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9일 목요일

"소 죽는 것만 보이고 농민 죽는 것은 안보입니까"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1-19일자 기사 '"소 죽는 것만 보이고 농민 죽는 것은 안보입니까"'를 퍼왔습니다.

ⓒ민중의소리 전북 순창의 문동연 씨

“전두환 정권 때 살아있는 외국 소 수입하면서 축산 농가 몰락할 때도 발버둥 치며 살았고, IMF 때 사료값이 폭등해 휘청거릴 때도 버텼습니다. 40년간 죽어라 소 키웠더니 정부로부터 받은 것은 빚밖에 없어요. 빚 갚느라 부모가 물려준 논도 다 팔았어요.” 

전북 순창 인계면에서 40여 년 간 육우 농사를 진행해온 문동연(56)씨가 17일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람을 이렇게 다 죽여 놓고 소 몇 마리 죽었다고 저를 처벌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

문씨는 지난 3일 그가 키우던 소가 굶어 죽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김완주 전북도지사가 직접 그의 농가를 방문해 형편을 살폈으며 외부의 지원도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문씨와 관련 동물보호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눈가 위 주름은 한층 더 깊어졌다.

문씨는 16살 때 소3마리로 시작해 육우 농사에 뛰어들었다. 축사도 하나하나 손수 용접하면서 만들었다.

“150마리까지 키워봤습니다. 소 늘어나는 게 행복했죠. 질 좋은 소를 만들기 위해 품종개량도 시도했어요. 열심히 일했습니다. 소 키워서 아이들 넷도 다 대학 보내고 그 재미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곳곳에서 위기를 맞았었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외국소를 수입하거나 IMF 때문에 사료값이 폭등을 할 때마다 농가가 휘청거렸던 것. 그래도 그는 “국가 정책 때문에 힘들었지만 국가에 대해 원망 한 번 한 적 없이 일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본격화된 2년여 전부터 불어 닥친 소값 하락과 사료값 인상 상황에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420만원에 거래 되던 700kg 짜리 육우 한 마리가 200만 원 대로 떨어졌다. 수입이 줄어들면서 빚이 쌓였다. 농협에서 받은 사료구매자금 8천200만원을 포함해 1억5천만원으로 늘었다. 그러는 사이 우울증이 찾아왔고 낮에는 집 안에 있고 밤에는 홀로 낚시를 갔다 오는 생활이 반복됐다.

만기가 되도 돈을 갚지 못하자 그는 지난해 부모에게 물려받은 논(1천100평)을 팔고 각종 보험을 해약해 1억 원을 갚았다.

“돈이 없으니까 땅 팔고, 보험 해약한 돈으로 사료 사고 빚 갚은 거에요. 오죽하면 부모가 준 유산까지 팔았겠습니까. 지금도 부모가 준 논을 팔았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요.”

하지만 폭등하는 사료값은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년도에 비해 사료값이 17%가량 올랐던 2011년 9월, 그는 사료를 줄이는 극단의 선택을 했다.

“정말 이것도 한두 번이지 세번째 휘청거리니까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솔직히 더 이상 소를 키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소가 다 죽으면 한 곳에 다 모아놓고 저도 죽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더 이상 무서운 것이 없더라고요. ”

사료를 먹지 못한 소가 한 마리씩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3일 9마리의 소가 굶어죽었다는 사연이 알려진 이후에도 소는 죽어나갔고 모두 합해 20마리로 늘어났다. 소가 죽어나갈수록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회에 대한 원망은 커지기만 했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그를 더욱 절망케 한 것은 국가였다. 언론을 통해 소가 굶어죽은 사연이 알려지고, 사체를 농가에 방치한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가 그에게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을 모색한 것.

“농가가 어렵다고 하면 정부는 그 목소리를 들어야하는 것 아닙니까. 소 죽은 것에 대해 책임추궁을 한다고 하는데, 정부의 눈에는 제가 죽어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겁니까.”

울분은 쌓이기만 했다. 김완주 도지사가 와서 형편을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위로한 것은 시민이었다. 그의 사정이 알려지자 마을 노인들이 한푼 두푼 모아 그에게 사료 100여 포대를 지원했다. 가수 이효리 씨도 자신의 트위터에 문씨에 대한 글을 올렸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쌓였던 울분도 하나둘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16일 그는 죽은 소를 땅에 묻었다. “마음 같아선 1년이라도 죽은 소를 그대로 놓으려고 했는데 다른 농가에 구제역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묻었다”고 했다. 그리고 17일 ‘구제역 방역’이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외부인의 출입도 통제했다.

“이제 소는 더 이상 키우지 않으려고요. 더 이상 저 같은 희생양이 없었으면 합니다. 정부에서 자동차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 같은 농민들도 잘살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기를 바랄뿐입니다.”

정혜규 기자jhk@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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