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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0일 수요일

‘여성’ ‘호남’ 없는 인사대탕평… 박근혜에 속았다


이글은 진실의길 2013-03-19일자 기사 '‘여성’ ‘호남’ 없는 인사대탕평… 박근혜에 속았다'를 퍼왔습니다.
‘여성’ ‘호남’ 배제하고 국가미래연구원 출신만 중용

"글로벌 시대를 맞아 보다 준비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만 한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만들어 갈 대한민국의 변화와 혁신이 기다려지지 않으냐."

▲ 2012년11월18일 오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비전 선포식 행사가 열린 인천 연수구 송도동 송도컨벤시아에서 박근혜 후보가 청년당원들과 함께 어울려 합창을 하며 공약 선포식 행사를 마무리 하고 있다. 경기일보 장용준기자

지난해 11월 18일 인천 송도에서 개최한 비전 선포식에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국민 앞에 약속한 말이다. 그는 또 "준비된 여성대통령 후보로서 국민통합·정치쇄신·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3대 국정지표로 삼을 것을 약속드린다"며 '준비된 여성대통령'임을 강조했다. 선거벽보와 공보물에도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대문짝만 하게 적었다.
여성 유권자들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 박근혜 후보를 문재인 민주당 후보보다 더 지지했다. 한국선거학회가 지난 대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남성 유권자들은 문재인 후보에 50.5%가, 박근혜 후보에 48.3%가 투표했다. 반면 여성은 문재인 후보에 45.4%가, 박근혜 후보에 53.8%가 투표했다. 개표 결과 박 후보는 51.6%, 문 후보는 48.0%를 득표했으니 여성 유권자들이 박근혜 후보를 상대적으로 많이 지지한 것이다.(3월 1일 [여성신문] [박근혜 정부의 다섯 가지 딜레마] 참고)
특히 대선 유권자 중 남성이 1998만1167명, 여성이 2048만3474명으로, 여성 유권자가 남성 유권자보다 약 50만 명 많았고, 실제 투표율도 높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월 15일 발표한 18대 대선 투표율 최종분석 결과에 따르면, 성별 투표율로는 여성이 76.4%로 남성(74.8%)을 앞질렀다.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가 박 후보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은 '여성'을 홀대했다. 박근혜 정부 장관급 인사 24명 중 여성은 단 두 명 뿐이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사실상 '여성 당연직'임을 감안하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유일한 여성 장관이라고 봐야 한다. 여성 장관 비율은 11.8%다. 이명박 정권 초기 내각은 여성 비율 13%였고, 노무현 정부는 21%였다.
내각에 여성이 없다면 청와대 참모진이라도 여성을 등용해야 했지만, 수석급 이상 참모들 중에도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여성' '호남' 배제하고 국가미래연구원 출신만 중용

이뿐 아니다.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을 위해 '인사 대탕평'을 공언했다. 특히 호남표를 얻기 위해 눈물 어린 호소를 했다. 지난해 10월 23일 광주 북구 광주전남도당에서 열린 광주전남 선대위 발대식에서 "저는 모든 공직에 대탕평 인사를 할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모든 지역에 (해당하는) 100% 대한민국 정부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5일 대통령 선거일을 14일 앞두고 여수에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핵심 실세였던 참여정부는 호남에서 90% 넘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지만 집권하자마자 호남의 뿌리였던 정통 야당을 없애버리고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며 문재인 후보를 '분열주의자'로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랬던 사람이 지금 호남에 와서 또 다시 표를 달라고 하는데, 여러분 또 속으시겠는가"라고도 했다.
문재인에게 속지 말고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당연히 인사대탕평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인사대탕평'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지난 15일 4대 권력기관장에 대한 인선을 끝으로 72명의 장차관급 인사를 마쳤다. 박근혜 정권 첫 내각(총리·장관) 인사에서 18명 중 호남 출신은 2명, 차관 인사에서 20명 중 호남 출신은 3명, 외청장 인사에서는 18명(금강원장 포함) 중 2명만이 호남 출신이다. 영남은 9명이다.
특히 4대 권력기관장(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가운데 호남 출신은 '0'명이다. 하지만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5일 "채동욱 검찰청자 내정자의 경우 지역을 고려한 것으로 이해해달라"며 "채 내정자는 서울 출생으로 돼 있지만 부친께서 5대 종손이시고 선산이 전북 군산시 옥구군 임실면에 있으며 매년 선산을 다니고 그 지역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며 때 아닌 '선산타령'을 했다. 선거 전에는 호남에서 "문재인에게 속지 말라"고 했지만 정작 속인 것은 박 대통령이라는 비판이 나와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여성'과 '호남'은 홀대하면서 대선 후보 시절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은 대거 등용해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미래를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에 타협은 없다"며 끝내 밀어붙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인 최문기(62) 한국과학기술원 경영과학과 교수와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다. 그리고 윤병세(외교부)·류길재(통일부)·서승환(국토교통부) 장관도 미래연구원 출신이다.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은 청와대까지 입성했는데, 곽상도 민정수석과 최성재 고용복지수석을 비롯해 김재춘(교육), 정영순(여성가족), 홍용표(통일) 비서관은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이다. '원칙주의자' 박근혜 대통령, 약속했던 '여성'과 탕평'은 어디 갔나.

耽讀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박근혜 당선, '여성'보단 박정희 덕"


이글은 2012-12-20일자 기사 '(NYT) "박근혜 당선, '여성'보단 박정희 덕"'을 퍼왔습니다.
"유권자, 급진적 변화보다는 안정 선호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9일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외신들은 한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데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자의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선거의 당락을 가르지는 않았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19일(현지시간) 박근혜가 당선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가부장적 문화가 심한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지도자가 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정계에 여성이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재계의 여성 고위층도 대게 재벌 가문의 자제인 경우가 많은 한국에서 박근혜의 당선은 대선 전략에서 하나의 중요한 방식을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신문은 박근혜의 당선이 한국에서 여성들의 지위를 곧바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전문가들은 그의 부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 판단의 결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여성친화적인 경향으로 치면 야당인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이 더 앞서나가 있었다면서 박근혜 당선자의 경우 반대파들로부터 '공주'라고 불리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박근혜 당선자가 과거 우비에 달린 모자를 남들이 씌워줘야 했고, 보좌관이 칼과 포크를 가져다 줄 때까지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는 전여옥 전 대변인의 주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신문은 냉정하게 보면 이번 대선은 한국의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평가, 그리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처 및 국가의 경제적 성과를 지키는 전체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선거였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유권자들은 야당이 내세운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박근혜는 당선 이후에도 한국의 고도성장에 가려진 그늘과 그에 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논쟁과 싸워야 할 것이라고 신문은 전망하면서 특히 재벌 문제에 대해 유권자들이 야당의 공약보다 박근혜의 '재벌 정비론'에 손을 들어줬다고 전했다.

한편, 대북정책과 관련해 신문은 박근혜의 당선이 그 동안 이명박 정부와 발을 맞추던 미국 정부에 과제가 될 것이라면서도 전문가들은 문재인보다는 박근혜 정부가 보조를 맞추기 더 수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박근혜가 당선되면서 한국에서 친미(pro-American) 여당의 집권이 연장됐다며 문재인 후보가 햇볕정책으로의 복귀를 선언한 반면 박근혜 당선자는 이명박 정부의 강경 노선을 비판하면서도 대북관계 회복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봉규 기자

2012년 11월 8일 목요일

박근혜, 안티그네, 안티고네


이글은 레디앙 2012-11-05일자 기사 '박근혜, 안티그네, 안티고네'를 퍼왔습니다.
[안녕? 페미니즘!] 가짜 여성, 진짜 여성의 왜곡된 구도 넘어야

박근혜는 여성이 아니무니다?

10년 전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 최보은이 대권 후보로 ‘박근혜를 사유하자’고 주장하면서 벌어진 ‘소란’은 여전히 새삼스럽다. “여성진영은 왜 참정권 행사를 여성의 독자적 이해관계에 기반해서 바라보지 않고 ‘진보진영’의 틀 속에서만 바라보려 하는가?”라는 그녀의 상식적인 질문은 도발적인 것으로 수용됐다. 박근혜라는 ‘문제적 여성’ 때문이었다.
박근혜는 ‘우연히 여성인 정치인’, ‘정치적 남성인 생리적 여성’, ‘여성임을 부정한 여성’이지, 진짜 여성이 아니라고 반박되었다. “여성 문제와 여성 관련 정책 개발에는 관심이 없고”,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그에 대한 성찰성”은 물론 “타자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실천할 능력과 소양”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 독재자의 유훈을 떠받드는 공주일 뿐이라는, 그녀의 정치적 반대자들의 호명에 페미니스트들 역시 동참했다. 노력하는 마초를 자처한 한 진보주의자 남성이 ‘계급 문제에 무관심한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의 투항’이라고 몰아부치자, 여성을 희롱하고 페미니즘을 모욕하도록 빌미를 준 해프닝으로 서둘러 일단락시켰다. 그 때에는.
이번 대선에서는 ‘최초 여성대통령’의 현실화 가능성이 최보은 대신 페미니스트들이 응답하도록 요청해 왔다. 가짜 여성론과 공주론이 재등장했다. 박근혜는 “국가와 자신을 분리해 사고하지 못하고 거기에 종교적 의미까지 덧붙인 신탁 받은 공주”이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숫자가 ‘2’라는 사실 이외에는 여성과 가장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여성이 아니며, 시민이 되지 못한 세습 신분의 화신일 뿐이라는, 10년 만에 똑같이 반복된 이 주장은 박근혜를 안티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공격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안티고네 이야기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다. 오이디푸스 사후, 그녀의 남자 형제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놓고 서로 다투다 죽게 되고, 왕위는 안티고네의 외삼촌인 크레온에게 돌아간다. 크레온은 테베를 공격한 폴리네이케스를 반역자로 선포하고, 에테오클레스에게만 성대히 장례식을 치러준다.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들에 내다버려 짐승의 밥이 되도록 하라, 명하는데 안티고네는 이를 거역하고 몰래 매장함으로써 감옥에 갇히고, 그곳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주목한 것은 크레온의 법으로 상징되는 국가, 즉 정치공동체의 ‘밖’에 위치한 非시민 여성의 문제적인 존재 구조다. 원칙적으로, 오빠를 애도한 안티고네의 행위는 왕의 명령을 거부한 반역죄로 처벌될 수 없다. 그녀의 행위는 혈연의 참혹한 죽음을 방치할 수 없는 친족 규범을 따른 것으로, 여성을 시민권자에서 배제한 폴리스에서 이에 대해 단죄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는 안티고네

프랑스 페미니스트 철학자 이리가레에 따르면 안티고네는 공동체의 영원한 아이러니를 반영한다. 폴리스는 최고의 선을 실현하는 자유민 남성의 완전한 결사체로서, 사적인 영역과 철저하게 분리된 것으로 간주되면서도, 시민은 가족 안에서의 생산 및 재생산 노동을 통해 형성된 자기충족적 인격체로 이상화된다.
따라서 가족의 안녕은 폴리스의 존립 기반이다. 가족 안의 역할에 충실한 안티고네는 배제되었으면서도 배제되지 못하는 아이러니컬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리가레는 안티고네가 정치적인 것의 외부에 존재하면서 사적인 것을 통해 정치적 발언을 하는 여성적 힘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페미니스트 퀴어 이론가인 버틀러는 이리가레와 달리, 왕의 명령을 거스르는 안티고네의 결단과 크레온에 맞선 발화의 방식이 갖는 남성다움에 주목한다. 안티고네가 크레온과 대면하는 모습은 통치권자의 그것처럼 매우 남성적인데, 크레온이 자신의 남자다움을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 정도였다.
크레온에게 말을 하면서 안티고네는 남성다워지고, 그 말을 들으면서 크레온은 점점 남성성을 잃는다. 한마디로 안티고네는 여성인 남성, 혹은 남성인 여성이 되어 이 희곡 전반 걸쳐 젠더 규범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근친상간에 연루된 안티고네는 젠더 규범뿐만 아니라 친족규범도 위반한다. 오이디푸스에게 이오카스테는 아내이자 어머니이며,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이자 오빠가 되고, 폴리네이케스는 오빠이자 조카이기도 하다. 이성애적 가족 구조의 정상성과 금기를 위반한 안티고네는 ‘순수한’ 가족의 대표자를 자임할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젠더 규범과 가족 규범에서 일탈한 안티고네는 여성, 혹은 남성이 아니라 그 젠더 이분법의 경계를 교란하는 주체다.
여성정치인 박근혜 역시 이러한 안티고네적 구조를 수행한다. 그녀는 제왕적 최고 권력자의 공주였고, 수년간 그의 아내 역할을 대신했다. 부모의 ‘비극적’ 죽음은 이 가족의 대표자로서 그녀의 정치적 입문과 동원의 발판이었다.
또한 육영수의 육화된 이미지는 그녀의 정치적 생존의 핵심 자원이면서도, 결혼과 출산이라는 여성의 ‘일반적인’ 경험을 벗어남으로써 여성성은 탈각되었다. 극도로 절제되어 있는 그녀의 발화 방식은 모호해 보이는 젠더 정체성과도 잘 결합되어 있다.

여성-정치의 아포리아에 갇힌 안티그네

이리가레와 버틀러의 안티고네에 대한 해석이 차이는 있지만, 여성 시민과 정치인이 정치공동체 안에 놓이는 ‘문제적 형식’을 다룬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박근혜가 여성이 아니며, 공주일 뿐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문제적 형식’ 자체를 곧바로 박근혜 개인의 고유한 정치로 등치시킨다. 그럼으로써 박근혜가 여성이 아니라면 진짜 여성은 누구인지, 공주의 세속 버전이 여전히 여성의 정치 입문에 중요한 자질이 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지에 대한 답변의 책임을 지게 된다.
생물학적 결정론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통해 박근혜를 ‘가짜 여성’으로 가려내려는 노력이 그 일환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섹스와 젠더를 구분해서 얻고자 했던 페미니즘의 성과를 벗어난다. ‘최초의 여성대통령’ 선언의 잠재력에 놀란 그녀의 경쟁자들이 마치 섹스는 악이고 젠더는 선인 것처럼 대당시키는 요상한 논리와도 구별이 되지 않는다.
“박후보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지만, 사회정치적 여성으로서 여권신장과 양성평등에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다”는 한 야권 캠프의 발언을 보자. 젠더는 가치지향이나 의지를 일컫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여권신장과 양성평등’에 대한 기여를 특정한 생물학적 성(sex)에 연결시키려는 이 ‘사회정치적’ 현상을 설명할 때 쓰이는 용어가 젠더다.
젠더와 정치가 맺는 ‘문제적 형식’은 모든 여성정치인들이 놓인 아포리아다. 보편자 남성(성)의 세계에서 개별적이고 특수한 여성(성)의 체현은 늘 불안하게 동요한다. 그래서 정치가 남성의 영역임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싶을 때, 즉 공천 등을 둘러싼 이전투구와, 정략적 이해관계가 발생할 때, 이 동요하는 젠더정체성은 여성정치인을 배척하기 위한 조롱과 공격의 빌미로 활용된다.
박근혜가 독특한 것은 이 ‘문제적 형식’을 잘 활용할 뿐만 아니라 그 함정을 피하면서 성공한 여성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라는 점이다. 이 ‘독특함’을 여전히 ‘문제적 형식’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은 박근혜의 정치를 초역사화함으로써, ‘안티’의 내용을 텅 비우고, 설득할 대상을 잃게 한다.

박근혜라는 ‘문제적 형식’을 넘어

1998년도에 입문해서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때까지 그녀의 정치적 위상이 단지 아버지의 딸로서 박제화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당 내 개혁과 원칙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 보수적 기반과 가치에 대한 비타협적 수호 등을 통해 권력을 확대해 왔다는 연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여성유권자들 가운데 박근혜의 지지율이 타 후보에 비해 높지 않다. 일반 여성유권자들은 박근혜에게 여성 대표성의 가치나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여성대통령 선언’을 하고, 김성주를 통해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캠프의 무리수들이 이를 반증한다.
반면, 박근혜의 지지자들 가운데는 그 지지 이유가 ‘최초의 여성후보’라는데 가장 많이 응답을 했다. 박근혜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을 포함한 그녀의 지지층에게 공주와 성녀의 이미지는 강력하며, 이것이 이들이 지지하는 박근혜에 대한 여성 대표성의 의미를 구성하고 있다. 공주라서, 그 공주는 왠지 ‘다른 여성’과는 다를 것 같아서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공주의 의미를 단지 봉건적 세습 신분과 동일한 것으로, 그리고 이에 대한 갈망을 허위의식으로 판단하고 말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분석은 이 글의 목적을 벗어나지만, 박근혜가 저학력, 저소득, 지방성 등의 요소를 담은 다수의 여성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는 박근혜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젠더평등 욕망의 투영이라고 설명한 정치학자 이진옥의 연구는 하나의 힌트를 준다.
그동안 할당제와 리더십 개발에 주력했던 페미니즘운동의 여성 대표성 제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정치와 만나는 ‘문제적 형식’의 근원적 구조는 전복되지 않았다. 기존 정치권력에서는 물론, 페미니즘 운동의 정치세력화 의제로부터도 소외되어 있던 여성들에게 다가설 정치와 언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치마만 둘러도 우리는 찍을 수 있다고 여겨질 정도로 여성들의 불만이 치솟아 있다는 걸 보여주자’라는 10년 전 최보은의 주장처럼, 성적 차이가 그 본연의 순수한 모습으로만 드러나는 순간은 없다는 점은 명심해야겠다.

엄혜진

[왜냐면] ‘여성’에 속지 말고 ‘인권’ 위해 투표하자 / 임윤옥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07일자 기사 '[왜냐면] ‘여성’에 속지 말고 ‘인권’ 위해 투표하자 / 임윤옥'을 퍼왔습니다.

이토록 정치의 계절에 ‘여성’이 호명된 적이 있었던가 싶게 ‘여성 대통령’ 담론이 만개했다. “분단 현실을 체험하지 않고, 국방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21세기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나요?”라는 박근혜 후보의 답변은 그 기폭제가 되었다. 말인즉슨 지금 시기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리더십 자격을 논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후진적인 시대관이라는 말일 게다. 맞다. 여기에다 “최초 여성 대통령 선출은 그 자체가 통합과 쇄신의 출발”이라고 강조한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의 발언은 이제 ‘여성 역할론’이 새누리당의 중요한 득표전략임을 드러냈다.한발 더 나아가 박근혜 후보는 그간 ‘남성’ 정치인이 저지른 부정부패와 불신의 정치를 뒤집을 강력한 기표로서 자신이 ‘여성’임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성불평등성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으로 자신을 위치지음으로써 보통 여성들이 겪었을 삶의 고단함을 보상해줄 여성운동적 이미지까지도 차용한다.그렇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박근혜 후보가 단지 우리 사회 1% 부자들을 대변하는 새누리당 후보였을 때는 문제가 단순했다. 그러나 ‘여성됨’을 강조하고 여성혁명을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성불평등성과 박근혜 후보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성’의 대표로 본인을 자리매김하고자 할 때,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여성’이 누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됨’ 자체가 바로 정치혁신과 성불평등성 쇄신을 약속하는 보증수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근혜 후보가 성불평등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살펴보고 판단하는 것은 이제 유권자의 몫이 되었다.먼저 박근혜 후보는 유신시대에 2인자로서 국정에 참여했다. 그 유신체제는 ‘배고파서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는 와이에이치(YH) 노동조합의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 몽둥이와 해고로 대응했다. 유신은 스물두살 꽃다운 나이에 국가폭력으로 숨진 김경숙 열사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정권은 김경숙 열사가 스스로 동맥을 끊고 투신자살한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시신에는 동맥을 절단한 흔적이 없고 후두 정부를 모서리 진 물체로 가격당해 숨진 것이라고 진실화해위원회는 밝혔다.당시에도 박근혜 후보는 유신정권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에도 케이티엑스(KTX), 이랜드,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88CC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박 후보가 단 한번이라도 문제 해결을 위해 발언하거나 당사자를 만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유신시대에는 어려서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 뒤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줄푸세’ 공약으로 친기업 정책만을 발표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본인이 ‘여성’임을 자각한다는 것은 남성과는 다른 부드러움이나 섬세함 등 여성적 특질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 왜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조건에 놓이게 되었는지 통찰하고, 그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성평등과 사회정의적 관점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핵심이다. 김성주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여성들이 마치 정신력이 부족해서 사회에서 뒤떨어지는 것처럼 말한 것은 박근혜 후보가 유신시대에 주도했던 새마음운동과 일맥상통하는 시각이다.이제 우리 ‘여성’들은 ‘여성’이 하나의 상징으로서 소모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자각은 바로 성평등과 사회정의, 인권 실천의 의지임을 알려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에 크게 기여했던 존 스튜어트 밀은, 투표는 ‘권리’만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얘기했다. 투표 불참은 개인적 차원의 권리가 아니라 사회정의 실현을 포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2012년 대선, 여성들은 ‘여성’ 이미지에 속지 말고 사회정의와 인권을 위해 투표하자.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부대표

2012년 10월 7일 일요일

“비정규 연구자 문제 심각” “연구인력 수급 국가대책을”


이글은 한겨레신문 사이언스온 2012-10-04일자 기사 '“비정규 연구자 문제 심각” “연구인력 수급 국가대책을”'을 퍼왔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타운미팅 참가자 인터뷰   

10년 넘게 생명과학 분야에서 연구한 박사 연구자, 사기업과 출연연, 학계에서 두루 연구한 맹성렬 교수, 과학기술 정책에 관심이 많은 변호사, 비정규직  심각성 제기하는 공공연구노조 이광오 사무처장을 과기정책 제안 토론마당 현장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한국 생물학계에서 ‘브릭(BRIC: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이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몰라요. 생물학 연구 현장의 다양한 문제들이 공유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바이오 분야를 비롯해) 기초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열악한 처우를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오네요.”

박사학위를 받고 10년 넘게 생물학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김아무개 박사를 이곳 과기정책 토론장에 오게 만든 건 이런 희망과 불안 때문이었다. ‘2012 대선, 과학기술인 말하다: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타운미팅’의 제2차 토론마당에는 한겨레 과학웹진 과 현장과학기술인모임(가칭), 그리고 사회적 기업 디모스와 더불어 10년 넘게 생물학 연구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왔던 생물학연구정보센터가 공동주최자로 참여했다. 공동주최와 후원기관(카이스트·포스텍 대학원 총학생회, 시민과학센터, 전문연구정보센터협의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1차 때보다는 좀 더 다양한 분야, 지역, 연령, 성별에서 과학기술 정책에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다.

» 지난 9월22일에 열린 ‘2012 대선, 과학기술인 말하다: 현장의 목소리로 채우는 과기정책 제안’ 제2차 타운미팅. 사진/ 정우진 (이하 동일)

“박사인력 늘고, 진로는 제한...국가 차원 대책이 필요”

지난 1차 타운미팅 때와는 달리, 이번 2차 토론마당에서는 처음부터 토론 의제로 나뉜 분과별로 '정책 제안 집중토론'이 곧바로 시작됐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자 타운미팅에 참가했는지 토론 행사가 진행되는 중간에 틈틈이 몇몇 참가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오랫동안 생물학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계신 김아무개 박사와 얘기를 나눴다. 그는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기초 분야에 있는 연구인력에는 중간지대가 없다. 교수 아니면 갈데가 거의 없다. 이런 연구인력의 제한된 진로 문제는 국가가 아니면 누가 관심을 가지나?”라며 “독일 막스플랭크연구소, 일본 리켄(이화학연구소),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 같은 기초연구소가 한국에도 생겼으면 좋겠다. 여전히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는 이른바 ‘비즈니스 마인드’를 바탕으로 인풋-아웃풋의 논리로 접근하는 게 일반적인데, 사실 연구라는 게 그런 논리로만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말에는 현재 그런 기초연구를 목적으로 세워진 출연연에 대한 아쉬움도 함께 녹아 있었다. 

이어 그는 “연구원이나 교수 임용 과정의 철저한 비공개도 역시 부당하다”며 연구과제 선정 과정과 함께 투명한 행정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과학자인 그는 “여전히 우리사회는 너무나 남성 중심의 사회라,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박사)학위 과정 때보다 (박사)학위 이후의 어려움은 더한데, 가장 큰 것은 당당하게 똑같은 동료로서 인정받기가 쉽잖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성의 기회가 더 줄었다”라는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여성 비율이 현실을 반영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지금보다 더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전문성을 갖춘 독립적인 컨트롤 타워를”

이어 만난 참가자는 전북 완주에 있는 우석대의 맹성렬 교수(전기전자공학부)였다. 현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과학기술위원회 정책위원으로 활동해서 그런지 과학 정책에 대한 그의 소견은 잘 정리돼 있었다. 먼저 요즘에 과학기술계에서 한창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 부처의 구조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우선 정부 부처가 개편되야 한다. 현재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게 지식경제부(지경부)다. 지경부의 전신이 산업자원부인데 여기에서 주로 하는 일이 대기업 지원이다. 현재 가장 많은 연구개발(R&D)비를 쓰고 있는 지경부의 상공부 부분을 현재 중소기업청과 합쳐 하나의 부처로 만들고, 역시 지경부의 에너지자원 부분을 환경부와 합쳐야 한다. 과거 정보통신부의 기능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의 나노기술(NT), 생명공학기술(BT) 기능을 합쳐 ‘첨단산업원천기술분야’를 지원하는 부처가 따로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가 과기 분야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과학기술부를 부활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주도하는 연구개발 예산에서 과학기술 부분은 따로 떼어 과기 분야 컨트롤타워에 넘겨야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컨트롤타워’를 관리해야 한다.”

이어 그는 연구자로서 현재 연구과제를 지원하는 행정 절차가 실제 연구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서 “발상을 바꿔 연구자가  더 창의적인 연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방해하는 연구환경은 ‘두뇌 유출’과도 관련이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두뇌 유출이 가속화해 현재 후진국 수준까지 내려갔” 다고 말했다. 특히, 여전히 연구과제의 선정에서 “연구 분야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전문 에이전시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연구비를 따기 위해서는 연구와 무관한 다른 관행들이 영향을 끼친” 다고 나름의 평가를 제시했다.

» 맹성렬 우석대 교수

다음으로 국가의 연구개발 지원에 나타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주아무개 변호사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평소에도 과학기술 정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그는, 특히 환경과 에너지와 관련해 “환경 분야의 경우에는 아직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하다. 따라서 더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현재 정부는 경제 개발이라는 맥락에서 환경 분야를 바라보는 것 같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원자력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우려된다. 값싼 비용의 측면 외에 원자력의 사후처리 문제나 사회구성원의 형평성 문제 등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각한 비정규직 연구자 상황, 제한고용 기간 없애야”

타운미팅에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공공연구노조)의 간부도 한 분 참석했다.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사무처장은 길게 나눈 대화에서 과기 정책의 지배구조(거버넌스), 비정규직 문제, 과기 연구의 공공성과 과학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공연구노조의 입장 또는 개인 의견을 전해주었다.

»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사무처장

먼저 과기 정책의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그는 과기 정책을 국가가 전적으로 ‘컨트롤’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지배구조의 일원화, 기획단계의 국가 역할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과학 정책을 수립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과학기술인이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말하면서 “행정체계 개편 같은 지배구조의 형식보다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관여할 것인지 같은 지배구조의 내용이 더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국과위가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평가하면서, 그는 “교과부와 지경부가 국가 연구개발 예산(약 15조 원)의 3분의 2(약 10조 원)를 차지하고 있고, 따라서 국과위는 기존 부처이기주의 등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장 연구자에겐 ‘시어머니’가 하나 더 생긴 것일 뿐”이라며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었다.

김 사무처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과학기술 분야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너무나도 심각하다. 최근에 열린 토론회 자리에서(최근 김정현 님의 사이언스온 기사, 9월18일치), 그 심각함이 비정규직 연구자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김 사무처장은 “이 문제는 반드시 올해 안에 가시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비율은 약 27%인 데 비해 출연연의 비정규직 비율은 2배에 가까운 비율이며 그보다 더 심각한 곳도 많다”면서 원인 중 하나로 피비에스(PBS, 연구과제중심운영제) 체제를 들었다. 

“최근 10년 간 국가의 연구개발 비용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따라서 많은 사업들이 신설됐다. 하지만 1996년부터 시작된 피비에스 제도에 의해 연구기관이 연구 활동 인건비를 줄여서 다른 운영비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실제 비싼 고급 인력인데도 값싼 비정규직으로 데려다가 일정 기간만 인력을 사용하고 있다. 연구과제 참여 인원에 1~2명만 정규직이고 나머지 10명 이상이 비정규직인 것이 태반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일으키는 사회 문제의 심각성은 너무도 분명하다.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고도 동일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회 정의의 문제를 일으키고, 그래서 이것은 다시 사회 불안의 요소가 된다. 이와 함께 이공계 기피 현상 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김 사무처장은 “최근 과제책임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에서 ‘연구 역량이 축적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많았다. 연구라는 게 혼자하는 게 아니라 팀워크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정규직은 길게 봐야 2년이고, 연구사업 기간이 완료되는 동시에 떠나야만 하니 연구팀의 입장이나 개인의 입장에서 모두 다 연구 역량의 축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면서 공공부문이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간제법 제4조를 보면, 기간제한 유예 대상이 있는데 연구 인력은 2년 이후에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당장에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과 조건으로 대우할 수 없다면 일단 제한된 기간의 고용은 없애야 한다(현실적으로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불가능하기 떄문에, 우선 기간제한 관습부터 철폐해야한다는 의미다).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2년 단위의 해고가 관습화되어 있는 게 문제다”

이 사무처장은 개인 의견이라며 과학기술 연구에서 공공성의 가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기초’, ‘순수’, ‘융합’, ‘대형’ 연구라고 하면 다 선(善)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사실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 국가의 연구개발 수행에서 기본적으로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연구결과가 궁극적으로 특정 재벌이나 자본, 집단에게만 이익을 가져다 주고 결국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아무리 ‘기초’, ‘순수’ 연구라고 말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어떤 연구성과가 궁극적으로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의 가치는 한 글자로 말하면 ‘돈’이고, 좀 어렵게 말하면 ‘상용화’이다. 이른바 성과중심의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과학기술 연구 흐름에서 이런 가치와 기준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지길 바란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사회운동(교육운동, 의료운동, 환경운동 등)이 존재하는데 과학 분야에는 그런 ‘운동’이 없다. 과학기술이 공공재적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다수 국민의 삶에 유익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누군가 싸워야 하는데 현재 과학 분야의 조직력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현장 과학기술인의 목소리에 더 큰 힘 실려야”

과기정책 제안 타운미팅은 과학기술 분야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벽한 토론마당이라고는 볼 수 없다. 더 영향력 있고 신뢰할 만한 정책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개선될 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2차 타운미팅에서 만난 몇몇 참가자들에게 그런 점들을 물어 보았다. 

이광오 사무처장은 “현장의 의견이 여전히 대학 위주로 편중되어 있다. 민간과 공공연구소의 목소리가 부족하며 이런 편중이 왜곡된 시각으로 정리되는 게 우려스럽다. 또한 타운미팅의 목적 자체가 다소 제한적이다. 대선 주자에게 단순히 ‘전달’하고 그치기에는 이런 토론의 노력들이 너무 아깝다. 계속해서 현장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듣고 영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의견을 제시했다.

주아무개 변호사도 “여기에서 끝날 게 아니라 우리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이런 논의들이 이전에는 전혀 얘기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선 주자에게 전달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정책 제안의 영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맹성렬 교수는 “기존의 과학기술단체들은 실제 현장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대처하고 있지 않다. 이는 다른 분야의 활동력과 다르게 과학 분야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타운미팅 식의 연대가 필요하며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우진 아주대학교 석박사통합과정전문가 집단 내부 및 외부와의 소통을 글로써 원활히 매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 학인.
이메일 : aneyespecialist@gmail.com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진짜 대안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18일자 기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진짜 대안은?"'을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빈곤의 예방과 완화를 위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과제

왜 복지국가인가?

오늘날처럼 '노동'의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진 시대는 없는 듯하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과거 봉건시대 영주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노동력인 농노를 보호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제 노동자는 핵심인력 일부를 제외하고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d Bauman, 2004)이 지적한 것처럼 '소비주의' 시대에서 '근로 윤리'는 기만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언제고 잘릴 각오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성실성은 오히려 억울한 감정과 갈등만을 불러일으키는 불필요한 덕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은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아니라 돈을 번 수단이 어찌되었든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을 뽐내는 이들이다. 나머지는 그 유능한 몇몇 사람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배를 곪지 않을 수 있는 가련한 이들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민주주의의 권리는 몇 년에 한 번씩 선거가 있을 때만 잠깐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래서한국에서 복지국가는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노동의 가치와 인간성을 회복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에서는 적어도 땀 흘려 일을 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현실은 일을 해도 미래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아야 할 만큼 열악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자력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전임으로 학원 강사 일을 하는 친구는 졸업 후 3년 동안 열심히 일했음에도 수중에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런 상황은 중산층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임금을 비교적 많이 받아도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 교육, 주거, 의료 등의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이원화로 인해 패자부활이 힘들어 자신과 자녀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복지국가가 가장 발달한 스웨덴의 경우 교육, 주거,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를 모든 이에게 충분히 제공하므로 비교적 낮은 수준의 임금으로도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왜 보편적 복지국가인가?

빈곤의 예방 및 완화의 관점에서 보편적 복지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빈곤을 효과적으로 예방·완화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여 복지재정을 줄이고 빈곤을 완화한다는 식의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을 채택한 미국과 미국식의 복지국가 퇴보를 경험한 영국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 가정하고 있는 빈곤층에 대한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 미치는 정치적 효과가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첫째,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빈곤층을 빈곤층이 아닌 인구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수한 집단으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즉, 빈곤층을 비빈곤층 인구와는 애당초 다른 특징(선천적 능력, 행동적 특징, 가족구조 등)을 가진 정태적 집단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빈곤에서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도 등의 발전도상국과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통틀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은 빈곤층이 결코 정태적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Krishna, 2010). 빈곤으로의 추락과 탈피는 매우 흔한 현상이다. 빈곤위험이 일부 집단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일부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낮은 조세, 규제 완화, 작은 정부를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 3년 동안 OECD 국가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조사는 조사 이전에는 빈곤하지 않았던 인구의 5%가 매년 빈곤층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매년 빈곤인구의 50%는 빈곤 탈피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보다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복지국가가 매년의 빈곤인구뿐만 아니라 빈곤의 지속 역시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OECD, 2001).

결국 빈곤을 예방하는 기능이 있는 보편적 복지 정책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 빈곤층만을 '선별적'으로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이야기는 단기적인 대증 요법이 되기 십상이다.

둘째,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은 필연적으로 빈곤층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집중적' 지원의 본래 생각과는 반대로 빈곤의 예방과 완화에 투입되는 자원의 총량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1960년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에서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다.

현재 미국에서 '복지'(welfare)라는 단어는 마약에 중독된 흑인과 무책임하게 아이만 낳는 한모가구 등 일부 빈곤층만 수급 받는 '공공부조'와 같은 개념으로 매우 수치스러운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이는 미국인의 심성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납세자와 수혜자가 명백하게 분리되는 시스템 하에서 납세자의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Skocpol, 1990).

아무리 선별적 빈곤구제 전략이라고 해도 그것은 임의적이고 일시적인 자선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 누군가의 지속적인 세금부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는 매년 7조 원이 넘는 예산이 조세에서 충당되고 있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제도가 발달하지 않은 조건에서 납세자는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여사보험에 가입하거나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려 할 것이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세금부담을 줄여 개인적으로 각종 위험에 대처하길 바란다.

그런데 적지 않은 세금부담을 짊어지는 중산층 납세자들은 공공부조와 같은 '선별적' 복지제도를 통해 이득 볼 게 없다. 따라서 선별적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가 낮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래도 전체 인구에 비해 선별적 복지제도의 수혜자들 가운데 한부모, 소수인종, 장기실업자들의 일부 집단이 과대 대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선별적 복지'에 대한 인식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선별적인 복지제도를 강조하는 국가의 복지 총량(사회보험, 공공부조, 복지서비스 등에 투여되는 자원의 총량)은 보편적인 복지제도가 발달한 국가의 복지 총량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오히려 빈곤층이 향유할 수 있는 자원도 적어지는 '재분배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Korpi and Palme, 1998).

빈곤을 예방·완화하기 위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과제

현재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5% 수준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 권에 속한다.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적 빈곤율'도 약간의 등락에도 불구하고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거칠게 추산하면 약 500만 명이 절대빈곤, 약 750만 명이 상대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그리고 상식과는 달리 소득이 아니라 자산을 기준으로 측정한 빈곤율은 더 높게 나타난다(남상호, 2007, 2011).

빈곤의 예방과 완화가 복지국가의 일차적 과제라 한다면, 이는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이다. 그렇다면 빈곤을 예방·완화하는 데 있어 역동적 복지국가가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주로 세대별 빈곤 위험의 전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현재 빈곤이 가장 심각한 집단은 노인이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이 늘어나고 고용상황이 악화되면서 자녀의 용돈에 의지하던 노인세대의 빈곤율이 급상승했다. 외환위기 극복 이후에도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열악한 상황은 개선되지 못 하고 공적 지원의 확대는 사적 이전의 감소에 상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현재의 근로연령세대 역시 상당수는 노인세대가 되어 빈곤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상당수의 근로연령세대 인구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또, 120개월의 기여기간을 충족해도 납부액이 적어 충분한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도 빈곤율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은 근로연령세대의 빈곤위험과 노인세대의 빈곤위험이 악순환하는 데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급속한 노령화와 연금재정의 팽창 때문에 사후적 소득보장만으로 대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빈곤을 예방·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의 내실화와 함께 빈곤을 예방하는 사전적인 정책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는 여성의 고용률 제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강화,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제시하고자 한다.

일-가정 양립 정책을 통해 여성의 고용율을 높여야

첫째,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지금도 근로연령세대 가구의 빈곤을 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여성고용률은 OECD 국가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 하고 있다( 참조). 25~54세 여성의 고용률이 특히 낮은 것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성이 충분히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 가구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여성의 노후준비를 어렵게 만들어 노인빈곤의 가능성을 높인다. 현재 베이비부머(1955~1963년 생) 여성 374만 1천 명 가운데 10년 이상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이는 불과 49만 명(12.8%)에 불과하다. 그리고 1~9년 납부자가 176만 5천 명(47.2%), 그리고 납부 이력이 전혀 없는 인구가 149만 6천명(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베이비부머 남성의 54.3%, 34.8%, 10.9%와 대조적이다(국민연금공단, 2011).

그런데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7년이나 더 살고, 부부 연령차가 보통 3~4년이므로 평균 10년을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계속해서 이와 같은 여성의 '낮은 고용률-낮은 국민연금 가입률'이 지속된다면 노인 가구, 특히 그 중에서도 홀몸여성노인의 빈곤위험이 매우 높게 지속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더 많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무상보육과 같은 일-가정 양립 정책들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중요한 이유

둘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란 실업에 처한 이들이 괜찮은 일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교육, 훈련, 취업알선 및 구직급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OECD, 2011). 그런데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교육·훈련을 경험한 이의 비율은 18.9%에 지나지 않았고, 평균 교육훈련 시간은 5.3 시간에 불과했다(김유선, 2011:96).

고용의 불안정과 저임금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교육·훈련이 필요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교육·훈련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자기 계발조차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영세 자영업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세 자영업자 가운데 사업 정리 후 취업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조사 대상자 가운데 34.2%가 취업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전체 조사 대상자 가운데 66.8%가 정부의 교육 지원 정책이 존재하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중소기업청, 2010).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근로연령세대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은 노후의 창업 또는 유급노동 참여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통한 빈곤의 예방과 완화

셋째,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는 근로능력이 미약한 근로연령 인구와 재고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ㆍ고령 인구에게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원을 제공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2009년 현재 사회적 기업에 취업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각각 132만 원과 93만 원이다(이정봉, 2010). 이는 전체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 255만원, 120만원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지만, 1인 기준의 국민연금이나 국민기초생활보장의 평균 급여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의 제공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의 제공,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기업은 업무처리 능력의 향상, 대인관계의 향상 등 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사후적 소득보장정책에 비해 큰 장점을 가진다. 또한 사회적 기업은 총사업비의 약 65%를 자체 매출액으로, 약 28%를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2008년 기준)하므로 전적으로 정부의 조세에 의지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비해 재정 부담이 덜하고 납세자와의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장점을 가진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을 단지 한시적인 일자리 제공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사회적 기업 관련 예산은 2009년 1,885억 원에서 2010년 1,487억 원으로 줄어들었다가 2011년 1,615억 원, 2012년 1,760억 원으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또, 현재 정부의 사회적 기업 정책은 지나치게 자립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재정 지원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두고 추진되어 사전적·예방적 빈곤정책으로서의 목적은 제대로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규창업 사업체의 절반이 3년 이내에 문을 닫고, 3분의 2가 5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사회적 기업이 본연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물론, 이상의 대안들은 소득보장에 치중한 것이다. 주거·의료·교육 등 필수적 사회서비스를 적절히 향유하는 데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면 사전적·사후적 소득보장을 아무리 충실히 한다고 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다. 이는 다시 보편적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모든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의 확보가 필요할 것이다.

즉, 빈곤의 예방과 완화를 위해서는 혜택을 받는 대상자를 줄여 예산을 절감하는 게 아니라 상대적 예산 조정과 감세의 원상복구,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점진적 증세를 통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구가 삶의 과정에 닥치게 될 사회적 위험을 성공적으로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서재욱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연구원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스티브 잡스만 보지말고 그를 키운 환경을 봐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25일자 기사 '“스티브 잡스만 보지말고 그를 키운 환경을 봐야”'를 퍼왔습니다.

  이공주 이화여대 약대 교수
결혼·육아로 현장 떠나는 여성
우리 사회가 관용에 인색한 탓
여성과학인 네트워크화 힘쓸것 

여성생명과학상 이공주 교수

“우리나라 과학이 발전하려면 텃밭을 넓혀야 합니다. 잘하는 사람 몇 명만으로 세계가 움직인다는 사고는 잘못된 것입니다. 노벨상 받을 사람이라고 키워 노벨상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한국로레알과 유네스코가 주는 제11회 여성생명과학상 학술진흥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공주(57·사진) 이화여대 약대 교수(대학원장)는 25일 “바둑에 여러 급수가 있듯이 과학기술도 다양해져야 한다”며 “스티브 잡스만 보지 말고 그가 잘할 수 있게 된 환경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생명과학상은 국내 여성 과학기술인 가운데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2002년 제정돼 해마다 수상자를 내고 있다. 이 교수는 프로테오믹스(단백질분석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암 전이나 스트레스 반응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연구해 약물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새로운 활성산소종 신호전달체계를 발견했다. 또 지난해부터 세계여성과학기술인네트워크(이누에스·INWES) 회장을 맡는 등 세계 여성 과학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 교수는 이누에스 회장 3년 임기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지역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2005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여성과학기술인대회(ICWES)를 준비하기 위해 케냐에서 열린 여성 과학기술인 지역모임에 참석했을 때 그들이 기아와 에이즈를 주제로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회적 차별, 육아 등 세계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공동으로 부닥치는 문제는 비슷한 것 같지만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선진국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오스트레일리아 엔지니어의 10%만이 여성이고, 이들의 절반은 무자녀, 나머지 대다수도 한 자녀뿐입니다. 반면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서 여성 과학자 신분이면 하녀들이 몇 명씩 됩니다. 지역적 특성에 맞춘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이 교수는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결혼과 육아 문제로 연구 현장을 떠났다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관용을 베푸는 데 인색하고 유연하지 못해서”라며 “훈련과 교육이 잘돼 있는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훌륭한 연구성과를 내기 때문에 사회가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이 교수에게 도전이자 기회가 됐다. 이화여대 약대 졸업 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 남자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공무원을 지원하면 행정고시 합격에 준하는 3급을 줬지만 여성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지도교수의 권유로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난 그는 연구자로 인생의 향로를 바꿨다.이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후과정(포스닥) 때 출산을 했는데 지도교수의 배려와 남편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며 “연구생활 중 아이를 키우는 걸 부담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즐거운 쉬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이에 대한 애정은 많이 들여다보기 때문에 생긴다. 남성에게도 생명, 아이를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면 남성이 변하고 사회가 바뀔 것”이라며 “스웨덴이 육아휴직을 1년4개월 주면서 남녀가 절반씩 쓰도록 한 취지를 알 것 같다”고 했다.미국에 남으라는 지도교수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한 그에게 다가온 것은 여전한 차별이었다. 남편과 각각 다른 연구소에 지원했는데 남편은 선임연구원으로 뽑힌 반면 이 교수에게는 ‘박사후과정’을 거치라는 조건이 붙었다. 이 교수는 “어렵사리 한 연구소에 자리를 잡고 당시 원장님께 포스닥을 또 하라 한다는 불평을 털어놓자 ‘한국이 이만큼 잘하는 것은 누군가가 일한 것 때문이다. 한국을 우습게 보지 마라. 우습게 보면 그때부터 추락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며 “그동안의 연구성과나 여성 과학인 모임 활동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여성생명과학상 시상식은 26일 오전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다.

이근영 선임기자, 사진 한국로레알 제공