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7일 금요일

조선종편 김 기자, 차라리 '강용석'식 마케팅이면


이글은 미디어스 2012-01-26일자 기사 '조선종편 김 기자, 차라리 '강용석'식 마케팅이면'을 퍼왔습니다.
[한줌의 미디어렌즈] 조선 종편 기자의 불만이 걱정스러운 이유


▲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들은 내년 총선 때 부산에서 출마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 연합뉴스
이거 무슨, ‘강용석 식 마케팅’인가 싶었다. 지난 22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트위터 친구 간담회 취재를 둘러싼 조선일보 종편 기자의 ‘항변’ 말이다. 비판이건, 비난이건 브라운관 밖에서라도 0~1%를 오가는 시청률을 넘어서는 관심을 받고 싶었을까. 아니면 신생매체 기자로서 넘치는 의욕으로 딴엔 곧은 소리 한번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먼저 간단히 정리해보자. 간담회를 취재하던 조선 종편의 김 기자란 분이 문 이사장의 코멘트를 따지 못해 자신의 트위터에 유감을 표했다. “간담회 하는 세 시간 동안 기다렸는데 인터뷰 간단히 거절당했다. 담을 낮춰야 넘어갈 수도 있는 거라 하셨는데. 언론에 대해 담을 좀 낮추셨으면 한다”고. 이어서 “전 비록 인터뷰 거절당했지만 간담회는 유쾌하게 듣고 왔습니다”라고 후속 트윗을 날렸다. 문 이사장 발언이라며 “생각이 다르면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 그런데서 베어 나오는 적대감. 이런 게 진보진영의 품을 넓히는 것을 방해하는 거에요”라고 인용해놨으니 자신은 그래도 그 정도는 했는데 문 이사장은 말과 행동 따로 라는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문 이사장 측은 ‘언론이 와서 행사를 자유롭게 취재했다’ ‘트친과 만나는 자리여서 사전에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했다’고 트위터와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했다. 김 기자는 다시 트위터에 “한번 따져볼까요?”라고 반박했다. 더 옮기지는 않겠다.
처음엔 말 그대로 해프닝, 소품 같은 사건이라 생각했다. 허나, 이어지는 김 기자의 글도, 그리고 “조선일보 종편이 언론이냐”는 류의, 그러니까 김 기자 자신이 표현했듯 “무례한 요청을 했다가 징징댄 기자” “그런 기자를 보유한 언론” 등으로 치부하는 반응도 모두 개운치 않았다.
다른 기자가 트위터를 통해 설명한 당시 상황은 접어두고 따져보자. 김 기자가 트위터에 그랬다. “문 이사장의 직접 소감 한마디를 받아내는 것은 적어도 제 기준으론 기자의 의무입니다.” 그래, 할 수 있다. 기자가 현장에 나갔으면 코멘트 하나는 따봐야지. ‘비비 꼬아서 씹는 리포트도 아닌데 의례적인 멘트 하나 안 주나’ 불만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근데 김 기자도 아시겠지만 카메라와 마이크 들이댄다고 모두가 코멘트 한두 개씩은 날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기자들이 중대한 국면에서는 일찍이 한 공영방송사 사장님께서 “전통적인 취재기법”이라고 설파하셨던 벽치기를 하기도 하고 뻗치기도 하잖은가. 멘트 따기 어렵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언론에게, 기자에게 말을 해줄 필요는 없다는 설명을 하는 거다.
또 하나. 김 기자는 자신이 일하는 매체를 싫어해서 인터뷰를 거부한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문턱 낮추자고 하면서, 생각이 달라도 용납하자고 하면서 왜 우리 매체는 거부하느냐는 식의 불만 말이다. 전면적인 조선 종편 취재 거부 ‘사태’가 벌어졌다면 논쟁의 여지가 있겠다. 실상을 보면 다른 매체 취재는 허용하고 조선 종편 취재만 막은 게 아니었다. 취재는 다 보장했다. 이는 정부나 기관이 보도자료나 브리핑같이 국민에게 알려야할 공식 영역에서 언론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면 이번 경우와 같은 코멘트, 더 나아가 기고, 개별 회견 등은 언론엔 대한 옵션이지 필수가 아니다. 가까운 예로, 지난해 12월 1일 종편 4사의 공동 개국행사 때 야권은 “이명박 정권 방송장악 음모의 화룡점정이며,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할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라며 불참했지 않은가. 이런 걸 “왜 축하 안 해주냐”고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식이면 “다들 TV 켜면서 왜 종편만 안보냐, 우리도 똑같이 봐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해당 기자의 태도나 이에 대한 반응이 개운치 않았던 건 그래서였다. 바닥에 깔려있는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고 그런 문제는 ‘너희가 언론이냐’고 내뱉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이크 대면 당연히 얘기를 해야지”하는 태도와 “TV를 켰으면 종편도 봐야할 거 아닌가”라는 발상의 간격은 그리 멀지 않다. 모두 기자 혹은 언론의 낡은 기득권, 특권의식과 잇닿아 있다. 다른 한편, “세 시간 기다렸는데 인터뷰 거절당했다”는 불만은 언제든 과거 종편 언론들이 툭하면 내세워온 ‘비판언론 탄압론’으로 위용을 갖출 수 있다. 익히 봐온 일, 그런 ‘변이’도 순식간이었다. 그래서 좋게 말해, 걱정스럽다.
물론, 이런 걱정이 과민반응이면 좋겠다. ‘강용석 식 마케팅’의 일환이라면 안쓰럽게 웃어줄 일이다. 그냥 어느 신생매체 기자의 의욕이 빚은 해프닝이라고 착하게 이해해주는 게 제일 좋을라나. 종편이라서 자꾸 ‘정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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