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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철학과 원칙에서 제도와 대안까지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06-15일 제45호 기사 '철학과 원칙에서 제도와 대안까지'를 퍼왔습니다.
Corée | 6월항쟁 25주년 특집 | 개헌을 말한다

<그가 사라졌다 시리즈>, 2004-카르멘 칼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전체 성격을 관통하는 핵심 중의 핵심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산업화·도시화·정보화·사회간접자본·정보기술(IT)·자동차·철강·전자를 포함해 이미 '세계 선두 수준'에 도달한 기술과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자살률, 출산율, 정부의 공적 지출, 형평, 복지, 남녀 임금 격차, 비정규직 비중, 자영업 비중 등 인간적 문제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 수준'이라는 점이다. '인간 조건'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 실존'은 너무 불안하고 불공정한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인간 조건의 급속한 발전'과 '인간 실존의 급격한 악화'가 공존하는 변종 공동체, 괴물 공화국을 만든 것일까?
둘째, 지속적인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이념적·사회경제적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갈등의 제도화를 통한 갈등 해결 수준 역시 매우 낮다는 점이다. 민주화가 진전됐음에도 갈등은 왜 줄어들지 않고, 기존 국가제도들은 갈등을 수렴·해결하는 데 실패하는가? 민주주의의 발전은 갈등의 제도화를 통해 개인 삶의 평안성과 전체 사회의 안정성이 증대되는 것을 의미하나, 한국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한국 사회의 빛과 그늘,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상반되는 현실 모습은, 인간적인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발본적인 지혜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가? 문제를 사실적 객관성과 실현 가능성의 범주로 좁혀볼 때 우리는 우선 제도 요인에 착목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사회에서 반복되는 현상들은, 인간적 요인을 제외할 경우 거의 전부 제도 요인에서 발원하기 때문이다. 특히 임기를 갖는 특정 지도자나 정부를 넘어 지속되는 현상들은 대개 제도에서 산생된다고 봐도 틀림없다.
제도는 어원 그대로 인간 개개인을 일정한 틀 속에 집어넣어 성품의 차이와 능력의 고하가 초래할지 모를 편차와 오류의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를 말한다. 인간들이 반복되는 동일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제도 개혁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를 통해 예측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인류의 발전이 제도 변화에서 초래된 연유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모두(冒頭)의 두 가지 극적인 상반 현상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 현실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인물 요인, 정책 요인과 함께 거기에는 명백히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경로와 제도 요인이 존재한다. 즉, 이런 현상은 다섯 번에 걸친 민주정부 및 대통령들 개별 차원을 넘는 요소와 관성의 산물임이 명백하다. 제도 문제의 중심에는 정부 형태, 공직 구성 방법, 경제체제를 포함하는 헌법 요인이 존재한다. 이때 말하는 헌법 요인은 한 사회를 근거짓는 헌법철학, 헌정제도, 헌정 절차와 헌법 개혁 사안을 모두 포함한다. 무엇보다 먼저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들은 헌법 개혁에 합의했거나 헌법 개혁을 직접 제안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모두 헌법 개혁을 약속하거나 제안한 바 있다. 국정을 담당한 모든 대통령이 헌법 개혁을 약속·제안·추진했다는 점은 헌법 개혁이 특정 정부나 개인의 정략을 넘는 본질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국가 운영의 기본 틀로서 현행 헌법이 지닌 문제가 분명하다. 즉, 헌법 개혁 문제는 한두 대통령과 정부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었다.

현행 대통령제는 대통령 무책임제

둘째는 현행 6월항쟁 헌법이 초래하는 대통령 무책임제와 정당 무책임제의 문제다. 정책 무책임제와 정부 실패로 직결되는 이 점은 근대민주주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현행 헌법은 정부를 담당한 대통령과 정당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이다. 현행 헌법하의 현임 대통령들은 전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탈당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한다. 민주국가에서 유례없는 반민주적 통치 유형인 무정당 통치를 반복하는 대통령 무책임제이다. 게다가 대통령을 배출한 모든 정당은 집권 시기 내에 전부 소멸했다. 민주정의당(노태우), 민주자유당(김영삼),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 새천년민주당(노무현), 한나라당(이명박)이 모두 같은 운명이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선거 당시' 정당의 '임기 중의' 예외 없는 소멸은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인 정당정치와 책임정치를 근저부터 차단한다. 정당 책임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 부정으로서 정당 무책임제가 현행 헌법체제인 것이다. 또한 모든 대통령은 재임 중 '제왕'에서 '식물'로 그 위상이 급변한다는 점도 동일했다.
셋째는 '민주헌법'인 현행 헌법 제정 시점의 문제가 존재한다. 1987년 6월항쟁 헌법을 제정할 때 '민주헌법' 쟁취 운동을 주도한 시민들의 참여는 철저히 배제됐다. 운동 국면(독재 타도)과 제도 국면(헌법 개혁)의 완전한 분리였다. 더욱 큰 문제는 '대통령 직선'을 제외하면 당시 시민사회와 야당의 의견은 헌법 구조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의 헌법 협상을 정밀 분석하면 '직선제'를 제외하면 다른 부문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세력의 요구가 관철됐다. '3김'과 전두환·노태우의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 교환의 산물로 등장한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을 제외하면 거의 '전두환 헌법'이라고 할 정도로 집권 군부의 의도가 반영됐다. 이는 현행 민주헌법을 개혁해야 할 중대 사유로서, 헌법개혁운동은 사실 제2의 민주화운동 성격을 갖는다.
넷째는 현행 6월항쟁 헌법의 핵심 정신과 구조는 여전히 '박정희 헌법'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우선 박정희는 유신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건국 이래 유지돼오던 국가 근간으로서 '민주주의' 규정을 왜곡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로 축소했다. 독재정부를 수립하면서 거꾸로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삽입하고는 이를 국시로 주장해왔다. 현행 헌법에도 지속되고 있는 이 조항은 건국정신과 건국헌법의 부정이자 유린이었다. △박정희는 국가경제의 근본 원칙을 역전시켰다. 1948년 건국헌법 이래 경제원칙은 5·16 쿠데타 헌법과는 정반대였다. 건국헌법 제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이다. 이것이 1962년 5·16 쿠데타 헌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역전됐고, 이는 현재에도 거의 그대로다. 제111조 제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현재의 경제민주화 조항들은, 재벌들의 요구처럼 완화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건국헌법과 정신으로 돌아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 △5·16 쿠데타 헌법은 의회민주주의의 중심인 의회 규모를 대폭 축소해- 5대 국회 291명, 6대 국회 175명. 즉, 인구 10만 명당 의원 1명에서 20만 명당 1명으로 축소- 대통령 권력을 강화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의 결정적인 약화를 초래했다. 우리나라 건국 시기와 현재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의회 절반 규모에 불과한, 박정희 시기의 급격한 의회 규모 축소로 인한 '대통령 권력 강화-의회 권력 약화' 구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제도로 수렴·반영·해결하려면 의회 규모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행 헌법은 '박정희 헌법'

근본 원칙과 구조에서 현행 6월항쟁 헌법이 여전히 '박정희-전두환 헌법체제'라고 할 때, 민주화된 한국 사회가 25년 동안이나 근본적 문제제기 없이 이를 지속해온 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한국 사회의 질적 발전과 온전한 민주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박정희-전두환 헌법을 넘어 헌법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중요한 몇몇 헌법 개혁의 원칙과 방향을 고민해보자.
첫째는 권리장전으로서의 헌법을 지향한다. 이제 대한민국 헌법은 단순히 국민을 넘어 영토 내 모든 인간이 사람으로서 존엄과 권리를 누리는 권리장전이 돼야 한다.
둘째는 생명·생태 헌법을 추구한다. 인간 조건의 급속한 발전이 인간 실존과 인간 본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재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생명·생태 가치와 병행하는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셋째는 평화헌법, 통일을 준비하는 헌법이 되어야 한다. 1987년 헌법을 제정할 때는 여전히 냉전시대였기에 냉전 해체와 남북관계 발전, 북한의 쇠락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 이제 급속한 환경 변화에 맞춰 평화·영토·통일 조항에 대한 전향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넷째는 복지국가와 사회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박정희 시기에 실종된 국가경제 체제의 근본 원칙인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복원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복지국가, 형평국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는 자치헌법·자율헌법이 되도록 한다. 과도한 중앙집중의 폐해를 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능을 재배분해 명실공히 분권국가가 되도록 노력한다.

국가 구성의 원칙과 방법의 전면적 혁신 요구

특히 강조하고 싶은 점은 국가 구성의 원칙과 방법의 전면적 혁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폴리비오스, 마키아벨리, 매디슨, 그리고 막스 베버에 이르기까지 지혜로운 정치사상들은 이상적인 국가 형태로서 혼합정체를 제시해왔다. 이제 한국 사회는 숱한 문제를 야기하는 현재의 대의민주주의 국가체제를 뛰어넘어,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크게 강화한 바람직한 혼합정체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국가-대표-시민 사이의 새로운 3권분립이다. 또는 국가(권력)-화폐(시장)-시민(사회) 사이의 3권분립이라고 해도 좋다. 시민권력의 대폭 확대를 통해, 공동체 전체가 시장이나 국가에 의해 지배되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고 3자 균형을 달성해야 한다.
둘째는 중앙과 지방 사이의 확고한 권력분립이다. 지방은 중앙의 하위 요소가 아니라, 지방의 연합으로서 중앙권력이 존재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지방의 자치와 자율이 국가권력 구성과 일상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이 돼야 한다.
셋째는 확고한 수평적 중앙권력의 분립이다. 필자는 이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3권분립을 넘는 4권분립을 주장해왔다. 즉 입법부·행정부·사법부에 더해 감독부를 독립 설치해, 국가권력의 획기적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을 추구한다. 감독부에는 감사·검찰·공정거래(시장감독)·금융감독·선거관리처럼 국가기구와 공동체에 대한 감독과 관리 기능을 하는 부서들을 배치해 대통령 및 행정부로부터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 이 기관들을 분리하면 이들에 대한 임면과 통제를 통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던 대통령 권력은 크게 약화돼 자연스레 분권정부가 될 것이다. 물론 분권정부 수립에는 의회의 획기적인 확대 역시 필수적이다.
넷째는 정부-시민의 이중 거버넌스의 구축이다. 즉 입법부·감독부·행정부·사법부 외곽에 각각 반(半)시민조직·공공조직으로서 시민의회, 시민감독위원(시민공정위원·시민검찰위원), 시민호민관, 시민(국민)배심원을 병렬 배치해 정부조직에 공공-시민 이중 거버넌스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의회의 경우 국회 내 결정이 일정한 비율 이하로 통과된 사안에 대해서는 시민의회의 재의에 부치는 방안이 있다. 법원 판결에서의 국민배심제와 유사한 시민조직을 주요 국가 거버넌스에 전부 병렬 배치해 시민의 참여를 제고하고, 국가·대표·시민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좁힌다.
다섯째는 선거 주기의 문제로서 2개의 순환주기를 설정해 '대통령 무책임제'와 '정당 무책임제'를 극복한다. 이를테면 대통령, 국회의원(지역대표와 비례대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주기를 일치시켜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예컨대 대통령 중임제로 할 경우 대통령과 지역대표 의원 선거를 제1조합으로, 비례대표·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제2조합으로 삼아 2년마다 선거를 실시해 확고한 책임정부를 구현하도록 한다.

일부 공직의 추첨제 도입 필요

끝으로, 국가 공직 구성의 방법 자체를 혁명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정부 공직 구성의 원리는 '선거'와 '임명' 두 가지였다. 그러나 이젠 전면 혁신이 필요하다. 근대 선거가 등장하기 이전 고전 고대와 중세 도시공화국 시기에는 오랫동안 '추첨'이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정부 구성의 원리였다. 따라서 대법원장, 검찰총장, 각급 법원장 및 지검장, 감사원장, 공정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을 포함해 사법부와 감독부의 주요 직위는 자격을 갖춘 일정한 인재풀에서 단계별로 전부 추첨제를 통해 선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권력을 크게 약화시킴은 물론, 권력집중·부정부패·금권유착·인사비리·줄서기의 각종 폐해를 낳은 구조적 문제점을 거의 해결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현재 우리의 지혜를 기다리는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헌법 개혁은 결코 만병통치약일 수 없다. 그러나 드러난 문제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혁을 미루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문제가 크고 반복적일수록 근본을 혁신해야 한다. 헌법 개혁이야말로 근본적 개혁의 요체 중의 요체일 것이다. 헌법 개혁을 필두로 한 제도 혁신을 통해 한국 사회가 더 바람직한 인간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게 지혜를 모으자. 그리하여 인간 조건의 개선이 인간 실존의 안녕과 평안으로 연결되는 이상적인 대한민국을 건설하자.

글•박명림 연세대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고려대 정치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학 하버드-옌칭연구소 협동연구학자 역임.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2).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등의 저서가 있다. 

2012년 7월 12일 목요일

"22명의 죽음,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12일자 기사 '"22명의 죽음,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을 퍼왔습니다.
[쌍용차, '죽음의 행진'을 멈춰라] 정리해고 제도 및 행정의 개혁과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가 천 일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동안 무려 22명의 해고노동자 및 가족이 해고의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를 진단하는 릴레이 기고를 진행합니다. 이번 기고를 통해 여러 전문가들이 다각적인 시선에서 쌍용차 사태의원인을 진단하고, 사회적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2009년 쌍용자동차의 대량 정리해고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전체 종업원의 37%에 달하는 2,646명을 구조조정한다는 그 정리해고 규모도 놀라운 것이었고, 노동조합이 77일간의 장기간 파업이 상징하듯 노사합의 없이 대규모 대량해고가 추진되었다는 것도 서규유럽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었다.

대규모 희망퇴직, 정리해고, 무급휴직 이후 22명에 달하는 근로자와 그 가족이 자살하는 등 대책 없는 정리해고로 인한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의 심각성도 자신이 직접 겪지 않는 노사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더욱 더 실망스러웠던 것은 고용노동부가 보여준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소극적인 노동행정이었다. 대규모 해고를 사전에 막거나 줄이기 위한 예방행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정리해고 이후 사업장이 정상화되어 신규 근로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도 전방위적인 노동행정의 부실이 보여지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25조나 단체협약에서 정한 무급휴직자, 정리해고자에 대한 우선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데도 고용노동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식의 소극적인 태도는 다른 서구유럽국가들에서 보여지는 적극적인 노동행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독일 폭스바겐 자동차의 구조조정 사건에서 독일정부는 대량해고를 막기 위하여 노동시간 단축이나 휴직 등을 유도하고 줄어드는 임금에 대하여는 50%까지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노사가 정리해고를 최대한 회피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을 합의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노동복지정책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정부도 대량의 정리해고를 하려고 할 때 근로자를 해고하는 대신에 근로시간을법정근로시간인 주35시간 미만으로 단축하거나, 일부근로자들을 휴직하게 하고 줄어드는 임금을 지원하는 소위 부분실업제도를 통하여 대량해고를 최대한 막으려는 적극적인 노동행정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법원에서 정리해고의 정당성의 요건을 심사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정부의 노동복지정책 지원을 수용하여 노동시간단축, 근로조건변경 등을 통한 해고회피 노력을 적극적인 노력을 하였는가는 중요한 심사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사건을 보면, 고용노동부 차원에서 지원 가능한 고용유지지원금의 15% 정도만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인 휴업수당과 휴직수당의 경우에사용자는 2008년 12월부터 2009년 4월까지 휴업수당 총57억원, 휴직수당 5.7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으나 쌍용자동차 노사가 정리해고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2009년 8월 6일까지 겨우 휴업수당 9억원, 휴직수당 1.6억원만을 지급받았을 뿐이었다. 사용자는 휴업수당, 휴직수당 등 고용유지원금을 지원받아 해고회피의 노력을 하기 보다는 정리해고를 강행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나, 정부의 노동행정은 사용자가 신청하지 않는데 어떻게 개입하느냐는 소극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이 가능한데도 이러한 고용복지적 정책지원을 받아 조업단축과 무급휴직 등의 해고회피 노력을 하지 않고 정리해고를 강행하거나 규모를 확대한다면 해고회피의 노력이 다하지 않은 것으로 정리해고의 정당성에 흠결이 있을 수 있다. 노동부도 2009년 5월 26일 정리해고의 절차 및 요건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쌍용자동차 사용자측에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그 당시 정리해고에 관한 훈령이나 예규 등 구체적인 행정지침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구유럽국가의 정리해고법제에서 해고회피 노력이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독일은 우리의 "해고회피의 노력"의 요건에 해당하는 "해고 대상자에 대한 재교육, 훈련 또는 근로조건의 변경을 통한 계속 근로"의 노력을 사용자가 하지 않은 경우 정리해고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의 요건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정리해고 전에 사용자는 직업향상 교육과 적응조치에 대한 노력을 선행해야 하고, 기업차원에서 근로자에게 근로자의 기존 일자리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 일자리, 또는 이러한 일자리가 없을 경우에는, 그 보다 낮은 가치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해고회피의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해고대상 근로자를 다른 직종이나 사업장에 재배치하는 해고회피 노력과 으로의 노력과 재배치가 불가능한 해고대상 근로자에 대해서 직업훈련의 실시나 직업알선 직업훈련기간 중 임금보전 등 전직지원 내지 고용유지 등의 계획과 사업장이 정상화되었을 때 해고근로자를 우선고용할 의무를 포함하는 사회계획(Social Plan)은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대량 해고전에 이러한 해고회피 계획과 사회계획에 관한 내용을 노사간 합의하고 노동관서에 이러한 해고회피 계획과 고용유지, 전직지원 등의 사회계획을 신고하여야 한다. 따라서 정리해고 전에 미리 사업장 또는 기업내의 다른 사업장으로 재배치를 위한 직업능력향상 교육 등이 실시되거나 다른 직장으로 전직을 원하는 근로자들에 대한 직업훈련계획이 수립되거나 직업훈련업체와 직업훈련위탁계약이 체결되어야 하고, 필요하면 최종 정리해고 계획이 확정되기 전에 전직이나 자영업창업 등을 위한 개별 근로자에 대한 상담과 직업알선 등이 해당 기업 차원이나 노동행정의 지원이 결합되어 수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이 해고회피의 노력인데, 한국의 경우는 정리해고 보다는 퇴직금 등의 보상이 좀 더 많은 희망퇴직이 사실상 해고회피 노력의 주된 내용이 되고 있다. 희망퇴직자에 대한 직업훈련, 창업지원 등의 프로그램이 사전에 추진되지는 않고 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의 경우, 77일간의 파업을 종료하면서 체결된 단체협약에서 정리해고 회피 노력으로 영업직군을 신설해 직무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면 전직지원금 월55만원을 지원받으면서 전직하는 내용이 포함되었으나 이러한 해고회피 노력이 사전에 계획되지 못하였다.

이렇게 서구유럽국가에서는 노동행정의 핵심을 이루는 전직지원제도가 정리해고 전에 사전에 계획되어 운영되지 못하다 보니, 쌍용차 자동차 사건의 경우 재배치, 전직훈련, 재취업 알선 등 사회계획(Social Plan)으로 추진된 사업들의 효과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단체협약에서 합의된 영업직 전직이 된 근로자는 1명뿐으로 사실상 해고회피나 고용유지 노력으로는 실효성이 없었다. 노동부가 시행한 전직지원 서비스도 실효성이 낮아 2011.3까지 희망퇴직자와 해고자 2652명 중 749명(28.2%)만이 재취업을 하거나 188명(7.0%)이 자영업으로 창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리해고는 근로자의 귀책사유에 의하여 해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경영상의 어려움 등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경영상의 어려움이 극복되고 사업장이 정상화되는 경우에는 해고된 근로자를 우선 고용하도록 하는 제도가 각국마다 입법이나 단체협약 등을 통하여 보편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사업장 정상화로 신규채용할 때 해고된 근로자를 우선채용한다는 내용을 해고사유에 기재하도록 하거나, 신규채용시 사용자가 해고 근로자에게 우선 채용 사실을 통지하도록 하도록 하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러한 사용자의 해고근로자 우선재고용 의무를 위반한 경우 일정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 근로기준법 제25조도 이러한 보편적인 입법례를 본받아 정리해고일로부터 3년 이내에 해고된 근로자가 근무한 업무와 동일한 업무에 신규채용을 하는 경우 해고된 근로자가 원하면 우선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2007.4.11. 근로기준법 개정 이전의 구근로기준법 제32조는 "근로자를 우선적으로 고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훈시규정으로만 규정하고 있어 구 근로기준법에 의한 판례는 사용자가 경영적 판단에 의하여 신규채용시 해고된 근로자가 아닌 다른 근로자를 우선 채용하였다 하더라도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207.4.11. 시행된 근로기준법 제25조는 위와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수준의 훈시규정을 우선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으로 전환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고용노동부도 이러한 법규정의 전환으로 근로자 보호 및 고용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

그러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에서는 이러한 정리해고자 우선재고용 조항이 아무런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2009년 8월 6일 노사합의에서 무급휴직자에 대해서는 1년 경과 후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경영상태가 호전되어 신규인력이 발생할 경우 무급휴직자, 희망퇴직자, 영업전직자를 복기, 채용한다는 등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였으나, 2012년 쌍용자동차는 평균가동율이 78%로 사실상 정상화되어 신규인력까지 채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급휴직자나 영업전직자의 복귀나 희망퇴직자, 정리해고자 등에 대한 우선재고용 의무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신규 채용하는 근로자가 생산직이 아니라 생산연구직, 영업직 등으로 무급휴직자나 희망퇴직자와 정리해고자 등이 담당했던 종전의 업무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2012년 쌍용자동차의 채용공고는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고 하고 있으나, 정리해고자에는 생산직 뿐만 아니라 연구, 영업직의 근로자도 포함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업무라는 것이 직전의 동일업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해고의 회피노력으로 시행되는 전환배치시 재배치될 수 있는 업무까지를 포함하여야 한다고 볼 때 고용노동부의 주장은 쉽게 수긍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2009년 8월 6일 단체협약에서 생산직을 영업직으로 전환하여 해고를 회피하기로 하고 실제로 생산직 중 일부가 직무연수 후 영업직으로 전환하였던 사례가 있는 만큼, 다른 무급휴직자, 희망퇴직자 중에서도 영업직으로의 재고용을 원하는 경우 등에 있어서는 우선고용의무가 있다고 보여진다. 법리적으로도 정리해고의 "해고 회피의 노력"의 요건과 우선재고용의무는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니 만큼 우선재고용의 대상이 되는 종전의 업무의 범위에는 해고 회피의 노력으로 시행되는 전환배치 업무도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실무에서 근로기준법 제25조의 우선재고용 조항이 전혀 실효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정리해고 전에 사전적으로 전직지원협정 등의 사회계약의 내용이 미리 계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서구유럽처럼 사회계획이 정리해고 전에 노사간의 합의로 수립되어 노동부의 승인이나 확인절차를 밟도록 하면 그 규범력이 높아질 것이다. 정리해고된 근로자는 정리해고 후 일정기간내에 재취업의 의사를 표시하도록 하고 사용자는 정기적인 채용통지 의무 등을 부과하여 우선 재고용의무의 절차를 명확히 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이를 위반할 경우 프랑스 등의 예처럼 이러한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 규정 등 강제할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으므로 이러한 손해배상 등의 제재규정도 도입되어야 한다.



 
▲ ⓒ프레시안(김윤나영)

/김남근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