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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7일 월요일

‘을의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글은 시사IN 2013-05-27일자 기사 '‘을의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퍼왔습니다.
지난 4월 롯데백화점 입점업체 직원의 죽음이 을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시사IN) 기자가 빅3 백화점 중 한 곳에 취업했다. 고객에게는 서비스를 받는 장소겠지만, 판매 직원에게는 평가와 감시, 처벌의 장소이다.

지난 4월22일 김 아무개씨(47)가 본인이 일하던 롯데백화점 서울 청량리점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투신 직전, 김씨는 의류 매장을 관리하는 영업 관리자(파트리더) 등 32명이 함께 쓰는 카카오톡 대화창에 “대리님, 사람들 그만 괴롭히세요. 대표로 말씀드리고 저 힘들어서 떠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백화점의 과도한 매출 압박이 결정적인 자살 원인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그런데도 백화점 업계의 ‘갑’인 롯데백화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전 직원에게 ‘입단속’을 지시하는 등 사건 무마에 급급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순간 외에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백화점 직원. 정확하게 말해 ‘백화점 입점업체의 판매 대리자’는 백화점 소속이 아니지만 백화점 규정을 따르고 이들로부터 매출 압박을 받는다. 김씨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매니저’였다. 호칭일 뿐 직책은 아니다. 대체로 매니저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중간관리자로서 매출의 일정 수수료(인건비 및 매장관리비)를 제외한 금액을 본사에 보내야 한다. 김씨의 죽음은 그동안 잠재된 각계각층 ‘을’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발화점이었다. 기자는 5월6∼12일 일주일간 국내 빅3 백화점 가운데 한 곳에서 김씨와 같은 ‘백화점 직원’으로 일했다.

5월6일. “고객의 지갑을 열게끔 서비스하라” 

취업은 어렵지 않았다. 아웃소싱 업체가 요구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챙겼지만, 백화점 여성복 코너 입점업체 ㄱ매장 매니저는 내가 준비해간 서류를 보지 않았다. 5분여 만에 ‘입사’에 성공했다. ㄱ매장이 내 일터였다. 

ⓒ시사IN 윤무영

백화점 교육은 일주일에 한 차례 열린다. 입점업체와 관계없이, 직원에서 아르바이트생까지 백화점에서 일하는 누구나 교육을 받는다. 교육생 30명 가운데 대다수가 20대 초·중반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여성 3명도 참가했다. “나이 들어서 일하기에 이만한 일이 없다”라던 매니저의 말이 떠올랐다. 

교육 목표는 명확했다. 백화점 소속 서비스리더는 “고객님은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백화점에 온다. 이곳은 백화점의 표본이다. 고객님의 지갑을 열게끔 서비스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5시간 동안 진행된 교육은 고객 편의를 위해 지켜야 할 사항을 일러주었다. 고객용 시설 이용 금지, 화려한 복장 금지, 앉아 있기 금지 따위였다. 

최근에는 사물에 존칭을 쓰는 게 듣기 불편하다는 고객 불만이 나온다며, “글로벌 기업으로 ‘바른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세일이십니다’ 같은 말을 쓰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의시켰다. 고객이 부담스러워할 정도의 눈맞춤이나 지나치게 정중한 손 모으기도 금지 사항이었다. 이런 모호한 지시를 하면서도 매장 모니터 평가 항목은 매우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밝은 표정과 바른 자세로 대기(100점), 밝은 표정은 아니지만 고객 입점 시 응대할 수 있도록 움직임에 주목(70점), 자연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으나 초점 없이 무표정으로 대기(40점), 직원 간 잡담·통화·상품 정리 등으로 방문고객 입점 여부를 인지하지 못함(0점) 따위 점수화된 항목이 70여 가지에 달했다. 손님으로 위장한 모니터 요원이 이 점수에 따라 직원들을 비정기적으로 평가한다. 

서비스리더는 매장을 돌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앉아서 대기 중인 직원을 촬영하고, 이렇게 찍힌 사진을 근거로 매장에 불이익을 준다고 했다. 매장 모니터와 직원 감시에 이어 곧 발표될 한국서비스 품질지수 평가까지, 판매 직원에게 백화점은 서비스 제공 장소이자 이에 대한 평가와 감시, 처벌이 반복되는 곳이었다.

5월7일. 빛은 없다 

붉은색 티셔츠, 팔리지 않던 옷을 유니폼으로 사용했다. 머리는 단정히 빗었다. 오전 9시30분, 백화점의 아침은 청소로 시작한다.    매장 관습상 청소는 막내급인 내 담당이다. 대걸레질과 먼지떨이, 거울 닦기다. 재고를 관리하거나 상품을 전시하는 일은 ‘둘째 언니’ 몫이다. 매니저는 판매에만 집중했다. 백화점에서는 매출을 높이는 업무가 가장 중요해서다. ㄱ매장은 나를 포함해 직원 5명이 일했다. 백화점 입점 매장 가운데 직원이 많은 편이었다. 매장도 넓었다. 두 개 매장을 텄다. 그만큼 높은 매출을 기록한다. 에스컬레이터 인근에 매장이 위치한 것도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시간이다. 연장 영업이 있는 금·토·일요일에는 오후 9시까지 일해야 한다. 평일 주 1회 휴무, 주 1회 늦은 출근이나 이른 퇴근을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급여는 148만원. 4대 보험을 제하고 나면 136만원을 손에 쥔다. 4대 보험을 들 수 있는 데다 136만원 주는 곳은 거의 없다고 동료들은 귀띔했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하자 매니저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하루만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매장 안으로 고객이 들어온다. 첫날부터 입술이 떨어질 리 없었다. “세 가지 인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해.” 매니저가 내 옆을 지나며 말했다. 맞이 인사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추가 인사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고객님∼’, 배웅 인사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어떤 고객이 모니터 요원인지 알 수 없다. 매니저가 선창하면 따라 외쳤다.

점심은 직원이 돌아가며 먹었다. 매니저는 내 점심시간을 가장 먼저 배치해주었다. 늦게 배치될 경우 오후 2시께 식사를 할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일어서는데 계속 서 있어서인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후 업무를 준비하는 휴식시간치고는 지나치게 짧았다.

시곗바늘이 저녁 8시를 가리켰다. 퇴근시간이다. 매니저의 눈치를 봤다.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서 있기가 괴로웠다. 백화점 폐점 이후에도 직원 대기 10분, 매출 확인 시간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백화점 직원들이 우르르 거리로 쏟아졌다. 어둠이 짙었다. 11시간 만에 바깥 공기를 처음으로 들이켰다.

5월8일. 판매 여왕이 되다

풀리지 않는 난관은 상품명과 제품의 특징을 외우는 일이었다. 제품을 잘 알아야만 고객에게 추천할 수 있다. 이는 즉시 매출로 연결된다. 매장에는 ‘킬러 아이템’이 있다. 매니저의 주력 판매 제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방만 해도 브랜드가 대여섯 개 있고 같은 브랜드도 색상·소재·디자인·가격에 따라 30가지가 넘는다. 나는 며칠이 지나도록 외우지 못했다. 

고객 응대를 하다가도 언니에게 눈치껏 제품 설명을 넘겼다. 그때마다 옆에 바짝 붙어서 응대법을 익혔다. 제품의 가격은 100여만 원. ‘직접 사서 쓰지도 않는데 어떻게 상세히 알까’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매니저는 제품을 판매한 언니에게 “너는 (브랜드) 여왕이야” “대견해” 따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도 잠시. 매니저는 오후 6시가 넘어도 매출이 130만원에 불과하다며 근심이 가득했다. 매장 평일 목표 매출 300만원에 훨씬 못 미쳤다. 백화점 판매 26년째인 매니저는 매출에 민감한 편이다. 두 달여 전 타 백화점에서 이곳으로 온 터였다. 본사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매니저의 근심은 직원들에게 곧장 전이되기 마련이다.

그때 한 여성 고객이 매장을 휘저었다. 매출을 높이려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매니저는 고객이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옷을 추천받아 입고 벗기를 반복하던 이 고객은 160만원어치를 한 번에 구입했다. 손 큰 고객이 분위기를 휘저으면 다른 고객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폐점을 겨우 1시간30분 남겨두고 400여만 원 매출을 올렸다. 매출은 발생하는 즉시, 본사에 접수된다. 매니저는 “본사에서도 오늘은 공쳤다고 생각했을 텐데 막판에 놀랐을 거다”라며 표정이 밝아졌다. 


ⓒ시사IN 이명익 백화점 판매 직원을 평가하는 항목은 70여 가지에 달한다. 위는 국내 한 백화점 여성복 코너의 모습.

한 직원이 나를 향해 “네가 와서 매출이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다 보면 다리 아픈 건 싹 사라진다던 동료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걷기가 힘들었다. 

5월9일. 본사 파트리더의 방문

입사 후 첫 조회가 있었다. 백화점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새 파트리더를 소개받는 자리다. 같은 층 매장 약 20곳을 관리하는 백화점 소속 직원을 파트리더라고 일컫는다. 그는 2011년 백화점 공채로 입사한 20대 후반 남성이다. 반면 대다수 매니저는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40대 이상 여성이다. 기선제압을 하려는지 그가 외쳤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실 거죠? (더 크게) 도와주실 거죠?”

몇몇 매니저가 소곤거렸다. “예전 그 직원이 아니다. 입사 2년 만에 파트리더로 승진했으니 얼마나 파이팅이 넘칠까.” 오후 4시께 파트리더는 담당 매장을 순차적으로 방문했다. ㄱ매장을 지난 직후 매니저가 나를 불렀다. “매장 창에 지문이 묻었어요. 닦으세요.” 신문지를 찢어 창으로 나왔더니 파트리더가 훑고 간 전 매장에서 줄줄이 창을 닦고 있었다.

다음 날 금요일부터 토·일요일까지 행사가 있다. 본사로부터 이월 상품을 받아 할인 판매를 한다. 재고를 없애는 일은 본사가 신경을 많이 쓰는 일 중 하나다. 그만큼 판매 직원에게는 이중으로 과중한 업무가 주어진다. 추가 업무지만 야근이나 특근비 등을 주지는 않는다.

옷 400여 벌이 10개 박스에 담겨 들어왔다. 직원들이 오가는 화물용 승강기 앞에 주저앉았다. 알록달록한 천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렸다. 행사에 쓸 150여 벌을 선별하고 행거에 걸었다. 서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잠시 맛본 행복은 행사의 시작과 함께 깡그리 사라졌다.

5월10일. 노고가 매출로

행사를 앞두고 본사 직원들이 매장을 찾았다. 매니저는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직원에게 “오늘 (매출) 얼마나 할 거야(올릴 거야)?”라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옷을 정리했다. 같은 질문이 입사 일주일이 안 된 내게도 왔다. 내가 되물었다. “얼마나 하면 될까요?” “열심히만 해.”

고객이 행사장에 관심을 가진다 싶으면 “어서 오세요. 고객님∼”이라는 인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내 나름의 코디를 추천하기도 했다. 둘째 언니가 “인사만 하지 말고 판매에 적극성을 가지라”고 조언한 직후였다. 몸은 괴로워도 입은 점점 자동으로 움직였다.

행사장 옷은 잘 팔리지 않았다. 옷 사이즈는 충분하지 않았고 디자인은 각양각색이었다. 매출은 나와 무관했다. 그런데도 들춰보고 입어보다가 사 가지 않는 고객들이 얄밉게 보였다. 어쩌면 내가 일한 노고가 매출로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님이 내 설득에 구입하면 짜릿하다”라던 매니저의 말뜻을 알 것도 같았다.


ⓒ시사IN 백승기 4월30일 입점업체 직원에 대한 백화점의 과도한 관리·감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다행히 매장 매출이 좋았다. 1000만원이 넘었다. 이런 날은 매출이 안 좋을 수도 있는 다음 날에 대비해 ‘감는다’. 하루 매출의 평균을 고르게 하기 위해 장사가 잘된 날 일부 매출을 다음 날로 넘기는 것이다. 

한때는 급여에 더해 1년에 두 차례 실시한 백화점 행사 매출에서 1%를 직원 수당으로 지급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사흘 만에 1억5000만원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본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막내급은 딱 한 차례 25만원을 받았다. 

5월11일. 밥 굶으며 11시간 버티는 언니들 

매장 직원들은 모두 밥을 먹지 않았다.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다. 이들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에는 비키니를 입은 가수와 모델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고객에게 직원들은 걸어다니는 피팅 모델이다. 날씬한 몸매 유지를 알게 모르게 강요당했다. 밥을 먹지 않고 11시간을 서서 버티는 능력은 정말 놀라웠다. 이들은 밥을 먹지 않는 대신 점심시간에 잠을 청했다. 저녁식사 시간도 따로 없다. 매니저가 사 오는 우유와 김밥으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나면, 그 후 굶는다. 

점심시간, 직원 휴게실에는 집에서 준비해온 삶은 달걀, 고구마, 오이 따위로 끼니를 해결하는 직원으로 붐볐다. 셋째 언니는 “제대로 밥을 먹지 않거나 퇴근 이후 폭식을 하는 탓에 백화점 판매직원은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많다”라고 말했다. 둘째 언니가 거들었다. “한창 바쁠 때는 휴식은커녕 매장과 창고를 뛰면서 한 입씩 오물거리며 요기할 때도 있어.”

‘고객의 눈으로 보세요.’ 직원 휴게실을 통과하는 거울에 적힌 문구처럼 모든 게시물이나 표지판은 고객의 관점에서 작성돼 있다. 안내를 받지 않으면 백화점 내부에서 직원 화장실·휴게실·승강기(화물승강기) 따위를 찾기 어렵다. 매장과 매장 사이 어디엔가 ‘서비스 라인’이라고 적힌 테이프가 부착돼 있으면 그 뒤에는 직원용 시설이 있다. 직원 휴게실에 가면서 가방을 들고 갔다가 ‘주의’를 들었다. 사복 유니폼에다 가방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고객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다. 직원과 고객의 경계는 언제나 세밀했다.

의아한 점은 직원이 이용하는 모든 시설물에 백화점이 속한 그룹의 회장과 대표이사 등 고위관계자 이름과 사진이 담긴 포스터가 부착돼 있는 것이다. 마치 ‘모든 매장의 주인은 그룹’이라는 사실을 주시시키려는 듯 보였다. 백화점 ‘갑’은 회장, 나는 ‘을’이라는 것을 볼 때마다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갑의 절약정신은 꼼꼼했다. 폐점을 하는 즉시, 직원이 남아 있는데도 에어컨을 끄거나 직원 화장실의 온수만 꺼버렸다.  

5월12일. “파트리더가 네 이름 적어오래”

아침부터 다리가 덜덜 떨렸다. 일한 지 닷새 만에 사흘짜리 행사를 맡은 게 무리였다. 다리에서 허리, 어깨까지 통증이 왔다. 옆 매장에서 일하는 언니는 생리까지 겹쳐 끙끙 앓았다. 언니는 자신의 연봉(2000여만 원)을 분할해 “오른팔이 500만원, 왼팔 500만원, 양쪽 다리 1000만원짜리”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벽에 기대고, 행거 뒤에 쭈그려 앉아봤지만 소용없었다. 동료에게 지적만 당할 뿐이다. 계산대 담당 언니와 옆 매장 언니가 몸을 비비 꼬는 내게 “파트리더가 이름 적어오래” “너 사진 찍혔어”라고 놀렸다. 나중에서야 농담인 걸 알았지만, 그 소리를 듣고서는 나도 모르게 머리가 쭈뼛거렸다. 심장박동이 심하게 빨라질 만큼 을의 처지를 실감했다. 

이런 상황이 정말 일어난다면? 끔찍하다. 두 번 지적을 받으면 퇴사당한다. 그 전에 매니저는 파트리더에게 훈계를 당하고 경위서를 쓸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에는 매니저마저 교체된다. 백화점 전 매장 중 모니터 요원이 매긴 점수가 가장 낮은 구역의 파트리더는 지하 주차장으로 배치받기도 한다. 

매니저는 책임질 일이 많다.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 매출 차이가 극심하고, ‘로스(잃어버린 상품 비용)’를 메우는 책임도 매니저 몫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매출의 부족한 금액을 스스로 벌충하기도 한다. 

금·토·일요일은 평일보다 30분 연장 영업한다. 폐점이 늦어지는데도 그만큼 돈을 더 주지는 않는다. 지난 2월 행사에서 한 직원은 뒷정리를 하느라 새벽 2시30분에 퇴근했다. 택시비 3만원, 식비 1만원을 썼다. 월급을 쪼개 일당 5만원이라고 할 때, 그는 이날 1만원을 손에 쥔 셈이다. 그러고도 이 직원은 이튿날 정시에 출근했다. 

일을 마치고 혼자 계단을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난간을 잡았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언니들 얼굴이 겹쳤다. 다리가 아픈 언니는 내일도 압박 스타킹을 신고 서 있어야 한다.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을 외칠 것이다. 그 뒤로 본사 정규직 파트리더의 번뜩이는 눈초리와 휴게실에 붙은 백화점 회장님의 자상한 눈빛은 계속될 것이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부산항운노조 수천만원씩 받고 승진·취업 장사


이글은 경향신문 2013-01-14일자 기사 '부산항운노조 수천만원씩 받고 승진·취업 장사'를 퍼왔습니다.

ㆍ2005년 이어 또 적발… 간부 6명이 6억여원 챙겨

승진과 취업을 미끼로 돈을 받은 부산항운노조 간부들이 수사기관에 또 적발됐다. 2005년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와 항운노조의 자정선언이 있었으나 1인당 최고 2000만원이었던 ‘취업장사’는 5000만원대로 액수가 커지는 등 부패의 정도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부산경찰청 수사과는 14일 “정년 연장을 해준다”며 조합원들한테 돈을 받거나 “취업을 시켜준다”며 구직자들로부터 6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배임수재·사기)로 부산항운노조 제1항업지부장 우모씨(55)와 제2항업지부 반장 배모씨(46) 등 2명을 구속했다. 부산신항만지부장 송모씨(45) 등 간부 4명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구속된 우씨 등은 2010년 5월 정년퇴직 예정자인 김모씨(61) 등 2명에게서 정년 3년 연장을 대가로 5500만원을, 조합원 최모씨(45) 등으로부터는 조장 승진을 보장하면서 74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2010년 10월 항운노조에 취업을 시켜주겠다며 최모씨(44)에게서 1200만원을 받는 등 11명한테 모두 4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신항만지부장 송씨는 2009년 11월부터 최근까지 일용직 근로자들로부터 속칭 ‘동원비’ 명목으로 매일 1만원씩 모두 7800만원을 착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우씨 자택에서 고급시계와 황금열쇠, 수표 등 1억1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압수했다. 1400만원짜리 고급시계는 조합원 김모씨가 우씨에게 승진청탁용으로 전달했다고 경찰 관계자는 말했다.

경찰은 취업난을 이용해 채용을 미끼로 돈을 받은 노조 간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부산항운노조 간부들에게 돈을 준 조합원 15명에 대해서도 배임증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경찰 출석 통보를 받은 조합원에게 조합 차원에서 ‘잠수타라(잠적하라)’고 지시하는 등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항운노조 간부들이 자정을 외치면서도 ‘취업장사’와 ‘승진장사’를 하는 것은 조합 간부들의 인사권을 제약하거나 견제할 기구가 없고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산항운노조는 2005년 검찰의 대대적인 취업비리 수사 이후 2006년 1월 대국민 사과와 자정결의를 했으나 이후에도 거의 매년 노조 간부들이 검경에 구속되는 등 취업비리가 계속되고 있다.

권기정 기자 kwon@kyunghyang.com

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청년실업이 낳은 RPG 캐릭터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12-11일자 제51호 기사 '청년실업이 낳은 RPG 캐릭터'를 퍼왔습니다.
잉여가 본 잉여

 
<3083 26="26" p="p" v="v"> 2003-올리비에 코르페

언젠가부터 많은 청년들이 스스로를 '잉여'라 부르고 자신들의 일상을 '잉여짓'과 '잉여력'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잉여란 단어를 종종 듣기는 했는데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 목격하지 못한 사람은 잉여들의 놀이터 중 하나인 트위터에서 '잉여'로 검색하면 잉여들의 끊임없는 잉여짓을 목격할 수 있다. 처음 잉여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이미 잉여에 대한 많은 글들이 있을 텐데 어쩌다 별것 없는 잉여인 나에게 이런 요청이 들어왔는지 의아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잉여의 시선으로 보는 잉여를 말하기엔 잉여인 내가 꽤 적합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본인을 소개하자면 나이 서른의 잉여다. 잉여력을 분출했던 대표적인 일은 잉여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를 만든 것이다. 어느 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니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이어서 수많은 청춘-멘토 기획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있었다.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기에 무슨 내용이 있나 슬쩍 들어봤더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조롱해보고자 다른 잉여들과 합심해 (잉여니까 청춘이다)라는 딱히 듣는 사람이 없는 방송을 만들었다. 이 잉여짓을 통해 수많은 유형의 잉여를 만나며 (잉여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던 나조차도) 애매했던 잉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이 글을 통해 잉여가 바라본 잉여는 어떤 존재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머지 인간과 떨거지 인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면 주인공 현수(권상우 분)의 아버지(천호진 분)가 현수에게 "너 대학 못 가면 뭔 줄 알아?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잉여인간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 거야, 이 새끼야!"라고 호통을 친다. 대학을 나와야 사회에서 인정받는 '산업역군'으로 자리잡을 수 있던 시기에 대학 진학은 '사람 인정'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이처럼 잉여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 대열에서 낙오 내지 탈락한 '나머지'들을 지칭하는 데 쓰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빗대자면 요즘의 잉여는 취업을 못 한 '인간 떨거지'라고 할 수 있다.
주체로서 잉여가 성립되고, 다양한 형태의 잉여가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공유되면, 거기에서 표출되는 잉여력과 잉여짓이 잉여 일반의 정체성에 추가된다. 흔히 볼 수 있는 잉여의 문법 중 하나는 "나는 잉여니까 오늘도 ( )한 잉여짓을 한다"인데, 잉여짓은 일상적 여가를 포함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행동을 거의 모두 포함한다. 남는 시간(잉여력)을 소득 창출 행위 및 기타 행위(잉여짓)에 쓰는 이들이 잉여다. 따라서 오늘날의 잉여는 "자본가와 안정된 임금노동자를 제외한 나머지로서 잉여짓을 일삼는 자"로 규정할 수 있겠다. 여기에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자조와 체념을 내면화한다.
잉여는 다시 매우 투박한 분류이지만 세분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경제적 안정도, 둘째 주체적인 선택 여부에 따라 잉여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부모의 후원을 받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잉여로운 시간을 잉여롭게 보낼 수 있다. 바로 잉여로울 수 있는 잉여다. 딱히 경제활동을 병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 현실에서 충당할 수 있는 경우다. 반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잉여는 잉여임에도 잉여롭지 못하다. 생존을 위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처지이기에 존재로서는 잉여지만 일상은 전혀 잉여롭지 못하다. 치솟을 대로 치솟은 등록금, 높은 물가가 감당이 안 되는 생활비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이들에게 잉여로울 수 있는 자유는 매우 제한된다. (비록 나의 경험 속에서 접한 적은 표본이지만) 이들의 경우 스스로를 잉여로 규정하는 비율은 그리 많지 않다.
자발성에 따라 구분을 해보면 잉여짓을 계속하고 싶은 잉여와 '탈잉여'를 꿈꾸는 잉여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는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며 이른바 '문화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의 경우 경제적 불안정을 각오하고 '평범한 삶'을 누리지 않더라도 스스로 선택해서 잉여가 됐다. 사실 이런 유형은 이미 과거부터 존재했으며 엄밀하게 말하면 새로이 등장한 잉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단지 잉여가 일종의 문화현상의 성격으로 나타나면서 자신을 잉여라고 부른다고 볼 수 있다. 후자는 고용 불안정의 시대에 취업을 못 하면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잉여가 된 이들이다. 이들은 언제나 탈잉여를 꿈꾼다. 스스로 잉여라고 자조하면서도 언제든 잉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여기서 나는 잉여의 개념을 좁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잉여의 개념이 너무 확장되어서 여기저기에서 잉여를 갖다 쓰고 있지만 잉여로 불리거나 혹은 자처하는 이들을 실제 구성하는 다수는 비교적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비자발적인 잉여에 가깝다. 잉여를 사회현상으로 주목한 이들 가운데 잉여는 스스로를 잉여라 지칭한다는 점을 강조한 경우가 많았다. 사실 외부에서 잉여라 지칭하는 계층은 이미 어떤 이름으로든 존재했고 정작 잉여라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층은 협소하다고 본다. 앞선 구분에 따라 내가 보는 잉여는 잉여로운 시간을 비교적 큰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중간계급의 자녀들이다. 그래서 잉여는 중간계급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의 산물인 셈이다. 과거의 중간계급 자녀들과 다른 점은 전자는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었고(비교적 일자리가 많았고 그들의 부모 스스로 노후를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는) 후자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안온한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가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잉여는 한국 사회에서 중간계급의 몰락(하우스푸어와 같은 현상이 심화되고 있듯)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중간계급의 자녀들이 최소한 자신이 누렸던 물질적 풍요를 이어가고자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게임 속의 세상, 게임 속의 잉여

이 깨달음을 통해 잉여가 되는 과정 속에서 양산된 잉여들은 게임 속 캐릭터와 무척 닮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들의 삶은 RPG(롤플레잉게임)의 진행과 비슷하다. 게임 속에서 막과 장 사이에 던져진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한 단계씩 전진하는 방식이 그들의 삶과 크게 차이 나 보이진 않는다. 정형화된 게임 규칙 안에서 조금은 다른 방식의 공략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목적을 향한 최선의 방식은 존재한다. 게임에 빗대어 잉여의 인생 주기를 살펴보면 부모라는 '추종자'의 엄호 아래 비교적 쉬운 1막 '유년기'를 클리어하고 나면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그나마 1막은 다른 스테이지와 비교해 분홍빛이 감도는 편이다. 물론 분홍빛이 지속되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것 같지만(더욱더 과열되는 조기교육) 아직은 희망 속에서 '꿈'이란 걸 꿀 수 있으니까. 2막 '대입 돌파'는 학벌이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향후 인생의 방향을 상당 부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막이다. 2막에서 높은 업적을 달성하고 클리어한 경우 3막 '취업 전쟁'의 진행이 한결 수월해진다. 단적으로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채용 시 가장 많이 보는 비공개 커트라인으로 나이에 이어 학벌이 꼽힐 정도기 때문이다. 획일화된 진행 방식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비난의 목소리는 높지만 크게 봤을 때 변한 것은 없고, 결국 더 좋은 업적을 위한 유저와 그 서포터를 위해 기형적인 형태로 '대입판'이 변질되어온 실정이다.
현재 많은 잉여들이 3막 '취업 전쟁' 속 던전을 헤매고 있다. 엄청난 양의 잉여가 본격적으로 양산되는 지점이다. 2막과 달리 3막은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서 맵을 정확히 볼 수 없고 불확실한 정보만이 나돌고 있다. 예를 들면 기업 측의 정보에 따르면 "스펙보다 스토리"가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3막 유경험자들은 "스펙은 기본, 스토리는 필수"라고 말한다. 이런 불일치로 인한 혼란과 더불어 경기 침체라는 눈보라가 쏟아지는 상황은 유저들의 괴로움을 끌어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유저들이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다음 막으로 가기 위한 충분한 스펙을 쌓기 위해 '앵벌이'에 나선다.
어쩌면 게임이 인생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게임은 난이도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개 초·중·고급 정도로 나뉘는 게임의 레벨은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반면, 인생의 난이도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캐릭터 생성과 동시에 고정되곤 한다(예를 들면 부모의 재력과 같은 가정환경). 또한 게임은 이른바 '로드 신공'을 통해 세이브-로드를 무한 반복하며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지만, 인생에서 한번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는 실패에 대한 완충작용 역할을 해줄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패하면 끝인, 그야말로 '하드코어 모드'다. 그렇기에 잉여짓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자조와 체념을 받아들이지만 나머지의 도전은 불필요한 것이나 사치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잉여들이 게임 캐릭터처럼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신해철의 노랫말을 보자.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 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1990년대 X세대가 했던 고민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잉여들도 '자의건 타의건 간에 '왜'라는 물음이 거세된 채 맹목적으로 클리어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 끝에서 볼 엔딩은 어떤 것일까?', '과연 행복은 무엇일까?' 머리가 복잡해지는 고민들을 스스로 던져본다. 하지만 이런 물음도 이젠 조금은 지겨운 클리셰가 되어버렸다. 책에는 나오지만 시험에는 나오지 않는 문제라서 딱히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여기에 이른바 '꼰대'라 불리는 기성세대 중 일부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허망한 예상 답안을 던져주곤 한다. '게임'을 벗어나라는 주문이다. 시각을 조금만 바꿔도 세상은 크게 달라 보인다는 둥, 착실한 '게임 공략법'과 다르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적성을 찾고 그것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며 살아야 한다는 둥. 하지만 탈출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탈출한다고 해서 새로운 세상이 바로 열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임의 규칙이 변하길 기대하거나 자신만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족의 지원 혹은 개인의 특별한 능력과 운에 기댈 수밖에 없다. 결국 많은 잉여들에게 잉여롭지 않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정규직으로의 취업밖에 없다.

"잉여의 탈출구는 결국 취업뿐?"

이제 대다수 잉여들의 선택은 '탈잉여'로 귀결된다. 어쩌면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이 과정에서 잉여는 체제 순응적인 존재로 조각된다. 체제 순응적인 신입사원상일 때 탈잉여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가 요구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펙을 쌓고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있다. 과거 세대들이 요즘 잉여들을 질타할 때 '낭만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잉여들에게 낭만을 즐기는 것조차 탈잉여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잠깐 게임을 일탈하더라도 금세 게임 속으로 복귀한다. 여기에서 잉여라는 계층의 한계가 드러난다. 혹자는 잉여를 어떤 정치적 변혁의 가능성을 담지하는 계층으로 상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판타지에 가깝다. 잉여들은 금방이라도 '짱돌을 들고 거리로 나설' 것처럼 '88만원 세대'를 조망했던 이들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세태에 순응한 패배감 위에 잉여로서의 삶 속에서 얻은 무력감이 중첩되어 불만조차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한 번 실패하면 저만치 뒤로 처지게 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잉여들의 집합소인 취업 커뮤니티에 가보면 그들의 불안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불투명한 채용 속에서 서로가 가진 경험의 조각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며 탈잉여를 향한 전략을 세우다가 탈잉여를 한 이들을 보며 부러움과 패배감을 느낀다. 그러고는 익명 게시판에서 온갖 불만과 하소연을 쏟아내고 잉여짓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안정된 삶을 이어가려는 비자발적 잉여들은 이렇게 불확실함 속에서 오늘을 난다. 잉여들의 현실을 잘 대변해주는 가사로 마무리하겠다. "나는 오늘 가만 누워 TV를 보다가/ 이 세상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봤지/ 나와 함께 얘기를 해볼래?/ 진지하게 얘기를 해볼래?/ 이 세상은 지옥 지옥이다. 아!/ 이 세상은 지옥 지옥이다. 아!"(청년실업, [이 세상은 지옥이다])

글 / 강동기 마포FM에서 청춘프로그램 (잉여니까 청춘이다) 팟캐스트를 제작했다.

2012년 9월 24일 월요일

대졸 10명중 3~4명, 취업해도 학자금 대출 못갚아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24일자 기사 '대졸 10명중 3~4명, 취업해도 학자금 대출 못갚아'를 퍼왔습니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 이용자 10명중 3~4명은 취업 후에도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재연 의원(통합진보당)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시행돼 올해 처음 의무 상환이 시작된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든든학자금)’의 상환실적이 58.6%에 그쳤다. 올 6월30일 기준으로 학자금 의무상환대상은 3048건 24억2800만원이지만 상환실적은 2172건 14억2300만원에 불과했다. 상환 대상자의 71.3%, 상환금액의 58.6%만 의무 대출을 상환한 것이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는 대학생에서 학자금을 빌려주고 취업 후 일정 소득이 발생하면 갚게 하는 제도이다. 연간 소득금액이 상환기준소득(올해 기준은 794만원)을 초과하면 의무상환이 시작된다. 의무상환액은 연간소득금액에서 상환기준소득을 뺀 금액의 20%이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는 시행 첫 해였던 2010년 초 11만4700명이었던 이용자가 2012년에는 24만6197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대졸자들의 취업난으로 취업에 따른 의무상환자 수가 예상보다 적고, 상환대상자 10명중 3~4명은 대학 재학중 빌려쓴 학자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재연 의원은 “제도 시행 전 우려했던 대로 학자금을 빌려주는 것은 학생들의 등록금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몇 년 미루는 불과하다”며 “청년실업이 장기화됨에 따라 정부의 재정적 부담도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정부 학자금 지원 제도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해결책은 ‘반값 등록금’ 실시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오창민 기자 riski@kyunghyang.com

2012년 4월 6일 금요일

"'영포라인' 김충곤, 발령나기 전부터 불법사찰 주도"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4-06일자 기사 ‘"'영포라인' 김충곤, 발령나기 전부터 불법사찰 주도"'를 퍼왔습니다.
민주당 "김종익 찾아가 가짜명함 사용, 취업은 영포라인 통해"

민주통합당은 6일 불법사찰의 핵심인물인 김충곤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1점검팀장이 정식발령 두달 전부터 민간인 신분으로 불법사찰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MB-새누리당심판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가진 기자브리핑에서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김충곤 1팀장은 2008년 7월 중순경 김종익 관련 제보를 입수해서 7월 24일 서울시경 기동대 김경수 경위에게 문건을 작성케하면서 민간인 사찰이 시작됐다"며 "그러나 이 시점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생기기 직전이고 김충곤 인사기록카드에는 9월 11일에야 총리실장으로부터 1팀장으로 임명받았다"고 밝혔다. 

특위소속 이상갑 변호사는 "김충곤 팀장이 경찰에서 명예퇴직한 게 6월 30일이고 7월부터 9월 중순까지 지원관실 활동을 할때 신분은 민간인이었다"며 "즉 민간인이 경찰공무원에게 지시를 내리고 민간인사찰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김 전 팀장은 직원으로 발령받은 8월 29일 팀원 세명과 김종익씨의 사무실을 방문하는데 그때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점검반 이석재'라는 가짜 명함을 내밀었다"며 "지원관실 어디에도 이석재란 이름을 가진 직원이 없고, 공직윤리점검반이라는 조직도 지원관실 내에 초창기부터 있었지만 업무규정은 그해 12월 31일 신설됐다"고 김씨가 가짜명함까지 사용했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정작 책임자인 이인규는 총리실 파견으로 있다가 5개월이 지난 2008년 12월 15일에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5개월동안 공직윤리지원관이 없는 지원관실이 운영됐다"며 "결국 지원관실이 졸속적으로 만들어졌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된 데는 정치적 목표와 이 조직을 따로 지휘감독한 사람이 있었다는 의심을 할수밖에 없다"고 배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특위는 이와함께 김 전 점검팀장이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취업된 배경에 대해서도 '윗선'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김 전 점검팀장은 검찰 진술 조서에서 "고향이 포항이다 보니, 이런 저런 곳에 계신 고향 선배들이 추천을 많이 했다"며 "퇴직하고 10일 정도 지나 총리실 직원이 연락이 왔고 총리실에 가서 이인규 지원관을 만나 인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영선 위원장은 "김 전 팀장은 경찰에서 퇴직하고 재경구룡포향우회 회장에게 취업을 부탁했고 바로 다음날 가보라고 해서 지원관실에 갔다는 수사기록도 있다"며 "구룡포향우회의 고문은 최시중 전 방통위장이고 김 전 팀장은 운영위원었다. 이 정도 되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것이 시작부터 불법이었고 (영포회 등)비선라인으로 모든 것이 움직여졌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백혜련 변호사도 "구룡포향우회장이 총리실 산하 직원도 아닌데 어떤 경로로 김 전 팀장이 채용됐는지, 누가 총리에게 채용하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하고 공무원신분증도 없는 김충곤이 매일 출근할 수 있게끔 지시한 사람은 누군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가세했다.

최병성기자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예비언론인 취업까지 막는 김재철 사장


이글은 미디어스 2012-03-15일자 기사 '예비언론인 취업까지 막는 김재철 사장'을 퍼왔습니다.
언론인 지망생들, 공채폐지 방침에 "가슴에 칼 꽂힌 기분"


▲ 김재철 MBC 사장 ⓒMBC
MBC 구성원들을 비롯해 시민사회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김재철 MBC 사장이 "앞으로 MBC에 공채는 없다"는 방침을 밝혀 비판이 일고 있다.
MBC노조에 따르면, 김재철 사장은 14일 임원회의에서 "앞으로 공채는 안 뽑는다"며 "보도부문을 중심으로 채용 조건, 고용 조건 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공채 직원 대신 계약직 직원을 상시 충원하겠다는 의미다.
김 사장은 7일 임원회의에서도 공채 제도를 없애고 전 사원을 프리랜서나 연봉제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PD들이 더 이상 파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보도 부문에 이어 예능과 드라마 부문에서도 '계약직PD' 채용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장근수 MBC 드라마본부장 역시 5일 PD총회에서 "파업이 끝나면 드라마PD 전원을 계약직화하겠다. 3분의 1은 잘라내도 된다"며 드라마 PD의 전면 계약직화와 구조조정을 시사했다.
공영방송인 MBC가 앞장서서 비정규직 언론인을 양산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을 놓고 MBC 구성원 뿐만 아니라 언론인 지망생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사 지망생들의 커뮤니티인 다음 카페 '아랑'에는 MBC 공채 제도 폐지 방침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 언론인 지망생은 "가슴에 칼이 꽂히는 기분"이라며 "기분 같아선 일 다 접고 KTX타고 서울가서 MBC 앞 1인 시위라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파업중인 MBC노조를 향해 "파업이 늦었다고 MBC를 살짝 원망도 했었다"며 "이번엔 지지말고 끝까지 싸워 승리를 쟁취하라"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다른 지망생도 "방송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는데 구분이 안가나"라며 "정말 뻔뻔한 행동에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밖에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김재철 대단한듯. 이렇게 질타받으면서 끝까지 막장으로 나가다니" 등의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MBC노조 역시 공채제도 폐지 방침에 대해 "'영혼없는 기자와 PD'를 양산함으로써 MBC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에서 공정성의 씨를 말려 버리려는 것"이라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자체 기획과 콘텐츠 제작 능력의 싹까지 없애 버리려 하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