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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철학과 원칙에서 제도와 대안까지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06-15일 제45호 기사 '철학과 원칙에서 제도와 대안까지'를 퍼왔습니다.
Corée | 6월항쟁 25주년 특집 | 개헌을 말한다

<그가 사라졌다 시리즈>, 2004-카르멘 칼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전체 성격을 관통하는 핵심 중의 핵심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산업화·도시화·정보화·사회간접자본·정보기술(IT)·자동차·철강·전자를 포함해 이미 '세계 선두 수준'에 도달한 기술과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자살률, 출산율, 정부의 공적 지출, 형평, 복지, 남녀 임금 격차, 비정규직 비중, 자영업 비중 등 인간적 문제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 수준'이라는 점이다. '인간 조건'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 실존'은 너무 불안하고 불공정한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인간 조건의 급속한 발전'과 '인간 실존의 급격한 악화'가 공존하는 변종 공동체, 괴물 공화국을 만든 것일까?
둘째, 지속적인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이념적·사회경제적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갈등의 제도화를 통한 갈등 해결 수준 역시 매우 낮다는 점이다. 민주화가 진전됐음에도 갈등은 왜 줄어들지 않고, 기존 국가제도들은 갈등을 수렴·해결하는 데 실패하는가? 민주주의의 발전은 갈등의 제도화를 통해 개인 삶의 평안성과 전체 사회의 안정성이 증대되는 것을 의미하나, 한국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한국 사회의 빛과 그늘,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상반되는 현실 모습은, 인간적인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발본적인 지혜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가? 문제를 사실적 객관성과 실현 가능성의 범주로 좁혀볼 때 우리는 우선 제도 요인에 착목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사회에서 반복되는 현상들은, 인간적 요인을 제외할 경우 거의 전부 제도 요인에서 발원하기 때문이다. 특히 임기를 갖는 특정 지도자나 정부를 넘어 지속되는 현상들은 대개 제도에서 산생된다고 봐도 틀림없다.
제도는 어원 그대로 인간 개개인을 일정한 틀 속에 집어넣어 성품의 차이와 능력의 고하가 초래할지 모를 편차와 오류의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를 말한다. 인간들이 반복되는 동일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제도 개혁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를 통해 예측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인류의 발전이 제도 변화에서 초래된 연유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모두(冒頭)의 두 가지 극적인 상반 현상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 현실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인물 요인, 정책 요인과 함께 거기에는 명백히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경로와 제도 요인이 존재한다. 즉, 이런 현상은 다섯 번에 걸친 민주정부 및 대통령들 개별 차원을 넘는 요소와 관성의 산물임이 명백하다. 제도 문제의 중심에는 정부 형태, 공직 구성 방법, 경제체제를 포함하는 헌법 요인이 존재한다. 이때 말하는 헌법 요인은 한 사회를 근거짓는 헌법철학, 헌정제도, 헌정 절차와 헌법 개혁 사안을 모두 포함한다. 무엇보다 먼저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들은 헌법 개혁에 합의했거나 헌법 개혁을 직접 제안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모두 헌법 개혁을 약속하거나 제안한 바 있다. 국정을 담당한 모든 대통령이 헌법 개혁을 약속·제안·추진했다는 점은 헌법 개혁이 특정 정부나 개인의 정략을 넘는 본질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국가 운영의 기본 틀로서 현행 헌법이 지닌 문제가 분명하다. 즉, 헌법 개혁 문제는 한두 대통령과 정부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었다.

현행 대통령제는 대통령 무책임제

둘째는 현행 6월항쟁 헌법이 초래하는 대통령 무책임제와 정당 무책임제의 문제다. 정책 무책임제와 정부 실패로 직결되는 이 점은 근대민주주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현행 헌법은 정부를 담당한 대통령과 정당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이다. 현행 헌법하의 현임 대통령들은 전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탈당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한다. 민주국가에서 유례없는 반민주적 통치 유형인 무정당 통치를 반복하는 대통령 무책임제이다. 게다가 대통령을 배출한 모든 정당은 집권 시기 내에 전부 소멸했다. 민주정의당(노태우), 민주자유당(김영삼),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 새천년민주당(노무현), 한나라당(이명박)이 모두 같은 운명이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선거 당시' 정당의 '임기 중의' 예외 없는 소멸은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인 정당정치와 책임정치를 근저부터 차단한다. 정당 책임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 부정으로서 정당 무책임제가 현행 헌법체제인 것이다. 또한 모든 대통령은 재임 중 '제왕'에서 '식물'로 그 위상이 급변한다는 점도 동일했다.
셋째는 '민주헌법'인 현행 헌법 제정 시점의 문제가 존재한다. 1987년 6월항쟁 헌법을 제정할 때 '민주헌법' 쟁취 운동을 주도한 시민들의 참여는 철저히 배제됐다. 운동 국면(독재 타도)과 제도 국면(헌법 개혁)의 완전한 분리였다. 더욱 큰 문제는 '대통령 직선'을 제외하면 당시 시민사회와 야당의 의견은 헌법 구조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의 헌법 협상을 정밀 분석하면 '직선제'를 제외하면 다른 부문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세력의 요구가 관철됐다. '3김'과 전두환·노태우의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 교환의 산물로 등장한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을 제외하면 거의 '전두환 헌법'이라고 할 정도로 집권 군부의 의도가 반영됐다. 이는 현행 민주헌법을 개혁해야 할 중대 사유로서, 헌법개혁운동은 사실 제2의 민주화운동 성격을 갖는다.
넷째는 현행 6월항쟁 헌법의 핵심 정신과 구조는 여전히 '박정희 헌법'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우선 박정희는 유신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건국 이래 유지돼오던 국가 근간으로서 '민주주의' 규정을 왜곡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로 축소했다. 독재정부를 수립하면서 거꾸로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삽입하고는 이를 국시로 주장해왔다. 현행 헌법에도 지속되고 있는 이 조항은 건국정신과 건국헌법의 부정이자 유린이었다. △박정희는 국가경제의 근본 원칙을 역전시켰다. 1948년 건국헌법 이래 경제원칙은 5·16 쿠데타 헌법과는 정반대였다. 건국헌법 제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이다. 이것이 1962년 5·16 쿠데타 헌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역전됐고, 이는 현재에도 거의 그대로다. 제111조 제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현재의 경제민주화 조항들은, 재벌들의 요구처럼 완화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건국헌법과 정신으로 돌아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 △5·16 쿠데타 헌법은 의회민주주의의 중심인 의회 규모를 대폭 축소해- 5대 국회 291명, 6대 국회 175명. 즉, 인구 10만 명당 의원 1명에서 20만 명당 1명으로 축소- 대통령 권력을 강화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의 결정적인 약화를 초래했다. 우리나라 건국 시기와 현재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의회 절반 규모에 불과한, 박정희 시기의 급격한 의회 규모 축소로 인한 '대통령 권력 강화-의회 권력 약화' 구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제도로 수렴·반영·해결하려면 의회 규모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행 헌법은 '박정희 헌법'

근본 원칙과 구조에서 현행 6월항쟁 헌법이 여전히 '박정희-전두환 헌법체제'라고 할 때, 민주화된 한국 사회가 25년 동안이나 근본적 문제제기 없이 이를 지속해온 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한국 사회의 질적 발전과 온전한 민주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박정희-전두환 헌법을 넘어 헌법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중요한 몇몇 헌법 개혁의 원칙과 방향을 고민해보자.
첫째는 권리장전으로서의 헌법을 지향한다. 이제 대한민국 헌법은 단순히 국민을 넘어 영토 내 모든 인간이 사람으로서 존엄과 권리를 누리는 권리장전이 돼야 한다.
둘째는 생명·생태 헌법을 추구한다. 인간 조건의 급속한 발전이 인간 실존과 인간 본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재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생명·생태 가치와 병행하는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셋째는 평화헌법, 통일을 준비하는 헌법이 되어야 한다. 1987년 헌법을 제정할 때는 여전히 냉전시대였기에 냉전 해체와 남북관계 발전, 북한의 쇠락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 이제 급속한 환경 변화에 맞춰 평화·영토·통일 조항에 대한 전향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넷째는 복지국가와 사회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박정희 시기에 실종된 국가경제 체제의 근본 원칙인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복원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복지국가, 형평국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는 자치헌법·자율헌법이 되도록 한다. 과도한 중앙집중의 폐해를 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능을 재배분해 명실공히 분권국가가 되도록 노력한다.

국가 구성의 원칙과 방법의 전면적 혁신 요구

특히 강조하고 싶은 점은 국가 구성의 원칙과 방법의 전면적 혁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폴리비오스, 마키아벨리, 매디슨, 그리고 막스 베버에 이르기까지 지혜로운 정치사상들은 이상적인 국가 형태로서 혼합정체를 제시해왔다. 이제 한국 사회는 숱한 문제를 야기하는 현재의 대의민주주의 국가체제를 뛰어넘어,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크게 강화한 바람직한 혼합정체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국가-대표-시민 사이의 새로운 3권분립이다. 또는 국가(권력)-화폐(시장)-시민(사회) 사이의 3권분립이라고 해도 좋다. 시민권력의 대폭 확대를 통해, 공동체 전체가 시장이나 국가에 의해 지배되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고 3자 균형을 달성해야 한다.
둘째는 중앙과 지방 사이의 확고한 권력분립이다. 지방은 중앙의 하위 요소가 아니라, 지방의 연합으로서 중앙권력이 존재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지방의 자치와 자율이 국가권력 구성과 일상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이 돼야 한다.
셋째는 확고한 수평적 중앙권력의 분립이다. 필자는 이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3권분립을 넘는 4권분립을 주장해왔다. 즉 입법부·행정부·사법부에 더해 감독부를 독립 설치해, 국가권력의 획기적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을 추구한다. 감독부에는 감사·검찰·공정거래(시장감독)·금융감독·선거관리처럼 국가기구와 공동체에 대한 감독과 관리 기능을 하는 부서들을 배치해 대통령 및 행정부로부터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 이 기관들을 분리하면 이들에 대한 임면과 통제를 통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던 대통령 권력은 크게 약화돼 자연스레 분권정부가 될 것이다. 물론 분권정부 수립에는 의회의 획기적인 확대 역시 필수적이다.
넷째는 정부-시민의 이중 거버넌스의 구축이다. 즉 입법부·감독부·행정부·사법부 외곽에 각각 반(半)시민조직·공공조직으로서 시민의회, 시민감독위원(시민공정위원·시민검찰위원), 시민호민관, 시민(국민)배심원을 병렬 배치해 정부조직에 공공-시민 이중 거버넌스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의회의 경우 국회 내 결정이 일정한 비율 이하로 통과된 사안에 대해서는 시민의회의 재의에 부치는 방안이 있다. 법원 판결에서의 국민배심제와 유사한 시민조직을 주요 국가 거버넌스에 전부 병렬 배치해 시민의 참여를 제고하고, 국가·대표·시민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좁힌다.
다섯째는 선거 주기의 문제로서 2개의 순환주기를 설정해 '대통령 무책임제'와 '정당 무책임제'를 극복한다. 이를테면 대통령, 국회의원(지역대표와 비례대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주기를 일치시켜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예컨대 대통령 중임제로 할 경우 대통령과 지역대표 의원 선거를 제1조합으로, 비례대표·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제2조합으로 삼아 2년마다 선거를 실시해 확고한 책임정부를 구현하도록 한다.

일부 공직의 추첨제 도입 필요

끝으로, 국가 공직 구성의 방법 자체를 혁명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정부 공직 구성의 원리는 '선거'와 '임명' 두 가지였다. 그러나 이젠 전면 혁신이 필요하다. 근대 선거가 등장하기 이전 고전 고대와 중세 도시공화국 시기에는 오랫동안 '추첨'이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정부 구성의 원리였다. 따라서 대법원장, 검찰총장, 각급 법원장 및 지검장, 감사원장, 공정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을 포함해 사법부와 감독부의 주요 직위는 자격을 갖춘 일정한 인재풀에서 단계별로 전부 추첨제를 통해 선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권력을 크게 약화시킴은 물론, 권력집중·부정부패·금권유착·인사비리·줄서기의 각종 폐해를 낳은 구조적 문제점을 거의 해결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현재 우리의 지혜를 기다리는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헌법 개혁은 결코 만병통치약일 수 없다. 그러나 드러난 문제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혁을 미루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문제가 크고 반복적일수록 근본을 혁신해야 한다. 헌법 개혁이야말로 근본적 개혁의 요체 중의 요체일 것이다. 헌법 개혁을 필두로 한 제도 혁신을 통해 한국 사회가 더 바람직한 인간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게 지혜를 모으자. 그리하여 인간 조건의 개선이 인간 실존의 안녕과 평안으로 연결되는 이상적인 대한민국을 건설하자.

글•박명림 연세대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고려대 정치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학 하버드-옌칭연구소 협동연구학자 역임.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2).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등의 저서가 있다. 

2012년 7월 22일 일요일

“경제민주화의 햇빛정책 필요”


이글은 한겨레21 2012-07-23일자 제920호 기사 ' “경제민주화의 햇빛정책 필요”'를 퍼왔습니다.
[정치] 경제민주화 소신파인 민주당 김기준·홍종학, 통진당 박원석 의원 방담“박근혜의 경제민주화엔 금융공공성, 노동 없어”

 
» 경제민주화 관련 야당 초선 의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박원석 의원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준 민주통합당 의원, 박원석 통합진보당 의원,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제민주화가 화두다. 깃발은 새누리당이 먼저 흔들었다. 야권은 뒤늦게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겨레21)이 민주통합당 김기준(55)·홍종학(53) 의원과 통합진보당 박원석(42) 의원을 한자리에 모았다. 중진 의원 대신 초선의 비례대표 의원들에게 경제민주화에 대한 견해를 물은 이유가 있다. 이들 모두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 노동계·학계·시민단체에서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활동했다. 김기준 의원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홍종학 의원은 가천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벌 개혁 전도사였다. 박원석 의원은 참여연대에서 협동사무처장을 지내는 등 오래 일했다. 이들에게 활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소회를 물었다. 경제민주화 법 현실화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이지은 (한겨레21) 정치팀장이 사회를 봤다. 대담은 7월13일 국회 의원회관 박원석 의원실에서 진행했다.

“반MB 쏠려 효과적 대안 못 내”

사회 세 분 모두 국회의원이 되기 전 노동·학문·시민운동 영역에서 활동했다. 정치인인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일 듯하다.
김기준 의원 노동운동하며 정치권을 바라볼 땐 답답했고 비판을 많이 했는데,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이 다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작동하는 걸 느낀다. 벽에 맞닥뜨린 느낌이다. 노동운동은 방향성을 잡고 주변과 토론하고 소통을 잘하면 그것으로 웬만하면 해결할 수 있다. 반면 정치는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고 굉장히 속도감 있게 움직여 바로바로 (의제를) 선점하지 않으면 과거가 된다.
박원석 의원 운동은 일종의 문제제기인데 정치는 무언가를 생산하고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인내심, 타협, 설득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당내 갈등 과정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니 너무 운동의 방식, 직선적 사고와 행동에 익숙했던 것 같아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홍종학 의원 학교에 있을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했는데 이제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나는 체력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 지적으로 힘들다. (다들 웃음) 학교에서는 하나만 하면 되는데 여기는 동시에 걸려 있는 게 수십 개다.
사회 18대 국회 때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야당들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인가.
김기준 의원 힘없는 게 죄지. (다들 웃음) 금융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다. 금융지주회사법이 날치기 통과되기 전에 문제제기를 못하더라. 저축은행 문제에 대해 근본적 대책을 정부로부터 받아내는 노력이 부족했다.
박원석 의원 야당 의원 수가 너무 적어서 효과적으로 정책입법을 하기 어려웠다. 전체적으로 ‘반MB’ 정국 대응에 쏠려 콘텐츠를 갖고 정부 정책에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했다. 그래서 재벌 빵집,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 재벌 개혁 문제가 부각됐을 때 효과적으로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

» 김기준 민주통합당 의원.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결국 프레임의 문제다. 지배구조 등 재벌 개혁, 조세 개혁을 포함한 금융공공성 강화, 노동기본권 강화 등 세 개의 축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김기준 민주통합당 의원

홍종학 의원 나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는 역사의 파행이고 암흑시대다. 내가 과거 야당에 기대가 적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2~3년 전부터 시민사회와 야당 정치권이 긴밀하게 협력해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같은 화두를 국가적 화두로 내세운 건 엄청난 일이다. 암흑의 시대에 거기까지 만들어낸 것만 해도 대단한 공이다. 사실 4년 전 진보개혁 진영은 ‘이러다 보수에게 정권을 20년 동안 넘겨주는 것 아니냐’는 정도였다. 그런 무기력한 상황에서 2~3년 만에 국가적 과제를 주도했다는 것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것을 19대 국회에서 현실화하는 것이 과제다.

“경제민주화, 동맥경화 경제에 피 돌리기”

사회 19대 국회에서 야권의 경제민주화 과제는 무엇인가
홍종학 의원 역시나 경제민주화다. 한국 경제는 재벌에 막대한 지원을 해서 성장한 경제다. 그런데 지금은 재벌을 지원해봐야 한국 경제의 선순환 구조에 도움이 안 된다. 동맥경화다. 결국 중산층·서민이 위축되니 경제 전체의 수요가 줄어들어 대기업들도 무너지고 경제 전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가령 삼성전자는 돈을 엄청 버는데 정부는 삼성전자에 한 해 조세 지원을 몇조원씩 해준다. 정상이 아니다. 재벌 지원을 중소기업이나 대학생,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돌리면 선순환 구조가 살아난다. 경제민주화가 별게 아니다. 동맥경화에 걸린 경제에 다시 피가 돌게 하는 거다.
김기준 의원 그런 측면에서 노동문제를 경제민주화의 한 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설령 재정을 확보해도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 어디를 지원할까 선택의 문제가 있다.
박원석 의원 잠복한 위기 요인 중 하나가 가계부채 문제다. 최근 정부가 금리를 내렸는데 뒤늦은 대응이다.

»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명박 대통령 시대는 역사의 파행이고 암흑시대다. 암흑의 시대에 2~3년 전부터 시민사회와 야당 정치권이 긴밀하게 협력해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같은 화두를 국가적 화두로 내세운 건 엄청난 일이다.”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

사회 ‘재벌의 엑스맨’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았나. 과연 민주당 안에 재벌의 엑스맨이 있다고 보나.
홍종학 의원 정치란 다양한 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 아닌가. 문제는 재벌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굳이 ‘재벌의 엑스맨’이라고 표현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정치가 선진화하지 못해 특권세력이 정치까지 주도하는 게 문제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경제권력이 과도하게 정치권력까지 행사하는 걸 막는 것이다. 지금 시민사회와 노동계에서 정치권에 들어온 것을 보면 균형이 맞춰지는 과정이고, 상당한 정도로 균형이 맞춰졌다고 본다.
김기준 의원 ‘엑스맨’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내에서 각 세력을 대변하는 의원들의 균형을 맞추는 게 소중하다. 그런 측면에서 아직 균형을 맞추려면 부족한 측면이 있다. 힘을 얻으려면 결국 현장의 시민과 국회의 결합도가 높아져야 한다.
박원석 의원 외부의 끊임없는 압력과 감시가 있고, 이에 공감하는 원내세력들이 외부와 네트워크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밀고 나가야 한다.
사회 17대 국회 때 진보정당이 경제민주화를 열심히 제기했지만 현재 2명의 통합진보당 당 대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기억나는 활동이 없다.
박원석 의원 10여 년 전 민주노동당을 창당할 때 무상교육과 무상복지를 주장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시대정신이 됐다. 그게 진보정당이다. 오히려 문제는 정책·의제를 선도하는 역할을 지금 통합진보당이 하고 있는가다. 현재 통합진보당 당 대표 후보 2명이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정신과 무관하게 살아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지난 몇 년간 당권파가 정책과 비전을 만드는 투자와 노력을 게을리했던 문제가 크다고 본다.

“재벌·조세 개혁, 노동기본권 강화 3축”

홍종학 의원 통한진보당이 굉장히 중요하다. 척후병이니까. 먼저 나가서 여기저기 위험물질이 있는지 알아봐주면 우리(민주당)가 가는 건데 지금 척후병 역할을 못하고 있다. (웃음)
박원석 의원 죄송하다. 노력하겠다. (웃음)
사회 참여정부 때의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실패한 사례 혹은 잘한 입법이나 정책을 꼽는다면.
김기준 의원 잘한 건 기억이 안 난다. (웃음) 비정규직법을 강행하고 자본시장 통합법을 서두른 건 진짜 잘못한 거다.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온다. 비판적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참여정부를 딛고 일어나지 않으면 정권 창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박원석 통합진보당 의원.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0여 년 전 민주노동당을 창당할 때 무상교육과 무상복지를 주장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시대정신이 됐다. 그게 진보정당이다. 오히려 문제는 정책·의제를 선도하는 역할을 지금 통합진보당이 하고 있는가다.” -박원석 통합진보당 의원

박원석 의원 정치적·정책적 무능의 결과다. 참여정부를 ‘로드맵 정부’ ‘보고서 정부’라고 불렀다. 그러나 실제 바닥에서 정책이 로드맵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통제할 능력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왜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느냐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들었다 놔서 개조할 필요가 있다는 유혹을 FTA에서 느낀 것 같다. 그러나 수많은 독소조항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없었고, 문제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청와대에서 쫓겨난 상태였다.
홍종학 의원 성찰도 중요하지만 구조적 문제가 있는 듯하다. 쉽게 말해 진보개혁 진영이 어젠다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부를 많이 하시는 분인데, ‘이 어젠다를 수용하면 잘된다’는 것을 (진보가) 설득시키지 못한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의 국정 운영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옛 관료와 재벌 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2005년 8·31 부동산 대책 논쟁 때 내가 청와대에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때 DTI를 들어본 관료가 없었다. 아마 대통령이 누군가에게 DTI에 대해 의견을 물었을 것이고, 다들 ‘말도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쪽 의견도 듣고 저쪽 의견도 듣고 싶은데 이미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성찰의 중요한 지점이 돼야 한다. 다만 민주정부 10년 동안 진보개혁 진영의 실력이 늘었고 다음에 집권하면 훨씬 강한 추동력을 보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사회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경제민주화 의지는 어떻게 보나.
홍종학 의원 민주당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을 대표발의한 의원만 20~30명이다. 내가 깜짝 놀랄 정도다. 민주당에 상당한 정도로 경제민주화 세력이 형성됐고, 이해찬 대표가 “재벌 개혁에 명운을 걸겠다”고 도장을 찍어줬다. 저쪽(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에 아무 생각이 없다가 표가 쏠리니까 하는 포퓰리즘이지만, 우리는 지난 4년간 실력을 키우고 공감대를 만들어왔다.
김기준 의원 결국 프레임의 문제다. 지배구조 등 재벌 개혁, 조세 개혁을 포함한 금융공공성 강화, 노동기본권 강화 등 세 개의 축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안철수 재벌에 비판적” VS “야권 후보보다 못해”

사회 경제민주화라는 기준에서 대선 후보들을 평가해달라.
김기준 의원 노동·금융·재벌이라는 각각의 프레임에 비춰보고 싶다.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인지하느냐,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하겠느냐는 의지의 표출 두 가지 면에서 후보를 보면 전부 다 미흡하다. 박근혜 의원은 말할 것도 없다. 박 의원은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인지할지는 모르지만 금융공공성이나 노동문제에 대해선 아예 언급을 피한다. 야권에서는 일단 손학규 상임고문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멋있게 냈다. 다만 사무직보다 더 밑바닥에 있는 사람에게는 먼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나이브한 측면도 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슬로건만 보면 문제의식을 과감하게 내건 시도가 보인다.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국가’라고 하던데, 평등이라는 말을 아무도 그렇게 쓰지 못했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인간적으로 절친한 느낌은 주는데,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확고한 의지가 아직은 안 보인다.
박원석 의원 박근혜 의원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는 게 참신한 면이 있다. 그래서 그냥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어떤 경제민주화냐를 집요하게 야권이 파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 문제다. 그걸 부정하면 허구다. 최근 재벌의 순환출자 금지와 관련해 새누리당이 향후 순환출자를 금지한다고 했다. 문제를 전혀 잘못 읽고 있다. 앞으로가 아니라 현재의 재벌이 문제다. 손학규 고문의 ‘저녁이 있는 삶’ 슬로건은 경제민주화를 넘어선 굉장히 포괄적인 비전을 제시한 거다. 그 비전을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으로 보여줄지 흥미롭다. 문재인 고문의 콘텐츠는 약간 실망스럽다. 누구나 아는 내용을 동어반복하고 있다. 과연 저것만으로 대선에서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두관 전 지사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합원장은 청춘콘서트 당시 재벌 경제력 집중과 독점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 사고를 보였다. 어떤 국가적 비전을 만들지 기대하고 지켜볼 일이다. 이도저도 시원찮으면 새로운 비전을 밝힌 통합진보당 후보가 떠오르지 않을까 한다. (다들 웃음)
김기준 의원 안철수 원장이 재벌 문제를 거론하지만 그의 프레임은 정의냐 아니냐, 불공정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지 못하는 것 같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치열한 투쟁을 앞두고 있다. 야당 대선 후보들은 전투를 앞둔 비장한 장수의 모습인데, 안철수 원장은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다른 야권 후보에 비해 모자란다고 본다.
홍종학 의원 대선주자들의 의지가 확고하고 당 대표도 그렇다. 그것만큼은 내가 자신한다. 그런 공감대 아래서 자기 성격에 맞게끔, 가령 손 고문은 멋있게 경제민주화를 표현한 것이고, 김두관 전 지사는 직설적으로 표현한 거고, 문재인 고문은 여러 가지 다양한 성장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2013년 체제’에 대한 청사진이 있다. 다만 각각의 장수가 실제 전장에서 청사진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의 차이지.
사회 각자의 정책을 당이나 각 대선 후보에 관철할 구체적 계획이나 각오를 들려달라.
김기준 의원 노동조합 등 현장 조직과 소통하며 어떤 후보가 과연 경제민주화를 잘할지 선정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
박원석 의원 국회에 경제민주화 관련한 의원 모임이 많은데, 당을 넘어 ‘경제민주화 동맹’이 국회 내에 만들어지는 좋은 틀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축은 경제민주화 시민연대 등 국회 밖 시민사회와 정책 공감대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재벌 얼마나 지원하는지 보여만 줘도”

홍종학 의원 ‘경제민주화 햇빛정책’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경제민주화라는 게 개개인의 경제적 권리를 되찾자는 것이다. 지금 경제적 권리가 왜곡돼 있는 걸 보여주기만 해도 저절로 되리라 본다. 가령 정부는 재벌에 막대한 지원금을 준다. 그러면서 실제로 돈이 필요한 중산층과 서민의 복지에는 돈이 없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나 새누리당 정책은 재벌에 막대한 돈을 주고 서민과 중소기업에는 빚을 주는 정책이다. 정부가 재벌을 얼마나 지원하는지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 햇빛정책이다. 대북정책은 햇볕정책, 경제민주화는 햇빛정책!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dokko@hani.co.kr

2012년 4월 12일 목요일

민주당 '굴욕'…'한명숙 리더십' 실패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12일자 기사 '민주당 '굴욕'…'한명숙 리더십' 실패했다'를 퍼왔습니다.
[분석] 연합 과반조차 실패한 야당, 패인은?

굴욕이었다. 4년 만의 설욕전은 완전한 패배로 끝났다. 민주통합당의 19대 총선 성적표는 참담했다. 의회권력 교체는 고사하고 새누리당이 과반 넘는 1당을 차지했다.

수도권에서는 나름 선전했지만, 전국의 종합 결과는 명백한 패배였다. 4년 간의 이명박 정부의 실정은 민주통합당 등 야권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 않았다. 정권 심판론은 실패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010년부터 2년 내내 심판론, 국민은 대안과 비전을 원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 ⓒ뉴시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성적표를 요약하면 수도권의 선전, 호남을 제외한 지방의 사실상 전패다. 특히 2004년 이후 야권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지를 보냈던 충청의 민심은 완전히 돌아섰다. 통합진보당은 일부 지역에서 당선자를 냈지만, 대부분이 민주통합당의 양보를 받아 낸 전통적 야권의텃밭 지역이었다.

민주당은 총선 하루 전날에도 "예측이 어려운 끔찍한 선거"(박선숙 사무총장)라며 '엄살'을 떨었지만 내심 1당은 자신했었다. 4.11 총선 당일에도 "단독 과반은 어렵더라도, 통합진보당과 함께 과반 달성은 무난하리라"는 예측이 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졌다. 심판론이 먹히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심판론은 사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반복된 야권의 무기였다. 정권 중반 치러진 지방선거 때의 아젠다를 야권은 정권 말까지 놓지 못했다. 상대는 '미래권력' 박근혜인데, 이쪽은 '과거권력' 이명박만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지평선 너머로 이미 넘어간 해를 붙잡고 있자니, 새 시대에 대한 비전은 미처 제시하지 못했다. 총선 직전까지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경제민주화의 이슈는 정작 선거가 시작되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야권은 선거 기간 내내 단 한 가지의 정책 이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그것이 가장 큰 패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국민은 이미 여러번 민주당에 기회를 줬는데 정작 야권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정희와 김용민, 비수도권 참패의 시작이었다"

또 다른 패인으로 전문가들은 '오만함'을 꼽았다. 한귀영 한겨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진영논리는 일시적으로는 굉장히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덫이 된다"고 말했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스스로 성찰의 공간을 열어놓지 못하고 상대의 실책에만 의존했던 주체들의 문제가 치명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두 장면이 바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부정 경선' 파문과 김용민 노원갑 후보의 막말 파동이었다. 이정희 대표는 "송구스럽다"며 후보 자리는 내놓았지만 통합진보당의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하며 대중 앞에서 여전히 지지를 호소했다. 한 전문가는 "이런 모습이 국민의 눈에 자신의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 것으로 비춰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용민 후보는 여러 차례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지만, "국민에게 심판 받겠다"라며 일각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완주했다. 한명숙 대표마저 김 후보에게 사퇴를 권고했지만, 김 후보 본인은 물론이고 그의 출마를 만들어 낸 와 그 지지자들은 "대체 왜?"라는 태도였다.

두 사람의 이같은 행보는 "비수도권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치분석 전문가는 "이정희-김용민 파동은 강원, 충청, 인천 등의 50대 이상이 똘똘 뭉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이번 선거는 기본적으로 '심판 선거'가 아니라 '세대 대결'이었다"며 "충청도에서 선거를 치른 이해찬 전 총리가 '김용민 사퇴'를 얘기한 것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도 "선거 막판 튀어 나온 김용민의 변수가 비수도권에는 막강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공천은 엉망으로 해도 야권연대만 되면 이긴다?

1당을 자신했던 두 당의 오만함은 총선 시작부터 터져 나온 공천 파문을 복기해 보면 여실히 드러났다. 민주통합당은 공천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거센 역풍을 맞았다. 야심작이라고 내놓았던 국민참여경선은 오히려 최악의 공천을 불러왔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특히 충청도의 참패는 공천이 핵심 이유"라고 말했다. 한 연구위원은 "야권이 그나마 선전한 선거구는 대부분 후보의 인물 경쟁력이 좋았던 곳인데 반해, 참패한 충청은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생각해 거의 대부분 기존의 인물을 단수공천했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에도 민주당은 수도권과 부산 등 영남권에 집중했을 뿐, 충청은 눈 밖에 있었다. 이는 수도권과 영남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대선에서의 승산이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지만, 충청과 강원의 민심은 그 계산을 정확히 꿰뚫었다.

공천의 문제는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였다. 성추행 전력자를 공천했을 뿐 아니라, 비례대표 선출 과정은 각종 의혹으로 휘청거렸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비례대표 공천은 우리끼리 알아서 해도 된다는 오만함의 발로였고 그 결과가 2004년보다 낮은 정당 지지율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공천은 유권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나를 대변할 '단 한 사람'의 문제인데, 두 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공천보다는 '야권 단일화'가 세상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라고 믿고 있었다. 2010년 지방선거로부터 한 발자욱도 나가지 못한 또 한 가지 대목이다.

한명숙, 취임 3개월만에 불명예 퇴진하나?

당장 민주통합당은 지도부 거취 논란 등 거센 후폭풍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취임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한명숙 대표가 당 안팎의 사퇴 압박을 버텨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리더십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총사퇴할 경우, 민주당은 조기 전당대회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냐를 놓고 한동안 극심한 혼란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정민 기자 

2012년 2월 9일 목요일

이명박 정부, 가장 '맑고 투명'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09일자 기사 '이명박 정부, 가장 '맑고 투명'했다!'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5년, 빛과 그림자] 문화 정치의 실패

학술단체협의회와 은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간의 각 분야별 정책을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난 10월 29일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토대로 각 분야의 전문가의 글이 실리고, 나중에는 책으로도 묶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스튜어트 홀의 명저 에 대응하여 라는 책이 나올 시점이다. 왜냐하면 올해는 총선과 대선을 통한 급격한 권력 재편이 예고되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된 문화 영역에서의 성과 진단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세세한 발자취의 추적이 실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명박 정부를 문화적 관점에서 진단한다면 그 어느 정권보다도 '맑고 투명'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는 곧 정치 과정에서 요청되는 현란한 수사학의 부재가 보여주는 '은유의 빈곤'과 신자유주의적 생활양식의 내면화를 가능케 할 (그람시적 의미에서) 참호와 요새, (알튀세적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작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문화 정치의 실패'로 요약된다.

위와 같은 평가는 에서 주목하고 있는 다음의 사항들, 즉 제도 정치의 장악이 아닌, 도덕적·지적 리더십의 확보, 이데올로기의 훈육적 효능, 새로운 수준의 문명 내지 국가상 제시를 통한 대중적 동의 여부에 기초한다. 이런 사항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문화적 진단 혹은 문화 정책에 대한 평가에 있어 핵심적 분석 틀을 제공한다. 즉, 이명박 정부는 국정 운영에 있어 도덕적이고 지적 리더십을 확보했는가, 사회통합을 가능케 할 이데올로기의 작동이 원활이 이루어졌는가, 질적 도약을 통해 도달해야 할 국가적 비전이 어떻게 제시되었는가의 문제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

첫째, 이명박 정부가 도덕적·지적 리더십을 확보하며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잡았는가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2008년에 발생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는 이명박 정부에게 향후 국정 운영의 방식을 결정짓는 중대 사건이었다. 즉, 국민과의 쌍방향 소통이 아닌 국민에 대한 일방적 소통으로 국가를 운영하게 만들었다.

'치안 통치'는 이러한 국정 운영을 반영하는 구체적 사례이다. 치안 통치란 국가 권력이 시민 사회의 제 요구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조정·관리하지 않고 공권력을 앞세워 제압하는 독선적 지배 형태이다. 국가 권력은 '국가와 사회 안전에 대한 위협'을 빌미로 불안을 상시화했고, 그에 대한 처방으로 시민적 권리의 요구나 사회적 소수 집단을 위협 요인으로 침소봉대(針小棒大)한 후, 문제 해결을 위해 공권력 투입의 필요성과 엄정 대처를 공론화해 갔다.

그런 의미에서 치안 통치는 법치주의를 중단하고 공권력을 통한 폭력을 구사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가령, 국가는 용산 참사와 같은 저항을 '예외 상태'로 만든 후, 신속한 즉결 심판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선전하며 즉각적 진압에 나섰다. 왜냐하면 예외 상태는 법의 효력을 정지시킴과 아울러 폭력적 해결책을 최우선으로 선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대중의 자율적 실천도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로 둔갑되었다. 가령,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를 거치며 이명박 정부는 무려 1300여 명을 입건하여 구속 기소자 71명을 포함한 1180여명을 기소했다. 이는 곧 동의와 타협을 이끌어낼 도덕적·지적 리더십의 확보가 이명박 정부에게 있어 처음부터 부재한 혹은 불가능했음을 보여준다.



ⓒ프레시안(손문상)
둘째, 이명박 정부는 사회 통합을 가능케 할 이데올로기의 창출 및 원활한 작동을 위해 어떤 문화 정책을 펼쳤는가의 문제이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공고화는 사회 갈등을 제도화하는 가운데 국가 권력의 가치 체계를 대중에게 내면화시킨다는 점에서 문화 정책의 핵심이 된다.

문화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 와서 정치적 논란과 선정적 가십 사이를 오가며 세간에 큰 이슈를 자주 만들어냈다. 가령, 독립영화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예술영화전용관의 기존 사업자에 대한 교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예술인회관 사업에 대한 지원 재개, 한국작가회의에 대한 지원금을 시위 불참 확인서와연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결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인 위원장 사태, 국립극단 해체와 전 단원의 정리 해고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대중적 이목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위의 사건들은 문화 정책을 문예론적, 경제주의적, 도구적 입장에서 수립·집행하는 가운데 나타났다. 문화 정책에 대한 문예론적 접근은 문화 엘리트주의와 연결되는데, 이로부터 새로운 감수성과 스타일의 부상에 눈 감거나 기성화된 예술만을 강조하는 배타적 장르주의 혹은 전문가주의가 횡횡했다. 2008년 예술의전당 관계자가 클래식전용 공연장이라는 이유로 인순이의 공연을 불허한 사건은 이러한 정황을 보여준다.

한편, 문화의 세기에 문화를 경제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지나친 산업·상업적 접근은 문화 자체의 고유한 가치까지 자본의 논리로 포섭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경제주의적 태도는 국정 운영 전략에서 문화 정책을 산업과 개발 정책의 하부 영역에 설정한 점에서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문화 정책의 도구적 활용은 4대강 살리기 사업, 도시 개발 사업의 부가 가치 창출 요인으로 문화 정책의 역할을 적극 부각·동원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문화 행정의 비민주적 장악 역시 문화 정책을 도구화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대대적인 매카시 선풍을 일으키며 법적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을 해임하고 보수 인사로 교체했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김정헌 위원장 사건은 대표적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는 어떤 국가 발전의 상을 제시하며 대중을 이끌었는가의 문제이다. 정권 교체를 이룬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서는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관 및 기관장 임명 과정에서 나타난 '고소영 사건'과 잇따른 상위 1퍼센트만을 위한 정책(법인세 인하와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강부자 감세' 정책, 교육 시장화, 보건의료 시장화)은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 및 국정 기조(신자유주의 정책)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이로부터 국민적 저항은 거세질 수밖에 없었고, 국정 지표의 슬로건을 '녹색 성장', '공정 사회', '친서민 공생 발전'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수사는 국민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못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르는 이상 이명박 정부가신경 쓰는 혹은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위와 같은 정황은 두 국민으로 분화되는 사회 양극화에 기인한다. 이때 무한경쟁에서 낙오되어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배제로 주변화 되는 다수의 사람(대중)들은 삶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가령, 구조 조정에서 이루어진 실직과 명퇴는 예외적이 아닌 정상적 상태로 되어 갔다. 이로부터 국가의 주요 책무였던 복지 제도는 해체되고 시장 논리가 전면화되었으며, 대중의 삶은 사회적 보호의 문제가 아닌 법과 질서의 문제로 분류되었다. 즉, 시장에 참여할 수 없는 무능력은 범죄로 취급됨과 동시에 이들의 문제는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다. 이 속에서 국가는 대중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희망의 정치가 아닌, 엄정한 공권력을 앞세운 억압의 정치에 기초하며 국가의 상을 만들어갔다.

요컨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문화적 독해 및 문화 정책에 대한 평가는 상징 조작과 여론 동원이라는 문화 정치의 기본조차 수행하지 못한 무능력으로 요약된다. 역대 정권 중 가장 폭압적이라 평가되는 전두환 정권조차 '3S' 정책을 교묘하게 활용하며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문화의 세기라 지칭되는 문화의 급격한 부상 속에서 문화적 상상력의 빈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공권력을 앞세운 일방적 통치방식은 지배 권력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매우 '맑고 투명한' 정권이었다. 또한 그 누구도 은유와 상징 속에 은폐된 지배 권력의 욕망을 징후적으로 독해할 필요가 없었다.



/김성일 경희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