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8일 목요일

저비용 욕망’ 자본이 만든 땀의 사슬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Cover Story]월드 티셔츠, 1900년대 미국과 30년대 일본, 70년대 한국 소녀들의 고된 노동에서 탄생
김명철  번역자·바른번역(주) 대표

티셔츠는 가장 간단하고 기초적인 상품이면서도 발달된 국제 분업하에 생산·소비되는 상품이다. 일반인들의 예상에서 벗어나 국제화·분업화된 이 상품이 국경을 넘나들며 생산·소비된 건 언제, 그리고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월드 티셔츠 탄생의 기원, 산업혁명
근대의 문을 연 산업혁명은 섬유산업에서 시작됐다. 18세기 중엽까지만 하더라도 평균수명이나 기술력 등 여러 지표에서 중국에 뒤처진 영국이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세계 1등 공업국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700년대에 이르러 섬유 생산이 어느 정도 전문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대부분 나라들에서는 실을 뽑고 옷감을 만들어 입는 일이 주로 가정 내에서 소규모 단위로 이루어졌다. 농가마다 베틀을 갖추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목화를 빗질하고 물레질해 옷감을 짜고, 옷을 만들어 자급자족했다. 반면 영국에서는 각 가정에서 뽑은 실을 작은 기업들이 수거해 천을 짜게 되었다. 분업이 발달된 것이다.



중국의 한 자치주에서 주민이 직접 재배한 목화가 바구니에 담겨 있다.
  중국의 한 자치주에서 주민이 직접 재배한 목화가 바구니에 담겨 있다. 그런데 목화를 재배해 실 뽑는 일은 천 짜는 일보다 훨씬 노동집약적이어서, 천을 짜는 기업들이 충분한 양의 실을 구하는 데 애먹는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1760년대에 성능이 개선된 베틀 덕분에 천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실은 더 부족하게 되었다. 하지만 때로 병목현상은 미래의 모습을 바꿔놓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면서 혁신과 개선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은 이를 해결하면서 근대를 가장 먼저 열게 되었다.
점점 심각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인들은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결국 1770년 제임스 하그리브스가 ‘제니 방적기’를 발명해 특허를 얻었다. 첫 번째 제니 방적기에는 스핀이 8개 달려 있어서 노동자 한 사람이 뽑아낼 수 있는 실의 양이 8배로 늘어났다. 1784년에는 스핀이 80개, 18세기 말에는 100여 개로 늘어났다. 뒤이어 면직물 생산을 급격히 늘릴 수 있는 수많은 발명품이 출현했다. 수력 방적기인 워터 프레임, 뮬 방적기, 증기기관 등이 연달아 발명됐다.
제니 방적기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질서를 탄생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일을 그만두고 공장에서 일하러 도시로 몰려들었고, 새로 등장한 기업들을 위해 금융·보험·수송·통신 등 산업 기반이 갖추어졌다. 도시 인구가 늘어나면서 소매업도 발달했다. 섬유산업의 혁신이 근대 경제의 점화 스위치가 된 것이다.

미국 목화산업의 발전
실 부족이라는 병목현상을 해결하고 나자 새로운 병목현상이 나타났다. 면방직 공장에서 면직물이 쏟아져나오면서 심각한 원면 부족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기술혁신으로 인한 대량생산으로 면직물 가격이 떨어지자, 영국인들은  피부에 닿으면 간지럽고 갑갑한데다 세탁하기도 불편한 모직물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면은 싸고 가벼웠으며 물세탁이 가능하고, 색상과 무늬가 다양한데다 감촉까지 부드러웠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영국의 모직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영국 의회는 주검에게 입히는 수의는 반드시 양모로 만들어야 한다는 법을 만들 정도였다.
영국의 원면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미국의 목화농장이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1700년대 후반까지 다른 국가에 비해 목화 생산이 미미하던 미국은 1800년대 전반에 이르러 생산량이 수십 배 늘어났고, 생산된 목화의 70%는 영국으로 수출됐다.
미국이 인도 같은 값싼 노동력 국가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목화 수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노예제도에 힘입은 바 크다. 목화 재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노동시장에만 의존하기에는 어려운 특성이 많았다. 목화를 재배하는 데는 힘든 육체적 노동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날그날의 날씨에 즉각 대응해 노동력을 투입해야 한다. 목화는 축축하게 젖어 있을 때는 딸 수 없기 때문에 비가 오면 일꾼들은 일손을 멈출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일단 목화가 벌어져 건조되면 솜이 땅에 떨어지거나 바람에 날아가기 전에 최대한 빨리 따야 한다. 비 맞은 목화 솜은 얼룩지기 때문에 비구름이 몰려오면 허겁지겁 노동자들을 투입해야 한다. 노동 수요 예측이 일기예보만큼이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노동력을 시장에 의존하는 건 불리했다. 노동 수요량이 불규칙한데다, 흔히 농장들은 인구밀도가 낮은 한적한 곳에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될 수 없었다. 하지만 노예제도는 이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 덕분에 한정된 가족 노동력에 주로 의존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목화 재배 농장의 규모가 커질 수 있었고, 이는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됐다.

플랜테이션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들. 미국의 목화산업은 노예노동에 의해 유지됐다
싼 노동력 찾아 세계를 도는 글로벌 산업
영국의 면방직 산업이 수출 위주로 성장하면서 1880년대에 이르러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로 면직물을 실어 날랐다. 그 결과 면직물 공업은 부차적인 산업들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영국 경제를 광범위하게 발전시켰고, 수출 주도형 성장을 이끌었다. 그 발전의 밑바탕에는 고아나 생계가 절박한 여성들의 값싼 노동력이 있었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면 제품의 절반을 생산하던 영국의 방직산업은 미국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보스턴 귀족 가문 출신인 프랜시스 로웰은 영국 동력 직조기 기술을 빼내어 미국에 가져갔고, 대부분의 보조 기술 역시 가까스로 이주 제한을 피한 영국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에 유출했다(오늘날 특허보호에 주력하는 미국도 산업화 초기에는 이런 일이 많았다). 미국의 면방직 공장 역시 가난한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력에 의존했다. 1900년대 초 미국 남부의 소녀들은 7살 정도 되면 공장에 들어갔고, 면방직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의 60% 이상이 13살 이하 어린아이였다. 식사 시간에 잠깐 쉬는 것을 제외하고는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일주일에 70시간 이상 일했다. 미국 남부 공장들은 처음부터 강력한 수출 지향 노선을 택해 경쟁자인 영국을 밀어냈다. 특히 영국 면직물보다 낮은 가격의 면직물로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전세가 역전돼 중국에서 미국으로 저가 면직물이 밀려들고 있지만, 1800년대 말만 하더라도 미국이 수출하는 직물의 절반 이상은 중국에 수출됐다.
이윽고 미국 역시 싼 노동력 경쟁에서 밀려 일본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1930년대 중반 일본은 세계 면제품 시장의 약 40%를 점유했다. 역시 낮은 노동비용과 열악한 노동조건, 특히 ‘야간작업’ 때문이었다. 다시 1970년대에는 홍콩·한국·대만이 그 자리를 잇게 되었다. 농촌에서 이른바 ‘노동력 착취공장’으로 쏟아져 들어온 여성 노동력 덕분이었다. 당시 한국·홍콩·대만의 직물 노동자 임금수준은 미국의 약 7%, 일본의 15% 정도였다. 그 자리는 오늘날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노동력이 대체하고 있다.
이처럼 저가 의류와 티셔츠의 세계화 과정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됐다. 어린이와 여성 등 나약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많은 나라들이 산업화의 기반을 이뤘고, 다른 나라들은 물가 안정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일구는 데 도움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값싼 노동력을 찾아 티셔츠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티셔츠는 가격이 너무 싼 나머지 마구 소비됐고,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티셔츠 중고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울 정도다. 단지 싫증이 났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버려지는 헌 옷들을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에 판매하는 글로벌 산업도 생겨났다. 구세군 등 자선단체에 의해 수거되고 배포되는 양은 미미하고 대부분 전문 바이어들의 손에 넘어가 국제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부유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옷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옷으로 취급된다. 일할 때, 심지어 결혼할 때도 입고, 여러 아이들이 물려가며 입기도 한다. 흔히 중고의류 무역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세계 최빈국이 미국의 넝마를 폐기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옷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걸레로 판다. 걸레용 헝겊들은 카펫, 매트리스, 쿠션, 절연재 생산에 이용되기 위해 세계 각국으로 이동한다. 그야말로 티셔츠는 목화 생산 단계에서부터 소비, 재소비되기까지 전세계를 부단히 여행한다. 

티셔츠 생산을 둘러싼 정치게임
티셔츠 시장은 품질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경쟁한다. 방직산업이 더 싼 노동력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목화 생산만은 미국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예제를 통해 대형화할 수 있던 미국의 목화농장들은 노예제가 폐지된 뒤 기계화를 통해 노동력 비중을 미미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반면 의류 생산에서는 아직도 인건비가 총가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미국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미국의 원사 제품을 이용하는 국가의 의류 상품에 관세 특혜를 주는 등 정치적 보호책들도 남아 있다.
미국의 티셔츠 수입쿼터는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정치적 로비 대상이기도 하다. 실제로 수출의 60% 이상이 섬유 및 의류 품목인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을 돕는 대가로 미국의 파키스탄 티셔츠 수입쿼터를 늘려주도록 요청했고, 자국 내 섬유업계 표를 의식하는 미국 국회의원들과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goodmor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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