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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9일 화요일

"MB 낙하산인사는 8종세트, 대형게이트는 11개"


이글은 "MB 낙하산인사는 8종세트, 대형게이트는 11개"'를 퍼왔습니다.
민주당 "재벌은 핏줄이, 권력은 측근이 웬수"

민주통합당이 18대 국회 마지막날인 29일 이명박 정권의 8종세트 낙하산 인사와 11개 대형게이트를 질타하면서 19대 국회 개원시 대대적 청문회 공세를 예고했다. 

박기춘 민주당 수석부대표은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낙하산 인사가 8종 세트로 나와 있다. 또 대형게이트가 11개"라며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임기 내에 깨끗하게 털고 가야 된다. 2년 전 운영위원회에서 청와대 국정감사 때 박지원 대표는 물론 저도 아직도 임기가 살아있을 때 털고 가라고 얘기했는데 마이동풍 안하무인격"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낙하산 인사 8종 세트는 고려대, 소망교회, 영포라인, 서울시 출신, 대선캠프, TK, 새누리당, 현대라인 낙하산에서 비롯된 비리와 부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11개 대형게이트는 이상득 영일대군, 최시중 방통대군, 박영준 왕차관, 민간인 불법사찰, 내곡동 사저, 자원외교, 저축은행, SLS이국철, 영부인 관련, 파이시티, BBK등에 대해 시종일관 임기 내에 털고 가라는 촉구를 해 왔다"고 열거했다.

그는 "재벌은 핏줄이 웬수고 권력은 측근이 웬수라는 말이 있다"며 "불행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상황이 있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대통령 역사는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불행한 권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11개 게이트 문제를 말끔히 해소해 성공한 대통령 되기를 민주통합당 모두는 바라고 있다. 또다시 퇴임 이후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슬픈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지 말라"고 강력 경고했다.

최병성 기자

2012년 5월 27일 일요일

“VIP께 一心으로 충성”


이글은 한겨레21 2012.05.28 제912호 기사 '“VIP께 一心으로 충성” '을 퍼왔습니다.
[초점] MB에게 불법사찰 내용 보고했다는 정황 담긴 문건들… 지원관실 간판 걸고 은밀하게 ‘VIP 보위기구’로서 ‘충성’한 영포라인

»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 문건’ 내용은 적나라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언젠가는 드러난다.
“VIP께 一心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총괄 지휘” “특명 사항은 VIP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 지휘”.
일심, 특명, 절대 충성, 친위조직, 비선. 정상적인 민주주의국가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단어들이다. 봉건적이거나 독재의 냄새가 물씬 난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가까이는 현재의 북한에서, 조금 멀리는 유신 시절의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나 들어볼 수 있었다. 그러나 VIP에 대한 조폭 같은 한마음 충성을 맹세하는 ‘충성 문건’이 작성된 것은 2008년 8월28일, 문건을 작성한 이는 나랏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었다. VIP는 이명박 대통령을 칭한다.
불법사찰, 지원관실 부활의 주목적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이 이 대통령에게 ‘비선’으로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했다는 정황이 담긴 문건이 검찰 재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최소한 불법사찰이 이뤄지던 시점의 청와대 대통령실장들은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구속 기소)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A4용지 4쪽짜리 문건(‘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에는, 지원관실이 ‘공직기강 확립’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내걸고 은밀하게 ‘대통령 보위기구’로서 ‘충성’을 다해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문건은 ‘BH(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지원관실을 지휘할 경우 “야당의 정치 공세에 전면 노출, VIP 국정 수행에 부담 가중, 표적사정·정치사찰 논란”이 있다며 지원관실을 한발 떨어진 국무총리실 아래에 두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운영의 묘를 살려, 통상적인 공직기강 업무는 국무총리가 지휘하되, 특명 사항은 VIP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인 비선에서 총괄 지휘”할 것을 상신한다. VIP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BH 비선→VIP(또는 대통령실장)’로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하명·특명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보안을 생각한 조처로 보인다. 이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칠 ‘비선’은 청와대부터 지원관실 말단 현장요원에 이르기까지 이 대통령 고향인 경북 포항과 영일 지역 출신 인사들을 일컫는 영포라인으로 채워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조직과 기능이 폐지됐던 지원관실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있은 뒤 갑자기 부활했다. “저 많은 촛불을 누구 돈으로 샀느냐”는 대통령의 ‘의심’이 계기가 됐단다. 해당 문건이 작성된 시기는 지원관실이 다시 만들어진 직후였다. 이 문건은 민간인·정치인 등에 대한 불법사찰이 일개 공무원의 우발적 행위가 아니라 지원관실 부활의 주목적이었음을 시사한다. 진경락 전 과장이 여동생 집에 숨겨두었다가 최근 압수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는 이 대통령을 비판한 여야 의원들의 동향 등을 파악한 사찰보고서 수백 건이 추가로 발견됐다. 정부 산하기관장·고위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옷 벗겨야” “따라붙어서 잘라라” “확실히 정리” “날릴 수 있도록” 등의 표현을 써가며 표적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의 ‘박정희 코스프레’
청와대는 해당 문건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 그런 ‘구상’은 했을지 몰라도 실제 시행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실이 드러난 지 2년이 됐지만 청와대가 이와 관련한 내용을 인정한 예는 거의 없다.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의 죄가 아닌 경우에는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
충성 문건이 언론에 보도된 날은 마침 5월16일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박정희 코스프레’가 들통나기에 적절한 날이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일심 충성 불법 사조직…조폭 정권의 비극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4일자 기사 '일심 충성 불법 사조직…조폭 정권의 비극'을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문건 나온지 열흘, MB는 입을 열라

조폭은 일반적으로 불량배나 폭력배나 깡패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배타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강제력을 불법적으로 행사하는 측면에서는 일견 비슷한 점이 있으나, 그 대목에서도 조폭은 훨씬 치밀하고 무자비한 속성을 지닌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선 조폭은 옳지 않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인집합체라는 점에서 다르다. 조직이 있고 두목이 있다. 또 그 조직과 두목에 대한 더 할 수 없는, 일심(一心)의 충성이 필수적이다.

'나와바리(영역)' 사수(死守) 개념도 철저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놓고 정당성을 따지지 않는다. 예컨대 OB파, 서방파, 양은이파, 삼합회, 이런게 조폭에 해당한다. 불량배와 깡패의 '배(輩)'와 '패(牌)'에도 '무리'라는 뜻이 있지만, 그것은 '부류'를 뜻하는 것일 뿐, 조폭의 '조직'이나 '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조폭은 폭력배나 깡패보다 여러 등급 위의 범접할 수 없는 곳에 자리 해 있다.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기획 총괄과장이 2008년 8월에 작성했다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 추진 지휘 체계'라는 문건은, 바로 그런 조폭행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MB정권의 '숨겨져 있던 면모'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DJ정권 때 해체된 '사직동 팀'이나 노무현 정권 때의 '조사 심의관 실'과는 설립 목적부터 성격이 판이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통상적 공직 기강 업무는 국무총리의 지휘를 받았으나, 대통령과 관계되거나 특명사항은 청와대의 민정비서실도 모르게 이른바 VIP쪽과 극비 직거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얼굴의 조직이었다. 비정상적인 불법사찰은 기본적인 업무 영역이었고, 정권과 출신지역이 다르거나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사정없이 '목 자르고' '날리기도'했다.

기업인은 회사 망하게 했고, 국회의원도 수틀리면 꼬투리를 잡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심지어 '형님' 이상득 의원에게 싫은 소리 했다 하여, 여당 중진의원의 뒤를 캐고 다니기도 했다. 대통령과 최시중 씨가 그러했듯이, 그들은 앞을 보면서는 지극히 온화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었지만, 뒤돌아서서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잔인하게 비수를 꽂아대는 양면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처음 출범하면서부터 영포라인 중심으로 판을 짰다. 영일과 포항 출신을 고르느라고퇴직 경찰까지 특채를 했다. 대통령에게 '일심으로 충성하는 비선 조직'이었다. 정리하자면, 불법적인 목표달성을 위한 집합체로 시작했다. 조직과 두목과 조건 없는 충성이 있었다. 당초부터 목적 수행 과정에 정당성은 필요 없었다. 조폭으로서 갖출 것은 거의 다 갖춘 셈이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것만 달랐다.


▲ 왼쪽부터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과 이상득 의원. ⓒ뉴시스

형님과 최시중 씨와 박영준 씨 등이 병풍 노릇을 해 주었다. 그들도 사실상 일원이었다. 사업 수행과정에 '능률'이 나도록 수족처럼 움직여주는 협조 조직까지 있었다. 국회에서 170여명의 의원들이 입법과 예산 쪽 심부름을 맡아주었다. 여론의 흐름을 관리해 주는 언론이 있었다. 조중동이 몸을 던져 도왔다. 조직이 필요로 하는 사설정치를 위해 검찰이 일사불란하게 길을 내며 칼을 휘둘러 주었다. 그러다가 전임 대통령을 죽게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시스템 상의 분야와, 숨겨져 있는 조폭쪽 영역을 넘나들면서 그들은 못해내는 일이 없었다. 동지상고 출신 건설업자들이 4대강 사업을 독점하듯이 특혜경제가 온통 나라를 오염 시켰고, 재앙으로 가는 그곳 4대강에 퍼붓느라고 돈이 모자라 쩔쩔매면서도, 형님이 포항에 '필요한' 수천억 원씩의 예산은 의원들이 꼬박 꼬박 챙겨주었다. 방학 때 점심을 굶는 25만 명 어린것들의 급식비용을 예산심의 때 모지락스럽게 쳐내면서도 그랬다.

형님의 농장과 MB사돈댁 골프장이 있다는 이유로, 교통량도 별로 없는 남이천에는 IC가 건설되고 있다. 그쪽에 돈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조폭들이 칼부림을 하면서까지 유흥업소의 이권을 다투듯이, 이쪽 조폭들도 돈이 되는 사업에는 청탁을 가리지 않고 맹렬히 혀를 들이밀었다. 굵직한 인사에는 으레 형님의추천이나 동의가 필요했고, 그 심부름은 박영준 씨가 맡았다. 그렇게 임명된 사람은 형님의 '투자 권유'나 '인허가 청탁'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포철 회장이 그렇게 임명됐고, 그 뒤 포철 쪽에서는 형님의 뜻에 따라 부산 저축은행에 500억 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손실처리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뇌물을 받고 산업단지 승인이 나도록 압력을 행사했으며, 복합물류단지 개발 허가에 관여한 뒤 대형 파이프라인을 깔아놓고, 마음껏 돈을 빨아들이기도 했다. 복합물류단지 파이(π) 시티는 조폭들이 멋대로 뜯어먹는 파이(pie)였다. 그래서였는지 처음부터 조폭들이 들끓었다. 법정관리인이 출근길에 괴한의 습격을 받아 흉기로 7군데나 찔리기도했다. 그쪽 조폭 못지않게 이쪽 조폭도 설쳐댔다.

당초 허가단계에서부터 실무자들은 반대 했으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기업이 돈을 벌면 배가 아프냐"며 인허가를 독촉했다고 했다. 복합물류단지를 건설 할 수 있도록 하는 세부시설 변경 결정이 이명박 당시 시장의 퇴임을 17일 앞두고 이뤄졌다. '수상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검찰은 관련 뇌물 사건을 최시중 씨와 박영준 씨만의 '개인비리'로 결론짓고 수사를 마무리해버렸다.

뭉치 돈을 수사하면서 형님을 서면으로 조사하더니, 내곡동 땅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MB의 아들에 대해서도 서면조사를 강행했다. 2009년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을 10일 동안 6번이나 대면조사 했었다. 그러나 이쪽은 MB의 아들이 부담했어야 할 거액의 땅 값을 대통령 실에서 대신 내준 혐의가 있었는데도 단 한 번의 서면조사가 전부였다.

언론 자유가 보장 돼서는 안 되는 조폭들의 '나와바리'에서는 기자들이 공정보도를 외쳐서는 안 된다. MBC의 노조원들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판사는 업무방해라는 '나무'대신 언론자유라는 '숲'을 보고 영장을 기각했을 것이다. 다행스런 일이다.

공정언론을 틀어막는 그 MBC의 사장이 이번에는 그간 특별히 '아끼던' 한 무용수와 함께 아파트를 사들였다는 '별난' 이야기까지 들린다. 다 까닭이 있을 것이다. 사회의 공기라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언론과, 그걸 결사저지하려는 조폭정권과의 대판 전쟁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언론파업 대란의 본질이라고들 말한다.

문제의 문건을 작성한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 총괄 과장은 작년3월 "MB도 불살라버리겠다"고 폭탄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럴만한 이유가 없을리 없다. 여당의 국회의원이었던 사람들은 "모른다" "나는 아니다"고 조폭 정권의 '협조자'였음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한나라당 아닌 새누리당 소속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조폭정권의 백성으로 살아온 지난 몇 년에 대한 억울함이 없을 수 없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으나 그동안 벌어졌던 여러사건들이 '거짓 아님'을 웅변해주고 있다.

MB는 지난 3월14일 경기도 용인 경찰대학에서 열린 졸업 및 경위 임용식에서 매우 인상적인 축사를 한다. "우리 사회 일부에는 아직 개인이나 집단 이익을 위해 법을 무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했다. "법을 어기면 반드시 처벌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고 했다.

조폭정권이었음을 부인 못할 문건이 나온지 열흘이 되어간다.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인가. MB는 입을 열어야 한다. 말을 하라.

 /오홍근 칼럼니스트

2012년 5월 23일 수요일

'대포폰' KT서유열 · BH'영포라인', KT 민주노총 탈퇴 기획 공모 '의혹'


이글은 미디어스 2012-05-22일자 기사 ''대포폰' KT서유열 · BH'영포라인', KT 민주노총 탈퇴 기획 공모 '의혹''을 퍼왔습니다.
KT "서유열-이영호, 2009년 노사업무로 알게된 사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일명 '대포폰'을 건넨 서유열 KT사장이 2009년 과거 노무관리 임원을 하면서 업무상 이영호 전 비서관을 알게됐다고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당시 서유열 사장이 이영호 비서관과, KT출신으로 임태희 노동부 장관 보좌관인 이동걸씨와 함께 KT노동조합이 민주노총을 탈퇴하는 데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노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 사장이 이 비서관을 업무상 알게됐다고 주장한 2009년 당시, 노동계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KT의 민주노총탈퇴 사건이었다.  이번 서유열사장의 대포폰 제공 사실의 폭로로 인해,  민간인 사찰에 관여한 청와대-노동부-KT사측  '영포라인'의 삼각관계가  'KT노조 민주노총 탈퇴 기획 공모의혹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KT 홍보실측은 서유열 사장의 대포폰 제공 사실이 드러나자, 이영호 전 청와대비서관과의 관계에 대해, "영포(영덕·포항)회 라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서유열 사장이 노사업무를 하던 GSS부문장이었던 시기에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을 알게됐다"고 해명했다. KT의 또 다른 관계자도  "당시, 서 사장이 GSS부문장 시절로 민주노총 탈퇴 건도 있었고, 그래서 업무상 이영호 청와대비서관을 만나 알게 된 사이"라고 밝혔다. 

▲ KT 노무관계 라인과 청와대 영포라인과의 관계 ⓒ 미디어스

서유열 사장이 부문장으로 있었던 'GSS(Group Shared Service)'부문은 그룹경영을 지원하는 부서로 KT 노무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당시 KT노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가 사측과 함께 KT노조 민주노총 탈퇴를 기획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면서 "임태희 노동부 장관 때 이동걸 보좌관이 이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당시 노조의 간부나 위원장 측근들도 발표 전날까지 민주노총 탈퇴를 알지 못했다"면서 "노조 내부적인 논의없이 당시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깜짝 발표해, 노조 집행부의 총의가 모여진 결정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KT노조가 소속된 민주노총 IT연맹에서  활동하던 한 관계자 역시 "청와대가 뉴라이트 계열 국민노총을 기획하고 있었던 때"라면서 "당시 서울 매트로(지하철)노조와 KT 노조를 핵심으로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동걸 노동부 장관 정책비서관이 KT노조 출신으로 KT 노무관리부서를 이 비서관이 드나들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목격이 됐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민주노총 탈퇴 전 소문이 돌아, 민주노총에서 KT노조에 확인전화를 했지만 당시 노조관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부정했다"면서 "KT 노조의 자체적인 판단과 활동 차원에서 민주노총 탈퇴를 강행한 것이 아니라 당시 청와대-노동부-사측이 KT노조의 지도부를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KT노조 간부를 역임한 한 KT 직원은 "민주노총 탈퇴 당시, 노조간부들도  내부적으로  '어용'이란 비판을  듣고 있었지만, 그래도 '민주노총' 소속이란 타이틀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서, '노조'활동가로서 명분을 삼고 있는 분위기였다"면서 "노조 간부들조차 별 생각이 없던 민주노총 탈퇴를 갑작스럽게 진행하는 것은 사측이 직접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이라고 증언해 이를 뒷받침했다.
1999년 2002년까지 한국통신(KT)노조위원장을 지냈으며 이명박 정부출범 직후 2008년 4월부터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역할을 수행한 이동걸 보좌관은 최근 민간인 불법사찰자료 증거를 인멸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에게 현금 4,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동걸 보좌관은 이영호 전 비서관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MB캠프 합류도 이영호의 소개로 이뤄진 관계이며, KT노조의 참여논의가 진행됐던 '제삼노총' 설립추진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는 임태희 전 장관의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임 전 실장은 지난 4일 인터넷 정치웹진 논객들과의 간담회에서 이영호와 이동걸의 관계에 대해 "이동걸은 이영호와 교류가 많았던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소문으로는 이동걸은 이영호를 통해서 캠프에 합류했고, 노동부 정책보좌관으로 가서도 이영호의 도움을 받았으며,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 속하지 않은 kt노조위원장 출신이다보니 서울매트로 정연수 노조위원장이 주도하던 제 3노총의 설립 움직임을 잘 알 수 있어 계속 교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힌바 있다.
KT 홍보실은 “민주노총 탈퇴는 노동조합이 한 것”이라며 “이와 관련해 회사 차원에서 이야기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KT 노조의 관계자는 전임 노조위원장과 서유열 사장과의 관계에 대해 “위원장은 CEO도 만나고 다 만난다”면서 사측에 의해 기획된 민주노총 탈퇴에 대해 부정했다. 또 이동걸 보좌관과 노조 현 노조 위원장과의 관계에 대해 “답할 수 없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도형래 기자  |  media@mediaus.co.kr

2012년 5월 20일 일요일

밀어주고 끌어주고…화려한 독식 끝에 하나둘 감옥행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19일자 기사 '밀어주고 끌어주고…화려한 독식 끝에 하나둘 감옥행'을 퍼왔습니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영포라인 흥망사 

▶ 이명박 대통령의 옛 고향마을인 포항 덕실마을 어귀에는 한복 입은 이 대통령 부부를 조각한 대형 부조가 서 있다. 이 대통령과 인척관계인 한 기업인이 지난해 11월 기증한 작품이다. 조각의 주인공에 대한 고향사람들의 애정은 여전히 두터웠다. 이영두(75) 할머니는 “농사철이라 관광차가 마이(많이) 줄었다”며 “저쪽 당들이 대통령을 고마(그만) 헐뜯고 파뒤비면(파 뒤집었으면) 좋겠구먼”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따뜻한 환대를 뒤로하고 나선 귀경길 내내 저들의 소박한 자부심을 갉아먹는 영포라인의 번지르르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영포라인의 몰락사가 후대에 교훈은 될까.

방통대군 최시중·왕차관 박영준
이상득 소개로 MB와 인연
방송·실권 움겨쥐고 탄탄대로

“VIP께 일심으로 충성”
“뭔가 많이 잘못됐다
”정권말 비리 발목잡혀 감옥행
이상득은 수사 선상 올라

이명박 정권은 2008년 출범 초 ‘강부자’(서울 강남지역의 부자) 또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정권으로 불렸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적확하지 않은 별명이었다. 처음부터 인구 53만명의 중소도시인 포항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된 ‘영포정권’이었다. ‘영포’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영일·포항에서 따온 말이다. 지금의 포항시는 원래 영일군이었다. 1949년 영일군의 읍에서 시로 승격한 포항시는 1973년 포항제철이 들어선 뒤 급격히 성장해, 1995년 모체인 영일군을 흡수·합병했다. 영일이 포항이자 포항이 영일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연말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영포회’ 송년회는 영포정권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90명에 이르는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의 선창으로 “이대로!” “나가자!”를 외쳤다. “이대로”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의 줄임말로,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캠프의 구호였다. 포항 출신 5급 이상 공직자인 이들은 스스로 ‘호시절’임을 실토했다. “물 좋은 때 고향 발전을 못 시키면 죄인이 된다.”(박승호 포항시장) “속된 말로 동해안에 노났다. 우리 지역구에도 콩고물이 떨어지고 있다.”(강석호 국회의원/영양·영덕·봉화·울진군)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최영만 포항시의회 의장)
영포라인의 정점에는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전 국회부의장)과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있다. 이상득 의원은 별도의 직책을 맡지는 않았지만, ‘영일대군’ ‘상왕’ ‘만사형통’으로 불릴 정도로 국정 운영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초기 내각과 청와대, 정보기관 등에는 ‘이상득 사람’이 즐비하게 포진했다. 초대 총리 한승수,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 등은 13대 국회 때부터 이상득과 아주 가깝게 지낸 인물들이다. 초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박영준과 정무1비서관 장다사로는 각각 이상득 의원 보좌관과 부의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코오롱그룹 출신인 국정원 기조실장 김주성도 이상득 인맥이다.
대선 때 엠비 캠프 ‘6인회의’의 핵심 멤버였던 최시중은 지난 4년 동안 방송통신 쪽에서 전권을 휘둘러 ‘방통대군’으로 불렸다. 정권 초반 한국방송과 문화방송(MBC), 와이티엔(YTN), 연합뉴스 사장 등 공영(성) 언론의 사장을 엠비맨으로 강제 교체했다. 또 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와 , , 에 종편채널을 무더기로 허용하고, 이들에게 각종 특혜를 줬다.
이상득 최시중이 영포라인의 ‘쌍끌이’ 기관차였다면, 박영준의 역할은 총간사였다. 박영준은 경북 칠곡 출신이지만, 1995년 국회 비서관으로 이상득과 인연을 맺은 뒤 2005년 서울시 정무국장으로 옮기면서 이명박의 신임을 받았다. 두 형제와의 10여년에 걸친 긴밀한 관계로 그는 범 영포라인으로 분류된다. 그는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시절에는 내각과 공기업 기관장 및 감사 인사 등을 총괄해 ‘왕비서관’으로 불렸다. 2009년 1월 국무차장이 된 이후에는 ‘왕차관’으로 국정의 모든 부분에 개입했다. 이영호(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이인규(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등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했던 핵심 실무자들도 박영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형제의 고향 포항에선 “분위기가 뒤숭숭”

지난 8일 찾은 포항에서 영포회원들이 왜 “이대로! 나가자!”를 희망했는지를 일부 엿볼 수 있었다. 올해 1월에 개통한 38km의 국도대체우회도로(남구 동해면~북구 흥해읍 영일만항)에는 시원스레 차들이 달렸으며, 울산~포항 고속도로(2014년 완공 예정)와 포항~영덕 고속도로(2015년 완공 예정)의 공사도 곳곳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들은 ‘형님 예산’으로 비판받긴 했지만, 철강 등 산업물동량을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 지역에서 오랫동안 요구했던 숙원사업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다지 통행량이 많지도 않은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의 4차선 도로 신설 등은 순전히 영포정권의 힘인 듯했다. 건설공사가 한창인 포항~삼척 사이의 동해중부선 철도도 경제성보다는 영포라인의 고향발전 의지가 더 많이 실린 것으로 보였다.
겉으로의 화려함과 달리 포항의 민심은 좋지 않았다. 죽도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한결같이 “장사가 너무 안된다”고 말했다. 구룡포 한 낚시집에서 만난 김아무개(45)씨는 “먹고 살기 바쁜데 이상득이든 최시중이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포항와이엠시에이(YMCA) 사무총장 서병철(47)은 “이익이 대폭 줄어든 포스코가 최근 돈줄을 졸라매는 바람에 시내 경기가 안 좋은데다가 영포라인을 둘러싼 비리 의혹에 김형태 국회의원 당선자의 성추문까지 겹쳐 시민들이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포라인의 힘은 대통령 이명박과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형님 이상득은 어릴 때부터 이명박 집안의 희망이자 기둥이었다. 이상득은 일본 오사카에서 1935년 이홍우(1981년 작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일본에서 자랐다. 해방 직후인 1945년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가 살던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덕실마을·당시는 영일군)에 첫발을 디뎠다. 그때 이명박은 4살이었다.
이상득은 공부를 매우 잘했다. 포항중학교 시절에 줄곧 선두를 다퉜으며, 동지상고(현 동지고) 졸업 때는 수석을 차지했다. 가난했던 이홍우 부부는 7명의 자녀 중 이상득 뒷바라지에 매달렸다. 부부는 이를 위해 셋째 아들인 이명박의 고교 진학을 말렸으며, 이상득이 1957년 서울대(경제학과)에 입학할 즈음에는 이명박을 포항에 남겨놓고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이명박은 동지상고 야간을 겨우 마친 뒤 부모가 있는 서울로 와서도 이태원시장에서 청소 리어카를 끄는 등 궂은일을 해야 했다.
이상득이 이명박을 본격적으로 챙긴 것은 1961년 한국 나이론(코오롱)에 입사해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부터로 보인다. 이상득은 1964년 이명박이 고대총학생회장 권한대행 시절 6·3 시위 주도로 경찰의 수배를 받을 때 동생에게 도피처와 자수를 주선하는 등 보호자 노릇을 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형 때문에 어릴 때 피해를 봤다는 생각도 있지만, 코오롱에 취직한 형 덕분에 대학 시절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이 대통령은 형을 상당히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대선 직전 여러 사람이 전략가인 윤여준을 데려오자고 이명박에게 건의하자, 이명박이 “형님한테 먼저 물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고 당시 캠프 관계자는 전했다. 이상득이 윤여준을 싫어하니 미리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영포라인의 또다른 한 축인 최시중은 1937년 구룡포에서 태어났다. 구룡포는 일제시대에는 동해안 최대의 어업전진기지로 일본인 집단거류지가 크게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다. 최시중의 옛집은 일본인 집단거류지 근처에 있었다. 포항시는 일본식 가옥 80여채가 남아 있는 이 동네를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지정했다. 기자가 지난주 현지에 갔을 때 골목길 포장 등 정비작업이 한창이었다.
최시중도 어린 시절 여섯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 가장이 돼 매일매일 생존 전쟁을 벌였다. 최시중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최민석(1980년 작고)이 쌍끌이배 망루에서 고기떼를 찾다가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어머니를 도와 죽도시장에서 엿 장사, 뻥튀기 장사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시중은 구룡포 선창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호박떡을 구워 팔았다.

MB와 최시중, 불우한 어린 시절이 통했다

최시중과 이명박의 멘토-멘티 관계는 이상득을 통해 맺어졌다. 서점 점원과 입주 가정교사 등으로 힘겹게 고교(대구 대륜고)를 마치고 1957년 서울대(정치학과)에 들어간 최시중은 같은 영일 출신인 이상득을 만나 친구가 됐다. 둘은 사회에 나와서도 사무실이 광화문 근처에 있어 자주 만났다.
1970년대 중반쯤 기자이던 최시중은 유명세를 타고 있던 이상득의 동생을 만났다.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명박은 29살 나이에 이사가 되는 등 초고속 승진을 하고 있었다. 최시중은 2008년 1월 인터뷰에서 “1970년대 중반 이 부의장에게 잘나가는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번 보자고 해서 알게 됐다”며 “이 당선자 형제와는 포항이라는 지역에서 서로 최하층 바닥인생에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별로 설명이 필요 없는 사이다. 감각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득-최시중-이명박 3인의 ‘감각적 공유 관계’는 1980년대 말 이후가 되면서 ‘정치적 동지 관계’로 변한다. 이상득은 1988년 코오롱상사의 대표이사를 그만두고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다. 이를 계기로 정치부장과 정치담당 논설위원으로 있던 최시중이 정치적 조언과 자문을 하게 된다. 이런 그의 역할은 1994년 한국갤럽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계속된다. 이들과 사이가 안 좋은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조차 최시중에 대해 “오랫동안 훈련된 정치적 감각이 있어 전략적 판단이 비교적 정확했고, 흐름을 잘 짚었다”고 말했다.
최시중은 처음에는 친구 이상득을 자문했지만, 1992년께부터는 ‘이명박 키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해 대선 때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결별, 1995년 민자당 서울시장 경선 도전 등 이명박의 주요 정치적 갈림길마다 최시중이 곁에 있었다. 이명박은 15대 총선 때의 선거비용 7억여원을 누락한 사실을 폭로한 비서 김유찬을 국외로 도피시킨 것과 관련해 범인 은닉죄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1999년)한다. 이 일로 미국에 떠돌다 귀국한 이명박이 정계에 복귀할 때 서울시장 출마(2002년) 쪽으로 유도한 것도 최시중이었다. 정치공백을 단번에 만회해서 2007년 대선으로 곧바로 가자는 전략이었다. 최시중은 2006년 6월 초 갤럽 회장 신분인 상태에서 이명박 대선준비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이명박을 택한 이유에 대해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정치를 안 한 한풀이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민간인 불법사찰이 처음 불거졌던 2010년 7월 검찰 관계자들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빠져나오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사찰 지휘체계 관련 문서(맨 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이명박의 정계진출 이후에는 이상득도 동생 밀어주기에 나섰다. 박영준은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일하던 박영준은 1995년 이상득 비서관으로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다. 신한국당 정책조정위원장이 된 이상득은 김우중 대우그룹회장한테 “실물경제를 알고 일을 잘하는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해서 박영준을 소개받았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영준이 일을 빨리 익혀 이상득 의원으로부터 곧 신임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2년 이명박의 서울시장 선거를 도운 박영준은 서울시에서 일하고 싶어 했으나, 이상득이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박영준은 이명박 주변 사람들에게 “평생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이 시장한테 나를 데려다 쓰게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의 증언이다. 신분 상승을 향한 박영준의 이러한 욕망은 2005년 서울시 정무국장이 됨으로써 마침내 실현됐다. 대선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이명박도 고려대 후배이자 형님 사람인 박영준을 믿을 만했을 것이다. 당시 서울시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정무적인 결정이나 논의는 이 시장이 정무국장이던 박영준과 주로 하는 등 실무적으로 신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다른 한 인사는 “박영준이 아랫사람과 티격태격 다투기만 했지 서울시에 있을 때는 별 볼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야인’ 박영준 방 앞엔 사람들의 행렬

박영준이 이명박의 눈에 찼다는 신호가 나타난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였다. 박영준은 이명박 경선캠프였던 안국포럼 때 처음에는 내근을 하다가 중간부터 외근 쪽으로 돌았다. 동서대 교수인 김대식 등과 함께 지방을 다니면서 외곽조직을 만드는 일을 했다.
내부 사정을 아는 한 인사는 “당시 박영준이 비서실장 비슷하게 설치다가 선배급 인사들한테 혼이 난 뒤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깥으로 나돌았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때 만든 조직은 본선 때 선진국민연대로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지방 강연 등을 다니면서 박영준 조직원들의 환대를 경험했던 이명박은 2007년 8월20일 경선에서 박근혜를 이긴 날 용산빌딩에서 해단식을 하면서 딱 두 사람의 이름을 들었다. 이명박은 “얼굴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고생했다”며 박영준과 김대식을 칭찬했다.
이후 박영준의 행로는 탄탄대로였다. 17대 대선 다음날인 2007년 12월20일 아침 이명박은 가회동 자택으로 박영준을 불러 인수위 비서실을 총괄하라고 지시했다. ‘실무적 총괄’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었지만, 박영준에게 본격적인 힘이 실리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인수위 초반 실세는 이명박의 오른팔이었던 정두언이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정두언은 인수위 인선을 도맡아 했다. 박영준을 비서실 총괄팀장에 넣어준 것도 정두언이었다. 대선 다음날 박영준이 정두언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선진국민연대 사람들을 많이 챙겨달라”고 부탁하자, 정두언이 “그럼 당신이 들어와서 직접 하라”며 총괄팀장 자리를 맡겼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포라인이 권력을 독점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재오·정두언 등 수도권 라인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위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두언이 몰락하기 시작한다. 당선자와 같은 층에 있던 정두언의 사무실이 다른 층으로 옮겨갔다. “호남 사람이다, 아내가 그림 장사로 떼돈을 벌고 있다는 등의 각종 음해가 영포라인으로부터 쏟아졌고, 이에 대해 당선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스스로 뒤로 빠졌다”고 정두언은 말했다. 하지만 정두언이 이명박 형제의 눈 밖에 난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즈음 그는 이명박한테 불려가 1시간 동안이나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 당시 국세청장이던 한상률한테 이전 정권 때 국세청에서 만든 ‘이명박 형제 파일’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해 “왜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는 질책을 받은 것이다. 자신들의 약점이 정두언의 손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했을 것이라는 게 인수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정두언이 떠난 대신 박영준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자리매김됐다. 박영준은 정두언 사람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기 사람을 심고는 조각 작업을 홀로 진행했다.
박영준은 ‘권력 사유화’의 주역이라는 정두언의 공격을 받고 2008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와대를 떠났지만, 영포라인이 떠받치는 그의 힘은 약해지지 않았다. 공기업 간부를 했던 한 인사는 “당시 용돈에 보태 쓰라고 100만원이 든 봉투를 들고 박영준을 위로하러 간 적이 있다”며 “그가 당시 거주하다시피 한 강북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위층의 일식당으로 오라는 연락이 와서 갔더니 여러 사람이 대기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영준은 야인 시절인 이때 포스코 회장 후보들인 정준양, 윤석만을 만나 사실상의 ‘면접’을 하는가 하면, 포스코의 배후 실력자인 박태준 부부와도 만나 포스코 회장 선임을 자신의 뜻대로 주도한다. 이명박 형제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이상득 의원은 포항이 지역구임에도 과거 정권 때 포스코로부터 냉대를 많이 받아 한이 많았다. 따라서 포스코는 이 의원의 관할구역이라고 봐야 한다”며 “박영준은 에스디(SD·이상득 약칭)의 뜻을 수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포라인 비리 수사는 이제부터 시작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영포라인의 국정 농단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이 기구는 형식적으로는 총리실 산하에 있었지만, 기획총괄과장 진경락이 작성한 문건에 있듯이 “브이아이피(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비선을 통해 총괄 지휘”가 이뤄졌다. 충성하는 비선은 곧 영포라인이었다. 청와대에는 고용노사비서관이었던 이영호와 그의 아래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던 최종석은 포항 출신이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었던 이강덕도 포항이 고향이다. 청와대 하명을 받아 민간인 불법사찰에 직접적으로 연루됐던 공직윤리지원관 이인규를 비롯해 김충곤(점검1팀장), 김화기(점검1팀 조사관) 등 윤리지원관실의 핵심인물들도 모두 영포라인이다. 진경락도 포항 문화권인 경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이영호 및 이인규와 각각 청와대와 노동부에서 같이 일해 손발을 맞춘 준영포라인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운영의 몸통이라고 자처한 이영호는 애초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이명박, 박영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시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융노련 조직본부장 등을 지낸 이영호는 서울시의 노정협의 과정에서 이명박과 처음으로 만났다. 구룡포 출신의 그는 업무 과정에서 정무국장이던 박영준과도 영포를 고리로 쉽게 가까워졌다. 특히 그는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의 정책협의를 성사시키면서 이명박의 눈에 들었다. 2009년 9월 청와대에서 다른 비서관실 행정관에게 욕설을 퍼붓고, 이를 말리던 정책실장 윤진식 등에게도 큰소리를 칠 정도로 행패를 부릴 수 있었던 배경이 이때 형성됐다. 노동부 감사관을 지낸 이인규는 최시중의 줄을 잡았다. 구룡포 출신의 한 인사는 “이인규가 대선 승리 이후에 최시중을 찾아가서 청와대 근무 등 인사 청탁을 했다”며 “그 결과 총리실로 갔는데 그 줄이 동아줄은커녕 썩은 줄이었다”고 말했다.
영포라인의 독식과 전횡은 과거 어느 정권의 실세그룹보다 화려했지만 몰락도 처참하다. “물이 넘치면 제방이 되고, 바람이 불면 병풍이 되겠다”며 이명박 지킴이를 자처하던 최시중은 지난달 “뭔가 많이 잘못됐다”는 말을 남기고 감옥에 갔다. 국회의원 보좌관에서 이명박 정권 최고 실세로 화려하게 변신했던 박영준도 지난 8일 구속됐다. 그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언론 인터뷰에서 “감방 갈 일 안 했다”고 큰소리쳤으나, 결국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최시중과 박영준은 각각 국외 도피중인 ‘폭탄’도 여전히 안고 있다. 최시중의 양아들로 돈심부름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정용욱(방송통신위원회 정책보좌역)과 박영준의 돈 관리인이라는 의혹을 사는 이동조(제이엔테크 회장)가 들어올 경우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아무도 모른다. 영포라인의 실무자들인 이영호, 최종석, 김충곤 등도 모두 쇠고랑을 찼다. 또 ‘영일대군’ 이상득도 비서 계좌에서 나온 7억원 괴자금과 저축은행 의혹 건 등으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본인들만 몰랐을 뿐 몰락의 씨앗은 이미 영포라인이 형성될 때부터 내부에서 싹트고 있었다. 최시중에게 파이시티의 돈을 전달했던 브로커 이동률씨는 구룡포 및 고교 후배로 최시중의 오랜 측근이었다. 이동률은 박영준도 서울시 시절부터 소개받아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한 청탁을 수시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동조도 이상득 보좌관 시절부터 박영준을 포항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준은 이동조를 포스코 회장 면접 때 데리고 감으로써 포스코 쪽에 알아서 하라는 ‘신호’를 줬다. 영포라인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비밀 거래가 오래된 셈이다.
영포라인의 부패를 설명해줄 수 있는 다른 단초는 청계천 공사 초기의 일화다. 어느 휴일 이명박은 서울시 고위관계자들을 청계천이 보이는 한 빌딩 사무실에 불러 회의를 주재했다. 중간 휴식 시간에 이명박은 밖을 내다보면서 “지금은 긴가민가하지만 고가가 철거되고 청계천이 복원되면 이 주변 땅값은 확 뛸 것이다. 돈을 빌려서라도 땅이나 빌딩에 투자하라”고 말했다. 당시 한 참석자의 증언이다. 불법이나 편법을 권한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의 낮은 공적 마인드를 잘 보여주는 예다. 그런 보스를 향해 ‘일심으로 충성’했던 영포라인의 비리 노출은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포항/김종철 선임기자

2012년 5월 17일 목요일

“비선 통해 일심으로 충성”…‘사찰 몸통=대통령’ 암시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16일자 기사 '“비선 통해 일심으로 충성”…‘사찰 몸통=대통령’ 암시'를 퍼왔습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서

지원관실 진경락 문건 보니
 야당 정치공세 부담 줄이려
“형식적으로는 총리실 소속
특명사항 비선서 총괄지휘”


실제 지휘체계 어떻게 꾸렸나
 이영호·최종석·이인규 등
‘영포라인’ 인맥으로 채워
공기업임원·정치인 뒷조사
문건내용 거의 100% 실현

16일 공개된 국무총리실 내부 문건은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이라는 ‘국기 문란’ 사건의 진원지인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이 이명박 대통령이 직할하는 ‘대통령 보위기구’였음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문건은 “브이아이피(VIP, 대통령)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이라는 등의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대통령 1인을 위해 복무하는 조직임을 명확히 했다. 이 문건을 입수해 지원관실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 인사들이 ‘정권 보위’를 위해 지원관실을 활용한 구체적인 단서를 추적중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은 김경동 전 지원관실 주무관(현 행정안전부 소속)이 가지고 있던 이동식저장장치(USB)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지원관실 내부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김 전 주무관은 장진수 전 주무관의 전임자로, 2008년 7월 지원관실 창설 때부터 서무 담당자로 일했다. 이 문건은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에는, 지원관실의 ‘몸통’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아니라 이 대통령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우선 지원관실을 총리실 소속으로 두면서 별도의 지휘·보고라인을 검토하는 이유로 “브이아이피 의중이 ①정확히 전달되고 ②보안을 유지하면서 ③불필요한 마찰 없이 ④밀도 높게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대통령의 뜻에 맞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친위조직’으로 운영하기 위한 지휘체계를 두되, 통상적인 기구로 ‘위장’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문건에서는 총리실 소속의 지원관실이 실제로 총리의 지휘를 받을 경우 “지휘체계가 법령에 부합”한다는 점과 “야당의 정치공세와 브이아이피 부담 완화” 등을 장점으로 꼽았지만, “힘이 덜 실리고 상대적으로 브이아이피 국정철학 접목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원관실을 통제할 경우 “공직사회를 포함한 각계의 고급정보 활용”이 가능하고 “브이아이피 국정철학 구현에 더 유리”하지만, “정치인인 민정(수석)비서관이 사정기관을 동원해 정치사찰을 한다는 인식” 때문에 “표적사정 논란, 활동상 제약”이 있다고 봤다. 결국 문건에서는, “통상적인 공직기강 업무는 총리가 지휘하되, 특명사항은 브이아이피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지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또 “과거 사직동팀이 곧바로 청와대 공격루트가 되었으므로 외양을 총리실 소속으로 하고 민감한 사안은 절대 충성심이 보장돼 있는 비공식 선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하명 사건을 처리했던 과거 정권 시절의 사직동팀을, 정치적 논란 없이 세련되게 부활시키려는 의도다. 그러면서 “정부의 모든 권한은 대통령이 위임하기 때문에 정당성을 가지게 되고 형식적인 업무분장에 구애될 필요가 없으며 비선 활용은 추후 레임덕 방지를 위해서도 긴요”하다며 탈법적 운영을 정당화했다.
지원관실의 지휘체계는 실제로 문건 내용대로 구성됐다. ‘대통령에게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으로는 이 대통령과 동향인 포항 출신의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발탁됐고 이 비서관은 최종석 행정관, 이인규 지원관, 김충곤 점검1팀장, 김화기 팀원 등 ‘범영포라인’으로 지원관실을 꾸렸다. 지원관실을 지휘하는 조직은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었으므로, 이들에게 지원관실 업무추진비로 한달에 280만원이 ‘상납’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구속된 이 전 비서관, 최 전 행정관은 ‘충성심’이 검증된 대로 여전히 청와대의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문건에서는 지원관실 업무가 ‘고도의 보안성’이 필요해 “지휘·보고 체계 이외의 라인에서 관여하게 되면 업무 추진력이 떨어지고 보안유지가 안 되”는 만큼, “대통령실장이 민정비서실에서 (지원관실에) 자료요구 등 업무 관여를 하지 못하도록 보고라인 정리”를 해달라고 건의했다. 실제로 정동기 민정수석(2008년 6월~2009년 8월)이 지원관실 업무에 아무런 문제제기도 못하고 있다가 후임인 권재진 민정수석이 ‘보고라인 정상화’를 요구하며 이영호 비서관과 갈등을 빚었다는 일화는, 이 건의가 실제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또 문건에서는 “전 정권 말기에 대못질한 코드인사 중 엠비(MB) 정책기조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저항하는 인사에게 사표제출 유도(9월, 공기업 임원 39명)”를 ‘당면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지원관실 직원들은 ‘감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들을 솎아냈고, 이 대통령을 비방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뒷조사가 이뤄졌다. 이 대통령 1인을 위한 친위조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건의 내용이 거의 100%에 가깝게 실현된 것이다.



이 문건을 작성한 진경락 전 과장은 사찰과 증거인멸, 특수활동비 횡령 혐의로 두 차례나 구속돼 수감중이다. 진 전 과장은 지인들에게 “내가 입을 열면 엠비가 하야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전 과장은 지원관실의 ‘몸통’이 이 대통령임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셈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2012년 5월 14일 월요일

대포폰 만들어준 KT 서유열 사장은 "KT내 범 영포라인 핵심"


이글은 미디어스 2012-05-14일자 기사 '대포폰 만들어준 KT 서유열 사장은 "KT내 범 영포라인 핵심"'을 퍼왔습니다.
KT내 권력서열 2인자 …MB정권 이후 '고속승진'


▲ KT 서유열 홈고객부분장 사장 (KT제공)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 대외협력부서도 아닌  마케팅담당 임원인 KT 서유열 홈고객부문 사장에게 '차명폰'을 부탁했을까?  업계에서는 서유열 사장의 민간인 사찰 대포폰 연루 사실을 두고 이같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관련하여, KT내부에서는 서유열 사장은 이석채 회장의 오른팔로,  KT내 범 영포라인의 핵심실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KT 출신의 한 인사는 “서 사장은 KT 범 영포라인의 핵심”이라면서 “이번에 대포폰을 건네준 것을 봐도 수많은 선배를 뒤로하고 그가 사장이 된 배경에는 이석채 회장과의 끈끈함뿐 아니라 정권과의 연계고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인사는 “서 사장이 이석채 회장의 오른팔로 불리며 KT내의 굵직한 인사에는 모두 간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석채 회장에 이어 확고한 2인자”라고 밝혔다.
서유열 사장의 현재 공식 직함은 ‘KT홈고객부문장’. 서유열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낙하산 인사 논란을 낳은 이석채 회장이 KT에 임명되기 직전 '내부 인수위원'으로 활동하며, KT 내에서 출세가도를 시작했다.
2009년 이석채 회장 취임 이후 서유열 사장은 핵심부서라고 할 수 있는 ‘GSS(Group Shared Service)부문장 겸 경영지원실장’에 임명되며 몇 달 후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이듬해인 2010년 ‘KT홈고객부문장’이 되며 사장이 된다. 이석채 회장에 이어 2인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같은 초고속 승진의 배경에는 경북 성주 출신인 이석채 회장과 같은 TK(대구·경북) 라인이라는 점과 차명폰을 직접 만들어 청와대 비서관에게 건네 줄 정도의 청와대측 인사들과의 깊은 관계 등이 거론되고 있다.
서유열 사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경주고등학교를 나왔다. 서유열 사장은 영일, 포항과 인접한 경주 출신이라는 점에서 KT내 ‘범 영포라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1982년 KT에 입사한 서유열 사장은 2006년에 상무로 승진하면서 KT 임원이 됐다. 2009년 보직임원이 되면서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하기까지는 데는 만 1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고, 전무에서 사장되는 기간 또한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KT 내부 관계자는 “초고속 승진에 영포라인, 청와대와의 연결이 배경이 됐다는 것은 KT 내부에선 거의 모두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며 “청와대가 대외협력부서를 제치고 직접 서 사장에게 연락한 것도 영포라인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유열 사장은 청와대 대포폰 제공 논란이 일자 14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2010년 7월 초 이영호 비서관으로부터 "업무적으로 잠깐 쓰겠다"는 요청이 있어 핸드폰을 제공한 바 있다”며 “해당 핸드폰이 보도된 바와 같이 사용돼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또 서유열 사장은 “해당 핸드폰은 대포폰이 아닌 차명폰”이라며 “대포폰은 신원 불상의 사람의 단말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 경우와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서유열 사장은 소환조사 해 대포폰 제공 이유와 또 다른 대포폰 개설 여부를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도형래 기자  |  media@mediaus.co.kr

2012년 5월 11일 금요일

솔로몬이 부활시킨 MB '소망교회'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5-09일자 기사 '솔로몬이 부활시킨 MB '소망교회''를 퍼왔습니다.
임석도 '소금회'출신 … 김찬경은 '고려대박물관' 동기

솔로몬저축은행 임석(50) 회장이 100억대 비자금으로 정치권에 로비했다는의혹을 사고 있는 가운데 소망교회 교인모임 '소금회'(소망교회 금융인 선교회)가 그 중심으로 떠올랐다.  
8일 저축은행비리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은 임 회장이 선박의 장부상 매입가와 실제 가격의 차액을 해외 개설 예금계좌로 빼돌려 횡령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수사단은 해외 부동산 투자 등 재산 도피나 정치권 실세들에게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는지를 조사중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임 회장이 '소금회' 출신이라는 것이다. `소금회'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전인 2007년 말까지 교인으로서 참여한 모임이다. 그런데 이 소망교회 교인모임에서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강만수 KDB금융 회장,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 장병구 전 수협은행장 등이 함께 활동했다. 
9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작년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터졌을 때 금융권에선 '다음은 솔로몬일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6일 영업정지되기 전까지 문제없이 버텼다"며 "이를 둘러싸고 현정부의 핵심 관료가 그 뒤를 봐주며 퇴출을 막고 있다는 소문과, 이상득 의원에게 로비자금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그를 따라다녔다"고 보도했다.
이 의원측은 이와 관련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임 회장의 퇴출 저지 로비설을 부인했다.
한편 2천억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은 2007년 4월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함께 고려대박물관 문화예술 최고위과정(APCA) 1기에  등록했다. 이 최고위과정에 이 대통령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비롯한 지인이 많이 등록해, 당시 유력 대선주자 이 후보와 측근들에게 줄을 대려 했다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최근 대형 비리사건을 둘러싸고 영포라인에 이어 소망교회 교인모임인 '소금회'가 등장하자 트위터에는 비난 여론이 비난이 터져나오고 있다.
"교회가 부정비리의 온상이라니"(@bulkot***)
"또.. 소망교회의 끝은 어디인가? 황금송아지 만드는 자들"(@BOX***)
"소망교회. 이상득 비리있는 곳에는 꼭 끼는구나"(@yoki***)
"임석 솔로몬 회장은 소망교회 '소금회' 멤버 '소금회' 중심축은 MB정권 실세 강만수 소망교회가 범죄조직단 양성하는 개독교?"(@cjkc***)
"교회니 절에 다니는건 비지니스로 다니는 경우가 99% 나머지 1%만이 종교적이라 할 수 있다 비지니스가 아니더라도 엉터리고"(@decomet***)

윤경진 기자  |  ykj23@pressbyple.com

2012년 5월 9일 수요일

'영포라인' 비자금 들통날라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5-09일자 기사 ''영포라인' 비자금 들통날라'를 퍼왔습니다.
박영준 '자금줄' 이동조 해외로 도피시켜 …"현정부 비리의 핵"

▲ 이동조 회장. ⓒ News1 최창호 기자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으로 지난 7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을 해외로 도피시킨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8일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는 최근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박 전 차관이 지난달 24일 저녁 대포폰으로 이 회장과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박 전 차관은 대포폰을 사용 중이었으며, 이 회장이 직접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달 25일 중국으로 출국했고, 중국에 도착후 박 전 차관과 다시 통화했다. 이날은 검찰이 박 전 차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날이다.
앞서 포스코 협력업체 제이엔테크를 운영하는 이 회장은 파이시티 사건 초기 박 전 차관의 이른바 '자금줄', '비자금 관리인' 등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또 그는 포항고 총동창회장, 프로축구팀 포항 스틸러스 후원회장 등을 역임한 '영포라인'(영일·포항 출신 공직자 등) 핵심.
그렇기에 일부 언론은 '이 회장이 영포라인의 모든 비자금을 관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이 회장의 계좌를 추적함과 동시에 귀국을 종용하고 있으며, 귀국 즉시 소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를 본 트위터 여론은 "뭔가 이상했다. 무슨 영화 같은 느낌이다", "무슨 범죄조직 계도 같다", "더러운 입들 맞추는데", "똥통에 빠졌다 나왔는지 움직일 때마다 냄새가 난다", "박영준을 보면 조직폭력배 같은 느낌. 그 오야붕이 누군지 궁금하다", "솔직히 검찰도 설렁설렁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종삽으로 살짝만 땅을 걷어냈는데 유전이 터졌다. 검찰도 당황했을 듯" 등 비판이 잇따랐다.
한편, 일부 트위터리안들은 "박영준이 이동조에게 도망가라고 시켰다. 다음날 압수수색이 있는 줄 알았나?"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지난달 24일은 검찰이 박 전 차관을 압수수색하는 등 공개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이에 검찰 내부 혹은 정부 내 동향을 박 전 차관에게 전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
이는 앞서 박 전 차관이 대구 선거사무실 자료를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경북 칠곡에 있는 형의 가게로 옮겨놓은 것이 발각됐을 때도 제기됐다.
일부 여론은 현정부의 비리의혹이 '영포라인'이 주축이었다면서 질타가 쏟아졌다.
"박영준, 최시중, 이동조, 이상득, 이동률 등 모두 모두 영포라인이다. 파이시티에 연루된 존재들. 이 계보가 완성되려면 이명박이 들어가야 한다", "현 정부의 부정부패는 무궁무진한 광맥이자 지하자원. 영일과 포항이 노다지", "잡배들로 인해 포항과 영일이 개 욕을 처먹고 있다", "이동조가 영포라인 모임에 갔다. 일개 포스코 협력업체 회장이. 답은 나온 듯"
한 네티즌은 "현 정부 들어 제이엔테크로 들어오는 포스코의 물량이 늘어났다. 2006~2007년 평균 매출이 25억 원에 그쳤는데, 지난해 매출은 100억 원으로 훌쩍 뛰었다. 포스코의 일감 몰아주기이다. 현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일까? 아! 제이엔테크 이동조 사장은 포스코 납품 도시락 업체 '좋은 도시락'도 운영 중이다"라면서 현 정부와 이 회장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4월 10일 화요일

[사설] 경찰청장 사퇴로 억울한 죽음 방관 책임 끝낼 수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09일자 사설 '[사설] 경찰청장 사퇴로 억울한 죽음 방관 책임 끝낼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수원 20대 여성 납치살해사건 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의 전말과 경찰의 어처구니없는 대응 과정이 속속 드러나면서 유가족은 물론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급기야 어제 조현오 경찰청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경찰의 어설픈 대응으로 무고한 시민이 무참하게 생명을 빼앗겼다면 경찰은 무한책임을 져야 하고 최고책임자인 청장의 사퇴는 당연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기본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경찰 조직은 존재 의미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담당 경찰의 실수 차원이 아니라 경찰 조직의 고질적인 병폐가 누적돼 나타난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조 청장은 어제 회견에서 “112신고센터의 무능함으로 인한 상황 오판과 허술한 대처, 부실 수색 등”을 심각한 문제로 짚고 우수한 인력을 지령실과 상황실에 배치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대책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현장의 경찰뿐 아니라 집에서 잠을 잔 수원중부서 형사과장이나 다음날에야 보고받은 경찰서장, 1주일이 지나서야 통화 내용을 알았다는 경기경찰청장까지 누구 하나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건 이후에도, 현장으로 달려가도 모자랄 신임 서장에게 한가하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동정 여론을 조성하려 각 언론사 누리집에 댓글을 달라고 경찰들에게 지시했다니 기가 찰 일이다. 이들의 안이한 인식은 “13시간 만에 잡았으면 빨리 잡은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형사과장의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현 정권 들어 경찰은 ‘민생’보다는 ‘시국’에 민감하게 반응해왔고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정권의 몽둥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용산참사로 6명이나 목숨을 잃은 것도, 고무탄 등 테러진압용 무기를 앞세운 쌍용자동차 강제진압도 모두 정권 지킴이로 나선 경찰이 앞장서 벌인 일이다. 경찰관들의 설문조사에서 쌍용차 강제진압 사건을 ‘우수 수사’ 사례로 꼽은 것은 이들이 얼마나 국민과 동떨어진 의식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조 청장의 후임에 이강덕 현 서울경찰청장을 검토한다는 소문은 황당 시리즈의 결정판이다. 이 청장이야말로 이른바 ‘영포라인’으로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공직기강팀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경찰에 대해 민생치안은 포기하고 정권 보위에 나서라는 노골적인 주문이 아니고서야 그런 인사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12년 4월 6일 금요일

"'영포라인' 김충곤, 발령나기 전부터 불법사찰 주도"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4-06일자 기사 ‘"'영포라인' 김충곤, 발령나기 전부터 불법사찰 주도"'를 퍼왔습니다.
민주당 "김종익 찾아가 가짜명함 사용, 취업은 영포라인 통해"

민주통합당은 6일 불법사찰의 핵심인물인 김충곤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1점검팀장이 정식발령 두달 전부터 민간인 신분으로 불법사찰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MB-새누리당심판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가진 기자브리핑에서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김충곤 1팀장은 2008년 7월 중순경 김종익 관련 제보를 입수해서 7월 24일 서울시경 기동대 김경수 경위에게 문건을 작성케하면서 민간인 사찰이 시작됐다"며 "그러나 이 시점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생기기 직전이고 김충곤 인사기록카드에는 9월 11일에야 총리실장으로부터 1팀장으로 임명받았다"고 밝혔다. 

특위소속 이상갑 변호사는 "김충곤 팀장이 경찰에서 명예퇴직한 게 6월 30일이고 7월부터 9월 중순까지 지원관실 활동을 할때 신분은 민간인이었다"며 "즉 민간인이 경찰공무원에게 지시를 내리고 민간인사찰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김 전 팀장은 직원으로 발령받은 8월 29일 팀원 세명과 김종익씨의 사무실을 방문하는데 그때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점검반 이석재'라는 가짜 명함을 내밀었다"며 "지원관실 어디에도 이석재란 이름을 가진 직원이 없고, 공직윤리점검반이라는 조직도 지원관실 내에 초창기부터 있었지만 업무규정은 그해 12월 31일 신설됐다"고 김씨가 가짜명함까지 사용했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정작 책임자인 이인규는 총리실 파견으로 있다가 5개월이 지난 2008년 12월 15일에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5개월동안 공직윤리지원관이 없는 지원관실이 운영됐다"며 "결국 지원관실이 졸속적으로 만들어졌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된 데는 정치적 목표와 이 조직을 따로 지휘감독한 사람이 있었다는 의심을 할수밖에 없다"고 배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위는 이와함께 김 전 점검팀장이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취업된 배경에 대해서도 '윗선'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김 전 점검팀장은 검찰 진술 조서에서 "고향이 포항이다 보니, 이런 저런 곳에 계신 고향 선배들이 추천을 많이 했다"며 "퇴직하고 10일 정도 지나 총리실 직원이 연락이 왔고 총리실에 가서 이인규 지원관을 만나 인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영선 위원장은 "김 전 팀장은 경찰에서 퇴직하고 재경구룡포향우회 회장에게 취업을 부탁했고 바로 다음날 가보라고 해서 지원관실에 갔다는 수사기록도 있다"며 "구룡포향우회의 고문은 최시중 전 방통위장이고 김 전 팀장은 운영위원었다. 이 정도 되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것이 시작부터 불법이었고 (영포회 등)비선라인으로 모든 것이 움직여졌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백혜련 변호사도 "구룡포향우회장이 총리실 산하 직원도 아닌데 어떤 경로로 김 전 팀장이 채용됐는지, 누가 총리에게 채용하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하고 공무원신분증도 없는 김충곤이 매일 출근할 수 있게끔 지시한 사람은 누군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가세했다.

최병성기자

2012년 4월 3일 화요일

지원관실, MB 고교동문들 뒤 봐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03일자 기사 '지원관실, MB 고교동문들 뒤 봐줘'를 퍼왔습니다.
USB에 영포라인 형사사건 청탁 정황 문건이력서 형식 파일도 2건…취업 알선 의혹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경북 영일·포항 출신 인사(영포라인)들의 형사사건을 청탁하거나 취업 알선에 나섰다는 정황이 2일 드러났다. 권력기관이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에 나선 것뿐 아니라, 특정 지역 인맥의 ‘해결사’ 노릇까지 담당한 셈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 김기현 경정의 외장메모리장치(USB)에 저장된 기록을 살펴보면, ‘방○○’라는 제목의 파일이 저장돼 있다. 파일은 폭행사건 피해자인 사업가 방아무개(50)씨가 경찰의 사건 처리 방식에 불만을 품고 낸 진정서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진정서에는 “(피해자가) 6주 진단서를 제출해 (가해자를) 구속 수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면 조사만 했고, 원고의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피해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적혀 있다. 또 “가해자 쪽 경찰관이 가해자에게 코치하여 사건에 개입하고 있다”며 “사건에 개입한 공무원을 파면해야 하고 공무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진정서를 낸 방씨는 이른바 ‘영포라인’으로, 이명박 대통령 모교인 포항 동지상고 29회 졸업생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영포라인’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연락처 파일( 4월2일치 1면)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 있다. 방씨는 또 여러 경로로 이 대통령과 연이 닿아 있는 인물로 보인다.
그는 2008년에는 ‘이명박 대통령 감사장’, 2006년에는 ‘이명박 서울특별시장 공로패’ 등을 받았다. 결국 ‘출생지·학연’ 등 이 대통령과 연이 있는 인물에 대해 지원관실이 사건 청탁까지 들어준 것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김기현 경정의 외장메모리장치 안에는 지원관실이 ‘영포라인’의 인사 청탁까지 나선 것으로 볼 만한 문건도 들어 있다. 저장된 파일 2800여개 가운데 인사 지원을 위한 ‘이력서’ 또는 ‘자기소개서’ 형식을 띤 파일은 ‘유○○ 이력서’, ‘박○○ 이력서’ 단 2개뿐인데, 두 사람 모두 동지상고 또는 영일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유씨의 이력서에는 붉은색 글씨로 “금융감독원 입사지원서 접수번호는 ‘703○○20○○’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실제 유씨는 금융감독원 아이티(IT) 4급 경력직 채용에 응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유씨는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당시 상황을 확인해봐야 알겠다”고 말했다.
노현웅 박태우 기자 goloke@hani.co.kr

2012년 4월 2일 월요일

권력기관안 ‘영포라인’ 지원관실서 별도 관리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02일자 기사 '권력기관안 ‘영포라인’ 지원관실서 별도 관리'를 퍼왔습니다.

13개 기관 73명의 근무부서와 직급, 휴대전화 번호, 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힌 문건. 비고란에 포항이나 인근 지역 연고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USB서 13곳 소속 73명 명단 적힌 문건 발견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국세청, 검찰 등 정부 핵심기관에 포진한 영일·포항 출신 인사(영포라인)들의 명단을 별도로 작성해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나왔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른바 정부내 ‘영포라인’을 정보 수집과 공직자 감찰 등에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경찰 출신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근무한 김기현 경정의 외장메모리장치(USB)에 저장된 기록을 살펴보면, ‘공직윤리지원관-일반-014’라는 파일에 대통령실과 국가정보원, 방송통신위원회, 국세청, 검찰청, 감사원, 법무부, 총리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관세청, 통계청, 포항시청 등 13개 기관 73명의 근무 부서와 직급, 휴대전화 번호, 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힌 문건이 들어 있다. 이 문건의 비고란에는 포항이나 인근 지역 연고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예컨대 자신이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 인멸의 몸통이라고 주장했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경우, 연락처와 함께 ‘구룡포’라고 출신지가 적혀 있다.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은 ‘칠곡’이라고 적혀 있다. 민정수석실의 김○○ 행정관의 경우 ‘동21’, 국정기획수석실의 윤○○ 행정관은 ‘포35’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각각 동지상고 21회, 포항고 35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꼭 포항 출신은 아니어도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측근으로 꼽히는 인물도 두명 기록돼 있다.
이 파일에는 청와대의 경우 경제·민정·정무·사회정책수석실, 대변인실, 경호처 등에 걸쳐 24명의 연락처가, 국정원은 포항지부와 감사실 등 관계자 8명, 방송통신위는 최시중 전 위원장을 포함해 5명, 국세청은 최○○ 팀장 등 7명, 검찰청은 동부지검 최○○ 검사 등 7명이 기록돼 있다. 김기현 경정 유에스비에는 이와 별도로 포항 출신 경찰관 33명의 연락처가 ‘포경’이라는 이름의 별도 시트에 저장돼 있다.
이들 연락처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차원에서 만들어져 팀원들이 공유한 것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1일 “자기들끼리 믿을 수 있는 인맥을 통해 감찰 및 불법사찰 활동에 수시로 업무 협조를 얻기 위한 용도로 작성하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비롯해 불법사찰에 개입한 청와대 및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이 대부분 ‘영포라인’이다. 사찰 피해자로 알려진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등은 그동안 “불법사찰은 영포라인이라는 특정 지역 인맥이 사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권력을 전횡한 사건”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지원관실 창설 멤버였던 김화기 경감은 이 명단에 대해 “내가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경감은 “김기현 경정이 내 후임이었고 김 경정의 컴퓨터를 복원하면서 이 명단이 나온 것 같다”며 “공직생활 20년 하면서 꼼꼼히 정리해놓은 것으로 (민간인 사찰)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김 경감은 포항 출신 경찰관으로, 김종익씨 사찰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황준범 박태우 기자 jaybee@hani.co.kr

2012년 3월 29일 목요일

궁지에 몰린 청와대 “물이 목까지 차오른 셈”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3-29일자 기사 ' 궁지에 몰린 청와대 “물이 목까지 차오른 셈”'을 퍼왔습니다.
[아침신문솎아보기] 조전혁 의원 ‘김종익 횡령 자료’ 청와대 작성 의혹'

민간인 불법사찰의 피해자인 김종익씨를 음해하기 위해 정부여당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씨를 비난한 조전혁 새누리당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과 청와대가 작성했다는 것이다.
한 지원관이 불법 사찰 내용을 영포라인의 핵심인 박영준 전 총리실 국무차장에게도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포라인의 또 다른 핵심인 이상득 의원은 사찰이 진행된 것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29일 0시를 기점으로 총선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야권을 향한 이념공세에 몰두하자 보수언론들도 거들고 나섰다.
다음은 29일자 전국단위 아침신문 1면 기사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청와대·총리실·여당의 합작품
최근 민간인 사찰의 진상을 폭로하고 나선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이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이 김씨 의혹 관련 문건을 만들어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과 함께 새누리당 조전혁 의원한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 한국일보 29일자 1면 기사

장 전 주무관은 “2010년 7월 5~6일 사이 진 전 과장이 옆자리 여직원 컴퓨터로 문건을 작성하는 것을 봤는데, 그 내용이 김씨와 관련된 내용이었다”며 “며칠 뒤(7월8일) 조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바로 그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당시 진 전 과장이 ‘이걸 당에 제보해서 흐름을 바꾸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그 뒤 조 의원은 2010년 7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가 KB한마음에서 비자금을 조성해 전 정권 실세들에게 조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검찰은 1년 동안 김씨를 조사했지만 비자금 의혹을 밝히지 못하고 개인 횡령 혐의로만 김씨를 기소했다.
최 전 행정관도 함께 조 의원에게 문건을 전달했다는 증언으로 민간인 불법사찰에 청와대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의혹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하지만 검찰은 28일 오히려 이 사건의 제보자라고 할 수 있는 장 전 주무관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추가 증거를 찾기 위한 수색이라고 밝혔지만 검찰 내부에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의 한 간부는 “혹시 장 전 주무관의 배후에 정치권이 있는 건 아닌지 조사하거나, 장 전 주무관의 폭로 의지를 꺾으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3면 에서 전했다.
한편 장 전 주무관에게 ‘입막음’용으로 취업을 알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취업을 부탁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장 전 비서관은 이는 장 전 비서관이 먼저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이 그 동안 장 전 주무관이 조직을 위해 일하다 재판까지 받게 되는 걸 안타까워했고, 그의 취업은 자기 힘으로는 힘들다면서 일자리를 부탁했다“며 ”원래 장 전 주무관 쪽에서 먼저 요청해온 것으로 그를 직접 만난 적도 통화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우리로선 물이 목까지 차오른 셈”
검찰의 수상한 압수수색, 청와대 전 비서관의 반박 등에도 민간인 사찰의 몸통이 청와대라는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청와대도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한겨레 3면 에서 전했다.


▲ 한겨레 29일자 3면 기사

한겨레는 “청와대에서도 이 대통령이 이영호 전 비서관을 통해 ‘직보’를 받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이 대통령은 실제 핵심 비서관의 경우 수석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따로 보고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만약 검찰의 재수사 결과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의 배후였다면, 또는 청와대가 검찰의 1차 수사를 ‘요리’했다면,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보고를 받은 정황이라도 확인된다면 정권이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사건과 관련해 이미 이 대통령까지 거명되고 있지 않으냐”며 “우리로선 물이 목까지 차오른 셈”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의 이번 재수사로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청와대의 정치적 부담은 여전하다. 이영호 전 비서관의 윗선이 나오지 않을 때 국민적 의혹은 고스란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특별검사나 국정조사를 요구할 것이고, 새누리당도 이를 거부할 명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과 관련한 특별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불법사찰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은 사설 에서 “이달 초 장진수씨가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기 시작한 이래 모든 의혹은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직접 자신의증거인멸인지 여부 등 사실관계를 밝히고, 사건에 연루된 모든 인사들에 대한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토록 지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0년 조사에서도 ‘영포라인’ 확인
영포라인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인규 전 지원관이 지원관실의 사찰활동 내용을 공식 보고라인이 아닌 박영준(52) 전 총리실 국무차장에게도 직접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 서울신문 29일자 9면 기사

현 정권의 실세였던 박 전 국무차장은 자신이 이영호(48)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 ‘영포라인’ 인맥으로 지원관실을 출범시킨 뒤 막후에서 움직였다는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해 왔던 터다.
이 전 지원관의 비서였던 A씨는 이미 2010년 검찰의 1차 수사 때 이 전 지원관의 총리실 내 보고라인과 관련, “국무총리실장이나 사무차장, 국무차장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들 ‘3명’에게 사안별로 적절히 보고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을 누구에게 보고하는지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총리실 관계자는 “지원관실 사찰 내용은 민감해서 공식 보고 라인 외에는 보고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 전 지원관이 박 전 국무차장에게 직보한 것은 사실상 ‘비선’ 보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A씨 등의 진술로 박 전 국무차장이 이 전 지원관의 보고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지만 이 전 지원관의 강력한 부인으로 더 이상 검찰 수사는 진전되지 않았다. 서울신문이 9면 에서 전했다.
박 전 국무차장과 함께 영포라인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은 28일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연루 의혹에 대해 “100% 모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당에서 이야기가 많고 초선 의원들도 나더러 ‘몸통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걸 내가 일일이 싸우고 할 수 있나. 2년 전 민간인 사찰 이야기 나올 때 리비아에 갔었다”라고 반박했다.
이념공세 강화, ‘올드박근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래’를 이야기하던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의 태도가 180도 돌변했다. 그는 야당 심판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에 대해 “잘못된 이념에 빠진 세력”이라며 사실상 앞장서 색깔 공세를 펴고 있다.


▲ 한겨레 29일자 5면 기사

신자유주의와 이로 인한 양극화를 비판하던 박 위원장의 정책 노선도 다시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노선으로 원점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그는 지난 27일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야당은 이번 총선을 1 대 99의 대결로 몰아가고 있다. 새누리당은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는 공천에서 드러났다.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도 나성린, 유일호 의원을 비롯해 이만우, 안종범, 이종훈, 김현숙 교수 등 시장만능주의자와 친재벌 인사들을 후보자로 내세웠다.
박 위원장의 측근도 낡은 구시대 인물들로 다시 채워지고 있다. 중앙선대위의 고문을 맡은 김용환, 서청원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전 의원은 박정희 경제모델의 충실한 집행자였으며, 서 전 의원은 지난 18대 총선 때 친박연대를 만들었던 거물급 친박 인사이다. 한겨레가 5면 에서 전했다.
조선·중앙, 통합진보당 후보 ‘색깔론’ 제기
박근혜 위원장이 이념공세에 나서자 보수언론들도 덩달아 이념적 잣대로 특정 후보를 공격하고 나섰다.


▲ 중앙일보 29일자 4면 기사

중앙일보는 4면 에서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전신) 내부에 북한과 직접 연결된 지하조직인 민혁당이 존재했다”고 주장한 새누리당 하태경(부산 해운대-기장을) 후보의 주장을 4면 머리기사로 배치했다.
하 후보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심회 사건(2006년)에서 보듯 민노당 내부에는 북한과 직접 연결된 지하조직이 존재했고 그 사례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번을 받은 이석기 후보”라고 실명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지하조직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으로 (당시) 서열 5위 안에 드는 핵심 고위직이었다”며 “(통합진보당) 후보 중에는 과거 북한과 연결된 지하조직원으로 활동한 분이 5명 이상 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야권은 새누리당의 색깔 공세라고 반발했다. 이석기 후보 측은 “민혁당 사건은 10년 전에 이미 끝난 사건인데 이를 선거 시기에 다시 들춰내는 것은 정략적인 색깔 공세”라고 반박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도 “선거 때가 되니 새누리당의 고질병이 도졌다”며 “낡은 색깔론을 지금이라도 걷어치우라”고 요구했다. 한 대표는 “이번 총선은 민생 대(對) 색깔론의 대결”이라고도 했다.
이와 같은 소식은 조선일보도 6면 기사 에서 전했다.
보수논객 복거일, 여성비하 발언 ‘폭격’
소설가이자 대표적 보수 논객인 복거일씨(66·사진)가 이화여대 초청강연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성차별 발언을 쏟아내 학생들이 반발하고 있다.


▲ 경향신문 29일자 10면 기사

이화여대에 따르면 복씨는 지난 21일 이화여대 행정학과 수업인 ‘규제행정론’에 초청돼 특강 도중 “여성은결혼을 했어도 언제나 혼외정사의 의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성을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씨는 “이 때문에 여성이 ‘시집간다’는 표현이 있으며 여성의 시집살이는 남성의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말했다.
복씨는 또 “여성을 힘들게 하는 시집살이는 여성이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하며 성적인 관계를 남편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복씨는 여성이 화장하는 이유에 대해 “남성에게 섹스 어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성은 유전자적으로 젊고 어린 여성을 원하기 때문에 여성은 최대한 어려 보이려고 화장을 한다. 얼굴에 분을 바르고 빨간색 루즈를 발라서 생기 있어 보이게 하는 것이 화장의 목적”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씨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내용은 ‘진화생물학’에 나오는 가족의 기원을 설명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MBC 김재철 사장 해임안 부결
MBC 방송문화진흥회 임시이사회가 김재철 사장의 해임안이 올라왔지만 여당추천 이사 6명이 모두 반대해 결국 안건이 부결됐다.


▲ 한국일보 29일자 6면 기사

표결 직후 야당추천 이사 3명은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만큼 향후 일정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MBC 노조는 “방문진이 MBC 정상화를 위하 최소한의 의무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꼭두각시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