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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1일 화요일

‘불법사찰 대통령에 보고’ 검찰에 진술했었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11일자 기사 '‘불법사찰 대통령에 보고’ 검찰에 진술했었다.

ㆍ지원관실 직원 조서 공개

‘민간인 불법사찰’ 재판에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51)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비선보고 사항을 ‘VIP(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했다는 지원관실 직원의 진술이 공개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선보고’의 정점에서 지원관실 보고를 받아왔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수사결과발표 때 “이 대통령이 보고받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8부(심우용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전용진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팀원의 검찰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법정에 제시된 조서를 보면 전씨는 검찰에서 “한국전력공사 신재현 에너지·자원 협력대사 관련 동향보고는 박영준 당시 국무차장의 지시로 했다”며 “당시 작성한 파일을 보면 비고란에 ‘박영준 차장 보고 시 인사개입정보 등을 추가해서 VIP께 보고하라고 재지시’라고 기재돼 있다”고 진술했다. 신재현 전 에너지·자원협력대사(김앤장 변호사)는 이명박 대선후보캠프에서 민정특보를 맡았던 인물이다.

전씨의 검찰 진술은 신 전 대사에 대한 동향파악이 정식 보고라인이 아닌 박 전 차관의 ‘하명’으로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이어 다시 ‘비선’으로 보고받은 박 전 차관이 “정보를 추가해 대통령께 보고하라”고 재차 하명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탈법적인 지원관실 사찰활동의 결과물이 박 전 차관을 거쳐 이명박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전씨는 이어 검찰에서 “출처란에 ‘박차’라고 적혀 있고, 비고란에는 ‘재지시’가 적혀 있어 이 건이 박영준 차장의 지시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며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이 박 차장에게 다녀온 후 지시사항을 전달했고, 다른 직원도 박 차장의 지시라고 말해줬다”고 진술했다.

지원관실 직원들이 이 대통령의 최측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75)을 통해 구명 활동을 벌였었다는 진술도 공개됐다.

이날 법정에서 제시된 검찰 진술조서에서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은 “이인규 지원관에 대한 교체설이 나오자 김충곤 지원관실 점검1팀장이 최 전 위원장을 직접 만나서 ‘이인규를 지원해달라’고 부탁한 사실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피고인 신문과 결심공판은 12일 열린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2012년 6월 14일 목요일

檢, 불법 사찰 윗선은 박영준…그 말을 믿으라고?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13일자 기사 '檢, 불법 사찰 윗선은 박영준…그 말을 믿으라고?'를 퍼왔습니다.
500건 중 세 건만 기소…MB·임태희·권재진은 면죄부

민간인 사찰 및 은폐 사건의 윗선은 없었다. 부실수사로 질타를 받은 후 재수사에 나선 검찰이 13일 내 놓은 결과물이다. "일심으로 VIP께 충성"한다는 내용의 활동 지침이 드러났고, 국회의원 10명, 고위공직자 8명, 전현직 지방자치단체장 5명에 대한 사찰 정황이 공개됐으며, 약 500건의 사찰 문건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단 세 건의 사찰만 문제삼았다.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몸통"이라고 호통쳤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박영준 전 국무차장을 직권남용 등으로 추가 기소했을 뿐이다. 이영호 전 비서관, 박영준 전 차장 등은 금품을 받고 불법 사찰을 지시한 것이 확인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임태희 대통령실장, 이명박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의혹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줬다. 입막음 용으로 '윗선'에서 내려보낸 관봉 5000만 원 등 수억 원에 달하는 금전 거래와 관련된 은폐 의혹은 손대지도 못했다. 은폐 의혹이 일던 당시 민정수석을 지내 '몸통'으로 지목당한 권재진 법무부장관은 해외로 출장을 나갔다. 여론의 압박에 못이겨 나선 재수사마저 총체적 부실 수사로 귀결된 셈이다.

▲ 불법사찰 '몸통'으로 의심받는 이명박 대통령과 권재진 법무부장관 ⓒ청와대

500건 중 세 건만 기소…박원순.이건희 등은 '단순 동향 파악'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은 13일 지난 3개월간의 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3월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이 2010년 검찰 수사 당시 청와대의 증거 인멸 등을 폭로한 후 재수사에 나선 지 3개월 여 만이다.

핵심 쟁점은 불법 사찰 대상이 어디까지였는지, 불법 사찰 지시 '윗선'이 누구인지, 은폐 의혹에 가담한 '윗선'이 누구인지 등이다.

검찰은 사찰 문건 500여 건을 분석했지만, 울주군 산업단지 개발 사업과 관련된 울산시 공무원 사찰, 부산 상수도사업본부의 관련 청탁 및 K건업 사찰, 칠곡군수 사찰 등 세 건만 범죄가 성립된다며 이들에 대한 사찰을 지시했던 박영준 전 차장, 이영호 전 비서관 등 두명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용훈 전 대법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엄기영 전 MBC사장 등에 대한 사찰 정황도 포착했지만 "단순 동향 파악"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사찰 대상자로 지목당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등 20명이 넘는 인사들에 대한 문건은모두 단순 동향 파악일 뿐이며, 구체적인 사찰 내용이 없거나, 불이익을 줬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사찰 보고 윗선은 민정수석실 '왕따' 시킨 박영준

불법 사찰 보고의 '윗선'은 박영준 전 차장으로 귀결됐다. 검찰은 "업무성격상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총리실장,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인규 전 지원관-이영호 전 비서관-박영준 전 차장으로 이어지는 비선 보고체계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은 "민정수석실에는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감찰 등 일반 공직 기강 사항만 보고했고, 특별 감찰은 별도 비선 보고를 했다. 특히 이영호 전 비서관은 직속 상관인 사회정책수석을 배제한 체 지원관실을 관리 감독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대통령실장 등에게 보고 여부와 관련해 이영호 전 비서관은 대통령실장 등에게 보고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고, 진경락, 최종석 등은 윗선 보고와 관련해 모른다고 진술했다"며 "구체적으로 민간인 사찰이 대통령실장에게 보고됐다는 여부는 확인 못했다"고 밝혔다.

즉 이명박 대통령 비방 등과 관련된 인사를 불법으로 사찰하면서, 비선 보고를 받던 이영호 전 비서관과 박영준 전 차관이 민정수석실을 포함해 대통령실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증거 인멸 윗선은 "내가 몸통이다" 이영호

검찰에 따르면 불법 사찰 은폐 의혹의 '윗선'은 박영준 전 차장이 아닌, 이영호 전 비서관으로 귀결됐다.

지난 2010년 7월 검찰 수사를 앞두고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한 것과 관련해 "박 전 차장은 증거 인멸을 공모할 시간이 없었고,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당일 이영호 전 비서관과 통화 여부도 없었고, 이영호 전 비서관이 박영준 전 차장의 개입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증거 인멸에 개입한 증거를 발견 못했다"고 발표했다.

증거인멸과 관련해 검찰은 이영호 전 비서관을 비롯해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기획총괄과장을 기소했다.

 /박세열 기자

2012년 5월 20일 일요일

밀어주고 끌어주고…화려한 독식 끝에 하나둘 감옥행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19일자 기사 '밀어주고 끌어주고…화려한 독식 끝에 하나둘 감옥행'을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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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영포라인 흥망사 

▶ 이명박 대통령의 옛 고향마을인 포항 덕실마을 어귀에는 한복 입은 이 대통령 부부를 조각한 대형 부조가 서 있다. 이 대통령과 인척관계인 한 기업인이 지난해 11월 기증한 작품이다. 조각의 주인공에 대한 고향사람들의 애정은 여전히 두터웠다. 이영두(75) 할머니는 “농사철이라 관광차가 마이(많이) 줄었다”며 “저쪽 당들이 대통령을 고마(그만) 헐뜯고 파뒤비면(파 뒤집었으면) 좋겠구먼”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따뜻한 환대를 뒤로하고 나선 귀경길 내내 저들의 소박한 자부심을 갉아먹는 영포라인의 번지르르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영포라인의 몰락사가 후대에 교훈은 될까.

방통대군 최시중·왕차관 박영준
이상득 소개로 MB와 인연
방송·실권 움겨쥐고 탄탄대로

“VIP께 일심으로 충성”
“뭔가 많이 잘못됐다
”정권말 비리 발목잡혀 감옥행
이상득은 수사 선상 올라

이명박 정권은 2008년 출범 초 ‘강부자’(서울 강남지역의 부자) 또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정권으로 불렸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적확하지 않은 별명이었다. 처음부터 인구 53만명의 중소도시인 포항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된 ‘영포정권’이었다. ‘영포’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영일·포항에서 따온 말이다. 지금의 포항시는 원래 영일군이었다. 1949년 영일군의 읍에서 시로 승격한 포항시는 1973년 포항제철이 들어선 뒤 급격히 성장해, 1995년 모체인 영일군을 흡수·합병했다. 영일이 포항이자 포항이 영일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연말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영포회’ 송년회는 영포정권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90명에 이르는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의 선창으로 “이대로!” “나가자!”를 외쳤다. “이대로”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의 줄임말로,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캠프의 구호였다. 포항 출신 5급 이상 공직자인 이들은 스스로 ‘호시절’임을 실토했다. “물 좋은 때 고향 발전을 못 시키면 죄인이 된다.”(박승호 포항시장) “속된 말로 동해안에 노났다. 우리 지역구에도 콩고물이 떨어지고 있다.”(강석호 국회의원/영양·영덕·봉화·울진군)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최영만 포항시의회 의장)
영포라인의 정점에는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전 국회부의장)과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있다. 이상득 의원은 별도의 직책을 맡지는 않았지만, ‘영일대군’ ‘상왕’ ‘만사형통’으로 불릴 정도로 국정 운영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초기 내각과 청와대, 정보기관 등에는 ‘이상득 사람’이 즐비하게 포진했다. 초대 총리 한승수,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 등은 13대 국회 때부터 이상득과 아주 가깝게 지낸 인물들이다. 초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박영준과 정무1비서관 장다사로는 각각 이상득 의원 보좌관과 부의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코오롱그룹 출신인 국정원 기조실장 김주성도 이상득 인맥이다.
대선 때 엠비 캠프 ‘6인회의’의 핵심 멤버였던 최시중은 지난 4년 동안 방송통신 쪽에서 전권을 휘둘러 ‘방통대군’으로 불렸다. 정권 초반 한국방송과 문화방송(MBC), 와이티엔(YTN), 연합뉴스 사장 등 공영(성) 언론의 사장을 엠비맨으로 강제 교체했다. 또 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와 , , 에 종편채널을 무더기로 허용하고, 이들에게 각종 특혜를 줬다.
이상득 최시중이 영포라인의 ‘쌍끌이’ 기관차였다면, 박영준의 역할은 총간사였다. 박영준은 경북 칠곡 출신이지만, 1995년 국회 비서관으로 이상득과 인연을 맺은 뒤 2005년 서울시 정무국장으로 옮기면서 이명박의 신임을 받았다. 두 형제와의 10여년에 걸친 긴밀한 관계로 그는 범 영포라인으로 분류된다. 그는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시절에는 내각과 공기업 기관장 및 감사 인사 등을 총괄해 ‘왕비서관’으로 불렸다. 2009년 1월 국무차장이 된 이후에는 ‘왕차관’으로 국정의 모든 부분에 개입했다. 이영호(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이인규(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등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했던 핵심 실무자들도 박영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형제의 고향 포항에선 “분위기가 뒤숭숭”

지난 8일 찾은 포항에서 영포회원들이 왜 “이대로! 나가자!”를 희망했는지를 일부 엿볼 수 있었다. 올해 1월에 개통한 38km의 국도대체우회도로(남구 동해면~북구 흥해읍 영일만항)에는 시원스레 차들이 달렸으며, 울산~포항 고속도로(2014년 완공 예정)와 포항~영덕 고속도로(2015년 완공 예정)의 공사도 곳곳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들은 ‘형님 예산’으로 비판받긴 했지만, 철강 등 산업물동량을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 지역에서 오랫동안 요구했던 숙원사업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다지 통행량이 많지도 않은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의 4차선 도로 신설 등은 순전히 영포정권의 힘인 듯했다. 건설공사가 한창인 포항~삼척 사이의 동해중부선 철도도 경제성보다는 영포라인의 고향발전 의지가 더 많이 실린 것으로 보였다.
겉으로의 화려함과 달리 포항의 민심은 좋지 않았다. 죽도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한결같이 “장사가 너무 안된다”고 말했다. 구룡포 한 낚시집에서 만난 김아무개(45)씨는 “먹고 살기 바쁜데 이상득이든 최시중이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포항와이엠시에이(YMCA) 사무총장 서병철(47)은 “이익이 대폭 줄어든 포스코가 최근 돈줄을 졸라매는 바람에 시내 경기가 안 좋은데다가 영포라인을 둘러싼 비리 의혹에 김형태 국회의원 당선자의 성추문까지 겹쳐 시민들이 심리적으로 동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포라인의 힘은 대통령 이명박과의 관계에서 비롯됐다. 형님 이상득은 어릴 때부터 이명박 집안의 희망이자 기둥이었다. 이상득은 일본 오사카에서 1935년 이홍우(1981년 작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일본에서 자랐다. 해방 직후인 1945년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가 살던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덕실마을·당시는 영일군)에 첫발을 디뎠다. 그때 이명박은 4살이었다.
이상득은 공부를 매우 잘했다. 포항중학교 시절에 줄곧 선두를 다퉜으며, 동지상고(현 동지고) 졸업 때는 수석을 차지했다. 가난했던 이홍우 부부는 7명의 자녀 중 이상득 뒷바라지에 매달렸다. 부부는 이를 위해 셋째 아들인 이명박의 고교 진학을 말렸으며, 이상득이 1957년 서울대(경제학과)에 입학할 즈음에는 이명박을 포항에 남겨놓고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이명박은 동지상고 야간을 겨우 마친 뒤 부모가 있는 서울로 와서도 이태원시장에서 청소 리어카를 끄는 등 궂은일을 해야 했다.
이상득이 이명박을 본격적으로 챙긴 것은 1961년 한국 나이론(코오롱)에 입사해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부터로 보인다. 이상득은 1964년 이명박이 고대총학생회장 권한대행 시절 6·3 시위 주도로 경찰의 수배를 받을 때 동생에게 도피처와 자수를 주선하는 등 보호자 노릇을 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형 때문에 어릴 때 피해를 봤다는 생각도 있지만, 코오롱에 취직한 형 덕분에 대학 시절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이 대통령은 형을 상당히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대선 직전 여러 사람이 전략가인 윤여준을 데려오자고 이명박에게 건의하자, 이명박이 “형님한테 먼저 물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고 당시 캠프 관계자는 전했다. 이상득이 윤여준을 싫어하니 미리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영포라인의 또다른 한 축인 최시중은 1937년 구룡포에서 태어났다. 구룡포는 일제시대에는 동해안 최대의 어업전진기지로 일본인 집단거류지가 크게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다. 최시중의 옛집은 일본인 집단거류지 근처에 있었다. 포항시는 일본식 가옥 80여채가 남아 있는 이 동네를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지정했다. 기자가 지난주 현지에 갔을 때 골목길 포장 등 정비작업이 한창이었다.
최시중도 어린 시절 여섯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 가장이 돼 매일매일 생존 전쟁을 벌였다. 최시중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최민석(1980년 작고)이 쌍끌이배 망루에서 고기떼를 찾다가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이명박이 어머니를 도와 죽도시장에서 엿 장사, 뻥튀기 장사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시중은 구룡포 선창가에서 어머니와 함께 호박떡을 구워 팔았다.

MB와 최시중, 불우한 어린 시절이 통했다

최시중과 이명박의 멘토-멘티 관계는 이상득을 통해 맺어졌다. 서점 점원과 입주 가정교사 등으로 힘겹게 고교(대구 대륜고)를 마치고 1957년 서울대(정치학과)에 들어간 최시중은 같은 영일 출신인 이상득을 만나 친구가 됐다. 둘은 사회에 나와서도 사무실이 광화문 근처에 있어 자주 만났다.
1970년대 중반쯤 기자이던 최시중은 유명세를 타고 있던 이상득의 동생을 만났다.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명박은 29살 나이에 이사가 되는 등 초고속 승진을 하고 있었다. 최시중은 2008년 1월 인터뷰에서 “1970년대 중반 이 부의장에게 잘나가는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번 보자고 해서 알게 됐다”며 “이 당선자 형제와는 포항이라는 지역에서 서로 최하층 바닥인생에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별로 설명이 필요 없는 사이다. 감각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득-최시중-이명박 3인의 ‘감각적 공유 관계’는 1980년대 말 이후가 되면서 ‘정치적 동지 관계’로 변한다. 이상득은 1988년 코오롱상사의 대표이사를 그만두고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다. 이를 계기로 정치부장과 정치담당 논설위원으로 있던 최시중이 정치적 조언과 자문을 하게 된다. 이런 그의 역할은 1994년 한국갤럽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계속된다. 이들과 사이가 안 좋은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조차 최시중에 대해 “오랫동안 훈련된 정치적 감각이 있어 전략적 판단이 비교적 정확했고, 흐름을 잘 짚었다”고 말했다.
최시중은 처음에는 친구 이상득을 자문했지만, 1992년께부터는 ‘이명박 키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해 대선 때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결별, 1995년 민자당 서울시장 경선 도전 등 이명박의 주요 정치적 갈림길마다 최시중이 곁에 있었다. 이명박은 15대 총선 때의 선거비용 7억여원을 누락한 사실을 폭로한 비서 김유찬을 국외로 도피시킨 것과 관련해 범인 은닉죄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1999년)한다. 이 일로 미국에 떠돌다 귀국한 이명박이 정계에 복귀할 때 서울시장 출마(2002년) 쪽으로 유도한 것도 최시중이었다. 정치공백을 단번에 만회해서 2007년 대선으로 곧바로 가자는 전략이었다. 최시중은 2006년 6월 초 갤럽 회장 신분인 상태에서 이명박 대선준비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이명박을 택한 이유에 대해 “제대로 된 대통령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정치를 안 한 한풀이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민간인 불법사찰이 처음 불거졌던 2010년 7월 검찰 관계자들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빠져나오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사찰 지휘체계 관련 문서(맨 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이명박의 정계진출 이후에는 이상득도 동생 밀어주기에 나섰다. 박영준은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일하던 박영준은 1995년 이상득 비서관으로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다. 신한국당 정책조정위원장이 된 이상득은 김우중 대우그룹회장한테 “실물경제를 알고 일을 잘하는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해서 박영준을 소개받았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영준이 일을 빨리 익혀 이상득 의원으로부터 곧 신임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2년 이명박의 서울시장 선거를 도운 박영준은 서울시에서 일하고 싶어 했으나, 이상득이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박영준은 이명박 주변 사람들에게 “평생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이 시장한테 나를 데려다 쓰게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의 증언이다. 신분 상승을 향한 박영준의 이러한 욕망은 2005년 서울시 정무국장이 됨으로써 마침내 실현됐다. 대선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이명박도 고려대 후배이자 형님 사람인 박영준을 믿을 만했을 것이다. 당시 서울시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정무적인 결정이나 논의는 이 시장이 정무국장이던 박영준과 주로 하는 등 실무적으로 신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다른 한 인사는 “박영준이 아랫사람과 티격태격 다투기만 했지 서울시에 있을 때는 별 볼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야인’ 박영준 방 앞엔 사람들의 행렬

박영준이 이명박의 눈에 찼다는 신호가 나타난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였다. 박영준은 이명박 경선캠프였던 안국포럼 때 처음에는 내근을 하다가 중간부터 외근 쪽으로 돌았다. 동서대 교수인 김대식 등과 함께 지방을 다니면서 외곽조직을 만드는 일을 했다.
내부 사정을 아는 한 인사는 “당시 박영준이 비서실장 비슷하게 설치다가 선배급 인사들한테 혼이 난 뒤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깥으로 나돌았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때 만든 조직은 본선 때 선진국민연대로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지방 강연 등을 다니면서 박영준 조직원들의 환대를 경험했던 이명박은 2007년 8월20일 경선에서 박근혜를 이긴 날 용산빌딩에서 해단식을 하면서 딱 두 사람의 이름을 들었다. 이명박은 “얼굴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고생했다”며 박영준과 김대식을 칭찬했다.
이후 박영준의 행로는 탄탄대로였다. 17대 대선 다음날인 2007년 12월20일 아침 이명박은 가회동 자택으로 박영준을 불러 인수위 비서실을 총괄하라고 지시했다. ‘실무적 총괄’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었지만, 박영준에게 본격적인 힘이 실리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인수위 초반 실세는 이명박의 오른팔이었던 정두언이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정두언은 인수위 인선을 도맡아 했다. 박영준을 비서실 총괄팀장에 넣어준 것도 정두언이었다. 대선 다음날 박영준이 정두언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선진국민연대 사람들을 많이 챙겨달라”고 부탁하자, 정두언이 “그럼 당신이 들어와서 직접 하라”며 총괄팀장 자리를 맡겼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포라인이 권력을 독점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재오·정두언 등 수도권 라인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수위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두언이 몰락하기 시작한다. 당선자와 같은 층에 있던 정두언의 사무실이 다른 층으로 옮겨갔다. “호남 사람이다, 아내가 그림 장사로 떼돈을 벌고 있다는 등의 각종 음해가 영포라인으로부터 쏟아졌고, 이에 대해 당선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스스로 뒤로 빠졌다”고 정두언은 말했다. 하지만 정두언이 이명박 형제의 눈 밖에 난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었다. 그즈음 그는 이명박한테 불려가 1시간 동안이나 심하게 야단을 맞았다. 당시 국세청장이던 한상률한테 이전 정권 때 국세청에서 만든 ‘이명박 형제 파일’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해 “왜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는 질책을 받은 것이다. 자신들의 약점이 정두언의 손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했을 것이라는 게 인수위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정두언이 떠난 대신 박영준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자리매김됐다. 박영준은 정두언 사람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자기 사람을 심고는 조각 작업을 홀로 진행했다.
박영준은 ‘권력 사유화’의 주역이라는 정두언의 공격을 받고 2008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와대를 떠났지만, 영포라인이 떠받치는 그의 힘은 약해지지 않았다. 공기업 간부를 했던 한 인사는 “당시 용돈에 보태 쓰라고 100만원이 든 봉투를 들고 박영준을 위로하러 간 적이 있다”며 “그가 당시 거주하다시피 한 강북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위층의 일식당으로 오라는 연락이 와서 갔더니 여러 사람이 대기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영준은 야인 시절인 이때 포스코 회장 후보들인 정준양, 윤석만을 만나 사실상의 ‘면접’을 하는가 하면, 포스코의 배후 실력자인 박태준 부부와도 만나 포스코 회장 선임을 자신의 뜻대로 주도한다. 이명박 형제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이상득 의원은 포항이 지역구임에도 과거 정권 때 포스코로부터 냉대를 많이 받아 한이 많았다. 따라서 포스코는 이 의원의 관할구역이라고 봐야 한다”며 “박영준은 에스디(SD·이상득 약칭)의 뜻을 수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포라인 비리 수사는 이제부터 시작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영포라인의 국정 농단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이 기구는 형식적으로는 총리실 산하에 있었지만, 기획총괄과장 진경락이 작성한 문건에 있듯이 “브이아이피(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비선을 통해 총괄 지휘”가 이뤄졌다. 충성하는 비선은 곧 영포라인이었다. 청와대에는 고용노사비서관이었던 이영호와 그의 아래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던 최종석은 포항 출신이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었던 이강덕도 포항이 고향이다. 청와대 하명을 받아 민간인 불법사찰에 직접적으로 연루됐던 공직윤리지원관 이인규를 비롯해 김충곤(점검1팀장), 김화기(점검1팀 조사관) 등 윤리지원관실의 핵심인물들도 모두 영포라인이다. 진경락도 포항 문화권인 경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이영호 및 이인규와 각각 청와대와 노동부에서 같이 일해 손발을 맞춘 준영포라인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운영의 몸통이라고 자처한 이영호는 애초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이명박, 박영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시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융노련 조직본부장 등을 지낸 이영호는 서울시의 노정협의 과정에서 이명박과 처음으로 만났다. 구룡포 출신의 그는 업무 과정에서 정무국장이던 박영준과도 영포를 고리로 쉽게 가까워졌다. 특히 그는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의 정책협의를 성사시키면서 이명박의 눈에 들었다. 2009년 9월 청와대에서 다른 비서관실 행정관에게 욕설을 퍼붓고, 이를 말리던 정책실장 윤진식 등에게도 큰소리를 칠 정도로 행패를 부릴 수 있었던 배경이 이때 형성됐다. 노동부 감사관을 지낸 이인규는 최시중의 줄을 잡았다. 구룡포 출신의 한 인사는 “이인규가 대선 승리 이후에 최시중을 찾아가서 청와대 근무 등 인사 청탁을 했다”며 “그 결과 총리실로 갔는데 그 줄이 동아줄은커녕 썩은 줄이었다”고 말했다.
영포라인의 독식과 전횡은 과거 어느 정권의 실세그룹보다 화려했지만 몰락도 처참하다. “물이 넘치면 제방이 되고, 바람이 불면 병풍이 되겠다”며 이명박 지킴이를 자처하던 최시중은 지난달 “뭔가 많이 잘못됐다”는 말을 남기고 감옥에 갔다. 국회의원 보좌관에서 이명박 정권 최고 실세로 화려하게 변신했던 박영준도 지난 8일 구속됐다. 그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언론 인터뷰에서 “감방 갈 일 안 했다”고 큰소리쳤으나, 결국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최시중과 박영준은 각각 국외 도피중인 ‘폭탄’도 여전히 안고 있다. 최시중의 양아들로 돈심부름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정용욱(방송통신위원회 정책보좌역)과 박영준의 돈 관리인이라는 의혹을 사는 이동조(제이엔테크 회장)가 들어올 경우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아무도 모른다. 영포라인의 실무자들인 이영호, 최종석, 김충곤 등도 모두 쇠고랑을 찼다. 또 ‘영일대군’ 이상득도 비서 계좌에서 나온 7억원 괴자금과 저축은행 의혹 건 등으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본인들만 몰랐을 뿐 몰락의 씨앗은 이미 영포라인이 형성될 때부터 내부에서 싹트고 있었다. 최시중에게 파이시티의 돈을 전달했던 브로커 이동률씨는 구룡포 및 고교 후배로 최시중의 오랜 측근이었다. 이동률은 박영준도 서울시 시절부터 소개받아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한 청탁을 수시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동조도 이상득 보좌관 시절부터 박영준을 포항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준은 이동조를 포스코 회장 면접 때 데리고 감으로써 포스코 쪽에 알아서 하라는 ‘신호’를 줬다. 영포라인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비밀 거래가 오래된 셈이다.
영포라인의 부패를 설명해줄 수 있는 다른 단초는 청계천 공사 초기의 일화다. 어느 휴일 이명박은 서울시 고위관계자들을 청계천이 보이는 한 빌딩 사무실에 불러 회의를 주재했다. 중간 휴식 시간에 이명박은 밖을 내다보면서 “지금은 긴가민가하지만 고가가 철거되고 청계천이 복원되면 이 주변 땅값은 확 뛸 것이다. 돈을 빌려서라도 땅이나 빌딩에 투자하라”고 말했다. 당시 한 참석자의 증언이다. 불법이나 편법을 권한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의 낮은 공적 마인드를 잘 보여주는 예다. 그런 보스를 향해 ‘일심으로 충성’했던 영포라인의 비리 노출은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포항/김종철 선임기자

2012년 5월 19일 토요일

[사설] 파이시티 사건, 이 정도로 덮을 건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18일자 사설 '[사설] 파이시티 사건, 이 정도로 덮을 건가'를 퍼왔습니다.
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비리를 수사해온 검찰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어제 이 사건과 관련해 모두 5명을 형사처벌했다는 내용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사실상 수사를 일단락지었다.
이번 수사는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들의 비리 혐의를 확인해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는 점에서는 일단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권력 실세들의 파렴치한 면모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공직자로서의 공인 의식이나 검은돈에 대한 경각심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 최 전 위원장은 브로커 이아무개씨를 통해 파이시티 쪽으로부터 매달 5000만원씩을 정기적으로 상납받았으며,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를 직접 만나 돈을 챙긴 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억6000여만원의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전 차관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근무할 때도 강철원 당시 서울시 홍보기획관한테서 파이시티 관련 업무 보고를 받을 정도로 권력을 사유화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된 숱한 의혹을 감안하면 검찰 수사는 변죽만 울리다 끝낸 셈이다.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의 배후 몸통이 누구인지 등 사건의 핵심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했다. 당시 서울시 실무 공무원들이 완강히 반대하는데도 파이시티 인허가가 순풍에 돛 단 듯이 진행된 것은 막강한 힘을 지닌 ‘윗선’이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기업이 돈을 벌면 배 아프냐”는 말을 하는 등 파이시티 인허가에 매우 호의적이었다는 당시 서울시 공무원들의 증언도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최시중·박영준 두 사람의 단순한 뇌물수수 사건으로 성격을 축소해버리고 판도라의 상자를 서둘러 덮어버렸다.
최시중·박영준씨가 검은돈을 챙긴 것이 단순히 파이시티 한 곳뿐이겠느냐는 의혹도 여전히 남는다. 박 전 차관이 코스닥 상장업체 쪽으로부터 산업단지 승인 청탁 명목으로 1억원을 받은 혐의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포착됐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크다. 에스엘에스(SLS) 그룹 로비 사건을 비롯해 그동안 터져나온 숱한 권력형 비리의혹 사건에서 두 사람의 이름은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정권 실세들과 포스코의 유착관계 등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조명받았으나 검찰 수사는 전혀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현 정권 실세들의 부정비리 단죄에 대해 검찰이 이 정도로 만족한다면 너무 실망스럽다.

2012년 5월 12일 토요일

박영준, MB대선캠프 사무실서 수천만원 쇼핑백 받아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11일자 기사 '박영준, MB대선캠프 사무실서 수천만원 쇼핑백 받아'를 퍼왔습니다.
신재민 '안국포럼' 운영비 10억 의혹 이어…MB대선자금 출처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 사무실에서 돈이 담긴 쇼핑백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11일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대검찰청 중수부(최재경 부장)는 브로커 이동율 씨로부터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 수차례에 걸쳐 서울 종로구의 안국포럼 사무실 등지에서 박 전 차관을 만나 파이시티 이정배 전 대표가 준 수표, 현금 수천만 원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또 이 씨의 운전기사였던 최 모 씨는 이 씨가 박 전 차관을 만나는 자리에 동행했으며 박 전 차관이 안국포럼 사무실로 들어갈 때 돈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쇼핑백을 들고가는 것을 봤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검찰에 출두하는 박영준 전 차장. ⓒ뉴시스

안국포럼은 2006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후 대선을 준비하던 핵심 캠프 역할을 했다. 서울 견지동 안국빌딩에 둥지를 튼 이 포럼에서 '한반도 대운하 구상' 등 각종 핵심 공약들이 나오기도 했다. 안국포럼 멤버들은 AF000 등 번호를 매겼다. 이명박 대통령이 1번이었고, 박영준 전 차관이 6번으로 포럼 핵심 역할을 맡았었다.

박 전 차관이 안국포럼 사무실에서 돈을 받은 게 맞다면, 이 돈의 용처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대선 자금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현재 박 전 차관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된 이동조 제이앤테크 회장의 차명 계좌에서 발견된 이정배 전 대표의 수표 2000만 원이, 당시 안국포럼에 있던 박 전 차관에게 흘러간 돈의 일부분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자금 세탁을 위해 박 전 차관이 이 회장에게 사실상 수표를 건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안국포럼이 문제가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이국철 SLS 그룹 회장의 폭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측근이고 안국포럼에서 활동했던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안국포럼 운영비가 필요하다"고 요구했고, 이국철 회장이 10억 원을 줬다고 한다. 검찰은 이 폭로의 진위를 가리지 않았었다.

안국포럼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자금' 출처에 대한 의혹도 증폭될 전망이다. 앞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2006년, 2007년 이동조 씨에게 받은 돈을 대선 여론조사 등에 사용했다고 밝혔었다.

검찰은 또 박 전 차관이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서 물러난 후 야인 생활을 할 때인 2008년에도 이 씨를 통해 파이시티 측 돈을 받았다는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세열 기자 

2012년 5월 9일 수요일

'영포라인' 비자금 들통날라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5-09일자 기사 ''영포라인' 비자금 들통날라'를 퍼왔습니다.
박영준 '자금줄' 이동조 해외로 도피시켜 …"현정부 비리의 핵"

▲ 이동조 회장. ⓒ News1 최창호 기자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으로 지난 7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을 해외로 도피시킨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8일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는 최근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박 전 차관이 지난달 24일 저녁 대포폰으로 이 회장과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박 전 차관은 대포폰을 사용 중이었으며, 이 회장이 직접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달 25일 중국으로 출국했고, 중국에 도착후 박 전 차관과 다시 통화했다. 이날은 검찰이 박 전 차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날이다.
앞서 포스코 협력업체 제이엔테크를 운영하는 이 회장은 파이시티 사건 초기 박 전 차관의 이른바 '자금줄', '비자금 관리인' 등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또 그는 포항고 총동창회장, 프로축구팀 포항 스틸러스 후원회장 등을 역임한 '영포라인'(영일·포항 출신 공직자 등) 핵심.
그렇기에 일부 언론은 '이 회장이 영포라인의 모든 비자금을 관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이 회장의 계좌를 추적함과 동시에 귀국을 종용하고 있으며, 귀국 즉시 소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를 본 트위터 여론은 "뭔가 이상했다. 무슨 영화 같은 느낌이다", "무슨 범죄조직 계도 같다", "더러운 입들 맞추는데", "똥통에 빠졌다 나왔는지 움직일 때마다 냄새가 난다", "박영준을 보면 조직폭력배 같은 느낌. 그 오야붕이 누군지 궁금하다", "솔직히 검찰도 설렁설렁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종삽으로 살짝만 땅을 걷어냈는데 유전이 터졌다. 검찰도 당황했을 듯" 등 비판이 잇따랐다.
한편, 일부 트위터리안들은 "박영준이 이동조에게 도망가라고 시켰다. 다음날 압수수색이 있는 줄 알았나?"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지난달 24일은 검찰이 박 전 차관을 압수수색하는 등 공개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이에 검찰 내부 혹은 정부 내 동향을 박 전 차관에게 전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
이는 앞서 박 전 차관이 대구 선거사무실 자료를 검찰의 압수수색 직전 경북 칠곡에 있는 형의 가게로 옮겨놓은 것이 발각됐을 때도 제기됐다.
일부 여론은 현정부의 비리의혹이 '영포라인'이 주축이었다면서 질타가 쏟아졌다.
"박영준, 최시중, 이동조, 이상득, 이동률 등 모두 모두 영포라인이다. 파이시티에 연루된 존재들. 이 계보가 완성되려면 이명박이 들어가야 한다", "현 정부의 부정부패는 무궁무진한 광맥이자 지하자원. 영일과 포항이 노다지", "잡배들로 인해 포항과 영일이 개 욕을 처먹고 있다", "이동조가 영포라인 모임에 갔다. 일개 포스코 협력업체 회장이. 답은 나온 듯"
한 네티즌은 "현 정부 들어 제이엔테크로 들어오는 포스코의 물량이 늘어났다. 2006~2007년 평균 매출이 25억 원에 그쳤는데, 지난해 매출은 100억 원으로 훌쩍 뛰었다. 포스코의 일감 몰아주기이다. 현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일까? 아! 제이엔테크 이동조 사장은 포스코 납품 도시락 업체 '좋은 도시락'도 운영 중이다"라면서 현 정부와 이 회장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5월 4일 금요일

[사설] 검찰,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의 ‘몸통’을 찾아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03일자 사설 '[사설] 검찰,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의 ‘몸통’을 찾아라'를 퍼왔습니다.
대검 중앙수사부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비리사건 수사가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다. 그동안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구속하는 등 검찰 수사가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그간 제기된 여러 의혹에 비춰보면 이번에 세 사람에게 적용된 혐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아직 검찰이 밝혀야 할 내용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우선 박영준 전 차관과 관련해서는 단순히 파이시티 사건을 둘러싼 비리 의혹뿐 아니라 비자금 자체에 대한 본격 수사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 박 전 차관의 돈을 세탁해준 것으로 알려진 제이엔테크 이아무개 회장의 계좌에서 수상한 뭉칫돈이 발견된 이상 국외에 체류중이라는 이유로 그를 조사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어렵게 됐다. 검찰로서는 사실상 자금관리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 회장 소환조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자금 사용처 등의 규명은 물론 포스코와의 유착 여부 등 다른 비리 의혹도 제대로 밝혀낼 수 있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도 파이시티 이정배 전 대표한테서 8억원을 받은 사실 이외에 인허가 과정에서 어느 정도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의 접촉은 없었는지 등 밝혀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인허가 과정에서 핵심적 영향력을 행사한 배후의 몸통이 누구냐 하는 점이다. 당시 서울시 실무자들은 물론 도시계획위원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적잖았는데도 결국 용도변경이 이뤄지고 이후 건축허가까지 났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행적을 둘러싼 최근 보도들이 눈길을 끈다. 보도를 보면, 2005년 9월 파이시티 문제를 다루기 위한 서울시 정책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실무진이 용도변경을 해줄 경우 특혜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고 우려하자, 그는 “기업이 돈을 벌면 배아프냐”고 말하는 등 파이시티 사업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사업을 추진하도록 했다고 한다. 결국 그가 퇴임하기 50일 전에 용도변경이 이뤄진 것도 이런 배경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올 만하다. 최근 진행중인 서울시의 자체 조사 과정에서 나온 시 공무원들의 발언이라니 허투루 넘길 일은 아닌 듯하다.
당시 서울시 정무국장이던 박 전 차관이 아무리 실세라 해도 공무원들의 반대를 뚫고 혼자 힘으로 이를 관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검찰이 이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헤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2012년 5월 3일 목요일

최시중은 정(政)·경(經)·관(官)·언(言)의 비리 복합체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5-03일자 기사 '최시중은 정(政)·경(經)·관(官)·언(言)의 비리 복합체'를 퍼왔습니다.
[정상모의 흥망성쇠] 망국적 부패 구조 청산은 낙하산 사장 철수에서 시작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구속되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알선수재 혐의를 받고 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검찰 수사가 이상득 의원 등 이명박 정권의 실세로까지 번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대통령 부인의 사촌 언니, 오빠가 감옥에 간 것은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했다. 형의 보좌관은 수억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되고, 그의 ‘양아들’도 같은 혐의로 해외도피중이다.

2007년 대선 때 최시중, 이상득 등과 함께 6인 원로회의의 일원이었던 박희태 국회의장이 돈봉투 파문으로 물러났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각종 비리와 부패 의혹 때문에 19대 총선에 나서지도 못했다. 청와대 홍보수석과 문화체육부 차관은 업자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 친인척, 측근, 멘토, 실세들이 줄줄이 사법처리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의 부패 고리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지금까지 알려진 이명박 정권 주변의 부패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에 만연한 종합적 부패구조의 한 쪽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관행처럼 도덕성을 강조하며 부패 청산을 다짐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자처했다.

그럼에도 부패 청산의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정, 부패, 비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마치 ‘부패 박람회’라도 열린 것처럼 온갖 종류의 부패 사례들이 선을 보이는 꼴이다. 

어느 정부나 요란하게 부패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제도적 장치도 갖추지 않고 일관성도 없이 즉흥적으로 진행함으로써 모두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심지어는 정치적 사정에 따라 정략적으로, 또는 정치적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리 수사의 칼을 악용하지 않았던가. 

이명박 대선캠프의 핵심 실세였던 최 전 위원장이 ‘대선자금’ 얘기를 꺼내자 세상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라 부담을 느낀 것인지, 검찰은 벌써부터 ‘꼬리 자르기’ 수사 쪽으로 움추리는 모습이다.

한상대 검찰 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 등이 회의에서 “이번 수사는 대선자금 수사가 아니라 인허가 로비 수사”로 규정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개탄할 일이다.

단순히 검찰에 대한 불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이 망국적인 부패구조의 척결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이를 방치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과거 경제발전 과정에서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는 사회의식과 관행이 ‘미풍양속’처럼 합리화되기도 했던 ‘백색부패(白色腐敗)’가 어느덧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됐다. 정치인, 관료 등 사회의 모든 계층에 풍토병처럼 번진 부패문화를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가. 

1960년대 초 박정희 군부정권은 권력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군부와 기술 관료, 재벌의 연합적인 지배 구조를 만들어 특혜와 비자금을 주고받는 먹이사슬의 정경유착적 부패구조를 형성했다. 권력층이 정경유착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재벌을 돕고 뇌물을 받는 패거리 자본주의가 성행하기에 이르렀다.  

지배 구조의 기득권층은 국민의 삶의 기반인 각종 산업과 국책사업을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주물렀고, 대규모 부정축재를 빈번하게 저질렀다. 국부는 특권 부유층에 돌아가고, 일반 국민들은 부당한 지배를 받는 피해계층 신세가 되고 말았다.

기득권층의 여당은 권력을 유지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야당을 탄압하고 자기 당을 확대하며 유권자들을 조직, 동원하기 위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거두어 들였다.

정치부패가 어찌 생기지 않겠는가. 갖가지 특혜를 둘러싸고 뇌물, 급행료, 부정한 로비를 위한 비자금 등의 비리 사건들이 건듯하면 터진다.

박정희 정권 시기인 1963년 선거 때에도, 4대 의혹사건, 설탕·밀가루· 시멘트 삼분 폭리 사건들이 터졌다. 여당의 선거자금과 직접 관련됐다는 게 통설이다.

종합적인 부패구조의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의 한보 부도사건이다. 정치, 경제, 관료계는 물론이고 언론까지 망라된 구조적인 검은 커넥션이었다. 

이 사건으로 대통령의 차남이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기업들이 무너지고 IMF 위기를 맞게 된 게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였는지 모른다. 

최시중 전 위원장의 구속은 구조적인 검은 커넥션의 상징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정(政)·경(經)·관(官)·언(言)의 검은 복합체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 소유의 언론사들, 대기업체들의 민간방송 진출로 언론이 종합적인 부패구조의 복합체가 돼 버렸으니,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겠는가.  부패구조, 부패문화의 청산을 위해서는 언론의 기능이 필수적인데, 언론 자체가 부패구조의 복합체라면, 이야말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조선말기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세도정치의 부패로 망국의 화를 입지 않았던가. 망국적인 부패구조, 부패문화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제4부로서의 언론을 올곧게 세우는 일이 절대적인 과제다. 언론이 부패구조의 복합체에서 벗어나 권력과 자본을 감시, 비판하고, 나아가 부패구조의 청산에 앞장서도록 해야 한다.

오죽하면 방송인들이 편파방송 중단과 ‘낙하산 사장’ 퇴출을 부르짖으며 방송사상 처음으로 연대파업을 벌이겠는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는 부패구조 복합체를 위해 앞장서온 방송사의 ‘낙하산 사장’, ‘하수인 사장’들을 하루빨리 정리하는 일이다. 

정부와 여당이 부정부패를 계속할 요량이 아니라면, 이들 사장들을 퇴출시킴으로써 부패구조 척결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부패구조 복합체의 청산은 우리의 미래가 걸린 국가차원의 문제로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정상모(평화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 media@mediatoday.co.kr  

MB “기업이 돈 벌면 배 아프냐”


이글은 경향신문 2012-05-03일자 기사 'MB “기업이 돈 벌면 배 아프냐”'를 퍼왔습니다.
2005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복합물류시설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기업(파이시티)이 돈을 벌려고 사업을 하는 것 아니냐. 기업이 돈 벌면 배 아프냐”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시장은 서울시 실무진이 ‘화물터미널 부지를 복합물류시설로 변경하는 과정에 특혜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자 이같이 말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2일 “파이시티 인허가에 관여한 서울시 공무원들을 상대로 당시 상황을 정밀 조사한 결과 이 시장의 정책회의 발언이 구체적으로 나왔다”면서 “이 조사 결과는 박원순 시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공식 발언이나 입장이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시장은 2005년 하반기 파이시티 인허가를 둘러싼 문제가 서울시의 현안으로 부상하자 두차례 정책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이 시장은 도시계획국 및 교통국을 중심으로 한 서울시 간부들이 참석한 1차 회의에서 고위간부 ㄱ씨가 “파이시티 사업을 허가해주면 특혜 의혹이 불거질 수 있다”고 보고하자 “기업이 돈 벌려고 사업하는 것 아니냐. 기업이 돈 벌면 배 아프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회의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 시장은 또 실무진이 “파이시티의 사업계획안대로 하면 대규모 점포가 허용되고 교통대란이 불가피하다”고 건의하자 “양재화물터미널 사업은 현재 추진 중인 도시물류기본계획에 따라 처리하라”면서 짜증을 냈다고 한다. 

문제가 된 파이시티의 사업계획안은 화물터미널 면적(3만9800㎡)의 4배가 넘는 대규모 점포가 포함돼 있어 특혜 시비가 불가피했다. 이 시장 발언은 화물터미널을 복합유통단지로 개발할 수 있도록 변경하는 도시물류기본계획의 취지에 맞게 파이시티 사업을 허용하라는 취지로 실무진은 받아들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회의 석상에서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이 시장의 말 한마디가 너무 강렬해 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몇년 전 일이라 대부분 공무원들이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 시장의 발언이 워낙 강한 어조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는 이날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과 함께 수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52)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3일 중 박 전 차관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박 전 차관은 이날 “언론에 사실과 다르게 보도된 부분이 많다”며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된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59)에게 중국에서 귀국해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구교형 기자 chooho@kyunghyang.com

2012년 4월 28일 토요일

최시중이 시인한 '대선자금', 검찰은 모른척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27일자 기사 '최시중이 시인한 '대선자금', 검찰은 모른척'을 퍼왔습니다.
검찰, 수사 의지 있나?…최시중·박영준 자금 용처 밝히면 될 일

검찰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대해 알선수재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과 관련해 비판이 일고 있다. 최 위원장이 직접 "돈 받아서 대선 여론조사용으로 사용했다"는 취지로 발언했지만,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검찰이 MB 대선 자금 수사는 피해가겠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진표 원내대표 이춘석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등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 5명은 27일 오후 대검찰청을 방문해 최 전 위원장에 대한 엄정 수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채동욱 대검 차장을 만난 자리에서 "최 전 위원장에게 정치자금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항의했다. 채 차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서 수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고 이춘석 의원이 전했다.

신경민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피의자 최시중이 대선 자금이라고 말하는데도 검찰은 부득불 알선수재혐의를 적용했다"며 "제대로 된 검찰이라면 피의자 최시중의 진짜 혐의와 검찰이 이미 알고 있을 다른 엄청난 그에 관한 범죄에 대해 수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대선 자금 수사를 촉구했다. 신 대변인은 "피의자 최시중이 마땅히 가야할 곳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벼운 혐의만으로 그곳에서 적당히 몸을 숨겨서는 안 된다. 정의가 살아있다면 그가 저지른 죄를 마땅히 다 치러야 한다"고 비판했다.


 ▲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 ⓒSBS 화면 캡쳐

대선자금 수사? 어렵지 않은데…최시중, 박영준 자금 용처 밝히면 될 일

현재 최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이정배 전 대표 및 브로커 이동율 씨에게 양재동 파이시티 인허가 관련 청탁을 받고 수 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알선 수재로 보는 이유다.

문제는 최 전 위원장은 검찰 출석에 앞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동율 씨에게) 돈을 받아 대선 여론조사 등에 사용했다"고 밝힌 부분이다. 이 발언이 대선 자금을 받아 썼다는 얘기로 해석되면서 이명박 대통령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한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에 관심이 쏠렸지만, 검찰은 최 전 위원장의 증언을 사실상 묵살해 버렸다.

검찰이 일단 '정치자금 수사'와 선을 그었지만, 이 대통령 대선 자금 수사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특히 최 전 위원장과 함께 이정배 전 대표로부터 '스폰'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검찰이 대선 자금을 건드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전 대표는 2007년 6월부터 2008년 5월까지 박 전 차관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밝혔다. 당시 박 전 차관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 선대위 네트워크팀장을 맡았었다. 안국포럼 등 이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전방위적으로 활약하던 시기다. 이 전 대표가 박 전 차관에게 건넨 돈이 선거 자금으로 일부 쓰였다는 정황이 포착될 경우, 곧바로 대선 자금 수사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최 전 위원장에 대한 "검찰의 꼬리자르기 수사"라는 식의 비판이 확산될 경우 여론에 떼밀린 검찰이 최 전 위원장의 대선 자금 수수 발언의 배경을 다시 들여다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혁세는 조사, 권재진은 봐주고?…검찰, 수사 의지 있는가

문제는 검찰의 수사 의지다. 민주당 신경민 대변인은 이날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 법무장관은 최 전 위원장으로부터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 경찰 수사 무마 청탁 전화를 받았다는 진술이 나와 있어 오히려 필수 조사 대상일 뿐"이라며 "권재진 장관과 한상대 총장 등을 수사에 적합한 인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파이시티 사건에 연루돼 있는 권 장관이 법무부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 검찰은 최시중 전 위원장으로부터 청탁 전화를 받은 권혁세 금융위원장은 조사해놓고 권 장관에 대한 조사는 미적대고 있다.

이정배 전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최 전 위원장에게 5000만 원~1억 원의 현금이 담긴 쇼핑백을 직접 전달하며 파이시티 인허가 관련 청탁을 했고, 최 전 위원장은 권재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최시중 전 위원장이 권재진) 민정수석에게 직접 전화를 제 앞에서 했다. 만날 약속까지 하는 것을 제가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전 위원장과 권 장관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권혁세 원장은 최 전 위원장에게 전화를 받았음을 시인했다. 권 원장은 "지난해 11월 최 전 위원장이 '파이시티'와 관련해 신중하게 처리해 달라는 전화를 했다"며 "다만 원칙에 따라 이미 처리된 사안이었고, 이후 (이와 관련해) 다시 연락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청탁 전화를 분명히 받았다는 것이다.



/박세열 기자

“박영준이 파이시티 인허가 독촉”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28일자 기사 '“박영준이 파이시티 인허가 독촉”'을 퍼왔습니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지난해 12월 에스엘에스(SLS)그룹한테서 해외출장 중 접대를 받은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러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05년 서울시 관계자 “긍정의견 내달라고 요구
”다른 간부도 “당시 공무원들 시간끌며 압력 피해”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터를 복합물류센터(파이시티)로 개발하려는 사업자한테서 금품 로비를 받았다는 혐의를 사고 있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서울시 정무국장이던 2005~2006년 파이시티 사업을 서둘러 추진하려고 서울시 소관 부서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진술이 나왔다.
서울시 전직 고위 간부는 27일 와의 통화에서 “교통 담당 부서에서 일하던 2005년 초가을께 당시 박영준 서울시 정무국장이 내 사무실로 찾아와서, ‘파이시티 사업과 관련해 부서 의견을 아직 내지 않았던데, 빨리 정리해 의견을 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전직 고위 간부는 “박 국장이 ‘인허가를 해주는 데 긍정적인 답변을 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털어놨다. 이 시기는 서울시가 서초구로부터 2004년 9월 화물터미널에 대규모 점포 입점을 허용하는 ‘시설 변경 신청’을 접수한 뒤, 교통·환경 등 관련 부서에서 검토 의견을 마련하던 때였다.
이 전직 고위 간부는 “당시 박 국장에게 ‘규모가 크고 막대한 이권이 걸린 사업이라, 영향을 차분히 따져야 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박 전 차관은 서울시 정무국장(2005년 2월~2006년 5월·계약직 가급 사회정책전문요원으로서 ‘국장급’ 대우)으로 일하던 때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2004년 서초구에 사업을 신청한 ㈜파이시티 이 대표 쪽은 인허가에 2년쯤 걸릴 것으로 보고 박 전 차관 등에게 로비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차관이 이 간부를 찾아오고 얼마 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파이시티 사업에 대해 간부들이 ‘특혜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 원칙에 따라 신중히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회의 뒤인 2005년 11·12월, 터미널 연면적의 4배에 이르는 대규모 점포를 허용할 경우 수천억원대의 특혜가 예상되는 이 사업을 ‘경미한 사안’이라며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에 심의·의결 안건이 아닌 자문 안건으로 상정했다. 여러 도계위 위원들이 반대 의견을 냈지만, 서울시는 이듬해 5월 양재 화물터미널 터에 백화점 등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유통업무설비 세부시설 변경 결정’을 고시했다.
또다른 서울시 고위 간부는 “당시 박영준 국장이 파이시티 사업과 관련해 압력을 넣었다는 이야기가 서울시 공무원 사회에 돌았다”며 “(사업을 승인할 경우 닥칠 후폭풍을 우려한) 공무원들이 나름대로 시간을 끄는 방식으로 압력을 피했다”고 말했다. 2006년 5월 서울시를 떠난 박 전 차관은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때인 2007년에도 강철원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에게 전화해 ‘파이시티 인허가 문제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그가 2005~2007년 파이시티 인허가를 빨리 내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쇠고기 수입중단 못하는 건 굴욕협상 거짓말 때문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4-27일자 기사 '쇠고기 수입중단 못하는 건 굴욕협상 거짓말 때문'을 퍼왔습니다.
[아침신문솎아보기] 위키리크스에 이면합의 드러나, “과학적 근거 제시 못할 경우 수입중단 못해”

"정부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을 이끌었던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의 말이다. 6년 만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정 전 장관마저도 정부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쇠고기 파동을 둘러싸고 약속을 지키기는 커녕 정부의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촛불 트라우마가 있는 정부는 인간 전염성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정부의 협상을  내용을 꾸짖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지난 2008년과 마찬가지로 유언비언라고 깎아내렸다. 보수언론들도 이명박 정부 구하기에 나섰다. 즉각 수입 중단이 아닌 검역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정부가 말 바꾸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전하기에 바쁘다.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사건과 관련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개입해 전방위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드러나고 있다.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서울시 정무국장으로 있을 때 인허가 관련 공무원들을 연결해줬다"고 말했다.
다음은 27일자 아침종합신문 머릿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정운천 전 장관이 “2008년 당시 광고에도 냈고, 청문회에서도 제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며 “약속이라는 것은 안전성(논란)은 둘째로 치더라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다.
미국과 쇠고기 협상 이끌었던 정운천 장관도 “정부 약속 지켜라”
쇠고기 협상의 주역이었던 정 전 장관까지 나서 즉각 수입 중단을 요구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는 특히 "(정부는) 빨리 검역중단을 하든지 약속을 지켜야 하며,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 국면에서 말 바꾸기를 하면 더 이상 정부 정책에 신뢰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인데 바꿔 말하면 그만큼 이번 사안이 국민의 분노를 자초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정 전 장관은 미국에서 6년 만에 발생한 광우병은 30개월령 이상이고, 젖소에 발병했으며, 비정형 광우병이어서 즉각 수입 중단 조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국민이 (안전성에 대해) 신뢰해준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당시 촛불정국이 활활 타오르는 상황에서 조건 없이 분명한 (광우병 발생 시 수입중단) 메시지를 던졌으니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정면 반박했다.
정부의 거짓말, 말 바꾸기는 어디까지일까?
이번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정부의 협상 내용 문제점과 거짓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08년 미 쇠고기 협상 내용에는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돼도, 검역중단 등 주권국가로서의 기본적 조치조차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미국과 맺은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는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변경을 인정할 경우 한국 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라고 정했다. 이전까지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는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한국으로의 수출을 중지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삭제됐다. 대신 국제기구의 결정을 따르도록 한 조항을 넣은 것이다.
같은해 6월 재협상을 통해서도 '한국 정부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0조와 세계무역기구(WTO) 위생·검역(SPS) 협정에 따라'라는 전제를 붙이고 '건강 및 안전상의 위험으로부터 한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중단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경향신문은 "‘수입중단’을 부칙에 명문화했지만, 양국 정부는 슬그머니 조건을 끼워넣었다. 수입국이 구체적인 위험성을 증명하도록 하는 WTO 협정을 전제로 세운 것"이라고 지적하고 "지금 한국 정부가 수입제한 조치를 내리지 못하고 “과학적 근거와 정보가 불충분하다”고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부칙은 약자인 한국은 쓸 수 없는 ‘사문’이나 다름없는 독소조항"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 조항은 지난 1998년, 2006년에 맺은 수입위생조건과 비교해 굴욕 조항이라고 할만하다. 지난 1998년 12월 한미 수입위생조건에는 ‘광우병이 확인되는 경우에’, 2006년 3월에 맺은 조건에는 ‘광우병이 발생하면’전제를 달아 즉시 한국으로 수출을 중지하도록 했다.
더욱이 문제인 것은 정부가 이같은 내용을 알면서도 겉으로는 버젓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8년 당시 한승수 총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광우병 발생시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한 총리와 담화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지 않았고, ‘광우병이 추가로 발견되면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하겠다’는 한승수 총리의 담화문 내용을 미국 측이 인정했다는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하기까지 했다고 경향신문은 전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2008년 5월 13일 국무회의에서 "오늘 미국 정부가 최근 발표된 대한민국 한승수 총리 담화문 내용을 적극 수용하고, 광우병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될 때는 우리가 수입을 중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1면

경향신문은 "미국 측이 협상 결과를 잘못 이해하지 않았다면 외교통상부나 주미대사관에서 청와대에 허위보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만약 허위보고를 한 것이 아니라면 거짓말의 최정점에는 청와대와 이 대통령이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한미 수입위생조건이 당장 수입 중단 절차를 밟을 수 있기에는 부족해도 정부의 의지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광우병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수입제한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농식품부 장관 고시인 수입위생조건보다 상위에 있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도 수출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경우 일시적 수입중단 조치 등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전했다.
위키리크스에도 정부 거짓말 드러나
26일 강기갑 통합진보당 의원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우리 외교통상부와 미국 국무부의 외교 전문에도 정부의 거짓말은 드러난다.
전문에는 최석영 주미 한국대사관 공사가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와 만나 한 총리의 담화문에 대한 공개적인 반박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나온다.
"광우병이 미국에서 발생해 국민 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되면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게 한 총리의 담화문인데, 커틀러 대표보는 '미국 측으로서는 총리 담화문 문구는 수용 가능하지만 농식품부와 복지부의 합동공고문은 수용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즉각 수입 중단이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광우병이 추가확인 될 경우 일단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 조치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한겨레는 "정부는 2008년 8월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하면서 '수출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면 긴급한 조처가 필요한 경우 수입 중단 등을 취할 수 있다'라고 정부 재량권을 넣는 방식으로 '미국과 한 약속'을 교묘하게 집어넣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가축전염병예방법과 수입위생조건을 내세워 즉각적인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법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송기호 통산전문 변호사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가축전염병예방법의 취지는 지금처럼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지만 그 경로와 원인이 확실히 규명되지 않는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선 잠정적인 수입중단(또는 검역중단) 조처를 취해, 국민의 안전을 지키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런 다음 충분히 조사해 원인이 밝혀지면, 그때 가서 지속적인 수입중단을 하든지 아니면 다시 수입을 재개하든지 하면 된다"며 "정부가 일단 조사를 해서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 수입중단을 하겠다는 것은 법의 취지를 정반대로 해석한 것으로 또 한번의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8년 9월 개정된 가축전염병예방법 32-2조는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해 …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긴급한 조처가 필요한 경우 … 수입중단 조치 등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 한겨레 신문 1면

한겨레는 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국민은 정부가 4년 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대국민 약속 광고를 주요 일간지 1면에 대대적으로 내더니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느냐며 분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엔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하자 즉각 수입을 중단했다. 이명박 정부도 2008년 5월 수입위생조건 추가협상을 통해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중단을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면서 "당시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검역이든 수입이든 당장 중단 조처를 취하는 게 맞다. ‘선 중단, 후 안전 확인’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건 미국과 ‘대국민 사기’ 협상을 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거듭 비난했다.
정부, 유언비어-괴담…촛불 트라우마 탓?
정부는 하지만 이같은 비판을 두고 "인터넷 등에 괴담식으로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박정하 청와대 대변인)며 지난 2008년과 마찬가지로 국민 우려의 목소리를 괴담으로 치부했다.
박 대변인은 "“총리 담화에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 국민건강이 위험에 처한다고 판단이 되면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겠다고 돼 있다”면서 “일부만 발췌해 잘못 보도되고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면서 정부가 약속을 안 지킨다고 하는데 사실관계를 분명히 정리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광우병 발생시 즉각적인 수입 중단을 알린 광고 문구에 대해서는 "광고 문구는 생략되고 압축적인 것이고 광고 이후 국회에서 과도하다는 논의가 있었고 여야가 합의해서 가축전염병예방법을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현재로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못을 박았다.
보수 신문, 촛불로부터 이명박 정부를 구하라
보수 신문들도 거들고 나섰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긴급 기자회견 내용이 주요 소스로 정부의 해명을 골자로 한 보도다.
동아일보는 서 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문제가 된 소가 국내 유통 가능성이 낮은 젖소이며 △한국에는 수입이 금지된 30개월 이상의 고령 소인 데다 △광우병이 해당 소에 국한된 문제일 가능성이 높은 비정형(非定形)이라는 점을 들어 검역중단이 아닌 강화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많은 전문가가 즉각 수입 중단 조치 불가의 근거에 대해 반박을 하고 있지만 정부의 설명대로 인간 감염 위험에 대해서는 '안전'하다고 되풀이 했다. 동아일보는 유한상 서울대 수의대 전염병학교실 교수의 말을 인용해 "비정형 소해면상뇌증(BSE·광우병)은 10년 이상 된 나이 많은 소에서 발병했다”며 “사람에게 전달될 위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거의 전달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도 즉각 수입 중단 조치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라면서 수입위생조건 재협상 문제에 대해서도 "나중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박 본부장은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현재 알려진 정보만으로는 (검역 중단 등을 요청하기) 부족하기 때문에 추가 정보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신중히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한쪽 면만 보면 약속을 안 지킨 걸로 보이지만 그 뒤에 초안의 강제조항이 너무 강하다고 해서 여야 합의로 (법 개정안을) 바꾼 것"이라는 박 본부장의 말을 전하면서 "정부는 2008년 9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을 통해 광우병이 발생해도 반드시 검역을 중단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다’고 재량권을 인정받은 바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아예 정부가 말 바꾸기를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적극 정부의 해명을 실어주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4월 수입위생조건에는 광우병이 발생해도 반드시 수입 중단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판단해 결정하는 재량 사항으로 했다가, 5월 일간지 광고와 6월 보도자료에는 조건을 달지 않고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다 다시 9월 법 개정 때는 재량 사항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법 개정을 통해 국민과의 약속이 뒤집어진 배경에 대해 "촛불시위 때 극렬했던 국민 여론이 이후 잦아들었으며, 다른 나라에 즉각 수입 중단 규정이 없고, 즉각 중단은 국제적인 기준에서 과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서규용 장관)이라고 전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검역을 중단한다'는 의무 규정이 담긴 캐나다와의 수입위생조건이 엄격한 이유에 대해 "미국에 비해 캐나다의 광우병 발생 건수가 4.5배나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 광우병 위험을 상대적으로 완화시키는 보도다.


▲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우려한다는 정부의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재협상을 통한 즉각 수입 중단 규정 삽입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은 현재 우리를 상대로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가 수입위생조건 재협상을 요구하면, 미국이 그 대가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할 수 있다"는 농식품부의 입장을 전했다.
결국 조선일보는 광우병 파동에서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최고 수준으로 검역을 강화하라"는 얘기 정도뿐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한 마리 나왔다고 과잉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더구나 이번 광우병 소가 미국 당국 설명처럼 육골분(肉骨粉) 사료로 감염된 것이 아니라 발생 확률이 극히 낮은 돌연변이로 인한 비정형(非定型·atypical) 광우병으로 확인된다면 미국 쇠고기 수입이 국민 건강에 위험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전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정부가 '안전하다, 괜찮다'고 국민을 설득하려고만 들면 역(逆)효과가 난다"며 "정부가 우선 검역 강화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그다음 이번 건(件)이 통상 마찰로 번지지 않게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특별 조언했다.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수사…박영준 전 차관에게로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수사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칼끝이 향해있다. 박 전 차관이 인허가 관련 공무원들을 연결시켜줬다는 직접적인 증언도 나왔다.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서울시 정무국장으로 있을 때 인허가 관련 공무원들을 연결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2005년 1월 당시 서울시 정무국장이던 박 전 차관을 처음 만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들어간 뒤에도 만났다"며 "(브로커) 이동율씨를 통해 박 전 차관에게 전해달라며 한 번에 2000만~3000만원씩 3~4회 정도 현금을 줬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10억 수수설에 대해서도 "이동율씨가 ‘박 전 차관이 이사를 가는 데 필요한 돈을 잠깐 빌려달라’고 해 10억원을 송금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가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에서 건넨 돈의 규모는 30~40억원.
이 전 대표는 "2005년 1월 이후 이씨를 통해 최 전 위원장에게 처음에는 5000만원을 건넸다가 나중에는 한 번에 1억원씩 건넸다. 돈을 건넨 횟수는 20회는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브로커) 이씨가 해외로 나가 국내에 없을 때 돈을 전달하라고 해서 한국갤럽 회장실로 찾아가 최 전 위원장에게 직접 돈가방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최 전 위원장은 이 전 대표로부터 돈을 직접 받지 않았다고 부인해왔다.


▲ 경향신문 1면

특히 이 전 대표는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관에게 돈을 건넨 것은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을 보고 준 것이라며 "측근을 움직여 이명박 시장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결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은 박 전 차관이 이 전 대표로부터 받은 돈은 사업 편의를 봐준 대가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이 전 대표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박 전 차관은 또한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측근이던 강철원 당시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파이시티 사업이 잘돼가는지 알아봐달라”고 했고, 이 전 대표도 직접 강 전 실장을 여러 번 찾아가 파이시티와 관련된 청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