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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0일 목요일

미안해요. 밀양 그리고 할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29일자 기사 '미안해요. 밀양 그리고 할매'를 퍼왔습니다.
[지금 인권하고 계세요?] 탈핵 희망버스를 다녀와

밀양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매일 터지는 사고와 사건 사이에서, 근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제대로 풀리지 않는데 밀양에서 벌어지는 사연을 그만큼 알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력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신고리 원전 3호기를 돌리기 위해 한전이 지랄을 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와중에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 자살하셨다. 마음이 늘 아프다. 여기까지. 솔직히 그랬다. 이치우 어르신 돌아가시고 이계삼 선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송전탑 싸움을 한다는 소식, 재개된 공사를 막느라 할매들 할배들이 또 고생한다는 소식, 하늘로 뜨는 헬기를 맨손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를 모두 풍문으로 들었다. 응원했지만 밀양으로 떠나는 탈핵 버스 한번을 타지 못했다.

▲ 밀양 송전탑 사태 현장 (다산인권센터 제공)

그런데 지난 20일 재개된 공사 소식부터 마음의 불안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공사를 막느라 옷을 벗어던진 할매들 사진을 본 후 부터였나 보다. 그들의 앙상한 알몸에서 비명을 들었다. 아니 그러한 비명은 귀로 눈으로 들리거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쾅하고 울리는 소리 같다. 밀양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에서 몇 줄 읽고, 사진을 보고 동영상을 훑으면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 탈핵 희망버스 일행들과 현장에 다녀왔다. 가서라도 죄의식같이 쌓이는 불안을 회피하고 싶었다.
자정 넘어 도착한 숙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새벽 3시면 현장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눈을 붙이라고 한다. 때 모르고 찾아온 여름 감기 덕분에 감기약 기운으로 뒤척이면서도 잠을 잘 수 있었다. 현장들이 깊은 숲 속에 있기 때문에 일행들은 새벽 3시에 한번, 새벽 5시에 한번 차량에 나누어 출발하고 도착했다. 내가 도착한 현장은 단장면 송전탑 89호 현장. 단장면에만 4개의 현장이 있다고 한다. 현장으로 가는 길들은 감탄을 금할 수 없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다. 공사장이 가까워지자 한전에서 써 붙인 현수막이 보인다. 주민들이 저 현수막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싶어졌다.


▲ 밀양 송전탑 사태 현장(다산인권센터 제공)

거대한 포크레인 두 대가 이른 아침햇살에 이미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할매들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포크레인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계셨다. 한전의 공사가 오전 8시쯤이면 시작된다는 말이 오갔다. 할매 한분의 옆에 앉아보았다. 현장 싸움에는 제법 이력도 있으니 오늘 하루 할매들을 지켜주는 일쯤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싸움이 시작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셨는지 할매는 목에 밧줄을 묶기 시작했다. 건너편에 앉아계시던 할매가 그런다. “벌써부터 눈물 흘리면 우얄라꼬 그라노” 아니나 다를까 내 옆 할매가 깊은 주름 사이에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가 살다가 이런 일을 다 당한다. 왜 이런 일을 당하나 생각하니까 자꾸 눈물이 난다. 이래 당해도 경찰서에서 오라 칸다. 근데 내가 지은 죄가 없으니까 하나도 안 무섭데. 내가 뭐 죄지었나. 나는 이래 쇠덩이를 탕탕 친거빡에 더 있나?”그러면서도 눈물은 그치지가 않는다. “이제 정말 살만하다 싶었다. 내 땅도 사고 농사 잘 지어서 자식새끼들한테 그거 하나 물려주게 됐는데, 근데 이런 일이 생겼다”. 건너편 할매는 “그래서 그 꼴 안볼라꼬 우리 영감 작년에 훅 안가뿥나”. 할매들은 와중에도 와르르 웃음을 웃는다. “오늘 저것들 오면 여기서 구불러 버릴까. 그람 좀 나을라나...”

▲ 밀양 송전탑 사태 현장 (다산인권센터 제공)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이야기 사이에 85호 현장에 사람이 적다고 그쪽으로 가라고 한다. 엉덩이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나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한 할매가 그런다. “에고야, 가나. 마음이 든든했는데...”다시 앉아 할매를 꼭 안아주었다. “할머니 내가 진짜 잘싸우는 거 한눈에 알아보시네. 저쪽이 더 위험하다니까 그쪽 가서 잘 막아줄께요. 여기는 괜찮다고 하니까, 그리고 사람들 많으니까 너무 걱정마세요.”아마도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햇빛 가림막 하나 없이 쏟아지는 밀양의 뜨거운 햇살. 수십년을 묵직히 자라온 나무 밑둥조차 산산히 파헤친 흙먼지만 날리는 공사현장의 마른 바람만 아니었다면 들켜 버렸을 만큼.


85호 현장에는 이미 단단하게 목을 묶은 할매 세분이 포크레인 밑을 지키고 계셨다. 탈핵 희망버스 덕분인지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을법한 시간인데, 분위기는 차분하다. 할매들도 목에 묶인 밧줄 따위는 아랑곳없이 수다를 떨고 계신다. 인근에서 온 듯한 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총각 하나가 할매들의 말벗이 되어 주고 있었다.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이고 감기약 기운에 벗어나지 못한 탓에 현장 바닥에 널부러져 한참을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했다. 몇 시쯤이었을까. 오늘 하루 공사가 없다는 한전의 통보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자 마자 할매들은 목에 감았던 밧줄을 훌렁 벗는다. 그리고 일어나, 농성 온 사람들의 점심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상의하러 84호 현장에 다녀오신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 공사가 중단되었다. 아니 이틀째도 떠나지 않은 탈핵 희망버스 사람들이 있어 이틀 동안 공사는 없었다. 그러나 월요일이 되자 공사는 바로 재개 되었다. 들렀던 89호 현장과 85호 현장에도 공사인부들이 들이닥쳤다는 속보를 들었다. 마음이, 무너졌다.


더 이상 밀양은 적당히 아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목에 밧줄을 묶는 순간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옆에 앉기만 해도 든든하다고 말해주던 할매가 있는 곳이다. 자식새끼 밥먹이듯 구부정한 허리를 펴지도 않고 밥챙기는 할매가 있는 곳이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 꽃이 되어 버렸으니,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밀양에 대해 어떤 소식을 담을까 생각하다가 솔직한 마음을 담아야 겠다 생각했다. 밀양이 그랬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내가 살던 곳에서 그렇게 살다가 죽고 싶은 맨몸의 정직한 소리가 있었다. 한전이, 경찰이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비참한 현실과 치열한 무엇을 말하지 않아도, 그곳에는 그냥 우리가 지켜야할 할매들이 있다는 것이 지금 중요하다.


밀양 4개 면에 10개의 현장이 있다. 만약 누군가 단장면 89호 현장의 지킴이, 그곳 주민들과 자매결연이라도 맺어서 되는 만큼 찾아가고, 또 다른 사람들과 찾아가고...그래서 할매들을 보듬어 외롭지 않게, 힘을 보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도시에서 소모하고 도시에서 누리는 편리와 풍요를 위해 시골 노인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이때, 우리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찾아가면 어떨까. 첩첩 산중에 한전 직원들과 할매들만 남겨 두고 싶지 않다. 밀양에서 부는 바람은 너무 많이 갖고 너무 많이 소비하고 살아온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기만 한 할매들. 할배들을 지켜달라.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할 인간에 대한 예의이며, 도리다.


그렇게 감히 밀양에 대해서, 나는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박진/다산인권센터 활동가  |  webmaster@mediaus.co.kr

2013년 5월 19일 일요일

인권은 합동신문센터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글은 한겨레21 2013-05-13일자 제960호 기사 '인권은 합동신문센터 문턱을 넘지 못했다'를 퍼왔습니다.
[이슈추적] 탈북 공무원 간첩 사건 구속자 여동생이 밝힌 강압수사 실상독방 격리 후 회유·협박·폭행… 그곳의 시간은 여전히 유신시대

4월26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408호 법정, 잔뜩 주눅이 들어 방청석에 앉아 있던 26살 여성은 포승줄에 묶인 오빠 유아무개(32)씨를 보고선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을 본 오빠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남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1년부터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오빠 유씨는 지난 2월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특수잠입·탈출, 회합·통신)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와 2006년부터 수차례 밀입북하고 지난해까지 200여 명의 국내 거주 탈북자 정보를 북한 보위부 쪽에 넘겼다는 것이다. 유씨가 혐의를 줄기차게 부인하고 있는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은 뜻밖에도, 여동생이었다. 이날 법정에서는 지난 4월12일 오빠 유씨가 동생의 인신을 자유롭게 해달라며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제기한 인신구제청구 심문이 열렸다. 지난해 10월, 한국에 입국한 동생은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로 옮겨져 6개월 가까이 사실상 구금돼 있었다. 심문이 열리기 불과 이틀 전, 국정원은 유씨는 탈북자가 아니며, 비자 없이 입국해 체류자격이 없으니 5월23일까지 출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날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법정에 나온 동생은 선뜻 거취 결정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한국에 거주하는 지인 등과 전화 통화를 여러 차례 하고 나서야 국정원 직원 대신 오빠 쪽 변호인단을 따라나섰다. 4월27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폭행 및 회유, 협박을 당해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국정원이 유씨 남매가 탈북자로 인정받지 못해 강제 출국당할 수 있는 재북 화교라는 약점을 악용해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오빠 유씨는 2004년 부모와 여동생을 북에 남겨두고 홀로 중국으로 건너가 제3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입국한다. 그는 화교 신분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탈북 주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유씨는 북한 국적을 취득하진 않았지만 아버지와 자신이 모두 북한에서 나고 자라, 자신을 중국인이라기보다는 북한 사람으로 생각해왔다고 전했다. 지난 4월29일 기자와 만난 여동생 유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오빠와 함께 살기 위해 지난해 10월 그는 한국행을 택했다. 어머니가 숨진 이후 부녀는 중국으로 넘어온 상태였다. 동생 역시 북한이탈주민임을 인정받기 위해 중국 여권을 버리고 자신을 탈북자라고 신고한다.
모든 탈북자는 입국 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환 법률’(이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에 따라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임시보호시설인 합신센터에 수용돼 외부와 격리된 채 조사를 받는다. 진짜 탈북 주민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절차다. 보통 2~3개월간의 조사 뒤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으면, 하나원으로 옮겨져 사회적응 교육을 받게 된다.

» 북한이탈주민 남한사회 정착 교육시설인 하나원은 2009년에 개소 10주년을 맞았다. 당시 기념식에 참여한 교육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신원과 관련된 조사를 받은 뒤 하나원에 입소해 교육을 받는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재북 화교 약점 잡아 간첩 몰이”

한국 땅을 밟은 동생도 합신센터에 수용됐다. 그가 생활한 곳은 침대와 책상, 화장실이 있는 독방이었다. 방문은 밖에서 잠글 수 있는 구조다. 자유롭게 방문을 나설 수 없고, 방 내부에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돼 있었다. 가족과 전화를 할 수도, 만날 수도 없다. 오빠 쪽 변호인단도 동생을 찾아갔지만 접견할 수 없었다. 유씨가 재북 화교임이 드러난 건 조사 보름 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원은 그를 내보내지 않았다. 대신 오빠의 행적에 대한 추궁이 시작됐다.
“오빠가 여러 차례 북에 다녀왔느냐고 물어봐서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증거가 있다며 왜 인정하지 않느냐, 똑바로 진술하라고 고함을 지르고 욕을 했다.” 조사 과정에서 직원이 던진 물건에 머리를 맞는 등 폭행이 있었다. 회유도 있었다. 국정원 쪽에서 “오빠도 다 자백했다. 오빠가 간첩이라고 해주면, 1∼2년만 형을 살고 나와 한국에서 같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 “김현희(대한항공 858기 폭파범)도 간첩이었지만 우리가 도와줘 잘 살고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유씨는 ‘큰삼촌’이라고 부른 국정원 직원이 건네준 내용을 자신이 손으로 쓰는 방식으로 거짓 진술서가 작성됐다고 전했다. 그는 오빠를 간첩으로 만든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독방에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CCTV를 보고 달려온 직원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거짓말을 다시 번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 쪽에서 말을 뒤집으면 더 큰 죄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빠도 자백했어, 오빠 간첩 맞잖아?”

수사 과정에서 유씨는 ‘오빠가 간첩’이라는 동생의 진술을 전해듣는다. 그는 동생이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 같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국정원과 검찰에 동생과의 대질을 요구했지만, 끝내 대질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합동신문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낀 건 유씨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이 지난해 수도권 거주 북한이탈주민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펴낸 보고서 ‘북한이탈주민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보면, 172명(43.1%)이 ‘국정원 조사 기간에 직원의 언행에서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지난해 이 연구 결과가 공개되자 통일부와 경기도가 경위 파악에 나선 직후, 연구원 누리집에 올려진 조사 보고서가 삭제되기도 했다.
보고서를 보면, 탈북자들은 성별로 10명 정도가 한방을 사용하다 조사 순서가 되면 개인별로 한 사람씩 독방에 들어가 조사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못한다. 조사관은 북한에서의 출생과 성장과정·가족관계·학교·직업·고향 등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조서를 자세히 작성하며,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남한에 거주한 지 1년가량 된 한 50대 여성은 이런 상황을 ‘울어봤다 웃어봤다 별 생각 다 드는 힘든 일’로 기억한다. 또 다른 40대 여성은 조사 과정에서 기합을 받기도 했다. “사람이 이야기하다보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말을 잘못할 수도 있잖아요. 국정원 선생님이 화를 내시는 거예요. 서서 ‘일어서’ ‘앉아’ 막 이러더라고요. 죄인 취급을 하더라고요.” 보고서에는 “대부분의 심층면접 대상자들이 국정원에서의 조사 과정을 묻는 질문에 당시 일은 밖에 나가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각서를 쓰고 나왔다며, 말하기를 주저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2010년 합신센터 조사기간 180일로 연장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 시행령을 보면, 합동신문 조사 기간은 입국한 날로부터 최장 18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국정원은 이를 근거로 동생 유씨를 6개월가량 합신센터에 수용했다. 이에 대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임시보호시설인 합신센터에서의 조사는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에서 규정한 대로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범위로 제한돼야 하는데, 유씨를 장기 구금하면서 다른 형사사건의 참고인 조사를 하는 것은 시설의 목적을 넘어선다”며 “간첩을 잡기 위해서도 필요한 적법 절차는 지켜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2010년 통일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합동신문 조사 기간을 2배로 늘렸다. 탈북자 신분조사를 강화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조처에 대해 탈북자 단체들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위장 탈북자를 가려내는 문제는 조사 기법 개선 등 역량 강화로 해결해야지, 일률적으로 조사 기간을 늘리는 것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었다. 신낙균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당시 보도자료를 내어 “조사 기간이 2배로 늘어나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며 “통일부가 조사 기간을 종전대로 돌려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씨의 변호인단은 간첩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기소 내용을 뒤집는 사진과 증언 등을 추가로 공개했다. 공소장에는 그가 지난해 1월21일 중국에 도착한 뒤 1월22일 밤 북한으로 넘어가 아버지를 만나고 회령시 보위부 사무실에 들른 뒤 1월24일 중국으로 나왔다고 돼 있다. 변호인단은 유씨와 여동생, 아버지가 지난해 1월22일 중국 옌지에서 찍은 사진과 1월23일 노래방에서 유씨가 직접 휴대전화로 촬영했다는 여동생과 아버지의 사진을 공개했다. 노래방에는 재중동포 지인도 함께 있었다. 지난 4월29일에 만난 이 지인은 공소장에 적시된 날짜에 유씨가 북한을 다녀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생의 진술 외 다른 참고인들의 진술은 대부분 주관적 추측이나 전언이라고 변호인단은 설명했다.
국정원은 이런 주장에 대해 “회유나 협박을 통한 사건 조작이 있었다는 것은 허위 사실이다. 민변이 사과하지 않을 경우 허위 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5월3일, 변호인단은 유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참고인의 직장에 국정원 직원들이 찾아왔다고 전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사람에 대해 이런 식으로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공권력의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적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모든 문제는 재판에서 제기하면 된다”고 밝혔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여성 탈북자는 약자 중의 약자”라고 지적하며 “민변과 국정원이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데, 둘 중 하나의 거짓말이 드러나면 법률적·정치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민변 사과 없으면 명예훼손 고소”

오빠 유씨는 화교라는 사실을 숨긴 채 한국에서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받아 생활해왔다. 이 부분에 대한 법적 처벌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그는 간첩만은 아니라고 했다. 지난 5월1일, 구치소에 수감된 유씨를 접견한 김용민 변호사는 “유씨가 한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로, 간첩 누명이라도 벗어 하루빨리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살기만을 바란다”고 전했다. 합신센터에서 나온 동생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 전문의 치료를 받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3년 4월 28일 일요일

기독교인 사람 차별 슬프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 조현기자 블로그 2013-04-25일자 기사 '기독교인 사람 차별 슬프다'를 퍼왔습니다.



구약성경 연구 권위자 주원준 박사
‘차별금지법 반대’ 보수기독교계
동성애자 수용 쉽지는 않겠지만
시민법적 차별 할 순 없는 노릇

고대 이스라엘인은 배타성 아닌
상대 신까지 포용하며 복음전파
우리 교계 외형보다 교양 키울때



국회에서 준비중이던 차별금지법안이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로 무력화됐다. 법안에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다. 법안 반대를 주도한 보수 기독교인들에겐 평등과 인권을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보다 유대의 율법이 우선시된다. 그러면 과연 고대 유대인들은 어땠을까.

한국가톨릭학술상 수상작인 (구약성경과 신들)(한님성서연구소 펴냄)의 지은이인 주원준(45) 박사를 만났다. 독일의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9년간 구약학과 고대근동언어를 공부하고 온 그는 서강대에서 구약성서와 히브리어, 고대 근동종교를 강의중이다.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서 신학교에선 손도 대지못하는 고대의 문서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주 박사는 차별금지법 논란에 대해 “예수가 안식일에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밀밭을 지나가다가 밀이삭을 뜯어먹자 바리새인들이 맹비난하며 죽음으로 몰아갔다. 당시 예수는 사람을 살리는 게 율법이라고 했다. 그 이후 기독교는 유대교와 달리 율법의 절대화에서 벗어나 상대화했는데, ‘유대의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기독교에서 율법을 고대의 바리새인처럼 적용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를 교회에서 받아들이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사형수에게도 복음적이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시민법적 차별을 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고 덧붙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차별금지법 발의 의원과 정당에 대해 낙선운동, 정당 해체까지 거론하는 등 반대운동이 격렬해지고 있다. 보수 교회와 단체가 모인 ‘차별금지법반대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 법안이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국가정체성에 혼란을 준다며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주 박사는 히브리어와 근동언어로 직접 구약과 고대 문건을 읽는 전문가답게 한발 더 나아간다.

“구약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은 고대에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로마 등 강대국에 눌려 살던 만년 약소국이었다. 그들 틈에서 장사를 해 살아남아야 했기에 주변국 사람들이 믿는 신과 문화를 이해하며 신용을 쌓아야 했다.”

이스라엘은 아주 작은 나라여서 주변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영향을 받는 나라였다. 그렇기에 인근 지역의 신들의 표상까지 폭넓게 소화해 영성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배타성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열린 영성, 소통의 영성으로 야훼신앙을 지켜나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현재 보수 기독교를 지탱해주는 배타적 신앙은 16세기에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악마의 우두머리’ 정도로만 인식되는 바알신에 대해서도 학자적 해석을 제공한다.

“바알은 메마른 팔레스타인 지역에 비를 내리게 해 곡물이 자라고 가축이 새끼를 낳게 하고 풍요와 돈을 가져다주며, 성적 능력까지 갖춘 신이다. 그러니 얼마나 매력적이었겠는가.”

그는 “자기 희생의 본질보다는 교회에 다니면 복을 받는다는 구복신앙들이 과연 누구를 믿는 신앙이겠느냐”는 물음으로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돈과 권력을 탐하며 살아가는 세속과 달리 교회는 헌신과 사랑을 강조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교회도 이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한국에서 가톨릭이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처음부터 함께 추구한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평신도 신학자가 절반을 차지하는 독일의 신학교들과 달리 평신도에겐 교직 한자리 나눠주지 않는 성직자 위주의 분위기와 세속화를 염려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왜일까.

“성당에서 높은 직책을 맡은 평신도들 가운데 성직자에겐 보스 모시듯 수그리고 평신도들 위에 군림하며 막 대하는 게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 내 세속주의·출세주의’를 비판하며, “그렇게 하면 교회 안에서 출세할 수는 있겠지만 예수의 제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한 메시지를 교회다운 교회로 회귀시키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주로 성직자를 향한 것이지만 그는 평신도에게도 절실하다고 본다.

“한국 가톨릭은 신자가 불어나고 외형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미사에 나가고, 돈 내고, 사제에게 밥 사주는 신앙은 잘하지만, ‘그리스도교 교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정착되지 못했다.”

주 박사는 “선교 300년을 앞두고 있으니 이제 성직자만이 아니라 신자 자신이 복음에 따라 살고, 수입의 일정 금액 정도는 나누는 데 쓰고, 억울한 사람은 만들지 않고 도우며, 복음적 다큐멘터리를 보고 독서를 하는 ‘그리스도적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영성, 수행, 치유, 공동체에 대한 글을 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누리꾼들에 의해 ‘인문교양도서’ 1위에 뽑혔다. 기독교 숨은 영성가를 발굴한 (울림)은 감신대, 서울신대, 장신대, 한신대의 ‘100대 교양 필독도서’. (은둔)이 불교출판문화상과 올해의 불서상을, (하늘이 감춘땅)이 불교언론문화상을 수상. (인도오지기행),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 (세계 어디에도 내집이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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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MB정권 5년 동안의 처절한 외침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30일자 기사 'MB정권 5년 동안의 처절한 외침들'을 퍼왔습니다.
[인권오름] 봄이 올까? 물음을 간직한 채 우리의 돌을 굴리련다


대선이 끝났다. 개표 소식으로 뒤숭숭한 밤,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잠자리에서 여러 편의 꿈을 꿨다. 그중에서 한 꿈의 내용은 대강 이랬다. 한 강의실에서 인권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데 아무도 듣지 않는다. 칠판에 몇 자 쓰려는데 뭔가가 칠판을 가로막아 한 자도 쓸 수가 없다. 외면하는 칠판을 돌아서니 역시 외면하는 사람들의 얼굴뿐이다.

한동안 말을 멈춘 나는 결국 강연 포기를 선언했다. 그런 나에게 대한문에 데려가 달라고 누군가가 찾아왔다. 나는 시큰둥하게 그냥 저쪽으로 가면 된다고 대답하고 보니 길이 꽉 막혀있다. 그런 꿈에서 깨어나니 새벽인데 벌써 옆 공사장에서 철근을 우당탕탕 나르는 일꾼들의 소리, 부식 차량의 메가폰 소리가 골목을 채우고 있다. 또 아침이 시작되나 보다.

오늘 아침 따라 지난 5년간 첩첩 쌓여온 문제들이 더 무거워 보인다. 아니, 문제들이 아니라 그 짐을 짊어져 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와 외침들이 들린다. 어떻게 새겨듣고 챙겨야 할지 가슴을 긁어대는 외침들이다.

ⓒ프레시안(최형락)

2008년 5월 2일 청계천에서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촛불 문화제가 시작돼 두 달간 이어졌다. 대통령은 두 번씩이나 사과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물대포와 최루탄이 동원됐고 촛불시민들에 대한 무더기 사법처리가 감행됐다. 진압에 동원됐던 한 의경이 양심선언을 했다.

제게 있어 저항은 주체성을 가지고 제 삶을 만들어나가는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니고 자신의 삶의 색채를 더해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억압하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지금껏 억압들에 대해 순응하며 살아온 제 삶을 내던지며 저항을 통해 제 삶을 찾아가야 한다고 느낍니다.

… 지난 몇 달 간의 촛불집회를 진압대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전 이런 생각을 했어요. 촛불을 들며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 요구, 공기업,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경쟁으로 내모는 교육 제도에 대한 반대 같은 것들이 이런 목소리로 느껴지더군요. 권력은 언제든지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으로 말이에요. … 우리를 사지로 내모는 권력은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암묵적으로는 그저 적으로 상정된 시위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며 상처를 덮고 합리화를 시키는 거죠. 이런 나날이 반복되고, 저는 제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저항한다' 2008년 7월 28일 이길준 이경 양심선언문)

촛불 집회가 계속되는 한편에서 노동자들의 긴 고통의 시간도 이어졌다. 2008년 5월에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힘겨운 싸움이 진행형이었다. 그해 5월 16일은 기륭전자1000일, 재능학습지 150일, 뉴코아 330일, 이랜드 330일, KTX 승무원 800일 투쟁을 기록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들은 1인 시위, 점거투쟁, 단식, 3보 1배, 삭발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와 징계를 받고 구속, 수배, 민형사상 손해배상청구와 형사고발 등 받을 수 있는 고통은 다 받은 그녀들은 이렇게 외쳤다.

그들이 ["우리는 더 이상 1회용 소모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당한 인권을 가진 노동자입니다." 이 한마디를 지키는 일에 왜 이렇게 힘들고 긴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탄식할 때, 그래도 우리는 그 탄식이 보여준 그들의 투쟁에서 움트는 희망을 봅니다. … 이제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버틴 이 작고 여린 희망에 힘을 모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노동부와 검찰과 회사 스스로가 불법 파견을 인정하고도 그에 대한 피해를 복원하지 않는 회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을 만들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어처구니없는 국회를 우린 또한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우리가 지금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비정규 법안을 바로잡는 일에 나서지 못한다면 우리도 시대의 죄인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 희망은 연대로 오는 것임을, 어둠은 끝내 희망으로 오는 빛을 이길 수 없음을 확인합시다.(2008년 5월 16일, 기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농성 투쟁 1000일, 1000인 선언문)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진전을 오랫동안 호의적으로 봐왔던 국제인권단체들이 염려의 눈길로 바뀌어 한국의 인권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국제앰네스티(AI) 등이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긴급호소와 권고 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들끓는 분노로 일어선 이상, 사람들은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귀 기울이지 않는 지도자들은 분명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2008년 5월 연례보고서 발표 기자회견,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2008년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9년 새해 벽두의 용산 참사, 한여름 쌍용자동차에서의 대규모 정리해고, 생수와 의약품의 반입까지 가로막힌 77일간의 공장점거파업, 그리고 이어진 살인진압이 남긴 상흔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두 사건은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와 "함께 살자!"는 호소를 남겼다.

예술인, 종교인은 진선미를 추구한다.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진실은 임기가 없다. 임기 후에 보자!치부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드러나면 비틀거리게 될 것이다.

진선미, 아름다운 인간성을 추구하는 마음을 훼손하고 있다.안될 일이다. … 공권력이 백성을 저버리고 권력의 조종을 받으면 똥개가 된다.그 때부터는 저항할 수밖에 없다. (2009년 4월 4일 용산참사 현장미사에서 문정현 신부)

같이 살자는 상생의 요구가 묵살되고 일부만이라도 살아남자는 정글의 법칙이 관철된 것이 쌍용차 노동자가 아닌 누군가의 성공일까요? 인권이 설자리를 잃고 경제적 계산만이 남은 자리에서 소수가 살아남았음을 합리적인 해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회는 그 구성원 모두가 노동을 통하여 행복하여질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믿는다면, 사회가 개인의 가치추구 기회를 보장함과 함께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여야 한다고 동의한다면 쌍용자동차의 해결 방안이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쌍용차 사태는 어느 누구만의 패배이고 누군가의 승리가 아니라 모두가 그리고 가치가 패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만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총체적 실패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 현실은 이러한 실패와 패배를 지금 이 시점에서 바로잡을 힘과 비전을 모아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점입니다. 그러나 쌍용차 사태에서 보여준 우리 사회의 실패가 최종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리 되어서도 아니됩니다. (2009년 11월 쌍용자동차 인권침해 백서 발간사)

여러 분야의 인권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공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해 감시‧비판하라고 만든 국가인권위원회마저 퇴행을 거듭했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21% 조직축소를 단행했고 '무자격자'란 별칭을 얻은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임명됐다. 정권의 인권위 무력화는 현실이 되었고, 국가인권위는 피디수첩 사건, 촛불시위 등 정권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북한인권만을 유독 강조했다. 현병철은 이명박 정권 말기에 연임되기까지 했다.

5년 내내 국가인권위에 대한 비판과 반발이 끊이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중 하나의 사건은 수상거부였다. 2010년, 국가인권위가 세계인권의 날에 수여하는 상을 받게 된 수상 예정자들이 "인권위는 상을 줄 자격이 없다"며 수상거부를 한 것이다.

인권에세이로 선정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많은 내용들이 '언론, 표현의 자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위가 직접 선정한 작품들에서 이야기하는 인권의 '반도 못 따라가고 있는' 인권위의 모습을 제대로 돌아보아야 한다. 인권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현병철 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온 것에 대해 책임지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내가 에세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인권'을 지금 현병철이라는 사람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끝도 없이 밑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인권을 보장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애를 써야 할 국가인권위가 오히려 인권을 모욕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정말로 지금 상황에 심각성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성찰할 의지가 생긴다면, 감히 인권에세이 수상자인 청소년들에게 "참 잘했어요. 그러니 우리가 상 줄게요" 같은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를 제대로 된 국가인권위원회로 인정할 수 없으며 현병철 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앉아있는 인권위에서 주는 상은 받고 싶지 않다. 현병철 위원장은 나에게 상을 줄 자격조차 없다. 나는 2010 인권에세이 대상 수상을 거부한다. (2010년 12월 7일, 인권에세이 대상 고3 김은총, "현병철 위원장은 나에게 상을 줄 자격조차 없다")

그나마 우리를 술렁거리게 한 것은 '희망버스'의 출현이었다. 2011년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 만에 내려온 김진숙 씨의 고공농성을 지지하기 위해 전국에서 여러 차례 희망버스가 모여들었다. 왜 숱한 이들이 그 버스에 올랐는지를 김진숙 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2차 희망버스 때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평택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왔습니다. 물집이 터져 온통 상처투성이가 된 저 발들을 사진으로 보면 생각했습니다.저들은 어떤 마음으로 걸었을까? 15명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묻은 저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을까?3차때는 우리 조합원들이 쌍용차에서 자전거를 타고 부산까지 왔습니다. 지친 해고자동생의 자전거에 끈을 묶고 달리던 비해고자 형의 사진을 봤습니다. 형은 동생이 얼마나 안쓰러웠을까요. 동생은 형한테 얼마나 미안했을까요.최루액, 물대포를 맞고 곤봉에 찢겼던 그 무서운 밤을 보내고, 애가 타는 거리를 두고 돌아서야 했던 그 무참한 낮을 보내고, 다시와준 여러분 전 여러분이 참 눈물겹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같은 곳을 쳐다보며, 같은 기도를 올리며,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마음이 이리도 간절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랑이 이리도 뜨거울 수 있을까요. 그런 간절함이 있었기에 우린 당당했고, 저들은 초조해 했습니다. … 젊음이 희망을 이길 수 없듯이 돈에 대한 집착만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은 생에 아무런 집착을 없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 사심없이 하나가 된 우리를 저들은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영세상인, 철거민, 비정규직과 해고된 노동자들, 장애인, 성적소수자, 여성, 등록금 많이 내는 학생들, 도처에 무너지고 짓밟히는 삶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탄압할 버스가 없었습니다. 부정과 부패와 파괴와 야만을 향해 질주하는 이 절망의 버스에서 내릴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제야 우리는 비로서 우리손으로 새로운 버스를 장만했습니다. 희망으로 가는 버스, 미련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는 버스, 우리가 모두 주인이고 우리 모두가 승객인 버스. 희망버스 승객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길거리로 내몰린, 길거리에서 쫓겨다니는 우리 조합원들의 유일한 희망이고 간절한 기다림이었던 여러분. 평생을 일한 공장에서 내쫓고 그 노동자들을 서슴없이 외부세력이라 부르는 저들의 오만과 독선에 피멍이 든 우리 조합원들을 지켜주신 여러분. 퇴거 명령이 언제 집행될지 몰라 함께 모여 밤을 세우며 부업을 한다는 우리 가족들을 지켜주신 여러분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머지않아 우리 모두 웃게 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여러분들과 함께 얼싸안을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2011년 7월 30일, 3차 희망버스 김진숙 지도위원 연설내용)

'혹시나, 혹시나' 하다가 '결국'이었다. 2012년 3월 7일 구럼비 바위 발파가 시작됐다. 달려가 본 현장은 아비규환이었고 지금도 24시간 공사강행으로 아비규환일 것이다. 보다 못한 이들이 최근 11월 말에는 강정해군기지 예산안 통과를 막겠다고 한겨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머리를 깎고 단식노숙농성을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대선이 끝났고 그 예산안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할지가 새 정권이 내놓는 우리의 인권과 자연을 향한 대답의 시작일 것이다.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너는 부서지고 깨어져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너의 슬픔 너의 아픔 너의 피눈물 고통과 함께 한단다.~♬ ('강정아' 노래가사, 강우일 주교 글, 권성일 곡)

대선과 더불어 실시된 보궐선거로 당선된 서울시 교육감의 첫마디가 '학생인권조례를 시급히 손보는 것'이라 한다. 거리에서 학생인권조례 발의를 위한 서명 운동에 발을 동동거리며 갈증과 배고픔을 참던 숱한 얼굴들이 아른거린다. 9만 7천여 명의 주민발의로 성사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간단히 손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 어린이‧청소년 인권조례까지 통과된 마당이다. 인권에 대한 의무에는 '역행과 퇴행의 금지'라는 것이 있다. 지금 손보겠다는 인권의 주인인 아동이 이런 말을 했었다.

가끔 어른들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 먼저 다가서면 '넌 아직 애라서 안돼' 라는 말과 '넌 못 하는거야' 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저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 많이 속상합니다.

저희 학교에 가난하고 약간의 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난하거나 조금의 장애가 있는 친구를 오히려 도와주고 함께 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5학년 2반 회장입니다. 하지만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못합니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으면 회장인데 모범이 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좋지만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다른 친구들과 비교를 하거나, 무시를 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는 나이도 어리고, 몸도 작고, 힘도 약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어린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보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특히 소수자라고 따돌림 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사람일수록 더 소중히 아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어떤 어른들은 임신, 출산, 성적 지향 같은 말은 빼야된다고 했다고 합니다.차별받는 어린이가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된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이유로든 괴롭힘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어린이들 모두를 소중하게 대해주세요.우리 어린이들이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해주세요.우리 어린이들이 매일매일 즐겁게 지낼 수 있게 해주세요.우리 어린이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아주세요. (2012년 10월 12일, '서울시 어린이 청소년 인권조례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초등학생 장준하)

지난 5년 숱한 장례식을 지켜봐야 했다. 23분의 쌍차 노동자와 가족들, 박지연, 황유미, 이윤정, 김주영 ….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은 노동자들과 활동보조인 없이 화마에 쓰러져 간 장애인뿐만이 아니다. 살인단속에 쫓겨 다치고 병든 이주노동자들, 일제고사와 경쟁강화에 자살한 청소년들,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고 애도하지 못한 죽음, 살아 있을 때 그 손을 붙잡지 못한 죽음들이 너무 많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서울 대한문 앞에 '함께 살자!' 농성장이 들어선지 한 달이 넘었다. 이들의 요구엔 늘 '대선 이후에'란 답이 돌아왔다. 이제 그 때가 왔다. 이제 '이후'는 없다. 지금 우리의 삶이 요구하는 바에 대답해야 한다. '함께 살자'를 고민하면서 나는 아래와 같은 구호들을 지어보았다. 내 컴퓨터 한 귀퉁이에 저장돼 있던 것인데 오늘 아침 문득 열어보고 싶었다.

함께 살자! 서로 돌보자! 쫓겨난 이들을 제자리로!

상처뿐인 성장 그만하고 함께 살기 시작하자!승자독식 살인경쟁 그만하고 서로존중 시작하자!엘리트와 자본 정치 걷어내고 민심정치 시작하자.

노동자를 존중하자.비정규직 정리해고 그만하자.

청년을 존중하자.스펙경쟁 그만하고 지금 여기서 행복하자.

생명자연 존중하자.골프장, 송전소, 핵발전소 걷어내고 생태를 복원하자.

생명평화 존중하자.해군기지 중단하고 강정마을 살려내자. 대결안보 그만하고 평화안보 세워내자.

살림살이 존중하자.대기업의 폭식횡포 모든 살림 뒤흔든다. 영세상인 자영업자 골목에서 함께살자.

강제퇴거 금지하고 삶의 터전 존중하자.누군가 쫓겨나면 그 다음은 내 차례다.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자.구분 짓고 차별 말고 보편복지로 함께 살자.

밥이 하늘이다. 농민을 존중하자.농업포기 죽음이요 농업증진 살길이다.

대선이 끝난 아침에 급하게 이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동안 예고 없던 방문객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여기 오면 인권을 공부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겨울 동안에 준비하여 봄에 할 것이라고, 새봄에 공부 일정이 잡히면 꼭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갑자기 내 손가락을 잡아 걸더니 '꼭 약속한 거다'고 다짐하고 돌아갔다. 손가락을 건 그녀의 손이 따뜻했다. 하지만 나는 '과연 봄이 올까'하고 자문했다.

선거기간 동안 숱한 약속과 다짐이 있었다. 지키지 않는 게 차라리 좋을 약속도 있고 꼭 지켜야 할 약속도 있다. 그들이 약속을 내건 대상 속에 과연 나와 동료들이 끼는 사람인지 끼지 않는 사람인지조차가 고민이 되는 오늘이다. 잠시 후 평택 쌍용차 앞 송전탑에 올라있는 노동자들을 응원하러 가는 버스가 대한문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지금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 나와 우리의 자리를 지키고 우리의 돌을 함께 굴리련다. 봄이 올까란 물음은 오래오래 간직한 채.

(이 글은 "MB정권 5년 동안의 외침들"이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2012년 11월 8일 목요일

[왜냐면] ‘여성’에 속지 말고 ‘인권’ 위해 투표하자 / 임윤옥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07일자 기사 '[왜냐면] ‘여성’에 속지 말고 ‘인권’ 위해 투표하자 / 임윤옥'을 퍼왔습니다.

이토록 정치의 계절에 ‘여성’이 호명된 적이 있었던가 싶게 ‘여성 대통령’ 담론이 만개했다. “분단 현실을 체험하지 않고,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21세기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나요?”라는 박근혜 후보의 답변은 그 기폭제가 되었다. 말인즉슨 지금 시기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 자격을 논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후진적인 시대관이라는 말일 게다. 맞다. 여기에다 “최초 여성 대통령 선출은 그 자체가 통합과 쇄신의 출발”이라고 강조한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의 발언은 이제 ‘여성 역할론’이 새누리당의 중요한 득표전략임을 드러냈다.한발 더 나아가 박근혜 후보는 그간 ‘남성’ 정치인이 저지른 부정부패와 불신의 정치를 뒤집을 강력한 기표로서 자신이 ‘여성’임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성불평등성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으로 자신을 위치지음으로써 보통 여성들이 겪었을 삶의 고단함을 보상해줄 여성운동적 이미지까지도 차용한다.그렇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박근혜 후보가 단지 우리 사회 1% 부자들을 대변하는 새누리당 후보였을 때는 문제가 단순했다. 그러나 ‘여성됨’을 강조하고 여성혁명을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성불평등성과 박근혜 후보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성’의 대표로 본인을 자리매김하고자 할 때,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여성’이 누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됨’ 자체가 바로 정치혁신과 성불평등성 쇄신을 약속하는 보증수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근혜 후보가 성불평등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살펴보고 판단하는 것은 이제 유권자의 몫이 되었다.먼저 박근혜 후보는 유신시대에 2인자로서 국정에 참여했다. 그 유신체제는 ‘배고파서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는 와이에이치(YH) 노동조합의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 몽둥이와 해고로 대응했다. 유신은 스물두살 꽃다운 나이에 국가폭력으로 숨진 김경숙 열사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정권은 김경숙 열사가 스스로 동맥을 끊고 투신자살한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시신에는 동맥을 절단한 흔적이 없고 후두 정부를 모서리 진 물체로 가격당해 숨진 것이라고 진실화해위원회는 밝혔다.당시에도 박근혜 후보는 유신정권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케이티엑스(KTX), 이랜드,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88CC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박 후보가 단 한번이라도 문제 해결을 위해 발언하거나 당사자를 만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유신시대에는 어려서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 뒤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줄푸세’ 공약으로 친기업 정책만을 발표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본인이 ‘여성’임을 자각한다는 것은 남성과는 다른 부드러움이나 섬세함 등 여성적 특질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 왜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조건에 놓이게 되었는지 통찰하고, 그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성평등과 사회정의적 관점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핵심이다.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여성들이 마치 정신력이 부족해서 사회에서 뒤떨어지는 것처럼 말한 것은 박근혜 후보가 유신시대에 주도했던 새마음운동과 일맥상통하는 시각이다.이제 우리 ‘여성’들은 ‘여성’이 하나의 상징으로서 소모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자각은 바로 성평등과 사회정의, 인권 실천의 의지임을 알려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에 크게 기여했던 존 스튜어트 밀은, 투표는 ‘권리’만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얘기했다. 투표 불참은 개인적 차원의 권리가 아니라 사회정의 실현을 포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2012년 대선, 여성들은 ‘여성’ 이미지에 속지 말고 사회정의와 인권을 위해 투표하자.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부대표

2012년 10월 25일 목요일

등록금 갈취하는 교수님…신고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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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는 어쩌다 봉건영주가 됐나·②] 우리 교수님은 인건비 떼먹는 악덕 사장님?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발표한 '서울대의 인권, 어디에 있나' 조사결과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성의 공간, 대학. 그곳에서도 가장 고급의 교육을 받고 있다는 대학원생. 그러나 그 실상은 초라했다. 

특히 이 조사결과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설문조사에 응한 1352명 가운데 27.8%가 노동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수를 받지 못했다고 답한 대목이다. 심지어 응답자의 10.5%는 교수 개인을 위한 연구비 유용을 지시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답한 학생도 32.5%에 달했다.

이런 응답 결과는 얼핏 보면 찌든 직장인의 삶을 연상시킨다.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삶이 피폐해지는, 그럼에도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직장인. 실제로 상당수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자신을 '반(半)직장인, 반(半)학생'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속한 연구실의 지도교수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수주해 온 연구과제(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일과이기 때문.

모 국립대 공과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A씨는 "프로젝트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연구실에 마련된 간이침대에서 잠을 잔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까지 컴퓨터에 데이터를 돌리고, 그 결과를 받아 적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라며 "짧은수면을 취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다시 프로젝트를 하고, 틈나는 대로 내 논문을 쓴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그가 한 달에 받는 연구 인건비는 월 80만 원 정도. "뗄 거 떼면 한 65만 원 들어와요"라고 A씨는 덧붙였다.

'눈먼 돈' 연구비…교수가 학생인건비 중간에서 가로채기도

A씨가 말한 "뗄 거 떼고"가 의미하는 것은 뭘까. 이는 '연구실 공금 조성'이란 명분으로 교수가 떼어가는 자신의 인건비 일부를 말한다.

대학가에서 대학원생의 인건비 통장과 도장을 교수 또는 교수가 지정한 연구원 한 명이 통합 관리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어떤 경우는 아예 지급된 인건비 일부를 떼어 다른 통장에 이체토록 하는 경우도 있다. A씨는 "어느 연구실에서나 이렇게 (공동으로 인건비를 관리) 한다"며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냥 관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규정 '위반'이다. 지난 7월 한국연구재단이 배포한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비 집행 및 정산' 교육 자료를 보면, 학생연구원의 개인통장 회수, 인건비 재분배 등 연구책임자 및 연구실 단위의 학생인건비 공동 관리는 규정 위반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런 상황이 적발되면 연구비를 환수하거나 연구 참여를 제한하게 된다.

이에 대해 서울 소재 한 사립대 경제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 B씨는 "규정 위반일 줄은 전혀 몰랐다"며 "하지만 기자재나 비품을 연구실에서 공동으로 구입해야 하는 일이 많아 (공동 관리)는 어쩔 수 없는 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례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인건비 통장을 통합 관리함으로써 교수가 중간에서 인건비 일부를 가로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해 10월, 한 국립대 교수 C씨는 자신이 지도하고 있던 학생 7명의 인건비를 통합 관리토록 한 후, 2년에 걸쳐 그 중 일부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이렇게 그가 유용한 학생 인건비는 총 2065만 원. 7명의 학생이 각자 한 학기치 대학원 등록금을 통째로 자신의 지도교수에게 빼앗긴 셈이다.

대학원생들 "억울해도 참는 게 낫다"

그러나 학생들은 나서기를 꺼린다. 지도교수가 다음 학기 등록금을 갈취해가는 기막힌 상황을 그저 '눈뜬장님'처럼 지켜볼 따름이다.

우선 도제식으로 맺어진 교수-학생 관계가 학생들의 입을 막는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에서 몇 년 전 박사과정을 마친 D씨는 "한번 교수의 눈 밖에 나면 논문통과, 유학, 졸업, 취업 모두가 줄줄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며 "억울하더라도 참는 게 더 낫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성추행으로 고발됐던 교수도 피해자와 합의한 후 벌금 내고 멀쩡히 (대학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봤다"며 "피해 학생은 학교를 떠나야 했지만, 교수는 태연하게 다시 강단에 섰다"고 말했다. 용기를 내어 교수의 부당한 행위를 바깥에 알려봐야 손해 보는 사람은 결국 학생이란 얘기다.

대학원생 A씨는 "교수가 쫓겨나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내 지도교수가 부정행위를 저질러 해임된다면 연구실이 통째로 폐쇄될 수 있다"며 "내가 속한 연구실이 하는 연구는 국내 대학에서 잘 다루지 않는 주제인데 이곳이 폐쇄되면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반 직장인 반 학생인 대학원생. 교수 해임은 A씨에게 곧 실업자 신세를 의미한다.

학문 발전 위해 모아준 세금, 교수 개인 주머니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구비 부당집행이 적발돼 연구비가 환수되는 사례는 증가 추세에 있다. 지난해 9월 한국연구재단이 국회에 제출한 '2006~2010년 한국연구재단 협약과제 연구비 환수현황'을 보면, 연구비 환수조치는 5년 사이 5배가 증가했다.

연도별 연구비 환수조치는 2006년 20건, 2008년 25건, 2010년 116건으로 증가했다. 더불어 연구비 환수 규모도 2006년 1억8000여만 원에서 2010년 4억1000여만 원으로 커졌다. 기관별로 보면, 서울대의 환수액이 5년간 33억3000여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조치건수도 22건으로 최다였다. 한양대(2억2000만·7건), 성균관대(1억8000만·5건), 전북대(1억3000만·7건), 충남대(1억·5건)가 그 뒤를 이었다.

이 자료만 놓고 봐도 과학기술과 지식산업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대학가에 투여한 세금 약 40억 원이 엉뚱한 곳에 쓰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적발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연구비 부당 집행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쉽게 추정할 수 있다.

▲ 2006~2010한국연구재단 협약과제 연구비 환수현황

최소 인건비 보장하겠다는 정부 대책에 학생들, "현실 모르고 하는 소리"

물론 정부에서도 상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국내 주요 연구중심 6개 대학에서 정부연구과제에 참여한 이공계 대학원생 1만5000명을 상대로 인건비 지급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석사 과정생은 월평균 68만 원, 박사 과정생은 월 평균 103만 원을 지급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정부가 고시한 학생인건비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 2008년 7월 대통령 소속 상설 행정위원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고시한 학생인건비 계상기준에 따르면, 연구 참여율 100%를 기준으로 석사 월 180만 원, 박사 월 250만 원이 인건비 지급 기준선이다.

이에 따라 지난 19일 교과부는 내년부터 연구비 규모 1억 원 이상 과제에 참여하는 대학원생의 인건비 실지급액을 정부 고시 수준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

우선 과제별 연구협약을 체결할 때 연구 참여 학생에게 인건비 지급 기준을 안내하고, 기준치에 미달하여 인건비를 지급받을 경우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신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교과부의 계획이다. 위반 여부가 확인되면 교과부는 시정조치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한 대학 실험실 풍경. ⓒ연합뉴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모 사립대 물리학 박사 과정생 E씨는 "교수를 신고하라니…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교수와 학생이 지배 복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현실을 정부가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학원생 A씨도 "월 80만원 보장이 물론 과거보다는 개선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80만 원을 6개월 꼬박 모아야 등록금이 마련되는 것"이라며 "반 직장인 반 학생으로 살며 인건비를 전부 등록금에 쏟아 붓는 상황이 계속되면 어떻게 버텨야 하냐"고 꼬집었다.

- 대학교수는 어쩌다 봉건영주가 됐나

(1) 그 대학원생은 어쩌다 '노예'가 됐을까?

 /최하얀 기자

2012년 9월 7일 금요일

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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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료사고로 숨진 남편…중환자실에 인권은 없었다"

2010년 9월 중견 연극배우 서희승 씨의 부고가 전해졌다. 사망 이유는 간호사의 혈압상승제 과다 투여였다. 유족 측은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관리하는 바람에 환자가 방치됐다"며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환자 안전관리가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백한 의료사고로 유족들은 병원과 민사소송을 결정했고 2심에서도 승소한 상태다.

서희승 씨가 처음 수술대에 오른 것은 2007년, 직장암 초기 진단을 받은 후였다. 수술 후 빠른 회복을 보이며 일상에 복귀한 그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했지만 3년 뒤인 2010년 전립선과 신장에 암이 전이되어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고(故) 서희승 씨의 아내이자 뮤지컬 배우인 손해선 씨는 "남편이 간혹 응급실로 실려가긴 했지만,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었다"고 말했다.

"수술 후 기능이 안 좋아진 콩팥 때문에 요로(소변을 체외로 받아내는 주머니)를 차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열이 자주 올랐어요. 체온이 37도만 넘으면 초긴장 상태가 되었고 그때마다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2~3일 입원해 치료받고 나면 이내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 연극배우 고(故) 서희승 씨. ⓒ손해선
하지만 2010년 6월 24일 불행이 시작됐다. 여느 때와 같이 38.5도가 넘은 체온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내원한 서희승 씨의 혈압은 90-70이었다. 의료진은 간성혼수가 올 수 있으니 혈압상승제를 쓰자고 했고 긴급한 상황과 응급치료가 끝난 뒤 서 씨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보통 이동침대에서 병실침대로 환자를 옮길 경우 간호사와 직원들이 시트를 들어 옮긴다. 그런데 간호사는 서 씨에게 스스로옮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몸을 움직인 서 씨는 침대에 오른 직후 가슴의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통증의 원인은 바로 혈압상승제였다. 조절기를 잠그고 옮겨야하는데 그대로 열어 두어 30초간 대량의 혈압상승제가 투여되었던 것.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마치 선지와 같은 각혈을 하는 서 씨를 본 의료진은 위급상황인 코드블루를 알렸고 서희승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76일 만에 숨졌다.

환자들의 목숨 위협하는 중환자실의 허술한 관리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30분씩, 그나마 환자 1명당 단 두 사람만이 면회가 가능한 중환자실은 24시간 온전히 의료진의 돌봄에 의지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남편 서 씨에 대한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체온유지가 중요한 환자의 겨드랑이에서 체온유지를 체크하는 온도계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만 세 번이었다. 환자에게 사용한주사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기도 했고 남편의 발밑에서 이쑤시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왜 어머니한테만 이런 게 보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변명만 했다.

그녀가 가장 경악한 것은 바로 욕창이었다. 지속적인 압박으로 혈액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욕창은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들에게 잘 일어난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 환자는 수시로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10일 만에 서 씨에게 욕창이 온 것. 하지만 간호사들은 손 씨와 가족들에게 잘 관리하겠다는 말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보지 못하게 했다. 병원은 또한 사망 후 보면 더욱 마음 아플 것이니 보여줄 수 없다며 시신을 가리고 입관을 강행해 결국 서 씨는 남편의 욕창자국을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금요일 오전 남편의 팔에서 수포를 발견한 손 씨는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협진을 요청했고 오후에 늘어난 수포를 확인했지만 남편의 협진은 3일이 지난 월요일에 이루어졌고, 결국 서 씨는 주말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보내야했다.

게다가 대상포진은 면포나 깨끗한 거즈로 덮어 관리해아 함에도 불구하고 서 씨의 팔에는 거즈가 아닌 압박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놀란 손 씨의 지적에 간호사가 압박붕대를 잘라내자 퉁퉁 부어 있던 팔의 피부는 마치 썩은 것처럼 검게 변해 있기도 했다.

그녀가 본 중환자실은 그야말로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저 죽음이 드리워진 공간이었다. 손 씨는 "중요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 들어가 이틀 미만으로 있으면 살아서 나오지만, 3일이 지나면 대부분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빛바랜 JCI인증, 누구를 위한 인증인가?

서희승 씨가 입원했던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로 환자의 안전과 양질의의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환자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 시까지 치료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평가해 인증하는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 미국회사가 세운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 국제인증을 받았다. 그간 일부 의료계에서는 JCI 인증이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증을 받았음에도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들에겐 궁금하고 중요한 환자의 상태 역시 30분짜리 면회가 끝나기 5분 전이나 시작된 직후에 다가온 담당 의사에게 1~2분 전해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지난 5일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린 환자단체연합회의 '제2회 환자Shouting카페'에서 이 같은 '중환자실 환자 안전관리' 현실을 전한 손해선 씨는 "가족의 면회가 제한된 상태에서 일대일 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환자가 인력부족으로 방치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제가 옆에 있었다면 남편은 보다 깨끗한 환경에서 병상생활을 했을 것이고 욕창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인데 일대일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상황에 JCI인증까지 받은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또 입원 시 58kg이었던 남편의 몸무게가 80kg으로 늘어났습니다. 피가 부족해 수혈을 한다고 했지만 밖으로의 외출혈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출혈부위 하나 찾아내지 못합니까?"

http://www.youtube.com/watch?v=2q7ICJVLiME&feature=player_embedded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산별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무상의료 실현과 병원인력법 제정에 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보호자와 환자를 위해 병상일기 꼭 필요!


이날 손해선 씨는 한 손에 두툼한 수첩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바로 남편 서희승 씨의 병상일기다. 병상일기에는 날짜별로 순간순간의 치료와 증세, 상황 등을 정리했고, 중요하다 싶은 내용은 형광펜을 이용해 밑줄을 그어놓는 세심함을 잃지 않았다.


손 씨는 병상일기가 소송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증상은 물론 치료과정 아주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말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지난 8월 16일 민사소송 2심에서 승소 판정을 받았지만 현재 형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길고 긴 시간 동안 병원과 의료진은 단 한 번도 저희 가족과 고인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또 한 번의 길고긴 싸움을 시작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76일 간을 기록한 병상수첩. 손 씨는 만일에 대비해 환자의 증상과 치료과정을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손해선

/엄호식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객원기자

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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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료사고로 숨진 남편…중환자실에 인권은 없었다"

2010년 9월 중견 연극배우 서희승 씨의 부고가 전해졌다. 사망 이유는 간호사의 혈압상승제 과다 투여였다. 유족 측은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관리하는 바람에 환자가 방치됐다"며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환자 안전관리가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백한 의료사고로 유족들은 병원과 민사소송을 결정했고 2심에서도 승소한 상태다.

서희승 씨가 처음 수술대에 오른 것은 2007년, 직장암 초기 진단을 받은 후였다. 수술 후 빠른 회복을 보이며 일상에 복귀한 그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했지만 3년 뒤인 2010년 전립선과 신장에 암이 전이되어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고(故) 서희승 씨의 아내이자 뮤지컬 배우인 손해선 씨는 "남편이 간혹 응급실로 실려가긴 했지만,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었다"고 말했다.

"수술 후 기능이 안 좋아진 콩팥 때문에 요로(소변을 체외로 받아내는 주머니)를 차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열이 자주 올랐어요. 체온이 37도만 넘으면 초긴장 상태가 되었고 그때마다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2~3일 입원해 치료받고 나면 이내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 연극배우 고(故) 서희승 씨. ⓒ손해선
하지만 2010년 6월 24일 불행이 시작됐다. 여느 때와 같이 38.5도가 넘은 체온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내원한 서희승 씨의 혈압은 90-70이었다. 의료진은 간성혼수가 올 수 있으니 혈압상승제를 쓰자고 했고 긴급한 상황과 응급치료가 끝난 뒤 서 씨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보통 이동침대에서 병실침대로 환자를 옮길 경우 간호사와 직원들이 시트를 들어 옮긴다. 그런데 간호사는 서 씨에게 스스로옮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몸을 움직인 서 씨는 침대에 오른 직후 가슴의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통증의 원인은 바로 혈압상승제였다. 조절기를 잠그고 옮겨야하는데 그대로 열어 두어 30초간 대량의 혈압상승제가 투여되었던 것.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마치 선지와 같은 각혈을 하는 서 씨를 본 의료진은 위급상황인 코드블루를 알렸고 서희승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76일 만에 숨졌다.

환자들의 목숨 위협하는 중환자실의 허술한 관리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30분씩, 그나마 환자 1명당 단 두 사람만이 면회가 가능한 중환자실은 24시간 온전히 의료진의 돌봄에 의지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남편 서 씨에 대한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체온유지가 중요한 환자의 겨드랑이에서 체온유지를 체크하는 온도계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만 세 번이었다. 환자에게 사용한주사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기도 했고 남편의 발밑에서 이쑤시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왜 어머니한테만 이런 게 보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변명만 했다.

그녀가 가장 경악한 것은 바로 욕창이었다. 지속적인 압박으로 혈액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욕창은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들에게 잘 일어난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 환자는 수시로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10일 만에 서 씨에게 욕창이 온 것. 하지만 간호사들은 손 씨와 가족들에게 잘 관리하겠다는 말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보지 못하게 했다. 병원은 또한 사망 후 보면 더욱 마음 아플 것이니 보여줄 수 없다며 시신을 가리고 입관을 강행해 결국 서 씨는 남편의 욕창자국을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금요일 오전 남편의 팔에서 수포를 발견한 손 씨는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협진을 요청했고 오후에 늘어난 수포를 확인했지만 남편의 협진은 3일이 지난 월요일에 이루어졌고, 결국 서 씨는 주말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보내야했다.

게다가 대상포진은 면포나 깨끗한 거즈로 덮어 관리해아 함에도 불구하고 서 씨의 팔에는 거즈가 아닌 압박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놀란 손 씨의 지적에 간호사가 압박붕대를 잘라내자 퉁퉁 부어 있던 팔의 피부는 마치 썩은 것처럼 검게 변해 있기도 했다.

그녀가 본 중환자실은 그야말로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저 죽음이 드리워진 공간이었다. 손 씨는 "중요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 들어가 이틀 미만으로 있으면 살아서 나오지만, 3일이 지나면 대부분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빛바랜 JCI인증, 누구를 위한 인증인가?

서희승 씨가 입원했던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로 환자의 안전과 양질의의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환자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 시까지 치료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평가해 인증하는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 미국회사가 세운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 국제인증을 받았다. 그간 일부 의료계에서는 JCI 인증이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증을 받았음에도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들에겐 궁금하고 중요한 환자의 상태 역시 30분짜리 면회가 끝나기 5분 전이나 시작된 직후에 다가온 담당 의사에게 1~2분 전해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지난 5일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린 환자단체연합회의 '제2회 환자Shouting카페'에서 이 같은 '중환자실 환자 안전관리' 현실을 전한 손해선 씨는 "가족의 면회가 제한된 상태에서 일대일 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환자가 인력부족으로 방치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제가 옆에 있었다면 남편은 보다 깨끗한 환경에서 병상생활을 했을 것이고 욕창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인데 일대일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상황에 JCI인증까지 받은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또 입원 시 58kg이었던 남편의 몸무게가 80kg으로 늘어났습니다. 피가 부족해 수혈을 한다고 했지만 밖으로의 외출혈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출혈부위 하나 찾아내지 못합니까?"

http://www.youtube.com/watch?v=2q7ICJVLiME&feature=player_embedded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산별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무상의료 실현과 병원인력법 제정에 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보호자와 환자를 위해 병상일기 꼭 필요!


이날 손해선 씨는 한 손에 두툼한 수첩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바로 남편 서희승 씨의 병상일기다. 병상일기에는 날짜별로 순간순간의 치료와 증세, 상황 등을 정리했고, 중요하다 싶은 내용은 형광펜을 이용해 밑줄을 그어놓는 세심함을 잃지 않았다.


손 씨는 병상일기가 소송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증상은 물론 치료과정 아주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말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지난 8월 16일 민사소송 2심에서 승소 판정을 받았지만 현재 형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길고 긴 시간 동안 병원과 의료진은 단 한 번도 저희 가족과 고인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또 한 번의 길고긴 싸움을 시작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76일 간을 기록한 병상수첩. 손 씨는 만일에 대비해 환자의 증상과 치료과정을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손해선

/엄호식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