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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6일 목요일

박근혜, 박정희·군사문화에서 벗어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16일자 기사 '박근혜, 박정희·군사문화에서 벗어나라'를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77) '윤창중'·'임을 위한 행진곡'의 교훈

윤창중 사태의 발생과 전개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박근혜 청와대'의 용량(容量)과 기능에 대한 탄식이 절로 나오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그 모양 그 꼴인가 하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되는 탄식이다. 특히 '일을 낸' 윤창중 씨를 놓고는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이냐"는 투로 한숨 섞인 이야기들을 쏟아 내고 있다.

그의 '시작'에서부터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가 계속 저지른 사건들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애당초부터 윤 씨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그동안 써 온 글들을 보면 '글쟁이'의 필수 덕목인 균형 감각이 원초적으로 실종돼 있는 것에 우선 놀라게 된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극도의 초조감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쪽에 대해서는 멋대로 재단해 매질하거나 깔아뭉개는 우격다짐 식 군사문화까지 읽히는데 또 놀라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그를 '극우 보수 논객'이라고 '예우'해 왔다. 그러나 그의 글을 관심 있게 읽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철저한 박정희 신봉자이면서 군사문화 예찬론자라고 단언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 별 교류도 없던 그를 '대통령 당선인 제1호 인사(人事)'로 당선인 수석대변인에 임명한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지닌다. 그때 그 인사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 맡길 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우려하고, '불통논란'까지 불거졌으나, 대통령은 고집스럽게 그를 청와대까지 데리고 가 초대 대변인으로 등용했다. 그 '등용'이 필경 이번 참사의 단초(端初)가 되었다.

결국 '박정희'와 '군사문화'에 대한 대통령의 향수가 바로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소리다.


▲ 윤창중 전 대변인 ⓒ뉴시스

일부 보수논객들은 그 새를 못 참고, "젖가슴도 아닌 겨우 엉덩이를 만진 건데…"라거나, "종북세력들의 음모"라거나, "호남향우회가 의심스럽다"는 기막힌 이야기까지 쏟아내며 윤 씨를 감싸고자 했다. 양파껍질 벗겨지듯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대응하는 청와대 요원들의 위기관리 능력도 한마디로 딱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수석비서관 회의의 '모두발언' 형식을 '차용'했다.

국민을 진심으로 떠받드는 느낌을 주는, 상황에 맞는 '적절함'과 '당당함'이 눈에 띄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잔말 말고 주는 대로 받아먹어라"는 소리로 듣고 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 대목을 놓고, 마지못해서 하는, "내가 지금 항복하는 건 아니다"는 인상의 군사문화를 연상한 건 필자만이 아니었을 듯싶다. 당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궤적(軌跡)'을 따라 가보면 자주 '박정희'와 '군사문화'를 만나게 된다. 특히 '윤창중'으로 시작한 인사에서는 곳곳에서 '박정희 냄새'가 난다.

젊은 시절 청와대에서 박정희 씨를 보좌하던 인사, "5·16 쿠데타가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악을 쓰던 교수와 예비역장성, 박정희 정권에서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인사의 아들, 박정희 씨가 총애하던 정치인의 아들, 유신헌법을 기초한 인사의 사위 등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낸다. 휴대폰 고리에 박정희 씨 내외의 사진을 매달고 다니던 예비역 4성 장군은 국방부장관에 내정됐다가 낙마하기도 했다.

'박정희'의 복권을 위해 그녀가 정치를 시작했다는 측근의 '증언'도 이미 나와 있다. 바야흐로 '박정희 문화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소리는 그래서 나오는 듯싶다. 다 알다시피 박정희 씨는 이 나라 군사문화의 원조(元祖)다. 대통령은 지근거리에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나 업무 추진 스타일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사도 한 번 내정하면 결정적 흠이 드러나도 결코 되돌리려 하지 않는다. 때문에 '일수불퇴(一手不退)'에 '불통인사'란 말이 따라 다닌다. 첫 번째 헌법재판소장 내정자, 김병관 국방부장관 내정자, 미래창조과학부장관 내정자, 해양수산부장관 인사 때 등 우리가 다 보아왔다.

절대 '지지 않으려는' 그 막무가내 식 면모가 바로 군사문화라고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대통령 본인도 때맞춰 "(내가 미는 것은) 결코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전 국민이 보고 있는 TV화면을 통해 그랬다. 박정희 식 국론통일(國論統一)이 강요되던 군사문화 시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충격적인 '명령형(命令型) 말씀'이었다.

해마다 5월이 오면 '광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은 요동을 친다. 군사정권의 잔인한 학살 기억에 몸서리치면서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에 속으로 끝없이 운다. '광주'는 목숨 걸고 피 흘리며 불의(不義)에 저항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상징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아는' 함성과 역사가 눈 시퍼렇게 뜨고 굽어보고 있는 '사람 냄새나는 동네'다. 최근 그 '광주'를 멱살 움켜쥐고 뽈깡 들었다가 내려놓은 사람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다.

'광주' 5월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어이 못 부르게 함으로써 5·18을 패대기쳐 보고자 했던 것 같다고들 말한다. 그의 시도는 성사되지 못했으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는 데는 일정부분 성공한 듯하다. '시도'는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급기야 박승춘 보훈처장이 올해 작심을 하고 수천만 원의 예산까지 장만해 '별도의 노래'를 만들려 했다. 그러나 '광주'는 그리 쉽게 지워질 수 없게 되어있다.

박승춘 그는 누구인가. 육군 중장 출신으로 2011년 2월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되었다. 그해 12월 광복회 워크숍 강연에서 공무원인 그가 "오늘날 우리가 이 정도로 살게 된 것은 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입니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누구를 뽑아야 할지 다들 아시죠"라고 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눈에 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장차관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새 정권에서도 그의 직책을 그대로 맡도록 유임 발령을 받은 사실상 유일한 인사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김병관 내정자의 '버티기 끝 낙마'로 안보공백을 메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서둘러 유임이 결정되었고, 헌법상 4년 임기가 보장된 감사원장과 임명 된지 3개월 밖에 안 된 국민권익위원장은 '특별한 사정'이 적용돼 유임된 경우다)

그의 '박근혜를 향한 충성'은 일찍부터 눈물겨운 데가 있다. 그는 육군중장 전역 직후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란 반공교육기관을 설립해 퇴역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와 함께 '박정희'와 '군사문화' 홍보에 온몸을 던진다. 그는 특히 '박정희의 유신' 옹호에 지극정성의 공을 들였다. 박근혜 후보의 흉중을 누구보다 잘 헤아려 밀어 붙였던 것 같다.

'유신반대는 종북이다' '(종북세력은)사회주의 건설 목표를 숨긴 채 반 유신·반 독제 민주화 투쟁을 빙자해 세력 확산을 기도했다' 이런 게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가 예비군·민방위 교육에서 강조한 주된 내용이었다. 보훈처장으로 임명되고 나서는 국발협이 교육범위를 더욱 넓혀갔다. 2011 ~ 2012년 국발협은 2600회의 동원예비군 안보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훈처 지청들이 '적극협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총선을 4개월 앞둔 2011년 말 그의 국가보훈처는 박정희 씨를 미화하고 유신반대 민주화운동을 종북활동으로 깎아내리는 동영상 DVD 1000세트를 만들어 마구 뿌려대기도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박승춘 처장에게 '광주'는 '눈엣가시'로 비쳐졌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군사문화가 빚어낸 불의'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 비위에 거슬렸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박승춘 씨에게는 5·18때 공수여단장이었던 안현태 씨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문제를 놓고, 보훈처장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한 전력까지 있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2012년 5월 박처장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감사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두말 할 나위 없이 '광주'는 이 나라 현대사에 중대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이다. 그 '광주'를 상징하다시피 하는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고, 그 '상징'을 '손 봄'으로써 '광주'를 다소라도 지워 보려한 게 박승춘 씨다. 우리는 박승춘 보훈처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사람이고, 때문에 이례적으로 새 정권에서 유일하게 연임 발령을 받은 '박근혜의 사람'이라는 대목에 주목한다.

때문에 우리는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에 반하는 일을 추진했을 리 없고, 대통령의 동의나 묵인 없이 그처럼 '엄청난 일'을 밀어붙이지 않았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제라도 '박정희'와 '군사문화'를 뛰어 넘는 게 옳다.

아버지 대통령이 딸 대통령의 도달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보리 고개 극복이나 중화학공업 육성이나 유신독재나 생사람 죽이기가 지금 시대적과제가 될 수 없음도 두 말할 나위없다. '창조경제'와도 너무나 동 떨어진 이야기다. '향수'를 지우기 힘들다면 '박정희'와 '군사문화'는 박물관에 보내는 게 방법이다. '박정희'와 '군사문화'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야말로 윤창중 사태와 임을 위한 행진곡 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교훈이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2013년 5월 7일 화요일

이승만·박정희 다룬 <백년전쟁>이 국가 안보 문제?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06일자 기사 '이승만·박정희 다룬 (백년전쟁)이 국가 안보 문제?'를 퍼왔습니다.

'백년전쟁'은 현재 진행형…이승만기념사업회 vs 민족문제연구소


지난해 말 공개돼 유튜브 조회 수 200만 건 이상을 기록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백년전쟁)은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해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배포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총 6편으로 기획됐다. 지금까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두 얼굴의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프레이저보고서' 등 두 편이 지난해 11월 먼저 공개됐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 3월 13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시작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사회 원로급 인사 12명이 함께한 오찬 자리에서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인호 전 주러 대사가 입을 열었다. (백년전쟁)을 언급하며 "역사 왜곡이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하겠다"며 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 전 대사의 '성토'를 경청하고 일일이 메모한 뒤에 "잘 살펴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건국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단체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총리실 산하에 '건국60년기념사업단'을 만들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던 단체였다.

이 전 대사가 특히 지적한 것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두 얼굴의 이승만'이었다. 그의 지적이 있은 후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은 문제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비판 사설을 앞다퉈 내놓았다. 결국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가족이 지난 2일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등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 <백년전쟁> 포스터 ⓒ민족문제연구소


'백년전쟁'은 현재 진행형…이승만기념사업회 vs 민족문제연구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이자 유족 대표인 이인수 이승만기념사업회 상임고문은 2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보수단체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편에 대해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인격 살인"이라고 규정하며 "유족들은 (백년전쟁) 관련자들을 이승만 박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다"고 밝혔다. 이 상임고문이 고소한 인사는 임헌영 소장, 김지영 (백년전쟁) 감독 등 3명이다.

이 상임고문은 검찰에 접수한 고소장을 통해 "(백년전쟁) 동영상에서는 항일 독립운동가로서 명망이 절대적이었던 고 이승만 박사를 인격적으로 살해하는 황당한 주장을 펴기 위해 '하와이 깽스터', '악의 탄생', '똑바로 뽑아라', '상해의 결투' 등 선정적인 (소)제목을 정했다"며 "독립투사로서 고 이승만 박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방대한 양의 직접 사료와 연구 결과들은 완전히 무시하고, 편향되고 날조된 주장들만으로 고 이승만 박사를 비하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다큐멘터리가 제시한 12가지 사례 및 에피소드에 대해 "11개의 사례는 완전 조작된 것이고 1개의 사례는 영어 원문을 지나치게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오는 9일 환경재단에서 이 상임고문 등이 고소한 것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6일 밝혔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 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년전쟁)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100여 년 전의 역사를 두고 이승만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법정 안팎에서 '전쟁'에 돌입한 모양새다.

"치안 담당 장관이 '대응하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
역사적 사실을 두고 법정에서 다투는 것과 별개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도 감지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 살펴보겠다"고 발언한 이후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객관적인 검증이 없는 (백년전쟁) 동영상은 국민 통합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며 "한국의 정체성이 지켜지고 역사관이 올바로 설 수 있게 문제에 대응해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이인호 전 대사가 (백년전쟁) 문제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경찰청을 외청으로 두고 있는 안전행정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그 무게가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역사 다큐멘터리 문제인데 교육부나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라 안전행정부장관이 '대응하겠다'고 한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박세열 기자 

2013년 4월 30일 화요일

박정희가 시작한 남북 채널 박근혜 정부서 완전 중단


이글은 프레시안 2013-04-29일자 기사 '박정희가 시작한 남북 채널 박근혜 정부서 완전 중단'을 퍼왔습니다.

[해설] 개성공단, 이대로 폐쇄 수순 밟나?


29일 남북간 실무 협의를 위한 소수 인원만 남기고 개성공단에 남아 있던 43명의 남한 인원들의 귀환이 이뤄지면서 남북 간 대화 채널이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이에 따라 남북이 향후 사소한 오해와 충돌로 전면적인 대결전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폐쇄수순을 밟게 될 경우 북측이 개성공단 인근에 군부대를 재배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월 27일 남북 간 연락 채널이었던 군 통신선을 차단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개성공단을 출입하던 인원이 있어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연락을 주고받는 채널은 존재했다. 그러나 실무 협의가 끝나는 대로 개성공단의 출입 인원이 완전히 없어져 조만간 남북 간 소통할 수 있는 연락 채널은 단 하나도 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지난 27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개성 주재원 전원 귀환이 이뤄졌다. 이날 기업 주재원들은 저마다 최대한 많은 짐을 싣고 내려왔다. ⓒAP=연합뉴스


남북간 대화채널은 1971년 9월 20일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의사소통 경로의 필요성에 공감한 남북이 이틀 뒤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 사이에 전화 2회선을 개설하면서 시작됐다. 1971년 박정희 정부 시절에 시작됐던 남북 간 소통 채널이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완전히 중단되는 셈이다.

북한이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후방으로 빠졌던 군부대를 개성 인근으로 다시 배치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3년 개성공단 착공 이후 개성과 판문점 인근에 주둔하던 북한군 6사단과 64사단, 62포병여단을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 일대로 재배치했다. 개성공단 사태가 장기화되면 북한은 대남 압박수단으로 일부 세력이라도 개성과 판문점 일대로 군을 배치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언급할 때 자신들에게 안보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를 내어줬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지난 27일 "그동안 내주었던 개성공업지구의 넓은 지역을 군사지역으로 다시 차지하고 남진의 진격로가 활짝 열려 조국통일 대전에 더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군부는 개성공단 문제가 처음으로 거론됐던 1999년부터 남한에 개성을 내주는 것에 대해 반발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기, 물도 끊고 '기 싸움' 이어가나

한편으로는 그동안 공단에 공급됐던 전기와 수도가 모두 차단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러나 통일부 관계자는 현재 단전·단수 조치를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우선 남은 인원들의 무사귀환 이후 상황을 검토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개성공단에는 10만 kW 전기와 6만 톤 규모의 용수가 공급됐었다. 이날 귀환하는 인원 중에는 이를 담당했던 한국전력과 수자원공사 직원들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들이 귀환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전기와 수도 공급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전기는 남한의 파주변전소에서 공급하고 수도는 전기가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전기는 그동안 100% 남한에 의존해왔고 수도는 6만 톤 중 1만 5000 톤 정도가 개성 시내에 생활용수로 공급돼왔다.

공단 운영이 중단되면서 전기와 수도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단전·단수가 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정부가 막상 이 조치를 실현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단전·단수는 개성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측면도 있다. 따라서 남한이 이를 시행할 경우 개성공단을 놓고 벌이는 이른바 '기 싸움'을 끝까지 가져가겠다는 메시지를 북측에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 개성공단의 불빛이 꺼지는 것에 대한 개성 주민들의 인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단의 불빛이라는 것이 개성 주민들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불빛이 꺼지면 개성 시민들에게도 '남한과 적대관계로 갈 수밖에 없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남한 공장의 기계 설비를 최소한으로 유지시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기 공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남북 어느 쪽도 쉽게 극단적 조치 쓸 수 없어

남측 인원의 귀환 이후 공단이 영구 폐쇄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남북 어느 쪽도 쉽게 폐쇄로 가는 조치를 취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 모두 개성공단이 남북관계에서 갖는 상징성을 쉽게 내려놓기 힘들기 때문이다.
▲ 29일 개성공단 체류 인원 귀환이 늦어지면서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도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지난 27일 북한의 개성공단 담당 실무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의 대변인은 기자와 문답에서 남한의 개성공단 인원 전원 귀환 조치를 비난하면서도 개성공단을 '옥동자'로 표현하며 여전히 중시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대변인은 "우리는 6·15의 옥동자로 태어난 개성공업지구를 소중히 여기지만 덕도 모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에게 은총을 계속 베풀어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역시 지난 2일 기자 간담회에서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마중물"이라며 공단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류 장관이 지난 26일 남한 인원의 전원 귀환 결정을 내린 이후에도 통일부 당국자는 "개성공단을 유지·발전시킨다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며 개성공단 정상화는 변함없는 정부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개성공단의 현 상황이 공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안보 상황에 의해 발생된 문제라는 측면에서도 남북관계가 대화국면으로 접어들면 개성공단도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28일 과 통화에서 북한이 오는 5월 7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까지는 공단을 폐쇄한다는 언급을 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기적으로 4월 30일 독수리 훈련이 끝나고 한미 정상회담이 시작되면 남북이 '기 싸움'에서 벗어나 상황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고, 그렇다면 개성공단의 정상화도 논의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국면 전환 시까지 남북이 서로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김근식 교수는 "지금까지 개성공단이 한반도의 정치군사적인 대결상황의 희생양이 된 측면이 있다"며 대결 국면이 잠잠해지도록 남북이 서로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공단이 폐쇄 국면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서로가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3년 4월 16일 화요일

무식한 홍준표 "의료보험은 박정희 좌파정책"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4-15일자 기사 '무식한 홍준표 "의료보험은 박정희 좌파정책"'을 퍼왔습니다.

골수보수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의료보험이 좌파라니...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5일 "공공의료는 박정희 대통령 때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출발한 좌파정책"이라고 주장하며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색깔공세를 폈다.

홍 지사는 이날 도청에서 열린 실·국장회의에서 이같이 말하며 "공공의료를 빙자한 강성노조의 저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는 공공의료보다 서민의료정책을 수립해 전개해야 한다"며 "앞으로 가난하고 불쌍하고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한 서민의료 대책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홍 지사가 이처럼 1977년 의료보험을 도입한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까지 색깔공세를 펴고 나선 것은 박근혜 정부가 자신의 진주의료원 폐원에 반대하며 즉각 철회를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인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홍 지사를 만나 진주의료원 폐원에 반대하며 홍 지사가 고집을 꺾지 않을 경우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겠다고 통고했다.

박 대통령도 홍 지사의 폭주에 대해 대단히 불쾌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홍 지사가 박정희 대통령의 좌파 경력을 겨냥해 이같은 비난을 폈는지는 모르나, 의료보험은 그의 주장처럼 좌파가 만든 게 아니라 우파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의료보험은 독일제국 '철혈 수상'이었던 비스마르크가 1883년 도입한 것이 효시다. 비스마르크는 의료보험 도입을 시작으로 1889년까지 산재보험을 도입하고 나중에는 연금보험까지 시행했다.

골수보수이자 철권통치자인 비스마르크가 이처럼 일련의 복지제도를 도입한 것은 독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하지 않았다가는 당시 유럽 전역을 강타하던 노동자들의 공산주의 혁명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의료보험을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급속한 산업화는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했고 노동자를 위시한 약자층의 사회적 불만을 급속 고조됐다. 이에 박 대통령은 독일에서 재정학을 공부한 뒤 서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김종인 교수를 불러 조언을 구했고, 김 교수는 의료보험 도입을 건의해 각료와 재계 등의 강력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의료보험을 도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시 김 교수가 지난 대선때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해 박근혜 후보를 도왔던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이었다.

홍 지사는 툭하면 자신의 반대진영 인사들에게 색깔공세를 폈던 인사로 유명하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더 나아가 독일의 비스마르크에게까지 빨간 딱지를 붙인 것은 '오버'를 넘어서 '무지'일 뿐이다.

박태견 기자 

2013년 4월 7일 일요일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 되살리기' 시동 걸었나?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4-06일자 기사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 되살리기' 시동 걸었나?'를 퍼왔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박정희 기념사업 및 추억 되살리기 진행 중
▲ 군탄공원,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기념비. ⓒ 성낙선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를 되살리는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전국 각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을 미화하고, 업적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국방부는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방정신교육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국방부는 국방정신교육원 설립을 보고하면서 "장병 정신전력 강화를 통한 무형전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문제는 국방정신교육원이 박정희 유신독재 치하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국방정신교육원은 1977년 '국군정신전력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국방정신교육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군 조직을 대대적으로 구조 조정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문을 닫았다. 국방정신교육원 부활은 "시대착오적인 이념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추억'을 되살리는 작업도 한창이다. 과거 박 전 대통령이 머물렀던 장소나 즐겨 먹었던 음식 등이 화려한 부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북 문경시에서는 1930년대 청운각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로 먹었던 음식인 칼국수와 보리밥 등을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청운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등학교 교사 시절에 거주하던 하숙집이다. 문경시는 청운각 주변을 정비하는 작업을 함께 벌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긴 칼'을 차는 일본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다가, 어느 날 만주군관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렀다. 초등학교 교사가 갑자기 일본 천황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 된 것이다. 그런 장소가 지금 '박정희 명소' 중에 하나로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 철원 군탄공원 진입로,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 명칭복원 결정 환영 플래카드. ⓒ 성낙선


철원군,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 명칭 복원 결정

강원도 철원군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남긴 흔적을 되살리고 보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철원군은 지난 3월 26일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에 있는 '군탄공원'을 25년 만에 옛 이름인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으로 복원한다"고 발표했다. 철원군에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옛날 공원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군탄공원에는 현재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육군 갈말읍 지포리의 육군 제5군단 비행장에서 전역했다. 군사쿠데타 이후 2년 3개월여가 지난 시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전역식에서 전역사를 통해 '다시는 나와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하자'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 육군 제5군단은 '박정희 장군'의 전역을 기릴 목적으로 1969년 지금의 군탄공원 자리에 '국군장병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높이 5m 가량의 전역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정부는 1976년 전역기념비가 있는 장소 주변을 정화하는 사업을 벌여 2만여 평 규모의 공원을 조성했다. 철원군은 이 공원에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전역지공원은 박정희 군사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자신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꼈다. 그들에게 전역지공원은 쿠데타를 상징하는 또 다른 유물이었다. 이후 군사정권은 전역기념비의 머릿돌을 교체하고 그 머릿돌에서 박정희 장군이 전역사로 남긴 '불운한 군인'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문구를 지웠다. 그 문구가 군사쿠데타를 연상시킨다는 게 이유였다.

그 와중에도 전역지공원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그 이름을 유지하는 것도 그나마 군사정권을 지탱하는 것이 가능했을 때의 일이다. 1987년 6월민주화항쟁 이후, 5·16군사쿠데타와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달라지면서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공원'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결국 전역지공원은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88년 군탄리라는 지명을 따 '군탄공원'이라는 단순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 군탄공원,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기념비 머릿돌. ⓒ 성낙선


박근혜가 부각될 때마다 고개를 드는 '박정희 복원 시도'

이런 배경을 가진 군탄공원을 다시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라는 이름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정치인'이 되면서부터다. 그러니까 철원군에서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라는 이름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계의 전면에 나설 때마다 부활 바람이 불었다.

2000년에 이미 철원군번영회 등의 민간단체가 중심이 돼 옛날 이름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부활 시도는 당시 15대 국회의원이었던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부총재로 선출된 이후에 일어났다. 그러나 당시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그런 까닭에 전역지 명칭 부활 시도는 큰 힘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이때 철원군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조차 복원 찬성 의사가 반대 의사에 밀리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전역지 명칭 부활 시도는 2012년 초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부각되고, 당내 경선을 거쳐 마침내 18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본격화된다. 철원군번영회와 철원행정개혁시민연합 등이 중심이 돼 '박정희 장군 전역지 지명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명칭을 되찾는 작업을 펼쳤다. 그 결과 지난달 26일 철원군 지명위원회(위원장 정호조 철원군수)는 군청 상황실에서 명칭 변경 심의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전역지 명칭을 되살리기로 결정한다. 군탄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지 25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지명 복원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복원을 추진한 세력이 명칭을 복원하는 과정을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지적이다. 지명위원회는 명칭 변경을 결정하면서 그 근거의 하나로, 지난해 9월 20일부터 11월 20일까지 3개월간 실시한 군민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그런데 군청에서 실시했다는 이 설문조사에는 겨우 600여 명도 안 되는 인원이 참여한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조사 결과에 심한 편차가 드러나 문제다. 철원군 인구수는 5만여 명에 가깝다.

철원군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조사에는 141명이 참여해 군탄공원을 전역지공원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에 88.7%인 125명이 찬성했다. 그리고 '오프라인' 조사에는 529명이 참여해, 48.7%인 255명이 찬성했다. 군탄공원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에는 각각 7.8%와 38.5%가 찬성했다. 이 과정에서 군민을 대상으로 한 공개 토론회 같은 것은 없었다.

지명복원추진위원회가 전역지 지명을 복원하려는 이유에도 문제가 있다. 1988년에 전역지공원을 군탄공원으로 바꾸는 데는 5·16군사쿠데타를 비판하는 나름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군탄공원을 다시 전역지공원으로 바꾸는 데는 공원을 "관광명소화"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다. 당연히 전역지 명칭 변경을 둘러싸고 군민들 사이에 논란이 일지 않을 수 없다.
▲ 군탄공원, 공원 내력을 적은 안내판. ⓒ 성낙선


명칭 변경 근거로 제시한 여론조사 "공신력 없다"

철원군농민회 김용빈 정책실장은 설문조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전역지 명칭을 복원한다고 하면서 공식적으로 공개된 자리에서 군민들의 의견을 청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설문조사는 복원을 추진하는 쪽에서 여러 단체에 문건을 보내 의사를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우리는 그 문건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설문지 발송 대상자를 임의로 선정한 게 분명하다, 설문조사 추진체도 문제"라며, "설문조사가 제3자나 전문기관에 의뢰한 것도 아니어서 공신력을 얻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용빈 실장은 옛날 지명을 복원하는 것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철원에서는 군민들이 접경지역에 살면서 통일을 열망하는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유독 전역지 복원만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알고 보면 너무 부끄러운 사람인데 복원을 추진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전역지 복원이 철원 지역을 떠나 전 국민이 박정희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원했다. 

전교조 철원지회 허양욱 지부장은 교육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해 5·16군사쿠데타 같은 것은 교육적으로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부분"이라며, "이런 상태에서 전역지공원으로 지명을 복원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에게 쿠데타든 뭐든 성공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꼴이 돼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허 지부장은 전역지 명칭 복원과 관련해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전역지 명칭을 복원하려 한다는 사실은 복원을 추진하는 사람들 외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군청 홈페이지에서 설문조사를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며 "이 문제는 먼저 여론화를 거친 다음에 무엇이 맞는 것인지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 바꾸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명칭 복원을 추진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 유적공원화 사업추진위원회' 이근회 위원장은 먼저 전역지 지명을 복원하는 문제를 정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 위원장은 지명 복원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지명 복원은) 우리 지역에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복원하고 보존하려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 위원장은 "정치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다 영웅이다 하며 쌈들 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끼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지명 복원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일정한 선을 그었다. 그는 "그런 논쟁에서 벗어나 과거 대통령 했던 사람이 여기에서 전역을 했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오히려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서 명소 이름을 바꾸는 것이 역사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1988년에 전역지를 군탄공원으로 바꿔놓은 것이야말로 "노태우 대통령이 나오면서 자신이 유신 세력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정당한 행정 절차 없이 편의대로 바꿔버린 것"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훼손된 전역비의 머릿돌을 원래대로 고쳐놓는 것을 비롯해, 전역지공원을 테마가 있는 관광지로 만드는 등 유적공원화하는 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성낙선(solp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