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6일 금요일

희망 버스의 목적지는 ‘인간성 회복’ [노동과 삶]희망 버스와 소금꽃나무 김진숙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이번호부터 부정기적으로 르포작가 이선옥씨의 ‘노동과 삶’ 이야기를 싣는다. ‘노동’은 자본과 더불어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더욱이 노동은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돼 있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노동은 자본과의 관계에서 약자가 되어 눈물을 흘리기 일쑤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전체 나라 경제의 주요 구성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노동의 눈물’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지금보다 더욱 높아질 필요가 있다. 그 눈물을 보듬을 때 건전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경제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상황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문제는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 문제는 세계경제 변화와 그 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까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인 이선옥 르포작가가 처음으로 보듬는 눈물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200일 이상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씨를 찾아나선 185대의 희망 버스 이야기다.  _편집자
이선옥 르포작가

“하루하루 2차 희망 버스를 기다렸어요. 여러분에게는 왔다 가는 ‘하루’였지만, 저희는 이날만을, 정말 분초 단위로 여러분을 기다렸어요.”
지난 7월9일,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2차 희망의 버스’가 부산에 도착했다. 정말 올까, 설마 185대가 올까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기다리던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빗속에서도 꾸역꾸역 모여드는 1만 명 넘는 사람들을 보고 그제야 웃었다. 피를 말리던 지난 한 달 동안의 시간을 그들은 “분초 단위의 기다림”으로 표현했다. 당사자의 절실한 언어를 뛰어넘을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다시 절감한 한마디였다.

탈것과 이동수단 총동원


지난 7월9일 2차 희망 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온 시민들이 대형 걸개그림을 그리고 있다.

희망의 버스, 봉고, 자가용, 비행기, 자전거, 트럭, 휠체어, 천릿길 행군…, 2차 희망의 버스는 탈것과 이동수단이 총동원된 장관을 만들어냈다. 정리해고로 고통받는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이들을 지키기 위해 6개월 넘도록 35m 상공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모여든 희망 버스.
185일째인 그녀의 농성 날수만큼 응원하자는 뜻에서 무모하게 185대를 제안한 이들도,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무엇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것일까?
지난 6월11일, 1차 희망의 버스가 다녀간 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사태는 다른 국면을 맞았다. 6월27일, 채길용 노동조합 지회장이 회사와 총파업 철회, 업무 복귀를 전격 합의한 것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즉각 ‘한진중공업 노사 타결’이란 속보를 날렸고, 정리해고 사태가 정리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현장은 ‘상황 끝’이 아닌 새로운 상황의 시작으로 어지러웠다. 부산역에서 만난 한진중공업 조합원 모두 한목소리로 지회장의 합의를 직권조인이라 비난하며 거친 분노를 쏟아냈다.
“바로 전날 조합원 200명과 간담회를 했을 때도, 집행부가 복귀 의사를 물었지만 상집 간부 일부와 지회장만 빼고 우리 모두 반대했어요. 복귀하게 되면 진숙이 누나와 농성 중인 조합원 모두 2년 넘게 싸웠는데 남는 게 없으니까요. 지회장 혼자 공권력이 들어오는 날 합의해버린 거예요. 공권력이 들어온다는 소리를 듣고 상집 간부 빼고 모두 85호로 달려가서 크레인을 지키려고 농성하는데, 회사랑 만세 부르는 지회장 사진을 본 거예요. 인터넷으로 타결 뉴스가 나왔는데 아무도 몰랐어요.” -김상욱(29·가명), 2008년 입사, 2011년 해고 
“저는 비해고자지만, 이게 해고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면 다음에 우리니까 내 문제잖아요. 그런데 지회장은 일하면서 투쟁하고, 해고자는 법적인 투쟁을 벌이자고 하는데, 우리는 생각이 달라요. 우리한테는 합의된 게 전혀 없다고, 합의 안 한다고 해놓고 속인 거예요. 우리를 지켜준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싸웠던 건 정리해고라는 문제와 85호 때문이었어요. 진숙이 누나는 그 목숨과 우리를 바꾸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회장은 합의 후에 투쟁 현장에 얼굴도 안 비치고, 85호에 밥 올리는 데도 협조하지 않고 있어요.” -이정환(35·가명), 2006년 입사, 비해고
부산역에서 한진중공업을 향해 행진하는 길에는 ‘노사합의를 환영하며 조업 정상화를 위해 노력합시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협력업체, 시민단체(라 칭하는 관변단체), 부산 시민, 지역 주민의 이름으로 붙은 플래카드들은 한진중공업의 해고 사태가 끝났다고 못박고 있었다. 행진하던 중 조합원들이 이 플래카드를 주욱 찢었다. 거짓말이기 때문이란다. 노사합의가 아닌 직권조인이며 조합원들의 동의 없는 합의는 무효이다. 김진숙이 아직 그곳에 있고, 그녀를 지키러 간 사수대가 크레인에서 농성을 시작했으므로, 행정대집행으로 끌려나간 조합원들이 크레인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다시 모이고 있으므로,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정상화는 사실이 아니다.
채길용 지회장이 직권조인을 한 뒤 김진숙은 “처참하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우릴 버렸다”고, “얻어맞고 끌려나가는 조합원들의 모습보다, 지회장이 회사와 만세 부르는 그 모습이 더 처참하다”고 했다. 노조마저 버린 싸움, 이제 끝난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과, 사태가 해결됐다고 왜곡하는 언론에 고립돼, 마지막 남은 기운마저 다 소진한 조합원들이 기대한 건 희망 버스뿐이었다.

한진중 노동자의 마지막 희망 ‘희망 버스’
“옆에 있는 동료들 믿고, 진숙이 누나 믿고, 희망 버스 믿고, 경찰한테 끌려갈 때도 그날까지만, 그날까지만, 9일까지만 버티자, 서로 그랬어요. 희망퇴직 쓰려는 동료 있으면 제발 그날까지만…, 그날까지만 버티자…. 우리를 보러 온다, 사람들이 온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오늘 이 장면들이 꼭 꿈꾸는 것만 같아요. 사람들 보니까…, 진심으로 연대해주는 사람들을 보니까….” -김상욱
“1차 때도 우리 회산데 우리를 보러 손님들이 온 건데 꼭 우리가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는 사다리 하나 달랑 준비했을 뿐인데…. 1차 때도 그랬지만 우리한테는 희망 버스가 엄청난 거예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부산 끄트머리의 회사까지 와주었잖아요.” -이정환
지회장과 사무장은 조합원들의 형사처벌과 노조 와해를 우려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자본과 권력이라는 강자들의 공세에 둘러싸인 노동조합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직권조인이란 건 언제든 정당할 수 없다. 그 행위를 통해 보호하겠다는 조합원 당사자들이 반대할 때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와해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직권조인으로 인해 오히려 노조가 무너지고 있는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는지 묻고 싶다. 비록 차악의 선택일지라도, 혹은 처참한 실패가 보일지라도 조합원과 함께하는 길을 택했다면 지금 같은 분노는 없었을 것이다. 조합원의 가슴을 어루만질 수 없는 합의라면, 옳아도 옳지 않다. 그것이 노동조합 간부의 책임이자 숙명 같은 것이다. 조합원들이 버린 지회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2년 전 쌍용자동차 노조가 77일간의 옥쇄파업 끝에 합의한 ‘노사 대타협’도 벼랑 끝에 몰린 집행부가 선택한 불가피한 차악이었다. 77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전쟁을 치른 조합원들은 너무나 지쳐 있었고, 집행부는 그들의 목숨이 위태롭다 느꼈다. 차라리 다 같이 죽자던 조합원들의 절규, 몸과 마음의 감각을 잃고 휘청거리는 조합원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양보한, 그야말로 피눈물로 맺은 합의였다. 비록 그 합의가 차악이었어도 조합원들은 집행부를 비난하지 않았다. 비난할 수 없었다. 위원장과 집행부가 끝까지 조합원들과 생사를 함께했기 때문이다.

체불 노동자, 스마트폰 구입해 트위터 시작

2차 희망 버스에 탑승해 부산 한진중공업에 들어가려던 한 시민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현장의 사정이 이럴진대, 언론은 노사합의 이후 일부 강성 노조원들과 외부 세력만이 투쟁을 고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합원들은 있는 힘을 다해 현장의 진실을 알리고 있지만 여전히 벅차다. 몇 달째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이 없는 돈에 스마트폰을 장만해 트위터를 시작했다. 김진숙과 이어진 유일한 끈, 세상 밖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트위터가 지금 이들이 가진 최선의 무기다.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강성이어서 남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남은 거”라고, “소수가 아니라 조합원 대부분이 지회장의 합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아직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열심히 공장 안의 진실을 타전하고 있다. ‘외부 세력’이라 칭한 희망 버스 탑승자들은 이들의 진실을 부지런히 세상 밖으로 퍼뜨렸다. 1차, 2차 희망 버스는 당사자들과 외부 세력이 경계를 넘어 연대한 힘으로 조직됐다. 내부와 외부로 경계를 나눈 건 그들일 뿐, 지금 영도의 밤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저 우리다. 
2시간 넘게 비를 맞으며 한진중공업을 향해 걸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길 옆에 서서 “고맙습니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연방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자식이 한진에 다니거나, 남편이 해고가 된 모양이다. 해고는 노동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살인이므로, 함께 살인의 행렬을 막겠다고 찾아온 이들이 그저 고마운가 보다.

살인게임 즐기는 고양이 앞의 쥐
지난 2월 한진중공업은 노동자 172명을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연초에 400명 해고를 선언한 뒤 1월에 290명을 발표했다가, 다시 희망퇴직을 거부한 최종 명단 172명을 추린 것이다. 서너 달 사이 회사가 명단을 발표할 때마다 노동자들은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회사는 2010년에도 인원 30% 구조조정 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해고자인 김진숙의 단식농성으로 현장의 반대가 일어나자 구조조정을 중단하겠다고 합의했다. 2007년에도 “경영상의 이유로 국내 공장의 축소 및 폐쇄 등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합의했고, 2003년에는 김주익 지회장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29일 동안 싸우다 목맨 뒤에야 정리해고를 철회했다. 누군가 죽거나 굶어야만, 누군가 크레인에 올라가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만 겨우 해고를 막을 수 있는 현실이다. 무엇을 더 따내기 위해 굶고, 죽는 것도 힘든데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 이른바 ‘귀족 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심심하면 한번씩 아가리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살인게임을 즐기는 고양이의 앞발에 잡힌 쥐처럼, 가엾다.
“저는 이가 아파서 5일 동안 치료받으러 점심시간에 외출을 했어요. 월차 내려고 했는데 상사가 일이 많으니 외출로 하라 해서 그렇게 했어요. 외출한 날도 저녁에 다 야근을 했어요. 그런데 그 외출 5번이 근태라고 해고 사유가 된 거예요. 시키는 대로 했는데…. 저처럼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잘렸어요. 젊은이들을 뽑았으면 숙련된 기술자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한진을 봐왔어요. 조선 경기는 계속 호황이었고, 제가 해고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이 회사에 다니는 걸 자랑스러워했는데…. 회사는 얼마 전에도 집집마다 등기우편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냈어요. 집회와 농성에 참여하면 경기가 좋아져서 재고용할 때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협박이에요.” -김상욱
“상욱이 경우처럼 해고 사유가 정말 어이없어요. 저는 해고되지 않았지만 미안해요. 옆에 있던 동생인데 두고 가는 게 미안하고, 6개월 동안 같이 먹고 자고 가족보다 더 친형제 같은 사람들인데. 해고로 관계들이 파괴되고 지회장은 얼마 전까지 우리랑 ‘10원짜리’ 욕하고 싸우던 용역들의 호위를 받고 나가니, 참 말할 수 없이 착잡해요.” 
“해고 발표가 났을 때 비해고자들 모두 ‘휴’ 하는 안도가 10%, ‘다음은 우리 차례다’가 90%였어요. 김주익 지회장 그리 되고 잠깐만 없었지, 몇 년 동안 계속이었어요. 저도 연초엔 해고자 명단에 포함돼 발표됐다가, 다시 냈을 때는 빠졌어요. 지금 비해고자여도 언제 잘릴지 몰라요.” -정기선(41·가명), 2003년 입사, 비해고
집단에 대한 폭력이 가장 너그럽게 용인되는 게 바로 노동현장의 ‘구조조정’이다. 그 건조한 단어 너머에는 구체적인 인간들의 삶을 파괴하는 직접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 안에서 노동자는 그저 비용일 뿐이다. 개별 인간의 인격과 존엄 따위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기계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이용되다, 그저 비용으로 처리되는 노동자들의 하찮음이…, 그래서 제일 슬프다. 

자재는 비 오면 덮어주고, 기계 점검도…

한진중공업 노조원(오른쪽)이 희망 버스를 타고 내려온 한 시민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자재는 비 오면 덮어주고, 기계는 고장날까 점검해주건만, 오직 목숨이 있는 인간들만 경제의 이름으로, 산업의 이름으로 죽도록 부려먹다 가차 없이 버려진다. 
해고라는 것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너그러워도 되는 것일까? 170명을 자른다고 발표하면 주식값이 뛰는 비정한 자본주의를 그냥 용인해도 되는 것일까? 다른 생존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해고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한 것일까?
희망 버스는 이 많은 물음에 ‘아니요!’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모여 다시 인간의 복원을 외치는 장이었다. 한 사람의 절규에 응답하면서 시작됐지만, 노동자 수만 명의 비참한 현실 때문에 일어났고, 수십만 명의 공명으로 가능했다. 촛불은 광장의 담론을 만들었지만, 희망 버스는 담론을 넘어선 현장의 행동을 만들어냈다. 투쟁 현장조차 중심부가 아니면 외면받기 십상인 서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의지들의 총합의 장이었고, ‘결사투쟁’의 세대와 ‘연대 돋는’ 세대 교합의 장이었으며, 노동자계급과 시민계층이 화합하는 장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김진숙이라는 걸출한 여성노동자는 언제나 고립돼 시민권조차 얻지 못한 노동자에게 비로소 ‘시민권’을 안겨주었다. 마치 85호 크레인 위에서 대지를 관장하는 여신처럼, 해고당한 조합원들을 위로하며, 아직 인간의 온기가 남은 사람들을 독려하며, 고통 속에서도 이 모든 사람들을 넉넉하게 품고 있었다.
“회사 사람이 다른 조선업종 직장을 소개해준다고 거기 가서 다시 일하라 했어요. 그런데 딴 데 가면 제가 행복할까요? 가족보다 더 끈끈한 이 사람들을 두고 도저히 갈 수 없어요. 우리는 조합이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누나랑 희망 버스가 지켜주고 있어요. 공권력이 들어온다고 할 때 가장 먼저 85호 크레인으로 달려갔어요.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밧줄로 크레인 계단에 몸을 묶었어요. 수십 명이 달려갔는데, 저 위에서 진숙이 누나가 우리보고 그러는 거예요. ‘공권력 투입돼도 걱정하지 마. 내가 끝까지 너희들 꼭 지켜줄게.’(울음) 우리도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누나 꼭 지켜줄게요’라고 약속했어요. 진숙이 누나가 내려오지 않는 한, 누나가 안전하게 내려올 때까지 저는 여길 떠날 수 없어요.” -김상욱
직권조인 이후 몇 차례 크레인을 진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녀는 강제 진압하면 뛰어내릴 수밖에 없음을 호소했다. 크레인에 오른 이후 하루도 내려가는 연습을 거른 날이 없었고, 꼭 승리해서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 김주익의 원혼과 함께 제 발로 내려가겠다고 약속했던 그녀다. 희망 버스가 오기 전엔 설레서 잠을 못 잤고, 희망 버스가 다녀간 뒤에는 그리워서 눈감지 못했던 그녀다. 그러나 2차 희망 버스 참가자들은 끝내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나는 곳 500m 전부터 차벽을 쌓아놓고 통째로 길을 막은 경찰들 때문이다. 그 절망과 고립의 차벽을 넘어, 조선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릴 조합원들과 크레인 위의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애썼지만, 경찰은 평화로운 시민들에게 물대포와 최루액 대포를 무차별로 쏘아댔다. 경찰 덕에 3차 희망 버스가 그 자리에서 결정됐다.

현장에 돌아가면 하고픈 건 ‘여행’
“희망 버스가 돌아가고 나면 당장엔 갑갑하겠지요. 하지만 지난번 1차 버스 이후에 2차가 있었잖아요. 2차 버스를 기다리는 힘으로 버텼으니 또 3차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그날만 기다리는 거죠. 3차가 언제 잡히겠노 하다가 잡혔다니까, 우리는 또 기다리고 있어요.(웃음) 우리 싸움 꼭 이기지 않을까요? 이렇게 많이 응원해주는데, 꼭 이길 거예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여행을 하고 싶어요. 형들하고 배낭 메고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여행 한번 갔으면 좋겠어요.” -김상욱
일상에 치인 자가 꿈꾸는 여행과 일상이 파괴된 자가 꿈꾸는 여행은 다르다. 이들이 꿈꾸는 여행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파괴된 삶을 온전히 회복하고 싶은 몸부림이다. 이 참혹한 전쟁이 끝나 그녀가 안전하게 땅을 디딜 때까지, 김주익과 곽재규의 영혼이 편히 잠들 수 있을 때까지, 정리해고로 버림받고 용역 깡패들에게 내동댕이쳐진 조합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때까지, 그래서 좋은 사람들과 훌쩍 배낭 메고 여행을 떠나는 그 아무것 아닌 일상을 되찾을 때까지, 희망 버스는 인간의 세상을 향해 계속 달려야 한다. 아니 달릴 것이다. 
namufr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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