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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7일 월요일

‘을의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글은 시사IN 2013-05-27일자 기사 '‘을의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퍼왔습니다.
지난 4월 롯데백화점 입점업체 직원의 죽음이 을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시사IN) 기자가 빅3 백화점 중 한 곳에 취업했다. 고객에게는 서비스를 받는 장소겠지만, 판매 직원에게는 평가와 감시, 처벌의 장소이다.

지난 4월22일 김 아무개씨(47)가 본인이 일하던 롯데백화점 서울 청량리점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투신 직전, 김씨는 의류 매장을 관리하는 영업 관리자(파트리더) 등 32명이 함께 쓰는 카카오톡 대화창에 “대리님, 사람들 그만 괴롭히세요. 대표로 말씀드리고 저 힘들어서 떠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백화점의 과도한 매출 압박이 결정적인 자살 원인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그런데도 백화점 업계의 ‘갑’인 롯데백화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전 직원에게 ‘입단속’을 지시하는 등 사건 무마에 급급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순간 외에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백화점 직원. 정확하게 말해 ‘백화점 입점업체의 판매 대리자’는 백화점 소속이 아니지만 백화점 규정을 따르고 이들로부터 매출 압박을 받는다. 김씨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매니저’였다. 호칭일 뿐 직책은 아니다. 대체로 매니저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중간관리자로서 매출의 일정 수수료(인건비 및 매장관리비)를 제외한 금액을 본사에 보내야 한다. 김씨의 죽음은 그동안 잠재된 각계각층 ‘을’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발화점이었다. 기자는 5월6∼12일 일주일간 국내 빅3 백화점 가운데 한 곳에서 김씨와 같은 ‘백화점 직원’으로 일했다.

5월6일. “고객의 지갑을 열게끔 서비스하라” 

취업은 어렵지 않았다. 아웃소싱 업체가 요구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챙겼지만, 백화점 여성복 코너 입점업체 ㄱ매장 매니저는 내가 준비해간 서류를 보지 않았다. 5분여 만에 ‘입사’에 성공했다. ㄱ매장이 내 일터였다. 

ⓒ시사IN 윤무영

백화점 교육은 일주일에 한 차례 열린다. 입점업체와 관계없이, 직원에서 아르바이트생까지 백화점에서 일하는 누구나 교육을 받는다. 교육생 30명 가운데 대다수가 20대 초·중반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여성 3명도 참가했다. “나이 들어서 일하기에 이만한 일이 없다”라던 매니저의 말이 떠올랐다. 

교육 목표는 명확했다. 백화점 소속 서비스리더는 “고객님은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백화점에 온다. 이곳은 백화점의 표본이다. 고객님의 지갑을 열게끔 서비스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5시간 동안 진행된 교육은 고객 편의를 위해 지켜야 할 사항을 일러주었다. 고객용 시설 이용 금지, 화려한 복장 금지, 앉아 있기 금지 따위였다. 

최근에는 사물에 존칭을 쓰는 게 듣기 불편하다는 고객 불만이 나온다며, “글로벌 기업으로 ‘바른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세일이십니다’ 같은 말을 쓰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의시켰다. 고객이 부담스러워할 정도의 눈맞춤이나 지나치게 정중한 손 모으기도 금지 사항이었다. 이런 모호한 지시를 하면서도 매장 모니터 평가 항목은 매우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밝은 표정과 바른 자세로 대기(100점), 밝은 표정은 아니지만 고객 입점 시 응대할 수 있도록 움직임에 주목(70점), 자연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으나 초점 없이 무표정으로 대기(40점), 직원 간 잡담·통화·상품 정리 등으로 방문고객 입점 여부를 인지하지 못함(0점) 따위 점수화된 항목이 70여 가지에 달했다. 손님으로 위장한 모니터 요원이 이 점수에 따라 직원들을 비정기적으로 평가한다. 

서비스리더는 매장을 돌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앉아서 대기 중인 직원을 촬영하고, 이렇게 찍힌 사진을 근거로 매장에 불이익을 준다고 했다. 매장 모니터와 직원 감시에 이어 곧 발표될 한국서비스 품질지수 평가까지, 판매 직원에게 백화점은 서비스 제공 장소이자 이에 대한 평가와 감시, 처벌이 반복되는 곳이었다.

5월7일. 빛은 없다 

붉은색 티셔츠, 팔리지 않던 옷을 유니폼으로 사용했다. 머리는 단정히 빗었다. 오전 9시30분, 백화점의 아침은 청소로 시작한다.    매장 관습상 청소는 막내급인 내 담당이다. 대걸레질과 먼지떨이, 거울 닦기다. 재고를 관리하거나 상품을 전시하는 일은 ‘둘째 언니’ 몫이다. 매니저는 판매에만 집중했다. 백화점에서는 매출을 높이는 업무가 가장 중요해서다. ㄱ매장은 나를 포함해 직원 5명이 일했다. 백화점 입점 매장 가운데 직원이 많은 편이었다. 매장도 넓었다. 두 개 매장을 텄다. 그만큼 높은 매출을 기록한다. 에스컬레이터 인근에 매장이 위치한 것도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시간이다. 연장 영업이 있는 금·토·일요일에는 오후 9시까지 일해야 한다. 평일 주 1회 휴무, 주 1회 늦은 출근이나 이른 퇴근을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급여는 148만원. 4대 보험을 제하고 나면 136만원을 손에 쥔다. 4대 보험을 들 수 있는 데다 136만원 주는 곳은 거의 없다고 동료들은 귀띔했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하자 매니저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하루만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매장 안으로 고객이 들어온다. 첫날부터 입술이 떨어질 리 없었다. “세 가지 인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해.” 매니저가 내 옆을 지나며 말했다. 맞이 인사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추가 인사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고객님∼’, 배웅 인사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어떤 고객이 모니터 요원인지 알 수 없다. 매니저가 선창하면 따라 외쳤다.

점심은 직원이 돌아가며 먹었다. 매니저는 내 점심시간을 가장 먼저 배치해주었다. 늦게 배치될 경우 오후 2시께 식사를 할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일어서는데 계속 서 있어서인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후 업무를 준비하는 휴식시간치고는 지나치게 짧았다.

시곗바늘이 저녁 8시를 가리켰다. 퇴근시간이다. 매니저의 눈치를 봤다.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서 있기가 괴로웠다. 백화점 폐점 이후에도 직원 대기 10분, 매출 확인 시간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백화점 직원들이 우르르 거리로 쏟아졌다. 어둠이 짙었다. 11시간 만에 바깥 공기를 처음으로 들이켰다.

5월8일. 판매 여왕이 되다

풀리지 않는 난관은 상품명과 제품의 특징을 외우는 일이었다. 제품을 잘 알아야만 고객에게 추천할 수 있다. 이는 즉시 매출로 연결된다. 매장에는 ‘킬러 아이템’이 있다. 매니저의 주력 판매 제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방만 해도 브랜드가 대여섯 개 있고 같은 브랜드도 색상·소재·디자인·가격에 따라 30가지가 넘는다. 나는 며칠이 지나도록 외우지 못했다. 

고객 응대를 하다가도 언니에게 눈치껏 제품 설명을 넘겼다. 그때마다 옆에 바짝 붙어서 응대법을 익혔다. 제품의 가격은 100여만 원. ‘직접 사서 쓰지도 않는데 어떻게 상세히 알까’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매니저는 제품을 판매한 언니에게 “너는 (브랜드) 여왕이야” “대견해” 따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도 잠시. 매니저는 오후 6시가 넘어도 매출이 130만원에 불과하다며 근심이 가득했다. 매장 평일 목표 매출 300만원에 훨씬 못 미쳤다. 백화점 판매 26년째인 매니저는 매출에 민감한 편이다. 두 달여 전 타 백화점에서 이곳으로 온 터였다. 본사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매니저의 근심은 직원들에게 곧장 전이되기 마련이다.

그때 한 여성 고객이 매장을 휘저었다. 매출을 높이려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매니저는 고객이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옷을 추천받아 입고 벗기를 반복하던 이 고객은 160만원어치를 한 번에 구입했다. 손 큰 고객이 분위기를 휘저으면 다른 고객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폐점을 겨우 1시간30분 남겨두고 400여만 원 매출을 올렸다. 매출은 발생하는 즉시, 본사에 접수된다. 매니저는 “본사에서도 오늘은 공쳤다고 생각했을 텐데 막판에 놀랐을 거다”라며 표정이 밝아졌다. 


ⓒ시사IN 이명익 백화점 판매 직원을 평가하는 항목은 70여 가지에 달한다. 위는 국내 한 백화점 여성복 코너의 모습.

한 직원이 나를 향해 “네가 와서 매출이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다 보면 다리 아픈 건 싹 사라진다던 동료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걷기가 힘들었다. 

5월9일. 본사 파트리더의 방문

입사 후 첫 조회가 있었다. 백화점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새 파트리더를 소개받는 자리다. 같은 층 매장 약 20곳을 관리하는 백화점 소속 직원을 파트리더라고 일컫는다. 그는 2011년 백화점 공채로 입사한 20대 후반 남성이다. 반면 대다수 매니저는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40대 이상 여성이다. 기선제압을 하려는지 그가 외쳤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실 거죠? (더 크게) 도와주실 거죠?”

몇몇 매니저가 소곤거렸다. “예전 그 직원이 아니다. 입사 2년 만에 파트리더로 승진했으니 얼마나 파이팅이 넘칠까.” 오후 4시께 파트리더는 담당 매장을 순차적으로 방문했다. ㄱ매장을 지난 직후 매니저가 나를 불렀다. “매장 창에 지문이 묻었어요. 닦으세요.” 신문지를 찢어 창으로 나왔더니 파트리더가 훑고 간 전 매장에서 줄줄이 창을 닦고 있었다.

다음 날 금요일부터 토·일요일까지 행사가 있다. 본사로부터 이월 상품을 받아 할인 판매를 한다. 재고를 없애는 일은 본사가 신경을 많이 쓰는 일 중 하나다. 그만큼 판매 직원에게는 이중으로 과중한 업무가 주어진다. 추가 업무지만 야근이나 특근비 등을 주지는 않는다.

옷 400여 벌이 10개 박스에 담겨 들어왔다. 직원들이 오가는 화물용 승강기 앞에 주저앉았다. 알록달록한 천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렸다. 행사에 쓸 150여 벌을 선별하고 행거에 걸었다. 서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잠시 맛본 행복은 행사의 시작과 함께 깡그리 사라졌다.

5월10일. 노고가 매출로

행사를 앞두고 본사 직원들이 매장을 찾았다. 매니저는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직원에게 “오늘 (매출) 얼마나 할 거야(올릴 거야)?”라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옷을 정리했다. 같은 질문이 입사 일주일이 안 된 내게도 왔다. 내가 되물었다. “얼마나 하면 될까요?” “열심히만 해.”

고객이 행사장에 관심을 가진다 싶으면 “어서 오세요. 고객님∼”이라는 인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내 나름의 코디를 추천하기도 했다. 둘째 언니가 “인사만 하지 말고 판매에 적극성을 가지라”고 조언한 직후였다. 몸은 괴로워도 입은 점점 자동으로 움직였다.

행사장 옷은 잘 팔리지 않았다. 옷 사이즈는 충분하지 않았고 디자인은 각양각색이었다. 매출은 나와 무관했다. 그런데도 들춰보고 입어보다가 사 가지 않는 고객들이 얄밉게 보였다. 어쩌면 내가 일한 노고가 매출로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님이 내 설득에 구입하면 짜릿하다”라던 매니저의 말뜻을 알 것도 같았다.


ⓒ시사IN 백승기 4월30일 입점업체 직원에 대한 백화점의 과도한 관리·감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다행히 매장 매출이 좋았다. 1000만원이 넘었다. 이런 날은 매출이 안 좋을 수도 있는 다음 날에 대비해 ‘감는다’. 하루 매출의 평균을 고르게 하기 위해 장사가 잘된 날 일부 매출을 다음 날로 넘기는 것이다. 

한때는 급여에 더해 1년에 두 차례 실시한 백화점 행사 매출에서 1%를 직원 수당으로 지급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사흘 만에 1억5000만원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본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막내급은 딱 한 차례 25만원을 받았다. 

5월11일. 밥 굶으며 11시간 버티는 언니들 

매장 직원들은 모두 밥을 먹지 않았다.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다. 이들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에는 비키니를 입은 가수와 모델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고객에게 직원들은 걸어다니는 피팅 모델이다. 날씬한 몸매 유지를 알게 모르게 강요당했다. 밥을 먹지 않고 11시간을 서서 버티는 능력은 정말 놀라웠다. 이들은 밥을 먹지 않는 대신 점심시간에 잠을 청했다. 저녁식사 시간도 따로 없다. 매니저가 사 오는 우유와 김밥으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나면, 그 후 굶는다. 

점심시간, 직원 휴게실에는 집에서 준비해온 삶은 달걀, 고구마, 오이 따위로 끼니를 해결하는 직원으로 붐볐다. 셋째 언니는 “제대로 밥을 먹지 않거나 퇴근 이후 폭식을 하는 탓에 백화점 판매직원은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많다”라고 말했다. 둘째 언니가 거들었다. “한창 바쁠 때는 휴식은커녕 매장과 창고를 뛰면서 한 입씩 오물거리며 요기할 때도 있어.”

‘고객의 눈으로 보세요.’ 직원 휴게실을 통과하는 거울에 적힌 문구처럼 모든 게시물이나 표지판은 고객의 관점에서 작성돼 있다. 안내를 받지 않으면 백화점 내부에서 직원 화장실·휴게실·승강기(화물승강기) 따위를 찾기 어렵다. 매장과 매장 사이 어디엔가 ‘서비스 라인’이라고 적힌 테이프가 부착돼 있으면 그 뒤에는 직원용 시설이 있다. 직원 휴게실에 가면서 가방을 들고 갔다가 ‘주의’를 들었다. 사복 유니폼에다 가방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고객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다. 직원과 고객의 경계는 언제나 세밀했다.

의아한 점은 직원이 이용하는 모든 시설물에 백화점이 속한 그룹의 회장과 대표이사 등 고위관계자 이름과 사진이 담긴 포스터가 부착돼 있는 것이다. 마치 ‘모든 매장의 주인은 그룹’이라는 사실을 주시시키려는 듯 보였다. 백화점 ‘갑’은 회장, 나는 ‘을’이라는 것을 볼 때마다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갑의 절약정신은 꼼꼼했다. 폐점을 하는 즉시, 직원이 남아 있는데도 에어컨을 끄거나 직원 화장실의 온수만 꺼버렸다.  

5월12일. “파트리더가 네 이름 적어오래”

아침부터 다리가 덜덜 떨렸다. 일한 지 닷새 만에 사흘짜리 행사를 맡은 게 무리였다. 다리에서 허리, 어깨까지 통증이 왔다. 옆 매장에서 일하는 언니는 생리까지 겹쳐 끙끙 앓았다. 언니는 자신의 연봉(2000여만 원)을 분할해 “오른팔이 500만원, 왼팔 500만원, 양쪽 다리 1000만원짜리”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벽에 기대고, 행거 뒤에 쭈그려 앉아봤지만 소용없었다. 동료에게 지적만 당할 뿐이다. 계산대 담당 언니와 옆 매장 언니가 몸을 비비 꼬는 내게 “파트리더가 이름 적어오래” “너 사진 찍혔어”라고 놀렸다. 나중에서야 농담인 걸 알았지만, 그 소리를 듣고서는 나도 모르게 머리가 쭈뼛거렸다. 심장박동이 심하게 빨라질 만큼 을의 처지를 실감했다. 

이런 상황이 정말 일어난다면? 끔찍하다. 두 번 지적을 받으면 퇴사당한다. 그 전에 매니저는 파트리더에게 훈계를 당하고 경위서를 쓸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에는 매니저마저 교체된다. 백화점 전 매장 중 모니터 요원이 매긴 점수가 가장 낮은 구역의 파트리더는 지하 주차장으로 배치받기도 한다. 

매니저는 책임질 일이 많다.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 매출 차이가 극심하고, ‘로스(잃어버린 상품 비용)’를 메우는 책임도 매니저 몫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매출의 부족한 금액을 스스로 벌충하기도 한다. 

금·토·일요일은 평일보다 30분 연장 영업한다. 폐점이 늦어지는데도 그만큼 돈을 더 주지는 않는다. 지난 2월 행사에서 한 직원은 뒷정리를 하느라 새벽 2시30분에 퇴근했다. 택시비 3만원, 식비 1만원을 썼다. 월급을 쪼개 일당 5만원이라고 할 때, 그는 이날 1만원을 손에 쥔 셈이다. 그러고도 이 직원은 이튿날 정시에 출근했다. 

일을 마치고 혼자 계단을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난간을 잡았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언니들 얼굴이 겹쳤다. 다리가 아픈 언니는 내일도 압박 스타킹을 신고 서 있어야 한다.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을 외칠 것이다. 그 뒤로 본사 정규직 파트리더의 번뜩이는 눈초리와 휴게실에 붙은 백화점 회장님의 자상한 눈빛은 계속될 것이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안철수 앞길, 이 한마디에 답이 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9일자 기사 '안철수 앞길, 이 한마디에 답이 있다'를 퍼왔습니다.
정치 전문가들, "무난하다" 평가 속 "이헌재 등에게 의존하면…"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기자회견에 대해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안 후보가 상당한 정치적 수를 보였다는 평가에서부터 '저렇게 해서 될까 싶다'는 회의론까지 나왔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 진행자인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는 단일화 관련 전망에 대해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한 마디를 했다. '변화를 원하는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겠다.' 그건 단일화에 응하겠다는 얘기"라고 풀이했다.


김종배 씨는 출마 선언 당일에 "'당장 (단일화)하겠습니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니만큼 (안 원장이 제시한) 두 가지 원칙은 기본적이고 당연한 것이고, 방점은 저 문답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 원장의 기자회견 내용 전반에 대해서는 "모범 답안을 내놨다"고 평했다.


김 씨는 "선거 과정에서부터 정치를 쇄신해야 한다는 것도 (다른 후보들에 대한) 선공(先攻)에 들어간 것"이라고 봤다. 그는 "복지, 경제민주화와 성장동력의 선순환구조를 강조했는데, 아마 디지털, IT에 기반한 성장전략을 제시하며 바로 정책 아젠다(의제)로 들어가지 않을까"하는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야권 단일화에 대한 안 후보의 명확치 않은 입장은 야권, 특히 민주통합당에서 일말의 우려를 낳기도 했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하나의 미국'을 이야기하던 오바마는 (미국) 민주당 후보였기 때문에 중간층을 뺏어올 수 있었다"면서 "현재 안철수의 입장에서 여야 모두에 등거리를 유지한 것은 야권 지지자들이 안철수의 정체성에 대해 더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부정적인 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는 "그래도 결국에는 단일화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 문제에 대해 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 소장은 "후보단일화 문제에 대해 공을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넘기는 상당한 정치적 수를 보여줬다"고 풀이했다. 박 소장은 "문재인 후보가 선출된 후 정치 쇄신이라는 짐을 지고 있지 않나"라며 "(정치가) 변화, 혁신하고 국민의 동의까지 있어야 한다는 것은 후보단일화의 부담을 자기가 갖지 않고 민주당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소장은 "안 원장 지지층이 반(反)새누리당, 비(非)민주당 아니냐. 그렇다면 국민의 동의가 빠진 단일화는 '비 민주당'의 표가 급속히 떨어져나갈 수 있다"면서 "(단일화의) 전제조건으로 전면적 쇄신을 내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지층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당연한 조건"이라며 "그에 대한 부담을 안 후보가 질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전체적으로 특별한 내용은 없는 것 같다"면서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시사하는 대목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 후보의 참여정부 평가는) 흔히 하는 얘기다. 그것보다 나아가서 후한 점수를 줬다면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전망을 강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 정도 선에서 하고 '박근혜 후보도 문재인 후보도 훌륭하다'는 정도 얘기였다"는 대목을 짚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19일 서울 구세군아트홀에서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회의론도 벌써부터 나온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정치 쇄신을 말했는데, 과연 안 후보가 그 주체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안 후보가 갖고 있는 것은 높은 지지율 뿐, 무소속인데다 강력한 지지자 집단도 없고 참모그룹도 정비된 상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그런 상황에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등 엘리트 관료에 정책 방향을 의존할 우려도 있다"면서 "이런 정도로 (안 후보가) 정치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도 "느낌이 '저렇게 해서 될까' 싶다"며 회의론에 가세했다. 그는 안 후보의 회견 모습에 대해 "편안하게 얘기해야 하는데 너무 긴장을 많이 했고, 상기된 표정에 경직된 모습이 반복되면 불안감을 해소하기 힘들 것"이라 혹평하며 회견문 내용에 대해서도 "정치 쇄신에 대해 좀더 구체적이어야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반면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오늘 안 후보가 강조한 것은 '포지티브 경쟁'을 하자는 것 아니냐"면서 "안 후보가 당연히 제시할 수 있는 것 같다.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는 총평을 내렸다.

고 박사는 안 후보의 회견에 담긴 메시지 등에 대해서는 "열심히 하더라"고 평가하고, 단일화 관련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에는 "출마선언 하는 사람이 단일화부터 (언급)하면 되나. 기자들이 계속 질문하던데 그건 좀 잔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곽재훈 기자,전홍기혜 기자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그 무덤에 침을 뱉어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8일자 기사 '그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71)박정희, 이젠 평가해야 할 때

법정은 일순 숨소리 하나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2006년 12월23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문용선 재판장은 그 침묵을 깨고, 31년8개월여 전 이른바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죄 없는데도 목숨을 빼앗긴 8명의 이름을 한 사람씩 부르기 시작했다. "피고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송상진, 우홍선, 여정남에 대해 판결을 선고합니다. 원심을 파기합니다. 피고 각 무죄!"

거의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참고 또 참아왔던 진하디 진한 흐느낌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흐느낌은 금세 통곡이 되어 법정을 휘감았다. 민주화된 세상이라 예상되던 재심 판결이었으나, 막상 판사의 육성으로 듣는 "무죄" 소리가 유족들은 기막히게 서러웠다. 31년 전에 그렇게 들었어야 할 선고였다. 그날 그 법정에서는 유족이 아니었어도 다들 울었다.

이 판결은 검찰이 법정항소 시한인 1개월을 넘기면서, 상급심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2007년 1월23일 최종 판결로 확정되었다. 몹쓸 세월에 대통령 한 사람 잘못 만나 죄도 없이 목숨을 잃었으나, 세상이 정상적으로 굴러 가기만 했다면 당연히 벌써 와야 할 그런 날이었다.

그 1년 8개월 뒤인 2008년 9월26일 이용훈 대법원장은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사법부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렸다"며 "민족일보 사건, 인혁당재건위 사건, 민청학련 사건,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사건 등에 대해 과오를 사과 한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이들 사건은 사법부의 잘못이라고 못 박을 수 없는 사건들이었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판결한 사건들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그런데도 이날 공식 사과문에서 "미래를 향해 새로 출발하려면 먼저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도덕적 용기와 자기 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가족들이 새누리당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대법원장이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구체적으로 거론해 사과하면서 그랬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가 직접 관련된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놓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미래'를 말하면서도 선문답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나라를 이끌겠다면서도 사과 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인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관련자들이 범했다는 죄목은 사형선고가 가능한 긴급조치 4호 위반과 내란 선동 등이다. 훗날 국가정보원(중앙정보부의 후신)의 과거사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이 사건이 "유신체제에 대한 학생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한 당시 박정희 정권이 학생시위의 배후에 공산주의자들이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고자 조작한 사건이었다"고 지적했다. 진실위는 특히 "당시 권력의 정당성이 없는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했다"고 진상 조사결과를 밝혔다.

뒷날 줄줄이 위헌판결을 받은 그 긴급조치들은 사실 박정희 씨 개인이, 방해 받지 않고 대통령 오래하려고 일방적으로 정해 놓은 '개인의,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기준이었다. 장기 집권을 위한 기준이었다. 그가 정한 기준과 요건에 적합하지 않으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유신의 기준'이었다. 그 기준 어겼다고 생사람 잡아다 죄 뒤집어 씌워 8명이나 죽인 게 인혁당재건위 사건이었다. 긴급조치 1·4·9호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만도 1000명이 넘었다.

대학졸업­교사­학원강사 경력의 임구호 씨는 1969년의 3선 개헌 반대운동을 한 전력 때문에 1974년 인혁당재건위 관련자로 엮여 들어갔다. 징역 15년을 선고 받고 7년10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임 씨는 당초 잡혀 들어갔을 때, 중앙정보부 조사에서도 인혁당이란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검찰에 가서야 처음 들었다.

그는 서울 남산의 정보부에서 매일 길이 90㎝되는 각목으로 얻어맞으면서 척추 꼬리뼈가 부러지면서, 시키는 대로 인혁당 관련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만들어 주었다. 동물농장에서 '인혁당 만들기'를 했다. 그는 현재 그 후유증으로 5급 장애자가 되어 병원을 들락거린다. 사형선고까지 받은 이철 씨도 인혁당이 뭔지도 몰랐다고 했다. 이 나라의 70년대는 그렇게 박정희 씨의 장기집권 목표 하나 때문에 피 맺히고 한과 눈물이 질펀하게 깔리던 시절이었다.

특히 인혁당재건위 희생자 유족들의 한과 눈물은 요즘에야 조금씩 알려지지만 처참하기가 비할 바 없었다. "목욕탕 간다고 나간 남편이 소식이 없다가 어느 날 간첩이 되어 TV에 나왔다"고도 했다. 남편에게 일생을 걸던 곱던 아낙이 남편을 빼앗긴 뒤 이제 한 세대가 지나 쭈글쭈글한 노파가 되었다.

한 희생자의 부인인 A 씨는 악에 받쳤던 때를 회상한다. "남편이 사형 당한 후 신문에 나는 박정희 사진을 이가 아프도록 꼭꼭 씹어서 뱉곤 했다"고 했다. 남편 산소에 매주꽃을 들고 찾아갔다가 발길을 돌릴 때마다 "살인마 박정희 천벌을 받으라"고 외쳤다고 했다. 박정희 씨가 피격된 1979년까지 계속 그랬다고 했다.

다른 희생자의 부인 B 씨는 남편에 대한 조사를 받던 중 기관원이 주는 물을 마셨다가 흥분되면서 온몸이 꼬이는 참혹한 경험을 했다. 그때 '남편은 간첩'이라는 진술서를 쓰고, 죄책감으로 아이들과 극약을 먹으려 했으나 친정어머니에게 들켰다. 본인과 아이들은 죽음을 면했지만 친정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한 달 만에 눈을 감았다. 이건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 다른 희생자의 부인 C 씨의 눈물겨운 이야기. 저녁때가 되어도 아들이 집에 오지 않았다. 동네 놀이터에 가봤더니 동네 아이들이 아들의 목에 새끼줄을 매고 '총살놀이'를 하고 있었다. "빨갱이 자식"이라 놀리고 있었으나 놀이터의 몇몇 어른들은 보고만 있었다. "저 아이와 함께 놀면 너희들도 잡혀 간다"는 소리도 들렸다. 경찰관 시험에 합격했으나 합격 취소 통지를 받은 친척도 있고, 친척들 여권도 내 주지 않았다.

진술 내용과는 정반대되게 조서가 조작돼 있기도 했고, 심지어 희생자들의 유언도 교수형 입회 교도관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만들어져 있었다. 진실을 보도해 달라고 그토록 발이 닳게 언론사에 쫓아 다녔으나, 진실 보도는커녕 억장 무너지는 기사도 나왔다. <대법원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심혈을 기울여 심리하고 선고한 것이므로 더 이상 불복할 여지가 없다.> (교수형 다음날 인) 1975년 4월10일자 어떤 신문의 사설이었다.

대법원 판사 D 씨의 기절할 이야기도 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들의 판결이 나온 것은 1975년 4월8일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D 씨는 자기도 서명한 것으로 되어있는 그 때의 판결문을 본적이 없다. 2002년 12월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가 있고 나서야 그 판결문을 보았다고 실토했다는 증언이 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은 그런 사건이었다. 박정희 씨는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그렇게 이끌고 갔다.

독재자였다는 평판 때문에 잊혀져가던 박정희 씨가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조선일보때문이었다. <한겨레 21>의 보도에 따르면 10ㆍ26이후 13년간 박정희 씨의 이름을 올리지 않던 조선일보가 김영삼 씨의 대통령 취임 후부터 집중적으로 박정희 씨를 찬양하기 시작한다. 10ㆍ26이후 2009년 10월까지 실린 박정희 기사 3459건 중 93.6%인 3231건이 김영삼 씨 취임 이후 보도됐다고 했다. 인기가 바닥인 김영삼 씨의 '무능'과 대비되는 '강력한 리더십의 유능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기억의 형태로 기사가 등장했다고 <한겨레 21>은 보도했다.

1995년 3월부터는 '가장 훌륭한 정치지도자는 누구입니까'를 묻는 여론조사를 시작했다. '1위 박정희'일 개연성이 많은 시점이었다. 집중적인 찬양보도가 줄기차게 계속되다가 1997년 10월부터 3년 동안 연재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가 '박정희 부활'의 결정판이 된다. 박정희 씨는 생전에 기자들을 만났을 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한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하지만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한 것을 역사는 제대로 평가해 줄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가 느껴지는 말이다. 지난 10일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말 속에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하던 아버지의 모든 것이 함축돼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의 연재기사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박정희 씨는 부활됐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과오도 덮어지는 양상을 보였고, 심지어 "어느 누가 '박통(박정희대통령)'의 허물을 말 할 수 있느냐" "누가 박통에게 침을 뱉을 수 있느냐"는 눈 부라림까지 느껴지는 상태가 되었다. 박정희 씨는 그렇게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조선일보가 그렇게 만들었다. 더구나 역대 정권을 살펴볼 때 여건도 좋았다.

전두환 씨의 광주학살이 너무 잔인하고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박정희 씨의 혹독한 인권탄압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박정희 씨에 대해서는 정색을 하고 역사를 바로 잡는 평가가 시도되지 못한 측면까지 있다. 김영삼 정부는 박정희 씨의 조카사위인 김종필 씨와 3당 합당으로 손을 잡고 출발한 정권이었다.

김대중 씨는 김종필 씨와 연합한 소수정권이면서, 오히려 '용서'를 내세워 박정희 기념관까지 짓도록 지원해 주었다. 노무현 씨는 '그럴 생각'이 없었던 데다 '박근혜와의 대연정'까지 생각하던 정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해봐야 할 때다. 겸손한 마음으로 냉정한 눈으로 평가하고 정리해야 할 때다. 역사는 바로 세워져야 한다. 특히 이번에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계기로 그런 작업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보리고개를 없애고 경부고속도로와 중화학공업 등의 업적을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집권 18년 동안 늘어난 1인당 극민소득이 1600달러에 불과하고, 대기업 수출 밀어주기의 그늘에서 혹독한 저임금으로 고통 받던 근로자들의 희생을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히 역대 대통령 중 IMF 때를 빼고는, 소득에서 박정희 대통령 때보다 못한 대통령이 하나도 없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功)과 과(過)를 있는 대로 늘어놓고 각각 다른 서랍에 집어넣으면서, 과대 포장된 것도 포장 벗겨 내용을 확인 할 필요가 있다. 공정하고 준엄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그는 과연 사심없이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만 일 했는가. 근대화와 산업화만을 위해 몸을 던졌는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호통 칠만한 삶을 살았는가.

부산일보와 정수장학회와 영남대학교를 개인 소유로 돌려놓은 것도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유신반대 데모한다고 서울문리대 해체한 것도, 긴급조치 위반 구속자가 1000명 넘도록 인권을 탄압한 것도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일도, 근대화나 산업화의 과정도 아니었다.

허나 그런 것 다 양해한다 치더라도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통해 드러난 참혹한 사법 살인사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숨이 막힌다. 참을 수가 없다. 절망한다. 그 무덤에는 침을 뱉어야 한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2012년 8월 22일 수요일

박근혜 봉하방문, 조간들의 평가는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22일자 기사 '박근혜 봉하방문, 조간들의 평가는'을 퍼왔습니다.

■ 경향 한겨레,‘반쪽 역사인식’ ‘진정성 논란’ 비판
■ 동아일보 정연욱 논설위원, ‘민주당 대선후보 박정희 참배할까’ 지적
■ 대다수 신문, ‘박근혜 파격행보’에 초점 맞춰 보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후보로서의 첫날인 21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요, 박 후보 봉하방문을 두고 정치권에서도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의 평가는 어떨까요. 역시 다양합니다. 박근혜 후보의 방문을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한 대선행보’로 해석하는 건 대부분 비슷합니다만, 그것의 진정성을 두고는 평가가 조금씩 엇갈립니다. 오늘 뉴스브리핑은 조간들의 ‘박근혜 후보 봉하방문’ 평가에 관한 기록입니다.


가장 비판적인 한겨레, 사설 게재한 경향신문

우선 박근혜 후보 봉하방문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신문은 한겨레입니다. 한겨레는 22일자 1면 (오전엔 아버지, 오후엔 노무현 … 박근혜 ‘참배정치’)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행보를 파격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파격 행보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후보가 △5·16 군사쿠데타 등 어두운 과거사를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여전히 보이고 있는 데다 △유력 정당의 대선후보로서 과거와 아버지 문제를 객관화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한겨레는 “지도자로서 과거 독재정권 평가는 무시한 채, 현재의 보수·진보를 아우르겠다고 나서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덮자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주장하는 논지와 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한마디로 선거 전략을 위한 한시적 제스처 아니냐는 것이죠. 실제 박 후보의 봉하마을 방문 소식이 전해진 이후 트위터 등 SNS에선 이를 비판하는 여론이 급등했습니다. 한겨레 장봉군 화백도 오늘자(22일) ‘한겨레 그림판’에서 박 후보의 행보를 ‘불가피한 참배’로 규정했는데, 한겨레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박 후보의 봉하마을 방문을 진정성 있는 행보로 보기 보단 ‘정치적 제스처’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자(22일)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가운데 유일하게 사설을 게재한 경향신문 또한 한겨레의 평가와 비슷한 논조를 보입니다. 경향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참배한 박근혜 후보)라는 사설에서 “평소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에 대한 박 후보의 반감을 감안한다면 가히 파격이라 할 만하다”고 평가하면서도 “문제는 국민대통합 메시지가 여전히 구호에 머무는 인상이 짙다”고 비판했습니다.
경향은 “(박 후보가)‘과거만 보지 말고 미래를 이야기 하자’는 식이 아니라 국가 최고지도자 후보에게 요구되는 과거와 역사에 대한 박 후보의 인식이 수반돼야 한다”면서 “최근 5·16 논전을 비롯해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이나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등 미래로 가기 위해 선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박 후보의 보다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호의적으로 평가한 동아일보 … 정연욱 논설위원의 ‘속내’

박근혜 후보의 봉하방문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신문도 많습니다.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는 박근혜 후보의 봉하방문을 스트레이트 위주로 보도하면서 박 후보의 ‘파격행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신문들이 박근혜 후보의‘봉하방문을 둘러싼 진정성 논란’보다 파격성을 주목했다는 건 이번 박 후보의 봉하방문을 호의적으로 보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호의적으로 평가한 곳은 동아일보입니다. 동아는 4면 (朴, DJ-盧 前대통령 묘역 첫 참배… 본선 첫 행보는 ‘화해’)에서 “봉하마을 방문은 캠프 참모들이 보고한 일정 중에 포함돼 있었지만 첫 행보로 결정한 것은 박 후보 자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박 후보의 첫날 일정은 온통 이념을 떠난 국민대통합과 ‘100% 대한민국 실현’에 맞춰졌다”고 보도했습니다. 진정성 논란은 뒤로 한 채 박근혜 후보의 결단과 화해‧통합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것이지요.


사실 동아일보의 속내는 기사보다는 정연욱 논설위원의 칼럼에서 도드라집니다. (횡설수설-봉하마을에 간 박근혜)에서 정연욱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와의 악연을 소개한 다음 “살아 있을 때 둘 사이의 앙금과 관계없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이유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도 박정희 묘역을 찾을지 궁금하다.”
박근혜 후보의 봉하마을 방문을 둘러싼 진정성 논란을 ‘민주당 대선 후보 박정희 묘역 방문 여부’로 둔갑시키는 그 노회한 정치적 감각에 순간 감탄하면서도 진정 동아일보의 속내는 여기에 있었던 게 아닐까 -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가장 ‘직설적인’ 조선일보의 박근혜 봉하방문 평가

사실 오늘(22일)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가운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봉하방문을 가장 직설적으로 평가한 신문은 조선일보입니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다른 대다수 신문들처럼 파격행보나 화해라는 단어 대신 조선일보는 (‘50% 非朴’을 향한 헌화)(1면 기사제목)라는 다소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한겨레가 저널리즘적인 방식으로 박근혜 후보의 진정성 논란을 비판했다면, 조선일보는 철저히 보수진영의 대선전략 차원에서 박 후보의 봉하방문을 바라봤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조선일보 기사는 박근혜 후보 대선 전략문건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입니다.
“두 전직 대통령은 박 후보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50% 진영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 박 후보는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수도권, 연령별로는 2040 세대, 이념적으로는 중도·좌파 진영에서 취약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상당수는 ‘박근혜 후보 불가론’을 상당히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 대다수 박근혜 캠프 관계자들은 ‘중도층과 무당파, 20~40대를 겨냥해 새로운 얼굴들이 캠프 전면에 배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박 후보는 앞으로 3단계로 인적(人的) 외연 확대를 단행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의 봉하방문을 진정성 측면에서 비판하든 조선일보처럼 ‘보수진영 집권을 위한 대선전략 차원’에서 해석하든 그건 언론사들이 스스로 판단할 문제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늘자(22일) 조선일보 3면에 실린 사진과 그것을 해설하는 제목은 정도가 좀 지나친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를 ‘동급’으로 평가한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3면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옛 사진과 박근혜 후보 헌화 사진을 동시에 등장시키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박정희 생가서 “이젠 화해합시다” … 그후 15년 ‘김대중 묘소’간 박근혜 “대통합 이루겠습니다”)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5·16 군사쿠데타를 비롯해 정수장학회 문제,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등 과거사를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여전히 보이고 있는 박근혜 후보와 유신정권 하에서 온갖 핍박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한 ‘화해’가 어떻게 ‘동급’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 저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첫날 행보를 그렇게까지 평가하고 싶은 조선일보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과유불급 - 조선일보 3면 사진과 제목을 보며 조선일보에게 들려주고픈 사자성어입니다.

뉴스브리핑팀 / 민동기  |  webmaster@mediaus.co.kr

2012년 2월 9일 목요일

이명박 정부, 가장 '맑고 투명'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09일자 기사 '이명박 정부, 가장 '맑고 투명'했다!'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5년, 빛과 그림자] 문화 정치의 실패

학술단체협의회와 은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간의 각 분야별 정책을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난 10월 29일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토대로 각 분야의 전문가의 글이 실리고, 나중에는 책으로도 묶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스튜어트 홀의 명저 에 대응하여 라는 책이 나올 시점이다. 왜냐하면 올해는 총선과 대선을 통한 급격한 권력 재편이 예고되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된 문화 영역에서의 성과 진단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세세한 발자취의 추적이 실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명박 정부를 문화적 관점에서 진단한다면 그 어느 정권보다도 '맑고 투명'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는 곧 정치 과정에서 요청되는 현란한 수사학의 부재가 보여주는 '은유의 빈곤'과 신자유주의적 생활양식의 내면화를 가능케 할 (그람시적 의미에서) 참호와 요새, (알튀세적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작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문화 정치의 실패'로 요약된다.

위와 같은 평가는 에서 주목하고 있는 다음의 사항들, 즉 제도 정치의 장악이 아닌, 도덕적·지적 리더십의 확보, 이데올로기의 훈육적 효능, 새로운 수준의 문명 내지 국가상 제시를 통한 대중적 동의 여부에 기초한다. 이런 사항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문화적 진단 혹은 문화 정책에 대한 평가에 있어 핵심적 분석 틀을 제공한다. 즉, 이명박 정부는 국정 운영에 있어 도덕적이고 지적 리더십을 확보했는가, 사회통합을 가능케 할 이데올로기의 작동이 원활이 이루어졌는가, 질적 도약을 통해 도달해야 할 국가적 비전이 어떻게 제시되었는가의 문제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

첫째, 이명박 정부가 도덕적·지적 리더십을 확보하며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잡았는가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2008년에 발생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는 이명박 정부에게 향후 국정 운영의 방식을 결정짓는 중대 사건이었다. 즉, 국민과의 쌍방향 소통이 아닌 국민에 대한 일방적 소통으로 국가를 운영하게 만들었다.

'치안 통치'는 이러한 국정 운영을 반영하는 구체적 사례이다. 치안 통치란 국가 권력이 시민 사회의 제 요구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조정·관리하지 않고 공권력을 앞세워 제압하는 독선적 지배 형태이다. 국가 권력은 '국가와 사회 안전에 대한 위협'을 빌미로 불안을 상시화했고, 그에 대한 처방으로 시민적 권리의 요구나 사회적 소수 집단을 위협 요인으로 침소봉대(針小棒大)한 후, 문제 해결을 위해 공권력 투입의 필요성과 엄정 대처를 공론화해 갔다.

그런 의미에서 치안 통치는 법치주의를 중단하고 공권력을 통한 폭력을 구사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가령, 국가는 용산 참사와 같은 저항을 '예외 상태'로 만든 후, 신속한 즉결 심판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선전하며 즉각적 진압에 나섰다. 왜냐하면 예외 상태는 법의 효력을 정지시킴과 아울러 폭력적 해결책을 최우선으로 선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대중의 자율적 실천도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로 둔갑되었다. 가령,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를 거치며 이명박 정부는 무려 1300여 명을 입건하여 구속 기소자 71명을 포함한 1180여명을 기소했다. 이는 곧 동의와 타협을 이끌어낼 도덕적·지적 리더십의 확보가 이명박 정부에게 있어 처음부터 부재한 혹은 불가능했음을 보여준다.



ⓒ프레시안(손문상)
둘째, 이명박 정부는 사회 통합을 가능케 할 이데올로기의 창출 및 원활한 작동을 위해 어떤 문화 정책을 펼쳤는가의 문제이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공고화는 사회 갈등을 제도화하는 가운데 국가 권력의 가치 체계를 대중에게 내면화시킨다는 점에서 문화 정책의 핵심이 된다.

문화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 와서 정치적 논란과 선정적 가십 사이를 오가며 세간에 큰 이슈를 자주 만들어냈다. 가령, 독립영화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예술영화전용관의 기존 사업자에 대한 교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예술인회관 사업에 대한 지원 재개, 한국작가회의에 대한 지원금을 시위 불참 확인서와연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결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인 위원장 사태, 국립극단 해체와 전 단원의 정리 해고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대중적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위의 사건들은 문화 정책을 문예론적, 경제주의적, 도구적 입장에서 수립·집행하는 가운데 나타났다. 문화 정책에 대한 문예론적 접근은 문화 엘리트주의와 연결되는데, 이로부터 새로운 감수성과 스타일의 부상에 눈 감거나 기성화된 예술만을 강조하는 배타적 장르주의 혹은 전문가주의가 횡횡했다. 2008년 예술의전당 관계자가 클래식전용 공연장이라는 이유로 인순이의 공연을 불허한 사건은 이러한 정황을 보여준다.

한편, 문화의 세기에 문화를 경제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지나친 산업·상업적 접근은 문화 자체의 고유한 가치까지 자본의 논리로 포섭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경제주의적 태도는 국정 운영 전략에서 문화 정책을 산업과 개발 정책의 하부 영역에 설정한 점에서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문화 정책의 도구적 활용은 4대강 살리기 사업, 도시 개발 사업의 부가 가치 창출 요인으로 문화 정책의 역할을 적극 부각·동원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문화 행정의 비민주적 장악 역시 문화 정책을 도구화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대대적인 매카시 선풍을 일으키며 법적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을 해임하고 보수 인사로 교체했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김정헌 위원장 사건은 대표적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는 어떤 국가 발전의 상을 제시하며 대중을 이끌었는가의 문제이다. 정권 교체를 이룬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서는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관 및 기관장 임명 과정에서 나타난 '고소영 사건'과 잇따른 상위 1퍼센트만을 위한 정책(법인세 인하와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강부자 감세' 정책, 교육 시장화, 보건의료 시장화)은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 및 국정 기조(신자유주의 정책)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이로부터 국민적 저항은 거세질 수밖에 없었고, 국정 지표의 슬로건을 '녹색 성장', '공정 사회', '친서민 공생 발전'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수사는 국민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못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르는 이상 이명박 정부가신경 쓰는 혹은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위와 같은 정황은 두 국민으로 분화되는 사회 양극화에 기인한다. 이때 무한경쟁에서 낙오되어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배제로 주변화 되는 다수의 사람(대중)들은 삶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가령, 구조 조정에서 이루어진 실직과 명퇴는 예외적이 아닌 정상적 상태로 되어 갔다. 이로부터 국가의 주요 책무였던 복지 제도는 해체되고 시장 논리가 전면화되었으며, 대중의 삶은 사회적 보호의 문제가 아닌 법과 질서의 문제로 분류되었다. 즉, 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무능력은 범죄로 취급됨과 동시에 이들의 문제는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다. 이 속에서 국가는 대중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희망의 정치가 아닌, 엄정한 공권력을 앞세운 억압의 정치에 기초하며 국가의 상을 만들어갔다.

요컨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문화적 독해 및 문화 정책에 대한 평가는 상징 조작과 여론 동원이라는 문화 정치의 기본조차 수행하지 못한 무능력으로 요약된다. 역대 정권 중 가장 폭압적이라 평가되는 전두환 정권조차 '3S' 정책을 교묘하게 활용하며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문화의 세기라 지칭되는 문화의 급격한 부상 속에서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공권력을 앞세운 일방적 통치방식은 지배 권력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매우 '맑고 투명한' 정권이었다. 또한 그 누구도 은유와 상징 속에 은폐된 지배 권력의 욕망을 징후적으로 독해할 필요가 없었다.



/김성일 경희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