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6일 목요일

"목숨걸고 중국 어선 단속해도 생명수당 700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25일자 기사 '"목숨걸고 중국 어선 단속해도 생명수당 700원"'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사병도 노동자, 최저임금 지급해야"

지난 10일 군인, 공익근무요원, 의무경찰 등 병역 의무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는 이날 서울중앙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역 병장의 시급인 459원은 기껏해야 껌 한 통 값"이라며 "2012년 시간당 최저임금 4580원으로는 짜장면 한 그릇도 사먹을 수 없는 현실에서 군인의 시급으로는 라면 한 봉지도 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진보신당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의무복무를 행하는 자들 역시 근로기준법 상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더군다나 직업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목숨을 걸고 일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못하는 국가가 청년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강제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신당이 논평을 낸 이후 인터넷상에는 이 문제를 두고 숱한 논쟁이 일어났다. 군인이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에서부터 실현 가능하느냐는 문제 제기까지 다양한 반응이 일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소송을 건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에 은 소송을 건 당사자인 황종섭(28) 씨와 김연(25) 씨를 만났다. 황 씨는 2009년 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해양경찰(전투경찰순경)로 근무했고, 김 씨는 2008년 9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했다.  

인천에서 해양경찰로 군 복무를 했다가 지난해 1월에 전역한 황종섭(28) 씨는 정부를 상대로 "군 복무기간 동안 밀린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며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군 복무기간 동안 자신이 해양경찰과 똑같은 일을 했음에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황 씨는 지난 2009년 1월에 입대해서 50톤 규모 배를 4개월간 타고 대부파출소에서 5개월간 근무했다. 이후 다시 300톤 규모 배를 4개월간 탔고, 마지막으로 100톤 규모 배를 9개월간 탄 후 제대했다. 그가 배에서 보낸 기간은 17개월. 황 씨는 3교대로 바다를 지키면서 시시때때로 '출동'을 갔다. 3,4일 동안 배를 타기는 일쑤였다. 실종자가 생기거나 재난이 발생하는 등 특정한 상황이 생기면 뭍으로 돌아오는 날은 기약이 없었다.

"목숨 걸고 받은 생명수당, 한 달에 2만 원?"

지난해 12월 중국 어선을 단속하던 해경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을 때, 황 씨는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그의 군 동료들도 중국 어선 단속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 중국어선에 꽂혀 있던 쇠파이프. ⓒ연합뉴스
"저는 다른 배를 탔지만, 중국 어선을 잡으러 다니는 동기나 후임, 선임도 있거든요. 실제 현장에 가면 총도 쏘고 난리난다고 하더군요. 중국 선원에게서 압수한 물건을 보니 끝이 뾰족하게 갈린 쇠파이프가 있었어요. 해경이 출동하면 중국 선원은 쇠파이프를 배에 달아서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간혹 그 쇠파이프를 휘두르기도 하고요. 거기 있다 보면 다치고 죽었다는 소리가 부지기수로 들리죠."

황 씨는 "바다에서는 사람이 흔하게 죽는다"며 "하다못해 배에서 소변을 보다 죽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황 씨가 몇날 며칠씩 배를 타는 대가로 받는 '생명수당'은 고작 한 달에 2만 원. 늘 '대기 상태'인 해경의 업무 특성상, 기계적으로 계산하면 하루에 700원도 안 되는 '생명 수당'을 받고 목숨을 거는 꼴이다. 그는 "해경으로 간 군인도 실제 해양경찰과 하는 일이 같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면서 "그런데 우리는 국방의 의무라는 터무니없는 핑계로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황 씨가 받는 월급은 군인과 똑같았다. 제일 많이 받았을 때가 한 달에 13만 원이었다. 생명수당 2만 원이 포함된 금액이었다. 그는 "군대에서는 위험하고 목숨을 거는 일을 하는데, 지금의 군 임금 수준은 말도 안 된다"며 "국가가 군인에게도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대에 가면 할 일이 없을 때마다 시급을 계산하게 돼요. 내 연봉은 120만 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죠. 다들 그런 불만이 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는 상상은 못해요. 지금까지 계속 그랬으니까. 그런데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때는 시급이 100원대였어. 지금 많이 좋아진 거야.' 물론 그때보다야 좋아졌겠죠. 그런데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습니까? 결국은 말이 되는 수준으로 조금씩 올렸다는 건데, 아직도 말이 안 되는 돈입니다. 말이 되는 기준은 법적으로 정해있죠. 바로 최저임금입니다."

"대법원 기준대로라면 군인도 노동자다"

2008년 9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했던 김연(25) 씨도 지난해 6월 서울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걸었다. 같은 해 11월 1심에서 패소한 김 씨는 현재 항소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김 씨는 주간근무 1주일, 야간근무 2주일을 3조 2교대로 번갈아가며 일했다. 주간근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야간근무는 오후 6시부터 그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이어졌다. 정규직 역무원과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일을 했지만, 그가 받은 임금은 한 달에 20만 원 남짓이었다. 병무청에서 지급하는 월급이 8만 원, 나머지는 차비와 식비였다. 기관장 재량 하에 복무시간 외에도 일할 때도 있었지만 추가 임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 지하철에서 일하는 공익근무요원. ⓒ뉴시스
월급 20만 원은 차비와 통신비를 내기에도 빠듯한 돈이었다. 김 씨는 중간에 종종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하는 시간이 부정기적이어서 일용직밖에 구할 수 없었고, 쉬는 날에도 잠도 못 자고 일했다. 김 씨는 "시간은 시간대로 뺏기고 생계를 위해 퇴근 후에 또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껴서 소송을 걸었다"고 말했다.

김 씨가 군인, 공익근무요원, 의무경찰등 군 복무자도 노동자라고 꼽은 근거는 간단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업무에 있어서 고용자로부터 구체적인 명령을 받을 것. 둘째, 고용자가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를 지급할 것. 셋째, 고용자가 월급을 지급할 것.

김 씨는 "군 복무자는 국가 혹은 준공공기관에 속하고, 이들 기관으로부터 구체적인 업무지시와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며 "이들이 병역 의무를 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노동자로 대우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인도 법률상 노동자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으므로 국가가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다.

"군인은 불쌍하니까 돈 주자?…노동 권리로 봐야"

군인의 임금을 현실적으로 높이자는 주장은 이전에도 제기된 바 있다. 한나라당 남경필의원은 지난 2010년 "병사들의 월급을 40만 원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병사 월급을 40만 원으로 올리면 병사들은 군 복무 기간 동안 대학 등록금을 모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황 씨는 "군인 중에는 대학생이 아닌 사람도 있는데, 굳이 대학 등록금과 군인 임금을 연결하기에는 논리가 취약하다"며 "모든 군인에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는 게 가장 깔끔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군인의 월급을 올려야 하는 데에서는 남 의원과 의견이 일치하지만, 군인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시혜적으로 월급을 인상하는 게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다"라며 "의무는 의무로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의무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아야 할 권리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씨도 "국방의 의무가 노동권과 배치되지 않는다"며 "군인이 국가의 의무를 통해서 노동을 제공한다면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정당한 대가는 법에 규정된 최저임금이다.

"군인들이 불쌍하니까 최저임금을 달라는 게 아니라, 노동 권리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겁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청년 노동에 대한 문제제기이고요. 군인뿐만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노동이 전혀 우선순위가 아니잖아요. 사회적 합의가 그 수준이라는 데 문제제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군대 임금 문제는 특수한 게 아니라, 보편적인 노동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최저임금제도가 군대 내 노동 강도 줄여줄 것"

진보신당은 군인, 공익, 의경 등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했을 때 약 5조 원이 더 필요하다고 예상한다. 이러한 계산에 대해 김 씨는 "5조 원은 전체 국방비 규모(올해 32조9576억 원)로 비춰봤을 때 불가능하지 않다"며 "충분히 증액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 씨도 "4대강 삽질에 30조 원을 쓰지 않았느냐"면서 "이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의지의 문제"라고 거들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독일은 2006년 군인의 월급이 약 251만 원, 일본 자위대의 경우 210만 원이다. 징병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도 군인들의 월급은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 2015년부터 징병제를 폐지하기로 한 대만에서는 2009년 상병이 월 40만7000원을 받았다. 아직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상병에게 약 48만6000원을 지급한다.

김 씨는 "이번 소송은 병역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한 번 더 제기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은 여성가족부 예산을 줄이고 군인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군인 최저임금제도를 실제로 실행한다면, 어디서 예산을 끌어오고 어떻게 배치해야할지 시민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인 최저임금제도가 군 감축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경필 의원은 "군인 월급 인상을 통한 군 전력의 효율화는 단계적 감군을 가능케 하며 궁극적으로 군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김 씨는 "장기적모델로 징병제를 유지할 것인지, 모병제로 갈 것인지, 병역에서 배제되는 여성이나 장애인은 어떻게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것인지, 대체 복무제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논의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황 씨도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주면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군대 내 인권 탄압 사례도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군대는 노동시간 책정이 잘 안 되는데, 임금표를 만들면 군대 내 부당노동, 초과노동, 사적노동 문제도 시정할 수 있다"며 "최저임금제도가 군대 내 노동 강도를 줄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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