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8일 일요일
기독교인 사람 차별 슬프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 조현기자 블로그 2013-04-25일자 기사 '기독교인 사람 차별 슬프다'를 퍼왔습니다.
구약성경 연구 권위자 주원준 박사
‘차별금지법 반대’ 보수기독교계
동성애자 수용 쉽지는 않겠지만
시민법적 차별 할 순 없는 노릇
고대 이스라엘인은 배타성 아닌
상대 신까지 포용하며 복음전파
우리 교계 외형보다 교양 키울때
국회에서 준비중이던 차별금지법안이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로 무력화됐다. 법안에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다. 법안 반대를 주도한 보수 기독교인들에겐 평등과 인권을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보다 유대의 율법이 우선시된다. 그러면 과연 고대 유대인들은 어땠을까.
한국가톨릭학술상 수상작인 (구약성경과 신들)(한님성서연구소 펴냄)의 지은이인 주원준(45) 박사를 만났다. 독일의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9년간 구약학과 고대근동언어를 공부하고 온 그는 서강대에서 구약성서와 히브리어, 고대 근동종교를 강의중이다.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서 신학교에선 손도 대지못하는 고대의 문서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주 박사는 차별금지법 논란에 대해 “예수가 안식일에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밀밭을 지나가다가 밀이삭을 뜯어먹자 바리새인들이 맹비난하며 죽음으로 몰아갔다. 당시 예수는 사람을 살리는 게 율법이라고 했다. 그 이후 기독교는 유대교와 달리 율법의 절대화에서 벗어나 상대화했는데, ‘유대의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기독교에서 율법을 고대의 바리새인처럼 적용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를 교회에서 받아들이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사형수에게도 복음적이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시민법적 차별을 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고 덧붙였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차별금지법 발의 의원과 정당에 대해 낙선운동, 정당 해체까지 거론하는 등 반대운동이 격렬해지고 있다. 보수 교회와 단체가 모인 ‘차별금지법반대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 법안이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국가정체성에 혼란을 준다며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주 박사는 히브리어와 근동언어로 직접 구약과 고대 문건을 읽는 전문가답게 한발 더 나아간다.
“구약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은 고대에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로마 등 강대국에 눌려 살던 만년 약소국이었다. 그들 틈에서 장사를 해 살아남아야 했기에 주변국 사람들이 믿는 신과 문화를 이해하며 신용을 쌓아야 했다.”
이스라엘은 아주 작은 나라여서 주변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영향을 받는 나라였다. 그렇기에 인근 지역의 신들의 표상까지 폭넓게 소화해 영성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배타성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열린 영성, 소통의 영성으로 야훼신앙을 지켜나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현재 보수 기독교를 지탱해주는 배타적 신앙은 16세기에야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악마의 우두머리’ 정도로만 인식되는 바알신에 대해서도 학자적 해석을 제공한다.
“바알은 메마른 팔레스타인 지역에 비를 내리게 해 곡물이 자라고 가축이 새끼를 낳게 하고 풍요와 돈을 가져다주며, 성적 능력까지 갖춘 신이다. 그러니 얼마나 매력적이었겠는가.”
그는 “자기 희생의 본질보다는 교회에 다니면 복을 받는다는 구복신앙들이 과연 누구를 믿는 신앙이겠느냐”는 물음으로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돈과 권력을 탐하며 살아가는 세속과 달리 교회는 헌신과 사랑을 강조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교회도 이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한국에서 가톨릭이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처음부터 함께 추구한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평신도 신학자가 절반을 차지하는 독일의 신학교들과 달리 평신도에겐 교직 한자리 나눠주지 않는 성직자 위주의 분위기와 세속화를 염려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교회 안에서 평신도들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왜일까.
“성당에서 높은 직책을 맡은 평신도들 가운데 성직자에겐 보스 모시듯 수그리고 평신도들 위에 군림하며 막 대하는 게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 내 세속주의·출세주의’를 비판하며, “그렇게 하면 교회 안에서 출세할 수는 있겠지만 예수의 제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한 메시지를 교회다운 교회로 회귀시키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이 메시지는 주로 성직자를 향한 것이지만 그는 평신도에게도 절실하다고 본다.
“한국 가톨릭은 신자가 불어나고 외형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미사에 나가고, 돈 내고, 사제에게 밥 사주는 신앙은 잘하지만, ‘그리스도교 교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정착되지 못했다.”
주 박사는 “선교 300년을 앞두고 있으니 이제 성직자만이 아니라 신자 자신이 복음에 따라 살고, 수입의 일정 금액 정도는 나누는 데 쓰고, 억울한 사람은 만들지 않고 도우며, 복음적 다큐멘터리를 보고 독서를 하는 ‘그리스도적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조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영성, 수행, 치유, 공동체에 대한 글을 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누리꾼들에 의해 ‘인문교양도서’ 1위에 뽑혔다. 기독교 숨은 영성가를 발굴한 (울림)은 감신대, 서울신대, 장신대, 한신대의 ‘100대 교양 필독도서’. (은둔)이 불교출판문화상과 올해의 불서상을, (하늘이 감춘땅)이 불교언론문화상을 수상. (인도오지기행),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 (세계 어디에도 내집이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됐다.
이메일 : cho@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페이스북 : hoosim119
2012년 1월 28일 토요일
인권의식 없는 보수언론의 학생인권조례 비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27일자 기사 '인권의식 없는 보수언론의 학생인권조례 비판'을 퍼왔습니다.
[기자의 눈] 학생인권조례가 싫다고 동성애 혐오 조장하나
예상했던 반발이 나오고 있지만 도를 넘는 사안까지 쟁점화되는 모양새다. 서울시교육청이 26일 공포한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얘기다.
경기도와 광주시에 이어 세 번째로 공포된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익히 알려진 대로 체벌에 대한 반대, 두발과 복장의 자유, 학생의 교내 집회 허용, 종교 행위 강요의 금지, 소지품 검사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보수단체는 이 조례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고 있다. 26일 오후 는 이 조례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기사를 통해 전달했다. 이 신문은 특히 독자의 반발을 일으키기 위해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개인에 대한 비난성 기사까지 실었다.
이라는 기사는 곽 교육감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적지 않은 일선 학교 교육자들이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돌아온 교육감이 편향된 일부의 주장과 자기 소신만을 앞세운 조례안을 공포하면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곽 교육감은 자숙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적지 않은 일선 학교 교육자'들이 과연 얼마나 되며, 그들이 실제 저와 같은 말을 한 건지도 의심스럽지만, 무엇보다 이 대목은 언론의 '특정한' 의도를 너무나 짙게 풍긴다. '학생인권조례를 범죄자(곽노현)가 밀어 붙인다'는 논리를 통해 '학생인권조례는 나쁘다'는 인식을 독자에게 심어주려 한다는 얘기다. 곽 교육감이 얽혔던 뇌물 공방과 학생인권조례의 옳고 그름에는 논리적 관계가 없다.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자문위원들이 기자회견에 나섰다. 왼쪽부터 전은자 참교육 학부모회 서울지부장, 송병춘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변춘희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본부 공동대표, 한상희 학생생활교육 정책자문위원장, 김홍섭 서울시교육청 평생진로교육국장, 수수(활동명)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본부 위원. ⓒ뉴시스
보수언론의 편향된 태도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시각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이 '학생도 하늘에서 부여한 보편적 인권을 향유할 권리를 지닌 인간'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라 새삼스러울 것 없다. '학생의 인권 보장이 교권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교사의 권리와 부당한 권위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 또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는 27일자 칼럼 코너에서 "이제 학생들은 교실·운동장·거리에 모여 시위를 할 수 있게 됐다"며 학생들이 "반미·종북 세력들과 스크럼을 짜고, 경찰차에 불 지르고, 청와대로 돌진할 수도 있다. '희망버스'에 올라타거나 크레인 위에 올라가 단식투쟁을 하는 초·중·고생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고 지적했다. 가히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는 예의 '남자교사 증원'이 시급하다는 주장 역시 기고문을 통해 연신 강조하고 있다. 남자교사의 힘과 위세로 아이들을 억누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발상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혐오에 비춰 보면, 이 신문이 아이들을 어떤 존재로 여기는지 단박에 드러난다. 아이들은 억눌러야 하고, 그들의 인권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미 일선 대안학교 중 일부에선 수업의 하나로 지난해 학생들이 각종 집회현장에 참여하거나, 희망버스에 타기도 했다. 성미산학교의 한 교사는 "일반계 학교에서 상처받고 온 '일진' 출신이 희망버스를 탄 후 완전히 달라졌다"고 학습효과를 설명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집회에 나선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 민주화를 이끌었던 4.19 혁명은 십대 청소년들이 불씨를 댕겼다.
의 ''임신·동성애'까지 사실상 허용' 기사에는 동성애 자체를 죄악시하는 의식이 강하게 드러난다. 기사는 "보편적 인권보장 자체는 좋지만, 미성년에게 동성애와미혼모 등까지 지나친 자기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오히려 책임의 방기"라고 지적했다. 동성애자가 사실상 범죄자 취급당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그들이 놓인 현실에는 눈을 감고 "학생의 누릴 인권을 명확히 하는 건 곧 동성애 방조"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늘어놓은 셈이다.
성적 지향이 남들과 다른 학생이 이를 들켰을 경우, 친구에게, 혹은 교사에게 부당한 차별을 받더라도 당연하다는 건지 묻고 싶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급격해서 불안한 성장기를 겪는 아이들이 받을 이 인권침해는, 크게는 한 사람의 생애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이와 같은 입장은 를 제외한 다른 보수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논조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호모포비아에 빠진 언론들이 오직 '학생인권조례 좌초'라는 목적을 위해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인권 인식 수준을 알 수 있는, 비참한 현실이다.
/이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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