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4일 일요일

[사설]재정건전성 해치는 주먹구구식 녹색사업

이글은 경향신문 2011-8-12자 오피니언사설입니다.
요즘 정부부처마다 녹색성장 정책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8·15 경축사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발표한 지 만 3년을 앞두고 치적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녹색성장의 3년 성과라고 해야 녹색과는 거리가 먼 4대강 사업과 원전르네상스가 고작이지만,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온갖 재정사업에 ‘녹색’을 붙여 예산을 따낸 부처로서는 그럴 만도 한 형편이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펴낸 ‘2010년도 신규 재정사업 평가’는 정부의 녹색사업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주먹구구로 설계되고 졸속으로 집행되는 녹색사업이 재정건전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예산정책처가 올해 처음 조사한 이번 평가보고서는 녹색사업에 예산의 졸속 배정과 중복·낭비가 심각하다고 적시했다. 지난해 녹색성장 정책연구와 관련해 환경부와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가 각각 30억원과 20억원을 집행했다. 비슷한 정책연구 용역에 두 기관이 저마다 세금을 쓴 것이다. 녹색성장 연구지원이란 명목으로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도 예산집행에 중복이 확인됐다. 녹색마을 4곳 조성사업의 경우 15억원 예산이 30%도 집행되지 않았다. 준비도 부실하고 부처간 조율도 안된 상황에서 녹색 바람을 타고 예산만 배정된 졸속 사업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정부 총지출 규모(292조8000억원)와 녹색성장의 대의를 생각한다면 수십억원의 중복·낭비는 ‘푼돈’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재정 형편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예컨대 환경부가 지난해 10억원을 배정한 강릉 저탄소 녹색시범도시 사업의 경우 집행예산은 절반에 그쳤다. 예비타당성 조사도 없이 녹색이란 이름으로 삽부터 들이댄 이 사업에는 앞으로 모두 1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지금 10억원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나라 곳간에서 1조원이 낭비될 수 있는 것이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신규 재정사업 가운데 예산이 70%도 집행되지 않은 사업이 20%나 됐다.

미국·유럽발 재정위기가 세계경제를 혼돈에 빠뜨리면서 우리나라도 재정건전성 확보가 화두로 떠올랐다. 저마다 입맛대로 구구한 해석을 하고 있지만, 재정위기의 원인은 세금이 덜 걷히거나 세금이 낭비됐거나 둘 중의 하나다. 예산정책처가 지적한 부실 녹색사업은 세금 낭비의 전형적인 사례다. 여기에 녹색으로 포장된 4대강 사업의 삽질예산까지 포함한다면 녹색성장 정책이야말로 건전재정의 위협요인인 것이다. 정부가 예산 재점검의 필요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말뿐인 녹색사업부터 재정리하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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