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1일 수요일

[경향논단]강정마을서 제2의 4·3을 원하는가


이글은 경향신문 경향논단 2011-08-30자 논단에서 퍼왔습니다.
지금 제주 강정마을에 국가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수백년간 대대손손 삶의 터전을 이루어 온 삶의 공동체가 하루아침에 이 괴물 앞에서 산산이 깨지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온통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해안가 농로에는 쇠사슬로 온몸을 칭칭 감은 아주머니들이 드러누워 있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도전하는 제주, 그곳에서도 가장 빼어난 곳이 올레 제7코스가 있는 강정마을이다. 그런 마을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주민들이 반대하는 해군기지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강정마을의 문제는 이제 강정마을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화,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면 이미 대한민국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국가가 수백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비우라고 할 때는 그곳 주민은 물론 국가공동체 전체 구성원에게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반대를 억누른다면 그 명분이 어떤 것이라 해도 용서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허용된다면 이 나라는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리바이어던이 통치하는 전제군주국가와 같다. 

정부가 제주에 해군기지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남방 해역 안전과 해저 자원 및 해양수송로를 보호하는데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에 해군기지가 생기면 그것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이용되어 오히려 한반도를 둘러싼 불안 요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반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만 미국의 지식인들마저 이를 걱정하지 않는가. 얼마 전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제주 해군기지에 미국이 이지스함을 동반한 채 기항한다면 중국으로부터 오는 군사적 위협으로 인해 동북아의 안보가 큰 위험에 빠질 것을 경고했다. 평화 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지난 6일자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한국은 미국 펜타곤 강아지가 흔드는 꼬리가 아닌지 걱정된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안보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주변국을 자극하는 군사기지 건설은 국가안보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해군기지는 제주의 상징성에도 맞지 않는다. 4·3 사건으로 얼룩진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반성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해군기지를 만든다니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제주는 세계적인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다. 강정마을 일대 해안은 유네스코에서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이래 중앙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모두 생물권보전지역 및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특히 기지 건설 예정지는 특별자치도법에 의한 절대보전지역이다. 이런 곳에 해군기지를 만든다면 누가 제주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할까. 세계 7대 자연경관 운운하며 기지를 만든다는 것은 세계가 웃을 일이다.

해군기지 강행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지역 주민 전체의 생존권이 걸려 있고, 전 국민적 쉼터인 곳을 빼앗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민주적 절차가 요구된다. 이 정도의 사안이라면 국회가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여 결론을 내야 한다. 제주에서도 이러한 시설을 받아들일지에 대하여 제주도민 전체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강정마을을 해군기지로 만들기 전에 밟아야 할 최소한의 절차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 모든 절차를 뭉개버리고 불도저부터 들이민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심각한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정부가 현지 주민과 야당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육지 경찰을 동원, 반대를 잠재운 다음 공사를 강행한다면 제2의 용산참사, 아니 악몽의 4·3 트라우마가 재연될 수 있다. 그러니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반대의 목소리를 지금이라도 경청하는 것이다. 전 국민 그리고 제주도민의 의사를 묻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이슈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도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금 당장 대치하고 있는 경찰 병력을 철수하고 해군기지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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