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1일 목요일

관악산에 핵폐기장 만들자던 사람에게 원전안전 맡길 수 있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강창순 서울대 명예교수 신설 원자력안전위 장관급 위원장에 내정
절차적 민주주의 무시하고, 기술중심주의에 빠진다면 안전 독립기관 존재 이유 없어


강창순 원자력안전위원장 내정자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 정부가 원자력 안전을 위해 취한 거의 유일한 조처가 원자력안전위원회 설립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안에서 원자력을 진흥도 하고 안전 규제도 하는 어정쩡한 체제로는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없으니 독립적인 안전규제 기관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사고 대처과정에서 난맥상을 보인 일본 원자력계가 바로 이런 규제와 진흥이 뒤섞인 체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10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신설되는 장관급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으로 강창순(68) 서울대 공대 명예교수를 10일 내정한 것을 보면, 원자력 안전은 물 건너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이 대통령은 이번 내정 때 강 교수가 “원전 안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고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강 교수가 ‘원자력 안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지는 과문해서 잘 모르겠지만,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와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방사성폐기물안전협약(JC) 의장과 세계동위원소기구(WCI) 회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그 동안 취재 현장에서 지켜본 강 교수는 늘 원자력계를 대변하는 원로였을 뿐이다. 방폐장 등 원자력 관련 논란이 사회적으로 뜨거울 때면 원자력계를 두둔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사회를 비판하는데 앞장을 서 왔다. 

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 원자력 업계 대변해 와

새로운 원자력 규제기구에 시민들이 기대하는 중립성이나 독립성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그는 이번에 차관급인 원자력안전위 부위원장에 내정된 윤철호(58)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이 이사직을 맡고 있는, 원자력 업계의 이해 대변 기구인 한국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런 저런 자리는 정리하면 되고 앞으로 독립적으로 잘 하겠다면 할 말은 없다. 또 그동안 폐쇄적인 원자력 계 안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2004년 그가 주도한 ‘서울대 방폐장 유치’ 해프닝을 떠올리면, 새로운 기관이 단순히 균형 상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칠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2004년 1월7일 서울대 동원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관악산에 핵폐기물 처분장을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창순 교수. 김종수 기자
전북 부안에 핵폐기물 처분장을 설치하려던 정부의 계획을 둘러싸고 1년 넘게 엄청난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던 2004년 1월7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장이던 강 교수는 황우석 교수 등 서울대 교수 7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교수 63명이 서명한 폭탄 선언을 한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지하 암반에 핵폐기물 처분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들은 정운찬 총장에게 낸 건의문에서 “최근 전북 부안군 핵폐기장 사태를 지켜보면서 학자로서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원전수거물시설이 주민 안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확신을 바탕으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고 밝혔다.

건의문 작성한 강 교수, "학자적 양심과 애국심..." 회견장서 울먹이기도

건의문을 작성한 강 교수는 회견 도중 “순수한 학자적 양심과 애국심으로 드리는 건의”라며 “국가와 사회의 큰 짐이 되고 있는 원전수거물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서울대 교수들의 이런 집단행동을 처음 주도한 것은 당시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와 오연천 행정대학원장(현 서울대 총장)이었고, 강 교수는 이들의 충정이 ‘기술적으로 문제 없다’ 며 밤새워 건의문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보수 언론은 “지성인 집단의 양심적 결단”이라며 서울대 교수들의 ‘거사’를 치켜세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정운찬 총장은 “현재의 법체제나 제도 내에서 본교가 독자적으로 논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에는 지역주민의 항의전화가 쏟아졌고 관악구청도 서울대 교수들의 돌출행동을 황당해 했다.

상식 무시하고 불확실성 인정 않고 어떻게 소통하나

관악산 방폐장 해프닝을 다시 들추는 이유는 거기서 원자력을 보는 위험한 시각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 자신도 인정하고 있듯이 원자력 문제는 그것이 폐기물이든 신규 원전 건설이든 간에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소통과 참여가 없이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오랜 갈등과 갚비싼 비용으로 배웠다.

강 교수가 관악산 건의를 할 때 간과한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이다. 서울대생, 관악구민, 서울시민 등은 그의 안중에 없었고, 심지어 ‘원자로 시설은 인구밀집 지역으로부터 떨어져 위치해야 하며 폐기물의 수송, 운반이 용이해야 한다’는 자기 전문 분야인 원자력법 조항도 간단히 묵살했다.

앞으로 원전과 관련한 굵직굵직한 사회적 현안이 떠오를 때 원자력안전위가 시민의 상식보다는 전문가들에 더 의존한다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의 진원지가 될지 모른다.

두 번째로 그는 위험 소통에 대해 문외한인 것처럼 행동했다. 기술자가 안전을 확인하거나 기술적 대책을 잘 세우면 어떤 위험도 막을 수 있다는 기술 중심주의가 엿보인다.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드러났듯이 원전의 안전에는 불확실성이 많다. 사고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터지는 것이다.

새로 생기는 원자력 안전 독립기관이 원자력에 대한 비판 세력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몰아세워 그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원자력 학계와 산업계, 관계가 똘똘 뭉쳐 그 밥에 그 나물인 독립기관을 만든다면 그런 독립기관은 없으니만 못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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