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5일 월요일

[한겨레신문 사설] 공안몰이로 엠비 정부 실정 덮을 속셈인가


한겨레신문 2011-8-14일자 사설입니다.
지금 검찰의 위상은 역사상 최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검찰의 생명인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이 무너진 지는 오래다. 손을 댄 수사마다 헛발질을 계속하면서 ‘무능 검찰’이라는 조롱마저 무성하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부실한 저축은행 수사를 질타할 정도인 것이 검찰의 한심한 현주소다. 신임 검찰총장의 취임사는 검찰이 처한 이런 현실을 직시해 흐트러진 검찰조직을 추스르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어야 했다.
그런데 한상대 신임 검찰총장이 들고나온 것은 엉뚱하게도 ‘종북좌익 세력과의 전쟁’이었다. 한 총장은 엊그제 취임식에서 “북한을 추종하며 찬양하고 이롭게 하는 집단을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라며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종북좌익이란 말은 엄밀히 말해 법률적 용어도 아니다. 이 말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편가르기와 색깔 덧칠하기에 주로 악용돼왔다. 일부 수구세력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사람들까지 싸잡아 종북세력이라고 매도해온 데서도 이 용어의 남용은 확인된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의 최고책임자가 이런 정치색 짙은 용어를 앞세워 이념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부터 적절치 않다.
게다가 한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병역면제,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 등으로 ‘자격 미달’ 판정을 받은 사람이다. 겸손한 태도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며 몸을 낮춰도 시원치 않은 형편에 그는 위압적이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면제까지 받은 그가 ‘전쟁’이니 ‘싸움’이니 하는 용어를 남발하는 모습을 보면 쓴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한 총장은 취임사에서 “종북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말라”고 다그쳤지만 오히려 문제는 검찰의 무분별한 국가보안법 적용이다. 최근 가 조사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가보안법 입건 건수는 두 배나 증가한 반면 기소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입건된 94건에서도 단지 20건만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 중 13건은 집행유예라고 한다. 한 총장이 양식이 있는 검찰총수라면 검찰의 이런 마구잡이 국가보안법 적용부터 바로잡아야 옳다.
한 총장이 종북세력 척결을 들고나온 이상 이제 공안몰이의 광풍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검찰조직의 특성상 총수가 ‘전쟁’을 선포했으니 검찰 곳곳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실적올리기 전투가 벌어질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다. 검찰의 공안몰이는 결국 현 정부의 실정을 호도하고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방지하는 데 활용될 것이다. 또한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충분하다. 사실 한 총장이 뜬금없이 종북세력 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나선 것도 그런 목적 때문일 것이다. 그것만이 자격 미달인 자신을 검찰총장에 발탁해준 이 대통령에 대한 은공을 갚고 충성을 다하는 길로 여긴 것 같다. 참으로 나라의 앞날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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