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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5일 수요일

언론인 백병규 ‘긴급조치 위반’ 재심서 무죄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14일자 기사 '언론인 백병규 ‘긴급조치 위반’ 재심서 무죄'를 퍼왔습니다.
긴급조치 9호 위헌 판결에 따른 결과…“현재 상황 돌이켜보면 여전히 착잡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8부(김종호 부장판사)는 14일 1978년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금됐던 언론인 백병규(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지난 4월 18일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라는 대법원 선언과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것이다. 긴급조치 9호는 1975년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실시된 것으로, 언론·집회·결사 등 모든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는 비민주적 조치였다. 

백병규씨는 1978년 11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철폐를 주장하는 내용의 지하신문을 제작,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서 배포한 혐의로 1979년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6개월가량 갇혀 있던 중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백병규씨는 이번 판결을 두고 “무죄판결을 박근혜정부에서 받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어쨌든 무죄는 예정됐던 결과다. 뒤늦게라도 유신체제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치고 사회가 어두웠던 역사에 대해 매듭을 짓는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주진우 시사IN기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이명박 정부에서 해직당한 언론인들이 여전히 해직 신분인 상황을 가리키며 “현재를 돌아보면 여전히 착잡하다. 역사가 거꾸로 간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라 언론에 대한 폭압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밝혔다.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21년만에 재심 결정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10-19일자 기사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21년만에 재심 결정'을 퍼왔습니다.
"문서감정인 증언 중 일부가 허위로 드러나"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지난 1991년 당시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19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대법원은 이날 서울고등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한 검찰의 즉시항고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강기훈(48)씨 사건은 형사소송법 438조 1항에 의해 서울고법에서 재심소송 절차가 진행돼 유무죄 여부를 다시 판단하게 된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5월8일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전민련 사회국 부장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하자 검찰이 김씨의 동료이던 강기훈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이 유서를 대신 써줘 자살을 방조했다며 기소한 사건이다.

검찰은 당시 기소의 결정적 근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 결과를 제시했으며, 강씨는 징역 3년이 확정된 후 만기 출소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강씨의 유죄 근거가 된 필적 감정결과에 대해 "재심대상 판결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소속 문서감정인들의 증언 중 일부가 허위임이 증명됐다"고 밝혔다.

필적감정을 담당한 국과수 소속 감정인 김모씨와 양모씨는 재판에서 자신들을 포함해 4명이 돌아가면서 현미경 장비를 이용해 여러 차례 강씨의 필적자료와 유서를 세심히 비교 관찰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김씨, 양씨 외에 다른 두 명의 감정인들은 "김씨가 대부분 감정을 진행했고 자신들은 공동심의란에 서명한 것이 전부"라고 진술, 결국 김씨와 양씨의 증언이 허위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따라서 강씨의 재심 청구에 대해 "유죄를 인정할 만한 다른 증거 유무에 관계없이 허위 증언이 증명된 이상 형사소송법 420조 2호에 따라 소정의 재심사유가 있다고 본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강씨의 유서 대필 자체에 대해서는 국과수 감정결과와 진실화해위원회가 의뢰한 감정결과가 엇갈리는 만큼 판단을 보류했다.

재판부는 "`유서가 김기설씨의 필적과 동일하고 강씨의 필적으로 볼 수 없다'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감정의뢰 결과는 신빙성을 부여하거나 증거가치가 확실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이 감정의뢰 결과가 종전 국과수 감정결과보다 현저히 우월한 증거가치가 있다고 본 원심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앞서 강씨는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에 따라 2008년 1월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이 2009년 9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지만 검찰이 즉시항고함에 따라 지난 3년1개월간 대법원 심리가 진행돼 왔다.

강씨의 변호인단은 재심 청구서에서 "법원이 자살방조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 강씨 혐의를 모두 인정했으나 이 가운데 자살방조 혐의는 잘못된 증거와 증언에 기초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재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한국의 드레퓌스’, 유서대필 조작사건


이글은 대자보 2012-09-21일자 기사 '‘한국의 드레퓌스’,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퍼왔습니다. 
[우리의 주장] 대법원은 즉각적으로 ‘유서대필 조작사건’ 재심 개시하라

“수사 당시 검찰은 적어도 스스로 의도적으로 은폐한 각종 필적 자료와 세 사람이 작성한 업무일지가 한 사람이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건을 종결하고 수사를 그만두었어야 했다. 지금은 대법관이 된 강신욱 검사와 실무 총책임자였던 신상규 검사는 적어도 이미 1991년 6월말 경 검찰청 11층 조사실에서 ‘좀 무리는 있지만 여하간 한번 해보자(재판을 하자)’고 말했을 정도로 내 무고함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재판에서 검찰의 주장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만큼은 아니어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서’가 있는 한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의 드레퓌스’로 불리는 강기훈씨가 ‘유서대필 조작사건’에 대해 자신의 불로그에 쓴 글 중의 일부이다. 

1991년 5월8일. 김기설씨의 분신사건 이후 함께 일하던 동료의 자살을 도와주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강기훈씨. 금세 밝혀질 것 같았던 유서대필 사건의 진상은 구속, 수사, 재판, 대법원의 유죄확정 판결로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김기설씨 분신전후의 정황과 각종 증거, 경찰과 검찰의 수사기록, 법원의 재판 관련 서류 등을 검토해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다. 고등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2008년 무죄취지의 재심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항고해 대법원으로 넘겨졌다. 3년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 대법원은 특별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결정을 미루고 있다.

▲ 1991년 당시 고 김기설 씨가 남긴 유서와 강기훈 씨의 자술서 ©CBS노컷뉴스

21년 동안 고통과 분노를 감내하면서 한 순간도 용납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강기훈씨. 사실이 확연히 드러날 희망에 대한 기약도 없이 흘러온 세월의 무게에 지쳐갔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현재 간암으로 투병중이다. 지난해 간경화가 확인됐으나 올해 들어 간암으로 악화했다. 강 씨는 지난 4월 암세포 제거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부작용으로 폐수종이 발병해 아직 항암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태가 지속되면서 얻은 마음의 병이 육체의 병으로 확대됐다. 국가폭력에 의해 마음의 병과 육체의 병을 얻은 강씨가 어려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추악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간직한 검찰과 사법부는 역사의 멍에를 집어던질 의지가 없다. 검찰의 조작과 증거 은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엉터리 필적 감정, 사법부의 한심한 판결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사건이 마무리된 것처럼 주장한다. 정권의 안위를 위해 무고한 개인을 허위와 거짓의 덩어리로 덮어씌운 자들은 아직도 한 치의 반성도 없다. 게다가 당시 수사검사들은 대법관으로, 특수부장으로, 지청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수사검사의 상당수가 새누리당(한나라당)에 이력을 남겼다.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한 당시의 언론보도 ©<미디어오늘>
김기춘 검사는 박근혜 후보의 측근인 ‘7인회’ 멤버로 활동 중이다. 강신욱 당시 강력부장은 대법관을 지낸 뒤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역임했다. 남기준 검사 도 박근혜 캠프에서 클린검증 소위원장을 맡았다. 광상도 검사는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에 참여했다. 윤석만 검사는 올해 대전 지역에서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했으며, 박 후보를 지지하는 외곽 조직에 있다. 임철 검사는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강기훈씨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하며 이유없이 3년이상 진행되지 않는 재심개시를 촉구하는 범사회적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강기훈 모임’은 우선 지난 10일부터 매일 오전 8시30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희대의 조작극, 91년 유서대필사건, 억울한 누명 20년, 강기훈이 죽어간다!, 대법원은 즉각 재심개시를 결정하라!’는 내용이 쓰여진 피켓을 들고 나섰다. 이창복 전 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인재근 민주통합당 의원, 심상정 새진보정당추진회의 의원 등이 참석했다. 1인시위는 10월 8일까지 약 한달 간 진행된다. 

‘강기훈의 쾌유와 진실을 위한 후원콘서트’도 열린다. 10월 9일(화) 저녁 7시 30분 서울시립대 강당에서 안치환과 자유, 이은미, 조관우, 평화의 나무 합창단 등이 공연에 나선다. 이들 중 대부분은 무료로 출연한다. 콘서트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성근씨, 박래군씨, 정혜신씨 등이 토크에 나선다. 입장료는 후원금으로 3만원이다. 

사회 각계 원로인사들이 힘을 합쳐 대법원에 탄원서를 내는 운동도 진행중이다. 학계 언론계 문화계 종교계 등의 원로인사 50여명은 탄원서를 내기 위해 연명으로 서명을 받고 있다. 국회에서는 민주통합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법원의 재심개시 촉구 결의안을 추진중이다. 

“검찰과 사법부는 부끄러운 과거의 일을 숨기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은 심정으로 살아온 세월에 이젠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온전한 상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리고 그들 스스로 마음 깊은 곳에서 알고 있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이 그 때다.” 강기훈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에서 “사건의 피해자가 주는 기회와 아량은 더 이상 없을지 모른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이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즉각적인 재심개시 결정을 촉구한다. 강씨가 부르짖었듯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언론광장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단독]위헌판결난 ‘긴급조치’ 재심 1140명 ‘명예회복’ 기다린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17일자 기사 '[단독]위헌판결난 ‘긴급조치’ 재심 1140명 ‘명예회복’ 기다린다'를 퍼왔습니다.

1970년대 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된 1140명이 재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긴급조치 1~9호 위반 혐의로 공안당국이 사법처리한 사건만 500건을 훨씬 넘는다.

1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1974년 이후 긴급조치 1·3·4·9호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람은 589개 사건에 1140명으로 집계됐다. 기소된 사건은 대부분 유죄와 함께 징역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2010년 12월 대법원이 긴급조치 전반에 대해 위헌을 선고함에 따라 이 사건 관련자는 재심만 청구하면 모두 무죄가 선고된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1호가 민주주의의 본질인 표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 등을 심각하게 제한해 유신헌법에서도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또 “당시 국가가 중대한 위기상황이거나 국가 안위에 직접 위협을 받을 때가 아니었는데도 (근거 없이) 긴급조치를 발동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위헌 선고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26일 1974년 긴급조치 4호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최권행씨 등이 제기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은 박형규 목사의 재심도 지난 6일 무죄가 나왔다.

이 밖에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가 선고됐던 사건에 대해 재심이 속속 진행 중이다. 대법원의 위헌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긴급조치로 유죄를 받은 당사자들의 재심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국가의 고문이나 증거조작 증거를 찾아내야만 재심 신청이 가능했다.

그동안 대법원이 불법 증거를 찾아온 사람에게만 재심을 허가해오다 2010년 갑자기 전체 법률에 위헌을 선고한 것은 헌법재판소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당시 헌재가 긴급조치에 위헌을 선고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헌재가 긴급조치에 위헌을 선고하면 긴급조치 관련자 1140명을 재판한 대법원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현역 중 긴급조치 위반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사법부 출신 인사에는 양승태 대법원장과 이강국 헌재 소장, 김황식 국무총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범준·유정인·곽희양 기자 seirots@kyunghyang.com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인혁당 판결이 두 가지? 박근혜는 재심이 뭔지 모르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1일자 기사 '인혁당 판결이 두 가지? 박근혜는 재심이 뭔지 모르나'를 퍼왔습니다.
[이태경 칼럼] 실체적 진실 외면…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 위험하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박근혜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들은 무참했다. 그는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라고 언급한 후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박근혜의 이러한 인식은 5년 전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5년 전 인혁당 재건위 재심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이 난 후 박근혜는 "나에 대한 정치 공세라고 생각한다",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 된 것이고 이는 역사와 국민이 평가할 것"이라고 강변한 바 있다.

헌법에 대한 존중도, 사법체계에 대한 개념도 부재한 박근혜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박근혜의 인식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우선 박근혜에게는 헌법에 대한 존중이나 사법체계에 대한 개념이 부재하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유신헌법과 이에 터잡은 긴급조치인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이들을 이미 위헌으로 판단하고 있다. 유신헌법은 민주국가 원리, 법치국가 원리, 사회국가 원리를 기본 원리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정신과 이념과 가치를 철저히 배반한 반(反)헌법이었음에도 여전히 박근혜에게는 유효한 헌법인 것처럼 보인다. 이쯤되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수호하려고 하는 헌법이 어떤 헌법인지 정녕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CBS노컷뉴스

사법체계에 대한 박근혜의 무지도 짚어야 할 것 같다. 박근혜는 대한민국 사법체계 안에서 재심절차가 어떤 의미인지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재심(再審)은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확정판결의 당부를 다시 심리하는 절차다. 즉 기존의 확정판결이 재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확정된 재심판결이 법원의 최종판결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체계에 따르면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관련된 75년 대법원 판결은 무효이고 2007년 재심판결만이 유효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근혜는 무효인 판결과 유효한 판결을 등가(等價)로 취급하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들이 결여된 박근혜 

박근혜의 억지와는 달리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수사, 기소, 재판, 집행의 모든 형사절차가 위헌과 불법으로 점철된 사건이었다. 고문(拷問)-유신시대라고 해서 고문이 합헌이고 합법일리 없다-을 통해 얻어진 자백이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증거였고 도예종 등 8명은 사형이 확정되고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집행을 당했다. 도예종 등 8인은 박정희 정권의 필요에 의해 조작된 사건의 희생자들이었다. 이게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역사적 진실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근혜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고 유족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를 거부하고 있다. 아마 박근혜가 이런 고집을 부리는 데는 그 아비 박정희의 치세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이 멘털리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아버지 박정희와 대통령 박정희를 구분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태와 사건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대통령의 필수덕목 가운데 하나다.

헌법 수호의지, 법치주의와 사법체계에 대한 이해와 신뢰,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존중,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 사태와 사건에 대한 객관화 능력 등은 대한민국 12대 대통령이 꼭 지녀야 하는 덕목들이다. 박근혜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통해 이런 능력이 결손되어 있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이태경·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red1968@naver.com 

2012년 7월 5일 목요일

암 투병하며 누명 벗으려해도 대법원 때문에…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04일자 기사 '암 투병하며 누명 벗으려해도 대법원 때문에…'를 퍼왔습니다.

강기훈씨
‘유서대필 누명’ 강기훈
투병 중 탄원 “갈 길 먼데…
”21년전 유서대필 조작사건
억울한 옥살이 3년 치르고
18년만에 고법 “재심하라”
대법원, 3년째 결정 미뤄

19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강기훈(사진)씨의 변호인들이 4일 대법원에 의견서를 냈다. 간암 수술을 받은 강씨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어 제대로 법정에 서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 재심 결정을 3년째 미루고 있는 대법원이 서둘러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고통 속에 21년을 보내고 이제 육신의 건강마저 잃어버린 쉰살의 강씨에겐 마지막 탄원이 될 수 있다.변호인단은 의견서에서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재판장 이강원)가 2009년 9월15일 강씨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한 뒤 검찰이 대법원에 즉시항고를 한 것도 이제 2년10개월이 되어간다며, “본안에 대한 실체판단을 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대법원의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대법원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지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며 재판 진행을 협의하기 위한 재판부와의 면담을 신청했다.변호인단은 강씨의 건강 상태로는 더는 재심 결정을 미룰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강씨가 5월23일 간암 수술을 받은 뒤 심각한 합병증으로 다시 입원치료를 받았고, 간암이 재발하거나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2007년 11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일 가능성을 밝힌 뒤에도 강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재심을 통해 아들의 누명이 풀리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간암으로 별세했다”며 “진실의 문이 열릴 듯 열리지 않은 채 대법원에서 3년 가까이 사건이 방치되는 동안 강씨의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가 지속됐고, 결국 이것이 고스란히 간암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사건 일지

변호인단은 “무엇보다 강씨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에 대하여 진술할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힘들어하고 있다”며 “만에 하나 강씨의 건강이 더욱 악화돼 제대로 법정에서 변론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면 법원 역시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강씨는 이날 와의 통화에서 대법원의 재심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데 대해 “갈 길이 먼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잘못된 판결을 재심을 통해 바로잡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만만찮게 걸릴 것인데, 제가 그 시간까지 갈 수 있을는지조차 모르겠다”고 말했다.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이던 1991년 5월8일 노태우 정권에 반대해 서강대에서 분신자살한 김기설(당시 25살) 전민련 사회부장의 유서를 대필한 혐의로 옥고를 치렀으나, 이후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 2009년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대법원에 즉시항고했으며, 대법원은 현재까지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대법원 관계자는 “법률적 쟁점이 많아 여러 측면에서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며 “아직 결정 선고 기일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에 배당된 이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의 재심 결정 선고는 일러도 7월 말이나 8월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시효때문에 처벌 못해도, 사건 조작자 역사앞에 밝혀야”
 간암 합병증 고통받는 강기훈씨

유서대필 혐의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출소 이후인 지난 1998년 3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내 김기설씨의 묘소를 찾았다.(왼쪽) 1991년 6월, 강기훈씨가 검찰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강씨는 그해 5월 분신자살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를 받자 결백을 주장하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잘못된 판결 시정돼야 하는데
그때까지 내가 갈 수 있을지…

“갈 길이 먼데… 제가 그 시간까지 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스물아홉의 젊은이는 이제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쉰살의 환자가 됐다. 19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강기훈씨는 간암 수술 뒤 요양 치료를 위해 지방의 한 치유센터에 머물고 있다. 4일 (한겨레)와 전화통화를 한 강씨는 내내 힘들어하면서도, 사법부가 더는 시간을 끌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건강은 어떤가?

“별로 좋은 편은 아니다. 지난 5월23일 입원해 간 한쪽의 절반가량을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종양이 2개 나왔다. 6월11일 퇴원했는데 합병증이 도져서 6월27일 다시 입원해 어제 퇴원하고 여기로 내려왔다. 합병증은 간 정맥류인데, 처음엔 간 위쪽에서 터져서 피를 토했고 다음엔 간 아래쪽에서 터졌다. 이제 치료 시작이다.”

-언제 암에 걸린 것을 알았나?

“부모님이 모두 간암으로 돌아가신 뒤 3개월마다 시티(CT) 촬영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왔다. 1월엔 이상이 없었는데 4월 말에 이상이 나타났다. 정밀검사를 해보니 악성종양이었다. 즐겁게 지내야 암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강씨의 아버지는 2007년 11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뒤 재심을 통해 아들의 누명이 풀리는 것을 보지 못한 채 2008년 12월 간암으로 별세했다. 어머니도 간암이 뼈로 전이되면서 2010년 4월 별세했다. 강씨는 이런 일로 더욱 괴로워했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간암 발병은 가족력과 함께 이런 스트레스 때문으로 보인다.

-대법원의 재심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데?

“사법부가 재심의 기회를 기약 없이 봉쇄하고 있다. 공직자라면 공직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인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은 곤란하다. 어떻게 보면 내 몸 상태가 이 지경에 이르는 상황을 바라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사법부도 사건 조작에 책임이 있는 일종의 공범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사법부가 자기 잘못을 되돌릴 기회라고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미 고등법원에서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는데도 대법원이 아무런 이유 없이 시간을 끄는 것은 옳지 않다. 재심을 열라고 하는 것이니, 본안에 대한 판단은 재심에서 해도 되는 것 아니냐. 대법원이 쥐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나쁜 행동이다. 나중에 비판받지 말고 얼른 결정을 내려줬으면 한다. 시간이 없지 않은가.”

-재심 법정이 열리면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그건 정말 머나먼 얘기다. 갈 길이 먼데…. 이번 일은 나의 신원 문제뿐 아니라, 사건을 만들어내고 지휘한 사람들까지 조사해야 한다. 시효 때문에 처벌은 하지 못해도 누가 그렇게 사건을 조작했는지는 역사 앞에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갈 길이 멀다. 지금은 어떻게든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것까지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그것도 시간이 만만찮게 걸릴 텐데… 내가 그 시간까지 갈 수 있을는지조차 모르겠다.”강씨는 체력이 아직 살아나지 않아 걷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갈 길이 먼데…”라는 말을 거듭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6공 “유서 대신 써줘 분신종용” 민주화세력 매도
국과수 “김기설씨 유서 스스로 작성했다” 번복
진실화해위, 2007년에 “대필 아니다” 재심 물꼬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26일 명지대 1학년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자 전국 곳곳에서 대학생과 재야단체 인사들이 이에 항의해 잇따라 분신하는 이른바 ‘분신정국’이 이어졌고, 5월8일에는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유서를 남기고 몸에 불을 붙인 뒤 투신해 숨졌다. 그러자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은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려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고, 열흘 뒤인 5월18일 검찰은 “김기설씨의 유서와 가족이 제출한 김씨의 필적이 다르다”고 발표했다.검찰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쓴 인물로 강기훈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을 지목했고, 6월24일 강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노태우 정권은 “유서까지 대신 써주며 분신을 종용했다”고 민주화운동 세력을 매도하고 나섰다.강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이듬해 7월24일 대법원은 강씨에게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동안 이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1994년 8월17일 형기를 모두 채우고 출소한 강씨에게 명예회복의 기회를 열어준 것은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정리 작업이었다. 2005년 12월 경찰청 과거사위원회는 “(김기설씨의) 유서는 김씨 친필로 보이나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발표했다. 1991년 사건 당시 김씨의 유서 필적감정을 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김씨의 유서는 김씨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는 필적 재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당시 위원장 송기인)는 2007년 11월13일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쓰지 않았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국가에 재심을 권고했다. 강씨는 2008년 1월31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2009년 9월16일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이강원)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재판부는 “분신한 김기설씨의 유서가 김씨의 필적과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감정기관의 감정 결과가 나왔다”며 “유죄의 확정판결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는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하지만 강씨의 명예회복 노력은 검찰과 보수세력의 반발에 발목이 잡혔다. 서울고검 공판부(부장 임권수)는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해 대법원에 즉시항고했다. 대법원은 검찰의 즉시항고 이후 2년10개월이 지나도록 결정을 미루고 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2012년 6월 8일 금요일

[사설] 이석기·김재연 의원, ‘종북논쟁’ 악용 말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07일자 사설 '[사설] 이석기·김재연 의원, ‘종북논쟁’ 악용 말라'를 퍼왔습니다.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당기위원회가 경선부정 파문과 관련해 이석기·김재연 의원 등에 대한 제명 결정을 내렸으나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중앙당 당기위에 재심을 신청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루한 다툼 끝에 제명이 확정되더라도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남겠다는 생각이 확고해 보인다.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이나 책임감 따위와는 담을 쌓은 듯한 태도다.
이 의원 등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게 있다. 새누리당의 제명 추진 움직임이 옳지 않다고 해서 국회의원직에 머물러도 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선거부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훼손한 데 대한 책임있는 행동은 종북 논란과는 무관하게 피할 수 없는 의무다. 이 대목을 절대 혼동해선 안 된다.
새누리당이 진정으로 이석기 의원 등의 사퇴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을 해보면 답은 더욱 분명해진다. 지금 새누리당은 겉으로는 이 의원 등의 제명을 외치고 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이 의원 등이 버티면 버틸수록 유리하다며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다. 새누리당과 이석기 의원 등이 ‘적대적 공존 관계’에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이 의원이 박근혜 의원을 공격할수록 그 모습은 희화화되고 결과적으로 박 의원의 대선 가도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된다. 이 의원 등이 종북 논쟁을 방패막이 삼아 버티기를 계속하는 것은 이들의 표현 그대로 ‘이적행위’와 같은 것이다.
국회의원 배지만 단다고 해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자부심을 갖는 것은 국민의 힘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의원 등이 대표하는 국민은 몇 안 되는 주변의 구당권파 동료들뿐이다. 그런데도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귀를 꽁꽁 틀어막은 채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덤비니 혀를 찰 노릇이다. 앞으로 국회에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돼 끊임없이 정치적 시빗거리를 쏟아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 노릇을 온전히 할 리도 만무하다.
이석기·김재연 의원 등은 요즘 언론의 조명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래서 혹시 자신들이 ‘언론 스타’라도 된 듯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면에 웃음을 띤 이 의원의 여유있는 모습을 보면 이런 우려가 결코 지나치지 않다. 진보세력 전체를 곤경에 빠뜨린 데 대한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 의원 등은 하루빨리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 통합진보당의 혁신을 위한 한 알의 밀알로 남기 바란다.

2012년 3월 25일 일요일

캐나다 교수 “ISD, 한국은 우리 실수 반복말길”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3-21일자 기사 '캐나다 교수 “ISD, 한국은 우리 실수 반복말길”'을 퍼왔습니다.

FTA 깨어진 약속 ③ 재협상은 가능한가외국 법률가들 “한국법원이 ISD중재 재심할 수 있게 바꿔야”
2010년 8월31일 미국·영국·싱가포르 등 9개국의 법률가 53명이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검토해 폐기하거나 축소하고, 국내 사법제도를 강화해 투자자를 포함한 시민과 공동체에 이익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1960년대에 태어나 지난해까지 2676개 투자협정(BIT)에 도입됐지만, 중재사건이 급증한 것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이 발효된 1994년 이후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나라는 미국으로, 전체(390건)의 31.5%를 차지한다. 거스 밴 하튼 캐나다 요크대 교수(오스굿 홀 로스쿨)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본을 수출하는 국가인데다 문화적으로도 소송에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반대하는 국가들도 생겨났다. 오스트레일리아가 2004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이 제도를 제외시켰고, 브라질 의회는 입법주권을 제한하는 제도라며 투자협정의 비준 동의를 줄곧 거부하고 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포함된 투자협정 81건 가운데 독일·일본과의 협정을 제외한 79건을 국회 비준 절차 없이 행정부가 발효시킨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흑인과 백인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흑인우대정책이 2007년 다국적 기업의 공격을 받고 난 뒤에, 인도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공격으로 복제약 출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더는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또 미국 투자자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른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등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협약에서 잇따라 탈퇴했다.
이들 국가는 어떻게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맞설 수 있었을까? 는 지난달 2~10일 캐나다와 미국의 전문가 13명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국제환경단체인 ‘지구의 벗’의 윌리엄 워런 연구원은 “정부의 의지에 따라, 특히 선거 결과가 재협상이든 폐기든 결정한다”고 말했다. 캐나다 자동차 산별노조(CAW) 소속 경제학자인 짐 스탠퍼드는 “정부는 협정을 철회할 힘이 있지만 대기업으로부터 끊임없이 압박을 받고 있다. 국민이 크고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8년 캐나다 정부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며 집권했지만 여론이 잠잠해지자 1992년 나프타를 체결해 버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대해 미국 시민사회는 미국의 주 정부들이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토드 터커 연구원은 “대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며 “정치환경은 10년 전보다 우호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주 정부는 “한국의 사법제도가 발전돼 있다”며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자유무역협정처럼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제외하자”는 소수의견을 의회에 밝힌 바 있다.
“중재인 독립성 등 확보해 캐나다 실수 반복 말길”남아공·인도, ISD 수용 중지…에콰도르 등은 탈퇴대기업 규제 필요 인식 미 주정부도 재협상 우호적
하튼 교수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연구논문 ‘투자자-국가 소송제 개선’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처럼 중재인의 임기를 정하고 다국적 기업의 변호사를 겸임할 수 없도록 한다. 둘째, 무작위로 중재인을 선정해 당사자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한다. 현재는 양 당사자가 중재인을 1명씩 지명하고 의장을 맡을 나머지 한 명은 양쪽이 합의해 선임하기 때문이다. 셋째, 투자자의 무분별한 청구를 방지할 사전심사제를 도입한다. 이밖에도 캐나다 정부를 변호했던 스티븐 슈리브먼 변호사는 “중재 판정이 내려지면 국내 법원이 절차와 결과를 검토하고, 중재 판정을 뒤집을 수 있는 재심제를 도입하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하튼 교수는 “우리는 힘든 과정을 거쳐 교훈을 얻었다”며 “한국은 캐나다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처음부터 잘 해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워싱턴 오타와 토론토/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