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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6일 일요일

비겁의 벽 향해 날아간 작은 돌멩이의 외침


이글은 한겨레21 2013-05-20일자 제961호 기사 '비겁의 벽 향해 날아간 작은 돌멩이의 외침'을 퍼왔습니다.
[특집1] 재심 시국사건 무죄 구형으로 정직당한 임은정 검사 서울행정법원에 징계처분 취소 소송, 무죄 확실 재심 공판도 “원칙 따른 선고” 구형… 여검사는 조직의 비겁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2013년 2월,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임은정(38) 검사에게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4개월’ 처분을 내린다. 5·16 쿠데타 뒤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제정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6년간 옥살이를 한 고 윤길중 재심 공판에서 검찰 지휘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죄를 구형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는 속칭 ‘백지구형’을 주장했는데, 공판을 맡은 임 검사는 무죄 구형을 주장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임 검사의 상사인 공판2부장은 공안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재배당했다. 이러한 직무이전 지시를 어기고 법정 안 검사 출입문까지 걸어잠그며 무죄 구형을 강행한 그는 ‘소신을 지킨 용감한 검사’와 ‘절차를 무시한 막무가내 검사’라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소신 검사’ vs ‘막무가내 검사’

지난 5월6일, 임 검사는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정직 4개월의 징계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소장을 통해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관행적으로 하고 있는 백지구형은 적법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구형 지시를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고 항변했다. 검찰 구형 및 항소에 관한 업무지침 제8조에 따라 피고인이 유죄라고 판단한다면 ‘죄에 상응하는 형’을 구형해야 하는데, 실체적인 내용 없이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구형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 공판2부장에게 검찰청법 제7조에 명시된 이의제기권을 서면으로 제기했지만, 서면 답변 없이 일방적으로 직무이전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지시는 검찰총장·검사장 및 지청장 고유 권한이므로 공판2부장의 명령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임 검사는 “법무부가 법리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백지구형 및 직무이전 명령의 적법성 등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내부 게시판에 ‘징계청원’ 글을 올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시키고 △국가공무원 복무·징계 관련 예규에 따라 오후 2시부터 오후 반일연가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무단으로 무죄를 구형한 뒤 반일연가를 이유로 정오께 법원에서 바로 퇴근해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는 등 사건 본질과는 무관한 이유까지 내세워 중징계를 내렸다”고 덧붙였다.
임 검사는 지난 2월 창원지검으로 인사 발령이 난 상태로, 정직 기간이 끝나면 다시 검찰로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임 검사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한겨레21)은 징계 처분 취소 소장과 일부 첨부자료 등을 단독 입수해, 논란이 된 무죄 구형을 하기 전후의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당사자인 임 검사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언론에 나서 의견을 피력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며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2012년 12월28일 오전 10시. 임은정 검사는 담당 사건 재판이 끝났음에도 서울중앙지법 509호 법정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1시간 전, 마지못해 같은 부 소속 후배 이아무개 검사에게 윤길중 재심 사건 공판 카드(공소사실과 증거관계 등을 담은 서류)를 넘긴 참이었다. 검사석으로 향한 그는 ‘징계 청원글 게시판에 올려뒀으며, 무죄 구형할 것이다’라고 쓴 메모지를 검사 출입문에 붙였다. 그리고 법정 안에서 문을 잠근다.

검찰청법이 보장한 이의제기권 행사했지만


» 2011년 법무부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임은정 검사가 2007년 자신이 담당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사건은 영화 ‘도가니‘의 배경이 됐다.

오전 11시, 예정된 재판이 시작됐다. 고 윤길중은 1962년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6조 위반(반국가행위)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68년 출소한다. 통일사회당 간부인 그의 공소사실은 장면 정부가 추진한 반공임시특별법 및 데모규제법 반대, 영세중립 통일을 주장하는 시위 주도 등 반국가단체 활동을 찬양·공무·동조했다는 것이었다. 공판 과정에서 “반공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야당 탄압 도구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 2대 법안을 반대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를 비롯해 혁신계 정당 인사들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불순세력’으로 지목돼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영장도 없이 체포돼 불법 구금된다. 윤길중 역시 쿠데타가 일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1961년 5월22일 체포돼 12월11일 혁명재판소에 기소될 때까지 200일 넘게 갇혀 있었다. 이러한 불법행위엔 검찰도 결부돼 있었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윤길중은 항소했지만 기각된다. 당시 혁명재판소는 2심제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 김상환 재판장이 검사에게 구형을 요청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검사가 구형을 시작했다.
“피고가 북한에 동조하였다는 당시 혁명재판소의 기소 이유는 이유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내려주십시오.”
변호인의 변론 차례였다. 뜻밖의 무죄 구형을 접한 이덕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20여 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교과서에서나 보던 무죄 구형을 처음 본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울먹이며 최후 진술을 한 재심 청구인은 고 윤길중의 손녀 윤은희(28·가명)씨였다. 그는 이날 2011년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 고 윤석인씨를 추억했다. 윤길중의 둘째아들인 윤석인씨는 2010년 도산 안창호 선생 비서실장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구익균(2013년 작고·당시 102살) 선생 등 같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통일사회당 인사·유가족들과 함께 재심을 청구한다. 유죄 선고 뒤 반세기 만인 2011년 1월25일, 이들에 대한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첫 심리가 열렸다. 이날 감격에 겨워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윤씨는 다음날 새벽,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진다. 재심 청구인이 사망하면서 윤길중의 재심 심리는 중단된다. 공동 피고인인 구익균 등 5명에 대해선 재심 개시가 이뤄져 1·2심 무죄 선고 뒤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법과 원칙대로 선고해달라’는 구형을 하려던 검사가 민원인 출입문을 통해 법정에 들어섰을 땐 이미 무죄 구형이 끝난 상황이었다. 비슷한 시간, 검찰 내부 게시판에는 임 검사가 미리 써둔 ‘징계청원’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열흘간의 우여곡절이 담긴 내용이었다.
2012년 12월17일 임 검사는 재심 사건 기록 및 법리 검토를 한 뒤 무죄 구형을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를 맡은 공안1부 검사는 백지구형 의견을 제시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날 무죄 구형 변경 결재를 시도했으나, 상급자인 공판2부장은 공안1부 의견이 타당하다며 백지구형을 지시했다. 이에 임 검사는 검찰청법에 명시된 이의제기권을 구두로 행사했고 12월20일 서면으로 작성해 결재를 올렸다. “이의제기권. 예전에 검찰청법 조항을 들여다보며 이걸 누가 행사하나 했는데, 나구나.”(2012년 12월18일 미니홈피 게시글)
그의 주장은 무죄 구형을 하거나 이같은 내용으로 구형을 변경하기 어렵다면, 공판검사가 아닌 수사 담당인 공안1부 검사가 직접 구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심 사건 구형 변경을 두고 공소심의위원회 개최 방안이 논의됐는데, 그는 ‘무죄 구형 또는 공안1부 검사 직접 관여’가 아닌 다른 결정이 내려진다면 이에 따를 수 없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공소심의위 개최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공판2부장은 12월21일, 재심 사건을 같은 부 소속 검사에게 담당하도록 했다.
그리고 12월28일, 서울중앙지법은 고 윤길중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대 법안 반대 활동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북한에 동조하는 활동으로 볼 수 없고, 영세중립화 통일론은 ‘미소 양국 세력권에서 벗어나 영세중립화 통일조국을 수립하는 것만이 통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공산주의를 제창한 것도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의 행위에 소급 적용된 특별법 조항이 ‘위헌’임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며칠간 마음을 끓여온 재판은 10여 분 만에 마무리됐다.
“후환을 예상하고 오후 반가를 미리 결재받아놓은 것을 기화로 재판을 끝낸 후 계속 법원을 배회하다 점심 무렵 휴대폰을 끈 채 서울 시내의 인파 속으로 숨어들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있었지만, 그래도 겁이 나 뭘 먹어도 체하고, 잠이 잘 오지 않는다.”(2012년 12월29일 미니홈피 게시글)

‘법과 원칙 따라 선고해달라’는 비겁함

얼핏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는 구형은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임 검사는 백지구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시 거부까지 한 것일까. 10년 넘게 검사 일을 한 그에게도 백지구형은 낯설었다. 지난해 9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대통령 긴급조치 1호와 4호를 위반한 혐의로 징역을 살았던 박형규(89) 목사의 재심 사건에 대해 구형 변경을 고민하면서 백지구형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7월26일자로 담당 재판부가 바뀌었는데, 그 무렵 박형규 목사님 긴급조치 위반 사건 재심 개시 결정이 있었다. 징역 15년의 종전 구형을 유지할 수 없는 사안이라 구형 변경을 해야 했다. 비슷한 경우 어떻게 하는지 수소문해보니 종전 구형을 원용하거나 속칭 ‘백지구형’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사법연수원·법무연수원에서 검사는 공익의 대변자로 무죄는 무죄라고 말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사법의 암흑기에 사형 등을 구형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똑같은 형을 다시 구형할 수 있는지, 검사의 의견 진술 및 객관 의무는 법적 의무인데 어떻게 이를 방기할 수 있는지 황당하기까지 했다.”(임은정 진술서 )
박형규 목사 재심 사건에 대한 무죄 구형 과정에서도 공안부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임 검사는 공판2부장·차장·검사장을 찾아다니며 구형 변경 결재를 받은 뒤 지난해 9월6일 무죄 구형을 한다. 그리고 며칠 뒤, 검찰 내부 게시판에 ‘민청학련 관련 사건 공판 소회’라는 글을 남긴다.
“그 글로 인해 뒤늦게 무죄 구형 사실을 알게 된 속칭 공안통 선배님들의 전화에 상사가 시달리고 나도 여기저기 불려다녔는데, 꾸중을 듣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네가 그 시절의 검사였다면 어떻게 할 수 있나, 달리 했겠나’란 질문을 듣고 가장 놀랐다.”(임은정 진술서)

시민 분노 포용 못하는 검찰의 ‘원칙’

윤길중 재심 사건을 놓고 공안부는 무죄 선고가 확실하다고 예상하면서도 백지구형 의견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록 등이 없어 무죄를 확신할 수 없고 법정 자백 등 증거가 있다는 근거를 내세웠다. 임 검사는 법정 자백에 대해 한자로 적힌 2심 판결문 내용으로 보아, 공소사실에 기재된 정치활동을 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일 뿐 반국가단체 활동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2011년 검찰은 같은 이유를 들어 구익균 재심 사건 1심 무죄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임 검사와 비슷한 해석을 내려 기각한 바 있다. 검찰은 과거사 재심에 대해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 법원의 판단을 재단하는 것이 옳은지 의견이 갈릴 수 있다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부장급 검사는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면 재심공판에서 무죄 구형을 하겠지만 과거사위처럼 다른 기관에서 조사해 재심을 권고할 때 ‘특별히 반대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백지구형을 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검사는 담당자도 현직에 없고, 기록 확보가 안 될 경우 무죄를 확신할 수 없어 이러한 구형이 이뤄진다고 짐작했다.
검찰은 재심 사건에서 관련 법이 위헌 결정이 나지 않았거나, 증거가 있는 경우 종전 구형을 원용하거나 백지구형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의 경우, 처벌자에 대한 재심 개시와 무죄 선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위헌 결정이 나지 않았다. 검찰이 ‘무죄’로 단정할 수 없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윤길중 재심 선고가 있기 3개월 전, 수원지법은 이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복역했던 김정태·김을수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6조는 지나치게 자의적이어서 위헌성을 따져봐야 하지만 고령인 피고인들의 신속한 명예회복을 위해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겠다”며 “늦었지만 피고인들이 겪었던 일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덕우 변호사 역시 같은 이유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검찰이 재심 사건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규명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증거를 발견해 무죄 구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검사들의 ‘원칙’은 시민들의 ‘분노’를 포용하지 못해왔다. 검사 출신인 김희수 변호사는 구형의 의미에 대해 “사법부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의견일 뿐이지만 검찰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국 사건과 관련해 이루어지는 재심은 형사·사법의 치욕적인 과거를 되돌아보고 정의를 다시 세우는 작업인데, 백지구형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의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명백히 비겁하고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고문 피해자들이 국가배상금의 일부를 내놓아 설립한 재단법인 ‘진실의힘’의 송소연 이사는 백지구형에 대해 검찰이 공익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역사의 피해자들에게 ‘법과 원칙을 어겼다’는 암시를 주기도 하는데, 백지구형 뒤 항소하는 경우도 있다.


» 신규 임용 검사들은 누구나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수호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짐하기 위해 검사선서문에 따라 선서를 한다. 한겨레 자료

“사람 우선시하는 법의 따뜻함 보았다”

2012년 12월28일 이후, 임 검사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도대체 왜, 무죄 구형에 직을 거느냐’는 질타와 질문이었다. 백지구형을 해도, 공안부의 예상처럼 무죄 선고는 뒤집히지 않았을 터다. 그가 얻으려던 것이 무엇인지 직접 물을 순 없었다. 다만 할아버지를 대신해 재심을 청구했던 손녀는 기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검사님의 무죄 구형 덕분에 저와 제 가족은 오랜 기다림 속에서 생각보다 이르게 1심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었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께도 한 줄기 빛과 작은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에 무지한 일반인 입장에서는 법원의 크고 작은 결정 하나가 너무도 크고 무섭게 느껴질 뿐이지만, 검사님의 용기를 통해 저와 제 가족은 원리와 원칙만 고집하지 않고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법의 따뜻한 일면을 보았습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3년 5월 15일 수요일

국회로 간 안철수, 누가 원칙과 관행 파괴하는 것일까!


이글은 대자보 2013-05-14일자 기사 '국회로 간 안철수, 누가 원칙과 관행 파괴하는 것일까!'를 퍼왔습니다.
[주장] 국회 기득권세력들이 안철수 의원에게 범법 강요한 것

2013년 4월 24일 서울 노원병 지역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안철수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의 가장 큰 권한은 법안을 만드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법률안을 제출하면 국회 의장은 이를 상임 위원회나 특별 위원회에 회부하고 이곳의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법률안이 상정되는 것이다. 즉, 법안을 심의하는 곳이 위원회이기 때문에, 위원회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 위원회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회에서, 당연히 국회의원이 어떠한 위원회를 택할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2013년 4월 24일 노원병 지역 보궐선거에 출마한 출마자들에게도 자신들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어떤 상임위원회에 속하게 될지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보궐선거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전임 국회의원이 속했던 상임위로 가는 게 관행이고 원칙이었다면, 보궐선거 출마자들에게 '당선되고 나면 어떤 상임위원회에 들어가고 싶냐?'는 질문을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보궐선거 당선자가 전임 국회의원이 속했던 상임위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관행과 원칙이라면, 모두들 전임 국회의원인 노회찬 의원이 속했던 정무위로 들어갈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질문도 답변도 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 기득권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기자들을 비롯해 언론 등 모두들 출마자들에게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면 어떤 상임위에서 활동하고 싶은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관행이고 원칙일까!? 국민들과 모든 언론종사자들은 당연히 새롭게 국회의원이 된 사람에게는 그가 원하는 상임위를 선택할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4월 16일, TV합동토론회에 참가한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후보들에게 당선 후 활동하고 싶은 희망 상임위원회를 각각 지목해달라는 질문이 있었다.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는 '당선 후 어느 상임위에 가고 싶냐'는 질문에 "저의 경력에 맞는 위원회는 안전행정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다. 그 중에 지역 발전을 위해 국토교통위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통합진보당 정태흥 후보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택한 뒤 "남북 대치 상태에서 대북 특사로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는 정무위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원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택했다. 안 후보는 "교문위에 들어가 교육문제를 풀고 싶다. 진학과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진로 위주의 교육이 자리 잡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후에 안철수 후보는 교문위 외에도 차선으로 보건복지위, 환노위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보궐선거에 출마한 모든 출마자들이 당선 후 국회의원이 되면 각각 자기가 희망하는 상임위를 말했다. 전임 국회의원이었던 노회찬 전 의원의 정무위가 아닌 모두들 자기가 희망하는 상임위를 말했다는 것이다. 사회자들과 질문자들 그리고 출마자들은 국회의 관행과 원칙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헛소리를 한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수십 년 동안 정치를 해오던 정치인들이었다. 국회의원이었던 자들이었다. 과연 무엇이 관행이고 원칙인 것일까!

언론인들과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출마자들이 관행과 원칙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국회 기득권자들이 관행과 원칙을 파괴시키며 안철수에게 부당하고 불법한 행사를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만약, 국회 기득권자들이 불법적이고 부당하게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인 안철수의 권리를 훼손하고 있고, 그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고 있다면? 

무엇이 관행이고 원칙인지 이제부터 사실관계를 살펴보자. 네티즌들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보궐선거에서 16명이 당선되었고, 16명 중에 15명이 전임 국회의원의 상임위가 아닌 자기가 원하는 상임위를 배정받았다. 3년간의 자료를 살펴보면, 16명 중의 15명이 자기가 원하는 상임위에 배정받은 자료를 살펴보면, 보궐선거 전의 거대 야당끼리 합의했던 교섭단체의 비율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 것이다. 

[---A. 2009년 4월 29일 재보선 당선자와 전임자 상임위 배정표. 

-. 한나라당 구본철(문방위) => 민주당 홍영표(정무위) -. 한나라당 윤두환(국토해양위) => 진보신당 조승수(지식경제위) -. 민주당 김세웅(국토해양위) => 민주당 정동영(외통위)-. 무소속 이무영(행정안전위) => 민주당 신건(정무위)-. 무소속 김일윤(외통위) => 새누리 정수성(행정안전위) 

----B. 2010년 7월 28일 재보선 당선자와 전임자 상임위 배정표. 

-. 문국현(외통위) => 새누리 이재오(행안위) -. 송영길(정보위) => 새누리 이상권(지식경제위) -. 강운태(기재위) => 민주당 장병완(문방위) -. 이계진(농림수산식품위) => 민주당 박우순( 법사위) -. 이용삼(국방위) => 새누리 한기호(국방위) -. 이광재(기재위) => 민주당 최종원(문방위)-. 이시종(국토해양위) => 새누리 윤진식(기재위) -. 박상돈(정무위) => 새누리 김호연(외통위) 

----C. 2011년 4월 27일 재보선 당선자와 전임자 상임위 배정표. 

-. 임태희(국방위) => 민주당 손학규(기재위) -. 서갑원(문광위) => 민노당 김선동(외통위) -. 최철국(국토해양위) => 새누리 김태호(지식경제위) 

한마디로, 국회 기득권자들은 안철수 의원에게 거짓을 내밀며 그것을 관례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관례대로라면 안철수 의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그가 희망하는 상임위에 배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16명 중에 15명이 전임자가 아닌, 자기가 희망하는 상임위에 배정받았다면, 오히려 관행은 전임자의 상임위와 무관하게 자기가 희망하는 상임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관행인 것이다. 아니 그러한가! 국회 기득권자들은 안철수에게 큰 불법과 부당한 행위를 한 것이다. 이것은 범죄행위다.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법을 어기는 불법과 부당이 판을 치고 있다면, 국회를 통해 국민주권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정당 정치가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과 국민주권을 실현할 수 있을 만큼 과학적 역학 관계상 온전한 제도일까?! 정당정치의 역사를 살펴보면, 정당정치는 너무나도 탐욕스럽고 불완전하여 위험스럽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상임위원회 배정 문제! 누가 원칙과 관행을 파괴하고 있는 것일까! 국회의 기득권세력인가! 안철수 의원인가!? 라는 질문에서 관행은 국회의 기득권 세력들이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이제, 누가 원칙을 깨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원칙이란 당연히 헌법과 법률 등을 말하는 것이다.

국회법 제 48조 7항에 의하면, "의장 및 교섭단체대표의원은 의원이 기업체 또는 단체의 임·직원 등 다른 직을 겸하고 있는 경우 그 직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상임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하는 것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해당 상임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하거나 선임을 요청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국회의장과 여,야 교섭단체 대표는 안철수 의원에게 "전임 국회의원이 속했던 정무위로 가라"라고 명령하는 것은 국회법 제 48조 7항에 위배되므로, 범법행위인 것이다. 안철수연구소(현, 안랩)의 최대주주인 안철수 의원에게 있어서,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는 것은 기업과 연관성이 커서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기 때문에, 국회의장 및 교섭단체 대표의원들이 결코 선임하거나 선임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근본적으로 안철수 의원은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안랩)과 연관되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상임위원회에 국회의장 및 교섭단체 대표의원에 의해 선임되거나 선임의 요청을 받을 수가 없다. 

"어느 교섭단체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의원의 상임위원선임은 의장이 이를 행한다."라는 국회법 제48조 2항에 의거해, 국회의장이 안철수 의원의 상임위원회 선임을 행사하려면, 국회법 제 48조 7항에 의해, 안철수 의원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과 연관되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상임위원회를 배제하고 선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국회의장은 먼저, 공직자윤리법상, 어떠한 상임위원회가 안철수 의원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과 연관되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는지부터 조사해야 한다. 즉, 국회의장은 국회사무처의 직원을 지휘 감독하여, 안철수 의원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안랩)에 대하여,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에 직무관련성 유무에 관한 심사를 청구하여 어떠한 상임위원회가 직무관련성이 있는지 조사해 알아보고, 국회법 제 48조 7항에 근거하여, 안철수 의원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과 연관되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상임위원회를 배제하고 선임해줘야 할 의무와 권한을 동시에 지는 것이다. 즉, 국회의장은 안철수 의원이 희망하는 교문위, 보건복지위, 환노위 등이 국회법 제 48조 7항에 근거하여, 안철수 의원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과 연관되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없다고 인정되면, 그 상임위 중에서 안철수 의원이 희망하는 상임위를 선임해주는 것이 관례이며 도리인 것이다.

"어느 교섭단체에도 속하지 아니하는 의원의 상임위원선임은 의장이 이를 행한다."라는 국회법 제48조 2항은 국회의장의 권한이기도 하지만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교섭단체에 소속된 의원들은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교섭단체의 속한 의원들이 희망하는 상임위원회를 조율하여 의장에게 선임을 요청하지만, 교섭단체에 속하지 않은 무소속 의원 등은 의장이 그 역할을 대신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즉, 국회의 자율권이란 국회의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지, 무소속 국회의원 등의 권리를 방해하라는 취지가 아닌 것이다. 

어떤 법조항을 해석할 때, 법을 해석하는 이의 가치관에 따라 어떤 이는 코에다 걸고, 어떤 이는 귀에다 걸 수는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 법의 상위법과 합치되도록 해석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법의 최상위법은 헌법이니 헌법의 취지에 반하지 않게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떤 법이 정해진 취지를 알면서도 그 법을 왜곡하여 남용한다면, 그것은 범죄행위의 구성요건의 가장 중요한 "고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중대한 범법행위이다. 

국회법 제 48조 7항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재산권을 보장하고 또한 공직자의 윤리에도 어긋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정해진 법조항이다. 따라서, 국회의장과 여, 야 교섭단체 대표는 

국회법 제 48조 7항에 의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과 연관되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상임위원회를 선임하려고 하거나, 선임을 요청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원칙인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상임위원회 배정 문제! 누가 원칙과 관행을 파괴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국회의 기득권세력들이 관행과 원칙 그리고 법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자발적으로 정무위에 가고자 한다고 해도 안철수 의원이 자신이 일군 기업의 최대주주로 있는 한, 국회법에 의해 갈 수가 없다. 안철수 의원에게 국회법 제 48조 7항에 반하는 상임위로 가라고 요청하거나 선임하려 하는 것은 범법에 불과한 것이다. 즉, 안철수 의원은 국회법에 의해 재산권이 보장되는 조건으로 선임위의 선택폭이 좁아지는 제한을 받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국회법에 의해 기업과 연관되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는 정무위 등을 갈 수도 없지만, 만에 하나 정무위에 가고자 할 일이 생긴다면, 국회법 제 48조 7항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을 직접 매도하거나 공직자윤리법에 근거하여 주식을 백지신탁을 한 다음, 국회법 제48조 7항에 위배되지 않는 상황을 만든 후에 정무위에 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안철수 의원의 자기결정권에 기초하는 것이지, 타인이 종용할 수 없는 사안이다.

안철수가 일궈낸 안랩이란 기업은 다른 기업과 달리 특별한 기업이다. 보통, 대한민국에서 기업이 성장하는 배경을 보면, 경영이나 경제 등 문과출신들이 자신들의 인맥을 동원해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고 씨가 움터 싹이 나서 성장하는 묘목같은 기업(연구진들)에게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그 묘목을 자신들의 집에다 옮겨 심고 취득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약탈에 불과한 행태라, 그 사회와 국가에 올바른 정신과 가치가 자랄 수가 없다. 그러나, 안철수가 일궈낸 안랩이란 기업은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안철수 의원이 세상에 씨를 뿌린 것이다. 그 씨를 보고, 몇몇의 자들이 투자를 하고 그 투자에 의해 자라난 기업이다. 한마디로 안철수란 과학자에 의해 태어난 씨가 안철수란 사람에 의해 끝까지 성장해온 것이다. 안철수연구소(현, 안랩)이란 회사가 비록 안철수연구소의 구성원들에 의해 무럭무럭 성장해왔지만, 씨를 만들어 뿌린 안철수라는 과학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않고 커왔다는 것은 몹시도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이 외치는 창조경제란, 결국 과학자들이 기업을 일구고 끝까지 그 기업과 함께 성장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헌법에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재산권외에, 특별히 과학자들에게 헌법으로 보호하는 권리가 있다. 헌법 제 22조 2항에는 이런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제22조 2항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고 말이다. 이것은 공직자윤리법에서 언급하는 기업과 연관되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직무 연관성이 있는 주식을 백지 신탁하여 공정성을 확보하고자하는 가치보다 더욱 더 우위에 있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지금 비록 정무위를 갈 의향이 없지만, 앞으로 안철수 의원이 정무위를 희망하거나 선택하게 될 때에도, 모든 법을 구속하는 최상위법인 헌법 제22조 2항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에 의해 국회법 제 48조 7항에 의한 제한을 받지 않으리라 본다. 즉, 안철수 의원은 자신이 최대 주주로 있는 기업(안랩)으로 인해서 어떠한 불이익도 헌법 제 22조 2항에 의해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와 항상 함께 하는 과학자의 작은 씨앗과 열매마저도 보호하겠다는 헌법 제22조 2항의 가치인 것이다. 

국회의장과 교섭단체대표는 안철수 의원에게 국회법 제 48조 7항에 의해, "정무위로 가라"라고 선임하거나 선임을 요청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은 안철수가 일궈낸 안철수연구소(안랩)이란 기업이 과학자 안철수의 권리로 인정된다면, 헌법 제 22조 2항에 근거하여, 국회법 제 48조 7항이나 공직자윤리법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상임위를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안철수는 과학자로써 자신이 일궈낸 안랩의 주식을 헌법의 보호아래 그가 자신이 일궈낸 안랩의 주식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의 주식은 헌법에 의해 보호받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상임위원회 배정 문제! 누가 원칙과 관행을 파괴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국회의 기득권세력들이 불법하고 부당하게 안철수 의원에게 범법을 행사하고 있었을 뿐이다. 

박상준 

* 글슨이 박상준 : 전 경문전문학교 교수 임용. 전 정보통신기업 비와삼시스템 대표. 2002년 한양대학교 전자공학 박사 수료(국내외논문 20여편.특허1 실용신안 1 저서 2편 등), 전 한양대학교 강사. 저서:::sf소설 "우주의 항문 화이트홀" 외 2편

2013년 2월 8일 금요일

[사설] ‘공약 파기’ 말바꾸기로 호도 말고 용서부터 구하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07일자 사설 '[사설] ‘공약 파기’ 말바꾸기로 호도 말고 용서부터 구하라'를 퍼왔습니다.

원칙과 신뢰, 약속 이행….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설명할 때마다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하지만 최근 나타나는 현상들은 이런 찬사에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국민 대통합 약속과 어울리지 않는 인사들의 발탁, 야당 시절 자신이 도입에 앞장섰던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폄하 발언에 더해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잇따라 대선 공약을 수정하고 말바꾸기까지 하는데도 박 당선인은 미안한 표정조차 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논란을 빚고 있는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적용 범위와 관련해 “애초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3대 비급여’는 국가 전액부담 공약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따라서 공약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박 당선인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약속한 바도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12월10일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가 “간병비·선택진료비를 다 보험급여로 전환하는데도 (공약대로) 1조5000억원으로 충당되는가”라고 질문하자 “네”라고 답변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박 당선인이 약속한 사안을 두고 ‘애초 공약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얘기다.3대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4대 중증질환의 공약은 완전히 껍데기만 남는다. 항암치료제 몇 개를 보험료로 더 보장해주는 정도로는 공약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인수위의 방침은 공약 후퇴가 아니라 사실상 공약 폐기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면 새누리당은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을 고의적으로 속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박 당선인 쪽은 그동안 공약의 현실성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예산 문제를 꼼꼼히 따져 나온 결과”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실제 나타나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이나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원씩의 기초연금 지원’ 공약 등 과대포장된 공약들의 거품이 여기저기서 빠지고 있는 것이다.상황이 이런데도 박 당선인이 인수위원들을 향해 “제가 약속하면 여러분은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이런 지시를 내리기 전에 우선 자신이 무엇을 ‘약속’했는지부터 국민 앞에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공약인데도 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공약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철학과 원칙에서 제도와 대안까지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06-15일 제45호 기사 '철학과 원칙에서 제도와 대안까지'를 퍼왔습니다.
Corée | 6월항쟁 25주년 특집 | 개헌을 말한다

<그가 사라졌다 시리즈>, 2004-카르멘 칼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전체 성격을 관통하는 핵심 중의 핵심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산업화·도시화·정보화·사회간접자본·정보기술(IT)·자동차·철강·전자를 포함해 이미 '세계 선두 수준'에 도달한 기술과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자살률, 출산율, 정부의 공적 지출, 형평, 복지, 남녀 임금 격차, 비정규직 비중, 자영업 비중 등 인간적 문제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 수준'이라는 점이다. '인간 조건'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 실존'은 너무 불안하고 불공정한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인간 조건의 급속한 발전'과 '인간 실존의 급격한 악화'가 공존하는 변종 공동체, 괴물 공화국을 만든 것일까?
둘째, 지속적인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이념적·사회경제적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갈등의 제도화를 통한 갈등 해결 수준 역시 매우 낮다는 점이다. 민주화가 진전됐음에도 갈등은 왜 줄어들지 않고, 기존 국가제도들은 갈등을 수렴·해결하는 데 실패하는가? 민주주의의 발전은 갈등의 제도화를 통해 개인 삶의 평안성과 전체 사회의 안정성이 증대되는 것을 의미하나, 한국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한국 사회의 빛과 그늘,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 상반되는 현실 모습은, 인간적인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발본적인 지혜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가? 문제를 사실적 객관성과 실현 가능성의 범주로 좁혀볼 때 우리는 우선 제도 요인에 착목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사회에서 반복되는 현상들은, 인간적 요인을 제외할 경우 거의 전부 제도 요인에서 발원하기 때문이다. 특히 임기를 갖는 특정 지도자나 정부를 넘어 지속되는 현상들은 대개 제도에서 산생된다고 봐도 틀림없다.
제도는 어원 그대로 인간 개개인을 일정한 틀 속에 집어넣어 성품의 차이와 능력의 고하가 초래할지 모를 편차와 오류의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를 말한다. 인간들이 반복되는 동일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제도 개혁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를 통해 예측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인류의 발전이 제도 변화에서 초래된 연유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모두(冒頭)의 두 가지 극적인 상반 현상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 현실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인물 요인, 정책 요인과 함께 거기에는 명백히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경로와 제도 요인이 존재한다. 즉, 이런 현상은 다섯 번에 걸친 민주정부 및 대통령들 개별 차원을 넘는 요소와 관성의 산물임이 명백하다. 제도 문제의 중심에는 정부 형태, 공직 구성 방법, 경제체제를 포함하는 헌법 요인이 존재한다. 이때 말하는 헌법 요인은 한 사회를 근거짓는 헌법철학, 헌정제도, 헌정 절차와 헌법 개혁 사안을 모두 포함한다. 무엇보다 먼저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들은 헌법 개혁에 합의했거나 헌법 개혁을 직접 제안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모두 헌법 개혁을 약속하거나 제안한 바 있다. 국정을 담당한 모든 대통령이 헌법 개혁을 약속·제안·추진했다는 점은 헌법 개혁이 특정 정부나 개인의 정략을 넘는 본질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국가 운영의 기본 틀로서 현행 헌법이 지닌 문제가 분명하다. 즉, 헌법 개혁 문제는 한두 대통령과 정부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었다.

현행 대통령제는 대통령 무책임제

둘째는 현행 6월항쟁 헌법이 초래하는 대통령 무책임제와 정당 무책임제의 문제다. 정책 무책임제와 정부 실패로 직결되는 이 점은 근대민주주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현행 헌법은 정부를 담당한 대통령과 정당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이다. 현행 헌법하의 현임 대통령들은 전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탈당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한다. 민주국가에서 유례없는 반민주적 통치 유형인 무정당 통치를 반복하는 대통령 무책임제이다. 게다가 대통령을 배출한 모든 정당은 집권 시기 내에 전부 소멸했다. 민주정의당(노태우), 민주자유당(김영삼), 새정치국민회의(김대중), 새천년민주당(노무현), 한나라당(이명박)이 모두 같은 운명이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선거 당시' 정당의 '임기 중의' 예외 없는 소멸은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인 정당정치와 책임정치를 근저부터 차단한다. 정당 책임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 부정으로서 정당 무책임제가 현행 헌법체제인 것이다. 또한 모든 대통령은 재임 중 '제왕'에서 '식물'로 그 위상이 급변한다는 점도 동일했다.
셋째는 '민주헌법'인 현행 헌법 제정 시점의 문제가 존재한다. 1987년 6월항쟁 헌법을 제정할 때 '민주헌법' 쟁취 운동을 주도한 시민들의 참여는 철저히 배제됐다. 운동 국면(독재 타도)과 제도 국면(헌법 개혁)의 완전한 분리였다. 더욱 큰 문제는 '대통령 직선'을 제외하면 당시 시민사회와 야당의 의견은 헌법 구조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의 헌법 협상을 정밀 분석하면 '직선제'를 제외하면 다른 부문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세력의 요구가 관철됐다. '3김'과 전두환·노태우의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 교환의 산물로 등장한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을 제외하면 거의 '전두환 헌법'이라고 할 정도로 집권 군부의 의도가 반영됐다. 이는 현행 민주헌법을 개혁해야 할 중대 사유로서, 헌법개혁운동은 사실 제2의 민주화운동 성격을 갖는다.
넷째는 현행 6월항쟁 헌법의 핵심 정신과 구조는 여전히 '박정희 헌법'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우선 박정희는 유신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건국 이래 유지돼오던 국가 근간으로서 '민주주의' 규정을 왜곡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로 축소했다. 독재정부를 수립하면서 거꾸로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삽입하고는 이를 국시로 주장해왔다. 현행 헌법에도 지속되고 있는 이 조항은 건국정신과 건국헌법의 부정이자 유린이었다. △박정희는 국가경제의 근본 원칙을 역전시켰다. 1948년 건국헌법 이래 경제원칙은 5·16 쿠데타 헌법과는 정반대였다. 건국헌법 제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이다. 이것이 1962년 5·16 쿠데타 헌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역전됐고, 이는 현재에도 거의 그대로다. 제111조 제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제2항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현재의 경제민주화 조항들은, 재벌들의 요구처럼 완화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건국헌법과 정신으로 돌아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 △5·16 쿠데타 헌법은 의회민주주의의 중심인 의회 규모를 대폭 축소해- 5대 국회 291명, 6대 국회 175명. 즉, 인구 10만 명당 의원 1명에서 20만 명당 1명으로 축소- 대통령 권력을 강화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의 결정적인 약화를 초래했다. 우리나라 건국 시기와 현재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의회 절반 규모에 불과한, 박정희 시기의 급격한 의회 규모 축소로 인한 '대통령 권력 강화-의회 권력 약화' 구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제도로 수렴·반영·해결하려면 의회 규모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행 헌법은 '박정희 헌법'

근본 원칙과 구조에서 현행 6월항쟁 헌법이 여전히 '박정희-전두환 헌법체제'라고 할 때, 민주화된 한국 사회가 25년 동안이나 근본적 문제제기 없이 이를 지속해온 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한국 사회의 질적 발전과 온전한 민주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박정희-전두환 헌법을 넘어 헌법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중요한 몇몇 헌법 개혁의 원칙과 방향을 고민해보자.
첫째는 권리장전으로서의 헌법을 지향한다. 이제 대한민국 헌법은 단순히 국민을 넘어 영토 내 모든 인간이 사람으로서 존엄과 권리를 누리는 권리장전이 돼야 한다.
둘째는 생명·생태 헌법을 추구한다. 인간 조건의 급속한 발전이 인간 실존과 인간 본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재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생명·생태 가치와 병행하는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셋째는 평화헌법, 통일을 준비하는 헌법이 되어야 한다. 1987년 헌법을 제정할 때는 여전히 냉전시대였기에 냉전 해체와 남북관계 발전, 북한의 쇠락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 이제 급속한 환경 변화에 맞춰 평화·영토·통일 조항에 대한 전향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넷째는 복지국가와 사회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박정희 시기에 실종된 국가경제 체제의 근본 원칙인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복원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복지국가, 형평국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는 자치헌법·자율헌법이 되도록 한다. 과도한 중앙집중의 폐해를 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능을 재배분해 명실공히 분권국가가 되도록 노력한다.

국가 구성의 원칙과 방법의 전면적 혁신 요구

특히 강조하고 싶은 점은 국가 구성의 원칙과 방법의 전면적 혁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폴리비오스, 마키아벨리, 매디슨, 그리고 막스 베버에 이르기까지 지혜로운 정치사상들은 이상적인 국가 형태로서 혼합정체를 제시해왔다. 이제 한국 사회는 숱한 문제를 야기하는 현재의 대의민주주의 국가체제를 뛰어넘어,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크게 강화한 바람직한 혼합정체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국가-대표-시민 사이의 새로운 3권분립이다. 또는 국가(권력)-화폐(시장)-시민(사회) 사이의 3권분립이라고 해도 좋다. 시민권력의 대폭 확대를 통해, 공동체 전체가 시장이나 국가에 의해 지배되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고 3자 균형을 달성해야 한다.
둘째는 중앙과 지방 사이의 확고한 권력분립이다. 지방은 중앙의 하위 요소가 아니라, 지방의 연합으로서 중앙권력이 존재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지방의 자치와 자율이 국가권력 구성과 일상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이 돼야 한다.
셋째는 확고한 수평적 중앙권력의 분립이다. 필자는 이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3권분립을 넘는 4권분립을 주장해왔다. 즉 입법부·행정부·사법부에 더해 감독부를 독립 설치해, 국가권력의 획기적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을 추구한다. 감독부에는 감사·검찰·공정거래(시장감독)·금융감독·선거관리처럼 국가기구와 공동체에 대한 감독과 관리 기능을 하는 부서들을 배치해 대통령 및 행정부로부터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 이 기관들을 분리하면 이들에 대한 임면과 통제를 통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던 대통령 권력은 크게 약화돼 자연스레 분권정부가 될 것이다. 물론 분권정부 수립에는 의회의 획기적인 확대 역시 필수적이다.
넷째는 정부-시민의 이중 거버넌스의 구축이다. 즉 입법부·감독부·행정부·사법부 외곽에 각각 반(半)시민조직·공공조직으로서 시민의회, 시민감독위원(시민공정위원·시민검찰위원), 시민호민관, 시민(국민)배심원을 병렬 배치해 정부조직에 공공-시민 이중 거버넌스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의회의 경우 국회 내 결정이 일정한 비율 이하로 통과된 사안에 대해서는 시민의회의 재의에 부치는 방안이 있다. 법원 판결에서의 국민배심제와 유사한 시민조직을 주요 국가 거버넌스에 전부 병렬 배치해 시민의 참여를 제고하고, 국가·대표·시민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좁힌다.
다섯째는 선거 주기의 문제로서 2개의 순환주기를 설정해 '대통령 무책임제'와 '정당 무책임제'를 극복한다. 이를테면 대통령, 국회의원(지역대표와 비례대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주기를 일치시켜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예컨대 대통령 중임제로 할 경우 대통령과 지역대표 의원 선거를 제1조합으로, 비례대표·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제2조합으로 삼아 2년마다 선거를 실시해 확고한 책임정부를 구현하도록 한다.

일부 공직의 추첨제 도입 필요

끝으로, 국가 공직 구성의 방법 자체를 혁명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정부 공직 구성의 원리는 '선거'와 '임명' 두 가지였다. 그러나 이젠 전면 혁신이 필요하다. 근대 선거가 등장하기 이전 고전 고대와 중세 도시공화국 시기에는 오랫동안 '추첨'이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정부 구성의 원리였다. 따라서 대법원장, 검찰총장, 각급 법원장 및 지검장, 감사원장, 공정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을 포함해 사법부와 감독부의 주요 직위는 자격을 갖춘 일정한 인재풀에서 단계별로 전부 추첨제를 통해 선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권력을 크게 약화시킴은 물론, 권력집중·부정부패·금권유착·인사비리·줄서기의 각종 폐해를 낳은 구조적 문제점을 거의 해결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현재 우리의 지혜를 기다리는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헌법 개혁은 결코 만병통치약일 수 없다. 그러나 드러난 문제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혁을 미루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문제가 크고 반복적일수록 근본을 혁신해야 한다. 헌법 개혁이야말로 근본적 개혁의 요체 중의 요체일 것이다. 헌법 개혁을 필두로 한 제도 혁신을 통해 한국 사회가 더 바람직한 인간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게 지혜를 모으자. 그리하여 인간 조건의 개선이 인간 실존의 안녕과 평안으로 연결되는 이상적인 대한민국을 건설하자.

글•박명림 연세대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고려대 정치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학 하버드-옌칭연구소 협동연구학자 역임.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2).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다음 국가를 말하다) (역사와 지식과 사회) 등의 저서가 있다.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정수장학회 부인하던 박근혜, 받을 건 다 받아?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10-05일자 기사 '정수장학회 부인하던 박근혜, 받을 건 다 받아?'를 퍼왔습니다.
박홍근 "상근 임직원 보수 챙겨"…SNS "원칙과 소신이 이런 거?"

▲ (서울=뉴스1) 박정호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세계 한인의 날 기념식 참석에 앞서 상훈 포상자들을 만난 후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날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는 확실하게 실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2.10.05/뉴스1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았을 때, 상근 임직원 보수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이 공개한 정수장학회 결산서에 따르면,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이사장 당시 지난 1995년부터 2005년 8월까지 10년간 재직했으며, 총 11억3천720만원을 실비 보상 명목으로 지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후보가 국회의원이 된 1998년 1억원, 1999년 1억3천만원, 2000~2001년 2억3천520만원, 2002년 1억4천880만원, 2003년 1억2천300만원, 2004년 1억3천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던2005년 8월까지 2천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공인법인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비상근 임직원은 보수를 받을 수 없게 됐고, 국회의원 윤리실천 규범에도 통상적인 기준이 넘는 사례금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이를 지적한 박 의원은 "불법적인 강탈에 불법적인 거액의 보수 수령으로 점철된 정수장학회에 대해 박 후보가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태도"라며 "박 후보의 자금 제공처로서 사유물이나 다름없는 정수장학회를 이제라도 환원하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라고 꼬집었다.
이를 두고 트위터 여론은 "박근혜씨는 학생들에게 줄 돈 많이도 가져갔네요", "전체 직원 보수의 50% 이상을 받았다니, 뭐 정수장학회는 당연히 박근혜 거였네요", "집도 받아, 돈도 받아, 덥석덥석 잘도 받는다", "이유 없이 부자가 된 데에는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법", "원칙 있고, 소신 있네요. 내 것은 내 것이고 남의 것도 내 것이고" 등의 비아냥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트위터리안들은 "뭐~ 또 '불법인 줄 몰랐다'라면서 발 빼시겠죠. 굳이 입 아프니 그냥 말하지 말길"이라면서 박 후보의 반응을 미리 예측하는 한편, 일부 언론에선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만 검증하겠다는 것을 비꼬아 "털면 털리는 박근혜 비리나 털어라"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이래도 박근혜일까?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19일자 기사 '이래도 박근혜일까?'를 퍼왔습니다.
(서평) 박근혜 바로보기

짧은 글 지어내서 먹고 사는 한국의 경박한 언론 기술자와 지식 기술자들이 박근혜에게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줬을 때 나는 별생각 없이 그냥 웃고 넘겼다. 박근혜가 대통령감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던 시절에도 나는 어이없는 실소를 흘리고 넘어갔다. 박정희의 공과에 관한 논란은 접어두고, 어쨌든 전두환에게 항거해서 1987년 체제를 만들어낸 이 나라 국민이 박정희의 딸을 대통령으로 받아들일 리는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사실, 순진하다기보다는 당시만 해도 내가 현실 정치판과는 한 막음 떨어진 주제들을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같은 책상물림이 무슨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거나 말거나, 박근혜는 2007년부터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그 해에 이명박에게 경선에서 패배한 덕분에 지금은 의기양양 “대세”를 부르짖으며 마치 대통령이라도 다 된 듯, 전제적인 권력을 이명박과 나눠서 휘두르고 있다.

▲ 김종철 지음∥프레스바이플 출판 ∥2012년 8월 25일 발간∥값 14,000원
그에게 “공주”라는 직함을 붙여준 사람도 아마 박정희 왕조의 상속권을 함축하는 뜻으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풍자나 익살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해학은 사라지고 그에게 붙은 “공주”라는 별칭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방원의 아들 세종 임금,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 황제, 헨리 8세의 딸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동급이라는 왜곡된 정치의식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대한민국 인구 오천만 가운데 민주주의를 교육받은 시민이 아마도 삼천만은 되지 않겠나 싶지만, 나 같은 딸깍발이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구백삼십만 명에 달하는 유권자는 이 공주마마께서 민주주의 체제의 대통령으로 등극해서 어린 백성을 어여삐 여겨달라고 믿는 모양이다. 더욱 황당한 사태는 북한 김일성 왕조의 3세 군주 김정은 이름 석 자 뒤에 욕설을 대놓고 붙이지 못하면 김씨 세습제에 찬성하는 것과 같다는 견강부회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저 구백삼십만 명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박정희가 죽고 잠시 세인의 눈길에서 비켜나 있다가 1998년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만 보면, 박근혜는 승승장구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말을 몇 마디 안 해도 언론이 줄곧 관심을 기울여 주니까, “원칙”이니 “신뢰”니 “민생”이니 짧은 음절의 단어 몇 개만 가지고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이야 알든 모르든 엄청난 행운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의 언행에 대해 캐물어 보려는 시도가 간헐적으로 없지는 않았지만, 박근혜는 늘 조용한 묵살로 대응해 왔고, 그를 지지하는 구백만 명의 유권자는 그런 묵살조차 “공주마마의 권위”로 칭송하며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혹독한 검증을 피할 수가 없다. 김종철의 『박근혜 바로 보기』는 공론장에서 박근혜에 대한 검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신호탄에 해당한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부분은 박정희라는 인물 그리고 박정희 체제의 성격에 관한 이야기이다. 박정희는 입신을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 생존을 위해 배신을 밥 먹듯이 했던 인물이다. 법을 사람 잡는 구실로 악용하면서도 그것을 “국가의 목적”이라는 핑계로 정당화할 만큼 자기성찰의 의무를 외면했던 권력의 화신이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구백만 명에게는 이것이 용납될지 몰라도 나머지 사천만 명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12월 선거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박정희는 박근혜에게 유산이면서 동시에 부채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여 있다 보니, 지금까지 박근혜는 박정희를 유산으로만 여겨온 것으로 보인다. 민감하기 짝이 없는 5·16에 관한 얘기를 최근에 공세적으로 꺼낸 것을 보면 틀림없다. 그랬다가 바로 역풍이 몰려오는 듯 보이자, 특유의 생존본능이 발동해서, 역사논쟁 그만두고 민생 챙기자고 말을 돌리려는 것을 보면, 박정희가 자기에게 어떤 짐을 물려주고 갔는지 이제는 슬슬 감지하기 싫어도 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이라면, 김종철이 짧게 정리한 박정희의 실체를 읽음으로써 한국 현대 정치사의 주요 흐름을 대강은 이해할 수 있겠다.

두번째 부분은 박근혜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박근혜 위에 덧씌워진 “신뢰와 원칙”이라는 포장은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한 이건희의 요언(妖言)이나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한 이명박의 망어(妄語)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김종철이 간단하게 대목별로 정리한 박근혜의 과거 행적을 보면 인기에 영합하는 이미지 관리를 통해 철저하게 권력을 지향해 온 궤적이 확인된다. 부녀지간에 기회주의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세번째 부분은 새누리당의 뿌리와 실체를 다룬다. 정치판이 워낙 무상하게 급변하다 보니, 지식인들부터 자본의 논리에 휩쓸려서 역사에 기울이는 관심이 줄어들다 보니, 새누리당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노태우의 민주자유당, 김영삼의 신한국당에 뿌리를 둔 사생아라는 사실을 망각했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왜 바꿔야 했는지, 그러고도 왜 “차떼기당”으로 전락했는지, 그 때문에 박근혜가 왜 천막당사라는 쇼를 벌이면서 동정표를 구걸했는지, 그걸로도 모자라 다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왜 바꿔달아야만 했는지, 지저분한 역사가 이 책에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 저자 김종철(오른쪽)과 인사동에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대개는 아는 내용이 이 책에는 담겨 있다. 그러나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여기 담긴 모든 내용을 잘 알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곁에 두고 기억력을 되살리는 참고자료로 권할 만하다.
정치에 관심이 비교적 없었던 사람이라면 12월 선거에 임하기 전에 이 책은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쩔 수 없이 5·16쿠데타와 박정희 체제의 성격을 주제로 역사논쟁이 불붙을 수밖에 없다. 외신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박정희의 딸이 민주화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는 사태는 가상만 해봐도 이 나라 역사의 물줄기를 180도로 바꿀 수 있는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낙선한 이회창도 당선한 이명박도 천이백만 표를 넘지 못했다. 노무현만이 그것도 십 년 전에 천이백만 표를 넘었다. 박근혜는 4·11 총선에서 구백삼십만 표를 얻었을 뿐이다. 유권자 수도 십 년 전이나 오 년 전보다 늘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는 누구든 천이백만 표를 훌쩍 넘어야 당선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정표보다는 부동층의 향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투표를 왜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 누구를 지지해야 할지 맘을 정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궁금증을 풀고 맘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맘을 이미 정한 사람들이라도, 주변의 부동층들에 이 책을 권한다면 주권자의 건강한 선택을 내리는 데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다른 일은 다 접어두더라도, 박근혜가 “불쌍하다”는 이유 아닌 이유 때문에 신성한 투표권을 낭비하는 무지한 백성이 우리 모두의 운명을 파멸의 구렁텅이에 집어넣는 사태만은 적어도 막아야 한다.

박동천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webmaster@pressbyple.com

2012년 9월 4일 화요일

박근혜식 말바꾸기, 패턴 분석 해보니


이글은 시사IN 2012-09-04일자 기사 '박근혜식 말바꾸기, 패턴 분석 해보니'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원칙을 핵심 브랜드로 내세운다. 정말 그럴까. 주요 발언을 모아 분석해본 결과 통념과 다른 말바꾸기 패턴이 드러났다. 다른 정치적 국면에선 필연적으로 말을 바꾸고 이를 원칙으로 포장한다.

원칙과 신뢰. 새누리당 대선주자로 선출된 박근혜 후보가 내세우는 핵심 브랜드다. 심지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로부터도 “박근혜는 적어도 자기가 한 말에는 일관성이 있지 않느냐”라는 평을 듣는다. 

박근혜 후보는 하루이틀 사이에 말바꾸기를 하는 정치인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메시지를 폭넓게 각인시킬 때까지 반복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그녀의 메시지는 늘 한결같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평판은 진실일까. (시사IN)은 그녀가 국회에 입성한 15대 국회 때부터의 주요 ‘국회’ 발언과, 정치적 거물로 자리 잡은 2004년 총선 이후의 주요 ‘언론’ 발언을 모아 분석해봤다. 그 결과 통념과는 다른 ‘박근혜식 말바꾸기’의 패턴이 확인됐다.  

“세금을 거두어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복지에는 한계가 있다.”(2005. 4. 8) “과감하게 세금을 낮추어야”(2004. 10. 27)

노무현 정부 내내 박근혜 후보는 비타협적인 강경 감세론자였다. 국회 대표연설에서도 그녀는 법인세·소득세는 물론 특소세·부가세·유류세까지 전방위 감세를 제안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통한 고성장의 길을 되풀이해 주장하기도 했다. 감세론을 주장할 때 전제나 유보를 다는 경우는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감세를 통한 성장은 잘 먹히는 주장이었다.

ⓒ김흥구

2012년, 박근혜는 증세론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녀의 2012년 출마선언문에는 “복지와 조세의 국민 대타협”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사실상 증세론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성장 담론에 대한 여론이 급변했는데, 박근혜 후보는 이런 변화를 성공적으로 따라잡았다.

하지만 박 후보는 이런 ‘변신’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 지난 7월 당내 경선 과정에서 김문수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이 점을 추궁한 적이 있는데, 박 후보의 답은 이랬다. “경제민주화는 2009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부터 거의 같은 내용이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다.” 

사실이다. 스탠퍼드 연설에서 박근혜 후보는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화두로 제시하며 인식의 단절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문서답이다. 이날 연설문은 물론이고 그녀의 역대 발언록 어디에도, 이런 인식 전환의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이미 몇 년 전부터 그렇게 말해왔기 때문에” 이 변신은 설명된 적도 없이 기정사실이 된다. 이제 ‘기정사실’에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 괜한 시비를 거는 꼴이 된다. 

이는 과거사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때도 박 후보가 즐겨 사용하는 전술이다. 정수장학회 문제, 최태민씨 관련 의혹,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등이 불거질 때마다 박 후보는 “이미 지난 정권(혹은 경선)에서 검증이 끝난 문제다”라며 비켜가곤 한다.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나 새로 제기된 의혹을 말하는 목소리를 ‘의혹 재탕’으로 낙인찍는다.

“노무현 정부에서 공기업 민영화 방침도 거의 백지화됐는데, 우리가 집권하면 민영화를 추진할 것이다.”(2005. 11. 7)

영국의 대처 수상이 롤모델이라고 밝혀온 박근혜 후보는 대처처럼 확고한 공기업 민영화론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박근혜 후보는 인천공항과KTX 민영화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밝히지 않는다. 

이 발언이 나올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하다 백지화한 민영화 대상 중 대표적인 것이 철도였다. 2012년 총선 당시 박근혜 비대위는 KTX 민영화에 대해 언급을 회피했고, 박근혜 후보 본인은 “이런 방식의 철도 민영화에는 반대한다”라는,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말로 논란을 우회했다. 총선 이후에도 박 후보는 핵심 현안인 KTX 민영화 찬반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여론이 공기업 민영화에 비판적인 쪽으로 돌아서자, 박 후보의 ‘민영화 소신’도 더 이상 듣기가 힘들어진 셈이다.


감세·민영화론자, 갑자기 돌변“국가가 공공자금으로 기업을 지배하려는 연기금 사회주의”(2004. 10. 27)

위 발언은 2004년 10월 국회 대표연설에서 나왔다. 2004년의 박 후보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민간기업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연기금 사회주의’라 부르며 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속성’을 상징하는 것이라 몰아붙였다.

2012년,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인 김재원 의원은 연기금이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는 법안을 냈다. 친박계 인사들은 이를 ‘경제민주화’의 핵심 법안으로 언급하곤 했다. 연기금의 의결권을 무기 삼아 재벌에 사회적 타협을 압박한다는 구상이다. 주식 투자만으로도 “연기금 사회주의”로 낙인찍었던 2004년 발언과는 괴리가 크다. 박 후보는 올해 8월16일자 (조선일보) 설문조사에서도 연기금 주주권 행사 문제에 ‘중립’으로 답변해 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아버지는 매달 기자들과 오찬을 할 정도로 언론에 문을 열었다. 내용이 잘못 알려지면 설명해야지 취재를 막아서는 안 된다.”(2007. 6. 2)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실 폐쇄와 개방형 브리핑룸을 들고 나와 주류 언론과 마찰을 겪던 2007년, 박근혜 후보는 언론 관련 발언을 쏟아냈다. 박정희 대통령의 ‘기자단 오찬’ 발언은 대놓고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다. 6월13일에는 “저에 대해 문제가 있으면 제가 설명하고 국민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정도다”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박근혜 캠프의 좌장인 홍사덕 당시 선대위원장도 “똑같은 질문을 100번 묻는다면 100번 다 성실하게 답하라는 게 박근혜 후보의 엄격한 지시다”라고 했다.

이보다 한 해 전인 2006년 12월에는 “언론사가 대선주자 인터뷰를 보도하는 것은 국민과 공익을 위한 것이지 자사의 이익이나 대선주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새누리당의 ‘원톱’이 된 2012년의 박근혜는 언론관이 완전히 달라지다시피 했다. 2007년 대선 경선 이후 박 후보는 개별 언론사 인터뷰를 전폐했다. 종편이 개국한 2011년 11월에 4개 종편과 개별 인터뷰를 한 것이 ‘사건’으로 기사화될 정도였다. 이후 다시 언론 접촉을 극도로 줄였다. 박 후보의 언론기피증은 취재진 사이에서는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가 됐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기간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박근혜 캠프는 경선 기간 30일 동안 미디어데이를 세 번만 갖겠다고 통보했다. 그나마 대상은 통신사와 종합 일간지로 한정해 주간지·월간지, 온라인 언론 등은 배제했다. “하루에 세 팀씩 몰아서 진행하자”라고 제안해 격한 반발을 샀고,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언론을 접촉해야 할 절박함이 없는 ‘원톱’이 되자, 언론관 자체가 달라졌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변화다.

“사조직과 금권선거 등을 안 하겠다고 약속을 드렸고 그것을 지켰다.”(2007. 5. 19)

대선 경선이 한창이던 2007년, 박근혜 후보는 사조직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 후보의 ‘사조직’이 일으킨 사건만 모아 봐도 상당하다. 박 후보가 직면한 최대 위기인 공천 뇌물 사건은, 부산 지역 친박 외곽조직인 ‘포럼부산비전’에서 터져나왔다. 뇌물을 준 것으로 지목되는 현영희 의원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현기환 전 의원이 모두 포럼부산비전에 속했다. 박근혜 후보는 거의 매년 포럼부산비전을 찾아 축사를 했다.

회원 수 30만명으로 알려진 ‘국민희망포럼’은 박근혜 후보의 조직책인 홍문종 의원과 이성헌 전 의원 등이 핵심으로 활동한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선진국민연대’와 유사한 핵심 외곽조직이라는 평이 많다.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서울희망포럼에서 박근혜 후보 관련 책자를 대회장 주변에서 판매하다가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세종시에서는 세종희망포럼 관계자들이 지역 대학생들을 룸살롱에 데려가 술을 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론을 수정하려면 의원총회를 거쳐야 하고, 당론 변경 전에 개인 의견을 이야기하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2005. 3. 29)

이 발언은 국가보안법·과거사법·사학법 등 이른바 ‘3대 쟁점 법안(4대 법안에서 언론법 제외)’을 전향적으로 처리하자는 당내 소장파의 주장을 진압하면서 나왔다. 

행정복합도시법 본회의 투표를 앞뒀던 2005년 3월2일에도 박 후보는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확정된 당론을 번복할 경우 국민들이 앞으로 한나라당의 당론을 어떻게 믿겠느냐”라고 비슷한 말을 했다. 여기까지 보면 박근혜식 원칙주의가 어김없이 관철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완고한 태도는 5년 후에 정반대로 뒤집어진다. “세종시 수정안이 당론으로 확정되더라도 반대한다.” MB가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와 공세를 펴던 2010년 1월7일, 박근혜는 소속 의원 3분의 2가 찬성해 당론이 바뀐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계와 친박계가 대략 2대1로 갈라져 있었다. 세종시 수정안은 모든 야당과 여당 내 친박계의 반대에 부딪혀 본회의 통과는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당 주류였던 친이계는 세종시 수정안을 당론으로 확정해 친박계에게 당론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는 전략이었다. 이에 박근혜가 미리 ‘저지선’을 치고 나선 것이 “당론이라도 반대” 발언이다.

5년 전 행정복합도시 논란 때와 상황은 정확히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박근혜 후보가 당 대표에서 소수파의 수장으로 처지가 바뀌었다는 점 하나다. 하지만 그녀가 ‘당론 원칙주의’를 접어두는 이유로는 충분했다. 

“17대 국회 무정쟁 선언”(2004. 4. 29) “4대 입법을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실력 저지라도 할 수밖에 없다.”(2004. 12. 1)

17대 총선 직후 박근혜 후보는 17대 국회 무정쟁 선언을 한다. 민생과 관계없는 문제로 다투지 않겠다는 다짐이 여러 차례 이어졌다. 이는 1년도 못 되어 뒤집어진다. 그해 12월 박근혜는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4대 입법’(국가보안법·과거사법·신문법·사학법)에 맞서 끝장투쟁을 선언한다. 정국 경색은 17대 국회 전반기 내내 이어진다. 2005년에도 “박 후보는 당의 모든 힘을 사학법 무효투쟁에 쏟겠다”라며 강경 투쟁을 주도했다.

ⓒ국회사진기자단 2005년 12월9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사학법 반대 대국민담화문을 낭독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4대 입법이 민생과 상관없다고 비판하던 박근혜 후보는 돌연 민생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박 후보가 ‘민생’이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주목할 만하다. 박 후보는 노무현 정부의 4대 입법을 “먹고사는 문제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이슈라고 규정한다(2004년 10월27일 교섭단체대표연설). 이때는 4대 입법이 민생 이슈가 아니다.

하지만 ‘무정쟁 선언’까지 해놓고 “먹고사는 문제와 아무 상관도 없는” 4대 입법으로 정쟁을 지속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4대 입법은 돌연 민생 이슈가 된다. 박 후보는 그해 11월28일에 4대 입법과 ‘민생’을 이어 붙였다. “4대 법안이 안보와 민주주의, 민생경제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 알려야 한다.” 이렇게 ‘민생’은 마법의 키워드가 된다. 


2008년 ‘물갈이’ 반대, 2012년은?“물갈이를 한다는데, 밀실정치와 사당화가 있거나 공천에 사심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2008. 1. 10)

박근혜 후보는 4년 전인 2008년 18대 총선에서, 당시 당 주류였던 친이계의 공천 물갈이 방침을 ‘밀실정치’ ‘사당화’ ‘사심 공천’으로 규정했다. 일련의 물갈이 발언에 대해서는 당 대표(당시 강재섭 대표)가 “모욕감을 느껴야 한다”라고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2008년 총선에서 ‘물갈이’는 친박계를 정리할 명분으로 이재오·이방호 등 친이계 핵심이 들고 나온 키워드였다. 친이계는 ‘50% 물갈이 합의설’을 흘리며 압박했고, 박근혜는 직접 나서서 “그런 합의를 해줬다는 우리 쪽 사람을 밝히라”고 반박했다(3월13일). 

이어 친이계가 ‘비리 연루자 공천 금지’를 들고 나왔지만, 박근혜 후보의 저항은 여전히 완강했다. 1월31일 박 후보는 “그런 규정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적용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라고 말했다.

4년 후인 2012년, 상황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당을 장악한 박근혜 후보의 공천 대표상품은 이른바 ‘25% 룰’이었다. 물갈이를 ‘밀실정치’ ‘사당화’ ‘사심 공천’으로 규정했던 박 후보는, 4년 만에 물갈이의 ‘커트라인’까지 제시하며 한 발 더 나갔다. 박근혜 비대위는 또 비리 연루자는 애초에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4년 전 “적용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라고 했던 원칙을 고스란히 되살렸다.

“내가 질문받기 전에 먼저 아버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느냐.”(2004. 7. 20) 

박근혜 후보는 자신이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한 적이 없다고 되풀이해 주장한다. 과거를 자꾸 물어보기 때문에 답할 뿐 먼저 언급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5·16 쿠데타 관련 발언 등이 논란이 된 최근에는 “언제까지 과거만 말할 것이냐. 미래를 이야기하자”라는 반론을 즐겨 사용한다.

“제가 누구의 딸입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는지 직접 보며 자랐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아버지 못지않게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겠습니다.” 이명박 후보와 경선이 한창이던 2007년 8월6일 경남 창원 합동연설회 발언이다. 후보 연설이니만큼, 따로 질문한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이 헌법에 대해 도발하고 체제를 부정한다면 나라는 근본부터 흔들리고 말 것.”(2004. 10. 27)

2004년 국회 대표연설에서 나온,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면 비판이다. 당시는 노 대통령이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에 불만을 내비칠 때다. 박 후보는 헌법을 존중할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8년 뒤 박근혜 후보는 정확히 같은 요구에 직면했다. ‘5·16 혁명’이라는 표현을 전문에서 삭제한 1987년 헌법정신을 존중하느냐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다. 하지만 박 후보의 대답은 “과거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이야기하자” 정도가 고작이었다. 헌법정신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은 없었다. 박근혜식으로 말하면, “대통령 후보가 헌법정신을 존중하지 않아 나라가 근본부터 흔들릴 일”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이다. 

국면에 따라 늘 ‘최적의 위치’ 찾아

‘박근혜식 말바꾸기’는 일반적 정치인의 말바꾸기와는 성격이 판이하다. 보통의 말바꾸기가 메시지 관리 실패의 산물이라면, 박근혜식 말바꾸기는 메시지 전략 성공의 결과물이다.

그녀 특유의 말바꾸기 패턴은 이렇다. 첫째, 단기간의 메시지는 매우 일관성이 높지만, 장기간을 놓고 보면 메시지가 자주 모순되고 충돌한다. 이는 정치적 국면에 따라 늘 ‘최적의 위치’를 찾아가는 그녀의 성공적인 정치 감각 때문인데, 그 결과 서로 다른 정치적 국면을 비교해 보면 거의 필연적으로 말바꾸기가 발생한다. ‘성공의 역설’이다. 

둘째, 그녀는 이런 ‘변신’의 이유를 절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일정 시점에서 자신의 달라진 포지션을 이미 기정사실로 간주해버린다. 말바꾸기 이전의 기존 지지층을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과 말바꾸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정면으로 감당하기보다는 성공적으로 회피한다. 그녀는 자신의 ‘변신’이 지적·정치적 각성이나 숙성의 산물이라고 볼 근거를 한 번도 제시한 적이 없는 셈이다. 이는 ‘원칙과 신뢰’라는 박근혜 브랜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셋째, 포지션은 정반대여도 포장하는 메시지는 같다. 그녀가 다수파일 때 말하는 ‘원칙’과 소수파일 때 말하는 ‘원칙’은 전혀 다른 의미를 담는다. 하지만 어쨌거나 드러나는 메시지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세종시 당론에 대한 그녀의 ‘원칙’이 2004년과 2010년에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면 이는 단적으로 드러난다. 2008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공천의 원칙’도 의미가 정반대로 바뀌었다. 덕분에 박 후보는 내용상완전히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도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과거에 어떤 정치를 해왔는지를 보는 것은 그 정치인의 미래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잣대다.” 이 말대로라면, 박근혜 후보가 과거에 어떤 정치 궤적을 남겼는지 돌아보면 그녀의 미래도 알 수 있다.

저 말 역시 박근혜 후보가 2007년에 한 말이다. 박근혜 후보는 다른 어떤 질문보다도 먼저,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한 수많은 질문에 답해야 할 듯하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