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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9일 일요일

인권은 합동신문센터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글은 한겨레21 2013-05-13일자 제960호 기사 '인권은 합동신문센터 문턱을 넘지 못했다'를 퍼왔습니다.
[이슈추적] 탈북 공무원 간첩 사건 구속자 여동생이 밝힌 강압수사 실상독방 격리 후 회유·협박·폭행… 그곳의 시간은 여전히 유신시대

4월26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408호 법정, 잔뜩 주눅이 들어 방청석에 앉아 있던 26살 여성은 포승줄에 묶인 오빠 유아무개(32)씨를 보고선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을 본 오빠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남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1년부터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오빠 유씨는 지난 2월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와 2006년부터 수차례 밀입북하고 지난해까지 200여 명의 국내 거주 탈북자 정보를 북한 보위부 쪽에 넘겼다는 것이다. 유씨가 혐의를 줄기차게 부인하고 있는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은 뜻밖에도, 여동생이었다. 이날 법정에서는 지난 4월12일 오빠 유씨가 동생의 인신을 자유롭게 해달라며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제기한 인신구제청구 심문이 열렸다. 지난해 10월, 한국에 입국한 동생은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로 옮겨져 6개월 가까이 사실상 구금돼 있었다. 심문이 열리기 불과 이틀 전, 국정원은 유씨는 탈북자가 아니며, 비자 없이 입국해 체류자격이 없으니 5월23일까지 출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날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법정에 나온 동생은 선뜻 거취 결정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한국에 거주하는 지인 등과 전화 통화를 여러 차례 하고 나서야 국정원 직원 대신 오빠 쪽 변호인단을 따라나섰다. 4월27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폭행 및 회유, 협박을 당해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국정원이 유씨 남매가 탈북자로 인정받지 못해 강제 출국당할 수 있는 재북 화교라는 약점을 악용해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오빠 유씨는 2004년 부모와 여동생을 북에 남겨두고 홀로 중국으로 건너가 제3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입국한다. 그는 화교 신분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탈북 주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유씨는 북한 국적을 취득하진 않았지만 아버지와 자신이 모두 북한에서 나고 자라, 자신을 중국인이라기보다는 북한 사람으로 생각해왔다고 전했다. 지난 4월29일 기자와 만난 여동생 유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오빠와 함께 살기 위해 지난해 10월 그는 한국행을 택했다. 어머니가 숨진 이후 부녀는 중국으로 넘어온 상태였다. 동생 역시 북한이탈주민임을 인정받기 위해 중국 여권을 버리고 자신을 탈북자라고 신고한다.
모든 탈북자는 입국 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환 법률’(이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에 따라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임시보호시설인 합신센터에 수용돼 외부와 격리된 채 조사를 받는다. 진짜 탈북 주민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절차다. 보통 2~3개월간의 조사 뒤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으면, 하나원으로 옮겨져 사회적응 교육을 받게 된다.

» 북한이탈주민 남한사회 정착 교육시설인 하나원은 2009년에 개소 10주년을 맞았다. 당시 기념식에 참여한 교육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신원과 관련된 조사를 받은 뒤 하나원에 입소해 교육을 받는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재북 화교 약점 잡아 간첩 몰이”

한국 땅을 밟은 동생도 합신센터에 수용됐다. 그가 생활한 곳은 침대와 책상, 화장실이 있는 독방이었다. 방문은 밖에서 잠글 수 있는 구조다. 자유롭게 방문을 나설 수 없고, 방 내부에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돼 있었다. 가족과 전화를 할 수도, 만날 수도 없다. 오빠 쪽 변호인단도 동생을 찾아갔지만 접견할 수 없었다. 유씨가 재북 화교임이 드러난 건 조사 보름 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원은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대신 오빠의 행적에 대한 추궁이 시작됐다.
“오빠가 여러 차례 북에 다녀왔느냐고 물어봐서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증거가 있다며 왜 인정하지 않느냐, 똑바로 진술하라고 고함을 지르고 욕을 했다.” 조사 과정에서 직원이 던진 물건에 머리를 맞는 등 폭행이 있었다. 회유도 있었다. 국정원 쪽에서 “오빠도 다 자백했다. 오빠가 간첩이라고 해주면, 1∼2년만 형을 살고 나와 한국에서 같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 “김현희(대한항공 858기 폭파범)도 간첩이었지만 우리가 도와줘 잘 살고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유씨는 ‘큰삼촌’이라고 부른 국정원 직원이 건네준 내용을 자신이 손으로 쓰는 방식으로 거짓 진술서가 작성됐다고 전했다. 그는 오빠를 간첩으로 만든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독방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CCTV를 보고 달려온 직원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거짓말을 다시 번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 쪽에서 말을 뒤집으면 더 큰 죄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빠도 자백했어, 오빠 간첩 맞잖아?”

수사 과정에서 유씨는 ‘오빠가 간첩’이라는 동생의 진술을 전해듣는다. 그는 동생이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 같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국정원과 검찰에 동생과의 대질을 요구했지만, 끝내 대질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합동신문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낀 건 유씨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이 지난해 수도권 거주 북한이탈주민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펴낸 보고서 ‘북한이탈주민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보면, 172명(43.1%)이 ‘국정원 조사 기간에 직원의 언행에서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지난해 이 연구 결과가 공개되자 통일부와 경기도가 경위 파악에 나선 직후, 연구원 누리집에 올려진 조사 보고서가 삭제되기도 했다.
보고서를 보면, 탈북자들은 성별로 10명 정도가 한방을 사용하다 조사 순서가 되면 개인별로 한 사람씩 독방에 들어가 조사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못한다. 조사관은 북한에서의 출생과 성장과정·가족관계·학교·직업·고향 등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조서를 자세히 작성하며,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남한에 거주한 지 1년가량 된 한 50대 여성은 이런 상황을 ‘울어봤다 웃어봤다 별 생각 다 드는 힘든 일’로 기억한다. 또 다른 40대 여성은 조사 과정에서 기합을 받기도 했다. “사람이 이야기하다보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말을 잘못할 수도 있잖아요. 국정원 선생님이 화를 내시는 거예요. 서서 ‘일어서’ ‘앉아’ 막 이러더라고요. 죄인 취급을 하더라고요.” 보고서에는 “대부분의 심층면접 대상자들이 국정원에서의 조사 과정을 묻는 질문에 당시 일은 밖에 나가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각서를 쓰고 나왔다며, 말하기를 주저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2010년 합신센터 조사기간 180일로 연장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 시행령을 보면, 합동신문 조사 기간은 입국한 날로부터 최장 18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국정원은 이를 근거로 동생 유씨를 6개월가량 합신센터에 수용했다. 이에 대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임시보호시설인 합신센터에서의 조사는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에서 규정한 대로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범위로 제한돼야 하는데, 유씨를 장기 구금하면서 다른 형사사건의 참고인 조사를 하는 것은 시설의 목적을 넘어선다”며 “간첩을 잡기 위해서도 필요한 적법 절차는 지켜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2010년 통일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합동신문 조사 기간을 2배로 늘렸다. 탈북자 신분조사를 강화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조처에 대해 탈북자 단체들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위장 탈북자를 가려내는 문제는 조사 기법 개선 등 역량 강화로 해결해야지, 일률적으로 조사 기간을 늘리는 것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었다. 신낙균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당시 보도자료를 내어 “조사 기간이 2배로 늘어나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며 “통일부가 조사 기간을 종전대로 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씨의 변호인단은 간첩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소 내용을 뒤집는 사진과 증언 등을 추가로 공개했다. 공소장에는 그가 지난해 1월21일 중국에 도착한 뒤 1월22일 밤 북한으로 넘어가 아버지를 만나고 회령시 보위부 사무실에 들른 뒤 1월24일 중국으로 나왔다고 돼 있다. 변호인단은 유씨와 여동생, 아버지가 지난해 1월22일 중국 옌지에서 찍은 사진과 1월23일 노래방에서 유씨가 직접 휴대전화로 촬영했다는 여동생과 아버지의 사진을 공개했다. 노래방에는 재중동포 지인도 함께 있었다. 지난 4월29일에 만난 이 지인은 공소장에 적시된 날짜에 유씨가 북한을 다녀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생의 진술 외 다른 참고인들의 진술은 대부분 주관적 추측이나 전언이라고 변호인단은 설명했다.
국정원은 이런 주장에 대해 “회유나 협박을 통한 사건 조작이 있었다는 것은 허위 사실이다. 민변이 사과하지 않을 경우 허위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5월3일, 변호인단은 유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참고인의 직장에 국정원 직원들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사람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공권력의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적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모든 문제는 재판에서 제기하면 된다”고 밝혔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여성 탈북자는 약자 중의 약자”라고 지적하며 “민변과 국정원이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데, 둘 중 하나의 거짓말이 드러나면 법률적·정치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민변 사과 없으면 명예훼손 고소”

오빠 유씨는 화교라는 사실을 숨긴 채 한국에서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아 생활해왔다. 이 부분에 대한 법적 처벌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그는 간첩만은 아니라고 했다. 지난 5월1일, 구치소에 수감된 유씨를 접견한 김용민 변호사는 “유씨가 한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로, 간첩 누명이라도 벗어 하루빨리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살기만을 바란다”고 전했다. 합신센터에서 나온 동생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 전문의 치료를 받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3년 5월 15일 수요일

"청와대 수행 인턴은 노예…감금·폭행까지 감내해야"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14일자 기사 '"청와대 수행 인턴은 노예…감금·폭행까지 감내해야"'를 퍼왔습니다.
전직 '청와대 방미 수행' 인턴의 고백 "청와대 권위주의적 태도 문제"

이른바 '윤창중 쇼크'로 청와대 등 고위 관료들의 안하무인격인 태도가 논란이 되는 와중에, 과거 청와대 방미단을 수행했던 전직 주미한국문화원 인턴의 폭로가 주목받고 있다. 권위주의적인 청와대 관료들의 그간 행태에 비춰봤을 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추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심지어 인턴이 사실상 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전 주미한국문화원 인턴 A씨는 14일 MBC 라디오 (왕상한의 세계는 우리는)에 출연해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했을 때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한시적으로 인턴으로 채용돼 일한 적이 있었다"며 "인턴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막말로 심부름꾼 수준이었고, 심하게 표현하면 정말 노예 같은 일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창중) 전 대변인 관련 기사를 보면 술을 시켜달라거나 에어컨 펜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우니 호텔 측에 얘기해서 소리를 줄여달라고 했다는 기사들이 나오는데 정말 그런 일을 했다"며 "남자 인턴 같은 경우에는 대통령 전용기가 이착륙 하는 공군기지에서부터 청와대 수행원들의 짐을 호텔까지 실어오고 실어 나르는 일들까지 했다"고 말했다.


▲ <문화일보>에 재직했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그의 인선은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입길에 오르내렸다. 그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성추행 의혹'을 부인했지만, 이후 '엉덩이를 만졌고,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청와대 진술이 공개되면서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연합뉴스

A씨는 "더 본질적으로 화가 나는 것은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의 권위주의적인 태도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제가 겪었던 일이 있는데, 당시 수행하던 청와대 행정관님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저 인턴을 해고하라는 말씀을 했다"고 주장했다.

관련해 A씨는 "(청와대 모 ) 행정관님이 영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대학을 나오셨고 그대학교에서 학생회장까지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저는 (한국사람이 하는 식으로) 식으로 공통점을 찾으려고 '저희 아버지도 영국에서 공부하셔서 저도 그 근처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행정관님 듣기에 굉장히 불편했었나보더라. 그냥 예, 아니오 라는 말만 했어야 되는데 '나랑 동급으로 보느냐' 하는 식으로 굉장히 심기가 불편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청와대 서기관님께서 저를 찾아와서 골방에 문을 잠그고 저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욕설을 하고 '네가 아니어도 이 대사관에서 인턴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섰으니까 제대로 안 할 거면 나가라'는 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턴들 교육을 담당하는 대사관 직원이 있었는데 그 직원도 제가 있는 곳에 와서 문을 잠그고 밀폐된 공간에서 욕설하고 폭언을 하고 저한테 심지어는 페트병을 얼굴에 던지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에 대한) 피해자 여성 나이가 만 21세로 알고 있는데 저도 그 당시에 만 21세였다. 너무 어렸고 제가 잘못한 게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갑자기 막 폭언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혼이 나니까 굉장히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됐고,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며 "그 당시에는 그분들이 너무 무섭고 굉장히 관료사회의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셨고 해서 잘못했다고 울면서 빌었다"고 말했다.

윤 전 대변인이 인턴에게 술자리를 요구했다는 지적과 관련해 A씨는 "워낙 수행비서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오라 가라 이렇게 하면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며 "행정관님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문화홍보원 측에서 그렇게 혼이 나는 것을 옆에 인턴들을 봤기 때문에 더 그렇게 순응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인턴 교육을 받을 때 예, 아니오 라는 말 외에는 어떠한 말도 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고도 주장했다.


/박세열 기자

2013년 4월 29일 월요일

“국정원서 6개월 감금에 폭행·회유 거짓 증언, 큰삼촌이 살붙여 완성”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4-29일자 기사 '“국정원서 6개월 감금에 폭행·회유 거짓 증언, 큰삼촌이 살붙여 완성”'을 퍼왔습니다.

‘간첩조작 의혹’ 탈북 화교 공무원 여동생 주장 파문
국정원 “참고인 다수 증거 확보…폭행 등 사실 아냐”


* 큰삼촌 : 국정원 직원



이른바 ‘탈북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핵심 증인이 국가정보원에 의해 6개월간 불법 감금된 채 폭행 및 회유·협박을 당하고 거짓 증언을 강요받았다는 주장([한겨레] 27일치 6면)이 추가로 나왔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다 지난 2월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된 탈북 화교 유아무개(33)씨의 여동생인 유아무개(26)씨는 28일 (한겨레)와 만나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오빠의 간첩 혐의에 대해 조사받을 때 ‘큰삼촌’이라 불리는 (국정원) 직원이 제목이 쓰여 있는 종이를 건넸다. (내가) 거짓 증언을 대충 간단하게 쓰면 ‘큰삼촌’이 구체적으로 살을 붙여 컴퓨터로 쳐서 프린트해서 줬고, 그걸 보고 다시 (내가) 손으로 쓰는 식으로 증언이 완성됐다”고 털어놨다.

유씨는 또 “앞서 합신센터 조사반들이 오빠의 간첩 혐의를 표로 만들어 하나하나 인정하게 했고, 그러고 나서 큰삼촌 등 서울의 국정원 직원들이 와서 다시 이야기(오빠의 간첩 혐의)를 만들어갔다. 큰삼촌을 만난 지난해 12월 중순까지는 하루 4시간씩밖에 재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의 폭행·협박·회유 사실도 폭로했다. 유씨는 “(국정원) 직원이 머리를 때리고 몸을 차기도 했다. 협조하지 않으면 추방해버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국정원) 직원들이 오빠의 진술서라는 서류를 읽어주며 ‘오빠가 간첩활동을 했다’고 인정하라고 압박해 항변했지만, ‘오빠가 다 자백했다’는 (국정원 쪽) 말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 쪽이 ‘너만 인정하면 오빠가 1~2년만 형을 살고 한국에서 둘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여동생 유씨를 불법 구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씨는 지난해 10월30일 제주도로 입국해 합신센터로 옮겨졌다. 국정원은 조사 보름 만에 유씨가 재북 화교 출신임을 확인했지만, 6개월간 합신센터에 구금한 채 간첩 사건의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중국 국적인 경우 ‘합동신문센터 보호(수용) 대상’이 아니다. 유씨는 구금돼 있는 동안 중국에 있던 아버지와의 연락은 물론 변호사 접견도 허용되지 않았다. 유씨는 26일 풀려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꾸린 유씨의 공동변호인단은 “검찰의 공소사실은 여동생의 진술에 모두 기대고 있다. 오빠 유씨가 무죄임이 확실해졌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내어 “여동생 유씨의 진술에 따라 수사를 시작했지만 오빠 유씨의 주거지·사무실 압수수색 및 동향 탈북자 50여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에서 다수의 증거를 확보했다. 폭행 등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2013년 2월 10일 일요일

‘누나는 성폭행·아빠는 정신병원’ 살아남은 아이는 묻는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09일자 기사 '‘누나는 성폭행·아빠는 정신병원’ 살아남은 아이는 묻는다'를 퍼왔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의 생존자 한종선씨는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기 위해” 책 ‘살아남은 아이‘를 썼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시위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글쓰기를 권유한 게 계기가 됐다. 경북 구미에 사는 한씨는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국회 앞에 선다. 한겨레 탁기형 기자

[사람과사회] 531명 폭행·암매장 당한 형제복지원, 지옥 같은 기억을 자서전 (살아남은 아이)
피해자 한종선씨… 1988년 “감금은 무죄”라고 판결한 대법원 재판장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에게 “올바른 판결이었냐” 묻고 싶었지만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취침시간 중 감금한 것은 사회적 정당성이 인정된다.”1988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대법원은 감금죄에 대해 이렇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장은 총리 후보자로 지목됐던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었다. 민주통합당 이언주 대변인은 “‘부산판 도가니’라고 불리는 이 사건에서 재판장이 ‘사회적 약자의 상징’인 김 후보자라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총리 후보자에서 사퇴한 다음날인 1월30일,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38)씨는 “김 위원장이 국회 청문회에 나오면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는데”라며 그의 사퇴를 아쉬워했다.

살해돼 해부용으로 팔려간 주검

987년 전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인 부산 형제복지원(수용인원 3146명)에서 직원의 구타로 수용자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 조사 결과 복지원이 부랑아를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해 암매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12년 동안 무려 531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굶어 죽거나 맞아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주검은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선 게 사건의 배경이었다.한종선씨는 1984년, 9살 때 12살인 누나와 함께 복지원에 끌려갔다. 그로부터 3년 뒤 복지원이 폐쇄됐지만 그는 짐승의 눈빛과 끔찍한 기억을 지닌 아이가 됐다. 한씨의 누나는 성폭행을 당해 정신분열증을 얻었고 구두닦이였던 아버지 역시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자다가 복지원에 끌려온 뒤 지금까지 정신병원을 떠돌고 있다. 이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지난해 11월 펴낸 저서 (살아남은 아이)에서 한씨는 지옥과도 같은 삶을 증언했다. “우리들의 의복은 하얀색 팬티와 러닝셔츠, 감색 추리닝 한 벌, 그리고 검정 고무신이 전부였다. 몸이 꽝꽝 얼어붙는 추위가 겨울 내내 이어졌다. 거의 모든 원생들의 손과 발이 퉁퉁 부어 동상에 걸렸다. 우리는 항상 새벽 4시에 기상했다. 식단은 언제나 꽁보리밥에 생선 썩은 전어젓과 소금 뿌린 깍두기. 우리는 매일같이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새벽부터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돌았다.”형제복지원은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군대였다. 장기 복무 헌병 부사관 출신인 박인근 원장이 중대장-소대장-총무-조장-소대원을 지휘했다. 언제든지 그들의 자리를 교체할 수 있는 박 원장은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군기를 잡기 위해” 조장은 매일 때렸다. “때리는 조장들은 아무 꼬투리나 잡아서 때린다. 맞는 소대원들은 왜 맞는지도 모른 채 맞는다.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복지원을 맴돌았다. 한씨는 죽어나가는 원생들을 서너 번 정도 목격했다.복지원은 어린아이건 어른이건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아왔다. 국고보조금이 사람 수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갇힌 이들 중에는 밤늦게 귀가하던 회사원, 바람을 쐬러 나온 여성, 자갈치시장의 노점상, 농촌에서 흘러든 일용직 노동자, 심지어 국가보안법 위반자도 있었다. 자활 능력이 없는 사람은 10% 정도뿐이었다. 나머지는 멀쩡한 상태로 잡혀와 복지원에서 정신이상자가 되거나 지체장애인이 됐다. 한씨의 누나와 아버지처럼 말이다. 복지원은 운영자금 명목으로 1985년 18억원, 1986년 20억원 남짓을 중앙정부와 부산시에서 지원받았다.

박인근 한 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박인근 원장도 승승장구했다. 1981년 1월 장애자의 날 석류장을, 1984년 11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전두환 대통령에게서 받았고 전국부랑인복지시설연합회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던 1987년 1월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밝혀진다. 당시 울산지청 소속 김용원 검사(현 변호사)가 그해 1월16일 형제복지원을 압수수색했다. “교도소를 뺨치는 어머어마한 철문과 성곽 같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복지원의 원장실에서는 20억원이 넘는 각종 예금증서와 달러, 엔화가 쏟아졌다. 박 원장은 2년간의 국고보조금 39억원 가운데 11억원을 횡령했고 수용자들을 감금했음이 드러났다. 형제복지원은 폐쇄됐고 고아를 제외한 2천여 명이 한꺼번에 풀려났다. 인권유린의 피해자인데도 아무런 보상도, 재활 교육도 없었다.김 변호사는 1993년 펴낸 저서 (브레이크 없는 벤츠)에서 당시 외압에 시달렸음을 고백했다. 수사 검사는 원래 징역 20년을 구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검찰총장 등 ‘윗분들’은 징역 15년 혹은 징역 10년을 요구했다. 횡령 액수도 6억원으로 축소해야 했다. 1987년 6월 검찰은 박 원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6억원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징역 10년과 벌금 6억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박 원장의 형량이 점점 줄어들었다. 대법원이 감금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두 차례나 원심을 파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장은 1987년 11월 1차 항소심에서 벌금이 사라진 징역 4년을 선고받더니 1988년 7월 2차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88년 3차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한 사건이 일곱 번의 재판을 거치는 사이 원장에 대한 형량은 당초의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원장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감금한 행위는 대법원의 고집에 의해서 무죄로 확정됐다.”([브레이크 없는 벤츠]에서) “대법원의 고집”에는 김용준 위원장도 당연히 포함된다.한종선씨는 “감금은 폭행·살인을 증명하는 첫 단추였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그걸 무죄로 만드니까 폭행·살인죄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인권유린이 분명히 있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김용준 위원장이 청문회에 서면 ‘당시 무죄를 선고한 게 올바른 판결이었다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 대답마저도 이제 못 듣게 됐다.” 그는 또 당시 형제복지원의 감금이 불법이 아니었다면 정부가 왜 시설을 폐쇄하고 수용자를 풀어줬느냐고 반문했다.

지금도 복지재단 운영하는 박인근 일가

벌금도 선고받지 않고 2년6개월 만에 풀려난 박인근 원장은 재기했다. 법인의 이름만 수차례 바꿔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지원재단’이 됐다. 1929년생인 박 원장은 2011년 4월7일까지 형제재단의 이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3남 박천광(37)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박인근 원장은 2008년 8월 ‘대안학교’인 신영중·고교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2010년 12월 첫째딸에게 넘겼다.“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기 위해” 책을 썼다는 한종선씨가 말한다. “도가니 사건이 지금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부터 바로잡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법치국가라면 피해자가 겪고 있는 고통의 반만이라도 가해자가 죄를 씻을 수 있도록 벌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표창원 경찰대교수 “국정원 김씨 감금 아닌, 불법 의혹 시민감시행동”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2-16일자 기사 '표창원 경찰대교수 “국정원 김씨 감금 아닌, 불법 의혹 시민감시행동”'을 퍼왔습니다.
“김씨, ‘민간인’ 아니라 국정원 요원으로서의 불법활동 의심받는 상황”

ⓒ뉴시스 표창원 경찰대학교 교수(자료사진)

표창원 경찰대 교수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관련 "20대 젊은 미혼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측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올려 관심이 쏠리고 있다.

표 교수는 15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과연 국정원 '김씨'는 '보호가 필요한 약자'였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질 게 없는 최정예 요원들"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대상자 김씨는 해당 오피스텔을 '침식을 위한 주거'라기보다 '재택근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루 2~3시간 외출 외에는 주로 해당 오피스텔 안에 있었으니까"라고 설명했다. 

표 교수는 "당시 김씨의 상황은 근무 후 사적인 거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민간인' 상태가 아니라, 정예 국가정보요원이 민간에 신분과 활동이 노출됐고, 그 활동이 합법적인 것이 아닌 불법·인권침해적인 활동이라고 의심받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때 김씨는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임무수행중인 국가 최정예 정보요원'"이라며 "만약, 김씨의 상태가 합법적인 업무 수행 중이었다면, 김씨에 대한 민간인들의 미행이나 감시, 제지 등의 행동은 '공무집행방해'를 구성할 것이다. 위계나 폭력이 없다면 공무집행방해도 구성될 수 없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밖에 있는 사람들이 '사실상의 감금'을 했다고 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불법행위 의심받는 국가정보원 직원이 도주나 증거인멸할까봐' 감시하고 대기하는 '시민행동'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같은 국가공무원인 경찰과 선관위 직원이 진입 및 면담, 조사 등을 요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가공무원의 성실의무와 공직선거법 상의 수인의무 등을 준수했다면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번에 발생한 대치상황은 문 밖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한 '사실상의 감금'이 아니라 (국정원 직원 김씨) 스스로가 중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적법 조사에 불응하고 은닉·증거인멸 의심을 사고 있는 '사실상의 도주' 상황이라고 봐야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표 교수는 "인권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 침해'의 방지이다. 그 '침해의 방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 등 '강자에 의해 약자가 침해받는 상황'인 것"이라며 "국가권력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민간의 방어활동을 인권침해라고 주장한다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희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들의 '인권' 주장에는 '우리 편', '내 편'의 인권을, 그것도 다른 문제를 피하기 위한 '구단'이자 '방편'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밝혔다. 

"민간에 의한 공무원 사찰? 민간의 국가권력 감시는 당연한 '시민의 권리'""공개된 장소에 오빠와 부모를 부른다… 세상 어느 나라 정보요원이 그렇게 하나?"

표 교수는 또한 일부의 '민간에 의한 공무원 사찰' 주장에 대해선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개념"이라며 "비유하자면, '사자를 잡아먹겠다고 위협하는 토끼' 정도 되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법상 국가권력의 민간인 사찰은 불법이지만, 민간인에 의한 국가권력 감시는 너무나도 당연한 '시민의 권리'"라고 밝혔다.

더불어 "만약 (공무집행방해죄가) 구성된다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 현행범 체포 등 집행을 했었어야 한다"며 "(아니면) 최근에 경범죄처벌법에 신설된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니 지구대 경찰관에게 신고해 8만원의 범칙금 고지서를 발부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권침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표 교수는 김씨가 자신의 오빠 등 가족을 부른 것에 대해선 "무언가 숨기려는 다급하고 비상식적인, 불안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은 물론, 가족의 신원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할 정보요원이 공개된 장소, 수많은 기자와 사람들이 운집한 곳에 오빠와 부모를 부른다…. 세상 어느 나라 정보요원이 이렇게 합니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출된 가족이 북한이나 적대세력의 표적이 되길 바라는 건가?"라고 반문하며 "만약에, 오빠와 가족을 부르라는 것이 그녀의 상관 지시였다면… 언급을 생략하겠다"고 덧붙였다.

표 교수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인권침해 드립', 지난 아프간 억류 한국인 22명 인질 구조 뒤, 국정원장과 정보요원이 선글라스 끼고 공개적으로 사진 찍고 과시하며 국제적으로 신분을 노출한 이래 두 번째로 보는 너무나도 슬픈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최명규 기자 press@v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