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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6일 일요일

비겁의 벽 향해 날아간 작은 돌멩이의 외침


이글은 한겨레21 2013-05-20일자 제961호 기사 '비겁의 벽 향해 날아간 작은 돌멩이의 외침'을 퍼왔습니다.
[특집1] 재심 시국사건 무죄 구형으로 정직당한 임은정 검사 서울행정법원에 징계처분 취소 소송, 무죄 확실 재심 공판도 “원칙 따른 선고” 구형… 여검사는 조직의 비겁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2013년 2월,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임은정(38) 검사에게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4개월’ 처분을 내린다. 5·16 쿠데타 뒤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제정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6년간 옥살이를 한 고 윤길중 재심 공판에서 검찰 지휘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무죄를 구형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는 속칭 ‘백지구형’을 주장했는데, 공판을 맡은 임 검사는 무죄 구형을 주장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임 검사의 상사인 공판2부장은 공안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재배당했다. 이러한 직무이전 지시를 어기고 법정 안 검사 출입문까지 걸어잠그며 무죄 구형을 강행한 그는 ‘소신을 지킨 용감한 검사’와 ‘절차를 무시한 막무가내 검사’라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소신 검사’ vs ‘막무가내 검사’

지난 5월6일, 임 검사는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정직 4개월의 징계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소장을 통해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관행적으로 하고 있는 백지구형은 적법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구형 지시를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고 항변했다. 검찰 구형 및 항소에 관한 업무지침 제8조에 따라 피고인이 유죄라고 판단한다면 ‘죄에 상응하는 형’을 구형해야 하는데, 실체적인 내용 없이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구형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받기 위해 공판2부장에게 검찰청법 제7조에 명시된 이의제기권을 서면으로 제기했지만, 서면 답변 없이 일방적으로 직무이전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지시는 검찰총장·검사장 및 지청장 고유 권한이므로 공판2부장의 명령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임 검사는 “법무부가 법리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백지구형 및 직무이전 명령의 적법성 등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내부 게시판에 ‘징계청원’ 글을 올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시키고 △국가공무원 복무·징계 관련 예규에 따라 오후 2시부터 오후 반일연가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무단으로 무죄를 구형한 뒤 반일연가를 이유로 정오께 법원에서 바로 퇴근해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는 등 사건 본질과는 무관한 이유까지 내세워 중징계를 내렸다”고 덧붙였다.
임 검사는 지난 2월 창원지검으로 인사 발령이 난 상태로, 정직 기간이 끝나면 다시 검찰로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임 검사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한겨레21)은 징계 처분 취소 소장과 일부 첨부자료 등을 단독 입수해, 논란이 된 무죄 구형을 하기 전후의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당사자인 임 검사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언론에 나서 의견을 피력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며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2012년 12월28일 오전 10시. 임은정 검사는 담당 사건 재판이 끝났음에도 서울중앙지법 509호 법정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1시간 전, 마지못해 같은 부 소속 후배 이아무개 검사에게 윤길중 재심 사건 공판 카드(공소사실과 증거관계 등을 담은 서류)를 넘긴 참이었다. 검사석으로 향한 그는 ‘징계 청원글 게시판에 올려뒀으며, 무죄 구형할 것이다’라고 쓴 메모지를 검사 출입문에 붙였다. 그리고 법정 안에서 문을 잠근다.

검찰청법이 보장한 이의제기권 행사했지만


» 2011년 법무부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임은정 검사가 2007년 자신이 담당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사건은 영화 ‘도가니‘의 배경이 됐다.

오전 11시, 예정된 재판이 시작됐다. 고 윤길중은 1962년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6조 위반(반국가행위)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68년 출소한다. 통일사회당 간부인 그의 공소사실은 장면 정부가 추진한 반공임시특별법 및 데모규제법 반대, 영세중립 통일을 주장하는 시위 주도 등 반국가단체 활동을 찬양·공무·동조했다는 것이었다. 공판 과정에서 “반공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야당 탄압 도구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 2대 법안을 반대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를 비롯해 혁신계 정당 인사들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불순세력’으로 지목돼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영장도 없이 체포돼 불법 구금된다. 윤길중 역시 쿠데타가 일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1961년 5월22일 체포돼 12월11일 혁명재판소에 기소될 때까지 200일 넘게 갇혀 있었다. 이러한 불법행위엔 검찰도 결부돼 있었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윤길중은 항소했지만 기각된다. 당시 혁명재판소는 2심제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 김상환 재판장이 검사에게 구형을 요청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검사가 구형을 시작했다.
“피고가 북한에 동조하였다는 당시 혁명재판소의 기소 이유는 이유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내려주십시오.”
변호인의 변론 차례였다. 뜻밖의 무죄 구형을 접한 이덕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20여 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교과서에서나 보던 무죄 구형을 처음 본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울먹이며 최후 진술을 한 재심 청구인은 고 윤길중의 손녀 윤은희(28·가명)씨였다. 그는 이날 2011년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 고 윤석인씨를 추억했다. 윤길중의 둘째아들인 윤석인씨는 2010년 도산 안창호 선생 비서실장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구익균(2013년 작고·당시 102살) 선생 등 같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통일사회당 인사·유가족들과 함께 재심을 청구한다. 유죄 선고 뒤 반세기 만인 2011년 1월25일, 이들에 대한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첫 심리가 열렸다. 이날 감격에 겨워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윤씨는 다음날 새벽,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진다. 재심 청구인이 사망하면서 윤길중의 재심 심리는 중단된다. 공동 피고인인 구익균 등 5명에 대해선 재심 개시가 이뤄져 1·2심 무죄 선고 뒤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법과 원칙대로 선고해달라’는 구형을 하려던 검사가 민원인 출입문을 통해 법정에 들어섰을 땐 이미 무죄 구형이 끝난 상황이었다. 비슷한 시간, 검찰 내부 게시판에는 임 검사가 미리 써둔 ‘징계청원’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열흘간의 우여곡절이 담긴 내용이었다.
2012년 12월17일 임 검사는 재심 사건 기록 및 법리 검토를 한 뒤 무죄 구형을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를 맡은 공안1부 검사는 백지구형 의견을 제시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날 무죄 구형 변경 결재를 시도했으나, 상급자인 공판2부장은 공안1부 의견이 타당하다며 백지구형을 지시했다. 이에 임 검사는 검찰청법에 명시된 이의제기권을 구두로 행사했고 12월20일 서면으로 작성해 결재를 올렸다. “이의제기권. 예전에 검찰청법 조항을 들여다보며 이걸 누가 행사하나 했는데, 나구나.”(2012년 12월18일 미니홈피 게시글)
그의 주장은 무죄 구형을 하거나 이같은 내용으로 구형을 변경하기 어렵다면, 공판검사가 아닌 수사 담당인 공안1부 검사가 직접 구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심 사건 구형 변경을 두고 공소심의위원회 개최 방안이 논의됐는데, 그는 ‘무죄 구형 또는 공안1부 검사 직접 관여’가 아닌 다른 결정이 내려진다면 이에 따를 수 없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공소심의위 개최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공판2부장은 12월21일, 재심 사건을 같은 부 소속 검사에게 담당하도록 했다.
그리고 12월28일, 서울중앙지법은 고 윤길중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대 법안 반대 활동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북한에 동조하는 활동으로 볼 수 없고, 영세중립화 통일론은 ‘미소 양국 세력권에서 벗어나 영세중립화 통일조국을 수립하는 것만이 통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공산주의를 제창한 것도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의 행위에 소급 적용된 특별법 조항이 ‘위헌’임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며칠간 마음을 끓여온 재판은 10여 분 만에 마무리됐다.
“후환을 예상하고 오후 반가를 미리 결재받아놓은 것을 기화로 재판을 끝낸 후 계속 법원을 배회하다 점심 무렵 휴대폰을 끈 채 서울 시내의 인파 속으로 숨어들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있었지만, 그래도 겁이 나 뭘 먹어도 체하고, 잠이 잘 오지 않는다.”(2012년 12월29일 미니홈피 게시글)

‘법과 원칙 따라 선고해달라’는 비겁함

얼핏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는 구형은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임 검사는 백지구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시 거부까지 한 것일까. 10년 넘게 검사 일을 한 그에게도 백지구형은 낯설었다. 지난해 9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대통령 긴급조치 1호와 4호를 위반한 혐의로 징역을 살았던 박형규(89) 목사의 재심 사건에 대해 구형 변경을 고민하면서 백지구형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7월26일자로 담당 재판부가 바뀌었는데, 그 무렵 박형규 목사님 긴급조치 위반 사건 재심 개시 결정이 있었다. 징역 15년의 종전 구형을 유지할 수 없는 사안이라 구형 변경을 해야 했다. 비슷한 경우 어떻게 하는지 수소문해보니 종전 구형을 원용하거나 속칭 ‘백지구형’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사법연수원·법무연수원에서 검사는 공익의 대변자로 무죄는 무죄라고 말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사법의 암흑기에 사형 등을 구형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똑같은 형을 다시 구형할 수 있는지, 검사의 의견 진술 및 객관 의무는 법적 의무인데 어떻게 이를 방기할 수 있는지 황당하기까지 했다.”(임은정 진술서 )
박형규 목사 재심 사건에 대한 무죄 구형 과정에서도 공안부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임 검사는 공판2부장·차장·검사장을 찾아다니며 구형 변경 결재를 받은 뒤 지난해 9월6일 무죄 구형을 한다. 그리고 며칠 뒤, 검찰 내부 게시판에 ‘민청학련 관련 사건 공판 소회’라는 글을 남긴다.
“그 글로 인해 뒤늦게 무죄 구형 사실을 알게 된 속칭 공안통 선배님들의 전화에 상사가 시달리고 나도 여기저기 불려다녔는데, 꾸중을 듣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네가 그 시절의 검사였다면 어떻게 할 수 있나, 달리 했겠나’란 질문을 듣고 가장 놀랐다.”(임은정 진술서)

시민 분노 포용 못하는 검찰의 ‘원칙’

윤길중 재심 사건을 놓고 공안부는 무죄 선고가 확실하다고 예상하면서도 백지구형 의견을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록 등이 없어 무죄를 확신할 수 없고 법정 자백 등 증거가 있다는 근거를 내세웠다. 임 검사는 법정 자백에 대해 한자로 적힌 2심 판결문 내용으로 보아, 공소사실에 기재된 정치활동을 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일 뿐 반국가단체 활동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2011년 검찰은 같은 이유를 들어 구익균 재심 사건 1심 무죄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으나 서울고등법원은 임 검사와 비슷한 해석을 내려 기각한 바 있다. 검찰은 과거사 재심에 대해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 법원의 판단을 재단하는 것이 옳은지 의견이 갈릴 수 있다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부장급 검사는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면 재심공판에서 무죄 구형을 하겠지만 과거사위처럼 다른 기관에서 조사해 재심을 권고할 때 ‘특별히 반대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백지구형을 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검사는 담당자도 현직에 없고, 기록 확보가 안 될 경우 무죄를 확신할 수 없어 이러한 구형이 이뤄진다고 짐작했다.
검찰은 재심 사건에서 관련 법이 위헌 결정이 나지 않았거나, 증거가 있는 경우 종전 구형을 원용하거나 백지구형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의 경우, 처벌자에 대한 재심 개시와 무죄 선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위헌 결정이 나지 않았다. 검찰이 ‘무죄’로 단정할 수 없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윤길중 재심 선고가 있기 3개월 전, 수원지법은 이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복역했던 김정태·김을수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6조는 지나치게 자의적이어서 위헌성을 따져봐야 하지만 고령인 피고인들의 신속한 명예회복을 위해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겠다”며 “늦었지만 피고인들이 겪었던 일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덕우 변호사 역시 같은 이유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검찰이 재심 사건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규명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증거를 발견해 무죄 구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검사들의 ‘원칙’은 시민들의 ‘분노’를 포용하지 못해왔다. 검사 출신인 김희수 변호사는 구형의 의미에 대해 “사법부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의견일 뿐이지만 검찰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국 사건과 관련해 이루어지는 재심은 형사·사법의 치욕적인 과거를 되돌아보고 정의를 다시 세우는 작업인데, 백지구형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의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명백히 비겁하고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고문 피해자들이 국가배상금의 일부를 내놓아 설립한 재단법인 ‘진실의힘’의 송소연 이사는 백지구형에 대해 검찰이 공익적 책무를 다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역사의 피해자들에게 ‘법과 원칙을 어겼다’는 암시를 주기도 하는데, 백지구형 뒤 항소하는 경우도 있다.


» 신규 임용 검사들은 누구나 정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수호하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짐하기 위해 검사선서문에 따라 선서를 한다. 한겨레 자료

“사람 우선시하는 법의 따뜻함 보았다”

2012년 12월28일 이후, 임 검사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도대체 왜, 무죄 구형에 직을 거느냐’는 질타와 질문이었다. 백지구형을 해도, 공안부의 예상처럼 무죄 선고는 뒤집히지 않았을 터다. 그가 얻으려던 것이 무엇인지 직접 물을 순 없었다. 다만 할아버지를 대신해 재심을 청구했던 손녀는 기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검사님의 무죄 구형 덕분에 저와 제 가족은 오랜 기다림 속에서 생각보다 이르게 1심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었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께도 한 줄기 빛과 작은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에 무지한 일반인 입장에서는 법원의 크고 작은 결정 하나가 너무도 크고 무섭게 느껴질 뿐이지만, 검사님의 용기를 통해 저와 제 가족은 원리와 원칙만 고집하지 않고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법의 따뜻한 일면을 보았습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3년 5월 16일 목요일

주진우 "난 무죄…하지만 법정에선 유죄 확신"


이글은 노컷뉴스 2013-05-16일자 기사 '주진우 "난 무죄…하지만 법정에선 유죄 확신"'을 퍼왔습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 방송 : FM 98.1 (07:00~09:00)■ 진행 : 김현정 앵커■ 대담 : 시사인 주진우 기자

‘기자로서 열심히 한 게 죄라면 받겠다. 이대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가 사전구속영장 실질심사 받으러 가면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은 주진우 기자에 대해 구속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기각시켰죠. 물론 사건의 수사가 끝난 것도 아니고 판결이 난 것도 아닙니다만, 구속영장 기각만으로도 언론계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주진우 기자, 직접 연결을 해 보죠. 



◇ 김현정> 유치장에서 돌아와서 어떻게 잠은 좀 주무셨어요? 

◆ 주진우> 아직까지 잘 못 자고 있습니다. 

◇ 김현정> 왜 아직도 못 자세요? 

◆ 주진우> 잠이 안 오네요.

◇ 김현정> 왜 잠이 안 올까요?

◆ 주진우> 생각이 많은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구속영장 기각은 예상을 하고 가셨습니까? 

◆ 주진우> 법률가들이 심지어 판사나 검사들도 기각될 거라고 얘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수갑 차고 유치장에 들어갈 때 생각해 보니 구속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법률가들은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없다고 했었어요. 표현의 자유의 부분, 언론의 자유에 대한 부분이어서 말이 안 된다고 했는데 구속영장을 청구했지 않습니까? 아직도 구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보여주기 식으로 청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말씀도 하셨던데 뭘 보여주기 위해서 청구했다는 것입니까? 

◆ 주진우> 권력이 기자 하나 잡으려고 너무 애쓰는 것 같은데요. 사실 제가 그렇게 고분고분한 기자는 아닙니다. 이런 기자 하나 있다고 해서 사회에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요. 계속해서 이렇게 몰아치는 게 누구를 위한 영장청구인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 김현정> 누구를 위한 영장청구인가? 뭔가 과잉충성이라든지 이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 주진우>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권력에 대한? 

◆ 주진우> 네. 박 대통령과 주변에 대한 얘기는 사실 굉장히 기자들도 하기 어렵고요. 질문조차 하기 어려운 게 지금 현실인데. 그래서 검찰이 특별히 좀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제 문제에 대해서. 

◇ 김현정> 그런데 검찰은 사안이 중대하고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 그리고 대선에 임박해서 명백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기 때문에 구속해서 수사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는 입장인데요? 

◆ 주진우> 사안이 중대하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박지만 씨 주변에 대한 의혹제기여서 검찰이 그렇게 나선 거고요. 제가 기사를 써놨고 '나는 꼼수다' 방송을 통해서 얘기해 놓은 부분입니다. 증거 인멸 불가능합니다. 하고 싶어도 안 됩니다. 

도주 얘기하는데 저는 미국에서 뉴욕, 워싱턴을 오가면서 국제탐사보도협회하고 비자금 문제, 버진아일랜드에 관한 비자금 문제를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 김현정> 세 달 나가 있었던 거요?

◆ 주진우> 다른 거 취재하다가 그 취재를 위해서 미국에 있었을 때 검찰에서 전화가 와서, 검찰에서 전화가 온 게 아니라 저희가 검찰에 전화를 했었어요. 그래서 들어와서 조사 받으라고 해서 바로 들어와서 조사 받았습니다. 

◇ 김현정> 오라고 해서 바로 온 거다? 

◆ 주진우> 네. 그리고는 검찰에서 오라는 대로 네 번 출석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도주 가능성 없고요. 그리고 저는 회사 다니고 기사 써야 될 사람이 도망갈 이유가 없습니다.

◇ 김현정> 그럼 검찰이 사전 구속영장을 혹시 재청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세요? 

◆ 주진우> 네. 재청구할 가능성 있죠. 검찰이 누구 하나 잡으려고 하면, 마음먹으면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요. 이제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그런데 왜 굳이 주진우 기자를 괴롭히고 싶을거라 생각하십니까? 

◆ 주진우> 사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주변에 있는 의혹이나 이야기 그리고 기사를, 비판 기사를 제대로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대로 잘 한 건 아닌데 제가 기사를 몇 개 썼더니 그렇게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 김현정> 아무도 질문하지 못하는 그 부분, 의혹을 말하고 질문했기 때문이다?

◆ 주진우> 네. 제가 심지어 기자회견장에서 질문을 했는데 그때도 당시 박근혜 후보가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 사실과 다르다고 얘기를 한 부분을 가지고도 굉장히 위협적인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기자가 질문을 하는 걸 가지고 토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를 하고 말을 막고 뒤에서는 욕설 비슷한 것도 하고 그랬습니다.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일단 그쪽에는 그렇습니다. 

◇ 김현정>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것이지, 사실 수사가 끝난 건 아니죠. 판결이 끝난 것도 아니고. 이번에 고발된 사안은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가 5촌 조카 살인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제기 하는 기사 때문에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한 건데 이 기사 취재하면서도 살해위협 당했다 하셨네요. 이게 무슨 얘기인가요? 

◆ 주진우> 사실 육영재단을 둘러싼 남매간의 갈등, 그러니까 박근령 씨와 박지만 씨 쪽의 갈등에서 이 문제가 시작됐는데 5년도 훨씬 더 됐습니다. 그런데 그 주변에서는 폭력이 난무했었어요. 조직폭력배 그룹이 수많은 그룹이 동원됐고, 한센인 환자까지 동원돼서 폭력사태가 일어났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취재를 했어요. 

그런데 제가 기자 생활 10여 년 넘게 하면서 조폭이나 종교 이런 취재 했는데 그때 위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겁먹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무서웠어요. 머리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고 하고, 네 배에는 칼이 안 들어가냐, 이런 얘기도 좀 들었고요. 전화도 했었고, 직접적으로 재판이나 취재 과정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위협하기도 했었습니다.

살해당한 두 분 중 박씨의 부인은 저한테 제 신변을 걱정해서 취재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면서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 김현정> 그랬습니까? 그런데 그 의혹제기 기사 때문에 그렇게 협박 당하고 여러 소송 걸리고 그런데도 그 기사를 쓴 것에 대해서는 후회 안 하세요?

◆ 주진우> 저는 기자입니다. 의혹이 있으면 제기하고 문제가 있으면 지적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제가 밥 벌어 먹고사는 이유인데요. 수사가 잘못 됐어요.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사가 잘못됐고 수사를 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의혹된 증거들도 아예 무시하는 그런 행태였어요. 그래서 증거들을 찾아서 의혹을 제기한 겁니다. 

◇ 김현정> 그럼 이번 건은 무죄를 확인하십니까? 

◆ 주진우> 저는 이번 기사 정말 열심히 취재했고요. 기사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권력이 잡으려고 합니다. 권력이 저를 잡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 심경상은 무죄를 확신하는데 법정에서는 아마 절대 무죄를 받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못 내놓으면서 그렇게 중대한 사실을 보도하는 거 심각한 명예훼손 아니냐, 이런 지적도 나오는데요? 

◆ 주진우> 제가 결정적인 증거를 내놨어요. 그리고 다 모든 기사가 재판에 나온 내용이었고 당사자들이 재판에서 한 증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는데 5촌간에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죽고 다른 사람은 자살했습니다. 죽였다고 한 사람이 자살했는데, 그 사람이 내놓은 유서가 ‘절대 땅에 묻지 마세요.’ 였습니다. 

그리고 수면제를 복용했던 것, 복용했던지 먹었던 거 그리고 자살하기 직전에 설사약을 먹었다는 것. 그리고 흉기, 살해에 동원된 흉기에서 DNA나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는 그런 의혹들을 내놓았습니다. 다 유가족들도 그렇고 경찰들도 그렇고 이건 결정적인 증거로 볼 만한 내용들을 내놓고 얘기를 합니다. 

◇ 김현정> 의혹이 있는 부분을 제기한 건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한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 주진우> 네, 당연합니다. 

◇ 김현정>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해 주시죠. 

◆ 주진우> 기사를 한번 보십시오. 제 기사를 한번 보십시오. 이게 언론으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의혹제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이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문제입니다. 제가 누구를 공격했다, 근거 없이 했다 그래서 구속받을 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국민들도 생각하신다면 이게 정말 문제가 있죠. 

그런데 이거는 기자 하나를 그리고 권력에 대한, 특별한 권력에 대한 감시하는 기자 하나를 윽박지르기 해서 사람들 겁먹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오늘 주진우 기자의 입장을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3년 5월 15일 수요일

언론인 백병규 ‘긴급조치 위반’ 재심서 무죄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14일자 기사 '언론인 백병규 ‘긴급조치 위반’ 재심서 무죄'를 퍼왔습니다.
긴급조치 9호 위헌 판결에 따른 결과…“현재 상황 돌이켜보면 여전히 착잡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8부(김종호 부장판사)는 14일 1978년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금됐던 언론인 백병규(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지난 4월 18일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라는 대법원 선언과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것이다. 긴급조치 9호는 1975년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실시된 것으로, 언론·집회·결사 등 모든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는 비민주적 조치였다. 

백병규씨는 1978년 11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철폐를 주장하는 내용의 지하신문을 제작,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서 배포한 혐의로 1979년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6개월가량 갇혀 있던 중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백병규씨는 이번 판결을 두고 “무죄판결을 박근혜정부에서 받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어쨌든 무죄는 예정됐던 결과다. 뒤늦게라도 유신체제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치고 사회가 어두웠던 역사에 대해 매듭을 짓는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주진우 시사IN기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이명박 정부에서 해직당한 언론인들이 여전히 해직 신분인 상황을 가리키며 “현재를 돌아보면 여전히 착잡하다. 역사가 거꾸로 간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라 언론에 대한 폭압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밝혔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3년 4월 20일 토요일

박 대통령, 그 때 “그 불쌍한 여직원 무죄”라 했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4-19일자 기사 '박 대통령, 그 때 “그 불쌍한 여직원 무죄”라 했다'를 퍼왔습니다.
대선 당시 박 대통령 토론회 영상 다시금 회자… “국정원 직원 인권침해 주장에 대해 입장 표명해야”
경찰이 국정원 직원 여론조작 사건에 대해 정치에 개입한 국정원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면서 대선 당시 국정원 여직원을 옹호했던 박근혜 후보의 발언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불과 4개월 전 한 유세 현장에서는 경찰 조사를 거부한 국정원 여직원에 대해서는 아예 "무죄"라고 단정을 짓기도 했다.
결국 박 후보의 발언 이후 경찰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혐의가 없다'는 섣부른 결론을 내렸고 대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다면 대선무효로까지 주장할 수 있는 매우 중차대한 사안인데도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원론적인 입장이 아니라 국정원 사건을 감금 혹은 인권침해라고 단정지은 것 자체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박 후보가 이번 사건의 결과와 180도 다른 불과 4개월 전의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이유다.
덩달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국정원 사건은 여론조작을 위한 선거법 위반 여부를 밝히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해 4개월 뒤 경찰 수사 결과 발표를 정확히 예측했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해 12월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3차 TV토론에서 "이번에 국정원 여직원 사태와 관련해 발생한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해서 한마디 말씀 없으시고 사과도 안했다"고 문재인 후보를 향해 선공(先恭)을 가했다.
이에 문재인 후보는 "지금 그 사건은 수사 중인 사건이다. 박 후보는 감금했다, 인권유린했다고 하는데 왜 국정원 여직원을 변호하나"며 "국정원 여직원이 오히려 경찰이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는데 걸어잠그고 응하지 않는 것 아니냐. 그 사이에 증거인멸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 않느냐. 사건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수사를 하고 있는데 박 후보가 감금이다.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말씀 하는데 수사에 개입하시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 후보는 또한 "사실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왜 사과를 말씀하시냐"면서 "그 사건에서 여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성이든 아니든 국정원 직원이 여론조작의 선거법 위반 범죄를 했느냐 안했느냐의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이 2박 3일 동안 여직원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부모님도 못 만나게 하고 물도 안 주고 밥도 못 먹고 그런 부분이 인권에 대한 침해 아니냐"면서 "이것이야말로 증거주의, 영장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등 절차적인 민주주의 원칙이 실종이 됐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6일 중앙선관위 주관으로 열린 대선 후보 토론회 캡처 화면.


이에 문 후보도 "확인된 사실은 경찰이 신분을 요구하니까 이분이 국정원 직원이란 사실을 부정했다. 경찰이 돌아나왔고, 국정원 직원이 맞다라고 하니까 문을 열어달라고 했는데 이분이 문을 오래동안 걸어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라면서 "떳떳하다며 경찰이 열어달라고 하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고 왜 농성을 하느냐. 본인 아이피만 제출해주면 에스엔에스를 통해서 불법적인 댓글을 달았는지 안 달았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 자체도 불응했다. 그 사실 여부를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아니라고 박 후보가 단정을 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박 후보는 문 후보의 질의에 대해 "국정원 여직원이든 어쨌든 간에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그렇게 차를 들이박어서 방의 호수를 알아내고 거기에 감금해놨고 부모도 못 만나게 하고, 그 자체는 인권 침해 아니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후보는 하지만 "밖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 한 것은 경찰관"이라며 "그게 무슨 감금이냐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을 해봐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문 후보가 강공으로 밀어붙이자 박 후보는 "댓글 대해서도 달았다고 그런 식으로 하는데 하나도 증거를 못 내놓고 있는 것 아니냐"며 "캡쳐도 할 수가 있는건데 그것도 못하고 계시면서 그렇게 자꾸 어거지로 말씀 하시면"이라고 비판했고, 문 후보는 "지금 그 사실관계를 수사 기관이 수사 중에 있는 것이다. 증거를 민주통합당이 내놓을 사안이 아니다. 아니라고 단정하면 안된다. 곧 드러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3차 토론회에서 국정원 직원 여론조작 사건에 대해 불꽃튀는 공방 이후 불과 1시간이 채 안된 시점인 밤 11시경 경찰은 "김씨의 컴퓨터에서 문 후보 비방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박 후보에 힘을 실어줬다. 경찰은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안이라 컴퓨터 분석 결과가 나온 즉시 공개했다"는 입장이었지만 밤 11시에 브리핑을 한 전례도 없거니와 다음날 오전 공식 브리핑이 예정이었는데도 앞당기면서 오히려 수사기관이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불러일으켰다.

특히 박 후보는 토론회 다음날인 17일 천안 유세에서 경찰의 `국정원 여직원 댓글의혹 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언급하며 "그 불쌍한 여직원은 결국 무죄"라며 "그런데도 민주통합당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인권 유린에는 말이 없다"고 공세를 취했다.

박 후보는 또한 "민주당은 국정원 직원 70명이 조직적으로 정치공작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언론까지 대동하고 (여직원의 오피스텔에) 쳐들어갔는데, 경찰은 제출된 노트북 컴퓨터를 아무리 뒤져봐도 댓글 하나 단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는 "민주당이 말하는 새 정치와 인권으로는 국민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며 "이런 구태정치를 끝내고 단 한 명의 억울한 국민도 없는 민생정부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많은 누리꾼들은 18일 경찰 수사 결과 발표가 나온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상에서 "문재인 후보와 TV토론하면서 국정원 여직원을 적극 옹호하였던 박근혜 후보 유명한 동영상"이라며 영상 링크를 걸어왔다. '국정원법 위반으로 정치 개입은 맞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은 아니다'라는 경찰 수사 결과를 놓고도 "박근혜가 당선됐지만 대통령은 아니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국정원 사건 진상규명위원회 한웅 변호사는 “박근혜 후보는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의 여성 인권을 운운했는데 말그대로 허위가 된 것”이라며 “이번 사안이 문제가 될 때마다 야당이 지적할 것인데 팩트를 정확히 가려야 한다. 당장 아프겠지만 털고 가야지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김행 대변인은 19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현재 최종 수사 결과가 아니다"라며 "청와대가 경찰 수사에 개입할 수가 없고,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논평을 낼 수도 없다"고 밝혔다. 

[기사 보강 19일 오후 3시22분]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2013년 3월 17일 일요일

“집에 가야지”에 혹하고 가르쳐준 대로 현장검증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3-18일자 제952호 기사 '“집에 가야지”에 혹하고 가르쳐준 대로 현장검증'을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무죄와 벌 ① 허위 자백영화 (7번방의 선물)을 통해 본 수사 절차상의 문제점… 지적장애인임에도 신뢰관계인 참석 없어, 피의자 ‘기망’으로 자백 유도하고 유리한 증거 무시돼

»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누명을 쓴 6살 지능의 아빠 이용구는 딸 예승이를 위해 허위로 자백하고 사형을 당한다. 현실에서도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피의자가 허위 자백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NEW 제공

장애인 보호규정 강제성 없어

영화에서 주인공 이용구는 평소 딸에게 사주고 싶어 하던 세일러문 가방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준 여자아이를 우연히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여자아이는 앞서 뛰어가던 중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죽는 사고를 당한다. 이때 아이를 구하려고 인공호흡을 하던 이용구를 제3자가 목격하고 그를 범인으로 오인한다. 경찰은 목격자의 그릇된 진술을 토대로 이용구를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그 뒤 경찰이 이용구의 자백을 얻어내는 수사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난다.
첫째는 강압적 수사다. 수사의 구체적인 과정이 영화에서 세세히 표현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용구가 신문 과정에서 홀로 수사관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보인다. 지금은 수사 실무상 피의자가 수사관에게서 폭행을 당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폭행이나 고문이 피의자가 허위 자백을 하도록 만드는 주요 원인이었다.
오늘날 수사 과정에서 폭행을 찾아보기 어렵다 해도, 피의자가 허위 자백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피의자가 임의성(피의자나 피고인의 진술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이 완전히 보장된 상태에서 신문을 받는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고문이나 폭행이 없었는데도 피의자의 허위 자백이 발생한 대부분의 경우, 강압적인 분위기의 피의자 신문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미성년자나 지적장애인처럼 법에 무지한 사람들이 범행을 부인할 때 수사관이 중한 처벌의 가능성을 고지하거나, 무시하는 투의 반말을 하는 등 강압적 분위기가 형성될 가능성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낯설고 폐쇄된 공간에서 법적 권한과 지식, 권위를 가진 수사관을 홀로 대하는 것 자체가 자유롭게 진술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따라서 수사 절차에서 이들을 특별히 처우하고, 피의자 신문의 투명성과 임의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과제다. 대안으로는 신문의 전 과정을 의무적으로 영상녹화 또는 녹음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둘째로 장애인 보호 규정의 미준수다. 영화에서처럼 지적장애인 이용구가 신뢰관계인의 참여 없이 홀로 조사를 받게 되는 상황은 실제 여러 허위 자백 사례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이는 장애인이나 미성년자에게 치명적이다. 이들은 수사관의 질문을 정확히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의사표현 능력도 부족한 탓에 자신을 충분히 방어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심리적 안정과 의사소통을 도와줄 신뢰관계인이나 통역의 도움이 절실하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이 필요성을 인식하고 피의자가 장애로 인해 의사 능력이 미약한 경우 신뢰관계인을 동석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수사기관의 자체 규정(훈령)도 “장애 여부를 미리 확인하고, 의사소통을 도와줄 보조인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들에 강제성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형사소송법 규정은 동석 여부를 수사기관의 재량에 따르도록 하고 있고, 훈령 규정도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수사관이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는다는 내용이 없다. 수사 절차에서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적 내용이 실행되도록 담보할 만한 장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법규 개정으로 의무적 동석을 규정해 장애인 보호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망, 허위 자백 가능성 70% 높여

현장검증은 허위 자백을 한 피의자가 ‘실체적 진실’로 되돌아오게 하는 ‘황금의 다리’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유명한 허위 자백의 사례가 된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의 현장검증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셋째, 신문 기법상의 문제다. 영화에는 현장검증 과정에서 수사관이 이용구에게 “빨리 끝내고 (집에) 니 딸내미 보러 가야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은 지적장애인이나 미성년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집에 가는 것’이야말로 고통스러운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무죄로 석방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나 지적장애인의 허위 자백 사례들을 보면 이처럼 ‘집에 보내주겠다’는 말에 속아 허위 자백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중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자백을 했더라도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진범으로 단정돼 처벌이 무거워지고 구금 기간이 길어진다. 즉, ‘집에 보내주겠다’는 수사관의 말은 명백한 기망으로 국가기관이 지켜야 할 법 집행의 청결함을 저해하는 행위인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규정된 자백배제 법칙에서 이런 수사 방법을 금지하는 건 이 때문이다. 외국의 한 연구에서는 이런 기망이 이뤄지면 허위 자백의 가능성을 70% 이상 높인다는 결과도 있다.
넷째, 현장검증의 문제다. 현장검증은 말 그대로 수사 내용을 범죄 현장에서 재현해 피의자의 자백이 진실한지, 수사에서 누락된 증거는 없는지 다시 검토해보는 절차다. 수사 절차상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 허위 자백을 한 피의자가 ‘실체적 진실’로 되돌아올 수 있게 ‘황금의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게 현장검증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장검증은 수사관의 강압이나 지시 없이 피의자의 자유로운 의사가 철저히 보장된 상태에서 실시돼야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수사관이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이용구에게 특정 행위를 가르쳐주거나 지시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허위 자백의 사례로 유명해진 ‘수원 노숙 소녀 상해치사 사건’의 현장검증 영상에서도 발견된다. 진실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수사 절차인 현장검증이 강압적 분위기에서 그저 피의자를 상대로 자백을 재현하는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무시하는 문제다. 영화에서 이용구의 혐의 사실은 여자아이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혐의 사실을 부인하는 부검 결과(피해자의 목에 압력이 가해진 사실이 없다)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의견(뒷머리에 가해진 충격이 사망 원인이다)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무시된 것으로 나온다. 현실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과학적 소견’을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사례가 드물다. 그러나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증거 등이 무시되는 예는 허위 자백의 사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여기엔 자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사 관행도 영향을 끼친다. 허위일지라도 자백은 수사관에게 ‘수사 종결’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자백이 지닌 강력한 힘, 즉 ‘죄짓지 않은 사람이 자백을 할 리 없다’는 자백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자백이 이뤄지면 그에 반하는 정황이나 증거는 무시되기 쉽고, 자백에 부합하는 수사의 종결을 향해 급진전되는 경우가 많다.

유죄의 편견을 가진 수사관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법리는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대전제 외에 수사관이나 법관이 그만큼 무죄추정의 자세를 갖기 어렵기 때문에 강조되는 법리라고도 볼 수 있다.
여섯째, 유죄 편견(또는 유죄 선입견)이다. 현실에서도 수사관의 유죄 편견은 종종 나타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강조되는 건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가 형사법의 대전제이기 때문이지만, 어찌 보면 여기엔 수사관·법관이 그만큼 무죄추정의 자세를 갖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민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수사 실무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피의자나 피고인은 사건과 완전히 무관한 사람이 아니다. 목격자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됐거나, 범행 현장에 있었거나, 피해자와 원한이 있는 등 갖가지 혐의 사실을 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관은 기본적으로 피의자가 유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 신문을 하게 된다. 더군다나 피의자가 알리바이(현장 부재 증명)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을 한다면 수사관은 유죄의 심증을 굳힐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의사표현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이나 미성년자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는 죄가 없어도 일반 성인보다 쉽게 유죄로 추정될 취약성이 있다. 수사 절차에서 이들을 특별히 처우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사건 해결에 대한 수사관의 열망도 잘못된 유죄 편견을 강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이는 수사관 개인이 지닌 정의감 때문일 수도 있지만, 수사관이 받는 사건 해결에 대한 여론과 조직 내부의 압력 때문일 수도 있다. 일반인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수사관들은 조직 내부와 여론의 압력에 자주 부담을 느낀다. 이런 압력은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전가되기 쉽다. 실제 사회의 이목을 끄는 중요한 사건일수록 허위 자백의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게 유죄 편견을 가진 수사관이 일으키는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무엇보다 피의자의 무죄 가능성에 대한 공간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에 무죄의 가능성을 접하더라도 무시하고 유죄의 한 방향으로만 몰고 가는 수사를 진행할 위험이 크다. 이때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는 무시되고 불리한 증거만 탐색 대상이 된다. 결국 허위 자백이나 누명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수사가 형사 절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실패로 귀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사건일수록 허위 자백 많아

영화 (7번방의 선물)을 통해 수사 절차상 문제점을 살펴봤다. 수사상 문제점들은 범죄자 처벌을 통한 사회정의 확립과 함께 수사기관이 풀어야 할 숙제다. 물론 수사기관이 직면하는 말 못할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에 비해 수사 절차상의 문제점은 충분히 개선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수사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비판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적법 절차를 준수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형사 절차 최고의 목적에 다가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기수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경찰연구관·서울대 법학전문박사 

2013년 2월 16일 토요일

권력형 비리 덮는 '공소시효'…노회찬은 무죄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92-15일자 기사 '권력형 비리 덮는 '공소시효'…노회찬은 무죄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합법적으로 자행된 '부정의', 어찌할까?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

삼성그룹이 검사들에게 떡값을 제공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인터넷에 게재한 것을 두고 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로 기소된 노회찬 의원에 대해, 지난 14일 대법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됨으로써 그 의원직이 박탈되었다.

같은 날 새누리당의 이재오 의원마저 "노회찬 의원의 대법원 판결을 접하고 참으로 답답하다. 노 의원의 의젓한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면서 "국회의원이 권력형 비리를 고발하지 않는다면 이 땅의 권력형 부패를 어떻게 청산할까"라고 하였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조항이 '국회에서'라고 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은 해당 보도자료를 개인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이 면책특권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헌법상 면책특권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이재오 의원의 말처럼 국회의원이 권력형 비리를 고발하려는 것이므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正當行爲)로서 그 위법성을조각(阻却) 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노 의원의 지적처럼 "뇌물을 지시한 재벌그룹 회장, 수수를 모의한 간부, 전달한 사람, 뇌물을 받은 떡값 검사들이 모두 억울한 피해자고, 이들에 대해 수사를 촉구한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의 무죄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원인은 '떡값 검사'와 삼성이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

결국 지금의 사태는 당시 '떡값 검사'들과 그들에게 떡값을 준 삼성이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만약 이들이 유죄로 확정되었다면, 제아무리 보수적인 대법원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비리를 밝힌 국회의원에게 섣불리 유죄를 선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2005년 당시 '떡값 검사'로 지목된 인사들을 무혐의 처분한 검사가 지난 13일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 그가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이다.

2005년 황교안 전 검사는 '삼성이 정치권과 검찰 고위직에게 떡값을 제공했는지 여부'는 뒤로 하고, '도청의 불법성'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고서 '떡값 검사'로 지목된 인사들 전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하였다. 그 이유는 '뇌물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의롭지 않다는 것'

권력의 부조리에 직면하여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수긍하는 정의(正義)는 항상 패배하였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패배를 당연시한다는 것이다.

패배감을 버려야 한다. 저항(抵抗)하자. 하지만 바리케이드를 치고 화염병을 던지라는 뜻이 아니다. '좀 더 정의로운 제도'로써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권력의 부조리'를 은폐하고 옹호하는 자들이 단지 억압적인 '힘'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며, 합법적 절차와 정교한 논리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 방어논리를 무력화시켜야만 한다.

권력의 부조리를 옹호하는 논리적 무기의 대표는 '공소시효'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어 왔다. 낙마한 김용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헌법재판소장 시절에 '5·18 민주화운동에관한특별법'에 대해 한정위헌의견을 냈었다. 그 요지는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소추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뒤에 뒤늦게 소추가 가능하도록 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형벌불소급원칙에 비추어 헌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하였다.

'5·18 민주화운동에관한특별법'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한 사건에 대하여 기본권 가치를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김용준 헌재소장은 '기본권 가치'라는 헌법상 이념의 실현을 '공소시효 제도'라는 법률상의 이념으로 재단하려 했던 것이다. 더구나 형벌불소급 원칙은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정의롭지 않은 국가권력'을 행사했던 자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내세울 수 있는 이념이 아니다.

'각하는 결코 그럴 분이 아니지만 가령'(?) 이명박이 서울시장에서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어떤 범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를 경과하면 공소시효가 완성된다. 결국 이를 처벌하려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고, 특별법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종전의 논란이 재론될 것이다.

공소시효는 과연 정의로운 제도인가?

공소시효에 관하여 형사소송법 교과서는 '① 시간이 오래 흘러 증거가 멸실되어 진실발견이 어렵고, ② 민법의 소멸시효 이론이 국가의 형벌권에도 적용될 수 있고, ③ 범죄행위로 인한 법질서 파괴가 오랜 시간의 경과로 회복되고 피해자의 처벌감정이 점차 희박해져 처벌 필요성이 감소되며, ④ 범죄자가 시효기간 중 도피생활로 받은 고통이 처벌의 효과를 가지며, ⑤ 공소시효의 기간 동안 사회에 편입되었으므로 범죄인의 재사회화라는 점에서 당벌성이 사라졌다'고 한다.

'시간이 오래 흘러 증거가 멸실되어 진실발견이 어렵다'는 첫 번째 논거는 쟁점을 혼란시키는 데마고기(Demagogy)이다. 공소시효 제도의 폐지가 문제되는 이유는 시효가 지난 후에 증거가 드러났는데도 처벌을 할 수 없는 사건 때문이다. 특히나 국가와 정부에 의해 자행된 권력의 부조리는 그 '힘'이 지속되는 동안 검찰과 경찰은 소추의 의지조차 갖추지 않는다.

'권리의 소멸시효 이론이 국가의 형벌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두 번째 논거 또한 논란의 여지 없이 부당하다. 민법 상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하는데 반해(민법 제166조제1항), 공소시효는 '범죄행위를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한다(형사소송법 제252조제1항). 따라서 민법의 소멸시효 이론이 공소시효에 적용되려면, 형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때, 즉 노회찬 의원이 삼성의 '떡값 검사' 문제를 제기했을 때부터 '떡값 검사'들의 뇌물죄 시효가 진행되어야만 한다.

민법 상 소멸시효 제도가 정당한 이유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게으름을 피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소시효는 국가가 그 범죄 자체를 알지 못한 채 완성되기 때문에 부당하다.

'법질서 파괴가 회복되고 피해자의 처벌감정이 희박해졌다'는 세 번째 논거를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흉악범에 의해 어린 아이를 살해당한 부모가 15년이 지났다고 해서 처벌감정이 희박해질까? 삼성의 '떡값 검사'들이 떡값을 받은 지 7년이 지났다고 해서 우리 국민들의 상처 난 정의감이 회복되고, '7년이나 지났으니까 괜찮아'라고 용서할 수 있을까?

범죄자가 시효기간 중 도피생활로 고통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이것 때문에 소추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형벌에 범죄인의 재사회화라는 목적이 있지만, 재사회화라는 목적은 형벌이 가지는 응보(應報)와 사회의 정의 관념을 어떤 이유로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권력형 범죄에서 공소시효는 배제되어야

이번 사태는 노회찬 의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과 사법부가 국민을 능멸하였다. 문제는 모든 절차가 합법적으로 자행되었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반복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중심에 '공소시효 제도'가 있다. 공소시효 제도 자체가 정당성이 없지만, 적어도 뇌물죄와 같이 형법 제2편 제7장의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에 한해서라도 형사소송법 제249조(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


 /김현철 변호사(법무법인 세민) 

'전두환 집앞 몸싸움' 이상호 기자 무죄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2-15일자 기사 ''전두환 집앞 몸싸움' 이상호 기자 무죄'를 퍼왔습니다.
법원 "검찰, 적법한 공무에 대한 방해 입증 못해"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취재중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상호 전 MBC기자에 대해 법원이 15일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1단독 이현우 판사는 이날 전두환 사저로 진입하려다가 의경과 실랑이를 벌인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상호(46) 기자와 조용규씨(28)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공무집행 방해는 적법한 공무의 집행을 방해한 것에 대해 적용하는 혐의"라며 "검찰이 적법한 공무에 대해 피고인들의 방해 혐의를 증명해야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증명이 부족했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 기자는 지난해 1월25일 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을 받았던 김용필씨, 오디오맨 조씨와 함께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을 방문하려다가 경호중이던 의경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현장에서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이어 지난해 7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 기자는 판결후 트위터를 통해 "노회찬 판결 보며 밤새 마음 비웠다. 미친 세상.. 그래 들어가 주자. 그날이 오려면 앞으로 백명은 더 구속되야겠지? 선고 직전 유죄 소감 준비하는데 난감했다. 머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어머니,아버지.. 두분 모습만 아른거리더이다. 참 못난 사랑"이라며 무죄 판결이 나오기 전 복잡했던 심경을 토로했다.

김혜영 기자

2013년 2월 10일 일요일

‘누나는 성폭행·아빠는 정신병원’ 살아남은 아이는 묻는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09일자 기사 '‘누나는 성폭행·아빠는 정신병원’ 살아남은 아이는 묻는다'를 퍼왔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의 생존자 한종선씨는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기 위해” 책 ‘살아남은 아이‘를 썼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시위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글쓰기를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경북 구미에 사는 한씨는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국회 앞에 선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사람과사회] 531명 폭행·암매장 당한 형제복지원, 지옥 같은 기억을 자서전 (살아남은 아이)
피해자 한종선씨… 1988년 “감금은 무죄”라고 판결한 대법원 재판장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에게 “올바른 판결이었냐” 묻고 싶었지만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취침시간 중 감금한 것은 사회적 정당성이 인정된다.”1988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대법원은 감금죄에 대해 이렇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장은 총리 후보자로 지목됐던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었다. 민주통합당 이언주 대변인은 “‘부산판 도가니’라고 불리는 이 사건에서 재판장이 ‘사회적 약자의 상징’인 김 후보자라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총리 후보자에서 사퇴한 다음날인 1월30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38)씨는 “김 위원장이 국회 청문회에 나오면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는데”라며 그의 사퇴를 아쉬워했다.

살해돼 해부용으로 팔려간 주검

987년 전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인 부산 형제복지원(수용인원 3146명)에서 직원의 구타로 수용자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 조사 결과 복지원이 부랑아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해 암매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굶어 죽거나 맞아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주검은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선 게 사건의 배경이었다.한종선씨는 1984년, 9살 때 12살인 누나와 함께 복지원에 끌려갔다. 그로부터 3년 뒤 복지원이 폐쇄됐지만 그는 짐승의 눈빛과 끔찍한 기억을 지닌 아이가 됐다. 한씨의 누나는 성폭행을 당해 정신분열증을 얻었고 구두닦이였던 아버지 역시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자다가 복지원에 끌려온 뒤 지금까지 정신병원을 떠돌고 있다. 이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지난해 11월 펴낸 저서 (살아남은 아이)에서 한씨는 지옥과도 같은 삶을 증언했다. “우리들의 의복은 하얀색 팬티와 러닝셔츠, 감색 추리닝 한 벌, 그리고 검정 고무신이 전부였다. 몸이 꽝꽝 얼어붙는 추위가 겨울 내내 이어졌다. 거의 모든 원생들의 손과 발이 퉁퉁 부어 동상에 걸렸다. 우리는 항상 새벽 4시에 기상했다. 식단은 언제나 꽁보리밥에 생선 썩은 전어젓과 소금 뿌린 깍두기. 우리는 매일같이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새벽부터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돌았다.”형제복지원은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군대였다. 장기 복무 헌병 부사관 출신인 박인근 원장이 중대장-소대장-총무-조장-소대원을 지휘했다. 언제든지 그들의 자리를 교체할 수 있는 박 원장은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군기를 잡기 위해” 조장은 매일 때렸다. “때리는 조장들은 아무 꼬투리나 잡아서 때린다. 맞는 소대원들은 왜 맞는지도 모른 채 맞는다.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복지원을 맴돌았다. 한씨는 죽어나가는 원생들을 서너 번 정도 목격했다.복지원은 어린아이건 어른이건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아왔다. 국고보조금이 사람 수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갇힌 이들 중에는 밤늦게 귀가하던 회사원, 바람을 쐬러 나온 여성, 자갈치시장의 노점상, 농촌에서 흘러든 일용직 노동자, 심지어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있었다. 자활 능력이 없는 사람은 10% 정도뿐이었다. 나머지는 멀쩡한 상태로 잡혀와 복지원에서 정신이상자가 되거나 지체장애인이 됐다. 한씨의 누나와 아버지처럼 말이다. 복지원은 운영자금 명목으로 1985년 18억원, 1986년 20억원 남짓을 중앙정부와 부산시에서 지원받았다.

박인근 한 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박인근 원장도 승승장구했다. 1981년 1월 장애자의 날 석류장을, 1984년 11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전두환 대통령에게서 받았고 전국부랑인복지시설연합회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던 1987년 1월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밝혀진다. 당시 울산지청 소속 김용원 검사(현 변호사)가 그해 1월16일 형제복지원을 압수수색했다. “교도소를 뺨치는 어머어마한 철문과 성곽 같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복지원의 원장실에서는 20억원이 넘는 각종 예금증서와 달러, 엔화가 쏟아졌다. 박 원장은 2년간의 국고보조금 39억원 가운데 11억원을 횡령했고 수용자들을 감금했음이 드러났다. 형제복지원은 폐쇄됐고 고아를 제외한 2천여 명이 한꺼번에 풀려났다. 인권유린의 피해자인데도 아무런 보상도, 재활 교육도 없었다.김 변호사는 1993년 펴낸 저서 (브레이크 없는 벤츠)에서 당시 외압에 시달렸음을 고백했다. 수사 검사는 원래 징역 20년을 구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검찰총장 등 ‘윗분들’은 징역 15년 혹은 징역 10년을 요구했다. 횡령 액수도 6억원으로 축소해야 했다. 1987년 6월 검찰은 박 원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6억원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징역 10년과 벌금 6억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박 원장의 형량이 점점 줄어들었다. 대법원이 감금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두 차례나 원심을 파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장은 1987년 11월 1차 항소심에서 벌금이 사라진 징역 4년을 선고받더니 1988년 7월 2차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88년 3차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한 사건이 일곱 번의 재판을 거치는 사이 원장에 대한 형량은 당초의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원장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감금한 행위는 대법원의 고집에 의해서 무죄로 확정됐다.”([브레이크 없는 벤츠]에서) “대법원의 고집”에는 김용준 위원장도 당연히 포함된다.한종선씨는 “감금은 폭행·살인을 증명하는 첫 단추였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그걸 무죄로 만드니까 폭행·살인죄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인권유린이 분명히 있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김용준 위원장이 청문회에 서면 ‘당시 무죄를 선고한 게 올바른 판결이었다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 대답마저도 이제 못 듣게 됐다.” 그는 또 당시 형제복지원의 감금이 불법이 아니었다면 정부가 왜 시설을 폐쇄하고 수용자를 풀어줬느냐고 반문했다.

지금도 복지재단 운영하는 박인근 일가

벌금도 선고받지 않고 2년6개월 만에 풀려난 박인근 원장은 재기했다. 법인의 이름만 수차례 바꿔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지원재단’이 됐다. 1929년생인 박 원장은 2011년 4월7일까지 형제재단의 이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3남 박천광(37)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박인근 원장은 2008년 8월 ‘대안학교’인 신영중·고교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2010년 12월 첫째딸에게 넘겼다.“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기 위해” 책을 썼다는 한종선씨가 말한다. “도가니 사건이 지금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부터 바로잡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법치국가라면 피해자가 겪고 있는 고통의 반만이라도 가해자가 죄를 씻을 수 있도록 벌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2013년 1월 19일 토요일

법원 “‘이명박 XXX’ 욕설 칼럼, 협박죄 아니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1-18일자 기사 '법원 “‘이명박 XXX’ 욕설 칼럼, 협박죄 아니다”'를 퍼왔습니다.
신상철 욕설 칼럼 항소심도 무죄… 법원 “욕설만으로 협박 성립 안 된다”

검찰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를 수사한다는 소식에 ‘이명박 개XX’ 등 욕설을 담은 칼럼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협박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기소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가 항소심에서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2부 재판장 이성구 부장판사는 18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 일가족 협박 혐의로 기소된 신 대표에 대한 선거공판에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성구 재판장은 “피고인의 주관적인 욕설이 실제로 협박의 실현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피고인의 협박이 객관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하므로 모욕죄로 볼 수는 있을지 몰라도 협박죄로는 성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항소심 무죄 판결 후 신상철 대표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무죄를) 예상은 했지만 사실 정권이 바뀌어서 걱정도 했다”며 “험난한 세상에서 사법적 판단이 바르게 중심을 잡아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권범철 만평작가

신 대표는 “이 사건도 MB정권에 불편한 글이나 발언에 재갈을 물리려는 검찰의 무리한 충성에서 비롯됐다”며 “보수단체가 고발하면 검찰이 기소하는 전형적인 수순을 밟았다”고 비판했다.
신 대표는 지난해 2월, ‘독고탁’이라는 자신의 필명으로 서프라이즈 게시판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욕설이 담긴 글을 올렸으나 ‘라이트코리아’라는 보수단체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신 대표의 칼럼에는 “네X과 네X의 개인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 가족에게 칼을 내미는 순간, 네X들은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닐 것이다”, “네X에게 던지는 조언이 네X과 네X의 가족 그리고 네×의 수하들이 그나마 목숨이라도 보전할 수 있는 마지막 경고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검찰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통령 가족에 대해서도 협박한 혐의로 신 대표를 기소하고 징역 1년형을 구형했지만, 지난해 8월 서울남부지법은 1심 선고공판에서 “협박죄에 해당하는 해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검찰 기소 당시 욕설이 섞인 글을 썼다고 ‘협박죄’를 적용한 검찰의 기소에 대해 기소권 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기소 당시 법조계 관계자들도 “협박죄는 피해자가 실질적 공포감을 느끼지 않았을 때에 협박미수가 되고 보통 처벌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었다. 협박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였으나 검찰은 피해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법정 진술을 요구하지 않았다. 

강성원 기자 | sejouri@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