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1-12-05일자 사설 '[사설]경찰 ‘디도스 테러’ 수사, 도청사건 때와는 달라야'를 퍼왔습니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것은 말단 행정조직까지 총동원한 3·15 부정선거 때문이었다. 십수년간에 걸친 장기독재와 인권탄압, 민생의 피폐로 인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정권이긴 했지만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부정선거에 민심은 극도로 분노했고, 결국 4·19혁명으로 폭발해 그 시기를 앞당겼던 것이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수행비서 등이 연루된 ‘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반세기 전 자유당 정권 말기의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듯한 기시감마저 든다. 이 정권 초기부터 시작된 민주주의 역주행과 국민 기본권 탄압이 한계에 이른 상태에서 여당의원실 관계자가 헌법기관에 사이버테러를 감행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시장 재·보선 당일인 지난 10월26일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저질렀다는 이번 사건이 최 의원의 수행비서 공모씨 등 4명의 ‘개인적 범죄’나 과시욕에 의한 돌출행위가 아니라는 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범행 수개월 전부터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이 있는데다, 경찰 수사를 따돌리기 위해 무선 인터넷을 돌려가며 사용했으며, 범행 직전 공씨가 다른 사람 명의의 차명 휴대폰으로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통화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정보통신(IT)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이러한 종류의 사이버 범죄에는 통상 5억~6억원의 금전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정황 하나하나가 범행을 지시·기획·총괄한 ‘배후’ 또는 ‘몸통’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경찰 수사의 칼끝도 당연히 공씨 일당 뒤에 숨어 있는 세력을 겨누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범행에 사용된 좀비 PC의 숫자를 당초 196대라고 발표했다가 1500대로 뒤늦게 말을 바꾼 것이나, “최 의원 소환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미리 차단막을 치는 것 등은 적이 우려스럽다. 경찰은 지난번 민주당 대표실 도청의혹 수사에서도 사건의 핵심고리였던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을 단 한차례도 소환 조사하지 않은 채 변죽만 울리는 등 여당의 눈치를 보며 시간만 질질 끌다가 결국 사실상의 ‘영구미제사건’으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수사권 독립을 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집단임을 스스로 입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사건 자체가 경찰 차원에서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국기문란 범죄인데다 상당수의 여당의원들조차도 국정조사 실시나 특별검사 도입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도청사건 수사 때처럼 적당히 시간만 때우다가 결국 특검이 재수사하게 될 경우 자신의 직무유기가 특검의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찰은 각별히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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