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9일 목요일

현실의 좌절과 의지적 희망 사이의 공영방송


이글은 미디어스 2012-01-18일자 기사 '현실의 좌절과 의지적 희망 사이의 공영방송'을 퍼왔습니다.
[원용진의 미디어 이야기]NHK와 한국의 공영방송

▲ 쇼리키 마츠타로(大力松太郞)쇼리키 마츠타로(大力松太郞). ‘국민타자’ 이승엽이 열심히 활동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구단주였다. 그는 일본 프로야구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일찍이 일본 경찰에서 일했던 그는 관동지진 때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고 소문을 냈던 사람이기도 하다. 요미우리 신문을 사들였고, 일본 최초로 민영방송 사업권을 따내 니혼테레비(닛테레)을 만들기도 했다. 유도광이기도 한 그는 세계 최고라는 의미로 유도 10단의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일본에 원자력 발전을 들이는 선전을 펴 일본에선 원자력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이래 저래 그는 일본의 ‘아버지’ 였던 셈이다.


NHK를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책을 적던 차에 그를 만나게 되었다. 경찰을 그만두고 요미우리 신문을 사들였을 때 그는 라디오 방송사업도 시도를 한다. 일본의 방송이 주식회사 형식이었던 민영방송으로 출발할 여지도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 정부는 방송을 선전에 활용할 요량으로 라디오 방송 성격을 사단법인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당시까지 존재하던 동경, 오사카, 나고야 방송을 합쳐 일본방송협회를 만든다. 그게 바로 NHK의 시작이다.


쇼리키는 사업수단이 대단했다. 군소신문에 지나지 않던 요미우리를 일본 최대 일간지로 만들었고, 그에 힘을 보태 닛테레 방송사로 일본의 여론을 주도해간다. 그리고 그는 늘 일본이 세계 최고이고 최대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닛테레 방송 퀴즈 프로그램에서 세계 최대의 신문사는 어딘가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로선 다른 신문사였고, 정답을 맞춘 출연자는 계속 문제를 풀어갔다. 그 때 쇼리키가 방송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정답은 ‘요미우리신문’이라며 항의했고, 프로그램에서 정답이 취소되고 그가 정답이 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유도 10단도 그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별스런 일은 아닌 듯 하다. 그의 이름에 이미 클 ‘대’가 들어있음도 그렇다.


일본은 신문과 방송의 겸영이 이뤄져 있는 가장 대표적인 나라다. 일본은 이를 계열화라고 부른다. 신문과 방송은 계열화되어 있는 것이 일본 언론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도출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독점화다. 사실상 계열화되어 있는 언론사 외에는 신문, 방송 시장에서 발을 붙이기가 힘들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티, 산케이가 신문시장 뿐 아니라 방송시장까지 다 먹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언론사가 갖는 힘이란 얼마만큼 될까? 1955년부터 1993년까지 38년간의 자민당 일당 독재를 55년 체제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이른바 포스트-55년체제다. 일본 언론은 그 기간 동안 일본 정치시스템의 안정화에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정치체제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 일본 내부에서야 아사히가 진보적이고, 마이니치가 중립적이며 요미우리가 보수적이며 산케이가 극우적이라 말하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큰 차이가 없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패전 후 잠깐 NHK에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진보의 바람이 불었지만 미군정과 일본 정치 세력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그 이후에는 자민당 일당 독재에 맞춘 - 55년체제에 순응하는 -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일본 보수 정치 세력이 NHK를 순치했다고만 볼 수는 없다. 일본 정치계와 공생을 거듭해온 여론 형성자인 일본의 신문 언론의 견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민영방송을 가진 일본의 신문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NHK를 사업적 목적으로 감시했다. 민방의 이익에 침해되는 일이라면 NHK는 어떤 일도 하지 못하도록 견제를 받는다. 일본의 55년 체제 동안 누렸던 경제성장 덕에 일본의 시민사회도 정치와 신문 언론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시민사회와 함께 일본의 노동운동도 깨져 있었다. NHK가 영국의 BBC를 늘 입에 올리지만 어느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NHK의 보수화는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쇼리키 마츠타로가 늘 일등을 하길 원했던 것처럼 NHK도 세계 최대 공영방송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쇼리키의 신화가 일본 원자력 발전처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부진처럼, 일본 경제의 하락처럼, 일본 유도의 하락처럼 무너지고 있다. 그 틈새를 비집고 전에 없던 진보의 목소리가 살아나고, 시민사회가 활성화될지 예측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NHK의 새로운 모습, 정치계와 맞짱 뜨고, 신문언론을 견제하고 새로운 일본을 내걸고 변신할 지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너무 오랫동안 동면을 해왔기에 그런 기운 조차 남아 있는 지도 알 길이 없다.


공영방송은 모습은 방송계 내부 사정만으로는 갖춰지지 않는다. 그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일본처럼 지나치게 오랫동안 일당 독재 안에서 안주하다 보니 새로운 변신이 잘 점쳐지지 않는 것이 그 적확한 예 아닐까? 한국의 공영방송이 죽을 쑤고 있지만 그래도 곧 그들이 제대로 정신을 차릴 것이며 새로운 모습을 갖출 거라 기대하고 희망하는 이유는 시민사회가 살아 있고, 노동운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공영방송 이 구석 저 구석을 들여다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고 희망을 걸 실마리 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적이고 데이터 적으로 좌절하면서도 의지적으로는 희망도 가지려 한다. 아직 공영방송을 바라보며 씩씩대며 ‘혼 좀 나야겠어’를 외치는 시민들이 많고, 구석방에 앉아서나마 손톱을 물어 뜯으며 자신을 탄식하는 방송인들이 일본 보다는 많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아직도 여러 분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쇼리키의 그림자가 일본의 NHK에는 아른거리고 있지만 우리 공영방송은 아직 거기까지 발을 담그지 않지 않았나. 혹 나의 섣부른 착각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착각까지 없다면 방송을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희망을 전하지 못하는 서푼짜리 이론가로만 머물지 않을까. 오늘 트윗터 상에서 떠도는 공영방송에 대한 이러저러한 사건들 - 삼보일퍽, 언론노조 기자회견, 김용진 기자의 출간 소식, MBC의 기자 결의, KBS 새노조 출범 소식 -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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