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7일 일요일

명당에 렌즈 드리우고 시간 미끼로 그림 낚아

[거리사진 달인의 공식] <상> 붕어낚시꾼
구도 색 대비 패턴 상징 등 밑그림에 사람 넣어
 걷고 멈추고 기다리다 ‘꿈’의 순간 오면 잡아채


생활사진가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사진가들 가운데 가장 크게 도움이 되는 부류는 거리사진가다. 이름이 난 사진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류도 거리사진가들이다. 사진의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거리사진가들이 명멸해갔다.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은 말할 것도 없고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케르테츠를 포함해 앗제, 윌리 호니스, 로베르 드와노, 로버트 프랭크 등 얼른 떠오르는 옛 작가들이 모두 거리를 사랑했다. 비교적 최근까지 활동하고 있는 엘리엇 어윗, 알렉스 웹, 스티브 매커리, 이언 베리 등도 모두 거리사진의 달인들이다.

거리사진이란 한마디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생활공간인 거리에서 스냅스타일(즉흥적이며 순간을 이용, 재빠르게)로 찍는 사진을 말한다. 이름하여 거리(street)일 뿐이지 광장, 공원, 시장 등 모든 일상공간이 모두 거리사진사들의 터전이다. 뉴스사진을 찍는 사진가들(포토저널리스트라 부르든, 사진기자라고 부르든, 시민이든)도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생활사진가들도 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므로 사실상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배회한다.
삼청동, 인사동, 북촌, 이화동 등 서울의 사진명소에는 늘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붐빈다. 이들이 전업으로 하든 취미로 하든 모두 거리사진가다. 거리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알아보는 것은 아주 유익하다. 알고 나면 별것도 아닐 것 같은, 그러나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거리사진 잘 찍는 법을 알아보도록 한다.

물 좋은 포인트는 자식에게도 안 가르쳐 줘

거리사진가들 중에선 크게 붕어 낚시꾼과 사슴 사냥꾼의 두 부류가 있다. 이것은 비유일 뿐 진짜 물고기나 짐승을 잡는 것은 아니다. 붕어 낚시꾼은 포인트(장소)를 여러 곳 알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다른 낚시꾼과 그 포인트를 공유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고독한 승부사의 작업이라고 하면서 몰려다니지 않는 것이 낚시다.
일단 좋은 명당에 자리 잡고 나면 그 다음부턴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다. 간혹 입질이 오고 잡기도 한다. 그러나 자잘한 치어나 잡어는 안중에도 없으니 그냥 돌려보낸다. 꾼이라면 욕심이 커야하고 만족할 만한 녀석이 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낸다. 한번 출조에서 한 마리를 못 잡을 수도 있다. 큰 불만이 없다. 다른 포인트로 옮길 수도 있고 다음 출사를 기약하기도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계속 머릿속에선 월척에 대한 생각으로 행복하다. 드디어 다시 토요일이 오면 집안팎의 눈총을 받으며 새로운 포인트에 도전하러 간다. 
 
매그넘 사진가 알렉스 웹이 자신의 작업스타일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 문득 발을 멈춘다. 그리고 기다린다. 무엇인가 변화가 생길 때까지. 만족할 만한 구성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오면 셔터를 눌러서 완성한다. 만약 그런 장면이 생기지 않으면 포기하고 다시 걷는다. 다른 장소로” 
 낚시꾼의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단 알렉스 웹뿐만이 아니라 다른 거리사진가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다. 파리의 골목을 쏘다닌 브레송과 부바와 호니스와 드와노도 그랬다. 
 
꿈꾸는 자만이 꿈의 사진을 얻는다
 
지난 토요일에 문화센터 사진강좌의 출사수업이 있었다. 사람이 많고 거리풍경이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곳 중의 하나인 홍대 앞 거리에서 수강생들과 함께 걸었다. 홍대 정문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으로 따라가면 벽화거리가 있다.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곳이라서 벽화 자체에 큰 관심은 없었다. 그냥 먼 배경의 일부로만 활용할 생각이었다.
몇 개의 포인트를 정해서 낚시꾼이 되어보기로 했다.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대상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다. 이때 어떤 대상이 지나가는 것이 최상이 될지를 미리 짐작할 수는 없다. 다만 전경, 배경과 어울릴 것으로 어떤 색의 어떤 대상이 오면 좋겠다는 기대는 늘 하고 있어야 한다. “꿈꾸면 이루어진다”, “기다려야 온다”는 것은 사진찍기에서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모토다. 
뭘 기다려야 하는지의 문제가 역시 고민이다. 이것은 그날, 그 장소와 어울리는 대상이 된다. 몇 가지 팁이 있다. 구성, 색, 대비, 패턴, 상징 등이 판단기준이 된다.
001

오른쪽에 벽화를 걸쳐둔 채 왼쪽에 뭔가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벽화 속에 세 명의 인물이 있다. 그래서 왼쪽의 거리로 1명의 솔로와 2명의 커플이 지나갈 때 사진을 찍었다.
002

003

검은색 바탕에 노란색 글자로 적힌 일본어 ‘라멘’ 깃발을 주시했다. 검정과 노랑은 대비가 되어 원래 노랑의 의미와 달라져서 강하게 부각된다. 오른쪽 도로의 안전선인 노랑도 봤다. 그리고 이 사진은 라멘 깃발, 하얀색 물통 입간판, 전봇대 등의 수직선이 화면을 분할하는 구성이므로 그 사이사이의 공간에 뭔가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노랑이 주 테마이니 노란색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노란 신발을 신은 인물이 경쾌하게 지나갔다. 배낭의 색이 노랑이면 더 좋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색과 색의 상징, 대비, 구성이 기준이 된 사례다. 조금 더 기다렸지만 003 정도밖에 없었다. 002에 비해 어수선하다.
004

전봇대의 무당벌레 벽화를 봤다. 검정과 빨강이다. 이번에도 색의 대비를 기대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 사진에서 오른쪽의 두 아가씨가 걸어가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무당벌레의 짧은 다리와 아가씨들의 긴 다리가 대비를 이룬다.
005

006

005와 006은 대비를 이용한 간단한 사례다. 
007

그냥 지나가다 눌렀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사진가의 감성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꽉 낀 나무 한그루가 애처로웠다. 게다가 전깃줄로 칭칭 감아둔 것 같은 형상이 보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점점 더 건물이 나무를 압박하면서 죄여 들어올 지도 모르겠다. 
008

홍대 놀이터로 올라가는 V자의 계단길이 태권브이의 V자처럼 보여 찍었다. 여러 컷을 눌렀는데 아래쪽으로 차들이 어지럽게 지나가서 불편했다. 빨간색 자동차가 카메라 가까운 쪽으로 지나가자 아래가 정돈이 되었다. 그 순간 계단과 인도의 사람들이 조금 더 정제된 상태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운이 따른다면(시간을 더 투자해서 낚싯대를 계속 주시한다면) 자동차 창문이 열려있고 푸들 한 마리가 고개를 내미는 장면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009

010

출사가 끝날 무렵에 나는 009를 찍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파인더를 아래로 내렸더니 동그라미들이 보여 눌렀다. 직선과 네모로
가득 찬 일상에서 동그라미는 늘 경쾌하고 미래지향적이며 동적이다. 하물며 자전거는 더 훌륭한 상징이다. 남성의 종아리와 화살표는 덤이다. 이윽고 신호가 바뀌면서 010을 찍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알찬 구성인지 틈이 나는 데로 퇴고하고 있다. 사진에도 퇴고는 필수다.

거리사진가들의 방식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중의 하나인 붕어 낚시꾼의 방식을 살펴보았다. 다음 편에선 사슴 사냥꾼의 방식을 소개할 것이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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