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3일 화요일

540여년 지켜온 ‘숲의 바다’…5710종 생물들 ‘넘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블로그 물바람숲의 글을 퍼왔습니다.

세조때 왕릉 부속림 지정, 천연·인공림 ‘두얼굴 조화’
면적당 생물종 국내 최고, 숲의 미래 밝힌 ‘임학 산실’ 


소리봉 천연활엽수림 전경.
지난 20일 찾은 경기도 광릉 숲의 핵심구역인 소리봉(536.8m) 일대에는 나무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까치박달나무, 층층나무 등의 넓은잎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햇빛에 반짝였다. 지난 540여년 동안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성숙한 천연림이다.

어둑한 숲 속에 들어서니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100년을 훌쩍 넘겼을 졸참나무와 갈참나무 고목 사이로 수피가 사람의 근육처럼 울퉁불퉁한 서어나무들이 서 있다.

서어나무. 오래된 천연 활엽수림의 대표적인 수종으로 광릉의 소리봉과 죽엽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늘을 가린 숲에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바닥엔 서어나무 고목 한 그루가 널브러져 있다.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어린 까치박달나무와 회목나무가 키 자람을 하고 있었다.

동행한 신재권 국립수목원 식물보전복원연구실 박사는 “5~6년 전쯤 서어나무가 넘어지면서 숲 바닥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다른 나무들이 기회를 잡은 것”이라며 “촘촘한 숲에 생긴 빈틈을 철저히 이용하는 이런 모습은 오랜 자연림에서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리봉 정상에 오르자 도봉산, 수락산, 천마산, 축령산이 남양주시 진접읍의 아파트 단지와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광릉 숲은 서울에서 불과 39㎞ 떨어져 있다.

천연림과 인공림이 숲의 바다를 이룬 광릉숲 전경.
그러나 이 숲의 생물다양성은 웬만한 국립공원보다 높으며, 단위면적당 생물종을 따지면 국내 최고 수준이다. 광릉 숲 2240㏊에는 모두 5710종의 생물이 산다. 단위면적당 식물종 수는 광릉 숲이 ㏊당 38.6종으로 설악산 3.2종, 북한산 8.9종을 크게 웃돈다.

이처럼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것은 온대지역에서 이례적으로 장기간 숲이 보전됐기 때문이다. 1468년 조선 7대 왕 세조는 이 지역을 왕릉인 광릉의 부속림으로 지정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부터 현재까지 한 해도 멈추지 않고 임업 시험림 구실을 해 왔고, 이에 따라 개발과 훼손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림 보전과 생물다양성만 본다면 광릉 숲의 반쪽만 보는 셈이다. 광릉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임업 관련 기관이 들어서, 한반도에 적합한 나무를 어떻게 심을지를 연구해 온 우리나라 임학의 산실이다.

심은 지 90년 된 리기다 소나무 거목.
김석권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장은 “광릉 숲의 가치는 자연림 못지않게 인공림에 있다”며 “90여년 전부터 나무를 심어 가꿔온 광릉 숲에서 우리나라 숲의 미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광릉 숲에서 핵심구역은 소리봉과 죽엽산(600.6m)을 중심으로 한 천연 활엽수림 755㏊이다. 핵심구역을 둘러싸는 완충지역 1657㏊는 인공림이다.

전봇대처럼 꼿꼿하게 기른 80년 생 상수리나무.
김석권 박사의 안내로 임도인 직동로를 따라가며 광릉 숲 인공림의 모습을 살펴봤다. 1914~1917년 심었다는 팻말이 붙어 있는 낙엽송이 앞을 가로막았다. 가슴높이 둘레가 1m가량이고 높이는 20여m로 하늘로 쭉 뻗은 모습이 “쓸모없다”는 세간의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심은 지 80년이 지난 상수리나무도 마을 주변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상처 없이 미끈하게 자라나 있었다. 상수리나무 밑에 잣나무와 전나무가 자라는 복층 숲에서 인공림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김 박사는 “조림한 지 약 30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인공림을 잘 가꾼다면 광릉 숲처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숲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28년에 심은 전나무 숲. 어린 전나무가 돋아나 천연갱신림이 될 잠재력이 있다.
실제로 1928년 조림한 전나무 숲 바닥에는 어린 전나무가 빼곡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언제든 상층의 관목을 제거하면 전나무 숲이 형성될 수 있다. 독일의 가문비나무 숲처럼 전나무의 천연 갱신림이 형성될 답이 80여년 만에 나온 것이다.

그는 임업을 ‘3세대 산업’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심고 아버지가 가꿔 자식이 혜택을 보는 산업이다. 우리의 임업은 이제 2세대인데, 자식 세대가 누릴 혜택을 우리가 보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직동로 임도 근처의 90년 이상된 조림지. 천연림과 비슷한 모양이다.
90~100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임업의 유장한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능내로 임도를 따라가면 1964년 식재한 잣나무림이 나온다. 나무를 얼마나 조밀하게 심는 것이 바람직한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림이다. 2001년 ㏊당 3000그루를 심는 게 가장 낫다는 중간 결론이 나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47년째 지켜보고 있다.

광릉 숲은 ‘숲의 바다’이지만 그 바다엔 길이 나 있다. 광릉 숲은 65개의 임반으로 나뉘고 각 임반은 또 여러 개의 소반으로 나뉜다. 임반은 모두 13개 노선 45㎞의 임도를 통해 접근하도록 돼 있다. 광릉 숲의 관리 지도를 보면 마치 동네 부동산 소개업소의 지번도를 보는 것 같다.

수백년 동안 손대지 않은 천연 활엽수림과, 그것을 둘러싸고 전국 평균의 약 4배인 ㏊당 255㎥의 목재가 축적돼 있는 인공림은 광릉 숲의 두 얼굴이다.

포천/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한국전쟁 이후 도벌 횡행 80년엔 일부 군시설 터로

광릉 숲의 수난사

세조는 1468년 자신의 능이 들어설 자리를 능림으로 정한 뒤 능 주변과 진입로에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를 심고 능원과 산직을 두어 관리했다. 광릉에 당시의 나무가 살아남은 것은 없다. 현재 가장 오래된 활엽수는 졸참나무로 수령 200년 지름 113㎝이다. 광릉 숲을 가로지르는 지방도로 383호선 길가에 있는 전나무도 지름 70~90㎝의 거목이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는 광릉 숲의 최대 시련기였다. 풀뿌리까지 캐 땔감으로 쓰던 시절이었고 도벌이 횡행했다.

임업연구원(현 산림과학원)이 2003년 펴낸 를 보면, 1965년 광릉출장소의 주 임무는 도벌꾼으로부터 나무를 지키는 일이었고, 초막을 짓거나 잠복 근무를 하면서 지켰는데도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도벌꾼과 폭력배가 임업시험장 안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엔 인근 군부대가 숲 115㏊를 군사시설 터로 빼앗아 가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휴양지로 숲을 이용하고 개발하려는 욕구가 새로운 위협으로 떠올랐다. 1989년 시험림 일부가 산림욕장으로 개방됐고 수목원, 산림박물관, 야생동물원이 개장됐다. 관람객이 몰리면서 광릉 숲 주변에 식당, 노래방 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마침내 1997년 광릉 숲 보전 종합대책에 따라 산림욕장과 동물원이 폐쇄되고 수목원의 예약제와 관람 인원 제한 조처가 시행됐다. 국립수목원은 1999년 광릉 숲의 절반 면적을 관할하면서 독립했고, 나머지 숲은 현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산기술연구소가 관리하고 있다. 조홍섭 기자

광릉요강꽃·골무꽃…“우리 고향은 광릉”

광릉서 첫 발견된 식물 10종

광릉요강꽃
‘광릉’이란 접두어를 가진 식물과 광릉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된 식물이 10종에 이른다. ‘광릉’으로 시작하는 식물로는 광릉요강꽃을 비롯해 광릉골무꽃, 광릉물푸레나무, 광릉제비꽃, 광릉개고사리 등이 있다. 광릉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됐기 때문이다. 이 식물은 고향이 광릉이라고 할 수 있다.

광릉이란 이름이 붙지는 않지만 광릉에서 처음 발견된 식물도 적지 않다. 노랑앉은부채, 개싹눈바꽃, 털음나무, 흰진달래, 털사시나무 등이 그런 예이다.

이들 식물은 나중에 광릉 이외의 장소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병천 국립수목원 식물보전복원연구실 박사는 이처럼 적지 않은 식물이 광릉에서 처음 학계에 알려진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식물의 약 30%를 기재한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가 광릉 시험림에서 촉탁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조사를 하러 다닌 결과”라고 설명했다. 조홍섭 기자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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