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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7일 금요일

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7일자 기사 '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을 퍼왔습니다.
[기고] "의료사고로 숨진 남편…중환자실에 인권은 없었다"

2010년 9월 중견 연극배우 서희승 씨의 부고가 전해졌다. 사망 이유는 간호사의 혈압상승제 과다 투여였다. 유족 측은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관리하는 바람에 환자가 방치됐다"며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환자 안전관리가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백한 의료사고로 유족들은 병원과 민사소송을 결정했고 2심에서도 승소한 상태다.

서희승 씨가 처음 수술대에 오른 것은 2007년, 직장암 초기 진단을 받은 후였다. 수술 후 빠른 회복을 보이며 일상에 복귀한 그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했지만 3년 뒤인 2010년 전립선과 신장에 암이 전이되어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고(故) 서희승 씨의 아내이자 뮤지컬 배우인 손해선 씨는 "남편이 간혹 응급실로 실려가긴 했지만,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었다"고 말했다.

"수술 후 기능이 안 좋아진 콩팥 때문에 요로(소변을 체외로 받아내는 주머니)를 차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열이 자주 올랐어요. 체온이 37도만 넘으면 초긴장 상태가 되었고 그때마다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2~3일 입원해 치료받고 나면 이내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 연극배우 고(故) 서희승 씨. ⓒ손해선
하지만 2010년 6월 24일 불행이 시작됐다. 여느 때와 같이 38.5도가 넘은 체온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내원한 서희승 씨의 혈압은 90-70이었다. 의료진은 간성혼수가 올 수 있으니 혈압상승제를 쓰자고 했고 긴급한 상황과 응급치료가 끝난 뒤 서 씨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보통 이동침대에서 병실침대로 환자를 옮길 경우 간호사와 직원들이 시트를 들어 옮긴다. 그런데 간호사는 서 씨에게 스스로옮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몸을 움직인 서 씨는 침대에 오른 직후 가슴의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통증의 원인은 바로 혈압상승제였다. 조절기를 잠그고 옮겨야하는데 그대로 열어 두어 30초간 대량의 혈압상승제가 투여되었던 것.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마치 선지와 같은 각혈을 하는 서 씨를 본 의료진은 위급상황인 코드블루를 알렸고 서희승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76일 만에 숨졌다.

환자들의 목숨 위협하는 중환자실의 허술한 관리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30분씩, 그나마 환자 1명당 단 두 사람만이 면회가 가능한 중환자실은 24시간 온전히 의료진의 돌봄에 의지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남편 서 씨에 대한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체온유지가 중요한 환자의 겨드랑이에서 체온유지를 체크하는 온도계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만 세 번이었다. 환자에게 사용한주사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기도 했고 남편의 발밑에서 이쑤시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왜 어머니한테만 이런 게 보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변명만 했다.

그녀가 가장 경악한 것은 바로 욕창이었다. 지속적인 압박으로 혈액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욕창은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들에게 잘 일어난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 환자는 수시로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10일 만에 서 씨에게 욕창이 온 것. 하지만 간호사들은 손 씨와 가족들에게 잘 관리하겠다는 말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보지 못하게 했다. 병원은 또한 사망 후 보면 더욱 마음 아플 것이니 보여줄 수 없다며 시신을 가리고 입관을 강행해 결국 서 씨는 남편의 욕창자국을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금요일 오전 남편의 팔에서 수포를 발견한 손 씨는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협진을 요청했고 오후에 늘어난 수포를 확인했지만 남편의 협진은 3일이 지난 월요일에 이루어졌고, 결국 서 씨는 주말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보내야했다.

게다가 대상포진은 면포나 깨끗한 거즈로 덮어 관리해아 함에도 불구하고 서 씨의 팔에는 거즈가 아닌 압박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놀란 손 씨의 지적에 간호사가 압박붕대를 잘라내자 퉁퉁 부어 있던 팔의 피부는 마치 썩은 것처럼 검게 변해 있기도 했다.

그녀가 본 중환자실은 그야말로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저 죽음이 드리워진 공간이었다. 손 씨는 "중요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 들어가 이틀 미만으로 있으면 살아서 나오지만, 3일이 지나면 대부분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빛바랜 JCI인증, 누구를 위한 인증인가?

서희승 씨가 입원했던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로 환자의 안전과 양질의의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환자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 시까지 치료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평가해 인증하는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 미국회사가 세운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 국제인증을 받았다. 그간 일부 의료계에서는 JCI 인증이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증을 받았음에도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들에겐 궁금하고 중요한 환자의 상태 역시 30분짜리 면회가 끝나기 5분 전이나 시작된 직후에 다가온 담당 의사에게 1~2분 전해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지난 5일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린 환자단체연합회의 '제2회 환자Shouting카페'에서 이 같은 '중환자실 환자 안전관리' 현실을 전한 손해선 씨는 "가족의 면회가 제한된 상태에서 일대일 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환자가 인력부족으로 방치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제가 옆에 있었다면 남편은 보다 깨끗한 환경에서 병상생활을 했을 것이고 욕창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인데 일대일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상황에 JCI인증까지 받은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또 입원 시 58kg이었던 남편의 몸무게가 80kg으로 늘어났습니다. 피가 부족해 수혈을 한다고 했지만 밖으로의 외출혈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출혈부위 하나 찾아내지 못합니까?"

http://www.youtube.com/watch?v=2q7ICJVLiME&feature=player_embedded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산별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무상의료 실현과 병원인력법 제정에 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보호자와 환자를 위해 병상일기 꼭 필요!


이날 손해선 씨는 한 손에 두툼한 수첩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바로 남편 서희승 씨의 병상일기다. 병상일기에는 날짜별로 순간순간의 치료와 증세, 상황 등을 정리했고, 중요하다 싶은 내용은 형광펜을 이용해 밑줄을 그어놓는 세심함을 잃지 않았다.


손 씨는 병상일기가 소송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증상은 물론 치료과정 아주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말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지난 8월 16일 민사소송 2심에서 승소 판정을 받았지만 현재 형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길고 긴 시간 동안 병원과 의료진은 단 한 번도 저희 가족과 고인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또 한 번의 길고긴 싸움을 시작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76일 간을 기록한 병상수첩. 손 씨는 만일에 대비해 환자의 증상과 치료과정을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손해선

/엄호식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객원기자

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7일자 기사 '국내 최고 병원에서 어이없이 발생한 어느 연극배우의 죽음'을 퍼왔습니다.
[기고] "의료사고로 숨진 남편…중환자실에 인권은 없었다"

2010년 9월 중견 연극배우 서희승 씨의 부고가 전해졌다. 사망 이유는 간호사의 혈압상승제 과다 투여였다. 유족 측은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관리하는 바람에 환자가 방치됐다"며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환자 안전관리가 소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명백한 의료사고로 유족들은 병원과 민사소송을 결정했고 2심에서도 승소한 상태다.

서희승 씨가 처음 수술대에 오른 것은 2007년, 직장암 초기 진단을 받은 후였다. 수술 후 빠른 회복을 보이며 일상에 복귀한 그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했지만 3년 뒤인 2010년 전립선과 신장에 암이 전이되어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고(故) 서희승 씨의 아내이자 뮤지컬 배우인 손해선 씨는 "남편이 간혹 응급실로 실려가긴 했지만,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었다"고 말했다.

"수술 후 기능이 안 좋아진 콩팥 때문에 요로(소변을 체외로 받아내는 주머니)를 차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열이 자주 올랐어요. 체온이 37도만 넘으면 초긴장 상태가 되었고 그때마다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2~3일 입원해 치료받고 나면 이내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 연극배우 고(故) 서희승 씨. ⓒ손해선
하지만 2010년 6월 24일 불행이 시작됐다. 여느 때와 같이 38.5도가 넘은 체온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내원한 서희승 씨의 혈압은 90-70이었다. 의료진은 간성혼수가 올 수 있으니 혈압상승제를 쓰자고 했고 긴급한 상황과 응급치료가 끝난 뒤 서 씨는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다. 보통 이동침대에서 병실침대로 환자를 옮길 경우 간호사와 직원들이 시트를 들어 옮긴다. 그런데 간호사는 서 씨에게 스스로옮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몸을 움직인 서 씨는 침대에 오른 직후 가슴의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통증의 원인은 바로 혈압상승제였다. 조절기를 잠그고 옮겨야하는데 그대로 열어 두어 30초간 대량의 혈압상승제가 투여되었던 것.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마치 선지와 같은 각혈을 하는 서 씨를 본 의료진은 위급상황인 코드블루를 알렸고 서희승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76일 만에 숨졌다.

환자들의 목숨 위협하는 중환자실의 허술한 관리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30분씩, 그나마 환자 1명당 단 두 사람만이 면회가 가능한 중환자실은 24시간 온전히 의료진의 돌봄에 의지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남편 서 씨에 대한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체온유지가 중요한 환자의 겨드랑이에서 체온유지를 체크하는 온도계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만 세 번이었다. 환자에게 사용한주사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기도 했고 남편의 발밑에서 이쑤시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왜 어머니한테만 이런 게 보이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변명만 했다.

그녀가 가장 경악한 것은 바로 욕창이었다. 지속적인 압박으로 혈액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욕창은 몸을 가누기 힘든 환자들에게 잘 일어난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 환자는 수시로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10일 만에 서 씨에게 욕창이 온 것. 하지만 간호사들은 손 씨와 가족들에게 잘 관리하겠다는 말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보지 못하게 했다. 병원은 또한 사망 후 보면 더욱 마음 아플 것이니 보여줄 수 없다며 시신을 가리고 입관을 강행해 결국 서 씨는 남편의 욕창자국을 끝내 확인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금요일 오전 남편의 팔에서 수포를 발견한 손 씨는 대상포진을 의심하고 협진을 요청했고 오후에 늘어난 수포를 확인했지만 남편의 협진은 3일이 지난 월요일에 이루어졌고, 결국 서 씨는 주말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보내야했다.

게다가 대상포진은 면포나 깨끗한 거즈로 덮어 관리해아 함에도 불구하고 서 씨의 팔에는 거즈가 아닌 압박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놀란 손 씨의 지적에 간호사가 압박붕대를 잘라내자 퉁퉁 부어 있던 팔의 피부는 마치 썩은 것처럼 검게 변해 있기도 했다.

그녀가 본 중환자실은 그야말로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저 죽음이 드리워진 공간이었다. 손 씨는 "중요 수술 이후 중환자실에 들어가 이틀 미만으로 있으면 살아서 나오지만, 3일이 지나면 대부분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빛바랜 JCI인증, 누구를 위한 인증인가?

서희승 씨가 입원했던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로 환자의 안전과 양질의의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환자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퇴원 시까지 치료의 전 과정을 세밀하게 평가해 인증하는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 미국회사가 세운 국제 의료기관 평가위원회) 국제인증을 받았다. 그간 일부 의료계에서는 JCI 인증이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홍보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증을 받았음에도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들에겐 궁금하고 중요한 환자의 상태 역시 30분짜리 면회가 끝나기 5분 전이나 시작된 직후에 다가온 담당 의사에게 1~2분 전해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지난 5일 종로 엠스퀘어에서 열린 환자단체연합회의 '제2회 환자Shouting카페'에서 이 같은 '중환자실 환자 안전관리' 현실을 전한 손해선 씨는 "가족의 면회가 제한된 상태에서 일대일 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환자가 인력부족으로 방치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제가 옆에 있었다면 남편은 보다 깨끗한 환경에서 병상생활을 했을 것이고 욕창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중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인데 일대일로 돌봄을 받아도 모자랄 상황에 JCI인증까지 받은 국내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간호사 1명이 5명의 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또 입원 시 58kg이었던 남편의 몸무게가 80kg으로 늘어났습니다. 피가 부족해 수혈을 한다고 했지만 밖으로의 외출혈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출혈부위 하나 찾아내지 못합니까?"

http://www.youtube.com/watch?v=2q7ICJVLiME&feature=player_embedded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산별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무상의료 실현과 병원인력법 제정에 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보호자와 환자를 위해 병상일기 꼭 필요!


이날 손해선 씨는 한 손에 두툼한 수첩 하나를 꼭 쥐고 있었다. 바로 남편 서희승 씨의 병상일기다. 병상일기에는 날짜별로 순간순간의 치료와 증세, 상황 등을 정리했고, 중요하다 싶은 내용은 형광펜을 이용해 밑줄을 그어놓는 세심함을 잃지 않았다.


손 씨는 병상일기가 소송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증상은 물론 치료과정 아주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말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지난 8월 16일 민사소송 2심에서 승소 판정을 받았지만 현재 형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길고 긴 시간 동안 병원과 의료진은 단 한 번도 저희 가족과 고인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심어린 사과가 있었다면 또 한 번의 길고긴 싸움을 시작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이루어질 때까지 전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남편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76일 간을 기록한 병상수첩. 손 씨는 만일에 대비해 환자의 증상과 치료과정을 사소한 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메모해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손해선

/엄호식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객원기자

2012년 6월 10일 일요일

“우리 병원도 ‘조금만 있으면 죽는다’고 한다”


이글은 한겨레21 2012-06-04일자 [제913호] 기사 '“우리 병원도 ‘조금만 있으면 죽는다’고 한다” '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빅5’ 근무 고참 간호사 좌담회,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 숨통도 조이는 의료 상업화 실태 증언… “중환자실에 미니오디오 넣고 비급여 8만원 더하고” “환자에게 입원 2주 이후 다른 병원 가겠다는 약속 받아”

» 이른바 ‘빅5’ 병원 출신의 전·현직 간호사 5명에게서 의료 상업화의 속 얘기를 들어봤다. 이들의 신분을 보호하려고 사진은 희미하게 처리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거대 병원들이 조금씩 상업화할 때, 병원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진찰실과 수술실, 입원실 같은 현장에서는 무슨 변화를 거쳤을까. 일반인이 감지하기 어려운 병원 내부의 사정을 ‘내부자’로부터 들어봤다. 이른바 ‘빅5’ 병원 가운데 4곳의 전·현직 간호사 5명을 초대했다. 모두 10년차 이상 고참 간호사들이다. 좌담에 참여하지 못한 1명의 목소리는 따로 인터뷰를 통해 좌담에 보탰다.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병원은 상업화의 과정에서 안에서부터 곪고 있었다. 그 안에서 동병을 겪는 이들은 상련했다. 은상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좌담의 진행을 맡았다.

이상은(이하 이): 환자 수가 많이 늘었다. 우리 병원 건물을 지을 때 예상했던 규모보다 4배 가까이 많은 환자가 찾아온다. 병원이 정신없이 바빠졌다. 과거에는 외래 환자를 오전 9시30분~오후 4시에 봤다. 이제는 거의 아침 8시부터 진료가 시작된다. 그리고 밤 10~11시까지 문을 연다. 늘어나는 환자들을 보면 끔찍하다.
정소미 (이하 정): 우리도 비슷하다. 아침 외래 진찰 시간이 8시로 빨라졌다. 그렇지 않으면 오전에만 환자 120명을 볼 수가 없다. 의사 선생님이 1~2분마다 1명씩 환자를 봐야 한다. 의사들도 성과를 내려고 그렇게 한다.
이: 의사들도 이제 일하기 싫다고 말한다. 위에서 압박이 오니 할 수밖에 없다. 과마다 실적이 거의 매일 보고된다. 게다가 새로 오는 환자나 초진·재진 환자 등 통계가 달마다 그래프로 나온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박신애(이하 박): 병원에서 입원 기간도 최대한 짧게 한다. 그래야 병원 수입이 늘어나니까. 그러니 문제가 생긴다. 환자랑 보호자는 더 있고 싶은데 병원은 나가라고 하니까. 그러면 원무팀이 나서서 환자를 설득한다. 교수님까지 나서기도 한다.
이: 얼마 전에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밝혔다. 평균 환자 재원 일수가 7.8일이라고. 우리 병원은 중증·희귀병 환자가 오는 곳이다. 그런 환자들은 잠깐 머물다 가는 거다.
민수희(이하 민): 우리 병원은 목표 재원 일수를 6.9일로 잡았다.
김소영(이하 김) 환자가 2주 이상 갈 것 같으면, 2주 이후에 다른 병원에 가겠다는 약속을 미리 받기도 한다. 한번은 자기 환자를 안 보내고 버틴 교수님이 있었다. 부원장님이 직접 나서서 그 교수님을 면담했다.
이: 우리도 병원에 진료협력팀이라는 것이 생겼다. 다른 병원과 연결해주는 팀이다. 환자가 2~3주 간다 싶으면 ‘작업’에 들어간다.
민: 병원에서 사후 관리를 안 하고, 말하자면 ‘단물만 빨아먹는’ 것이다.
김: 중환자실도 머무는 시간이 짧아졌다. 내가 있는 동안에도 2박3일 정도에서 당일로 많이 바뀌었다. 중환자실에 오래 있던 환자가 1명 있었다. 뒷배경이 든든해서 못 내보낸다고 하더라.
박: 기부를 하지 않으면 머물기 어렵다. (모두 웃음) 우리 병원에도 6개월까지 입원한 환자가 있었다. 알고 보니 병원에 거금을 기부했다고 하더라. 물론 환자가 무작정 오래 입원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환자나 보호자들은 큰 병원에 있으면 다 나을 거라고 인식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수술도 빨리빨리 하게 됐다. ‘데이 서저리’라는 외래 수술장이 1990년대 후반에 생겼다. 그러면서 환자를 아침에 수술하고 저녁에 퇴원시킨다. 안과·이비인후과 등에서 처음 했는데, 반응이 좋다 보니 병원에 퍼졌다. 기술이 좋아진 점도 작용했다.
“기부를 하지 않으면 머물기 어렵다. (모두 웃음) 우리 병원에도 6개월까지 입원한 환자가 있었다. 알고 보니 병원에 거금을 기부했다고 하더라.”- 박신애
“병원에서 새로 온 환자와 초진의 선택진료비는 교수님들이 다 가져간다. 그리고 재진·검사·수술은 일정 비율을 받는다. 교수님들이 거기에서 돈이 많이 들어온다. 몇천만원, 몇억원을 받는다고 말을 한다. 교수님들 사이에서 그게 경쟁이 된다.”-이상은
지금은 환자 얼굴을 볼 시간도 없다.
박: 우리 병원에서 간호사 수를 늘려서 간호 등급이 1등급으로 올랐다. 그런데 일의 강도는 떨어지지 않는다. 병상회전율이 높아지니 일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김: 일상이 없다. 항상 응급 상황이 됐다. 그러니 원래 있던 환자는 잊게 된다. 새로 온 환자만 신경 쓰게 된다. 간호의 질이 떨어진다.
이: 일이 고되니, 우리 병원에서는 한 해 간호사 300명을 뽑으면 100명이 나간다.
김: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목욕시켜줄 시간을 못 낸다. 인력이 안 되니까. 그래서 ‘린넨아줌마’라고 해서 인력을 따로 고용했다. 그런데 간호사가 봐주지 않으면 어차피 못한다. 그러니 형식적으로 환자를 닦고 끝난다. 눈에 보이는 것만 잘하게 된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질은 떨어진다.
박: 외국 영화를 보니 환자 1명 씻기는 데 간호사 2명씩이 매달리더라. 우리는 그게 안 된다.
민: 병원에서는 인력이 나가도 신규 인력이 들어오니 계속 신입으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 간호사는 심리적 치료나 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차트 정리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환자들과 얘기를 하고 설명을 잘해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고 있으면 욕먹는다. 옛날에는 환자의 얼굴을 기억했다. 지금은 환자 얼굴을 볼 시간도 없다.
김: 내가 있던 중환자실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곳이었다. 병상 하나마다 1년에 8천만원의 적자가 났다. 병원에서 1년에 병상을 하나씩 줄이라고 했다. 그래서 회의를 열었다. 중환자실에 격리방이 있는데, 여기 들어오는 환자들에게 돈을 더 받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유 없이 그렇게 하기는 힘드니까 방마다 미니오디오를 하나씩 넣었다. 그리고 하루에 8만원을 비급여로 받았다.
박: 옛날에는 7인용 입원실이 꽤 있었다. 환자들은 부담이 덜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비싼 1~2인용 상급병실을 늘렸다.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1인실로 간다. 환자들에게 부담이 커졌다. 비급여니까 비싸다.
김: 병원이 수익이 많은 외국인진료소, 건강증진센터, 장례식장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건강증진센터는 한번에 1500만원짜리 상품까지 내놓았다. 병원 지하는 거의 백화점이다. 밥값도 비싸다. 병원은 거기에서 임대료를 벌어들인다.
민: 병원에 의료기 업체가 입점해 있다. 병원에서는 다른 업체가 병원에 못 들어오게 한다. 그러니 환자들은 필요한 기기가 있으면 거기 가서 사야 한다. 환자 처지에서는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이다.
박: 병원 규모가 커지자 홍보과가 생긴 것도 특이하다. 기자실도 생겼다.
김: 언론을 유치하려 한다. 방송 한번 타면 환자가 확 늘어나니까.
“일상이 없다. 항상 응급 상황이 됐다. 그러니 원래 있던 환자는 잊게 된다. 새로 온 환자만 신경 쓰게 된다. 간호의 질이 떨어진다.”-김소영
“실적에 따라 교수님들 줄을 세운다”
이: 병원마다 돈 되는 암병원을 짓는 것도 상업화의 일종이라고 본다. 병원에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실이 많다. CT실에서 하루에 400건을 찍는다. 그러니 기기가 엄청나게 돌아간다. 전신 양전자단층촬영(PET)은 보험이 안 된다. 가격이 150만~180만원 한다. 몸 전체를 찍는다. 교수들이 ‘오더’를 내리면 해야 한다. 심지어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찍고 와도 “그 영상 못 봐”라며 다시 찍는다. 물론 외부에서 가져온 자료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정: 우리 병원에서도 CT·MRI를 남용한다고 본다. 그래도 교수님이 “진단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박: 옛날에는 응급실에서도 엑스레이만 기본이었다. 이제는 CT·MRI를 찍는 게 기본이 됐다. 의사 선생님 처지에서 생각하면 시간이 없어서 그런 점도 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판단을 해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이: 의사들도 성과급을 받는다. 그러니 매출을 올려야 한다. 과별로 경쟁도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다빈치’라는 로봇 수술이 많이 늘었다. 처음엔 갑상선 수술에서 쓰기 시작했다. 수술 한 건에 1500만원을 받았다. 그냥 절개 수술하면 200만원을 받았다. 그렇게 외과가 돈을 많이 버니까 비뇨기과도 하겠다고 뛰어들었다. 전립선암 수술을 시도했다. 비급여니까 부르는 게 값이다. 환자들한테는 이렇게 설명했다. “절개 수술을 하려면 8개월 기다리세요. 그런데 다빈치는 두 달 만에 합니다.” 그렇게 로봇 수술 건수가 늘었다. 1년 만에 수십억원 하는 기계값을 뽑았다. 병원이 좋아했다. 그래서 기계를 한 대 더 사줬다. 그러니 산부인과도 하고 싶어 했다.
김: 기기를 환자에게 필요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구입했으니까 쓴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환자에게는 ‘성능이 좋아서’라고 설명한다. 의사들이 새로운 기계를 쓰면 원래 있던 기계는 금방 구식이 된다. 그래도 업체에서는 병원에 원가 이하에 기계를 제공하는 것 같다. 우리 병원에서 쓰면 다른 작은 병원에서도 따라서 쓰니까.
박: 의사 선생님이 수술법을 하나 외국에서 배워왔다. 물론 비급여였다. 환자들에게 새 수술은 2천만원이 더 비싸지만 합병증이 더 적다고 설명한다. 부모님을 모셔온 아들이라면 누가 더 싼 거 해달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런데 시술의 질이 그렇게 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더 비싼 수술을 하게 된다.
이: 교수님들 사이에서 경쟁이 심하게 붙었다. 교수님 한 분은 식사 시간이 아예 없다. 환자들이 들고 온 떡·샌드위치를 먹으며 진료한다. 하루에 250명 넘게 본다. 일을 한번 시작하면 저녁 6~7시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선생님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정: 실적에 따라 교수님들을 길게 줄 세운다. 그러니 경쟁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병원에 새로 온 환자와 초진의 선택진료비는 교수님들이 다 가져간다. 그리고 재진·검사·수술은 일정 비율을 받는다. 교수님들이 거기에서 돈이 많이 들어온다. 몇천만원, 몇억원을 받는다고 말을 한다. 교수님들 사이에서 그게 경쟁이 된다. 반대로 환자들의 부담은 커진다.
김: 1990년대에는 그래도 병원이 복지재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간호사들도 환자 처지에서 값을 싸게 해주려고 신경 썼다. 예를 들어 엑스레이 기계를 병실로 가져와서 찍는 ‘포터블 엑스레이’ 찍지 말고, 다르게 하면 싸다는 식으로 설명도 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달라졌다. 병원이 의사 중심에서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병원에 의료기 업체가 입점해 있다. 병원에서는 다른 업체가 병원에 못 들어오게 한다. 그러니 환자들은 필요한 기기가 있으면 거기 가서 사야 한다. 환자 처지에서는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이다.”-민수희
”환자들은 아직도 대학병원에 와야 제대로 고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큰 병원으로 몰린다. 개인적으로 이런 의료공급 체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병원이 잘돼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모순이다.”-정소미
“삼성과 아산은 어떻더라. 여기 병원은 후지네”
민: 삼성과 아산이 시장을 선도했다. 2000~2005년에 변화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대형 병원들이 규모가 더 커졌다. 다른 병원들도 따라서 규모를 키우고 리모델링을 했다.
박: 언제부터인가 환자들이 “삼성과 아산은 어떻더라. 여기 병원은 후지네”라는 식으로 말하더라. 우리 병원에서도 커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 옛날에는 교수님들의 월급이 비슷했다. 지금은 수술을 많이 하면 많이 가져간다. 그렇게 돈으로 의사의 가치를 따지는 식으로 바뀌었다. 근본적으로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의대·간호대를 오면 간호사 혹은 의사로서 봉사를 한다, 공공의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요즘은 그런 게 적다.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같다.
민: 병원이라고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다. 민간 병원은 알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구조다. 그러니 살길을 찾아나서게 된다. 병원에서는 교수가 중요하다. 수술 많이 하고 검사를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병원은 도태되고 죽는다고 한다. 그러니 병원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지 못하다.
정: 환자들은 아직도 대학병원에 와야 제대로 고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큰 병원으로 몰린다. 개인적으로 이런 의료공급 체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병원이 잘돼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모순이다.
이: 우리 병원에서도 ‘조금만 있으면 죽는다’고 한다. 지금 위치에서 곧 떨어진다고 한다. 그 얘기가 몇 년 전부터 계속 나왔다. 그러니 내부에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계속 무리를 하고 있다. 의료 민영화로 가면 지금의 추세가 더욱 심화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