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8일 수요일

미국에 귀염받는 대통령


이글은 시사인 2012-01-18일자 기사 '미국에 귀염받는 대통령'을 퍼왔습니다.
위키리크스’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 공관이 작성한 외교 전문 수십만 건에서 오직 이 대통령만이 ‘매우 친미적’이라 평가됐다. 이 정권에는 ‘닥치고 친미!’ 말고는 없었다.


달포 전 한 일간신문에 나는 “때때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존중’받는다기보다 ‘귀염’받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라고 썼다. 

미국 나들이에 나서 조지 부시 2세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환대를 받을 때마다, 그가 쇠고기 시장 개방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같은 큰 선물을 미국에 건네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것은 내 육감이었을 뿐이다. 세계를 경영하는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이 ‘귀여워하는’ 국가 지도자들이 어찌 없겠는가?

‘존중’은 (거의)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들 사이의 태도, 수평적 감정이다. ‘귀염’은 상위 주체가 하위 주체에게 건네는 긍정적 태도, 수직적 감정이다. 

비록 몰락하고 있기는 하나 미국은 여전히 이 행성에서 가장 힘센 나라이므로, 미국과 완전히 대등한 처지에서 똑같은 수준의 상호 존중을 확보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 우방의 지도자들은 미국으로부터 ‘존중’과 ‘귀염’ 사이의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접의 수준은 국가의 주체성, 국가 지도자의 외교 역량, 미국 지배계급과의 친밀도 같은 것에 달려 있을 테다.

새해 들어 처음 읽은 책에서 나는 충격적 사실과 마주쳤다. 그 책은 KBS 김용진 기자가 쓴 이다. 은 재작년부터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위키리크스’ 문건을 분석한 책이다. 이 문건들에는 전 세계에 둥지를 틀고 있는 미국 공관이 그 나라 국가수반이나 정부 수반의 친미도(親美度)를 가늠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 문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매우 친미적인(strongly pro-American 또는 strongly pro-U.S.)’ 인물로 표현되었다.

그럼 미국이 이런 ‘칭찬’을 한 국가 지도자는 몇이나 될까? 김용진 기자에 따르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 전문 25만1287건 전체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전문은 단 세 개였다. 그리고 그 문건 셋은 모두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작성되었다. 다시 말해 ‘매우 친미적’이라고 평가받은 최고 권력자는 이 대통령 한 사람뿐이었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표현, 그러니까 ‘매우’라는 부사를 빼고 그저 ‘친미적인’ 인물로 표현된 국가 지도자는 다섯이었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미국 공관이 작성한 외교 전문 수십만 건에서 오직 이 대통령만이 ‘매우 친미적’이라 평가된 것이다.

이것은 여러모로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은 긴밀한 우방이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러나 미국 처지에서 보면, 한국이 영국이나 이스라엘 또는 일본만큼 중요한 우방은 아니다. 지정학적으로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나 국내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더구나 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Pew Research)가 지난해 3월에서 5월 사이에 23개 나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 호감도 조사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미국을 가장 좋아하는 국민은 일본인(85%)이었고, 케냐인(83%, 오바마 대통령의 뿌리와 관련 있을 테다), 프랑스인(75%), 리투아니아인(73%), 이스라엘인(72%)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조사에는 한국이 빠져 있었는데, 한번 견줘보려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6.8%가 미국에 호감을 보였다. 이 결과만 보자면 이 대통령은 ‘특별한 한국인’에 속하는 셈이다.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애걸복걸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 이명박 얘기는 의 끝머리에 붙은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다. 김용진 기자는 2006년부터 2010년 2월 사이에 주한 미국 대사관이 워싱턴에 보낸 외교 전문 1980건 가운데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문건을 추려 분석하며, 한국에 대한 미국 권력층의 눈길을 더듬는다. 그것을 읽는 내 심정은 심란했다. 거기에는 한국이 미국에 얼마나 얕보였는지, 한국 정부가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미국에 얼마나 애걸복걸하며 물질적·상징적 국익을 갖다 바쳤는지가 세세하게 서술돼 있다. 

이 정권에는 ‘닥치고 친미!’ 말고는 외교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미국을 존중한다. 그와 더불어 나는 우리 대통령이 미국에 귀염받는 게 아니라 존중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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