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7일 일요일

내게 다가온 물범, 그 행복했던 순간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설레는 뱃길 4시간, 물범 만나러 백령도에 가다
"점박이물범 최대 서식지 물범바위에 올랐다, 호기심 많은 녀석이 다가왔다"


백령도는 따라붙는 수식어가 꽤 많은 섬입니다. 얼핏 떠오르는 것만 하더라도 서해 최북단의 섬,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 기암괴석이 장관인 서해의 해금강, 고대 소설 심청전의 무대, 점박이물범의 국내 최대 서식지 등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천안함의 아픔까지 포함될 것입니다.

백령도에서 몽금포타령으로 널리 알려진 장산곶은 불과 10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아주 가까이 보일 정도의 거리입니다. 조금 과장된 것 같기는 하지만 백령도 서북쪽에 자리 잡은 두무진에서는 장산곶의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산곶은 갈 수 없는 북녘의 땅이기 때문에 백령도 땅을 밟으려면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발하여 230킬로미터의 멀고 먼 뱃길을 가야 합니다. 예전에는 하루가 꼬박 걸려 배가 닿았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쾌속 여객선이 운행되어 4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 두무진의 비경

백령도로 향하는 여객선이 굉음을 내며 육중한 몸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천연기념물 제331호와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Ⅱ급으로 지정된 점박이물범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점박이물범은 고래 종류를 제외한 서해안 유일의 해양 포유류이며, 서해 바다를 상징하는 깃대종이기도 합니다.

서해와 남해의 뱃길은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남해의 뱃길은 어디를 가더라도 다도해를 지나기 때문에 규모가 서로 다르고 모습도 서로 다른 예쁜 섬들을 만나게 됩니다.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거문도처럼 먼 바다를 헤쳐 가야 하는 곳일지라도 간간이 섬들이 나타나 긴 여정의 벗이 되어줍니다. 

그러나 백령도에 이르는 서해의 뱃길은 제법 단순합니다. 뭍을 벗어나면 섬 하나 나타나지 않는 그야말로 망망대해입니다. 가도 가도 여객선 창문 밖으로는 똑같은 모습만 이어지기 때문에 바다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솔솔 파고드는 졸음을 떨쳐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생 끝에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백령도 뱃길은 꼭꼭 숨겨둔 보물을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내는 매력이 있습니다.

3시간 반 가량의 덤덤한 시간이 지나면 그림 같이 아름다운 소청도가 불쑥 나타납니다. 소청도가 아득히 멀어지는 것이 아쉬워 자꾸만 고개를 뒤로 돌리다 앞을 보면 이번에는 대청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대청도는 오랜 뱃길에 지친 나그네에게 이제 백령도가 멀지 않음을 알려주며 등이라도 토닥여 주는 듯이 온유한 느낌을 지닌 섬입니다. 

예전처럼 하루의 해가 떠서 다 기울도록 백령도에 가던 시절에는 그 반가움이 훨씬 더했을 것입니다. 대청도가 일러준 대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섬이 나타납니다. 섬 요소요소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친 섬, 백령도(白翎島)입니다. 

백령도는 흰 깃(白翎)을 펴고 비상하는 따오기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땅에서 따오기는 이미 멸종해버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새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백령도의 관문인 용기포 선착장에 도착하여 두리번거리다 보면, 넓은 백사장 뒤로 소나무처럼 보이는 곰솔이 빼곡히 서있는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천연기념물 제 391호로 지정된 사곶 해수욕장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해수욕장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유는 모래 성분이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모래의 주요 성분은 규암인데, 모래 입자가 무척 작아 입자 사이의 틈도 상당히 조밀하여 모래가 쌓이면 마치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해집니다. 썰물 때, 길이 2킬로미터, 폭 200미터의 규모로 드러나는 모래벌판은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천연 활주로로 활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도 천연 활주로의 역할은 유효합니다. 이처럼 천연 비행장으로 사용될 수 있는 특별한 성분과 지형을 갖춘 모래벌판은 전 세계에서 백령도와 이탈리아 나폴리 두 곳뿐이라고 합니다.

백령도에 들어오는 첫 배를 탄 것이지만 점박이물범을 만나기에는 물때가 맞지 않습니다. 점박이물범과의 만남은 내일로 미루고 두무진으로 향합니다. 두무진(頭武津)이라는 지명은 ‘우뚝 선 바위의 모습이 장수가 모여 앉은 형상과 같다’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겁의 시간 동안 비바람과 파도가 서둘지 않고 꼼꼼하게 빚어낸 기암괴석은 나름의 이름을 지닌 채 몇 백 미터나 조화롭게 늘어서 절경을 이룹니다. 대군을 호령하는 장수들의 위풍은 진정 이처럼 당당했으리라 싶습니다. 

조선 중기의 의병장 이대기는 백령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지은 「백령지」에서 두무진 일대의 풍광을‘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칭송했는데, 두무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이유가 그대로 가슴에 와 닿게 됩니다.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두무진 해안은 국가문화재 명승 제 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누가 오는지 우리도 궁금해, 하늬바위 물범

점박이물범을 만나는 날의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옅은 안개가 슬쩍 드리워져 가시거리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날씨면 충분히 고마운 날입니다. 안개가 있다는 것은 바람이 없다는 뜻이니 배가 뜨기에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배는 바닷물이 빠지며 물범바위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출발할 예정인데, 아직 2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합니다. 이미 마음은 물범바위에 가있다 보니 시간은 참으로 더디도 흐릅니다.

백령도 물범바위는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NLL)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현지의 어민조차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입니다. 이미 관할 부대의 승인을 얻은 것이지만 출입에 대한 몇 가지 절차를 더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배에 오릅니다. 

어제 여객선이 온 길을 잠시 다시 되짚어 가다 연안으로 더 붙어서 북동쪽으로 향합니다. 층리(層理)가 잘 발달한 기암절벽과 연안의 바위들이 품고 있는 용기원산의 풍경도 만만치 않습니다. 

임산부바위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옆에서 보면 새 생명을 출산하기 직전의 배가 불룩한 산모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옆으로 선대바위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배는 말내린골과 말등바위도 지납니다. 이 절경을 뭐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떠오르는 낱말들이 궁색하기만 합니다. 시인이 아닌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나는 그냥 “참 아름답다.”라고만 하겠습니다.

용기원산을 뒤로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배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다 마침내 엔진이 꺼지며 조용해집니다.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친구들이 있는 것을 발견한 노련한 선장님이 멀찌감치 배를 멈춘 것입니다. 

천연기념물 제 393호로 지정된 하늬바다 지역입니다. 마침 밀려올 대로 다 밀려 온 밀물이 썰물을 기다리느라 바다가 잠시 호수처럼 잠잠해져 있을 때입니다. 조금 멀지만 점박이물범이 작은 무리를 이루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물범 종류는 사람을 그리 경계하는 동물이 아니며, 호기심도 무척 많은 편입니다. 누가 오는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잠시 기다리니 한 친구는 꽤 가까운 거리로 접근하여 똑바로 서서 어떤 사람들인지 탐색도 하고 갑니다.

배는 다시 물범바위를 향해 먼 바다로 나갑니다. 잠시 뒤, 선장님은 다 왔다며 내릴 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내릴 곳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설마 바다 가운데 살짝 고개를 든 바위 하나 저 곳에 내리라는 말인가?” 했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그래도 가까이 가보니 5명이 서 있을 정도는 되었으며, 물이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하면 괜찮을 것이라 하니 일단 내리기로 합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배를 접근시켜 사람과 짐을 내린 뒤 선장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립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도 나름대로 파도를 피해 몸을 옮기며 황망해하는 사이 본격적으로 물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바다에서 물이 빠지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이곳의 유속은 정말 대단합니다. 물이 들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까이 보이는 장산곶 때문입니다. 

장산곶은 화살촉 모양으로 길게 바다를 향해 돌출한 지형을 하고 있으니 그 앞을 지나는 물살이 빠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서있는 곳은 백령도 앞 바다며, 장산곶 앞바다이기도 합니다. 심청전에 등장하는 인당수로 추정되는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친 뱃길에 화를 많이 당했을 테니 용왕의 마음을 달랠 제물이 필요했을 것이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효녀 심청이 공양미 300석을 대신하여 이곳에 몸을 던져야 했던 이야기가 그냥 머릿속으로만 그려낸 것은 아니겠다 싶습니다.

카메라도 제대로 설치하고 점박이물범과의 진지한 만남을 시작합니다. 주변으로 물범이 하나 둘 접근을 시도합니다. 고개만 내밀고 잠시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물속으로 숨어드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물이 빠지며 제일 먼저 드러나는 바위이니 저들의 휴식공간이 비로소 열린 것인데, 우리가 먼저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모퉁이라도 올라와 쉬고 싶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공간이 너무 좁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며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바위 꼭대기가 슬쩍 드러나자 그 주변으로 수 십 마리의 물범이 모여듭니다. 드러난 바위 꼭대기에 한 마리가 먼저 올라가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합니다. 무리의 우두머리일 것입니다. 공간이 조금 더 생기자 또 하나가 올라갑니다. 그 다음 서열일 것입니다. 점박이물범 무리에서는 서열이 무척 엄격합니다. 다시 물이 차올라 바위가 물속에 잠기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서열이 낮은 순서부터 바위를 떠나야 하는 사회입니다.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친구들이 계속해서 우리가 서 있는 섬에 관심을 보이지만 차마 올라오지는 못합니다. 그러다 약간 어려 보이는 한 녀석은 슬쩍 눈치를 보다가 결국 갈등을 털어버리고 턱 하니 올라와 한쪽 모퉁이를 차지합니다. 

조금 고단했던 모양입니다. 아예 자리 잡고 드러누워 낮잠까지 태평하게 즐깁니다. 가만히 앉아 오래도록 녀석의 애교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섬이라 하기에도 쑥스러운 작은 공간에 인간과 물범이 함께 있는 것이 가능하고, 또 그것이 이처럼 행복할 것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점박이물범은 원래 북위 45도 이북의 북극권을 서식지로 하는 물범의 한 종류입니다. 세계의 해양포유류 학자들이 백령도의 점박이물범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백령도가 북극권이 아닌 38도 부근이라는 것과 오랜 기간의 고립으로 인해 고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특히 백령도 점박이물범은 겨울이 깊어지는 12월부터 서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기 시작하여 중국의 발해만에서 겨울을 지낸 다음, 이듬해 4월 경 다시 남하하여 백령도를 찾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왕복 1,600 킬로미터의 여정을 계절에 따라 반복하는 것입니다.

발해만에서 겨울을 나는 것은 번식을 위해서입니다. 새끼를 낳아 키우는 것은 유빙(流氷)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발해만은 염도가 낮아 서해 중에서 유일하게 겨울에 얼어붙는 지역입니다. 

또한 물범바위를 중심으로 하는 백령도 일대는 북방한계선의 인접 지역으로 사람의 접근이 통제될 뿐만 아니라 다시마 밭이 발달하여 점박이물범의 주요 먹이인 조피볼락을 비롯한 어족자원이 풍부한 지역입니다. 백령도 점박이물범은 발해만과 백령도를 번식지와 서식지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박이물범이 백령도는 물론 서해 전 해안과 남해, 그리고 동해 경포호 주변에까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남해와 경포 일대에 출현하는 점박이물범의 유전자가 백령도의 개체들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니,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발해만의 점박이물범이 서해뿐만 아니라 남해를 거쳐 동해까지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점박이물범의 서식에 대한 기록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관련 서적은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인 조선 후기의 문인 정약전(1758 ∼ 1816)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입니다. 

신유사옥으로 자산, 곧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 정약전은 흑산도 근해에 서식하는 해양생물의 명칭, 형태, 분포, 습성, 그리고 의학적 이용 등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1814년 자산어보를 통해 남기고 2년 뒤 세상을 떠납니다. 

현재 자산어보의 진본은 없고 8개의 필사본이 남아 있으며,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은 있지만 총 3권으로 구성된 자산어보의 제 1권은 비늘이 있는 어류(鱗類)에 대한 기록이고, 제 2권에서는 비늘이 없는 어류(無鱗類)를 기록하고 있으며, 제 3권의 잡류(雜類)에는 바다벌레, 패류, 해조류, 바다의 새와 짐승에 대한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제 3권의 바다짐승(海獸) 편에는 옥복수(玉服獸)라는 해양 포유류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 옥복수가 바로 점박이물범입니다. 지금부터 약 200년 전에는 전라남도 흑산도에서도 점박이물범이 집단으로 서식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흑산도뿐만 아니라 서해안의 도서 전체가 점박이물범의 집단 서식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 8,000 개체, 1980년대 2,000 개체, 2002년에는 1,000 개체 수준으로 꾸준히 줄더니 2009년의 공식 기록에는 168개체로 나타나 있습니다. 백령도 점박이물범의 현실입니다.

백령도 시내 대부분의 간판에는 점박이물범이 등장합니다. 노래방 간판에는 점박이물범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당구장 간판에는 큐대를 들고 한 쪽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공을 노려보는 모습이 나옵니다. 

야식집에는 신속배달 깃발이 달린 오토바이에 안전모를 쓰고 앉아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있는 모습이 나오며, 낚시가게에는 낚싯대로 여러 마리의 고기를 줄줄이 낚아 올리는 모습이 나오고, 맥주집에는 거품 가득한 맥주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 나오며, 빵집에는 흰 위생모를 쓴 점박이물범이 케이크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뭐, 나쁘지 않습니다. 재미있고 기발합니다. 또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의 마스코트로 백령도 점박이물범이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점박이물범의 상품화에 들이는 노고의 만 분의 일이라도 점박이물범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미안해서라도 그렇습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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