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0일 화요일

끝까지 이럴래?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의 기사 '끝까지 이럴래'를 퍼온것 입니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삶에서야 말로 심오함을 발견할 수 있는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직 2편의 단편 밖에 쓰지 못한 추리소설가인 저는...... 그래서 대중에 영합하는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다 온 줄 알았다. 연설이 하도 비장해서. 시장직을 걸겠다는 연설도 그랬지만 사퇴의 변에서는 대한민국이 무슨 일제치하에 있는 줄 착각까지 들었다. 아니, 공짜나 바라면서 나라를 망국으로 모는 국민들만 있는 줄 알았다고 해야 하나?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에 해악을 끼친 인간은 본인이 악당인 것을 아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 인간은 잘해야 주먹세계 대장 정도다. 정말 해악을 끼치는 인간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확신범들이었다. 히틀러가 그랬고, 스탈린이 그랬다. 아무리 군중이 우매하다고 하지만 대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반드시 맞다고 우기는 무리들. 우리는 그런 인간을 확신범이라고 부른다.
연설문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말자. 이거 뭐 빨간펜 선생도 아니고 일일이 논리에 어긋난 문장을 지적하기도 힘들다. 이런 정도의 논리만 구사해도 된다면 나도 진작에 사법고시나 준비할 걸 그랬다. 논리 따위는 쌈밥집 쌈싸먹듯 해도 되니 말이다. 말하려니 입만 아플 뿐이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 후회는 없다시며 자화자찬으로 일관 하신 오시장. 누군가? 아니다. 자기가 싸지른 똥은 본인외에는 치울 사람이 없다. 그걸 누가 한단 말인가. 그것도 후회없이 싸지른 똥을.
다만 언론기사에 대해서는 몇가지 토를 좀 달고 싶다.
우선 복지논쟁. 제발 언론사들이 복지논쟁이란 말을 좀 기사로 안썼으면 좋겠다. 도대체 이게 왜 복지 논쟁이란 말인가? 이건 복지논쟁이 아니라 기본권 논쟁이다. 밥이라는 생존이 달린, 그리고 교육의 의무에 대한 당연한 권리로서의 기본권 논쟁이다. 내가 놀고는 있지만 밥은 정부가 줘야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의무를 수행하는 국민이이고 학생으로서 당연한 기본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아니 이게 왜 복지에 들어간다는 말인가? 복지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한 상태에서 좀더 나은 삶의 질을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급식이 어떻게 복지에 들어간단 말인가? 기본권의 문제지. 기껏 밥주는 것가지고 복지를 들먹이고 나라가 망한다고 얘기하는데 대한민국이 그 정도로 망할 것 같으면 차라리 망하는 게 낫다. 그걸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런데 기자들은 모두 복지논쟁이라고 쓴다. 시험칠 때 답안지를 컨닝만 하셨는지 왜 모두 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복지논쟁이라고 기사를 쓰는 것일까? 사건은 어떤 식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양태가 달라지고 그 양태는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논점이 달라진다. 어느 한 신문이라도 이것을 기본권의 논점에서 보고 그러한 면을 강조했다면 양상은 또 달라지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기사의 머릿글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모두 복지논쟁이라고 쓰니 과잉복지논쟁으로 쟁점화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태의 일부 책임은 언론에도 있다. 무슨 데칼코마니도 아니고 어찌 모든 언론들이 복지논쟁이라고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다같이 바람을 넣어주니 시장도 얼씨구나 하고 과잉복지를 부르짖는 것이다. 이걸 정말 복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느냔 말이다.
그리고 강남과 강북. 언론에서 그런 식으로 시민을 나누고 계급투표의 양상을 보인다고 말하는데 이게 정말 계급투표일까? 그렇다면 투표를 안한 사람들은 강남의 부유층 아이들은 밥을 주기 싫다고 했단 말인가? 아니다. 부유층 아이들도 학생으로서 다 같이 밥먹여 주자는 거였다. 너희는 부자고 그래서 배아프니 니네들 알아서 하라가 아니고 모두 학생이니 다같이 밥먹여 주자는 거였다. 계급투표라면 부유층의 급식은 반대해야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게 이건 계급투표가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에 대한 투표였다.
그걸 왜 자꾸 계급투표로 몰고가나? 그렇게 몰고 간 건 언론과 정치인들 밖에 없다. 백보양보해서 계급투표를 했다면 강남부유층이 한거고(부자감세가 지속되야 하니까). 대다수의 시민들은 부유하지 않을 지는 몰라도 치사하게 밥먹는 거 가지고 편가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분위기에 편승하지 말고 자중하자고 얘기했는데 듣고 있으려니 코메디다. 이번 투표는 무상급식과 오세훈 시장의 행정에 대한 반대였지 민주당을 찍는 투표가 아니었다. 한나라당을 반대했다고 해서 다음 시장을 민주당으로 뽑겠다는 것이 아니었단 뜻이다. 그런데 무슨 논평이 서울시민이 마치 민주당에 대단한 기대라도 하고 있는 듯이 말하는가? 김칫국도 이정도면 항아리채 마시는 거다. 좀 그럴사한 논평을 낼 수는 없는 것일까? 폼 좀 잡아도 봐줄만한 그런 논평 말이다. 이러니 이름만 다른 한나라당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 편할대로 해석하는 건 두 당이 똑 같은지 모르겠다.
마지막이다. 글을 쓰고 나서 다시 한 번 오세훈 시장의 사퇴 기자회견 전문을 읽는다. 그의 서울 사랑에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헤어진 애인에게 쓴 카드 청구서가 날아와도 이렇게 내 가슴을 뛰게 하진 못할 것 같다. 겨우 진정시키고 한숨을 쉬고나니 드는 생각은 박민규의 소설 제목이다. 정말,
 끝까지 이럴래?
P.S.
계급투쟁이란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만 더하자. 우리나라의 진짜 문제는 계급투쟁이 없다는 거다. 그러니 고작 24.7%에 기대고 나머지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한나라당스런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왜냐? 무시해도 상관없거든. 미국이 한국을 무시하듯이, 그러면서도 알아서 기듯이. 80%의 국민(노동자)들이 자기 자식은 부유층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고, 대개의 부동층은 자기가 중산층인줄 아니까. 사실 그들 대부분의 자식이 대를 물려 노동자가 될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품위를 가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어떻게 상대 계층과 상생해야 하는 지를 말해줘야 하는데 말이다. 회사에서 안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노동자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혼자서는 자위하는 것이다. 난 노동자가 아닌 중산층이라고 말이다. 웃기는 일이다. 노동(지식)을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은 노동자인데 말이다. 돈으로 돈을 버는 자본가가 아닌데 말이다. 도대체 미국인이고 싶은 동양인을 부르는 속어, 바나나와 뭐가 다른지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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