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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8일 수요일

'방통대군' 이어 '영포대군'까지 병원행?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7-17일자 기사 ''방통대군' 이어 '영포대군'까지 병원행?'을 퍼왔습니다.
검찰 "몸이 안 좋다"…SNS "삼성병원은 파라다이스?"

▲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검찰에 수사받고 있는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요즘 몸이 안 좋다"라면서 검찰 수사를 거부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처럼 구속중에 병원에 입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7일 (해럴드경제)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이날 경기 의왕 서울 구치소에 수감중인 이 전 의원 근황과 관련해 "최근 몸이 안 좋다는 말을 계속하면서 검찰 소환조사에도 가끔 불응한다"며 "구속 전 병원에 다녔다고 주장했고, 의사가 발급한 소견서를 제출해 약을 먹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실제로 이 전 의원은 최근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외부에서 약이 들어오지 못하자 소견서를 구치소에 내 그 안에서 지은 약을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이 전해지면서서 트위터 여론에서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VIP 병동이 그리운 1인", "싸고 질 좋은 미국산 휠체어 추천해야!", "이놈의 정부는 뭐만 하면 바로 휠체어 행이네", "삼성병원 최고층에 자리 잡은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로",
한편, 일부 트위터리안들은 최근 현정권 실세로 군림하면서 이른바 '방통대군'이라 불리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구속된 상태에서 병원에 수술을 받으러 간 점을 지적하면서, "'영포대군' 역시 체어맨이 될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을 못해 아픈 것", "할 말은 많으신 분들이 어디서 약을 파실까?" 등 조롱이 잇따르고 있다.
트위터리안 해바**(@__ho***)은 "신한은행 3억원, 저축은행과 코오롱그룹에서 6억여원 받은 혐의, SLS그룹 금품수수설, 김학인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장 공천헌금 수수설, 포스텍의 부산저축은행 500억원 투자개입설 등. 이상득 구속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검찰은 더 파헤쳐야 한다"라고 지적하면서 강제로라도 수사에 임하게끔 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6월 29일 금요일

정두언 박지원도 수사 "물타기?"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6-29일자 기사 '정두언 박지원도 수사 "물타기?"'를 퍼왔습니다.
'저축은행 비리' 이상득 소환…SNS "왕차관, 방통대군, 상황. 다음은?"

▲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검찰이 솔로몬저축은행 임석 회장에게서 최소 수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이명박 대통령 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을 내달 3일 소환키로 한 데 이어 박지원 민주통합당(민주당) 원내대표와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도 소환한다.
29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저축은행 비리합동 수사단(단장 최운식)은 이 전 의원을 다음달 3일 소환조사하는 데 이어 임 회장이 돈을 줬다고 주장한 박 원내대표와 정 의원을 추가로 소환조사 통보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임 회장은 이들 세 사람에게 주었다고 주장한 돈은 수억원부터 1억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은 지난해 9월 2차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앞두고 임 회장으로부터 수차례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은 임 회장에게 "퇴출 저지 정·관계 로비용으로 쓰라"며 건넨 14억원 중 일부도 이에 포함된 단서가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박 원내대표는 이날 밤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2007년 출소후 임 회장을 공·사석에서 여러차례 만났다면서도 "돈을 받은 일은 절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확인해 보아야겠지만 합법적 후원금도 아마 받은 게 없을 것"이라면서 "검찰이 사건때마다 나를 엮으려 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면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의원도 (조선)과의 통화에서 "임 회장으로부터 돈 받은 것이 없다. 합법적 후원금을 받은 적이 있는지는 확인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이를 본 트위터리안들은 "검찰이 박 원내대표와 정 의원을 끼워 수사한다는 것 자체가 이 전 의원 축소수사를 예고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여론은 정 의원이 지난 17대 총선에서 이 전 의원을 맹비난하면서 출마 저지를 벌였고, 그간 MB정부를 겨냥해 거침없이 비난을 한 점과 박 원내대표 역시 현정부에 그닥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두 의원이 이번사건에 연루됐다는 점을 탐탁잖게 여기는 분위기.
이상득 4억 비리에 박지원과 정두언도 같이 수사. '정치검찰'이 이상득 비리 의혹 때마다 노건평 검찰 언론 플레이와 이시형 내곡동에 노정현으로 물타기. 민간인 사찰에 노통을 관에서 끄집어내 노무현 때 정상적 공무원 사찰도 불법사찰이라 물타기하더니!(Na**, @Nabi***)
검찰, 이상득 소환한다기에 제법이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박지원 정두언을 끼워 넣는다. 저렇게 머리들이 없으니. 교육은 이래서 필요한 것인데(언론인 이기명‏, @kmlee36)
일부 트위터리안들은 "검찰이 MB 최측근들을 모두 봐주기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모습을 '요양원(혹은 놀이터) 보내기'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정치계 노인네들을 하나하나 놀이터로 보내주는 MB. 요양시켜주는 건가? 솜방망이 처벌로 집에서 TV 보는 박희태. 이상득의 소환은 MB가 "형, 내가 내 임기내 꺼내줄 테니까 잠깐 요양 좀 해"라면서 징역 5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퉁 칠 생각(김*, @198***)
MB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저축은행 비리사건과 관련해 내일 검찰에 소환된다는데, 면죄부를 주려는 요식행위가 아닌지 하는 의구심부터 드는 건 내곡동 사저, 불법사찰 사건 등에서 면죄부를 남발하며 국민불신을 쌓은 검찰의 업보(송요*, ‏@sy**)
한편, 박영준 전 기획재정부 차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 이어 '상왕' 이 전 의원까지 MB 최측근들이 모두 실형을 받는 것을 두고 현정권 핵심인사가 얼마나 부정부패했는지를 지적하기도 했다.
'방통대군' 최시중·'왕차관' 박영준·'6인회' 박희태에 이어 '영포대군' 이상득까지. 학연·친인척 부정부패 비리로 전부 범죄자로 전락하여 심판을 받고 있다. 아직 또 남은 범죄자는 누구일까?(성웅충**, ‏@koh**)
앞서 이 전 의원은 정·관계부터 금융계 등 여러 분야에서 저축은행 로비·인사청탁·불법정치 자금 등 수많은 비리 의혹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같은 행위를 이 전 의원의 보좌관 박모씨가 모두 뒤집어쓰고 구속돼 수많은 여론에 "대통령 '친형'이 방패", "만사형(兄)통", "상왕" 등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5월 27일 일요일

파국 치닫는 MB씨의 비리 드라마


이글은 한겨레21 2012.05.07 제909호 기사 '파국 치닫는 MB씨의 비리 드라마'를 퍼왔습니다.
[이슈] 방통대군·왕차관 등 대통령의 남자들, 파이시티 연루 사태에다나카 전 일본 총리 몰락 드라마 겹쳐…‘산 권력’ 기소한 일본 검찰 역할 빼면, 2012년 이명박에게 1974년 다나카가 보인다

»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사진공동취재단
4년 전 그에게서 일본 언론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떠올렸다. “일본 언론들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다나카 가쿠에이(1918~93) 전 일본 총리가 서로 닮은꼴이라고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과 은 21일 1면 하단의 칼럼난을 통해 두 사람의 애칭이 같다는 점을 지적했다. 은 ‘한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결정된 이명박씨는 ‘컴퓨터가 달린 불도저(컴도저)’라는 애칭이 있다고 한다. 일본인이라면 그 이름에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라고 썼다. (마이니치신문)도 ‘(이명박 당선자의) 별명인 컴퓨터 달린 불도저는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와 똑같다’고 언급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건설업에서 돈을 벌어 정계로 진출한 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출세 과정이 서로 흡사하다고 두 신문은 분석했다. 특히 (아사히신문)은 ‘(이 당선자가) 돈에 얽힌 의혹이 따라다니는 것도 가쿠에이와 통한다’며 ‘(BBK 문제에 얽힌) 의혹으로 이씨에 대한 재조사가 실시된다고 하는데 결말까지 가쿠에이와 비슷하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보도했다.”((한겨레) 2007년 12월22일 5면 참조)
토건족 주연 드라마, 각론에 숨은 악마

 »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시종 이명박 정권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류우종 <한겨레>기자
결국 일본 언론의 예언이 일부 들어맞았다. 언론이 ‘방통대군’과 ‘왕차관’으로 불러왔던 이명박 정권의 실세들이 검찰의 작두 앞에 섰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대규모 복합유통센터(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비리를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 검사장)는 4월26일 파이시티 ㅇ 대표에게서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로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르면 5월1일 파이시티 ㅇ 대표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앞서 4월25일 박 전 차관 집을 압수수색했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정치드라마.” 한 신문이 최근 수사를 두고 한 표현이다. 적어도 이번 수사에서 이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스토리, 주연, 조연이 모두 존재한다. 이 드라마는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일본 총리가 만든 드라마와 절반은 같고, 절반은 다르다.
일단, 정권 실세가 부동산 개발에 연루돼 토건족한테서 돈을 받았다는 것이 드라마의 큰 스토리다. 주연은 또다시 토건 마피아와 토건 관료다. 양재동 화물터미널은 1984년 지어졌다. 화물터미널이 화수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토건족이 있었다. 토건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5년 11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이상한 안건이 상정됐다. ‘대규모 점포 등 허용’ 자문 안건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이었고, 박영준 전 차관은 정무국장, 장석효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행정2부시장이었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당시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 회장이었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 그것이 공무원이 악을 행하는 방식이다. 난마처럼 얽힌 법의 그물을 뚫고,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 관련 공무원들은 토건족 특혜 방안을 개발해냈다. 법률적으로 화물터미널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점포를 지을 수 있게 도시계획을 변경한다는 것이 뼈대였다. 배보다 배꼽이 큰 터미널을 만들자는 취지다. 도시계획위원들은 “교통 문제가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토건 관료들은 멈추지 않았다. 터미널 부지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 비율)을 400%로 올린 안건을 며칠 뒤 또 상정해 통과시켰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을 50일 앞둔 2006년 5월 이 안건에 결재 사인을 했다. 서울시는 5월11일 도시계획 세부시설 변경 결정 고시를 했다. 오세훈 전 시장도 도움을 보탰다. 토건 관료들은 오피스텔도 터미널 부대시설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최종 파이시티 인허가 안건이 2008년 10월 통과됐고, 서초구청이 2009년 11월 건축허가를 내렸다. 총사업규모 2조4천억원으로 추정되는 파이시티 사업은 이렇게 태어났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파이시티 ㅇ 대표에게서 2005년 12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ㅇ 대표에게서 돈 받은 시점도 인허가 과정인 2008년쯤으로 추정한다.

»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시종 이명박 정권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류우종 <한겨레>기자
여야가 실체 규명에 심드렁한 이유
토건족에게 이 방식이 낯설지 않다. 경기도 광주시 공용터미널 사업(873호 이슈추적 ‘이토록 비밀스럽고 기습적인 공격’ 참조)의 경우가 파이시티와 똑같다. 경기도 광주시는 2007년 9월 일부 도시계획위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공용터미널 건축허가를 냈다. 파이시티처럼, 배보다 배꼽이 큰 터미널이다. 지금 터미널에는 7645㎡의 이마트 점포와 약 2천㎡의 이용객이 거의 없는 텅 빈 여객청사가 들어서 있다.
경기도 광주시와 다른 건 파이시티 로비가 실패했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를 보면, ㅇ 대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보고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기법)으로 수년간 1조5천억원을 빌렸다. 프로젝트 심사 과정은 부실했다. 이후 건축 과정은 지지부진했다. 빌린 돈에 대한 이자 부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채권단은 2010년 파이시티에 대해 파산 신청을 냈다. 포스코건설이 시공사로 재지정됐다. ㅇ 대표는 “최 전 위원장에게 상납하던 돈이 끊기고 파이시티 사업 지분을 넘기라는 협박에 시달렸다”고 주장한다. ㅇ 대표는 이 중 61억원을 브로커에게 건넸고, 브로커가 최 전 위원장에게 돈을 건넸다. 최 전 위원장이 정확히 언제, 얼마큼의 돈을, 어떤 명목으로 받았는지가 추가로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실제 대선 자금으로 쓰였는지도 궁금한 점이다. 박 전 차관은 아예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정치권이 요동치는 것도 다나카 가쿠에이 드라마와 닮았다. 최 전 위원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말을 계속 바꿨다. “돈을 주고받는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4월22일 (한겨레)에 해명)고 했다가 “(브로커) ㅇ씨가 여유가 있어 지원을 해줬다. MB(이명박 대통령)와 직접 협조는 아니라도, 내가 독자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폭탄선언이다. 자신이 받은 돈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이었다는 취지다. 청와대는 해명을 거부했으나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권한 대행은 트위터에 “나 혼자 죽을 수 없어! 이런 걸까요?”라는 글을 올렸다. 최 전 위원장은 이후 “개인 용도로 썼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여야 모두 겉으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4월25일 충북도당에서 최 전 위원장 사건에 대해 “놀랍고 우려스러운 일이다. 검찰에서 이 문제는 철저하게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별말이 없다. 이들은 ‘MB’ 비리가 박 비대위원장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박 위원장이 오래전부터 이명박 정권과 선긋기를 해왔다는 것이 판단 근거다.
야당은 목청은 높이지만 속은 심드렁하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최 전 위원장 사건은) 당연히 정국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라면서도 “박 비대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선긋기를 해왔다는 이미지가 있지 않느냐. 그것 때문에 이 사건이 박 위원장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우리의 딜레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가지 않는 선에서 검찰이 적당히 선긋기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마, 검찰이 마지막 반전 만들까?
한국과 일본 두 드라마의 결정적 차이가 또 있다. 조연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1976년 미국 록히드사로부터 5억엔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산 권력’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구속 기소했다. 일본 최고재판소(우리나라의 대법원)는 1995년 유죄를 확정했다. 대검 중수부 수사팀은 정권 봐주기 수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은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당시 BBK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다. 검찰은 2007년 12월5일 증거가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며칠 뒤 BBK 동영상이 공개됐지만 검찰은 결과를 바꾸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최재경 특수1부장 등 3명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최재경 검사장 등 수사팀 검사들은 ‘수사팀이 김경준씨를 회유한 의혹이 있다’는 보도에 대해 에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가 패소당하기도 했다. 권재진 법무장관은 아예 사건 연루자다.
한국 신문의 법조 기사는 냉정한 3인칭 시점의 문장으로 작성된다. 그 문장에서 검찰은 객관적 정보 제공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관련된 사건에서 한국 검찰은, 객관적 조사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자라는 불신이 여전하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5월1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선다. 4년 전 일본 언론의 기사가 얼마나 현실과 일치하는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2012년 5월 20일 일요일

밀어주고 끌어주고…화려한 독식 끝에 하나둘 감옥행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19일자 기사 '밀어주고 끌어주고…화려한 독식 끝에 하나둘 감옥행'을 퍼왔습니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영포라인 흥망사 

▶ 이명박 대통령의 옛 고향마을인 포항 덕실마을 어귀에는 한복 입은 이 대통령 부부를 조각한 대형 부조가 서 있다. 이 대통령과 인척관계인 한 기업인이 지난해 11월 기증한 작품이다. 조각의 주인공에 대한 고향사람들의 애정은 여전히 두터웠다. 이영두(75) 할머니는 “농사철이라 관광차가 마이(많이) 줄었다”며 “저쪽 당들이 대통령을 고마(그만) 헐뜯고 파뒤비면(파 뒤집었으면) 좋겠구먼”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따뜻한 환대를 뒤로하고 나선 귀경길 내내 저들의 소박한 자부심을 갉아먹는 영포라인의 번지르르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영포라인의 몰락사가 후대에 교훈은 될까.

방통대군 최시중·왕차관 박영준
이상득 소개로 MB와 인연
방송·실권 움겨쥐고 탄탄대로

“VIP께 일심으로 충성”
“뭔가 많이 잘못됐다
”정권말 비리 발목잡혀 감옥행
이상득은 수사 선상 올라

이명박 정권은 2008년 출범 초 ‘강부자’(서울 강남지역의 부자) 또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정권으로 불렸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적확하지 않은 별명이었다. 처음부터 인구 53만명의 중소도시인 포항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된 ‘영포정권’이었다. ‘영포’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영일·포항에서 따온 말이다. 지금의 포항시는 원래 영일군이었다. 1949년 영일군의 읍에서 시로 승격한 포항시는 1973년 포항제철이 들어선 뒤 급격히 성장해, 1995년 모체인 영일군을 흡수·합병했다. 영일이 포항이자 포항이 영일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연말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영포회’ 송년회는 영포정권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90명에 이르는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의 선창으로 “이대로!” “나가자!”를 외쳤다. “이대로”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의 줄임말로,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캠프의 구호였다. 포항 출신 5급 이상 공직자인 이들은 스스로 ‘호시절’임을 실토했다. “물 좋은 때 고향 발전을 못 시키면 죄인이 된다.”(박승호 포항시장) “속된 말로 동해안에 노났다. 우리 지역구에도 콩고물이 떨어지고 있다.”(강석호 국회의원/영양·영덕·봉화·울진군)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최영만 포항시의회 의장)
영포라인의 정점에는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전 국회부의장)과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있다. 이상득 의원은 별도의 직책을 맡지는 않았지만, ‘영일대군’ ‘상왕’ ‘만사형통’으로 불릴 정도로 국정 운영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초기 내각과 청와대, 정보기관 등에는 ‘이상득 사람’이 즐비하게 포진했다. 초대 총리 한승수,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 등은 13대 국회 때부터 이상득과 아주 가깝게 지낸 인물들이다. 초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박영준과 정무1비서관 장다사로는 각각 이상득 의원 보좌관과 부의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코오롱그룹 출신인 국정원 기조실장 김주성도 이상득 인맥이다.
대선 때 엠비 캠프 ‘6인회의’의 핵심 멤버였던 최시중은 지난 4년 동안 방송통신 쪽에서 전권을 휘둘러 ‘방통대군’으로 불렸다. 정권 초반 한국방송과 문화방송(MBC), 와이티엔(YTN), 연합뉴스 사장 등 공영(성) 언론의 사장을 엠비맨으로 강제 교체했다. 또 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와 , , 에 종편채널을 무더기로 허용하고, 이들에게 각종 특혜를 줬다.
이상득 최시중이 영포라인의 ‘쌍끌이’ 기관차였다면, 박영준의 역할은 총간사였다. 박영준은 경북 칠곡 출신이지만, 1995년 국회 비서관으로 이상득과 인연을 맺은 뒤 2005년 서울시 정무국장으로 옮기면서 이명박의 신임을 받았다. 두 형제와의 10여년에 걸친 긴밀한 관계로 그는 범 영포라인으로 분류된다. 그는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시절에는 내각과 공기업 기관장 및 감사 인사 등을 총괄해 ‘왕비서관’으로 불렸다. 2009년 1월 국무차장이 된 이후에는 ‘왕차관’으로 국정의 모든 부분에 개입했다. 이영호(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이인규(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등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했던 핵심 실무자들도 박영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형제의 고향 포항에선 “분위기가 뒤숭숭”

지난 8일 찾은 포항에서 영포회원들이 왜 “이대로! 나가자!”를 희망했는지를 일부 엿볼 수 있었다. 올해 1월에 개통한 38km의 국도대체우회도로(남구 동해면~북구 흥해읍 영일만항)에는 시원스레 차들이 달렸으며, 울산~포항 고속도로(2014년 완공 예정)와 포항~영덕 고속도로(2015년 완공 예정)의 공사도 곳곳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들은 ‘형님 예산’으로 비판받긴 했지만, 철강 등 산업물동량을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 지역에서 오랫동안 요구했던 숙원사업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다지 통행량이 많지도 않은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의 4차선 도로 신설 등은 순전히 영포정권의 힘인 듯했다. 건설공사가 한창인 포항~삼척 사이의 동해중부선 철도도 경제성보다는 영포라인의 고향발전 의지가 더 많이 실린 것으로 보였다.
겉으로의 화려함과 달리 포항의 민심은 좋지 않았다. 죽도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한결같이 “장사가 너무 안된다”고 말했다. 구룡포 한 낚시집에서 만난 김아무개(45)씨는 “먹고 살기 바쁜데 이상득이든 최시중이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포항와이엠시에이(YMCA) 사무총장 서병철(47)은 “이익이 대폭 줄어든 포스코가 최근 돈줄을 졸라매는 바람에 시내 경기가 안 좋은데다가 영포라인을 둘러싼 비리 의혹에 김형태 국회의원 당선자의 성추문까지 겹쳐 시민들이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포라인의 힘은 대통령 이명박과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형님 이상득은 어릴 때부터 이명박 집안의 희망이자 기둥이었다. 이상득은 일본 오사카에서 1935년 이홍우(1981년 작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일본에서 자랐다. 해방 직후인 1945년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가 살던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덕실마을·당시는 영일군)에 첫발을 디뎠다. 그때 이명박은 4살이었다.
이상득은 공부를 매우 잘했다. 포항중학교 시절에 줄곧 선두를 다퉜으며, 동지상고(현 동지고) 졸업 때는 수석을 차지했다. 가난했던 이홍우 부부는 7명의 자녀 중 이상득 뒷바라지에 매달렸다. 부부는 이를 위해 셋째 아들인 이명박의 고교 진학을 말렸으며, 이상득이 1957년 서울대(경제학과)에 입학할 즈음에는 이명박을 포항에 남겨놓고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이명박은 동지상고 야간을 겨우 마친 뒤 부모가 있는 서울로 와서도 이태원시장에서 청소 리어카를 끄는 등 궂은일을 해야 했다.
이상득이 이명박을 본격적으로 챙긴 것은 1961년 한국 나이론(코오롱)에 입사해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부터로 보인다. 이상득은 1964년 이명박이 고대총학생회장 권한대행 시절 6·3 시위 주도로 경찰의 수배를 받을 때 동생에게 도피처와 자수를 주선하는 등 보호자 노릇을 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형 때문에 어릴 때 피해를 봤다는 생각도 있지만, 코오롱에 취직한 형 덕분에 대학 시절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이 대통령은 형을 상당히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대선 직전 여러 사람이 전략가인 윤여준을 데려오자고 이명박에게 건의하자, 이명박이 “형님한테 먼저 물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고 당시 캠프 관계자는 전했다. 이상득이 윤여준을 싫어하니 미리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영포라인의 또다른 한 축인 최시중은 1937년 구룡포에서 태어났다. 구룡포는 일제시대에는 동해안 최대의 어업전진기지로 일본인 집단거류지가 크게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다. 최시중의 옛집은 일본인 집단거류지 근처에 있었다. 포항시는 일본식 가옥 80여채가 남아 있는 이 동네를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지정했다. 기자가 지난주 현지에 갔을 때 골목길 포장 등 정비작업이 한창이었다.
최시중도 어린 시절 여섯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 가장이 돼 매일매일 생존 전쟁을 벌였다. 최시중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최민석(1980년 작고)이 쌍끌이배 망루에서 고기떼를 찾다가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어머니를 도와 죽도시장에서 엿 장사, 뻥튀기 장사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시중은 구룡포 선창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호박떡을 구워 팔았다.

MB와 최시중, 불우한 어린 시절이 통했다

최시중과 이명박의 멘토-멘티 관계는 이상득을 통해 맺어졌다. 서점 점원과 입주 가정교사 등으로 힘겹게 고교(대구 대륜고)를 마치고 1957년 서울대(정치학과)에 들어간 최시중은 같은 영일 출신인 이상득을 만나 친구가 됐다. 둘은 사회에 나와서도 사무실이 광화문 근처에 있어 자주 만났다.
1970년대 중반쯤 기자이던 최시중은 유명세를 타고 있던 이상득의 동생을 만났다.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명박은 29살 나이에 이사가 되는 등 초고속 승진을 하고 있었다. 최시중은 2008년 1월 인터뷰에서 “1970년대 중반 이 부의장에게 잘나가는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번 보자고 해서 알게 됐다”며 “이 당선자 형제와는 포항이라는 지역에서 서로 최하층 바닥인생에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별로 설명이 필요 없는 사이다. 감각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득-최시중-이명박 3인의 ‘감각적 공유 관계’는 1980년대 말 이후가 되면서 ‘정치적 동지 관계’로 변한다. 이상득은 1988년 코오롱상사의 대표이사를 그만두고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다. 이를 계기로 정치부장과 정치담당 논설위원으로 있던 최시중이 정치적 조언과 자문을 하게 된다. 이런 그의 역할은 1994년 한국갤럽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계속된다. 이들과 사이가 안 좋은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조차 최시중에 대해 “오랫동안 훈련된 정치적 감각이 있어 전략적 판단이 비교적 정확했고, 흐름을 잘 짚었다”고 말했다.
최시중은 처음에는 친구 이상득을 자문했지만, 1992년께부터는 ‘이명박 키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해 대선 때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결별, 1995년 민자당 서울시장 경선 도전 등 이명박의 주요 정치적 갈림길마다 최시중이 곁에 있었다. 이명박은 15대 총선 때의 선거비용 7억여원을 누락한 사실을 폭로한 비서 김유찬을 국외로 도피시킨 것과 관련해 범인 은닉죄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1999년)한다. 이 일로 미국에 떠돌다 귀국한 이명박이 정계에 복귀할 때 서울시장 출마(2002년) 쪽으로 유도한 것도 최시중이었다. 정치공백을 단번에 만회해서 2007년 대선으로 곧바로 가자는 전략이었다. 최시중은 2006년 6월 초 갤럽 회장 신분인 상태에서 이명박 대선준비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이명박을 택한 이유에 대해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정치를 안 한 한풀이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민간인 불법사찰이 처음 불거졌던 2010년 7월 검찰 관계자들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빠져나오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사찰 지휘체계 관련 문서(맨 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이명박의 정계진출 이후에는 이상득도 동생 밀어주기에 나섰다. 박영준은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일하던 박영준은 1995년 이상득 비서관으로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다. 신한국당 정책조정위원장이 된 이상득은 김우중 대우그룹회장한테 “실물경제를 알고 일을 잘하는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해서 박영준을 소개받았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영준이 일을 빨리 익혀 이상득 의원으로부터 곧 신임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2년 이명박의 서울시장 선거를 도운 박영준은 서울시에서 일하고 싶어 했으나, 이상득이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박영준은 이명박 주변 사람들에게 “평생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이 시장한테 나를 데려다 쓰게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의 증언이다. 신분 상승을 향한 박영준의 이러한 욕망은 2005년 서울시 정무국장이 됨으로써 마침내 실현됐다. 대선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이명박도 고려대 후배이자 형님 사람인 박영준을 믿을 만했을 것이다. 당시 서울시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정무적인 결정이나 논의는 이 시장이 정무국장이던 박영준과 주로 하는 등 실무적으로 신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다른 한 인사는 “박영준이 아랫사람과 티격태격 다투기만 했지 서울시에 있을 때는 별 볼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야인’ 박영준 방 앞엔 사람들의 행렬

박영준이 이명박의 눈에 찼다는 신호가 나타난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였다. 박영준은 이명박 경선캠프였던 안국포럼 때 처음에는 내근을 하다가 중간부터 외근 쪽으로 돌았다. 동서대 교수인 김대식 등과 함께 지방을 다니면서 외곽조직을 만드는 일을 했다.
내부 사정을 아는 한 인사는 “당시 박영준이 비서실장 비슷하게 설치다가 선배급 인사들한테 혼이 난 뒤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깥으로 나돌았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때 만든 조직은 본선 때 선진국민연대로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지방 강연 등을 다니면서 박영준 조직원들의 환대를 경험했던 이명박은 2007년 8월20일 경선에서 박근혜를 이긴 날 용산빌딩에서 해단식을 하면서 딱 두 사람의 이름을 들었다. 이명박은 “얼굴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고생했다”며 박영준과 김대식을 칭찬했다.
이후 박영준의 행로는 탄탄대로였다. 17대 대선 다음날인 2007년 12월20일 아침 이명박은 가회동 자택으로 박영준을 불러 인수위 비서실을 총괄하라고 지시했다. ‘실무적 총괄’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었지만, 박영준에게 본격적인 힘이 실리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인수위 초반 실세는 이명박의 오른팔이었던 정두언이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정두언은 인수위 인선을 도맡아 했다. 박영준을 비서실 총괄팀장에 넣어준 것도 정두언이었다. 대선 다음날 박영준이 정두언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선진국민연대 사람들을 많이 챙겨달라”고 부탁하자, 정두언이 “그럼 당신이 들어와서 직접 하라”며 총괄팀장 자리를 맡겼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포라인이 권력을 독점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재오·정두언 등 수도권 라인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위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두언이 몰락하기 시작한다. 당선자와 같은 층에 있던 정두언의 사무실이 다른 층으로 옮겨갔다. “호남 사람이다, 아내가 그림 장사로 떼돈을 벌고 있다는 등의 각종 음해가 영포라인으로부터 쏟아졌고, 이에 대해 당선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스스로 뒤로 빠졌다”고 정두언은 말했다. 하지만 정두언이 이명박 형제의 눈 밖에 난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즈음 그는 이명박한테 불려가 1시간 동안이나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 당시 국세청장이던 한상률한테 이전 정권 때 국세청에서 만든 ‘이명박 형제 파일’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해 “왜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는 질책을 받은 것이다. 자신들의 약점이 정두언의 손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했을 것이라는 게 인수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정두언이 떠난 대신 박영준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자리매김됐다. 박영준은 정두언 사람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기 사람을 심고는 조각 작업을 홀로 진행했다.
박영준은 ‘권력 사유화’의 주역이라는 정두언의 공격을 받고 2008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와대를 떠났지만, 영포라인이 떠받치는 그의 힘은 약해지지 않았다. 공기업 간부를 했던 한 인사는 “당시 용돈에 보태 쓰라고 100만원이 든 봉투를 들고 박영준을 위로하러 간 적이 있다”며 “그가 당시 거주하다시피 한 강북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위층의 일식당으로 오라는 연락이 와서 갔더니 여러 사람이 대기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영준은 야인 시절인 이때 포스코 회장 후보들인 정준양, 윤석만을 만나 사실상의 ‘면접’을 하는가 하면, 포스코의 배후 실력자인 박태준 부부와도 만나 포스코 회장 선임을 자신의 뜻대로 주도한다. 이명박 형제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이상득 의원은 포항이 지역구임에도 과거 정권 때 포스코로부터 냉대를 많이 받아 한이 많았다. 따라서 포스코는 이 의원의 관할구역이라고 봐야 한다”며 “박영준은 에스디(SD·이상득 약칭)의 뜻을 수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포라인 비리 수사는 이제부터 시작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영포라인의 국정 농단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이 기구는 형식적으로는 총리실 산하에 있었지만, 기획총괄과장 진경락이 작성한 문건에 있듯이 “브이아이피(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비선을 통해 총괄 지휘”가 이뤄졌다. 충성하는 비선은 곧 영포라인이었다. 청와대에는 고용노사비서관이었던 이영호와 그의 아래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던 최종석은 포항 출신이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었던 이강덕도 포항이 고향이다. 청와대 하명을 받아 민간인 불법사찰에 직접적으로 연루됐던 공직윤리지원관 이인규를 비롯해 김충곤(점검1팀장), 김화기(점검1팀 조사관) 등 윤리지원관실의 핵심인물들도 모두 영포라인이다. 진경락도 포항 문화권인 경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이영호 및 이인규와 각각 청와대와 노동부에서 같이 일해 손발을 맞춘 준영포라인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운영의 몸통이라고 자처한 이영호는 애초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이명박, 박영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시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융노련 조직본부장 등을 지낸 이영호는 서울시의 노정협의 과정에서 이명박과 처음으로 만났다. 구룡포 출신의 그는 업무 과정에서 정무국장이던 박영준과도 영포를 고리로 쉽게 가까워졌다. 특히 그는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의 정책협의를 성사시키면서 이명박의 눈에 들었다. 2009년 9월 청와대에서 다른 비서관실 행정관에게 욕설을 퍼붓고, 이를 말리던 정책실장 윤진식 등에게도 큰소리를 칠 정도로 행패를 부릴 수 있었던 배경이 이때 형성됐다. 노동부 감사관을 지낸 이인규는 최시중의 줄을 잡았다. 구룡포 출신의 한 인사는 “이인규가 대선 승리 이후에 최시중을 찾아가서 청와대 근무 등 인사 청탁을 했다”며 “그 결과 총리실로 갔는데 그 줄이 동아줄은커녕 썩은 줄이었다”고 말했다.
영포라인의 독식과 전횡은 과거 어느 정권의 실세그룹보다 화려했지만 몰락도 처참하다. “물이 넘치면 제방이 되고, 바람이 불면 병풍이 되겠다”며 이명박 지킴이를 자처하던 최시중은 지난달 “뭔가 많이 잘못됐다”는 말을 남기고 감옥에 갔다. 국회의원 보좌관에서 이명박 정권 최고 실세로 화려하게 변신했던 박영준도 지난 8일 구속됐다. 그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언론 인터뷰에서 “감방 갈 일 안 했다”고 큰소리쳤으나, 결국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최시중과 박영준은 각각 국외 도피중인 ‘폭탄’도 여전히 안고 있다. 최시중의 양아들로 돈심부름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정용욱(방송통신위원회 정책보좌역)과 박영준의 돈 관리인이라는 의혹을 사는 이동조(제이엔테크 회장)가 들어올 경우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아무도 모른다. 영포라인의 실무자들인 이영호, 최종석, 김충곤 등도 모두 쇠고랑을 찼다. 또 ‘영일대군’ 이상득도 비서 계좌에서 나온 7억원 괴자금과 저축은행 의혹 건 등으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본인들만 몰랐을 뿐 몰락의 씨앗은 이미 영포라인이 형성될 때부터 내부에서 싹트고 있었다. 최시중에게 파이시티의 돈을 전달했던 브로커 이동률씨는 구룡포 및 고교 후배로 최시중의 오랜 측근이었다. 이동률은 박영준도 서울시 시절부터 소개받아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한 청탁을 수시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동조도 이상득 보좌관 시절부터 박영준을 포항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준은 이동조를 포스코 회장 면접 때 데리고 감으로써 포스코 쪽에 알아서 하라는 ‘신호’를 줬다. 영포라인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비밀 거래가 오래된 셈이다.
영포라인의 부패를 설명해줄 수 있는 다른 단초는 청계천 공사 초기의 일화다. 어느 휴일 이명박은 서울시 고위관계자들을 청계천이 보이는 한 빌딩 사무실에 불러 회의를 주재했다. 중간 휴식 시간에 이명박은 밖을 내다보면서 “지금은 긴가민가하지만 고가가 철거되고 청계천이 복원되면 이 주변 땅값은 확 뛸 것이다. 돈을 빌려서라도 땅이나 빌딩에 투자하라”고 말했다. 당시 한 참석자의 증언이다. 불법이나 편법을 권한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의 낮은 공적 마인드를 잘 보여주는 예다. 그런 보스를 향해 ‘일심으로 충성’했던 영포라인의 비리 노출은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포항/김종철 선임기자

2012년 5월 11일 금요일

푸하하! 조국 교수도 웃게 만든 ‘방통대군 최시중 영웅전’


이글은 미디어스 2012-05-11일자 기사 '푸하하! 조국 교수도 웃게 만든 ‘방통대군 최시중 영웅전’'을 퍼왔습니다.
부산일보 패러디 ‘시사티저’ 동영상 관심 이어져

최근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어록을 모아 무협영화로 재구성한 부산일보 (시사티저) ‘방통대군 최시중 영웅전’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유투브에 올라온 부산일보 '시사티저' 16편 '방통대군 최시중 영웅전' 패터리 영상 캡처

동영상을 본 조국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patriamea)에 “푸하하! ㅌㅋ!”라는 반응과 함께 RT했다. 현재, 해당 영상은 유투브를 통해 약 1200여명의 네티즌들이 본 것으로 집계되는 등 관심 받고 있다. 부산일보 (시사티저) 16편 ‘방통대군 최시중 영웅전’은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서 정권초기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구속되기까지 약 4년간 짧았지만 화려했던 권력자 최시중의 일대기(?)를 그렸다. 영상은 최시중 전 위원장의 △낙하산 인사 임명을 통한 방송사 장악, △“책임지겠다”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무죄판결에도 모르쇠로 일관한 태도, △양아들 정용욱 전 방통위 전 보좌역의 비리에 대한 비호, △파이시티 인허가시 금품수수 논란 등을 영화 (삼국지: 명장관우)를 삽입해 패러디했다.
“최시중은 방통대군이 되어 MB의 적들을 친히 쳐내고 방송사 당주들은 하나 둘 무림을 떠난다. MB언론부대가 양성되니 최시중에겐 장군의 기개가 엿보인다” (시사티저 ‘방통대군 최시중 영웅전’)
(시사티저)는 최시중의 양아들로 불리던 정용욱에 대해 “최시중의 후광을 업고 방통위 고위직에 올라 억대 뇌물 수수혐의를 받았다”며 “하지만 유유히 무림을 떠나 동남아로 숨는 축지법을 선보여 아비의 이름을 만방에 알렸다”고 꼬집었다. 정연주 전 사장 무죄판결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 뒤 책임을 묻는 말에 축하로 응대한다”며 “말 바꾸기 능력과 넓은 아량에서 호걸의 풍모가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독재정권에 항거해 고문 투옥되기도 했다”는 최시중 전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거짓이었다. 개인 비리투옥을 민주화로 둔갑시키는 자기포장 기술”이라고 지적했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지난 1월 “방송의 발전을 위해 정성을 다했던 열정적인 선배로 기억해주길 바란다”며 방통위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시사티저)는 이와 관련해 “최시중은 무림을 떠나나 곧 파이시티로 돌아와 철창신세”라고 꼬집었다. 이어 “처음부터 끝까지 꼼수의 일관성을 보여준 최시중”이라며 “그대 같은 무림의 영웅이 또 있으랴, 부디 없기를 바라오”라며 끝맺었다.
(시사티저) ‘방통대군 최시중 영웅전’은 유투브(▷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권순택 기자  |  nanan@mediaus.co.kr

2012년 5월 6일 일요일

파국 치닫는 MB씨의 비리 드라마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05일자 기사 '파국 치닫는 MB씨의 비리 드라마'를 퍼왔습니다.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사진공동취재단

[이슈] 방통대군·왕차관 등 대통령의 남자들, 파이시티 연루 사태에
다나카 전 일본 총리 몰락 드라마 겹쳐…
‘산 권력’ 기소한 일본 검찰 역할 빼면2012년 이명박에게 1974년 다나카가 보인다
 
4년 전 그에게서 일본 언론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떠올렸다. “일본 언론들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다나카 가쿠에이(1918~93) 전 일본 총리가 서로 닮은꼴이라고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은 21일 1면 하단의 칼럼난을 통해 두 사람의 애칭이 같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한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결정된 이명박씨는 ‘컴퓨터가 달린 불도저(컴도저)’라는 애칭이 있다고 한다. 일본인이라면 그 이름에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라고 썼다. (마이니치신문)도 ‘(이명박 당선자의) 별명인 컴퓨터 달린 불도저는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와 똑같다’고 언급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건설업에서 돈을 벌어 정계로 진출한 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출세 과정이 서로 흡사하다고 두 신문은 분석했다. 특히 (아사히신문)은 ‘(이 당선자가) 돈에 얽힌 의혹이 따라다니는 것도 가쿠에이와 통한다’며 ‘(BBK 문제에 얽힌) 의혹으로 이씨에 대한 재조사가 실시된다고 하는데 결말까지 가쿠에이와 비슷하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보도했다.”((한겨레) 2007년 12월22일 5면 참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시종 이명박 정권과의 관계를 부인했다. 류우종 <한겨레>기자

토건족 주연 드라마, 각론에 숨은 악마
결국 일본 언론의 예언이 일부 들어맞았다. 언론이 ‘방통대군’과 ‘왕차관’으로 불러왔던 이명박 정권의 실세들이 검찰의 작두 앞에 섰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대규모 복합유통센터(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비리를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 검사장)는 4월26일 파이시티 ㅇ 대표에게서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로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르면 5월1일 파이시티 ㅇ 대표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도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앞서 4월25일 박 전 차관 집을 압수수색했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정치드라마.” 한 신문이 최근 수사를 두고 한 표현이다. 적어도 이번 수사에서 이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스토리, 주연, 조연이 모두 존재한다. 이 드라마는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일본 총리가 만든 드라마와 절반은 같고, 절반은 다르다.
일단, 정권 실세가 부동산 개발에 연루돼 토건족한테서 돈을 받았다는 것이 드라마의 큰 스토리다. 주연은 또다시 토건 마피아와 토건 관료다. 양재동 화물터미널은 1984년 지어졌다. 화물터미널이 화수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토건족이 있었다. 토건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5년 11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이상한 안건이 상정됐다. ‘대규모 점포 등 허용’ 자문 안건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이었고, 박영준 전 차관은 정무국장, 장석효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행정2부시장이었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당시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 회장이었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 그것이 공무원이 악을 행하는 방식이다. 난마처럼 얽힌 법의 그물을 뚫고,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 관련 공무원들은 토건족 특혜 방안을 개발해냈다. 법률적으로 화물터미널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점포를 지을 수 있게 도시계획을 변경한다는 것이 뼈대였다. 배보다 배꼽이 큰 터미널을 만들자는 취지다. 도시계획위원들은 “교통 문제가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토건 관료들은 멈추지 않았다. 터미널 부지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 비율)을 400%로 올린 안건을 며칠 뒤 또 상정해 통과시켰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을 50일 앞둔 2006년 5월 이 안건에 결재 사인을 했다. 서울시는 5월11일 도시계획 세부시설 변경 결정 고시를 했다. 오세훈 전 시장도 도움을 보탰다. 토건 관료들은 오피스텔도 터미널 부대시설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최종 파이시티 인허가 안건이 2008년 10월 통과됐고, 서초구청이 2009년 11월 건축허가를 내렸다. 총사업규모 2조4천억원으로 추정되는 파이시티 사업은 이렇게 태어났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파이시티 ㅇ 대표에게서 2005년 12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인허가 청탁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ㅇ 대표에게서 돈 받은 시점도 인허가 과정인 2008년쯤으로 추정한다.


2008년 청와대에서 웃으며 보낸 그들의 좋았던 시절.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왼쪽)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연루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여야가 실체 규명에 심드렁한 이유

토건족에게 이 방식이 낯설지 않다. 경기도 광주시 공용터미널 사업(873호 이슈추적 ‘이토록 비밀스럽고 기습적인 공격’ 참조)의 경우가 파이시티와 똑같다. 경기도 광주시는 2007년 9월 일부 도시계획위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공용터미널 건축허가를 냈다. 파이시티처럼, 배보다 배꼽이 큰 터미널이다. 지금 터미널에는 7645㎡의 이마트 점포와 약 2천㎡의 이용객이 거의 없는 텅 빈 여객청사가 들어서 있다.
경기도 광주시와 다른 건 파이시티 로비가 실패했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를 보면, ㅇ 대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프로젝트의 수익성을 보고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기법)으로 수년간 1조5천억원을 빌렸다. 프로젝트 심사 과정은 부실했다. 이후 건축 과정은 지지부진했다. 빌린 돈에 대한 이자 부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채권단은 2010년 파이시티에 대해 파산 신청을 냈다. 포스코건설이 시공사로 재지정됐다. ㅇ 대표는 “최 전 위원장에게 상납하던 돈이 끊기고 파이시티 사업 지분을 넘기라는 협박에 시달렸다”고 주장한다. ㅇ 대표는 이 중 61억원을 브로커에게 건넸고, 브로커가 최 전 위원장에게 돈을 건넸다. 최 전 위원장이 정확히 언제, 얼마큼의 돈을, 어떤 명목으로 받았는지가 추가로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실제 대선 자금으로 쓰였는지도 궁금한 점이다. 박 전 차관은 아예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정치권이 요동치는 것도 다나카 가쿠에이 드라마와 닮았다. 최 전 위원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말을 계속 바꿨다. “돈을 주고받는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4월22일 (한겨레)에 해명)고 했다가 “(브로커) ㅇ씨가 여유가 있어 지원을 해줬다. MB(이명박 대통령)와 직접 협조는 아니라도, 내가 독자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고 말했다. 폭탄선언이다. 자신이 받은 돈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자금이었다는 취지다. 청와대는 해명을 거부했으나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권한 대행은 트위터에 “나 혼자 죽을 수 없어! 이런 걸까요?”라는 글을 올렸다. 최 전 위원장은 이후 “개인 용도로 썼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여야 모두 겉으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4월25일 충북도당에서 최 전 위원장 사건에 대해 “놀랍고 우려스러운 일이다. 검찰에서 이 문제는 철저하게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별말이 없다. 이들은 ‘MB’ 비리가 박 비대위원장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박 위원장이 오래전부터 이명박 정권과 선긋기를 해왔다는 것이 판단 근거다.
야당은 목청은 높이지만 속은 심드렁하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최 전 위원장 사건은) 당연히 정국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라면서도 “박 비대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선긋기를 해왔다는 이미지가 있지 않느냐. 그것 때문에 이 사건이 박 위원장에게 큰 타격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우리의 딜레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가지 않는 선에서 검찰이 적당히 선긋기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마, 검찰이 마지막 반전 만들까?

한국과 일본 두 드라마의 결정적 차이가 또 있다. 조연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1976년 미국 록히드사로부터 5억엔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산 권력’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구속 기소했다. 일본 최고재판소(우리나라의 대법원)는 1995년 유죄를 확정했다. 대검 중수부 수사팀은 정권 봐주기 수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은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당시 BBK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다. 검찰은 2007년 12월5일 증거가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며칠 뒤 BBK 동영상이 공개됐지만 검찰은 결과를 바꾸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최재경 특수1부장 등 3명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최재경 검사장 등 수사팀 검사들은 ‘수사팀이 김경준씨를 회유한 의혹이 있다’는 보도에 대해 (시사IN)에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가 패소당하기도 했다. 권재진 법무장관은 아예 사건 연루자다.
한국 신문의 법조 기사는 냉정한 3인칭 시점의 문장으로 작성된다. 그 문장에서 검찰은 객관적 정보 제공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과 관련된 사건에서 한국 검찰은, 객관적 조사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자라는 불신이 여전하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5월1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선다. 4년 전 일본 언론의 기사가 얼마나 현실과 일치하는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사설]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비굴하고 추한 몰골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25일자 사설 '[사설]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비굴하고 추한 몰골들'을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방통대군’ 등으로 불리며 현 정권의 실세로 군림해오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어제 검찰에 출석해 구속영장 청구를 앞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다른 실세로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역시 출국금지와 함께 가택 압수수색을 당했고 ‘영일대군’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도 조만간 검찰에 불려올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비리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아무리 처음부터 이해관계로 맺어진 정권이라 해도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는 것인지, 권력무상이란 말로도 이런 황당함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파이시티에서 받은 돈을 여론조사 등 대선자금으로 썼다던 최 전 위원장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돌연 “얼떨결에 한 말”이라며 “개인적인 활동에 썼다”고 말을 바꿨다. 청와대가 나를 보호해줘야 한다는 말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오락가락하는 진술에도 불구하고 형사처벌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특히 파이시티 대표 ㅇ씨한테서 서울시 등의 중요 심의를 전후해 수시로 현금뭉치를 받았고,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씨가 파이시티 투자자 모집에 관여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어 최 전 위원장이 이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뒤를 봐줬다는 의혹은 커지고 있다.
박 전 차관 역시 이번에는 검찰 수사망을 빠져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민간인 불법사찰과 씨앤케이 주가조작, 이국철 에스엘에스 회장 로비 사건 등 중요 비리 사건 때마다 거론됐으나 한 번도 처벌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번엔 그가 서울시 전 정무조정실장에게 전화해 “파이시티 사업이 어떻게 돼가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는 당사자의 증언이 나왔다. 어제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검찰 수사가 그를 조여가는 형국이다.
이상득 의원에 대해서도 검찰이 에스엘에스 사건에서 드러난 장롱 속 7억원과 저축은행 구명청탁 관련 4억원 수수 의혹 등에 대해 형사처벌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어제는 그가 박근혜 위원장과의 만찬 자리에서 대선 경쟁자인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경기지사를 험담하며 “대선 필승”을 위한 건배를 제의했다고 한다. 그의 처지가 처지인지라 그런 낯간지러운 발언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때나마 한 나라의 정권을 맡겠다고 나섰던 인사들의 행태치고는 참으로 추하고 비굴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비리를 철저하게 응징하지 않으면 권력부패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2012년 2월 1일 수요일

종편·SBS, ‘최시중 돈 봉투’ 왜 침묵하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201일자 기사 '종편·SBS, ‘최시중 돈 봉투’ 왜 침묵하나'를 퍼왔습니다.
종합편성채널 대다수와 SBS가 최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돈 봉투’ 의혹을 보도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언론사들은 다른 ‘돈 봉투’ 의혹에 대해서는 보도하면서도 최시중 전 위원장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중 잣대’를 보이고 있어, 보도 누락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최시중 전 위원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한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종편 4곳과 지상파 3사 저녁 메인뉴스를 분석한 결과, 중앙 종편 JTBC, 동아 종편 채널A, 매일경제 종편 MBN은 ‘최 전 위원장이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을 통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쪽에 5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전달한 의혹’, ‘최 전 위원장이 직접 친이계 한나라당 의원들 3명에게 3500만 원을 전달한 의혹’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들 종편사들은 최 전 위원장의 사퇴 배경을 정용욱씨의 비리 의혹과 연관지어 해석하면서도 ‘돈 봉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 보도를 했다. 사퇴 배경에 대해 채널A는 27일 (뉴스A) 첫 리포트(최시중 방통위원장 사퇴, 측근 비리 의혹에 부담 느낀 듯)에서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의 수뢰 혐의로 마음의 부담을 느낀데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고, MBN은 같은 날 (뉴스10) 첫 리포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사퇴)에서 “예기치 않은 측근 비리 의혹”이라고 보도해 ‘정용욱’을 언급하지 않았다.
JTBC는 31일자(NEWS 10) 11번째 리포트 (‘돈 봉투’ 당당히 걷겠다? ‘돈 정치’ 역행하는 정치권)에서 ‘돈 봉투’ 의혹 관련자로 안병용 은평갑 당협위원장,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 이봉건 국회의장 정무수석 비서관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지만 최시중 전 위원장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JTBC의 모회사인 중앙일보도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의 비리 의혹이 연일 쏟아졌던 지난달 3일부터 일주일 간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중에서 유독 ‘최시중’이라는 실명을 표기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 지난달 27일 사퇴 기자회견을 한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태희 대변인은 "최 위원장은 현재 건강 체크를 위해 연가를 내신 상태이고 행정적으로 사퇴 처리가 진행 중"이라며 "홍성규 부위원장이 직무 대행을 맡고 1일 전체회의는 홍 부위원장이 주재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종편에서는 TV조선 9시뉴스 ‘날’이 31일자 7번째 리포트(‘최시중 돈봉투’ 의혹, 그때 무슨 일이)에서 “전당대회 돈봉투에 의원관리용 돈봉투까지, 봉투파문에서 한나라당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친이계쪽 돈 봉투를 “의원관리용”이라고 표현해 보도했다. 그러나 TV조선도 문방위 ‘돈 봉투’ 의혹은 해당 기간 중에 보도하지 않았다.
지상파 3사 중에서는 SBS는 30일 2번째 리포트 (“책상 위에 돈봉투”…정무수석 조사 불가피할듯)에서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연루된 ‘돈 봉투’ 의혹은 보도하면서도 최시중 전 위원장 관련 ‘돈 봉투’ 의혹에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KBS는 27일 메인뉴스 1면 기사(최시중 방통위원장 전격 사퇴…비리 의혹 부인)에서 문방위 ‘돈 봉투’ 의혹은 보도했지만 현재까지 친이계 ‘돈 봉투’ 의혹은 보도하지 않고 있다. KBS는 민주당 ‘돈 봉투’ 의혹은 보도해 오고 있다. MBC는 31일 두 번째 리포트 (최시중 전 위원장, 친이계 의원에 돈봉투 제공 의혹)에서 최 전 위원장 관련 ‘돈 봉투’ 의혹 두 사례를 모두 지적했다.
이들 언론사들이 최시중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해봐야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들 언론사와 최 전 위원장이나 현 정권과의 관계를 보면 언론사 간의 이해 관계가 눈길을 끈다.


지상파 방송 3사 중에서 SBS는 최시중 전 위원장과 정용욱 전 보좌역에 대한 비리 의혹에 대해 가장 적게 보도했다. ©뉴스타파

동아일보 출신인 최 전 위원장은 재임 기간 동안 지상파 등 다른 언론들의 반발에도 이른바 ‘조중동 방송’인 종편에 ‘특혜’를 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최 전 위원장이 종편을 갓난아기에 빗대며 “걸음마 단계까지는 돌봐줘야 한다”며 이들 매체의 육성을 강조한 상황에서, 이들 종편들이 태생적으로 최 전 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조선일보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 TV조선이 동아 출신인 최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는 최근 동아와 중앙이 지난달 30일자 1면 지면에서 조선 출신인 김효재 청와대 수석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비교돼 눈길을 끈다.
지상파 중에서 SBS가 유독 최 전 위원장에 대해 비판의 ‘날’이 무딘 것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동안 지상파 3사 중에서 최 전 위원장과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의 비리 의혹에 대해 가장 소극적인 보도를 한 곳은 SBS였다. 27일 (뉴스타파)보도에 따르면, 1월5일부터 25일까지 메인뉴스를 조사한 결과, 최시중 전 위원장의 ‘양아들’로 알려진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에 대해 KBS는 5일, 8일 이틀간, MBC는 5일, 7일, 9일 3일간 보도했지만. SBS는 10일 하루만 보도해 가장 소극적인 보도를 했다. 또 같은 기간 SBS만 ‘정용욱’ 실명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주목되는 점은 최근 들어 정부·여당쪽에 SBS 출신들이 대거 포함된 점이다. 하금열 대통령실장, 최금락 홍보수석비서관,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 등이 청와대에 재직 중인 SBS 출신 인사들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허원제 의원을 비롯해 전 간사인 한선교 의원도 SBS 출신이다. 최근 차기 방통위원장으로 거론되는 후보군 중에서 송도균 전 방통위 부위원장도 SBS 출신이다. 그동안 문방위에서 처리된 미디어렙 법안은 종편과 SBS를 위한 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 정권 말기 언론 분야에서 SBS쪽에 유독 유리한 정책이 적지 않다.
이들 언론사들이 향후 얼마나 ‘방통대군’이라 불린 최시중 전 위원장에 대한 검증 작업에 나설지는 미지수이지만, 언론계에서는 최 전 위원장 임기 당시 이뤄진 ‘권언 유착’의 실태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겨레는 1일 사설(최시중씨의 비리·부정 단죄, 이제 시작)이라며 “최 전 위원장 돈봉투 의혹 사건에서 밝혀내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은 돈의 출처”라고 논평했다. 이어 한겨레는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최 전 위원장의 비리와 부정을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은 1일 사설(‘돈 냄새 진동’ 한나라, 언제까지 오불관언할 텐가)에서 “최 전 위원장이 측근 비리 및 자신의 연루 의혹으로 물러났지만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당연히 내놓을 법한 진상규명 촉구 논평도 없었다”며 “한나라당이 진정 국민 앞에서 뼈를 깎고 거듭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면 지금 눈앞에서 드러나고 있는 권력형 비리에 대해 백배 사죄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1월 28일 토요일

'방통대군' 최시중, 그는 갔으나 '정글'이 된 언론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27일자 기사 ''방통대군' 최시중, 그는 갔으나 '정글'이 된 언론은…'를 퍼왔습니다.
'MB 언론장악' 임무 완수, 후안무치의 족적

27일 사퇴 의사를 밝힌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그 자체로 이명박 정부의 언론 정책을 시행하는 핵심,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의 별명은 '방통대군'. 이명박 정부 4년간 한국의 언론 환경이 '강자들의 정글'로 바뀐 데에는 최 위원장의 기여가 적지 않다.

최 위원장은 현 정권의 개국공신인 '6인회' 멤버로,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이자 '정치적 후견인'으로 불려왔다. 이러한 '특수관계'로 인해 2008년 3월 내정됐을 때부터 언론계에서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방송-통신 정책 수행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이후 최 위원장이 재선임까지 거친 4년 가까운 임기 동안 이러한 우려는 그대로 현실화됐다.

최시중 위원장의 방송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조·중·동·매 등 거대 신문에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면서 이른바 '종편 채널'을 탄생시킨 것이고, 또 하나는 MBC, KBS 등 기존 지상파 방송의 공영방송 성격을 크게 약화시킨 것이다.

최시중 위원장의 '유일한 성과' 종편…그러나 성적은

조·중·동·매 종편채널과 연합뉴스 보도전문채널 탄생은 최시중 위원장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정책이다. 최 위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미디어도 산업으로 봐야한다", "우리도 미디어 글로벌 그룹을 육성해야 한다"며 '신문-방송 겸영'을 지상 과제로 강조했다.

2009년엔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발로 미디어법 처리가 늦어지자 "연내 도입"을 공언하며 국회에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가 하면,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 이후에는 헌법재판소에 미디어법 무효 확인 청구가 걸려 있는 와중에도 종편 사업자 선정 절차를 진행하는 등 서둘렀다.

그러나 '종편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최 위원장의 발목을 잡은 것은 정작 정권과 최 위원장 자신의 '거대 신문 눈치보기'였다. 최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종편 선정에 따른 압박감'을 자주 토로했고, 실제로 종편 선정은 공정성 논란 등을 거치며 계속 늦어져 2011년 12월에야 이뤄졌다.



▲ 27일 사퇴 의사를 밝힌 최시중 방통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그나마도 종편 채널들마저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됐다. 전문가들은 "현재 광고 시장 상황을 볼 때 가능한 종편 개수는 하나, 많아야 두 개"라고 분석했으나 최 위원장은 종편에 신청한 신문사들 4개에 고루 채널을 나눠줬다. 그러자 종편을 가진 신문사들은 방통위에 '황금채널 배정' 등 특혜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또 최근 종편채널에서 방송사고가 줄 잇는 것 역시 각 신문사들의 방송 역량과 준비 상황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방통위에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 위원장은 종편의 '먹거리' 확보를 위해서도 고군분투했다. 종편 논의 당시 광고 시장 창출을 위해 '수신료 6500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케이블사업자들의 권한인 채널 배정 문제를 두고 종편에 이른바 '황금채널'을 부여할 것을 압박하기도 했다. 1000원으로 축소된 수신료 인상은 KBS의 민주당 대표실 도청 사건을 거치며 유야무야됐지만, 종편은 '황금채널' 자리만은 꿰찼다.

그럼에도 시청률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또 최시중 위원장과 여권에서 내놓은 '일자리2만 여개 창출' 등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낮아보이는 현실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내놓은 '종편이 2만 6000명의 고용을 창출한다' 분석은 '조작'과 '오류' 논란에 시달렸다. 이후 최 위원장은 연임 인사청문회에서 '2만 여개 일자리'에서 직접 생기는 일자리 2000개, 연관 효과 6000개로 4분의 1로 낮춰 예상했다. 이 역시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KBS, MBC 장악 '차례로 성공'…정연주 무죄 판결엔 "미안하다"?

종편과 함께 임기 초반에 최시중 위원장이 밀었던 것은 지상파 방송의 민영화 문제였다. 최 위원장은 MBC와 KBS2TV 등 지상파방송의 민영화를 주장하면서 직접 " MBC는 정명(正名)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MBC 3단계 민영화론'을 제기한 김우룡 한국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를 MBC의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원(방문진) 이사장으로 앉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민영화' 주장은 각 방송사에 '인적 지배'가 가능해지면서 어느새 흐지부지됐다. 최 위원장의 무리한 '낙하산' 투하 과정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의 사례다.

정연주 전 사장은 지난 2005년 당시 KBS가 국세청을 상대로 벌여온 법인세 부과 취소소송을 본인의 연임을 목적으로 중도에 취하해 KBS에 1892억 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2008년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 12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것.

지난 2008년 정 전 사장의 해임 당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KBS 이사회를 통해 해임 과정에 깊게 관여했다. 그해 5월 김금수 당시 KBS 이사장이 갑작스럽게 사퇴하고, 6월엔 신태섭 이사가 재직 중이던 동의대로부터 갑작스럽게 해임되면서 역시 해임됐다. 당시 최시중 위원장이 직접 김 전 이사장을 만나 정연주 전 사장의 조기 사퇴 문제를 거론한 사실이 알려졌으며, 신태섭 교수는 2009년 해임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정 전 사장의 해임을 결정하던 날, 반발하는 KBS 구성원들에 맞서 KBS 본관에 경찰병력이 난입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최 위원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그는 2009년 11월 정연주 전 사장이 1심 무죄 판결을 받자 "대법원 확정판결이 났을 때 책임져야 하면 책임지겠다"고 발언했고,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이 발언에 대한 추궁을 받자 "미안하게 생각하고, 축하를 보낸다"면서도 "내 진퇴까지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꼬리를 잘랐다.

현재 파업 사태를 겪고 있는 MBC의 경우도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의 여야 비율을 6:3으로 조정하고 이들이 (PD수첩)과 (100분 토론) 등 비판적 성격의 프로그램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방문진은 '프로그램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을 이유로 엄 사장에게 자진 사퇴를 압박했고, 뒤이어 김재철 사장이 취임한 이후 MBC 시사프로그램은 제작진 교체 등을 겪으며 대폭 약화됐다.

그러나 이 모든 인사 과정에도 잡음이 적지 않았다.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은 유명한 '큰집 조인트'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사퇴했으며, 뒤이어 이사장이 된 김재우 이사는 임명 전 최 위원장을 사전에 접촉한 것을 시인하기도 했다.

한편 최 위원장은 여성 비하 발언으로 설화에 휘말리기도 했다. 최 위원장은 2010년 9월 '여기자 포럼'에 참석해 "나는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기 보다는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 "충실한 어머니와 선량한 부인만 되어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꼭 결혼해서 최소한 애 둘은 낳아주십시오"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이후 최 위원장의 딸이 서울시의원 공천을 신청하면서 다시 한번 파문을 빚었다.



/채은하 기자

[사설]최시중씨는 법적·정책적 책임 모두 져야 한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1-27일자 사설 '[사설]최시중씨는 법적·정책적 책임 모두 져야 한다'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이자 ‘방통대군’으로 불려온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어제 사퇴했다. 측근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의 칼날이 조여오자 백기를 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연초부터 제 부하 직원이 금품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면서 “(의혹이 제기되는) 이 과정에서 방통위 조직 전체가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사퇴 배경을 밝혔다.

최 위원장의 사퇴는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그의 ‘양아들’로 통하는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은 김학인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에게서 EBS 이사 선임 청탁과 함께 2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검찰 수사를 피해 말레이시아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정씨가 2009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종합편성채널 출범 여부를 가르는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여서 ‘답례’로 돈을 건넨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씨의 혐의와 별개로 최 위원장은 ‘BBK 가짜편지 조작’ 사건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2008년 방송통신위원장에 취임한 최 위원장은 지난 4년간 한국의 언론시장을 황폐화시킨 장본인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일경제 등 친여 보수신문에 종편을 안겨주었고, KBS·MBC·YTN 등에서 양심적 언론인들을 몰아내고 ‘낙하산 인사’를 자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배임 혐의로 기소됐던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무죄가 확정된 것은 정권의 언론장악 공작이 얼마나 가혹하고 무법적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입증한다.

최 위원장은 물러나면서도 “말이란 참 무섭다. 소문을 진실보다 더 그럴듯하게 착각하게 만든다”며 자신과 측근을 둘러싼 비리 의혹을 부인했다. “방통위원장으로서 취했던 저의 선택과 결단에 대한 궁극적인 평가는 국민들과 역사에 맡기겠다”고도 했다. 여론의 표적이 된 상태에서 사퇴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퇴는 진실을 밝히는 첫걸음일 뿐이다. 검찰은 최 위원장이 현직에서 물러난 만큼 운신의 폭이 커졌다. 최 위원장과 측근 정씨를 둘러싼 의혹을 조속한 시일 내에 샅샅이 파헤쳐야 한다.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서도 미디어법 처리 당시 문방위 소속이던 한나라당 의원 전원을 조사한다는 자세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 한나라당마저 “검찰은 불거진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된 부하 직원은 조속히 귀국해 수사에 응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국회도 최 위원장이 자행해온 언론장악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최씨는 지난 4년간의 행태에 대해 법적·정책적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 권력은 누린 만큼 책임이 따른다.

2012년 1월 5일 목요일

[사설] 최시중 위원장, 사퇴하고 검찰 수사 받아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1-04일 사설 '[사설] 최시중 위원장, 사퇴하고 검찰 수사 받아야'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실세 중의 실세’가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사형통’ ‘방통대군’이라는 별명이 이들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막강한 위세를 부려온 게 두 사람이다.
이들을 둘러싸고는 그동안 좋지 않은 소문과 의혹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의원의 보좌관인 박배수씨가 이국철 에스엘에스(SLS)그룹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최 위원장 역시 측근 비리 의혹이 튀어나왔다. 그의 정책보좌관이던 정용욱씨가 (EBS) 이사 선임 로비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최 위원장은 이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한다. 실제 검찰 수사는 갓 걸음마를 뗀 단계여서 최 위원장은 고사하고 정씨의 혐의에 대해서도 아직은 밝혀낸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정씨는 사실상 해외도피중이어서 수사 결과가 이른 시일 안에 나올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의혹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과연 뇌물 제공자는 정씨 한 사람을 쳐다보고 그런 거액을 건넨 것일까. 정씨는 검은돈의 최종 종착지일까, 아니면 창구일까.
관심의 초점은 검찰이 이 사건을 어디까지 파헤칠 것인지에 모아진다. 검찰은 아직까지 권력의 심장부를 제대로 겨눈 수사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몸통을 밝혀내지 못한 채 꼬리 자르기나 깃털 뽑기 정도에 그친다면 국민적 분노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최 위원장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 자신의 ‘양아들’이라는 말까지 들어온 최측근이 엄청난 비리 혐의에 연루됐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게다가 정씨가 비리를 저지르게 된 근본 원인은 바로 최 위원장 자신에게 있다. 최고 권력실세로서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며 각종 밀실인사에다 업무 전횡을 일삼으니 측근한테 파리떼가 꼬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최 위원장은 “검찰 수사에서 시비가 가려질 것”이라는 따위의 주장을 하기에 앞서 당장 사임해 검찰 수사에 충실히 협조하는 것이 마땅하다. ‘만사형통’은 그나마 총선 불출마 선언이라도 했는데 ‘방통대군’은 계속 자리에 남아 있겠다고 하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가.

2012년 1월 4일 수요일

'방통대군'님, '만사형통'의 길을 따르시지요


이글은 미디어스 2012-01-03일자 기사 '[기자수첩] 그들은 왜 '싱가포르'를 가나?'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그들은 왜 '싱가포르'를 가나?


▲ 최시중 방통위원장ⓒ연합뉴스
‘방통대군’과 ‘만사형통’이라고 했다.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말이다. ‘대통령의 멘토’라는 고상한 표현도 있지만, 약하디 약하다. 이 정권에서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위원장의 위세를 설명하는데 ‘멘토’란 단어는 격이 맞지 않는다.
차라리 ‘상왕’과 ‘전천후 요격기’라면 모르겠다. 이상득 의원의 위상은 문자 그대로 왕 위의 왕이었다. 오죽하면 이명박 정권을 영일만 정권이라고 하겠는가. 최시중 위원장은 스스로의 역할을 “대통령이 어려울 때 전천후 요격기처럼 긴급 투입되는 것”(2008.02.01 조선일보 인터뷰中) 이라고 규정한바 있다. 실제, 그렇게 했다.     
‘상왕’은 이미 용퇴를 당했다. 주목할 점은 능동적 선택이 아니라 상황에 떠밀려 피동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단 점이다. 의원실의 보좌진 7명 가운데 5명이 이국철 SLS 회장 등으로부터 받은 거액의 돈을 세탁하는데 가담했단 사실이 밝혀져 어쩔 수 없었다. ‘상왕’은 불출마 형식의 용퇴를 선언하며, 더 이상의 책임은 묻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 그렇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검찰은 이상득 의원의 메시지를 충실히 받잡을지 모른다. 하지만 행여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온다면,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라도 된다면 이상득 의원은 반드시 청문회에 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이상득 의원실을 ‘도둑놈 소굴’이라고 부른다. 굳이, 야권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이상득 의원실의 수상한 점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상득 의원은 아직까지는 한 마디로 버티고 있다. 자신은 몰랐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비리란 얘기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이상득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결혼식 축의금은 혼주의 것이 아니라 접수받은 사람의 것이냐고 맞서고 있다. 이상득 의원이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돈을 받은 보좌관은 이상득 의원이 코오롱에 있던 시절부터 알고 모신 보좌관이다. 계좌의 돈을 관리한 여직원 역시 코오롱 출신으로 21년째 이상득 의원의 비서를 지내고 있다. 사회에선 일반적으로 이런 관계를 ‘자식 같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비리 혐의가 폭로됐다. 아직은 ‘설’, 구체적 사실보다 정황에 가깝다. 한국일보가 단독 보도한 의혹의 개요는 그러나 간단하고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한국방송예술진흥원(이하 한예진) 김학인 이사장이 EBS 이사가 되기 위해 최시중 위원장 측에 억대 금품을 건넸다는 것이다. 최시중 위원장 측으로 표현되고 있는 인사는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을 말한다.
정 전 정책보좌역은 기묘한 인물이다. 방통위 직원들은 그를 ‘최시중 위원장의 양아들’이라고 부른다. 별다른 정치 경력이 없이 한섬기획이라는 정치 컨설팅 회사를 하던 그는 여론조사 전문가라는 칭호를 달고 이명박 캠프의 ‘언론특보’를 지내며 이 정권과 관계를 시작했다. 한국갤럽 사장을 지낸 최시중 위원장의 천거였다고 알려지는데, 얼마나 사이가 각별했는지 지난 2008년 최 위원장이 방통위원장에 취임할 때 보직에 없던 자리를 신설해 데려왔을 정도다. 이후 ‘최 위원장의 복심’이라고 불리며 방통위의 최고 실세이자 막후 조정자로 활동했다. 그런 그가 지난 해 10월 갑작스레 사표를 제출하고 현재는 싱가포르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 보도에 대해 최시중 위원장은 사실무근이란 입장이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김학인 씨를 EBS이사에 선임했을 뿐, 금품 수수는 전혀 없었단 얘기다. 그러나 금품 수수는 전혀 없다는 방통위는 “정 모 정책보좌역의 금품수수 여부에 대해서는 검찰의 수사에서 시비가 가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닮아 있다. 선긋기, 꼬리 자르기, 발 빼기다. ‘상왕’ 이상득 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설령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들 자신은 몰랐고 상관없단 얘기다. 하지만 김학인 씨는 EBS이사가 됐고, 만약 이 과정에서 돈이 건네졌다면 이게 누굴 향했던 것인지 자명한 일이다. 공식적으론 4급 연구 인력에 해당하는 직위를 가진 정 전 보좌관이 EBS 이사 선임을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지는 상식적 판단에 맡긴다.
돈을 건넸다고 하는 사람의 혐의가 명백하다고 해도 검찰이 정용욱 씨를 부를지는 미지수다. 이번 정권에서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이상득 의원과 마찬가지로 최시중 위원장 역시 다음 국회에서 청문회를 피해가긴 어려울 것이다. 최시중 체제의 방통위는 각종 특혜와 꼼수 그리고 반칙이 난무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당장에 최시중 위원장의 거취 문제는 남는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 ‘상왕’은 용퇴를 당했는데, ‘전천후 요격기’는 격침을 당하지 않는다면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명박 정부 이후 완벽하게 닮은 길을 걸고 있는 그들이라면,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그리고 또 한가지 닮은 점이 있다. 이상득 의원의 아들 이지형씨가 얼마 전 싱가포르로 이민을 갔다. 공교롭게도 최시중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며 방통위를 주물렀던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도 싱가포르에 있다고 한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조세회피지역’으로 국세청과 검찰청의 압수수색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역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이 시형씨가 다니고 있고, MB 실소유주 논란이 여전한 ‘다스’ 역시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한단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냥 다 우연일까? 그렇다면 우연에 우연이 겹쳐지고 있다. 그것도 임기 말 매우 공교로운 시기에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