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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7일 월요일

‘을의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글은 시사IN 2013-05-27일자 기사 '‘을의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퍼왔습니다.
지난 4월 롯데백화점 입점업체 직원의 죽음이 을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시사IN) 기자가 빅3 백화점 중 한 곳에 취업했다. 고객에게는 서비스를 받는 장소겠지만, 판매 직원에게는 평가와 감시, 처벌의 장소이다.

지난 4월22일 김 아무개씨(47)가 본인이 일하던 롯데백화점 서울 청량리점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투신 직전, 김씨는 의류 매장을 관리하는 영업 관리자(파트리더) 등 32명이 함께 쓰는 카카오톡 대화창에 “대리님, 사람들 그만 괴롭히세요. 대표로 말씀드리고 저 힘들어서 떠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백화점의 과도한 매출 압박이 결정적인 자살 원인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그런데도 백화점 업계의 ‘갑’인 롯데백화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전 직원에게 ‘입단속’을 지시하는 등 사건 무마에 급급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순간 외에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백화점 직원. 정확하게 말해 ‘백화점 입점업체의 판매 대리자’는 백화점 소속이 아니지만 백화점 규정을 따르고 이들로부터 매출 압박을 받는다. 김씨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매니저’였다. 호칭일 뿐 직책은 아니다. 대체로 매니저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중간관리자로서 매출의 일정 수수료(인건비 및 매장관리비)를 제외한 금액을 본사에 보내야 한다. 김씨의 죽음은 그동안 잠재된 각계각층 ‘을’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발화점이었다. 기자는 5월6∼12일 일주일간 국내 빅3 백화점 가운데 한 곳에서 김씨와 같은 ‘백화점 직원’으로 일했다.

5월6일. “고객의 지갑을 열게끔 서비스하라” 

취업은 어렵지 않았다. 아웃소싱 업체가 요구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챙겼지만, 백화점 여성복 코너 입점업체 ㄱ매장 매니저는 내가 준비해간 서류를 보지 않았다. 5분여 만에 ‘입사’에 성공했다. ㄱ매장이 내 일터였다. 

ⓒ시사IN 윤무영

백화점 교육은 일주일에 한 차례 열린다. 입점업체와 관계없이, 직원에서 아르바이트생까지 백화점에서 일하는 누구나 교육을 받는다. 교육생 30명 가운데 대다수가 20대 초·중반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여성 3명도 참가했다. “나이 들어서 일하기에 이만한 일이 없다”라던 매니저의 말이 떠올랐다. 

교육 목표는 명확했다. 백화점 소속 서비스리더는 “고객님은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백화점에 온다. 이곳은 백화점의 표본이다. 고객님의 지갑을 열게끔 서비스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5시간 동안 진행된 교육은 고객 편의를 위해 지켜야 할 사항을 일러주었다. 고객용 시설 이용 금지, 화려한 복장 금지, 앉아 있기 금지 따위였다. 

최근에는 사물에 존칭을 쓰는 게 듣기 불편하다는 고객 불만이 나온다며, “글로벌 기업으로 ‘바른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세일이십니다’ 같은 말을 쓰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의시켰다. 고객이 부담스러워할 정도의 눈맞춤이나 지나치게 정중한 손 모으기도 금지 사항이었다. 이런 모호한 지시를 하면서도 매장 모니터 평가 항목은 매우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밝은 표정과 바른 자세로 대기(100점), 밝은 표정은 아니지만 고객 입점 시 응대할 수 있도록 움직임에 주목(70점), 자연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으나 초점 없이 무표정으로 대기(40점), 직원 간 잡담·통화·상품 정리 등으로 방문고객 입점 여부를 인지하지 못함(0점) 따위 점수화된 항목이 70여 가지에 달했다. 손님으로 위장한 모니터 요원이 이 점수에 따라 직원들을 비정기적으로 평가한다. 

서비스리더는 매장을 돌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앉아서 대기 중인 직원을 촬영하고, 이렇게 찍힌 사진을 근거로 매장에 불이익을 준다고 했다. 매장 모니터와 직원 감시에 이어 곧 발표될 한국서비스 품질지수 평가까지, 판매 직원에게 백화점은 서비스 제공 장소이자 이에 대한 평가와 감시, 처벌이 반복되는 곳이었다.

5월7일. 빛은 없다 

붉은색 티셔츠, 팔리지 않던 옷을 유니폼으로 사용했다. 머리는 단정히 빗었다. 오전 9시30분, 백화점의 아침은 청소로 시작한다.    매장 관습상 청소는 막내급인 내 담당이다. 대걸레질과 먼지떨이, 거울 닦기다. 재고를 관리하거나 상품을 전시하는 일은 ‘둘째 언니’ 몫이다. 매니저는 판매에만 집중했다. 백화점에서는 매출을 높이는 업무가 가장 중요해서다. ㄱ매장은 나를 포함해 직원 5명이 일했다. 백화점 입점 매장 가운데 직원이 많은 편이었다. 매장도 넓었다. 두 개 매장을 텄다. 그만큼 높은 매출을 기록한다. 에스컬레이터 인근에 매장이 위치한 것도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시간이다. 연장 영업이 있는 금·토·일요일에는 오후 9시까지 일해야 한다. 평일 주 1회 휴무, 주 1회 늦은 출근이나 이른 퇴근을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급여는 148만원. 4대 보험을 제하고 나면 136만원을 손에 쥔다. 4대 보험을 들 수 있는 데다 136만원 주는 곳은 거의 없다고 동료들은 귀띔했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하자 매니저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하루만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매장 안으로 고객이 들어온다. 첫날부터 입술이 떨어질 리 없었다. “세 가지 인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해.” 매니저가 내 옆을 지나며 말했다. 맞이 인사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추가 인사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고객님∼’, 배웅 인사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어떤 고객이 모니터 요원인지 알 수 없다. 매니저가 선창하면 따라 외쳤다.

점심은 직원이 돌아가며 먹었다. 매니저는 내 점심시간을 가장 먼저 배치해주었다. 늦게 배치될 경우 오후 2시께 식사를 할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일어서는데 계속 서 있어서인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후 업무를 준비하는 휴식시간치고는 지나치게 짧았다.

시곗바늘이 저녁 8시를 가리켰다. 퇴근시간이다. 매니저의 눈치를 봤다.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서 있기가 괴로웠다. 백화점 폐점 이후에도 직원 대기 10분, 매출 확인 시간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백화점 직원들이 우르르 거리로 쏟아졌다. 어둠이 짙었다. 11시간 만에 바깥 공기를 처음으로 들이켰다.

5월8일. 판매 여왕이 되다

풀리지 않는 난관은 상품명과 제품의 특징을 외우는 일이었다. 제품을 잘 알아야만 고객에게 추천할 수 있다. 이는 즉시 매출로 연결된다. 매장에는 ‘킬러 아이템’이 있다. 매니저의 주력 판매 제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방만 해도 브랜드가 대여섯 개 있고 같은 브랜드도 색상·소재·디자인·가격에 따라 30가지가 넘는다. 나는 며칠이 지나도록 외우지 못했다. 

고객 응대를 하다가도 언니에게 눈치껏 제품 설명을 넘겼다. 그때마다 옆에 바짝 붙어서 응대법을 익혔다. 제품의 가격은 100여만 원. ‘직접 사서 쓰지도 않는데 어떻게 상세히 알까’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매니저는 제품을 판매한 언니에게 “너는 (브랜드) 여왕이야” “대견해” 따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도 잠시. 매니저는 오후 6시가 넘어도 매출이 130만원에 불과하다며 근심이 가득했다. 매장 평일 목표 매출 300만원에 훨씬 못 미쳤다. 백화점 판매 26년째인 매니저는 매출에 민감한 편이다. 두 달여 전 타 백화점에서 이곳으로 온 터였다. 본사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매니저의 근심은 직원들에게 곧장 전이되기 마련이다.

그때 한 여성 고객이 매장을 휘저었다. 매출을 높이려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매니저는 고객이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옷을 추천받아 입고 벗기를 반복하던 이 고객은 160만원어치를 한 번에 구입했다. 손 큰 고객이 분위기를 휘저으면 다른 고객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폐점을 겨우 1시간30분 남겨두고 400여만 원 매출을 올렸다. 매출은 발생하는 즉시, 본사에 접수된다. 매니저는 “본사에서도 오늘은 공쳤다고 생각했을 텐데 막판에 놀랐을 거다”라며 표정이 밝아졌다. 


ⓒ시사IN 이명익 백화점 판매 직원을 평가하는 항목은 70여 가지에 달한다. 위는 국내 한 백화점 여성복 코너의 모습.

한 직원이 나를 향해 “네가 와서 매출이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다 보면 다리 아픈 건 싹 사라진다던 동료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걷기가 힘들었다. 

5월9일. 본사 파트리더의 방문

입사 후 첫 조회가 있었다. 백화점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새 파트리더를 소개받는 자리다. 같은 층 매장 약 20곳을 관리하는 백화점 소속 직원을 파트리더라고 일컫는다. 그는 2011년 백화점 공채로 입사한 20대 후반 남성이다. 반면 대다수 매니저는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40대 이상 여성이다. 기선제압을 하려는지 그가 외쳤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실 거죠? (더 크게) 도와주실 거죠?”

몇몇 매니저가 소곤거렸다. “예전 그 직원이 아니다. 입사 2년 만에 파트리더로 승진했으니 얼마나 파이팅이 넘칠까.” 오후 4시께 파트리더는 담당 매장을 순차적으로 방문했다. ㄱ매장을 지난 직후 매니저가 나를 불렀다. “매장 창에 지문이 묻었어요. 닦으세요.” 신문지를 찢어 창으로 나왔더니 파트리더가 훑고 간 전 매장에서 줄줄이 창을 닦고 있었다.

다음 날 금요일부터 토·일요일까지 행사가 있다. 본사로부터 이월 상품을 받아 할인 판매를 한다. 재고를 없애는 일은 본사가 신경을 많이 쓰는 일 중 하나다. 그만큼 판매 직원에게는 이중으로 과중한 업무가 주어진다. 추가 업무지만 야근이나 특근비 등을 주지는 않는다.

옷 400여 벌이 10개 박스에 담겨 들어왔다. 직원들이 오가는 화물용 승강기 앞에 주저앉았다. 알록달록한 천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렸다. 행사에 쓸 150여 벌을 선별하고 행거에 걸었다. 서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잠시 맛본 행복은 행사의 시작과 함께 깡그리 사라졌다.

5월10일. 노고가 매출로

행사를 앞두고 본사 직원들이 매장을 찾았다. 매니저는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직원에게 “오늘 (매출) 얼마나 할 거야(올릴 거야)?”라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옷을 정리했다. 같은 질문이 입사 일주일이 안 된 내게도 왔다. 내가 되물었다. “얼마나 하면 될까요?” “열심히만 해.”

고객이 행사장에 관심을 가진다 싶으면 “어서 오세요. 고객님∼”이라는 인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내 나름의 코디를 추천하기도 했다. 둘째 언니가 “인사만 하지 말고 판매에 적극성을 가지라”고 조언한 직후였다. 몸은 괴로워도 입은 점점 자동으로 움직였다.

행사장 옷은 잘 팔리지 않았다. 옷 사이즈는 충분하지 않았고 디자인은 각양각색이었다. 매출은 나와 무관했다. 그런데도 들춰보고 입어보다가 사 가지 않는 고객들이 얄밉게 보였다. 어쩌면 내가 일한 노고가 매출로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님이 내 설득에 구입하면 짜릿하다”라던 매니저의 말뜻을 알 것도 같았다.


ⓒ시사IN 백승기 4월30일 입점업체 직원에 대한 백화점의 과도한 관리·감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다행히 매장 매출이 좋았다. 1000만원이 넘었다. 이런 날은 매출이 안 좋을 수도 있는 다음 날에 대비해 ‘감는다’. 하루 매출의 평균을 고르게 하기 위해 장사가 잘된 날 일부 매출을 다음 날로 넘기는 것이다. 

한때는 급여에 더해 1년에 두 차례 실시한 백화점 행사 매출에서 1%를 직원 수당으로 지급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사흘 만에 1억5000만원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본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막내급은 딱 한 차례 25만원을 받았다. 

5월11일. 밥 굶으며 11시간 버티는 언니들 

매장 직원들은 모두 밥을 먹지 않았다.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다. 이들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에는 비키니를 입은 가수와 모델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고객에게 직원들은 걸어다니는 피팅 모델이다. 날씬한 몸매 유지를 알게 모르게 강요당했다. 밥을 먹지 않고 11시간을 서서 버티는 능력은 정말 놀라웠다. 이들은 밥을 먹지 않는 대신 점심시간에 잠을 청했다. 저녁식사 시간도 따로 없다. 매니저가 사 오는 우유와 김밥으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나면, 그 후 굶는다. 

점심시간, 직원 휴게실에는 집에서 준비해온 삶은 달걀, 고구마, 오이 따위로 끼니를 해결하는 직원으로 붐볐다. 셋째 언니는 “제대로 밥을 먹지 않거나 퇴근 이후 폭식을 하는 탓에 백화점 판매직원은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많다”라고 말했다. 둘째 언니가 거들었다. “한창 바쁠 때는 휴식은커녕 매장과 창고를 뛰면서 한 입씩 오물거리며 요기할 때도 있어.”

‘고객의 눈으로 보세요.’ 직원 휴게실을 통과하는 거울에 적힌 문구처럼 모든 게시물이나 표지판은 고객의 관점에서 작성돼 있다. 안내를 받지 않으면 백화점 내부에서 직원 화장실·휴게실·승강기(화물승강기) 따위를 찾기 어렵다. 매장과 매장 사이 어디엔가 ‘서비스 라인’이라고 적힌 테이프가 부착돼 있으면 그 뒤에는 직원용 시설이 있다. 직원 휴게실에 가면서 가방을 들고 갔다가 ‘주의’를 들었다. 사복 유니폼에다 가방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고객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다. 직원과 고객의 경계는 언제나 세밀했다.

의아한 점은 직원이 이용하는 모든 시설물에 백화점이 속한 그룹의 회장과 대표이사 등 고위관계자 이름과 사진이 담긴 포스터가 부착돼 있는 것이다. 마치 ‘모든 매장의 주인은 그룹’이라는 사실을 주시시키려는 듯 보였다. 백화점 ‘갑’은 회장, 나는 ‘을’이라는 것을 볼 때마다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갑의 절약정신은 꼼꼼했다. 폐점을 하는 즉시, 직원이 남아 있는데도 에어컨을 끄거나 직원 화장실의 온수만 꺼버렸다.  

5월12일. “파트리더가 네 이름 적어오래”

아침부터 다리가 덜덜 떨렸다. 일한 지 닷새 만에 사흘짜리 행사를 맡은 게 무리였다. 다리에서 허리, 어깨까지 통증이 왔다. 옆 매장에서 일하는 언니는 생리까지 겹쳐 끙끙 앓았다. 언니는 자신의 연봉(2000여만 원)을 분할해 “오른팔이 500만원, 왼팔 500만원, 양쪽 다리 1000만원짜리”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벽에 기대고, 행거 뒤에 쭈그려 앉아봤지만 소용없었다. 동료에게 지적만 당할 뿐이다. 계산대 담당 언니와 옆 매장 언니가 몸을 비비 꼬는 내게 “파트리더가 이름 적어오래” “너 사진 찍혔어”라고 놀렸다. 나중에서야 농담인 걸 알았지만, 그 소리를 듣고서는 나도 모르게 머리가 쭈뼛거렸다. 심장박동이 심하게 빨라질 만큼 을의 처지를 실감했다. 

이런 상황이 정말 일어난다면? 끔찍하다. 두 번 지적을 받으면 퇴사당한다. 그 전에 매니저는 파트리더에게 훈계를 당하고 경위서를 쓸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에는 매니저마저 교체된다. 백화점 전 매장 중 모니터 요원이 매긴 점수가 가장 낮은 구역의 파트리더는 지하 주차장으로 배치받기도 한다. 

매니저는 책임질 일이 많다.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 매출 차이가 극심하고, ‘로스(잃어버린 상품 비용)’를 메우는 책임도 매니저 몫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매출의 부족한 금액을 스스로 벌충하기도 한다. 

금·토·일요일은 평일보다 30분 연장 영업한다. 폐점이 늦어지는데도 그만큼 돈을 더 주지는 않는다. 지난 2월 행사에서 한 직원은 뒷정리를 하느라 새벽 2시30분에 퇴근했다. 택시비 3만원, 식비 1만원을 썼다. 월급을 쪼개 일당 5만원이라고 할 때, 그는 이날 1만원을 손에 쥔 셈이다. 그러고도 이 직원은 이튿날 정시에 출근했다. 

일을 마치고 혼자 계단을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난간을 잡았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언니들 얼굴이 겹쳤다. 다리가 아픈 언니는 내일도 압박 스타킹을 신고 서 있어야 한다.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을 외칠 것이다. 그 뒤로 본사 정규직 파트리더의 번뜩이는 눈초리와 휴게실에 붙은 백화점 회장님의 자상한 눈빛은 계속될 것이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2013년 3월 15일 금요일

"엘리베이터 못 타고 휴게실도 못쓰게 해요"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3-15일자 기사 '"엘리베이터 못 타고 휴게실도 못쓰게 해요"'를 퍼왔습니다.
[헌법 위의 이마트 그 후④] '이마트 사태'에 비친 서비스유통업의 이면

이마트가 하도급 직원 1만789명 정규직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회적 과제가 남아 있다. 이마트에는 여전히 두 명의 해고노동자가 있고 노조도 아직은 불안하다. 또 이마트만이 아닌 신세계 그룹, 나아가 서비스유통업계 전반에 노동의 문제가 확인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헌법 위의 이마트' 연속보도 이후 나타난 변화들을 조명하며 남은 과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편집자말]

▲ 신세계그룹 이마트의 노조탄압 사례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이마트 매장앞에서 직원들이 상품이 든 박스를 정리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3월 5일 신세계 이마트(E-Mart)가 불법파견 상태였던 비정규직 1만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고용노동부 특별감독 결과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면서 취해진 조치로, 그 밑바탕에는 유통업 내 고질적인 불법파견 고용구조의 전형적인 면모가 드러나고 있다. 

대형마트, 백화점, 아울렛, 면세점, SSM 등 다양한 유통 채널에도 이마트와 유사한 고용구조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에 드러난 불법파견 사내하도급 활용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신세계 이마트뿐 아니라 유통업체 모두 고용구조를 '직영사원'(원청 정규직, 비정규직)과 '비직영사원'(사내하도급 직원, 입점협력업체 직원, 개인사업자 형태 전문판매 직원 등)으로 구분하여 활용하고 있다. 특히 유통업은 사내하도급 직원 이외에도 제조업 식품이나 공산품 등을 판매하는 입점협력업체 및 판매전문사원까지 포함할 경우 비직영사원의 비율이 80%나 된다. 문제는 다양한 비직영사원의 노동인권이 심각할 정도로 침해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마트뿐일까? 비상식적인 유통업 고용구조

▲ 주요 유통채널 고용구조와 고용관계 형태 ⓒ 고정미

현재 유통업은 '원청'(갑)의 '하청'(을) 직원에 대한 불공정 행위가 일상화되어 있다. 예를 들면 입점협력업체 직원의 ▲ 근무형태(휴일휴가, 근로시간, 휴게시간) ▲ 인사채용(면접) ▲ 작업배치·변경 결정 ▲ 업무 지시·감독·평가 등 거의 모든 근로조건에 부당개입하고 있다. 심지어 협력업체 직원의 ▲ 매장 인원 교체 ▲ 임산부 교체 ▲ 여성 직원 술자리 참석 강요 ▲ 다른 매장 업무 지시 ▲ 연장영업 강요 ▲ 자사 카드 할당까지 한다. 한 백화점 식품 판매 사원의 말이다.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패밀리 카드(신용카드, 포인트 카드) 할당을 배정해요. 평균 2, 3개 이상 자사 포인트카드 할당량이 각 매장에 암묵적으로 배정된다고 보면 돼요. 우리 매장에서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가장 먼저 휴무 사용에 압력이 들어와요. 횡포도 이런 횡포가 없어요."

실제로 백화점이나 할인점 원청 관리자와 협력업체 직원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 그 업체는 암묵적으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직간접적인 불합리한 처우를 받게 된다. 예를 들면 매장을 찾는 고객의 접근성이 낮은 장소인 구석 자리에 협력업체 제품을 배치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협력업체 인사이동(로테이션) 시에는 새로 배치된 직원 거부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이외에도 서비스유통업 현장의 불합리함은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저희는 아예 주말이라는 개념은 없어요. 휴가도 토요일, 일요일 끼어가는 것도 힘들어요. 그리고 직영사원은 휴게실이 별도로 있는데, 우리(입점협력업체)는 몇 개 층이 같이 사용해요. 집중 영업시간인 오후 3시부터 6시에는 아예 휴게실도 사용 못 하게 잠가놓아요."(아울렛 매장 의류 판매사원)

"동료 사원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정말 동료 사원인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계단을 이용해요. 또 면세점 스케줄 터치(관리), 매장에도 브랜드 PC 설치도 잘 못 하게 해요. 뭐하나 진행하려면 정말 '갑'에 잘 보여야 해요."(면세점 화장품 판매사원)

심지어 기업 매출을 위해서라며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에는 집중영업시간이라는 명목으로 휴게실조차 폐쇄하고 있다. A업체는 몇 년 전 매장 화장실 청소를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강제했는데, 청소 상태가 엉망이라며 3일 동안 해당 화장실을 폐쇄하기까지 했다. 기업의 이윤추구 앞에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묵살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빅6' 유통업 성장의 이면에는 저임금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직원의 착취가 감추어져 있었다.

정부 조사에도 은폐·누락된 사내하도급 규모의 진실은?

신세계를 비롯한 롯데, 현대, 홈플러스, 이랜드, 농협유통 등 대형유통업체는 지난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조사된 (노동부 300인 이상 사내하도급 실태조사)에서 그 규모를 축소, 누락하여 보고했다. 

이는 최근 스스로 밝힌 사내하도급 규모와 비교하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2010년 유통업체 하도급노동자 수는 신세계 백화점 1900명, 이마트 0명, 롯데백화점 6500명, 롯데마트 0명, 홈플러스 1600명, 현대백화점 2500명으로 보고했다. 그런데 최근 각 언론사에 기업들이 밝힌 하도급노동자 수는 이마트 1만9000명, 롯데백화점 9000명, 롯데마트 5700명, 홈플러스 4000명, 현대백화점 2000명이었다. 

특히 신세계 이마트는 다른 유통업체에 비해 판촉판매 및 상품 진열 등 불법파견 이외에도 청소, 경비, 주차, 시설, 안내, 카드 등의 사내하도급 규모(9천 명)도 가장 많다. 이마트는 사내하도급 비율이 61~64%로, 다른 할인점(홈플러스 38%, 롯데마트 47% 수준)에 비해 14~26% 정도 많은 상황이다. 아울러 이마트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신세계 그룹은 자사 백화점, 아울렛(첼시), 에브리데이리테일(SSM) 등은 왜 언급하지 않는지 답해야 한다.

노동인권의 사각지대, 서비스유통업

▲ 주요 대형 유통업체 사내하도급 규모 추정 ⓒ 고정미

이마트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것은 유통업체와 다른 산업-업종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신세계 이마트 사례는 우리나라 유통업의 불합리한 고용구조와 고용관계의 전형이다. 즉, 이마트에서 드러난 불법과 탈법적 관행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현재 다양한 유통 채널별 파트타임과 사내하도급 규모, 특히 입점협력업체 종사자의 규모는 기업 스스로 공시하지 않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신세계 이마트 사건을 계기로 유통업 전반의 불법파견 및 사내하도급, 협력업체 종사자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특히 고용노동부 사내하도급 실태조사에서 대부분의 대형유통업체가 규모를 축소 및 누락 보고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해야 한다. 

또한 비상식적인 유통업 고용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사내하도급 규제와 협력업체 부당행위에 대한 불공정거래와 관련된 법제도 규정을 검토해야 한다. 지난 대선 당시 여야 모두 비정규직 해결을 주요 노동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는데, 이제는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인 유통과 서비스산업 전반의 비정규직과 고용구조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다.

끝으로 현재 신세계 이마트 이외에 다른 유통업체들은 극히 일부(롯데마트 1천 명)를 제외하고는 불법파견과 사내하도급 문제와 관련하여 특별한 입장 표명이 없는 상태다. 그렇지만 국내 주요 대형유통업체들은 이마트와 비슷한 형태로 다차원적인 고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상태다. 

대형유통업체의 사내하도급 규모가 제조업 자동차 '빅4'보다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통업 사내하도급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제라도 주요 유통업체들은 사내하도급 직영화(정규직)와 협력업체에 대한 부당행위를 멈추어야 한다. 그네들이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윤리경영에서 이야기하듯,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김종진 기자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입니다.

김종진(chaplin)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옛다 저널리즘’과 ‘고객만족 서비스’의 상처 입은 공존


이글은 한겨레21 2012-09-24일자 제929호 기사 '‘옛다 저널리즘’과 ‘고객만족 서비스’의 상처 입은 공존'을 퍼왔습니다.
[기획] 온라인 뉴스 편집기자와 네이버 뉴스캐스트 담당자들의 가상 대담

온라인 뉴스 편집기자와 네이버 뉴스캐스트 담당자들을 가상으로 합석시켰다.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는 온라인 편집기자의 말을 직접 들어본 기획이 없었고, ‘욕심쟁이’ 거대기업 네이버의 뉴스캐스트 담당자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는 자리도 없어서다. 각 인물의 말은 전자우편·전화 인터뷰와 대면 인터뷰, 보내온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대부분 가명 처리를 원해 최락선 (사)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장에게도 B라는 이름을 주었다. 기자 본인 또한 온라인 편집기자 이력을 앞세워 ‘생소리’를 내는 것으로 했다. 이 계통 없는 ‘포스트모더니즘’ 대담이 자신을 쫓는 추격자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온라인 뉴스 편집기자들은 왜 지옥도를 그리고 있는가, 왜 네이버는 이쪽저쪽 아무것도 못하고 엉거주춤해 있는가. 질문에 답은 있으나, 스포일러하자면 늪으로 향하는 추격전을 멈출 해답은 없다.


A: 네이버에서 ‘수원 성폭행 여대생 사망 원인이… 경악’ 기사를 클릭했다.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다. 사망 원인이 대체, 어떻게 한 줄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낚시꾼이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편집자가 이 따위 제목 다는 이유는… 경악’이라고 댓글이라도 달까 했는데, 이미 뭐 욕으로 넘쳐나고 있어서 참았다.

충격이란 말이 ‘제목 마침부호’쯤 되나

B: 한 선배가 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 사이트에 ‘○○닷컴, 이건 제목이 아니므니다’란 글에 이 사이트의 네이버 제목들을 모아놓고 있다. 선배는 이 사이트 제목의 성격을 네 가지로 요약했다. ① ‘충격’ ‘경악’ ‘헉’ 등의 자극적 단어 사용 ② 말줄임표나 의문부호 사용 ③ 주어나 서술어 등 생략 ④ 팩트나 주제와 상관없는 곁가지 내용에서 제목 추출. 선배가 쓴 글에 따르면, 보통 이 두 가지 유형이 결합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이트는 문법이 맞지 않는 사례도 속출한다. ‘갑자기’ ‘바로’ ‘그만’ 등의 부사로 끝나거나 뜬금없이 목적어나 보어로 마무리를 하기도 한다. “양궁 미녀 3총사 ‘충격 고백’, 영국 가기 전 사실” “‘노장투혼’ 유도 金 송대남, 감독 보자 돌발행동을” ‘“北 20대 세련女, 김정은 손잡고 여기저기서” “‘강남 굴욕’, 은마아파트마저… 그 가격도 겨우”… 사례가 끝이 없다.
C: 네이버 뉴스캐스트 모니터링 게시판을 가보면 네티즌이 ‘제목에 많은 것들’이라며 모아놓은 게 있다. ‘인터넷 신문기사에 들어가는 수식어 모음집 v2.0’이란다. 열거하면 이렇다. 왜?, 충격, 발칵, 알고 보니, 속보, 이럴 수가, 헉, 허걱, 아찔, 깜짝, 경악, 사연은?, 이유는?, 무슨 일이?, 파문, 일파만파, 시끌, 글쎄?, 돌연, 논란, 아뿔싸, 설마!, 글쎄?, 폭로, 섬뜩, 화들짝, 끝내, 멘붕, 멘탈붕괴, 이유가…, …말이, …보니, ~더니. ‘기업비밀’ 다 들키고, 밑바닥까지 다 보인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낚시질이 된다는 걸 기자들도 아는 모양이다. 어떤 기자가 전화해서 이러더라. “기사 제목을 ‘뭐뭐 ~해보니’ 하면 안 될까요?” 젊은 기자였다. 우리끼리는 ‘감각 있다’고 했다.
A: 온라인 제목은 지면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문처럼 한눈에 제목·부제·사진을 보여줄 수도 없고, 오직 한 줄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해야 하는 온라인에서는 지면과 뭔가 다른 제목을 붙여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요즘 온라인 제목들이 너무 ‘충격과 경악’으로만 몰아가거나, 어떻게든 두루뭉술 배배 꼬아서 독자가 클릭하도록 ‘구라’를 친다는 거다. 예를 들어 ‘“내 딸이 강남서…” 여자친구 엄마 전화에 충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무슨 사건이 벌어졌나 싶어 클릭해보니 신혼부부 예단에 관한 기사였다. ‘성폭행범 범행 자백… 엄마와 ‘충격’’ 등에서 보듯 충격이란 말이 ‘네이버 제목 마침부호’쯤 되는 건가. 문장 끝에 충격만 붙이면 제목이 되는 줄 아나 보다. 또 웬 성폭력 기사가 이렇게 많은지. 네이버 사회 뉴스의 반이 성폭행으로 덮여 있는 건 아무래도 입맛이 쓰다.

» 연성 뉴스와 경성 뉴스를 동시에 운영하는 한 언론사의 ‘투톱 시스템’. 롤링되는 투톱 시스템에서 톱뉴스 중 하나는 유머 사이트에나 나올 법한 짤막한 기사다. 두 군데 다 네이버 뉴스캐스트 톱뉴스 운영 가이드라인에 맞춰 개편했다. 한 신문사의 뉴스캐스트. 경악, 허걱, 울화통, 무려 등 인터넷 ‘전용’ 제목들이 즐비하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실시간 조회 수 사이트에 중독되다

C: 뉴스를 보면 현재를 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뉴스캐스트를 보면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짐작할 수 없다. 철 지난 이야기를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재탕해서 올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최근 사진과 함께 오른 기사(사진 기사)가 재탕 기사라고 뉴스 모니터링 게시판에 누가 지적을 해놓았다. 5월11일에 올라온 기사 ‘북한 김태희 식당 납치 사건 발생?’이 9월11일에 올라온 기사 ‘北 해외식당 미모 女종업원 납치사건, 사실은…’과 동일하다. 똑같이 인턴기자가 작성했다. 온라인 편집국의 속보 양산 시스템의 경쟁이 지나쳐 네티즌을 자극할 수 있는 기사를 시기에 상관없이 양산해낸다. 뉴스 연성화의 지표다. 경성·연성을 판단하는 지표에 당일 다뤄야 할 만큼 시의적인가라는 ‘시의성’이 있다. 그 밖에 공적·사적 프레임이냐, 인간적 관심사와 감성적 반응을 유발하냐 그렇지 않으냐 등(‘김예란의 연성화 지표’)이 있다. 뉴스캐스트가 말랑말랑해도 너무 말랑말랑하다.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졌으니까 제목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달아 옛다 하는 느낌으로 던지고는 죄책감이 없다.
A: 왜 이렇게까지 되었나. 물론 페이지뷰 때문이다. 사실 제목에 ‘충격’이라고 쓰면 많이 보긴 한다. 언젠가 중요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기사가 있어 팩트를 정확하게 넣어 제목을 만들었다. 그런데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페이지뷰가 나오는 거다. 그래서 ‘결과봤더니… 충격’이라고 제목을 바꿨더니 원제목에 비해 4~5배 이상 페이지뷰가 올랐다. 단어 하나 바꾼 것만으로 마치 낚싯대 하나로 고기 잡다가 쌍끌이 어선으로 쓸어담는 효과를 보니 편집자들이 독한 단어를 골라 쓰게 된다. 솔직히 이런 선정성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헉, 충격, 이런 말들은 가능하면 안 쓰려고 하지만 ‘이렇게 바꾸면 엄청 볼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 조금만 더 세게 해볼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망설이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타협점을 찾게 된다. 매체의 영향력이나 광고수익은 페이지뷰와 비례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페이지뷰를 확인하며 ‘쪼임’을 당하는 편집자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조회 수를 올리려고 별수를 다 쓰게 된다. 이런 상황은 인터넷 언론이나 메이저 언론이나 마찬가지다.
C: 기자들은 ‘실시간 조회 수’ 사이트를 끼고 산다. 처음엔 잘 들어가지 않았다. 선임이 “일주일쯤 뒤면 다를 것”이라며 이러는 거다. “좀 있으면 중독될 거다.” 아니나 다를까, 사이트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제목을 바꾸고 나서 반영되기까지 10분, 몇 번의 새로 고침을 한다. 예상외로 저조하다. 제목 바꾸기에 들어간다. 다시 새로고침을 한다. 기다리는 사이 다른 사이트에는 어떤 식으로 제목이 걸렸는지도 살핀다. 초조하니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사온다. 돌아와 조회 수 새로고침을 한다. 다시 제목을 고친다. 조회 수는 제목의 ‘점수’다. 이쯤 되면 중독이다.
B: 만약 신문사 기자들도 매일의 판매수익을 봐야 한다면 비슷한 압박을 느낄 것이다. 분단위 시청률이 PD들에게 끼치는 영향처럼. 그런데 이게 광고수익과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조회 수가 고만고만한 차이가 나는 것으로는 광고 단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검색어 기사를 쏟아내고, 네이버에만 적절한 기사를 양산하는 기자를 대거 채용하는 등 시스템적 변화가 주어지지 않는 한 광고 단가 상한선을 넘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편집기자들을 돈 안 들이고 써먹고 있다?

A: 네이버의 책임도 크다. 지금 네이버는 ‘우리는 공간을 만들어줬을 뿐 모두 언론사 잘못’이라는 태도로 수수방관하고 있지만,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네이버다. 네이버의 첫 화면에는 수십 개 언론사가 들어가 있고, 모두 랜덤으로 돌아간다. 비슷비슷한 경쟁자들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독자의 눈에 띄려고 ‘무한경쟁’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더 선정적인 제목,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 더… 더… 야하게… 이런 진흙탕 상황을 만들어놓고 네이버가 오직 언론사만 탓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B: 2005년 인터넷 저널이 강조되던 시기에 입사했다. 당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후 뉴스캐스트가 도입되자 이런 성과들이 무화되고 ‘클릭 지상주의’가 되었다. 오로지 제목으로 커버하려고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클릭 나오는 제목 달기는 쉽다. 그러면 부정확한 제목이 되고, 그러고 나면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많은 기자들이 자신의 일에서 소외돼 있다.


E: 네이버는 사악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 언론 자유 시장의 판을 연 듯하지만, 실제로는 언론시장의 판을 조종하고 있다. 신문사들은 네이버가 연 시장에 코딱지만 한 점포를 열고 손님을 끌려 애쓴다. 앞다퉈 독자의 관심을 끌려고 제목에 분칠·떡칠하고 조미료 푹푹 친다. 각 신문사 편집기자들이 자사 사이트의 제목보다 네이버 제목에 몇 배 더 공들인다. 신문사들은 이렇게 네이버 손바닥 안에서 경쟁한다. 이런 경쟁과 수고의 성과물의 상당 부분은 네이버가 챙긴다. 네이버 클릭 수가 엄청 올라간다. 네이버는 신문사들·편집기자들을 돈 안 들이고 써먹는 셈이다. 네이버가 선정성을 규제하는 척하며 방조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C: 네이버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내지만 편집기자들은 금세 익숙해진다. 톱뉴스와 네이버 톱뉴스가 일치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 생기고 나서는 두 개의 톱을 가진 사이트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언론사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운영된다. 한 신문사에서 ‘인혁당 재심 판결 존중’ 기사와 ‘대학교수가 길가는 20대女 다리에 뿌린 건… DNA 분석 결과 정액’ 같은 기사가 함께 톱으로 걸린다. 또 경제지 사이트는 ‘상위 1% 평균소득… 연평균 소득이 어마어마…’ 기사와 ‘PC방 주인의 부탁… 팀킬당하지 않으려면’이라는 유머 사이트 글 같은 5줄짜리 기사가 동시에 톱에 오른다. 네이버의 톱뉴스에는 정액 뿌린 대학교수, PC방 주인 기사가 걸린다. 제목을 일치시키는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뒤에는, 네이버로 간 제목에 맞춰 원래 기사 페이지의 제목을 바꾼다. 일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이라고 얘기한다. 가이드라인이 생긴 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빨간 폰트 전자우편, 새벽의 전화…

D: 예전부터 언론사 사이트는 그대로 놔두고 네이버에는 낚시 제목을 보냈다. 자기 사이트를 그렇게 망가뜨릴 줄은 몰랐다. 지난해 트위터 유명인사가 네이버의 선정성 문제를 공론화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압력이 주어졌다. 그런데 선정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성이 들어간 단어가 몇 개까지 있으면 선정적인 것일까, 치마 길이는 몇cm까지일까. 미국의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이 남긴 유명한 판례가 ‘보면 안다’(I know it when I see it)다. 그래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시민모니터링단을 모집했다. 지난해 4월25일 YWCA, 언론인권센터, 인폴루션제로 등 3곳에서 뽑은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언론인권센터 대신 여성연합이 합류했다.
E: 시민모니터링단의 단속이 객관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주제 불일치나 사진 불일치 등은 제외 조처가 되지 않지만(오랫동안 수정이 없을 경우는 제외 조처된다), 시민 모니터링단의 의견은 절대적이다. 경고 뒤 바로 3시간 제외 조처가 이루어진다. 반박을 해서 들어준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게임의 점증하는 선정성을 지목한 기사의 사진이 야하다며, 박경신 교수의 표현의 논란을 보여준 사진이 야하다며 모두 제외 조처시켰다. 선정성 규제라는 규율은 명료하고 확정적이어서 누구든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네이버는 명확한 선정성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시민옴부즈맨의 임의적 판단에 의거하고 있다. 또한 신문사들 기사마다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이러니 네이버에 선정적인 제목과 내용이 끊이지 않는다.


D: 제외 조처에 대한 항의가 많다. 솔직히 무리를 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문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과도한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이론의 여지가 있다면 네티즌들이 반발할 것이다. 신문사들은 “틀린 제목이 아니다. 이 이용자는 우리 신문의 안티다. 이용자 한 명의 의견에 왜 기사가 휘둘려야 하나”라고 말한다. 항의 강도도 세다. 전자우편 내용이 빨간색 25포인트의 글자로 날아온다. 열어보고 깜짝 놀란다. 전화를 웃으며 받으면 왜 웃느냐고 하기도 한다. ‘후배라 치고 하나 가르쳐주지’라는 비아냥거리는 전자우편을 매일 받는다. 새벽 2~3시에 항의 전화를 하기도 한다. 정신적 고통이 심하다. 현재 담당자들이 정신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한 상태다.
E: 뉴스가 세상을 보는 창이라면 뉴스캐스트의 창은 시궁창에 나 있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뉴스에는 저널리즘이 없다. 저널리즘이 없는 뉴스에 무얼 바라겠는가.

네이버가 경찰이 될 수 있겠는가

D: 네이버는 서비스 사이트다. 그런데 뉴스캐스트를 이용하는 사람의 60~70%는 네이버 페이지라고 생각한다. 신문사 뉴스 페이지의 선정적 광고도 네이버에 문의하곤 한다. 네이버가 좀더 강도를 높여 경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개 사기업이 언론 중재를 하고 기준을 정하고 편집권을 가질 순 없다. 페널티를 주는 식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기준만 정해지면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도 확보돼 있다. 하지만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일단은 언론사 설정이 쉽도록 하는 이용자 설정 서비스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