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30일 화요일

한-중 해군이 이어도에서 대치하면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의 기사 '한-중 해군이 이어도에서 대치하면'를 퍼온것 입니다.

시민단체인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일하면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 기획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쓴 책으로 '글로벌 아마겟돈: 핵무기와 NPT'(책세상, 2010년)이 있습니다.


정부와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가장 큰 명분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바로 이어도 보호이다. 해군기지 건설 사업의 책임자인 해군 전력기획 참모부장 구옥희 소장이 와의 인터뷰에서 “이어도에서 석유가 터졌다고 생각해보라. 중국·일본이 가만 있겠나. 그런데 제주도에 기지를 둔 우리 기동 전단이 항상 이어도를 초계하고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라고 얘기한 것은 이러한 시각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어 해군이 이어도 인근 수역에서 초계 활동을 벌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정부와 해군의 주장처럼 우리의 해양 주권을 굳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까? 아니면 중국의 거센 반발을 초래해 이어도 인근이 분쟁 수역화되고 한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태롭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까?
이에 대한 전망에 앞서 이어도 문제의 기본적인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이기 때문에 영토나 영해 문제가 될 수 없다. 이를 반영하듯 외교부는 “한-중 양국은 이어도가 영토분쟁 지역이 아니라는 점에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이어도 문제를 ‘영토 분쟁’이나 ‘영해 분쟁’으로 부르면서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에도, 합리적인 해법 모색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어도 문제의 근원은 이 암초가 한국과 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다는 데에 있다. 유엔 해양법에 따르면, 각 국가는 연안 바깥 200해리까지 EEZ를 설정할 수 있는데, 이어도는 제주 마라도에서 약 80해리, 중국 퉁다오에서 약 133해리 떨어져 있다. 이처럼 양측이 주장하는 EEZ가 겹치는 경우에 유엔 해양법은 협상을 통해 EEZ 경계선을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어도 인근 해저에 상당량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자원 쟁탈전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이어도가 중국의 대륙붕에 걸쳐 있다는 것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국제법에서는 수심 200미터까지인 대륙붕에 대해서도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이를 근거로 자국의 대륙붕이 이어도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을 반영하듯, 양국 정부는 1990년대 이후 EEZ 설정 협상을 벌여왔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태이다.
이어도에서 양국 함정이 대치하면
이러한 상황에서 해군과 많은 안보 전문가들, 그리고 보수 언론들은 제주해군기지에 기동 전단을 배치해 이어도 초계 활동을 벌이는 것이 중국의 위협에 대처할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우리 측에서 먼저 합의되지 않은 수역에 해군을 투입해 초계 활동에 나선다면, 중국이 군사적으로 맞대응에 나설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먼저 이어도 인근 수역에 해군 함정을 보내 초계 활동에 나선다면, 중국은 외교적으로 항의하고 이것이 먹혀들지 않을 경우 함정 파견으로 맞대응할 공산이 대단히 크다.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과 EEZ 설정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국 해군이 중국이 주장하는 EEZ로 들어오는 것 자체를 ‘주권 침해’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 해군이 이어도에서 초계 활동을 벌이는 것을 우리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까닭과 마찬가지이다.
또 하나는 중국이 한국 해군의 이어도 초계 활동을 눈 감을 경우, 남중국해의 난사 군도나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 분쟁과 관련해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이 적실성을 띤다면,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해 이어도 초계 활동에 나서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드는 극히 어리석고도 위험한 선택이 될 것이다. 미합의된 수역에 한국이 먼저 함정을 보내 양국 해군이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외교적, 안보적, 경제적 손실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미 중국이 미국 및 일본과 합친 것보다 더 큰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 된 상황에서, 또한 한국의 미래를 위해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중국을 대상으로 이러한 무리수를 두는 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지 강한 의문이 드는 까닭이 아닐 수 없다.
이어도 문제를 한-중 협력 증대의 기회로
결국 이어도를 둘러싼 갈등 해결책은 군사적 대응보다는 능동적인 협상을 통해 EEZ 합의에 도달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고려해볼 만한 타협책으로는 중국으로부터 한국의 EEZ에 이어도가 포함되는 것을 동의받는 대신에, 한-중 양국, 혹은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원유와 천연가스를 조사·개발하는 방안에 합의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양국이 EEZ에 합의하지 않는 한, 어떤 나라도 이어도 인근 해저 자원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어도 확보와 원유 공동 개발 합의’를 골자로 한 EEZ 설정은 한-중 양국간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협력을 극대화할 수 있고, 이어도를 둘러싼 분쟁 가능성을 뿌리부터 깨낼 수 있으며, 경제성이 입증될 경우 막대한 해저 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1석 3조’의 효과가 있다. 정부가 EEZ 협상을 국장급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정상회담 등 최고위 수준에서의 합의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의 합의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유사시를 대비한 계획도 필요하다. 그러나 해군이 평시에 초계 활동을 벌이거나 갈등 초기 국면에서 해군이 먼저 나서는 것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단계적이면서도 치밀한 대응책이 요구된다.
유사 상황 대비는 ‘외교적 대응→해경의 대응→해군의 대응’ 순서로 상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이 일방적인 행태를 보인다면, 외교적 항의에 나서고 이것이 통하지 않을 경우 해경의 출동하고, 중국이 이에 대해 군사적 대응의 움직임을 보인다면, 해군의 역할이 필요해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제주해군기지 건설보다는 화순항에 건설 예정지인 해경전용부두를 해군의 기항지로도 이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방안은 해경 및 해군의 재정 투자 및 임무의 ‘중복 문제’를 해소해 막대한 예산을 절감할 수 있고, 유사시 해경과 해군의 원활할 협조 체계를 구축할 수 있으며, 분쟁 발생시 해군의 대기 및 상황 발생시 신속한 투입이 가능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제주해군기지가 미군의 중간기지로 활용돼 미-중 군사 갈등에 한국이 휘말릴 소지를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전략적 이익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