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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0일 수요일

'의료 사고' 아들은 7년째 입원…담당의 "수술 몰랐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20일자 기사 ''의료 사고' 아들은 7년째 입원…담당의 "수술 몰랐다"'를 퍼왔습니다.
[선택 아닌 선택진료 ②] 잘못된 '대리 진료' 관행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에서 선택진료비를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환자단체들은 허탈감을 금치 못했다. 가계 파탄의 원흉으로 꼽히는 비급여(비보험) 진료비 가운데 1위를 차지하는 항목이 바로 선택진료비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선택진료제에 관한 환자들의 불만을 듣고, 이 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돼 왔는지를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대형 병원에서 진료 받은 환자들의 영수증을 보면 '선택진료비'라는 항목을 쉽게 볼 수 있다. 선택진료비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지 5년이 지나고 대학 병원에서 조교수 이상인 의사, 혹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지 10년이 지난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 환자가 내는 추가 비용이다. 선택진료제는 환자가 특정 의사를 선택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현실에서는 선택진료제가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표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대리 진료'다. 2001년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 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선택진료 의사가 전체 진료를 직접 담당한 경우는 60.5%였다. 선택진료 의사가 일부 진료를 하고 다른 의사가 나머지 진료를 담당한 경우가 37.9%, 다른 의사가 전체 진료를 담당한 경우는 0.6% 등으로 나타났다.

선택 아닌 선택진료① "이것 믿고 박근혜 찍었는데 사기 당한 기분" "어느 교수가 일요일에 나와서 마취를 합니까?"

손영준(당시 19세) 씨의 어머니 우미향 씨도 2007년 2월 아들의 다리 수술에 '선택진료'를 했다. 선택진료 교수 대신 레지던트 1년차가 수술실에 들어갔을 줄은 몰랐다. 결과는 의료 사고였다. 아들은 마취에서 제대로 깨어나지 못했고,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지금까지 7년째 입원 생활을 하고 있다. 뇌에 손상을 입어 100일 된 아기 상태로 돌아간 채였다.

손 씨가 다리 골절상을 입고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은 건 2007년 2월 3일 토요일 저녁 8시께였다. 병원에서는 크게 다친 건 아니라고 부모를 안심시켰다. 부모는 정형외과와 마취과에 선택진료 의사를 택했다. 이튿날인 일요일 오후 1시께 손 씨는 수술실로 향했다. 아들이 지갑을 내밀며 "친구들이 병문안 오니까 밥 좀 사주라"고 했을 때 우 씨는 그게 아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일 줄은 몰랐다.

▲ 손영준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2시간 반이면 끝난다던 수술은 6시간이 넘어서야 끝났다. 우 씨는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아들이 검정 눈동자가 다 넘어간 채 의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부분 마취에서 전신 마취로 전환하다가 환자가 아프다고 해서 수술을 중단했는데, 그 과정에서 갑자기 심장 정지가 발생했다"고 뒤늦게 설명했다.

우 씨가 수술실에 마취과 교수 대신 레지던트 1년차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해 2월 5일 월요일이었다. 마취과 교수는 "마취약이 과다하게 투입됐는지, 환자에 따라서 마취가 빨리 깨는 사람도 있고 늦게 깨는 사람도 있는데 해독제를 놨으니 곧 깨어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교수가 직접 마취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우 씨에게 "나는 일요일에 수술이 있는지 몰랐고, 내가 아니라 레지던트 1년차가 들어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우 씨는 "심지어 '마취과 교수는 휴일에 안 나온다, 어느 교수가 일요일에 나와서 마취를 하느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뇌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아기 상태로 돌아간 손 씨는 7년째 병원에 입원해 있다.

한 달 뒤면, 일 년 뒤면 아들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절망으로 변해갔다. 결국 공소시효 만료를 며칠 앞두고 지난 2010년 우 씨 부부는 병원 측을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병원이 보험회사에 선택진료비를 돌려줬으므로 죄가 안 된다는 이유로 병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우 씨는 의료진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나, 의료진 측이 대한마취과학회에 직접 의뢰해 제출한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소견이 1심에서 받아들여져 패소하고 현재 항소한 상태다.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겠지만, 레지던트 1년차가 마취한다고 미리 알려줬으면 절대 수술을 안 했을 거예요. 수술 도중에 부분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면, 수술을 중단했을 겁니다. 교수가 수술한다고 해서 선택진료까지 신청했는데, 교수가 안 나와서 사고가 났으면 병원이 100% 책임져야죠. 마취과 교수가 오니까 걱정하지 말라더니, 이제 와서 돈을 돌려줬으니 죄가 안 된다니요. 우리 인생은 2007년 이후로 멈춘 거잖아요."

선택진료제가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정부 공식 통계는 없다. 다만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교수가 외국 학회에 출장을 갔는데도 버젓이 선택진료 의사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며 "선택진료를 한 보호자가 환자를 수술실에 보내고 나오는 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선택진료 교수와 마주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만 있는 선택진료제, 외국은…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이 고액 진료비를 경감하기 위해 선택진료비를 폐지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내놨을 때, 대한병원협회는 "국민의 실질적인 의사 선택권이 축소된다"며 반대했다. 환자단체들의 생각은 다르다. 환자들은 숙련된 교수를 만나기 위해 대학 병원에 가는데, 5년차 이상인 의사가 거의 전부 선택 진료 의사라면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손 씨의 아버지 손상현 씨는 "우리는 선택진료를 비롯해 병원에서 하자는 모든 것을 다 했다"며 "일단 선택진료를 시켜놓고 나중에 서명만 하라고 하고, 돈만 잔뜩 받아먹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억울해했다. 그는 "선택진료가 선택이 아닌 만큼 선택진료제를 폐지하는 대신 의료기관 점수를 평준화해서 건강보험 수가에 적용하고, 수술은 전문의 이상에게만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실 한국은 선택진료제를 도입한 유일한 국가다. 한국과 의료 체계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 환자는 의사를 지정해 진료를 신청할 수 있지만, 특정 의사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기다릴 수는 있어도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는 않는다. 다만, 환자들이 의원(1차 의료기관)의 진료 의뢰서 없이 곧바로 병원급 이상(2차, 3차 의료기관)에 초진을 신청하면 '특정요양비'를 내야 한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비용 부담이 건강보험의 2-3배에 달하는 민간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공공 병원 진료과 과장에게 '정규 근무시간 이외' 시간에 진료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준다. 공공 보험 체계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사적 선택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상급병원에 가야 할 경우 환자들은 자신이 정한 주치의가 추천해준 전문의를 찾아간다. 환자가 주치의에게 특정 전문의를 추천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드물다.

미국 시민들은 주로 직장에서 제공하는 민간 보험(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에 가입하고 보험사가 의료비를 지급하는데, 이 경우 민간 보험사와 계약한 병·의원들이 몇 군데 정해져 있어 사실상 선택권을 제약받는다. 민간보험이 지급 보증하지 않는 병원이나 의사를 찾으려면 진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선택진료제, 의료기관 질 평가로 대체해야"

선택진료제를 없애면 환자의 의사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병원협회의 주장에 대해 안기종 대표는 "지금도 환자에게는 의사 선택권이 없으며, 대형 병원에서 진료 받으려면 선택진료비를 내고도 기다려야 한다"고 반박했다. 대형 병원에 가면 대기 시간이 긴 것은 선택진료비 징수 유무와 상관없다는 것이다.

선택진료제를 폐지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확보하는 대안으로 그는 "의료기관 종별 질 평가를 통해 수가를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병원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환자의 선택권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상현 씨는 아들이 사고를 당한 이후 아내가 수술할 일이 생겨 경험 많은 의사가 있는 작은 병원을 찾아간 사례를 말했다. 손 씨는 "의사가 나를 수술실에 데려가 화면을 보여주면서 '유착이 예상보다 심해서 복강경 수술을 하기 어려우니 개복 수술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그 자리에서 동의했다"며 "이런 게 진짜 환자 선택권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의료진이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 환자나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의사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나영 기자

2012년 9월 7일 금요일

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7일자 기사 '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을 퍼왔습니다.
[기고] "의료사고로 숨진 남편…중환자실에 인권은 없었다"

2010년 9월 중견 연극배우 서희승 씨의 부고가 전해졌다. 사망 이유는 간호사의 혈압상승제 과다 투여였다. 유족 측은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관리하는 바람에 환자가 방치됐다"며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환자 안전관리가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백한 의료사고로 유족들은 병원과 민사소송을 결정했고 2심에서도 승소한 상태다.

서희승 씨가 처음 수술대에 오른 것은 2007년, 직장암 초기 진단을 받은 후였다. 수술 후 빠른 회복을 보이며 일상에 복귀한 그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했지만 3년 뒤인 2010년 전립선과 신장에 암이 전이되어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고(故) 서희승 씨의 아내이자 뮤지컬 배우인 손해선 씨는 "남편이 간혹 응급실로 실려가긴 했지만,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었다"고 말했다.

"수술 후 기능이 안 좋아진 콩팥 때문에 요로(소변을 체외로 받아내는 주머니)를 차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열이 자주 올랐어요. 체온이 37도만 넘으면 초긴장 상태가 되었고 그때마다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2~3일 입원해 치료받고 나면 이내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 연극배우 고(故) 서희승 씨. ⓒ손해선
하지만 2010년 6월 24일 불행이 시작됐다. 여느 때와 같이 38.5도가 넘은 체온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내원한 서희승 씨의 혈압은 90-70이었다. 의료진은 간성혼수가 올 수 있으니 혈압상승제를 쓰자고 했고 긴급한 상황과 응급치료가 끝난 뒤 서 씨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보통 이동침대에서 병실침대로 환자를 옮길 경우 간호사와 직원들이 시트를 들어 옮긴다. 그런데 간호사는 서 씨에게 스스로옮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몸을 움직인 서 씨는 침대에 오른 직후 가슴의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통증의 원인은 바로 혈압상승제였다. 조절기를 잠그고 옮겨야하는데 그대로 열어 두어 30초간 대량의 혈압상승제가 투여되었던 것.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마치 선지와 같은 각혈을 하는 서 씨를 본 의료진은 위급상황인 코드블루를 알렸고 서희승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76일 만에 숨졌다.

환자들의 목숨 위협하는 중환자실의 허술한 관리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30분씩, 그나마 환자 1명당 단 두 사람만이 면회가 가능한 중환자실은 24시간 온전히 의료진의 돌봄에 의지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남편 서 씨에 대한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체온유지가 중요한 환자의 겨드랑이에서 체온유지를 체크하는 온도계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만 세 번이었다. 환자에게 사용한주사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기도 했고 남편의 발밑에서 이쑤시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왜 어머니한테만 이런 게 보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변명만 했다.

그녀가 가장 경악한 것은 바로 욕창이었다. 지속적인 압박으로 혈액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욕창은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들에게 잘 일어난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 환자는 수시로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10일 만에 서 씨에게 욕창이 온 것. 하지만 간호사들은 손 씨와 가족들에게 잘 관리하겠다는 말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보지 못하게 했다. 병원은 또한 사망 후 보면 더욱 마음 아플 것이니 보여줄 수 없다며 시신을 가리고 입관을 강행해 결국 서 씨는 남편의 욕창자국을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금요일 오전 남편의 팔에서 수포를 발견한 손 씨는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협진을 요청했고 오후에 늘어난 수포를 확인했지만 남편의 협진은 3일이 지난 월요일에 이루어졌고, 결국 서 씨는 주말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보내야했다.

게다가 대상포진은 면포나 깨끗한 거즈로 덮어 관리해아 함에도 불구하고 서 씨의 팔에는 거즈가 아닌 압박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놀란 손 씨의 지적에 간호사가 압박붕대를 잘라내자 퉁퉁 부어 있던 팔의 피부는 마치 썩은 것처럼 검게 변해 있기도 했다.

그녀가 본 중환자실은 그야말로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저 죽음이 드리워진 공간이었다. 손 씨는 "중요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 들어가 이틀 미만으로 있으면 살아서 나오지만, 3일이 지나면 대부분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빛바랜 JCI인증, 누구를 위한 인증인가?

서희승 씨가 입원했던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로 환자의 안전과 양질의의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환자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 시까지 치료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평가해 인증하는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 미국회사가 세운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 국제인증을 받았다. 그간 일부 의료계에서는 JCI 인증이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증을 받았음에도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들에겐 궁금하고 중요한 환자의 상태 역시 30분짜리 면회가 끝나기 5분 전이나 시작된 직후에 다가온 담당 의사에게 1~2분 전해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지난 5일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린 환자단체연합회의 '제2회 환자Shouting카페'에서 이 같은 '중환자실 환자 안전관리' 현실을 전한 손해선 씨는 "가족의 면회가 제한된 상태에서 일대일 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환자가 인력부족으로 방치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제가 옆에 있었다면 남편은 보다 깨끗한 환경에서 병상생활을 했을 것이고 욕창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인데 일대일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상황에 JCI인증까지 받은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또 입원 시 58kg이었던 남편의 몸무게가 80kg으로 늘어났습니다. 피가 부족해 수혈을 한다고 했지만 밖으로의 외출혈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출혈부위 하나 찾아내지 못합니까?"

http://www.youtube.com/watch?v=2q7ICJVLiME&feature=player_embedded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산별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무상의료 실현과 병원인력법 제정에 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보호자와 환자를 위해 병상일기 꼭 필요!


이날 손해선 씨는 한 손에 두툼한 수첩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바로 남편 서희승 씨의 병상일기다. 병상일기에는 날짜별로 순간순간의 치료와 증세, 상황 등을 정리했고, 중요하다 싶은 내용은 형광펜을 이용해 밑줄을 그어놓는 세심함을 잃지 않았다.


손 씨는 병상일기가 소송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증상은 물론 치료과정 아주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말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지난 8월 16일 민사소송 2심에서 승소 판정을 받았지만 현재 형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길고 긴 시간 동안 병원과 의료진은 단 한 번도 저희 가족과 고인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또 한 번의 길고긴 싸움을 시작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76일 간을 기록한 병상수첩. 손 씨는 만일에 대비해 환자의 증상과 치료과정을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손해선

/엄호식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객원기자

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7일자 기사 '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을 퍼왔습니다.
[기고] "의료사고로 숨진 남편…중환자실에 인권은 없었다"

2010년 9월 중견 연극배우 서희승 씨의 부고가 전해졌다. 사망 이유는 간호사의 혈압상승제 과다 투여였다. 유족 측은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관리하는 바람에 환자가 방치됐다"며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환자 안전관리가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백한 의료사고로 유족들은 병원과 민사소송을 결정했고 2심에서도 승소한 상태다.

서희승 씨가 처음 수술대에 오른 것은 2007년, 직장암 초기 진단을 받은 후였다. 수술 후 빠른 회복을 보이며 일상에 복귀한 그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했지만 3년 뒤인 2010년 전립선과 신장에 암이 전이되어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고(故) 서희승 씨의 아내이자 뮤지컬 배우인 손해선 씨는 "남편이 간혹 응급실로 실려가긴 했지만,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었다"고 말했다.

"수술 후 기능이 안 좋아진 콩팥 때문에 요로(소변을 체외로 받아내는 주머니)를 차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열이 자주 올랐어요. 체온이 37도만 넘으면 초긴장 상태가 되었고 그때마다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2~3일 입원해 치료받고 나면 이내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 연극배우 고(故) 서희승 씨. ⓒ손해선
하지만 2010년 6월 24일 불행이 시작됐다. 여느 때와 같이 38.5도가 넘은 체온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내원한 서희승 씨의 혈압은 90-70이었다. 의료진은 간성혼수가 올 수 있으니 혈압상승제를 쓰자고 했고 긴급한 상황과 응급치료가 끝난 뒤 서 씨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보통 이동침대에서 병실침대로 환자를 옮길 경우 간호사와 직원들이 시트를 들어 옮긴다. 그런데 간호사는 서 씨에게 스스로옮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몸을 움직인 서 씨는 침대에 오른 직후 가슴의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통증의 원인은 바로 혈압상승제였다. 조절기를 잠그고 옮겨야하는데 그대로 열어 두어 30초간 대량의 혈압상승제가 투여되었던 것.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마치 선지와 같은 각혈을 하는 서 씨를 본 의료진은 위급상황인 코드블루를 알렸고 서희승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76일 만에 숨졌다.

환자들의 목숨 위협하는 중환자실의 허술한 관리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30분씩, 그나마 환자 1명당 단 두 사람만이 면회가 가능한 중환자실은 24시간 온전히 의료진의 돌봄에 의지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남편 서 씨에 대한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체온유지가 중요한 환자의 겨드랑이에서 체온유지를 체크하는 온도계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만 세 번이었다. 환자에게 사용한주사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기도 했고 남편의 발밑에서 이쑤시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왜 어머니한테만 이런 게 보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변명만 했다.

그녀가 가장 경악한 것은 바로 욕창이었다. 지속적인 압박으로 혈액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욕창은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들에게 잘 일어난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 환자는 수시로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10일 만에 서 씨에게 욕창이 온 것. 하지만 간호사들은 손 씨와 가족들에게 잘 관리하겠다는 말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보지 못하게 했다. 병원은 또한 사망 후 보면 더욱 마음 아플 것이니 보여줄 수 없다며 시신을 가리고 입관을 강행해 결국 서 씨는 남편의 욕창자국을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금요일 오전 남편의 팔에서 수포를 발견한 손 씨는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협진을 요청했고 오후에 늘어난 수포를 확인했지만 남편의 협진은 3일이 지난 월요일에 이루어졌고, 결국 서 씨는 주말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보내야했다.

게다가 대상포진은 면포나 깨끗한 거즈로 덮어 관리해아 함에도 불구하고 서 씨의 팔에는 거즈가 아닌 압박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놀란 손 씨의 지적에 간호사가 압박붕대를 잘라내자 퉁퉁 부어 있던 팔의 피부는 마치 썩은 것처럼 검게 변해 있기도 했다.

그녀가 본 중환자실은 그야말로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저 죽음이 드리워진 공간이었다. 손 씨는 "중요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 들어가 이틀 미만으로 있으면 살아서 나오지만, 3일이 지나면 대부분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빛바랜 JCI인증, 누구를 위한 인증인가?

서희승 씨가 입원했던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로 환자의 안전과 양질의의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환자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 시까지 치료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평가해 인증하는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 미국회사가 세운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 국제인증을 받았다. 그간 일부 의료계에서는 JCI 인증이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증을 받았음에도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들에겐 궁금하고 중요한 환자의 상태 역시 30분짜리 면회가 끝나기 5분 전이나 시작된 직후에 다가온 담당 의사에게 1~2분 전해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지난 5일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린 환자단체연합회의 '제2회 환자Shouting카페'에서 이 같은 '중환자실 환자 안전관리' 현실을 전한 손해선 씨는 "가족의 면회가 제한된 상태에서 일대일 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환자가 인력부족으로 방치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제가 옆에 있었다면 남편은 보다 깨끗한 환경에서 병상생활을 했을 것이고 욕창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인데 일대일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상황에 JCI인증까지 받은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또 입원 시 58kg이었던 남편의 몸무게가 80kg으로 늘어났습니다. 피가 부족해 수혈을 한다고 했지만 밖으로의 외출혈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출혈부위 하나 찾아내지 못합니까?"

http://www.youtube.com/watch?v=2q7ICJVLiME&feature=player_embedded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산별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무상의료 실현과 병원인력법 제정에 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보호자와 환자를 위해 병상일기 꼭 필요!


이날 손해선 씨는 한 손에 두툼한 수첩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바로 남편 서희승 씨의 병상일기다. 병상일기에는 날짜별로 순간순간의 치료와 증세, 상황 등을 정리했고, 중요하다 싶은 내용은 형광펜을 이용해 밑줄을 그어놓는 세심함을 잃지 않았다.


손 씨는 병상일기가 소송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증상은 물론 치료과정 아주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말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지난 8월 16일 민사소송 2심에서 승소 판정을 받았지만 현재 형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길고 긴 시간 동안 병원과 의료진은 단 한 번도 저희 가족과 고인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또 한 번의 길고긴 싸움을 시작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76일 간을 기록한 병상수첩. 손 씨는 만일에 대비해 환자의 증상과 치료과정을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손해선

/엄호식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객원기자

2012년 7월 1일 일요일

‘사장님’ 한국 의사 vs 독일 의사 ‘선생님’


이글은 한겨레21 2012-07-02일자 제917호 기사 ' ‘사장님’ 한국 의사 vs 독일 의사 ‘선생님’'을 퍼왔습니다.
[기획연재 ‘병원 OTL- 의료 상업화 보고서’ ⑦ 의사는 왜 ‘자영업자’가 됐나] 한국·독일 의사 비교로 살펴본 한국 의료계 사익추구적 토양… 의사가 되기까지 국가 지원 전혀 없는 시스템 근본 원인

연재순서
① 과잉진료 권하는 병원
② ‘가짜 원장’ 양산하는 병원들
③ 폐업하는 동네의원
④ 거대병원의 무한경쟁
⑤ 무너지는 공공의료
⑥ 의료사고, 상업화의 그늘
⑦ 의사는 왜 ‘자영업자’가 됐나

» 김응수 원장. 김명진 기자

 » 틸로 슈나이더 원장. 한주연 제공
과잉의료, 리베이트, 의료사고, 수술 거부….
왜, 언제부터 우리나라 의사들은 사고뭉치로 돌변했을까. 수많은 전문직 가운데 유일하게 선비 ‘사’(士)가 아닌 스승 ‘사’(師)자가 붙은 직업인이면서도 왜 의사들은 대부분 마땅한 존경을 받지 못할까. 왜 한국의 의사들은 ‘스승’의 위치에서 벗어나 저잣거리의 장사치를 자임하기 시작했을까. ‘병원 OTL’ 7회에서는 그 까닭을 풀이해보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의사들이 자라나고 살아가는 토양을 파헤쳐보았다. 도대체 어떤 자양분을 먹었고 자랐기에 한국의 의사들은 이토록 타락하고 위축됐는지 그 영문을 알기 위해서다.
상대적인 분석을 위해서 한국과 독일의 의사를 한 명씩 호출했다. 한국에서는 서울 동작구에서 동네의원을 단독 운영하고 있는 김응수(43) 원장이, 독일에서는 옛 동독 지역의 도시 로스토크에서 동네의원을 공동 개원한 틸로 슈나이더(38) 원장이 나섰다. 둘 다 각자의 지역에서 건전하고 상식적인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두 사람에게 10개의 공동 질문을 던졌다. 두 나라 사이에서 토양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설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병수 새로의 도움을 받았다.

한 건물 병원 6곳 vs 병원수 지역별 제한

1. 일주일에 근무시간은?

김응수 원장(이하 김): 일주일에 60시간 조금 넘게 일한다. 3년 전부터는 수익을 늘리려고 화요일과 목요일에 야간 진료도 하고 있다. 월·수·금은 아침 9시~저녁 7시, 화·목은 아침 9시~밤 9시, 토요일은 아침 9시~오후 4시 병원 문을 연다. 환자가 오든 안 오든 영업시간을 늘리는 것이 병원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근무시간을 더 늘려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주변에 개원하는 병원이 늘어 경쟁이 치열하다. 물론 방문진료는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틸로 슈나이더 원장(이하 슈나이더): 3명이 공동 원장이 돼서 병원을 운영한다. 의사 1명을 고용해 우리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수는 모두 4명이다. 보통 진료는 일주일 가운데 5일만 한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아침 8시~오후 4시에 근무한다.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에는 근무하지 않는다. 이날에는 방문진료를 할 때가 많다. 목요일엔 오후 1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7시에 끝난다. 바빠서 점심시간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근무 외의 시간에는 연수와 가족을 위한 시간을 만든다. 우리 의원은 잘 조직돼 있어서 근무량이 좀 적은 편이다.

2. 하루에 몇 명의 환자를 보는가?

김: (컴퓨터 모니터를 보여주며) 오늘 환자 49명을 봤다. 개원의 가운데서는 아주 많이 오는 편은 아니고, 그렇다고 적은 편도 아니다.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환자 수는 변동이 있다. 대략 40~70명이 온다. 평균적으로 이 정도 수준이다. 환자 1명마다 진료하는 시간은 3~10분이다. 오래 진료하고 싶어도 환자들이 바쁠 때도 있다. 또 다른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오래 진료하지 못한다. 당뇨병 환자들은 20분 정도 좀더 오래 이야기를 나누며 건강관리 방법 등을 두루 알려주고 싶다. 그렇지만 시간이 생각처럼 쉽게 나지 않는다. 안타깝다.
슈나이더: 오전에 20~35명, 오후에 20명 정도 진료한다. 그 가운데 몇몇은 정기적으로 검진하러 오는 경우다. 나는 환자 1명에게 10분 정도의 시간을 들이려고 노력한다. 이것도 불가능할 때가 종종 있다.

3. 병원들 사이의 경쟁은?

김: 10년 전에 개원했다. 그사이 건물에는 안과, 재활의학과, 이비인후과 병원 3곳이 더 생겼다. 지금은 한 건물에 병원만 6곳이다. 좁은 집에 가족이 꽉 찬 ‘풀하우스’다. 치과는 이웃한 건물 2곳에도 다 있다. 그러니 병원들은 완전히 자율 경쟁을 한다. 의사들은 알아서 벌이를 해야 하고, 책임도 각자 져야 한다. 동네의원은 동네슈퍼랑 처지가 비슷하다. 주변에 홈플러스나 이마트 등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밀려나게 된다.
슈나이더: 우리 병원이 위치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서는 의원 수가 지역마다 제한돼 있다. 그래서 개원할 수 있는 동네와 이미 의원이 포화 상태인 동네가 따로 있다. 의사가 포화 상태인 지역에서 개원하려면 의원 자리를 사야 한다. 물론 개원이 가능한 지역에서는 그냥 개원할 수 있다.
1회 3800원 vs 1분기 10유로

4. 환자들은 진료비를 얼마나 내는가?

김: 기본적인 증상의 경우, 환자들은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을 때마다 3800원을 낸다. 그러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9090원을 채워 병원에 보상해주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진단이나 치료 내용에 따라 비용은 다르다. 환자들은 치료를 추가적으로 받을 때마다 부가적인 비용을 낸다.
슈나이더: 환자는 분기마다 10유로만 내면 모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말하자면, 환자 1명에 대한 총액예산제다(상자 기사 참조). 한 분기 동안에는 환자가 병원을 몇 번 찾아오든 상관이 없다. 주마다 의료보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의료보험의 돈은 의사협의회에서 협상한 내용에 따라 의사들에게 배분된다. 이론적으로 보면, 분기마다 환자 1명꼴로 30~50유로의 수입이 생긴다. 어린이나 노인 같은 환자 진료에 대한 병원의 수입은 약간 더 많다. 2004년 총액제를 도입한 이후 의사들은 되도록 많은 환자를 받기 원한다. 한 분기 동안에는 일단 한 번 본 환자는 다시 안 오기 바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전문의들은 다음 진료 예약을 다음 분기로 미루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보면 의사 수입이 그렇게 많은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의사들의 수입은 적지 않다. 비보험 환자에 대한 수입이나 민간보험 환자에게서 나온 치료비 등 다른 수입들이 있기 때문이다.

5. 포괄수가제에 대한 의견은?

김: 가정의학과는 당장 상관이 없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제왕절개나 치질 수술과는 상관이 없다. 그렇지만 포괄수가제로 완전히 바꾸었을 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결국 정부에서 재정지출을 절감하려는 시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의료비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이해를 구하면 협조할 생각도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의사들이 매도당하는 것 같아서 불편한 심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슈나이더: 모든 시스템에는 장단점이 있다. 독일에서도 옛날엔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해 모든 진료 행위에 대해 각각 계산됐다. 이로 인해 과잉 진료 행위가 생겼다. 이제는 (포괄수가제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인) 총액요금제를 통해 불필요한 의료 행위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지금 총액요금제에 만족한다. 우리 의원은 질 좋은 기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환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6. 개인 수입은 얼마나 되는가?

김: 일반 봉직의보다는 조금 좋은 편이다. (흔히 ‘페이닥터’로 알려진, 일반 병원에 고용된 의사를 가리키는 봉직의의 월급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수도권에서는 보통 500만~1천만원이다.) 그런데 개원 비용을 아직 못 갚고 있다. 채무를 갚고 나면 저축을 하기 힘든 수준이다. 지출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골프도 치지 않고, 출퇴근용 차도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집도 전세로 살고 있다.
슈나이더: 우리 지역의 주치의는 의료보험 환자를 본 수입으로만 1년에 10만유로(약 1억5천만원) 정도를 할당받는다. 그 밖에 소견서를 쓰는 등 다른 데서 생기는 수입이 있다. 여기서 소득세와 민간보험비를 공제한 것을 보통 주치의들의 평균수입이라고 보면 된다. 소득 액수에 따라 15∼42%의 소득세를 낸다. 독일의 세금 구조는 누진적이다. 대다수 의사에게 최고과세율이 적용된다. 그만큼 수익이 높다는 뜻이고, 세금도 많이 낸다.

»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비싼 대학 등록금과 수억원의 개원 비용을 스스로 감당한다. 공공 지원은 거의 없다. 이 과정을 거쳐 의사 집단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자영업자’로 규정하게 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 없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등록금 비싼 한국 vs 등록금 거의 없는 독일

7. 수입에 만족하는가? 수입을 늘리려고 어떤 활동을 하는가?

김: 저축을 못하고 있다. 그러니 불안하다. 그래서 야간 진료를 한다. 피부 레이저 시술도 한다. 이런 시술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아서 병원에 돌아오는 수익이 크다. 피부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매력도 있다. 건강보험에서 보상하는 수가가 매우 적기 때문에 건강보험 환자만 봐서는 병원이 생존하기 힘들다. 수익만 생각하면 피부나 미용 시술만 하면 된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동네에서 오래 봐온 환자들도 있다. 지역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이 있다. 그러니 건강보험 환자들도 계속 본다.
슈나이더: 의사들의 불평은 많은 편이지만 돈은 충분하다. 로스토크에서 내가 아는 모든 의사는 우선 삶의 질과 노동 부담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의사 수에 비해 환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과로가 가장 큰 문제다. 돈은 그다음 문제다. 의사들이 넘쳐나는 베를린에서는 운영난에 빠진 의원들도 있다. 그들은 환자를 얻으려고 고군분투한다.

8. 의과대학에 다니는 비용은 얼마였는가?

김: 내가 의대 다닐 때, 1년 등록금이 270만원이었다. 다른 전공은 200만원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 비쌌다. 의대에 다니는 것이 효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재비도 한 학기에 20만~30만원이 들었다. 당시에는 복제본 교과서를 많이 봤다. 그래서 그나마 그 정도 든 것이다. 지금은 저작권 때문에 원서를 사야 한다는데 부담이 클 것이다. 의대 교육 과정에서 정부 지원은 없었다.
슈나이더: 등록금은 거의 들지 않는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한 학기에 100유로 정도의 등록금을 냈다. 이는 버스와 기차, 그리고 학교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금액이다. 책과 자료에 드는 돈도 별로 많지 않다. 부모님의 소득이 낮은 학생에 한해 학자금 융자도 받을 수 있다.

9. 의대에 다닐 때 의료윤리에 관한 과목이 있었는가?

김: 본과 2년차에 의료윤리학 수업을 들었다. 물론 ‘국·영·수’는 다른 과목들이었고, 의료윤리학 과목은 학점 비중이 낮다.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 윤리 같은, 그러니까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과목이다. 게다가 본과 때라서 밤늦게 해부학 실습을 하기 때문에, 윤리학 수업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슈나이더: 들은 바 없다. (독일 하노버의과대학의 나이츠케 박사가 지난 2008년에 쓴
“시골 개원 때 5만 유로 무상 지원”

10. 개원 비용은?

김: 10년 전 개원할 때 2억원을 대출했다. 당시 의료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 회사에서 자사 제품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2억원을 빌려줬다.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돈은 없었다. 중간에 이자 부담이 적다는 ‘엔화 대출’로 갈아탔다가 엔화 환율이 크게 올라 빚이 오히려 많이 늘었다. 아직도 그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당시 다른 개원의들도 엔화 대출을 했다가 손해를 많이 봤다. 지금껏 금융기관의 노예가 된 느낌이다. 이자를 제때 갚아야 하니까.
슈나이더: 정확하게 이야기하긴 어렵다. 의사가 부족한 시골 지역에서 개원할 때는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 내가 사는 주에서도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에 의원을 열 경우 무상으로 5만유로를 받는다. 지역에 따라 지원 내용이 다르다. 도시에서 주치의가 병원을 여는 비용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아주 비싼 기계를 구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개원할 때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컴퓨터 장비들이다.

11. 하고 싶은 말은?

김: 다른 병원에 가면 나도 환자다. 의사라고 다 좋은 사람만 있는 거 아니다. 치과에 가서 입 벌리고 있으면 나도 ‘이거 속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의사들이 양심적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제도적·재정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너희만 고생하냐’라는 말 듣는 것 알고 있다. 그래도 양심적으로 운영하는 병원들이 안 망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공익적인 의료를 하고 싶지만 ‘수익을 위해서는 피부·비만에 비중을 둬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도 그걸 바라는 거 같다. 비싼 레이저 시술을 하고, 공격적으로 홍보하라고. 그러면 돈을 더 대출받아서 병원 확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는 “아직도 보험 환자 받냐”고 말하기도 한다. 돈이 되는 성형외과나 피부과로 진료과목을 갈아탄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배운 가정의학을 버려야 하나, 이런 억울함이 있다.
슈나이더: 독일에서도 1차 의료 전담 의사 수는 부족하다. 현재 정부(기민련-자민당)도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지만 전문의 이익단체의 뜻을 거스르는 데 주저하고 있다. 그래서 1차 의료 전문의 시스템을 제대로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사민당은 주치의제도를 강화해서 불필요한 진료로 생겨나는 비용을 제한하려 한다. 그들이 정권을 잡으면 이 개혁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용어설명

행위별수가제: 의사가 진료량에 따라 보상을 받는 방식. 이를테면 병원이 수술 환자에게 주사나 검사 등 치료 행위를 많이 할수록 수입이 늘게 된다.
포괄수가제: 의사가 질환별로 정액의 보상을 받는 방식. 질병에 따라 보상액이 미리 정해져서 주사나 검사 등 치료행위가 늘어도 병원의 수입이 늘지 않는다.
총액예산제: 병원이 한해 예상되는 비용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진료하며 보상을 받는 방식. 수입 총액이 미리 정해져서 주사나 검사 등 치료 행위를 여러 번 해도 수입이 늘지는 않는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로스토크(독일)=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2012년 6월 24일 일요일

‘숨어 있는 일상’의료사고


이글은 한겨레21 2012-06-25일자 제916호 기사 '‘숨어 있는 일상’의료사고'를 퍼왔습니다.
[기획연재 ‘병원 OTL- 의료 상업화 보고서’ ⑥ 의료사고, 상업화의 그늘]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 6800여 명의 두배 넘는 의료사고 사망자 1만7012명… 간호 인력 부족과 전공의 열악한 근무 여건이 주요 원인

» 백혈병을 오래 앓았던 고 정종현군이2009년 8월21일 한국메이크어위시소원별재단이 주선한 행사에서 조훈현 국수와 바둑을 두고 있다. 이듬해 5월 병원을 찾아간 정군는 항암주사를 맞고 급격히 상태가 악화돼 9일 만에 숨졌다. 병원 쪽은 의료사고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김영희 제공

젊은 엄마의 목소리는 자주 끊겼다.
지난 6월13일 기자와 통화를 하는 사이 김영희(36)씨의 말은 힘들게 이어졌다. 아들 종현이는 2년 전 9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종현이는 6살 때부터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이라는 긴 이름의 병을 앓았다. 바둑 두기를 좋아하고, 이라는 만화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꼬마였다. 대구에 사는 종현이는 가까운 경북대병원을 찾아 2년 가까이 항암치료를 받았다. 다행히도 증상이 가벼운 백혈병이었다. 골수이식을 받지 않아도 항암치료만으로 90% 이상 완치가 가능하다는 말도 들었다.

항암치료 도중 갑자기 숨진 아이

2010년 5월19일 밤 10시에도 그랬다. 언제나처럼 병원을 찾아 항암제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다음날 새벽 4시부터 아이는 머리가 아프고, 엉덩이도 쥐어뜯는 듯이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진통제도 소용이 없었다. 통증은 눈에까지 번졌다. 2시간 뒤에는 마약성 진통제까지 맞았다. 마비는 아이의 다리 끝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번졌다. 만 하루가 지나고 나서 아이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틀 뒤 의식을 잃었다. 종현이는 그렇게 일주일 가까이 죽음의 언저리를 헤매다 5월19일 새벽 1시에 숨을 멈추었다. 어쩌면 평범한 어린아이의 평범한 죽음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상했다. 의료진을 채근해도 뾰족한 답을 주지 않았다. 김씨 부부는 팔을 걷어붙였다. 전문가들을 찾아나섰다. 종현이와 증상이 일치하는 사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9살 꼬마에게 생긴 일은, ‘빈크리스틴’이라는 정맥주사를 척수로 잘못 주사할 때 생기는 증상이었다. 종현이 같은 백혈병 환자들은 척수와 동맥 쪽에 동시에 두 가지 주사를 맞는데, 종종 두 주사가 실수로 바뀌면 생기는 일이었다. 경북대 의료진에서는 “증상이 같다고 과오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 부부는 그해 7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공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젊은 엄마의 말은 무게를 헤아리기 힘들다. “정말 잘 클 줄 알았는데, 너무 아까워서 힘들었어요. 인정할 수 없었어요.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것이 너무 괴로웠어요.” 현실의 공방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앞서 이런 문제를 바꾸었다면 불행한 일도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제2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죠.” 경북대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답을 준다던 병원은 하루가 지나도록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전화를 했다. 병원 관계자는 그제야 답을 했다. “지금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 판결을 기다리겠다.”
종현이의 이야기는 ‘뉴스’가 아니다. 이상일 울산대 교수의 ‘환자 안전의 국내외 동향’ 자료를 보면, 의료사고는 ‘숨어 있는 일상’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환자 안전 사망사고가 한 해 3만9109건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물론 모두 ‘인재’는 아니다. 이 가운데는 약물 부작용 등 현대 의술의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죽음 2만2천 건도 있다. 이 통계를 제외하면 의료진의 크고 작은 실수 때문에 사망하는 인구가 잡힌다. 1만7012명이다. 뒤집어 말하면, 병원에서 인력과 장비를 잘 갖추었다면 그만큼의 사망은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 해 교통사고로 떠나는 생명이 6800여 명이다. 의료사고 사망자가 교통사고 사망자의 세배 가까이 된다. 실감하기 어렵고, 믿기도 어려운 통계다. 추산치의 근거는 무엇일까. 안전사고의 보고 체계가 우리나라보다 잘 갖춰진 선진국의 사고 통계를 우리나라에 적용해 어림한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국립의학연구원은 1999년에 낸 보고서에서 미국의 의료사고 사망자 수를 4만4천~9만8천 명으로 추산했다. 이쯤 되면, 일반인이 좀처럼 보기 힘든, 병원의 어두운 얼굴이 윤곽을 드러낸다.


병상 1개당 간호 인력 비율, OECD 평균의 1/5 수준

왜 의료사고가 생길까. 몇 가지 주요한 원인만 짚어보자. 무엇보다 간호 인력이 부족하다. 2008년 한양대 의대 간호학과 조성현 교수팀의 논문은 짐작 가능한 가설을 입증해 보였다. 연구진은 국내 236개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간호사가 많은 중환자실일수록 사망률이 낮다’고 보고했다. 실태는 절망스러운 수준이다. 2009년 대한간호협회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전국 병원 10곳 가운데 8곳은 정부의 기준에 못 미치는 간호 인력을 갖췄다. 병원 규모별로 살펴보면, 전국 266개 종합병원 가운데 정부의 기준(3.5병상 기준 간호사 최소 1명 상시 근무)을 맞춘 곳은 25.9%에 불과했다. 간호사들이 흔히 3교대로 근무하는 점을 고려하면, 병상 1개당 1명 이상의 간호 인력이 갖춰져야 3.5병상마다 간호사 1명이 24시간 상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대형 병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또 1224개 중소 병원 가운데 정부의 기준(4.5병상 기준 간호사 최소 1명 근무)을 맞춘 병원은 10%에 불과했다.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부실한 간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2년 자료를 보면, 병상 1대당 간호 인력의 비율이 우리나라는 0.21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0.99명)에 크게 못 미쳤다. 미국(1.36명)이나 영국(1.7명)은 물론 터키(0.38명)보다도 적었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그만큼 간호의 손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박찬기 대한간호협회 홍보국장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간호사 1명당 환자 수 4~6명, 일본은 환자 수 7명으로 강제하고, 그 규정을 어기면 아예 병원 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그런 규정이 없어 의료 현장에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병원은 비용을 절감하려고 간호사를 갖추지 않았고, 정부의 규제도 부실했다는 말이다.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로 여건도 환자 안전을 위협한다. 2010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10명 가운데 4명(42.2%)이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했다. 또 4명 가운데 1명(26.2%)은 80~100시간 일을 했다. 10명 가운데 7명(67%)은 휴일에도 항상 출근한다고 했고, 응답자 가운데 40.4%는 ‘과도한 업무 탓에 서로 휴가를 안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에 휴가를 가지 못한다고 답했다. 병원에서 마주치는 전공의들의 낯빛이 늘 유령 같은 이유를 알 수 있다.

부실한 안전사고 보고 체계

환자 안전사고에 관한 부실한 보고 체계도 문제였다. 2005년 보건행정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환자에게 중대한 해를 끼친 과오’가 ‘항상 보고된다’고 답한 의료인의 비율은 44.4%에 불과했고, ‘대부분 보고된다’고 답한 비율은 34.1%였다. ‘전혀 보고되지 않는다’라는 비율도 2.4%였다. 설사 병원 내부의 보고 체계가 작동된다고 해도, 그 내용이 환자에게 전달될지는 알 수 없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들은 병원에서 교수와 얘기를 주고받기가 아예 힘들고, 전공의들은 너무 바빠 말을 걸기도 미안한 수준이다. 그나마 전공의가 미달되는 지방 병원 등은 상황이 더 나쁘다”고 말했다. 의사나 간호사가 귀한 병원에서 한국의 환자들은 위태롭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2012년 6월 20일 수요일

“전공의 피곤해 자느라 전화못받아…환자는 사망”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20일자 기사 '“전공의 피곤해 자느라 전화못받아…환자는 사망”'을 퍼왔습니다.

 의료사고의 세계를 환자가 짐작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수술방에 들어가는 환자들은 마취된 상태다. 깨어 있더라도 의료의 전문적인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사진은 의료사고와 직접적 관계가 없다.

실적 경쟁에 내몰린 ‘공장식 대형 병원’서 일하는 전공의 5명의 방담
“밤새는 새벽시간에 의료사고 몰려”“사고 나도 대부분은 우리끼리 무마”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의의 말이다. 환자 안전사고는 그만큼 예민한 문제다. 병원 수술장에서, 입원실에서 몸뚱어리를 맡긴 환자들은 의료진의 손끝에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크고 작은 실수로 세상을 떠나는 환자는 한 해 1만7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58~59쪽 기사 참고). 하루에 50여 명꼴이다. 유족들은 아마도 운명과 병을 탓했을 터다. 죽음에 이르는 진짜 이유는 침묵 속에 묻히기 일쑤였다. 일반인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하는 병원의 모퉁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흔히 레지던트로 알려진 전공의 5명을 어렵게 한자리에 모았다. 모두 내로라 하는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이었다. 섣불리 입을 열 수 없는 처지였다. 가명 속에 이들을 숨긴 채 말을 들어봤다. _편집자
이승훈: 전공의들의 피로가 문제다. 피곤하면 수술 부위를 봉합할 때 바늘도 한 번 덜 꿰매게 된다. 약을 처방하는 과정에서도 사고가 있다. 환자가 한꺼번에 먹으면 안 되는 약들이 있다. 그런 걸 처방하면 컴퓨터 모니터에 경고 표시가 뜬다. 그런데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그걸 못 보는 경우도 있다. 그걸 환자가 먹게 된다.
권재우: 택시 운전기사도 하루에 20시간씩 일하라고 하면 사고가 날 것이다. 우리도 그렇다. 내과는 특성상 시술을 많이 한다. 척수 쪽으로 약제를 투입하기도 하고, 폐에 물이 차면 바늘이나 기구를 써서 뽑아낸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밤에 하는 경우가 많다. 레지던트들이 낮에는 일이 많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 6시부터 일하면 지쳐서 대충 하게 된다. 그러면 사고가 난다.

“피곤한 전공의 대처 늦어 환자 사망”

노인환: 외과에서는 다음날 암 수술을 하게 되면 오늘 미리 주요 혈관에 링거를 꽂아야 한다. 사실은 수술 날 아침에 마취과 의사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당일 수술을 빨리 돌리려고 전공의들에게 전날 미리 하도록 한다. 하룻저녁에 7명 정도에게 링거를 꽂는다. 그런데 피곤하니까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
오의석: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환자가 코 수술과 편도선 쪽 수술을 한꺼번에 받았다. 수술 당일 밤에 출혈이 생겼다. 병원에서 전공의에게 콜을 했는데, 전공의가 피곤해서 자느라 못 받았다. 대처가 늦어져서 환자가 사망했다.
서정일: 진단이나 처방을 하는 일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밤새우고 잠을 못 자면 술 취한 상태와 비슷하게 된다. 의료진의 성의나 도덕성 문제로 돌릴 일이 아니다.
: 정규 시간에는 약사가 항암제를 섞는 일을 하는데 휴일이나 밤 시간에는 인턴이나 간호사가 그 일을 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도 걸러줄 사람이 없다. 병원에서 그걸 우리에게 맡기니까, 인턴과 간호사가 서로 안 하려고 자주 싸운다. 그래서 인턴이 이긴 과는 간호사가 항암제를 섞고, 그렇지 않은 과는 인턴이 섞는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항암제 조제 과정에서 에러가 많이 벌어진다. 그런데도 병원은 비용을 아낀다고 약사를 추가로 고용하려 하지 않는다.
: 피곤해서 약을 엉뚱한 환자에게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간호사가 환자가 혈압이 낮다고 하면 “타이레놀(진통해열제) 주세요”라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간호사는 아마 ‘얘가 미쳤나’라고 생각할 거다. 그래서 다시 전화가 오기도 한다. 그런데 간호사도 신참이면 그게 그냥 들어가버린다.
: 간호사의 근속 연수가 짧아지고 있다. 병원에서 근무 연수가 길면 권고사직을 하는 식으로 내보낸다. 비용이 많이 드니까. 그러다 보니 간호사의 숙련도가 떨어진다. 처방을 잘못해도 걸러주지 못한다.
: 간호사들과 농담 비슷하게 말한다. 전공의랑 간호사 중 누가 더 힘드냐고. 물론 전공의가 더 힘들다. 그렇지만 전공의들은 4년만 버티면 된다. 간호사들은 10년차도 3교대로 일한다. 밤새워 일하고 생활이 불규칙하니까 힘들다. 그러니 나간다. 새로 온 간호사들은 당연히 실력이 떨어진다. 한번은 수액을 하루에 1ℓ 놓으라고 했는데, 1시간에 다 줘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 그렇게 사고가 나도 대다수는 전공의나 간호사들끼리 무마한다. 교수님이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다.
권: 작은 의료사고는 넘어간다. 그런데 문제가 커지면 넘어갈 수가 없다. 보호자가 알게 되면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환자가 전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병원 내부의 실적 경쟁 때문에 생기는 사고도 있다. 병원에서 교수님들에게 실적 경쟁을 붙이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예를 들어 항암치료는 환자가 수술받은 과에서 하기도 하고, 항암치료를 주로 하는 혈액종양내과에서 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수님들이 실적을 올리려고 환자를 놓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혈액종양내과로 넘길 환자를 이제는 붙잡고 치료까지 한다. 그런데 우리 과 전공의들은 항암제 쓰는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없다. 교수님은 “혈액종양내과 전공의한테 물어봐서 배워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항암제 사고가 발생한다. 다른 과에서도 무리하게 환자를 잡고 항암치료를 하다가 적정 용량의 10배를 투약하기도 했다. 그러면 환자 몸에 타격이 크다.

지난 6월 12일 서울 강남의 한 세미나 카페에서 전공의 5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좌담에 참여한 전공의는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전공의 5명 가운데 2명은 사진 촬영이 끝난 늦은 밤에야 좌담에 합류했다.

“교수 한명이 동시에 4명 수술하기도”

: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 중에도 상태가 좋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가 있다. 상태가 좋은 환자는 우리 과에서 계속 항암치료를 한다. 그렇지 않은 환자는 내과에 넘긴다. 쉽고 돈 되는 환자만 받는 거다.
: 교수님 한 명이 과의 세를 불리려고 한다. 수술을 하는 과가 아닌데도 “수술도 우리가 한다”고 하며 환자를 다른 과에 의뢰하지 않는다. 그러니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병원의 수술장도 폐쇄된 공간이다. 의료사고가 나기 쉬운 곳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게 훨씬 많을 것이다.
: 교수님 한 명이 동시에 2~3개 수술장을 열기도 한다. 교수는 방을 돌며 핵심적인 부분만 맡는다. 그러다 한 방에서 수술이 길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다른 방 스태프들이 대기하기도 하지만, 그냥 다른 전공의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수술 후 출혈’ 같은 문제가 생긴다.
: 우리 병원도 공장처럼 돌아간다. 한 교수님이 수술방을 4곳까지 연다. 보통은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다. 교수님이 흔히 “그냥 네가 해라”고 하기도 한다. 심할 경우 전공의가 다른 선배 전공의에게 전화로 설명을 들으며 시술하기도 한다. 환자는 특진비를 냈고, 교수한테 수술을 받는다고 믿는다. 병원이 정직하지 못한 것이고, 환자에게 위해가 갈 수도 있다.
: 게다가 마취는 짧을수록 좋다. 그런데 교수가 정해진 시간에 오지 않으면 마취가 길어진다. 병원은 수익을 위해 수술방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돌려야 한다.
: 교수님들도 불쌍하다. 병원의 ‘직원’이다. 일과가 끝나면 휴대전화로 실적이 찍힌다. 매출을 올리라는 압박에 계속 쫓긴다. 의대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고, 학생들도 가르쳐야 하고, 연구 실적도 내놓아야 한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한다. 특히 진료와 연구 실적을 올리라고 강하게 압박을 받는다. 그런데 교육을 잘하라고는 아무도 압박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오래된 교재를 그냥 사용한다. 좋은 의사가 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 교수님들도 힘들다. 3시간에 100명의 외래환자를 본다.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 대형 병원에 오면 치료를 잘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몰려드는 환자들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 환자들한테 아예 교수님을 만날 때 질문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간이 없으니까. 제대로 된 진료가 될 수 없다. 병원에서는 어떻게든 환자를 많이 유치하려 한다. 기계들도 열심히 돌린다. 자기공명영상(MRI)은 새벽까지 돌아간다.
: 새벽 3시까지 암환자를 불러내 방사선치료를 한다. 밤새워서 의료진이 일을 하는 것이니 위험할 수 있다.
: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내가 맡은 환자가 빨리 수술받게 해야 한다. 그러니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새벽에라도 검사를 받는 게 낫다. 그렇게 입원 기간을 줄일 수 있다.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

“전공의는 병원에 값싼 인력일 뿐”

: 환자들은 교수님이 자기 몸에 대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그 많은 환자를 어떻게 다 아나. 게다가 입원 환자들의 회전이 빨라졌다. 전공의가 모든 것을 챙겨야 한다. 그런데 전공의들은 너무 피곤하다.
: 전공의 2년차다. 우리 과에 전공의 1년차가 없어서 일이 많다. 한 달에 25일을 당직 근무한다. 쉬는 날이 5일이다. 한 주에 일하는 시간이 120시간이 넘는다. 월요일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그 다음날 아침까지 일한다. 그렇게 밤을 새우는 날이 일주일에 두 번이다. 환자들의 회전이 빨라서 더 힘들다. 일주일이면 환자가 다 바뀐다. 일이 쌓인다.
: 1년차 때는 일주일에 120시간 정도 일했다. 하루치 일이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일을 끝내지 못했다고 혼난다. 지금은 그나마 4년차라서 80~90시간 정도다.
: 가정의학과는 그나마 낫다. 레지던트 1년차일 때 일주일에 90시간 정도 일했다. 지금은 70시간 정도 일한다.
: 내가 맡는 환자가 50명 정도다. 그러면 환자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침대 위치를 보고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사고가 잦은 시간이 새벽 3~4시와 오전 11~12시다. 피로가 쌓이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때다.
: 원래는 환자를 직접 보고 처방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일이 많으니 그냥 사진부터 찍으라고 한다. 피로 때문이다, 환자를 제대로 보지 않으니 사고로 이어진다.
: 사람이 없으니 전공의 한 명이 휴가를 가면 나머지 전공의의 부담이 커진다. 그러니 휴가 때 사고가 많다. 다른 동료의 환자들까지 챙겨야 한다. 아무래도 내 환자만큼 잘 챙기진 못한다. 우리가 성격이 더러워서 여자 동료가 임신하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다. 일이 밀리니 그렇다.
: 그나마 우리 병원에서는 출산휴가도 두 달밖에 안 준다.
: 간호사는 휴가를 내면 ‘헬퍼’라고 해서 대체인력을 쓰기도 한다. 전공의는 휴가를 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 근로기준법을 찾아봤다. 법에 따르면 근로자는 일주일 40시간 노동이 원칙이다. 의사는 노사 대표의 서면 합의 아래 52시간까지 노동할 수 있다. 우리는 그 2배 이상을 일한다. 병원이 법을 어기고 있다.
: 전공의는 근로자라는 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1991년 대법원은 전공의가 사용자인 병원 쪽의 지휘·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도 없다.
: 병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전공의가 전문의가 되기 위한 교육을 제대로 받으려면 병원이 임상의사를 더 뽑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수련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전공의는 병원 처지에서는 쉽게 쓸 수 있는 ‘저렴한 인력’일 뿐이다.
: 전공의들의 부담을 덜어야 의료사고도 줄고 교육의 질도 향상된다. 그래야 미래 의료사고의 가능성도 줄게 된다.
: 일본은 주당 80시간 초과근무가 인정되면 과로사로 인정받는다. 2004년 가정의학과 1년차 전공의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우리도 죽으면 과로사로 인정받는 거다. (낮은 웃음)
: 병원은 우리를 쥐어짜서 수익을 내고 있다. 병원도 다른 병원과의 경쟁에 쫓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과연 병원이 돈을 쓸까”

이: 오래전부터 수혈과 관련해 사고가 있었다. 10여 년 전부터 수혈을 할 때 몇 번의 확인 과정이 자리를 잡았다. 의료사고와 관련해 환자단체연합회에서는 항암제를 처방하는 과정에서라도 확인 과정을 제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시스템을 갖추려면 돈이 필요하다. 병원이 돈을 쓸까. 지금으로서는 그럴 것 같지 않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