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4일 수요일

[사설] ‘오세훈의 주민투표’, 들러리 설 이유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의  2011-08-23자 사설입니다.
아주 낯선 선택을 요구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두 문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에 앞서 투표 거부 여부를 선택해야 하는 투표다. 주민투표에선 거부도 보장된 선택인 만큼, 어떤 결정도 민주시민의 권리다.
이번 투표는 특히 청구와 발의 과정에서 허다한 위법 부당성 탓에 투표의 정당성에 문제제기가 많았다. 무상급식 소관 기관인 교육청이 ‘안 해도 되는 투표’가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투표’라고 주장하는 건 그런 까닭이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은 투표 거부가 민주시민의 의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이미 선관위에 의해서도 배척됐다. 현재로선 반론다운 반론이 없다.
교육청 지적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교육청 소관 사항을 서울시가 가로채 주민에게 판단을 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교육청에 대한 예산 지원에 관한 사항이라면 할 수 있지만, 예산 사항은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 문제의 발단은 시의회가 재의 끝에 통과시킨 무상급식 조례였다. 오 시장은 그 적법성에 대해 대법원에 심판을 의뢰했다. 법원이 심사중인 사안은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는 배후에서 주민투표를 조종했다. 결국 중간에 ‘지면 대권 불출마’, 막판엔 ‘지면 시장직 사퇴’ 등으로 배수진을 쳤다. 주민투표가 제 꼼수임을 자인했다.
게다가 이번 투표는 일단 기표소에 들어가면 오 시장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되어 있는 구조다. 주민투표에서 발의를 지지하는 사람만 투표소에 가는 경향이 있다. 설사 반대표를 던지러 간다 해도, 투표율만 높여 33.3% 조건을 채우는 들러리 구실만 한다. 여기에 투표 문항 자체가 아전인수의 전형으로, 오 시장에게 절대로 유리하다. 여당 안에서도 ‘오세훈에 의한, 오세훈을 위한, 오세훈의 투표’라는 지탄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투표에서 지면 복지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망한다며 눈물을 쥐어짰다. 그러나 주민투표와 정부 정책은 크게 관련이 없다. 하다못해 이웃 지자체에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보수성향의 인천시교육감은 엊그제 전면 무상급식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지사는 이미 교육청과 협력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서투른 몸개그일 뿐이다. 오 시장이 사유화해버린 주민투표, 거기에 들러리 설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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