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8일 토요일

한나라당, 경제민주화가 뭔줄은 알고 있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27일자 기사 '한나라당, 경제민주화가 뭔줄은 알고 있나'를 퍼왔습니다.
[뉴스분석] 백 마디 말보다 중요한 건 ‘의지’와 ‘능력’

“자본주의가 뿌리째 불신받고 있다. 큰 위기에 빠졌다.”
중앙일보 27일자 사설의 첫 줄이다. 사설의 제목은 라고 붙였다. “전 세계적으로 소득 양극화는 깊어가고, 미국의 리먼사태와 유럽의 재정위기에서 보듯 국제 금융시스템은 여전히 불안정하다”거나 “시장 기능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는 적절한 정부개입마저 봉쇄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조선일보도 거들었다. 조선은 같은 날 사설에서 “지금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심각한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이 체제는 시장 참여자들의 지나친 무절제·탐욕 때문에 경기 과열과 거품을 낳으며 위기를 불러왔다”고 진단했다. 또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제력의 재벌 집중이 심화돼 중소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빈부격차·양극화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썼다.


▲ 조선일보 27일자 2면.

‘부자들의 사교장’으로 불리던 다보스포럼에서도 새삼 ‘위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25일 개막된 올해 다보스포럼은 ‘대전환-새로운 모델 만들기’를 주제로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토론이 준비됐다. 으레 경제 전망을 중심으로 첫날 프로그램이 진행됐던 것과는 달리, 올해 첫 세션의 주제는 ‘20세기 자본주의는 21세기 사회에서 실패하고 있는가’였다. 다보스포럼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파브 WEF 회장은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은 더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토로했다.
때마침 한나라당은 ‘경제민주화’ 개념을 새로 마련될 정강·정책 개정안에 도입하기로 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정책쇄신분과위원회 권영진 의원은 27일 “재벌들의 과도한 탐욕이 시장질서를 무너뜨리고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의 영역까지 침해하는 것은 공정한 시장이 될 수 없다”며 “그런 관점에서 재벌 대기업의 사회적 책무를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친재벌 정당’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일찌감치 감지됐다. 한나라당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지난해 6월말 원내대책회의에서 “대기업들이 공정시장 유지를 위해 얼마나 사회적 책임을 다해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대기업의 성장이 “시장원리에 반하는 각종 특혜와 정부의 보호정책에 상당부분 의존해온 것도 사실”이라고 직설을 날렸다. 김성식 당시 정책위 부의장도 “당정회의에서 재계가 갑갑할 정도의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와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시장 진출 등을 비판한 대목이었지만, 뿌리는 그보다 훨씬 깊다.
당장 청와대에서부터 ‘대기업에 배신당했다’는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초반 고환율 정책과 법인세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금산분리 완화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대기업을 지원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지나면 대기업이 투자나 고용을 늘릴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짝사랑’이었다. 청와대는 ‘아랫목만 뜨겁고 윗목은 냉기만 가득하다’는 민심이 결국 2010년 지방선거 참패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를 두고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순진하게 재벌에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 조선일보 2011년 4월28일자 6면.

그 해 광복절 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과제로 꼽은 ‘공정사회’는 그 배경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한 대·중소기업 상생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나 지난해 4월 ‘심복’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을 통해 ‘연기금 주주권 행사’로 대기업을 견제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 맥락이다. 일부 경제지를 제외하고 대기업의 SSM 진출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보수신문들도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라고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 법”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역시 조선일보가 가장 빨랐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자본주의4.0’이라는 대형 기획을 들고 나왔다.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 앞서 4월에는 라는 장문의 사설에서 “성장보다는 안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뒤이어 동아일보나 중앙일보 등도 대기업의 탐욕을 비판하며 ‘지속 가능한 경제’를 논하기 시작했다. 보수 언론이 보기에도 이미 그만큼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역시 관건은 방법이고, 행동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신문의 그러한 상황인식과는 별개로 대기업의 탐욕을 규제하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계획과 의지, 그리고 능력이 있느냐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말은 무성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는 평가가 많다. 말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정책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이 ‘경제민주화’ 조항을 강령에 넣고 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일례로 한나라당이 지난해 9월 고위당정회의에서 내놓았던 ‘일감 몰아주기 방지 대책’은 실제로 대부분의 MRO업체에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 실효성 논란에 휘말렸다. 또 중소기업에 납품단가 조정 협의 신청권 부여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하도급법 개정안도 중소기업협동조합에 집단교섭권을 줘야 한다는 개별 중소기업의 요구를 외면한 ‘반쪽짜리’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때문에 겉으로는 ‘동반성장’을 외치며 정부 방침에 화답하던 대기업들이 실제로는 협력업체들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은 최근 출총제 부활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며 ‘보완’하면 된다는 인식만 드러냈을 뿐이다.


▲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달 14일 당내 '쇄신파' 의원들과 회동을 갖고 있다. ⓒCBS 노컷뉴스=윤성호 기자

보수언론이 앞 다투어 내놓고 있는 ‘지속가능한 경제론’도 모순투성이다. “소득 양극화 추세를 방치하면 사회통합이 위태로울 지경”(중앙 27일자 사설)이라면서 정치권의 복지 대책에는 ‘포퓰리즘’ 딱지를 붙여왔던 게 대표적이다. “기존체제가 낳은 지나친 탐욕과 온갖 불공정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도 가장 큰 고민거리”(매일경제 27일자 사설)라면서도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은 안 된다’는 말만 고장 난 축음기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복지도 ‘보이지 않는 손’과 대기업들의 ‘선의’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믿음의 반복인 셈이다.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을 높여 서민들의 부담을 줄이자는 주장에는 ‘특목고’와 ‘영리병원’으로 맞섰던 게 이들 한나라당과 정부여당, 보수신문의 ‘카르텔’이다. 대다수 서민들의 삶을 팍팍하게 할 것이 분명한 한미 FTA에 대해 이들이 보여 왔던 태도는 어떤가. ‘지금의 체제는 안 된다’면서도 지난 시대의 상징적 유물로 남을 한미 FTA를 향해 만세를 외치는 분열적 증세를 어떻게 봐야 하나. 그리스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가 ‘무분별한 복지로 인한 재정위기 때문’이라고 사실을 호도하며 반값등록금이나 무상급식을 반대해왔던 건 그에 비하면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 조선일보 2011년 7월4일자 4면.

무엇보다 ‘동반성장’과 ‘지속가능한 경제’ 논의에 노동이 빠져있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다. 끊임없는 고용불안과 실질임금 감소,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면 자연히 노동자의 사정도 나아질 거라는 믿음은 근거가 약하다. 청와대와 정부여당, 그리고 보수신문의 뒤늦은 고백처럼 대기업이 성장한다고 그 과실이 자연스레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존엄할 권리’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고 제 몸에 불을 붙이는 노동자를 공권력으로 짓밟고 대기업 편을 들었던 게 누구인지 돌아볼 일이다.

진보신당은 27일 “뜻도 모르는 경제민주화를 함부로 운운하는 건, 한글도 못 뗀 아이가 천자문 읽겠다고 설레발치는 꼴불견이나 마찬가지”라고 논평했다. 한나라당의 변화 의지를 섣부르게 폄하할 이유는 없지만, 세간의 여전한 의구심과 의심을 생각하면 한나라당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보수신문들도 좀 더 세밀한 분석과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시점이 아닐까.


▲ 중앙일보 2011년 6월24일자 사설.

▲ 동아일보 2011년 6월15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1년 4월6일자 사설.

▲ 조선일보 27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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