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1일 일요일

공공연한 생각, 극단적 표현

이글은 한겨레신문 르몽드디플로마티크기사를 퍼왔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연쇄테러의 혐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남긴 글을 보면, 이번 사건이 정신이상자의 순간적인 광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상당 부분 유럽의 극우주의자들이 공유한 사고에서 비롯됐고 여러 해 동안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브레이비크에게 이번 범행은 다문화주의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성격을 띤 정권 및 사회에 대한 투쟁이자, 이슬람의 침략과 식민화 위협에 대한 저항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는 노동당이 추진한 다문화주의 정책에 의해 이민자가 늘어나고 다문화적 상황이 심화돼, 결과적으로 노르웨이의 전통적 삶의 방식과 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다.

1세기 전 미국 근본주의와 닮아

노동당의 이민정책에 대한 평가에는 이견이 있겠지만 이민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탈냉전 이후 동유럽·중동·아프리카 등 세계 여러 분쟁 지역에서 양산된 난민의 수용, 유럽연합(EU) 가입에 따라 요구받은 개방정책 등으로 이민자가 급증해 현재 그 수는 전체 인구 470만 명의 12% 정도로 추산된다. 브레이비크는 이런 ‘잘못된 상황을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부 청사나 노동당 청년 당원 등 노동당 테러를 응징 방법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행위로 시작될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일종의 선언문인 ‘2083년 유럽 독립전쟁’에서 브레이비크는 성이나 가족과 관련한 언급에서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 말고 자신의 신앙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외부에서 쉽게 지칭하듯이,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앙이 그의 행위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검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이든 ‘근본주의의 충돌’(타리크 알리)이든 10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에 적용된 문화적 차원의 해석은 성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사고가 근본주의와 상당한 공통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인터넷 문서에서 브레이비크가 적으로 규정한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타 문화와 타 인종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1세기 전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를 촉발한 바로 그 요인들이다. 19세기 말 미국 기독교 집단에서 태동한 일련의 경향 또는 운동을 가리키는 개념인 근본주의는 무엇보다 당시 후발 자본주의국 미국 사회가 경험한 급격한 사회변동의 산물이었다.

근본주의는 변화와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다. 개방적인 신학,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위협하는 페미니즘, 전통적인 위계질서·종교·관습에 대한 위협으로 여긴 마르크스주의, 새로운 존재로서 이민자에 대한 증오는 근본주의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20세기 말 이슬람 근본주의 역시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전쟁이자 프리섹스와 퇴폐적 대중문화로 간주된 서구문화의 유입에 대한 거부였다.

비록 몇몇 사례에 국한됐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해 유럽 극우파는 테러라는 방법은 틀렸을지라도 브레이비크가 추구한 대의에는 공감한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북부동맹의 중진 의원 프란체스코 스페로니는 “유럽이 유라비아가 돼가는 상황에서 서구 기독교 문명을 지켜야 한다는 게 브레이비크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에게 동의한다”고 했다(<한겨레> 7월 29일자).

그런데 유럽 극우파의 이런 대담한 입장 표명은 브레이비크의 견해가 이미 상당 정도 대중화된, 심지어 극우파뿐 아니라 온건한 우파 정치인들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견해는 이중적 성격을 띤다. 한편으로는 공식적으로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견해이지만 이것의 상당 부분은 현 유럽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에서 빌려왔다. 자신의 일기에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에 대한 환멸을 표현했지만(<르몽드> 7월 28일자), 그의 견해는 탈냉전·세계화 시대 유럽에서 지속적으로 지지 세력을 넓혀와 이제는 그다지 새롭지 않게 된 지배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다문화주의가 백인사회의 전통을 훼손한다거나 인구학적·문화적으로 서구사회가 이슬람의 위협(Green Threat)에 직면해 있다거나 하는 그의 논리는 정치가들이 선거 등 공론장에서 오래전부터 효과적인 선전 수단으로 사용해온 것들이다. 유럽의 경우 탈냉전과 함께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가고 이민 문제가 좌우를 확연하게 가르는 거의 유일한 잣대가 되었다. 고용·국방·환경·복지 등 대부분 분야에서 좌파와 우파는 수렴의 경향을 보이며, 이들 간의 차이는 상반되는 철학에 입각한 질적 차이가 아니라 대중이 쉽게 평가하기 어려운 미묘한 양적 차이가 되었다.

유럽 정치계의 수많은 브레이비크

그런데 핵심적인 정치적 이슈가 된 이민 문제는 우파, 특히 극우파에게 유리한 사안이었다. 자신의 형편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을 파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투쟁 대상으로 삼아야 할 세력이 불분명해지는 상황에서 만병통치약같이 제시되는 우파의 단순화된 이민 담론은, 대중에게 좌파의 정교하고 난해하고 다소 계몽적인 담론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유럽에서 극우주의는 담론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이제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있다. 여러 나라에서 이들은 정권을 쥐고 있거나 제2당, 제3당으로 제도권 정치에 안착했다. 1980년대에 부활해 선거제도나 언론 등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이다.

대테러 전쟁이 호전적 문명 담론을 지속시키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도 극우주의의 반이민·반이슬람·반마르크스주의는 결코 주변적 위치에 있지 않다. 노르웨이의 반이슬람·반이민 경향,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여, 리비아 공습 참여는 이런 세계적 흐름과 함께한다.

브레이비크와 극우세력의 사고가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에 대한 논의에서 나타나는 ‘이민에 관용적인 선한 백인 대 악한 백인’의 이분법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 유럽의 비유럽 이민자에게 적용된 ‘선한 무슬림 대 위험한 무슬림’의 이분법을 닮은 이 논리는 이번 사태를 노르웨이의 노동당 정권과 이 정권의 이념인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축소할 수 있다.

아직 사태 수습과 진상 규명이 급선무이지만, 이번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언급되고 있다. 우선 치안 차원의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노르웨이 경찰의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조차 왕가나 핵심 정치인 경호를 맡은 경우를 제외하면 일상적인 무기 소지를 금지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 이와 함께 아직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범죄율에도 불구하고 최근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에 대응해 경찰력 증강과 무기 소지 허용 등이 필요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치안 활동을 이슬람 단체에 집중한 탓에 이번처럼 다른 형태의 위험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르몽드> 7월 27일자).

착한 백인 VS 악한 백인?

다른 한편으로, 브레이비크가 비판한 관용적 이민정책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관용이 약해졌고, 이번 사태도 이런 변화의 결과이며, 따라서 더 관용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희생자 추도식에서 더 많은 관용을 호소하고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재확인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와 국민의 절제된 태도에 대해 외부 세계는 9·11 테러 때 부시의 미국이 보여준 호전적 대응과 대조적이라며 경의를 표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극우주의 및 인종주의의 부상을 막을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구조적으로 ‘배제된 세계’에 대한 고려만이 극우주의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사회적 배제 문제를 해결하고 배제된 계층의 상황과 심리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이민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이들의 집에 불을 지르거나, 모스크·시너고그(유대교 회당)·묘지 등 이슬람이나 유대교 관련 시설 파괴 같은 폭력만이 인종주의 범죄의 전부는 아니다. 인종주의 범죄는 제도적인 인종주의와 동네·학교·가게 등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공간에서의 일상적인 인종주의, 경찰 인종주의, ‘창구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이민자 관련 기관 담당자들의 차별적인 태도 등 사회 전반에 확산된 다양한 형태의 인종주의를 토양으로 해서 자라난다.

그들의 팍팍해진 삶에 주목해야

좀더 기술적인 차원에서 극우주의와 인종주의가 확산되는 것이나 이 사상이 폭력적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막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상당수의 주류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도 극우파의 견해를 공유하지만, 극우파는 제도권 정치나 주류 언론 등에서 많은 배제를 경험했다. 브레이비크도 ‘2083 유럽 독립선언’에서 합법적 수단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폭력 사용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자신의 글을 보낼 대규모 메일링 리스트를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점도 자신의 사상을 확산할 공론장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그가 민족문화를 지키는 데 장애물로 거론한 대상에는 노동당과 더불어 국영 언론사와 언론인도 포함돼 있다. 그의 블로그 기사에 따르면, “국영 언론사의 100%”와 “노르웨이 언론인 98%”가 이 장애물에 포함된다(The slaugter in Oslo, www.wsws.org, 2011년 7월 25일자 기사).

그렇다고 이들의 언로를 열어주고 이들을 정상적 집단으로 간주하는 것이 극우주의의 폭력적 표현을 예방하는 길인가? 여기에 ‘어떻게 인종주의에 대처할 것인가’에 관한 딜레마가 있다. 해악적인 존재로 간주해 무시하고 시민사회와 공론장에서 배제해야 하는가? 아니면 통합시킬 것인가?

근대 이후 세계는 종족 간 공존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잘 보여준다. 같은 민족이라도 출신 지역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거나 가정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외모도 다르고 종교나 사고방식도 다른 사람과 이웃이 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도전임이 틀림없다. 이 이방인이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에서 왔을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제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에 호소하는 것에도 한계가 생기고, 개개인의 의식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이런 노력조차 토박이들의 삶이 팍팍해지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다. 따라서 종족 간 공존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자각해야 한다. 단순한 계몽으로 해결될 수 없는 종합적인 과제이며, 어설픈 계몽은 오히려 인종주의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인종주의에 대한 진화론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이자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모델’로 칭송받는 나라 중 하나인 노르웨이에서 야만적인 일이 일어난 점에 외부 세계는 매우 의아해했다. 그러나 유럽의 역사는 경제나 복지 수준과 인종주의가 반드시 반비례 관계에 있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브레이비크의 테러와 함께 이제 인종주의 및 인종주의 폭력이라는 몹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현대를 사는 인류 모두에게 제기된 것이다.

글•엄한진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주의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뒤 이슬람주의, 이민, 종교와 정치 등에 관한 글을 발표했다. 저서로 <다문화사회론>(소화·201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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