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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7일 월요일

‘을의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글은 시사IN 2013-05-27일자 기사 '‘을의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퍼왔습니다.
지난 4월 롯데백화점 입점업체 직원의 죽음이 을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시사IN) 기자가 빅3 백화점 중 한 곳에 취업했다. 고객에게는 서비스를 받는 장소겠지만, 판매 직원에게는 평가와 감시, 처벌의 장소이다.

지난 4월22일 김 아무개씨(47)가 본인이 일하던 롯데백화점 서울 청량리점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투신 직전, 김씨는 의류 매장을 관리하는 영업 관리자(파트리더) 등 32명이 함께 쓰는 카카오톡 대화창에 “대리님, 사람들 그만 괴롭히세요. 대표로 말씀드리고 저 힘들어서 떠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백화점의 과도한 매출 압박이 결정적인 자살 원인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그런데도 백화점 업계의 ‘갑’인 롯데백화점은 이 사건과 관련해 전 직원에게 ‘입단속’을 지시하는 등 사건 무마에 급급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순간 외에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백화점 직원. 정확하게 말해 ‘백화점 입점업체의 판매 대리자’는 백화점 소속이 아니지만 백화점 규정을 따르고 이들로부터 매출 압박을 받는다. 김씨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매니저’였다. 호칭일 뿐 직책은 아니다. 대체로 매니저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중간관리자로서 매출의 일정 수수료(인건비 및 매장관리비)를 제외한 금액을 본사에 보내야 한다. 김씨의 죽음은 그동안 잠재된 각계각층 ‘을’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발화점이었다. 기자는 5월6∼12일 일주일간 국내 빅3 백화점 가운데 한 곳에서 김씨와 같은 ‘백화점 직원’으로 일했다.

5월6일. “고객의 지갑을 열게끔 서비스하라” 

취업은 어렵지 않았다. 아웃소싱 업체가 요구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챙겼지만, 백화점 여성복 코너 입점업체 ㄱ매장 매니저는 내가 준비해간 서류를 보지 않았다. 5분여 만에 ‘입사’에 성공했다. ㄱ매장이 내 일터였다. 

ⓒ시사IN 윤무영

백화점 교육은 일주일에 한 차례 열린다. 입점업체와 관계없이, 직원에서 아르바이트생까지 백화점에서 일하는 누구나 교육을 받는다. 교육생 30명 가운데 대다수가 20대 초·중반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여성 3명도 참가했다. “나이 들어서 일하기에 이만한 일이 없다”라던 매니저의 말이 떠올랐다. 

교육 목표는 명확했다. 백화점 소속 서비스리더는 “고객님은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백화점에 온다. 이곳은 백화점의 표본이다. 고객님의 지갑을 열게끔 서비스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5시간 동안 진행된 교육은 고객 편의를 위해 지켜야 할 사항을 일러주었다. 고객용 시설 이용 금지, 화려한 복장 금지, 앉아 있기 금지 따위였다. 

최근에는 사물에 존칭을 쓰는 게 듣기 불편하다는 고객 불만이 나온다며, “글로벌 기업으로 ‘바른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세일이십니다’ 같은 말을 쓰지 않아야 한다”라고 주의시켰다. 고객이 부담스러워할 정도의 눈맞춤이나 지나치게 정중한 손 모으기도 금지 사항이었다. 이런 모호한 지시를 하면서도 매장 모니터 평가 항목은 매우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밝은 표정과 바른 자세로 대기(100점), 밝은 표정은 아니지만 고객 입점 시 응대할 수 있도록 움직임에 주목(70점), 자연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으나 초점 없이 무표정으로 대기(40점), 직원 간 잡담·통화·상품 정리 등으로 방문고객 입점 여부를 인지하지 못함(0점) 따위 점수화된 항목이 70여 가지에 달했다. 손님으로 위장한 모니터 요원이 이 점수에 따라 직원들을 비정기적으로 평가한다. 

서비스리더는 매장을 돌면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거나 앉아서 대기 중인 직원을 촬영하고, 이렇게 찍힌 사진을 근거로 매장에 불이익을 준다고 했다. 매장 모니터와 직원 감시에 이어 곧 발표될 한국서비스 품질지수 평가까지, 판매 직원에게 백화점은 서비스 제공 장소이자 이에 대한 평가와 감시, 처벌이 반복되는 곳이었다.

5월7일. 빛은 없다 

붉은색 티셔츠, 팔리지 않던 옷을 유니폼으로 사용했다. 머리는 단정히 빗었다. 오전 9시30분, 백화점의 아침은 청소로 시작한다.    매장 관습상 청소는 막내급인 내 담당이다. 대걸레질과 먼지떨이, 거울 닦기다. 재고를 관리하거나 상품을 전시하는 일은 ‘둘째 언니’ 몫이다. 매니저는 판매에만 집중했다. 백화점에서는 매출을 높이는 업무가 가장 중요해서다. ㄱ매장은 나를 포함해 직원 5명이 일했다. 백화점 입점 매장 가운데 직원이 많은 편이었다. 매장도 넓었다. 두 개 매장을 텄다. 그만큼 높은 매출을 기록한다. 에스컬레이터 인근에 매장이 위치한 것도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시간이다. 연장 영업이 있는 금·토·일요일에는 오후 9시까지 일해야 한다. 평일 주 1회 휴무, 주 1회 늦은 출근이나 이른 퇴근을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급여는 148만원. 4대 보험을 제하고 나면 136만원을 손에 쥔다. 4대 보험을 들 수 있는 데다 136만원 주는 곳은 거의 없다고 동료들은 귀띔했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하자 매니저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하루만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말하라”고 했다. 

매장 안으로 고객이 들어온다. 첫날부터 입술이 떨어질 리 없었다. “세 가지 인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해.” 매니저가 내 옆을 지나며 말했다. 맞이 인사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추가 인사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고객님∼’, 배웅 인사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어떤 고객이 모니터 요원인지 알 수 없다. 매니저가 선창하면 따라 외쳤다.

점심은 직원이 돌아가며 먹었다. 매니저는 내 점심시간을 가장 먼저 배치해주었다. 늦게 배치될 경우 오후 2시께 식사를 할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일어서는데 계속 서 있어서인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후 업무를 준비하는 휴식시간치고는 지나치게 짧았다.

시곗바늘이 저녁 8시를 가리켰다. 퇴근시간이다. 매니저의 눈치를 봤다.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서 있기가 괴로웠다. 백화점 폐점 이후에도 직원 대기 10분, 매출 확인 시간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백화점 직원들이 우르르 거리로 쏟아졌다. 어둠이 짙었다. 11시간 만에 바깥 공기를 처음으로 들이켰다.

5월8일. 판매 여왕이 되다

풀리지 않는 난관은 상품명과 제품의 특징을 외우는 일이었다. 제품을 잘 알아야만 고객에게 추천할 수 있다. 이는 즉시 매출로 연결된다. 매장에는 ‘킬러 아이템’이 있다. 매니저의 주력 판매 제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방만 해도 브랜드가 대여섯 개 있고 같은 브랜드도 색상·소재·디자인·가격에 따라 30가지가 넘는다. 나는 며칠이 지나도록 외우지 못했다. 

고객 응대를 하다가도 언니에게 눈치껏 제품 설명을 넘겼다. 그때마다 옆에 바짝 붙어서 응대법을 익혔다. 제품의 가격은 100여만 원. ‘직접 사서 쓰지도 않는데 어떻게 상세히 알까’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매니저는 제품을 판매한 언니에게 “너는 (브랜드) 여왕이야” “대견해” 따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도 잠시. 매니저는 오후 6시가 넘어도 매출이 130만원에 불과하다며 근심이 가득했다. 매장 평일 목표 매출 300만원에 훨씬 못 미쳤다. 백화점 판매 26년째인 매니저는 매출에 민감한 편이다. 두 달여 전 타 백화점에서 이곳으로 온 터였다. 본사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매니저의 근심은 직원들에게 곧장 전이되기 마련이다.

그때 한 여성 고객이 매장을 휘저었다. 매출을 높이려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매니저는 고객이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옷을 추천받아 입고 벗기를 반복하던 이 고객은 160만원어치를 한 번에 구입했다. 손 큰 고객이 분위기를 휘저으면 다른 고객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폐점을 겨우 1시간30분 남겨두고 400여만 원 매출을 올렸다. 매출은 발생하는 즉시, 본사에 접수된다. 매니저는 “본사에서도 오늘은 공쳤다고 생각했을 텐데 막판에 놀랐을 거다”라며 표정이 밝아졌다. 


ⓒ시사IN 이명익 백화점 판매 직원을 평가하는 항목은 70여 가지에 달한다. 위는 국내 한 백화점 여성복 코너의 모습.

한 직원이 나를 향해 “네가 와서 매출이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다 보면 다리 아픈 건 싹 사라진다던 동료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걷기가 힘들었다. 

5월9일. 본사 파트리더의 방문

입사 후 첫 조회가 있었다. 백화점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새 파트리더를 소개받는 자리다. 같은 층 매장 약 20곳을 관리하는 백화점 소속 직원을 파트리더라고 일컫는다. 그는 2011년 백화점 공채로 입사한 20대 후반 남성이다. 반면 대다수 매니저는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40대 이상 여성이다. 기선제압을 하려는지 그가 외쳤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실 거죠? (더 크게) 도와주실 거죠?”

몇몇 매니저가 소곤거렸다. “예전 그 직원이 아니다. 입사 2년 만에 파트리더로 승진했으니 얼마나 파이팅이 넘칠까.” 오후 4시께 파트리더는 담당 매장을 순차적으로 방문했다. ㄱ매장을 지난 직후 매니저가 나를 불렀다. “매장 창에 지문이 묻었어요. 닦으세요.” 신문지를 찢어 창으로 나왔더니 파트리더가 훑고 간 전 매장에서 줄줄이 창을 닦고 있었다.

다음 날 금요일부터 토·일요일까지 행사가 있다. 본사로부터 이월 상품을 받아 할인 판매를 한다. 재고를 없애는 일은 본사가 신경을 많이 쓰는 일 중 하나다. 그만큼 판매 직원에게는 이중으로 과중한 업무가 주어진다. 추가 업무지만 야근이나 특근비 등을 주지는 않는다.

옷 400여 벌이 10개 박스에 담겨 들어왔다. 직원들이 오가는 화물용 승강기 앞에 주저앉았다. 알록달록한 천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렸다. 행사에 쓸 150여 벌을 선별하고 행거에 걸었다. 서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잠시 맛본 행복은 행사의 시작과 함께 깡그리 사라졌다.

5월10일. 노고가 매출로

행사를 앞두고 본사 직원들이 매장을 찾았다. 매니저는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직원에게 “오늘 (매출) 얼마나 할 거야(올릴 거야)?”라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옷을 정리했다. 같은 질문이 입사 일주일이 안 된 내게도 왔다. 내가 되물었다. “얼마나 하면 될까요?” “열심히만 해.”

고객이 행사장에 관심을 가진다 싶으면 “어서 오세요. 고객님∼”이라는 인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내 나름의 코디를 추천하기도 했다. 둘째 언니가 “인사만 하지 말고 판매에 적극성을 가지라”고 조언한 직후였다. 몸은 괴로워도 입은 점점 자동으로 움직였다.

행사장 옷은 잘 팔리지 않았다. 옷 사이즈는 충분하지 않았고 디자인은 각양각색이었다. 매출은 나와 무관했다. 그런데도 들춰보고 입어보다가 사 가지 않는 고객들이 얄밉게 보였다. 어쩌면 내가 일한 노고가 매출로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님이 내 설득에 구입하면 짜릿하다”라던 매니저의 말뜻을 알 것도 같았다.


ⓒ시사IN 백승기 4월30일 입점업체 직원에 대한 백화점의 과도한 관리·감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다행히 매장 매출이 좋았다. 1000만원이 넘었다. 이런 날은 매출이 안 좋을 수도 있는 다음 날에 대비해 ‘감는다’. 하루 매출의 평균을 고르게 하기 위해 장사가 잘된 날 일부 매출을 다음 날로 넘기는 것이다. 

한때는 급여에 더해 1년에 두 차례 실시한 백화점 행사 매출에서 1%를 직원 수당으로 지급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사흘 만에 1억5000만원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본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막내급은 딱 한 차례 25만원을 받았다. 

5월11일. 밥 굶으며 11시간 버티는 언니들 

매장 직원들은 모두 밥을 먹지 않았다.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다. 이들의 휴대전화 배경화면에는 비키니를 입은 가수와 모델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고객에게 직원들은 걸어다니는 피팅 모델이다. 날씬한 몸매 유지를 알게 모르게 강요당했다. 밥을 먹지 않고 11시간을 서서 버티는 능력은 정말 놀라웠다. 이들은 밥을 먹지 않는 대신 점심시간에 잠을 청했다. 저녁식사 시간도 따로 없다. 매니저가 사 오는 우유와 김밥으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나면, 그 후 굶는다. 

점심시간, 직원 휴게실에는 집에서 준비해온 삶은 달걀, 고구마, 오이 따위로 끼니를 해결하는 직원으로 붐볐다. 셋째 언니는 “제대로 밥을 먹지 않거나 퇴근 이후 폭식을 하는 탓에 백화점 판매직원은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많다”라고 말했다. 둘째 언니가 거들었다. “한창 바쁠 때는 휴식은커녕 매장과 창고를 뛰면서 한 입씩 오물거리며 요기할 때도 있어.”

‘고객의 눈으로 보세요.’ 직원 휴게실을 통과하는 거울에 적힌 문구처럼 모든 게시물이나 표지판은 고객의 관점에서 작성돼 있다. 안내를 받지 않으면 백화점 내부에서 직원 화장실·휴게실·승강기(화물승강기) 따위를 찾기 어렵다. 매장과 매장 사이 어디엔가 ‘서비스 라인’이라고 적힌 테이프가 부착돼 있으면 그 뒤에는 직원용 시설이 있다. 직원 휴게실에 가면서 가방을 들고 갔다가 ‘주의’를 들었다. 사복 유니폼에다 가방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고객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다. 직원과 고객의 경계는 언제나 세밀했다.

의아한 점은 직원이 이용하는 모든 시설물에 백화점이 속한 그룹의 회장과 대표이사 등 고위관계자 이름과 사진이 담긴 포스터가 부착돼 있는 것이다. 마치 ‘모든 매장의 주인은 그룹’이라는 사실을 주시시키려는 듯 보였다. 백화점 ‘갑’은 회장, 나는 ‘을’이라는 것을 볼 때마다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갑의 절약정신은 꼼꼼했다. 폐점을 하는 즉시, 직원이 남아 있는데도 에어컨을 끄거나 직원 화장실의 온수만 꺼버렸다.  

5월12일. “파트리더가 네 이름 적어오래”

아침부터 다리가 덜덜 떨렸다. 일한 지 닷새 만에 사흘짜리 행사를 맡은 게 무리였다. 다리에서 허리, 어깨까지 통증이 왔다. 옆 매장에서 일하는 언니는 생리까지 겹쳐 끙끙 앓았다. 언니는 자신의 연봉(2000여만 원)을 분할해 “오른팔이 500만원, 왼팔 500만원, 양쪽 다리 1000만원짜리”라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벽에 기대고, 행거 뒤에 쭈그려 앉아봤지만 소용없었다. 동료에게 지적만 당할 뿐이다. 계산대 담당 언니와 옆 매장 언니가 몸을 비비 꼬는 내게 “파트리더가 이름 적어오래” “너 사진 찍혔어”라고 놀렸다. 나중에서야 농담인 걸 알았지만, 그 소리를 듣고서는 나도 모르게 머리가 쭈뼛거렸다. 심장박동이 심하게 빨라질 만큼 을의 처지를 실감했다. 

이런 상황이 정말 일어난다면? 끔찍하다. 두 번 지적을 받으면 퇴사당한다. 그 전에 매니저는 파트리더에게 훈계를 당하고 경위서를 쓸 수도 있다. 최악의 상황에는 매니저마저 교체된다. 백화점 전 매장 중 모니터 요원이 매긴 점수가 가장 낮은 구역의 파트리더는 지하 주차장으로 배치받기도 한다. 

매니저는 책임질 일이 많다.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 매출 차이가 극심하고, ‘로스(잃어버린 상품 비용)’를 메우는 책임도 매니저 몫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매출의 부족한 금액을 스스로 벌충하기도 한다. 

금·토·일요일은 평일보다 30분 연장 영업한다. 폐점이 늦어지는데도 그만큼 돈을 더 주지는 않는다. 지난 2월 행사에서 한 직원은 뒷정리를 하느라 새벽 2시30분에 퇴근했다. 택시비 3만원, 식비 1만원을 썼다. 월급을 쪼개 일당 5만원이라고 할 때, 그는 이날 1만원을 손에 쥔 셈이다. 그러고도 이 직원은 이튿날 정시에 출근했다. 

일을 마치고 혼자 계단을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난간을 잡았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언니들 얼굴이 겹쳤다. 다리가 아픈 언니는 내일도 압박 스타킹을 신고 서 있어야 한다.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을 외칠 것이다. 그 뒤로 본사 정규직 파트리더의 번뜩이는 눈초리와 휴게실에 붙은 백화점 회장님의 자상한 눈빛은 계속될 것이다. 


송지혜 기자  |  song@sisain.co.kr

2012년 8월 8일 수요일

[보험특집2] 삼성생명, 고객의 눈물로 자신의 죄를 지우다


이글은 위키프레스 201208-07일자 기사 '[보험특집2] 삼성생명, 고객의 눈물로 자신의 죄를 지우다'를 퍼왔습니다.

"이번 합의로 삼성생명이 제게했던 사기 행각은 철저히 은폐되겠죠"

(위키프레스)에 제보한 부산의 강모 씨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당연히' 받아야할 보험금을 받지 못한 강 씨는 삼성생명과 2년 동안 홀로 싸웠다. 그는 처절한 싸움 끝에 자신에게 남은 건 합의금 1천만 원과 화병 밖에 없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강 씨의 싸움은 지인 황 씨를 위한 것이었다. 2년 전 황 씨는 뇌졸중 연계질환인 '열공성 뇌경색'(이하 열공경색)을 앓았던 터라 보험금 청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에 강 씨는 황 씨의 부탁으로 보험금 청구를 도와주었다. 며칠 뒤 삼성생명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을 통보했다. 강 씨는 이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다 싶었다. 그는 일하는 시간을 뺀 모든 시간을 황 씨의 보험금을 받아내는 데에 썼다. 사회구조적 문제임에도 힘 없는 자들이 늘 그러하듯 강 씨 또한 그저 '자기 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강 씨는 1인 시위를 비롯,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삼성생명의 행각을 고발하며 고군분투했다. 그는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한 뒤 요목조목 따졌다. 그러나 삼성생명의 덫에 말려든 그는 되레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약점을 잡은 삼성생명은 끝내 보험금 2천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합의금(삼성은 '화해'라고 주장하지만)명목으로 1천만 원을 지급할 용의가 있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강 씨에게 통보했다. 

강 씨는 지칠대로 지친 황 씨의 권유에 못이겨 결국 삼성생명의 제안을 승락했다. 이들은 함께 합의서를 작성하러 갔다. 가뜩이나 모든 상황이 억울했던 강 씨는 황 씨가 합의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보며 극심한 굴욕감을 느꼈다. 합의 내용 때문이다. 합의하러 온 삼성생명 직원은 피보험자 황 씨에게 부르는 대로 받아 적으라 했다. 

"화해금 1천만 원을 보험금 청구에 갈음하고···본인이 게재한 모든 인터넷 게시글, 회사 비방글을 삭제할 것이며 이를 어길 시 화해금을 반환할 것을 확약한다" 

강 씨는 다른 건 몰라도 '비방글 삭제하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삼성생명의 횡포를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자 삼성생명 직원은 그러면 합의금을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뿐만 아니라 관련 글을 또 다시 게재할 시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씨가 부당하다며 화를 내자 황 씨가 나서 '이제 그만하자'며 그를 말렸다. 황 씨는 직원이 부르는 대로 묵묵히 받아 적었다. 


이번 합의로 삼성생명은 얻은 게 많다. 무엇보다 원래 지급해야할 보험금의 절반인 1천만 원만 지급하면 되는 성과를 올렸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손해사정사와 지급팀은 인센티브를 받을 것이다. 강 씨가 올린 고발 글도 깨끗하게 해결했다. 모든 것을 '당신 손으로 직접' 삭제하라 합의서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쪽이 직접 작성한 합의서에 따라 합의금을 회수한다고 엄포를 놓으면 된다.

합의서를 작성한 뒤 강 씨는 기자에게 전화해 울먹이며 말했다. "대기업이 국민을 두고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삼성생명은 이렇게 자신들의 행각을 고객들의 눈물로 지워나갔다. 

애초, 강 씨는 황 씨의 보험금 청구만 잠깐 도와줄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황 씨가 들었던 보험은 열공경색을 보장했기에 진단서를 끊어주는 절차만 도와주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강 씨는 손해사정사와 만나 필요한 서류를 꾸민 뒤 모두 삼성생명에 넘겼다. 며칠 뒤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삼성생명의 통보를 받았다. 진단명에 따른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코드(이하 질병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강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처음엔 무슨 뜻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이들고 있는 진단서에는 분명 '진단명-열공경색, 질병코드-I63.8'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의사의 진단에 따라 원무과에서 입력하는 질병코드는 사실 '통계청'에서 연구를 목적으로 분류해 놓은 번호일 뿐 다른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보험사는 이 질병코드를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근거로 악용해왔다. 방법은 간단하다. 손해사정사는 삼성이 직접 만든 서류양식 하나를 의사에게 내민다. 이어, 한 의사의 표현을 빌리면, 손해사정사는 '말로 의사를 구워삶아' 의사가 다른 질병코드를 쓰도록 유도한다. 이 서류를 받은 보험사 보상팀(지급팀)은 '의사가 명확한 진단을 못하고 있다'고 왜곡 해석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다. 당시 황 씨에게 열공경색 진단을 내린 부산 동래구 봉생병원의 내과과장은 황씨의 뇌 MRI를 9년 동안 찍었고, 열공경색으로 판명된 후 3년간 치료 했다. 이러한 의사의 진단명을 한 순간에 '오진'으로 만든 것이다. (본지 7월 24일자 보도된 '삼성생명의 기막힌 말장난에 놀아난 의사와 금감원' 참조)

이에 본지는 통계청의 한 관계자와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관계자는 '보험사가 질병코드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질병코드는)그런 용도가 아닌데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통계청에서 발행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코드지침서 2권 11쪽의 '목적과 이용'을 보면, '국민건강을 연구하기위한 것'이라고 적혀있다"고 답했다. 질병코드가 의사의 진단명을 대신할 수 있지에 대해서는 "진단명에 따라 질병코드가 부여되는 것이지, 질병코드에 따라 의사의 진단명이 결정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질병코드를 만든 목적은 우리나라 국민의 질병 및 사인을 조사하기 위한 연구자료임을 명시해 두었다 (자료=통계청 제공)

이를 몰랐던 강 씨는 다른 여러 자료를 인용해 보험금을 재청구 하지만, 오히려 삼성생명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수법들에 모두 말려들고 말았다. 특히 보험사기를 막기 위해 마련된 '제3 의료기관 자문 소견서'와 방관에 가까운 분쟁조정결과를 내놓은 금감원의 '보험분쟁 회신문'은 삼성생명의 보험금 지급 거절논리로 철저히 악용됐다. 

결국 황 씨는 삼성생명이 내민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강 씨는 자신이 올린 모든 글을 삭제해야만 했다. 이뿐만 아니라 삼성생명은 황 씨에게 '위키프레스에 제보해 게재된 기사 또한 삭제요청을 하라'고 요구했다. 황 씨는 기자에게 전화해 기사삭제를 부탁했다. 기자가 이를 거절하자 삼성생명 측은 기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보험금 지급이 원리와 원칙에 맞지 않을 경우 결국은 보험료가 더 높아져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보험금 지급심사는 신중해야···(이번 사안은)의학적, 법리적 논리가 팽팽한, 더 나아가 보험사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거대보험사의 횡포' 로만 비춰질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 기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보험소비자협회의 김미숙 대표는 "종신보험 총액이 대략 117조 원인데 이중 보험금으로 지급된 돈은 3.8%에 해당하는 4조 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임직원 수당, 주주이익분배 등에 사업비로 나간돈은 무려 30조원이 넘는다"며 보험료 상승요인은 따로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보험사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말은 거대보험사의 횡포가 그만큼 심각해 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이라며 미국의 민간보험 사례를 들며 반박했다. 

박성제 (park@wikipress.co.k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