경제 무역 규모가 세계 몇 위인지는 하등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저임금은 가장 적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용은 가장 많은 국가라는 오명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선진국이 된다 한들 그건 전체 국민의 선진화가 아닌 기업의 선진화일 뿐입니다. 모두 겪은 고통의 토대에서 구축된 영광은 모두의 것이어야 합니다. 소수가 모든 걸 독점하려고 모두를 희생시키는 구조의 방향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개개인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우리는 지향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노동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것입니다.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불온하게 바라보는 편견과 '빨갱이'라고 이내 뒤집어씌우는 사회적 낙인을 교육과 제도를 통해서 걷어내야 합니다. 또한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노동조합을 만들고, 교섭하고, 파업할 수 있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가 지켜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권리를 침해하는 기업과 권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나는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인 사회가 모두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모든 해고를 금지하고,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탄압받지 않는 상식적인 세상을 나는 소망합니다.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대통령 한 명이 이 잔혹하고 야만적인 사회를 단기간에 바꿀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이 사회에서 누군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면 그건 당신이어야 합니다. 모든 권력과 책임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 당신께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가를 위해서 국민을 희생시키지 않는 당신, 기업을 위해서 노동자를 희생시키지 않는 당신을 기대해봅니다.

*글 고동민 쌍용차범국민대책위원회 기획팀장. 2003년 쌍용차에 입사해 2009년 노동조합 문화부장으로 활동하다 구속되면서 해고됐다.
트위터 @playman0825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