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8일 일요일

[김상조 칼럼]복지부동·과잉충성의 최악 조합


이글은 경향신문 오피니언 김상조칼럼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레임덕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반이나 남은 현 시점에 벌써 그 절름발이 오리가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는 듯하다. 정치학에 문외한인 필자가 무슨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하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과거 정권 때도 봤던 현상, 특히 정책결정자들의 행동 유인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현상이 이미 시작됐다는 느낌이다.

한편으로, 다음 정권에서 새로운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따라서 책임 문제가 따르는 정책 결정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가는 복지부동의 묘기를 선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다음 정권에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현 정권에서 성과를 만들려는, 그래서 단기적 보상을 받아내려는 과잉충성의 자세를 취한다. 해야 할 일을 외면하는 복지부동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밀어붙이는 과잉충성의 최악 조합, 이것이 레임덕 현상의 대표적 징후가 아닐까 한다. 

먼저, 복지부동의 사례.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론스타는 산업자본으로 판정되거나 주가조작 사건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외환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상실한다. 이 때 감독당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6개월 내에 초과지분을 매각하라고 명령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고 손들고 나선 상황에서 매각명령은 곧 론스타의 ‘먹튀 행각’을 승인하는 꼴이 될 것이고, 그 뒤에 이어질 온갖 정치적 비난을 예상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감독당국은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로 인해 외환은행과 국민경제가 부담할 비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축은행 문제도 마찬가지다. 10년 만에 저축은행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저축은행 업종 전체의 부실이 심각하고 그 수익모델이 취약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적자금 투입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방법은 정권과 관료들에게 자살행위라는 것 역시 너무나 명백한 경험적 사실이다. 그래서 공적자금의 ‘공’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선, 저축은행 부실의 처리비용을 모두 은행에 떠넘기는 편법과 관치만 난무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저축은행과 건설회사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되고, 부동산시장의 거래는 실종되고, 가계부채의 시한폭탄은 똑딱똑딱 초침이 돌아가고 있다.

다른 한편, 과잉충성의 대표적 사례는 4대강 사업과 감세정책일 것이나, 이는 필자가 아는 게 없으니, 다른 문제를 보자.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팽당할 것이 확실한 사람은 누구인가. 경제 쪽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의 최근 행보는 과잉충성을 넘어 자아실현 단계로 넘어갔다. 

낙하산 인사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은인자중해도 지나치지 않을 강만수 회장이 오히려 우리금융을 인수해 메가뱅크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나섰다. 이를 위해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상의 규제를 완화하는 특혜도 요구하고 있다. 1년 반 후에 물러날 분이 대형 인수·합병(M&A)의 화학적 결합을 이끌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하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다. 그런데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꺼낸 이익공유제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연일 비난을 쏟아붓고 있다. 모르긴 해도,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확실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엉뚱한 제안으로 인해 자신의 구상(?)이 엉클어졌다는 조급증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최고 의사결정자 간의 협력도 제대로 안 되는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가능하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업무를 놓지 않겠다고 했다.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듯이, 이명박 대통령의 업무 추진력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히 구분해 줌으로써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집행할 관료들의 유인 구조를 정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레임덕 현상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반대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다음 정권을 저울질하는 복지부동과 현 정권에 목을 매는 과잉충성의 최악 조합 속에서 정부 정책은 급속히 신뢰성을 잃어가고 있다. 안타깝다. 결국 대통령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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