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일 화요일

220억 물려받아 4천억 신도리코 지배하는 ‘고딩’

이글은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가장 윤리적인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한 신도리코, 기업지배구조는 전혀 딴판
고등학생 아들에게 지분 40% 넘겨 ‘3대 경영권 세습'


»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이 지난해 7월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 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서울인베스트(주) 공동 기획, 국내 기업지배구조 추적

세계적 투자 고수로 꼽히는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자산운용 이머징마켓그룹 회장은 올해 초 와의 인터뷰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은 ‘북한 리스크’가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리스크’”라고 일침을 놨다. ‘친재벌’을 표방한 현 정권의 실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도 국내 재벌의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에 연일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국내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경제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왔다. 재벌들은 실제 소유 지분을 훨씬 뛰어넘는 경영권 행사를 통해 투자자를 비롯한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가로채고 있다. 또한 경영권 세습을 위한 각종 편법 경영으로 공정한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뿌리채 뒤흔들고 있다.
더욱이 재벌이 되기를 꿈꾸는 국내의 많은 기업가들이 이런 재벌의 구태와 악습을 따라하고 있다. 자칫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는 투자전문회사인 서울인베스트(주)와 함께 국내 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를 추적한다. 국내 기업들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_편집자
이춘재 부편집장
“지난 반세기 동안 한 우물만 파는 정신으로 사무기기 불모지를 개척해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권오성 신도리코 경영관리부문장(이사)은 지난 7월12일 굵은 장대비를 무릅쓰고 취재를 온 기자에게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또한 우리 회사는 창업 이후부터 지금까지 깨끗하고 투명한 경영으로 널리 알려진 회사입니다. 그런데 기업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니요?”
그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진 않다. 신도리코는 1960년 설립 이후 1995년과 2004년 두 차례 금탑산업훈장과, 2004년 ‘3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등 국내 대표적 수출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무차입 경영을 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건실하다. 실제로 4천억원가량의 현금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생 아들을 최대주주로
신도리코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면, ‘정도 경영’ ‘투명 경영’ ‘윤리적 기업’ 등의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창업 2세인 우석형 현 회장은 2008년 경영리더 대상을 받았고, 최근에는 한 신문사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 수상자로 선정했다. “깨끗한 기업문화 정착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해온 점이 돋보인다.” 이 기업을 수상자로 선정한 심사위원단의 심사평이다.


그러나 신도리코에 대한 주식시장의 평가는 박하다. 주가가 자산가치 이하로 오랫동안 저평가돼왔다. 실제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6 수준에 불과하다. PBR가 1 미만이면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또 기업가치/영업력 배수(EV/EBITDA)도 2010년 말 기준으로 2.1에 그친다. 투자 원금을 회수하는 데 2년 정도 걸린다는 뜻이다. 국내 상장기업의 평균 EV/EBITDA는 5~6 수준이다.
이런 차이가 왜 나는 걸까. 투자자들은 신도리코의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실제로 가 투자전문회사 서울인베스트(주)의 도움을 받아 신도리코의 기업지배구조를 분석해보니, 우 회장은 일가 소유의 우호 지분과 피라미드식 출자를 통해 신도리코를 지배하면서 국내 재벌들의 구태를 따라하고 있었다.
창업주 일가의 자녀들이 100% 지분을 소유한 회사를 설립해 계열사의 일감을 몰아주는가 하면, 계열사 지분을 취득원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창업주 일가에 매각하는 등 의심스러운 거래도 있었다.
먼저, 우 회장은 지난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비상장 계열사 신도시스템 지분 65.73% 가운데 40%를 현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들에게 넘겼다(우 회장은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신도시스템은 신도리코의 지분 6.05%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비상장 계열사인 신도SDR를 통해 신도리코를 지배하고 있는 핵심 계열사다( 참조). 우 회장은 아들을 신도시스템의 최대주주로 만듦으로써 ‘3대 경영권 세습’을 본격화한 셈이다.


고교생인 우 회장의 아들은 과연 이 지분을 인수할 돈을 어디서 구했을까. 세법에 의한 비상장기업 주식평가 기준으로 할 때, 신도시스템 지분 40%는 22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17살인 우 회장 아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지급할 경제적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에 대해 우 회장은 “100% 현금 증여했다”고 밝혔다. “세법에서 정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처리했고, 증여세도 다 냈다.” 하지만 이 지분을 얼마에 넘겼는지에는 “신도리코와는 전혀 무관한개인적 거래”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우 회장의 설명대로라면 현금 220억원에 대한 증여세 130억원과 이 증여세를 대신 납부함으로써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증여세를 모두 냈다는 것이다. 결국 우 회장은 아들에게 지분을 넘기는 과정에서 200억원이 넘는 현금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장 부인에게 계열사 지분 통째로 넘겨
우 회장이 이 돈을 순전히 사재를 털어 마련했다면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다른 방법으로 조달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우 회장이 보유 중인 신도리코나 다른 계열사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면, 신도리코 등의 주식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일반 주주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우 회장이 이 지분을 아들에게 얼마에 넘겼는지, 그 돈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등을 주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신도리코 쪽은 “창업주 일가의 사적인 거래이고, 신도리코와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증여가액과 인수자금 출처 등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인수자금은 100% 우 회장의 개인 재산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우 회장의 아내와 계열사 간의 의심스러운 거래도 있다. 신도시스템은 2009년에 보유하고 있던 휴스템 지분 40%를 우 회장의 아내 장아무개씨에게 전량 매각했다. 이 거래로 휴스템 이사였던 장씨는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됐다.
문제는 신도시스템이 장씨에게 휴스템 지분을 넘길 때의 가격이다. 신도시스템의 2009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휴스템 지분을 장씨에게 넘길 때 9억3486만여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도시스템이 휴스템 지분을 취득했을 때의 원가가 16억4800만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취득원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장씨에게 넘긴 셈이다. 이는 또 2008년 말 장부가인 12억6500만원에 견줘서도 훨씬 낮은 가격이다.
더욱이 휴스템의 최근 5년(2005~2009년)간 당기순이익을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환차손으로 23억여원의 적자를 낸 것을 제외하고는, 매년 12억~25억원씩 흑자를 냈다( 참조). 다시 말해, 신도시스템이 휴스템 지분을 전량 매각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따라서 휴스템이 2008년에 예외적으로 적자를 내자, 이를 휴스템 지분을 싼값에 장씨에게 넘길 기회로 이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신도리코 쪽은 “당시 라자드 펀드를 비롯한 일부 주주들이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필요 없는 지분을 정리할 것을 요구해 지분을 매각했는데, 공교롭게도 장씨가 이를 인수했을 뿐”이라며 “법에 정한 기준에 따라 주식의 적정 가치를 평가해 넘겼다”고 해명했다.
신도리코가 생산한 제품의 판매를 전담하고 있는 신도리코중앙판매와 신도리코DS판매는 회계 조작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회사들은 총자산이 100억원이 넘지 않아 외부 감사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 회사들의 자산 규모 변화를 보면, 외부 감사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자산을 줄인 흔적이 보인다.
신도리코중앙판매의 2008년 반기보고서에는 198억3500만원이던 총자산이, 그해 말 사업보고서에는 69억2500만원으로 줄었다. 또 2009년 반기에 172억7800만원이던 총자산은 그해 말 95억530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참조). 신도리코DS판매도 마찬가지다. 2008년 반기보고서에 159억3900만원이던 총자산은 같은 해 말 사업보고서에 69억4200만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2009년과 2010년에도 똑같은 패턴을 보였다.
이에 대해 신도리코 쪽은 “연말에 매출채권과 매입채무를 한꺼번에 처리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며 “외부 감사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회계 조작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총자산이 반기와 연말에 절반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국내 메이저 회계법인 소속의 한 회계사는 “매입채무를 연말에 한꺼번에 갚는다고 해도 총자산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신도리코중앙판매의 판매관리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석연치 않다. 이 회사의 전체 비용 가운데 판매관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24.6%로, 다른 회사들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다. 판매관리비는 매출원가를 제외한 급여나 판매수수료 등 영업 활동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포함한다. 그만큼 조작하기가 쉽다. 실제로 판매관리비를 과다 계상하는 수법으로 회삿돈을 빼돌린 사례가 적지 않다. 올해 초 검찰 수사로 구속 기소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급여나 각종 활동비 명목의 돈을 직원들에게 지급한 것처럼 회계 처리한 뒤 이를 빼돌려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도리코 쪽은 판매관리비에 대해 “500개가 넘는 대리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더욱이 라이벌 업체들과의 경쟁이 점점 심해져 판매관리비가 늘고 있다”고 해명했다.
우석형 회장의 자녀들이 100% 지분을 소유한 비상장 계열사도 의문의 대상이다. 우 회장의 세 자녀는 2005년 비즈웨이엘앤디라는 물류대행 회사를 설립했다. 아들이 80%, 두 딸이 각각 1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신도리코의 물류 업무를 대행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우 회장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이 회사를 키운 뒤 경영권 세습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총수 일가가 지분을 대량 보유한 비상장회사를 설립한 뒤 계열사 일감을 몰아주는 수법으로 단기간에 성장시켜 이를 경영권 세습에 필요한 ‘금고’로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게 현대차그룹의 글로비스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은 2001년 각각 40%(10억원)와 60%(15억원)를 출자해 물류대행 회사인 글로비스를 설립했다. 정 회장은 그룹 계열사의 일감을 글로비스에 몰아줘 단기간에 알짜회사로 성장시켰다. 실제로 2010년 매출이 5조8340억원으로 전년보다 2조6413억원 늘었다. 매출 증가율이 무려 82.7%에 달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 9월 현대차 등 4개 계열사들이 글로비스에 거래물량을 몰아줘 회사 가치를 급성장시킨 것은 부당지원 행위라며 63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신도리코 쪽은 “복사기 등 사무기기는 배송이 중요하기 때문에 물류 업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회사가 필요해 비즈웨이엘앤디를 설립했다. 이 회사와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건에 따라 거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투자자들 “주가 너무 저평가됐다” 
기업지배구조 펀드인 라자드 펀드는 2007년 5% 미만의 신도리코 지분을 사들였다. 라자드 펀드와 업무 제휴를 맺고 있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김선웅 소장은 “주가가 이 회사의 실제 가치보다 지나치게 낮아서 그 원인을 분석해보니, 대리점 운영에 불투명한 부분이 있는 등 몇 가지 문제가 발견됐다”며 “이를 개선해줄 것을 요구했고, 신도리코 쪽에서도 조처를 취했으나 여전히 미흡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신도리코 지분을 5% 미만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회사 가치에 비해 주가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현금도 4천억원씩이나 쌓아두는 등 이상한 점이 많지만, 배당은 그런대로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전문회사인 프랭클린템플턴 인베스트먼트도 2009년 10월에 신도리코 지분 6.03%를 취득했다. 미국 본사에서 운용하는 펀드를 통해 신도리코에 투자한 이 회사는 지난 3월 현재 5%를 조금 넘는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랭클린템플턴 관계자는 “개별 투자 기업에 대한 멘트는 하지 않는 게 회사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초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자산운용 이머징마켓그룹 회장이 국내 기업들의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비판한 것을 두고, 신도리코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cjlee@hani.co.kr
‘고딩’ 세습 유행하나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이 고교생인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려는 것은 올해 초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태광그룹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536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는데, 그의 범죄 동기가 바로 고교생인 외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회장의 아들은 현재 미국의 한 사립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아들을 그룹 핵심 계열사의 최대주주로 만들기 위해 이 회사의 주식을 시가보다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의 아들이 핵심 계열사를 통해 사실상 그룹을 지배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도 자신이 갖고 있던 신도시스템 지분 가운데 40%를 아들에게 넘겨줘 신도시스템의 최대주주로 만들었다. 우 회장은 이 지분을 아들에게 얼마에 넘겼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권오성 신도리코 이사는 “우리를 태광그룹과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