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1-12-02일자 사설 '[사설]김하늘 판사의 ‘FTA 사법부 역할론’ 공감한다'를 퍼왔습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法諺)은 판사가 재판과 관련된 사안을 판결문 밖에서 언급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해칠 수 있는 만큼 극도로 자제하라는 행동규범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법언이 판사는 판결 이외의 모든 사안에 대해 침묵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즉 판사도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국가의 사법체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에는 적극적 견해 표명의 의무마저 진다고 할 수 있겠다.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엊그제 법원 내부게시판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불평등 조약일 수 있는 만큼 사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 김 판사는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써 법원행정처에 FTA 연구를 위한 태스크포스 구성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의 글은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나라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22일을 잊지 않겠다”는 인천지법 최은배 부장판사의 글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열린 직후에 나온 것이다.
우리는 김 판사의 글이 여러 가지 점에서 큰 의미를 담고 있으며, 경청할 대목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선 김 판사가 자신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경원 후보를 지지했던 합리적 보수주의자”라고 규정한 점에서 FTA를 비판하는 판사들을 ‘반미주의자’ ‘극소수 좌편향 법관’ 운운하며 색깔론 공세를 펼쳤던 수구언론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게 됐다. 그의 글에 판사 116명이 지지 댓글을 올린 것이나, ‘윤리위에 회부돼야 할 이들은 수구언론 기자들’이라는 법관들의 목소리가 이를 증명한다.
김 판사의 글 가운데 “처음에는 막연하게 FTA에 찬성했지만 비준안 날치기 통과 이후 FTA를 들여다보니 법률전문가이며 애국자인 법관들의 연구와 결론 도출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대목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애국적 보수주의자이며 최고의 법률전문가인 판사가 “막연하게 찬성했을” 정도라면 일반인들 가운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FTA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찬성했을 것인가. 김 판사와 같은 법관들이 뒤늦게나마 FTA의 치명적 독소조항을 꿰뚫어보고 문제해결에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FTA는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이 조약을 포함한 법률의 최종적 해석권자인 법원이 이제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김 판사의 ‘사법부 역할론’도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사법환경의 재앙적 변화를 고민하는 법관이라면 당연히 표명할 수 있는 견해라고 본다. 우려스러운 것은 아직도 법원 수뇌부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걱정하는 법관들의 진심을 잘못 알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회 일각의 주장을 여론이란 이름으로 실체를 왜곡하는 시도가 있다”는 언급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실체를 왜곡한 것이야말로 수구언론이며, 이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이야말로 대법원 수뇌부가 아니던가. 김 판사의 진심어린 충정이 FTA의 실체를 제대로 알리고, 재협상 등을 통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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